소설리스트

2화 (12/12)

***

썩을…….

사는 게 재미없다.

이령과 떨어져 지낸 지도 벌써 나흘.

한나절 만에 입맛이 사라졌고 하룻밤 사이에 설사를 시작했으며 이틀째가 되자 살이 빠지기 시작하더니 아침마다 건강함을 자랑하던 양물에도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새벽마다 제 스스로 고개를 들고 있던 놈이 지금까지 축 처진 채 힘을 쓰지 못하자 급기야 태의가 진찰을 시작했다.

바지를 벗은 검무는 다리를 쩍 벌린 채 허공을 응시했다. 시들한 건 양물만이 아닌 듯 눈동자도 풀려 있어 약에 취한 것 같았다.

“어떠냐.”

황제가 물었다. 기운이 뻗쳐서 문제였던 게 기능을 잃은 게 걱정인 듯 그의 안색은 흐린 날씨처럼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소신의 소견으로는 마음의 병을 얻으신 듯하옵니다.”

“마음의 병?”

“황태자비마마와 각방을 쓰신 후로 설사를 하셨고 소변도 원활하지 않은 데다 양물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것은 뻔한 이치가 아니겠습니까?”

“욕구불만인가?”

“그러하옵니다, 폐하.”

태의의 대답에 황제는 이마를 쓸었다.

“일반적이지 않구나. 나흘…… 못 했다고 이 꼴이 되다니.”

“발기부전이란 심리적인 요인이 큽니다. 황태자 전하께서는 특별한 날, 이레를 빼곤 황태자비마마와 합궁을 하셨습니다. 몇 년 동안 하셨던 일을 못 하게 되니 울분이 쌓인 탓입니다. 울분을 가라앉히는 탕약을 지어 올리겠습니다.”

태의의 대답에 검무는 푸시시 웃었다. 편전에서 다리를 쩍 벌리고 앉아 두 사람이 하는 얘기를 들으니까 꼴이 우스워 헛웃음이 터졌다.

발기부전이라니.

너무 싱싱해서 문제였던 놈이 시들해지자 다시 한번 이령을 향한 제 마음을 깨닫게 된다. 이령이 없으면 죽는다. 양물도 죽고 검무도 죽어 없어지는 게다.

“황태자비를 데리고 오면 꼿꼿해질 것도 같은데 말이야.”

“태의는 이만 물러가라.”

황제는 금욕 나흘째 몸에 이상이 나타난 아들 때문에 한숨을 깊었다.

“만날 쓰던 것을 못 쓰게 되니 욕구불만인 게지. 색광이라는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황제는 바지를 올리는 검무를 빤히 쳐다봤다.

“스스로 증명하였구나.”

“증명이라니요?”

“황태자, 네가 색정광이 아니냐고 의심하는 자들이 있다. 황태자비에게 푹 빠져서 그런 거라면 그건 사랑이지 병이 아니다만…… 혹 다른 여인에게도…….”

“사랑도 병이라면 소자는 아주 큰 병을 앓고 있습니다.”

“그런 뜻이 아닌 걸 알면서도!”

황제는 오냐오냐 키워 버릇이 없는 검무를 꾸짖는 투로 노려봤지만 소용없었다. 아비의 성질머리를 빼다 박은 아들은 천상천하 유아독존인 성격대로 짜증이 잔뜩 붙은 얼굴로 정곡을 찔렀다.

“아바마마도 소자가 후처를 들이길 바라십니까?”

“병이 낫길 바란다.”

“솔직해지십시오. 소자는 못 속입니다.”

“검무야…….”

“소자는 후처를 들이지 않습니다.”

“황위에 올라 황제가 되면 지금처럼 장담할 수 없다.”

색광이냐 아니냐를 떠나 황제의 걱정은 후사였다. 그는 조곤조곤한 음성으로 타일렀지만 검무는 완강했다.

“소자는 황위에 오르더라도 후궁을 들이지 않습니다.”

“어허, 그게 네 뜻대로 될 듯싶으냐? 황태자비와 네 사이에 자식이 많다면 몰라도 지금으로선…… 쯧쯧.”

황제는 혀를 찼다.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고, 이령을 제 딸처럼 여기며 항상 웃는 낯으로 대했지만 후사 문제는 또 달랐다.

“그렇게 붙어 사는데 왜 아직도 무자식이냐.”

“소자가 조절을 잘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 조절을 잘해?”

“자식이 생기면 황태자비에게 찬밥이 되는 건 소자입니다. 자식들을 돌보느라 정신이 없겠죠. 소자는 그런 꼴은 죽어도 못 봅니다. 소자가 첫 번째고 자식들은 나중입니다. 한데…….”

“너는 이 아비의 뒤를 이어야 하는 황태자다! 후사부터 생각해야지, 너는 어찌 네 일신만 생각하느냐!”

“아바바마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황제가 될 아들, 응당 소자가 모든 면에서 우위에 있어야 합니다. 안 그렇습니까?”

이령과 각방을 쓴지 나흘째가 되자 검무의 눈빛이 점점 날카롭게 변했다. 평소에도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를 냈지만, 이처럼 짐승 같지는 않았다.

아버지를 쳐다보는 눈빛도 삭막했고 말투 또한 거칠거칠해 주변을 불안하게 했다.

“네 말투가 꽤 공격적이구나.”

“처가 보고 싶어서 미치겠고 안기고 싶은데 황태자궁엔 얼씬도 못 하고 있습니다.”

“가고 싶으면 가는 게지.”

“어마마마께서 소자에게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보내셨습니다. 소자가 황태자비와 만나지 못 하도록 곳곳에 방해물을 세우셨지요.”

“……병을 치료하기 위함이다.”

후사 때문에 조바심이 났던 황제도 황태자에게 후처를 붙이는 걸 적극적으로 찬성했다. 하여 아들이 색광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의심하면서도 황후의 뜻대로 따라 주고 있었다.

“소자가 병이었다면 아바마마의 후궁들은 남아나지 않았습니다.”

“네 이놈!”

“소자가 병이었다면 만삭으로 다니는 여관들이 한둘이 아니었겠지요!”

“아비 앞에서 못 하는 소리가 없구나.”

“색광이 나흘이나 참을 수 있습니까?”

“한 달은 참아 보아라.”

“하, 하, 한 달이요!”

검무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이레만 참으면 되겠거니 했던 그로선 눈앞이 컴컴했다.

“소자를 말려 죽일 작정입니까!”

“그걸 못 한다고 말라 죽지 않아.”

“저는 말라 죽습니다.”

“네 어찌 황태자의 신분으로 입에 담기 민망한 소리만 하는 게냐!”

“보고 싶습니다.”

검무는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가슴을 두드리며 울먹거렸다.

“가슴이 뜯기는 것 같습니다. 황태자비를 만나게 해 주세요.”

“안 된다.”

“각방을 쓰라고 하셨지만 생이별하라고 한 적은 없잖습니까!”

“만나면 못 참고 선을 넘겠지.”

“제 처입니다! 선을 넘어도 되는 사이입니다.”

“병을 치료해야지.”

병, 병, 병!

색광으로 몰아 얻으려는 게 뭡니까!

소리를 지르려던 검무는 주먹을 쥐었다.

“소자가 건강하다는 걸 아바마마는 알고 계십니다! 소자가 색광이면 누굴 닮았겠습니까! 아마마의 핏줄이라 이 모양인데 왜 소자만 이 고생을 해야 합니까!”

“검무, 네 이놈!”

“소자가 색광이라면 아바마마도 오늘부터 금욕하십시오! 아바마마께선 어제도 귀인들의 처소를 두 번이나 옮기며 파정을 보셨다고 들었습니다! 하루에 두 여인이나 품으시면서 어찌 소자는!”

“후궁들은 아비의 기쁨이다.”

됐다, 말을 말자.

자기는 후궁들이 기쁨이라면서 아들에겐 달랑 하나뿐인 처와 못 만나게 하다니.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훌륭한 유전이었다. 황제의 말이 곧 법이니, 기쁨이라는 후궁에 대해 말해 봤자 입만 아팠다.

검무가 편전을 나가려고 하자 황제가 물었다.

“어딜 가느냐.”

“가슴이 답답하여, 하늘을 보러 갑니다.”

“황후전에 가 보아라.”

“황후전에는 왜요.”

“버릇없는 아들을 위해 준비한 게 있다더구나.”

검무는 아버지를 빤히 쳐다봤다. 어조가 마음에 걸렸다. 준비한 게 여인이라는 뜻 같아 입매를 비틀 때 편전 밖에서 기다리던 이치와 타래가 다가왔다.

“전하, 황후전에서 잠시 들르라는 명이 계셨습니다.”

황태자비궁의 후원을 산책하던 이령은 맞잡은 손의 위치를 바꾸며 초조해했다. 오늘로 나흘이나 독수공방을 했더니 검무가 보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밥알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고 물을 넘기는 것도 고역스러울 만큼 온통 검무 생각뿐이었다. 눈을 끔뻑일 때마다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내가 우는구나, 라고 느끼는 순간 가슴이 들썩들썩. 주저앉아 오열하거나 넋을 놓기 일쑤였다. 누군가 심장만 뜯어간 기분이었다.

“마마…….”

금란이 달려와 이령을 살폈다.

“왜 또 눈물을 보이세요…….”

“보고 싶어, 전하가 너무 보고 싶어.”

“마마…….”

금란은 이령의 눈물을 닦아 주며 함께 울먹거렸다. 낯뜨거울 정도로 다정한 것도 때론 정도껏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했지만 이령 때문에 안 되겠다.

차라리 밤낮 없이 벌이는 애정행각 때문에 얼굴을 붉히는 게 낫지, 울음소리 때문에 덩덜아 가슴 아파하고 싶지 않았다.

“전하께 다녀올게요.”

“왜!”

“마마께서 힘들어하신다고 전하면 한달음에 달려오실 거예요.”

“안 돼…… 그랬다간 황후마마께서…….”

“전하께 사실대로 말씀하세요. 후처를 들이려고 꾸민 일이라고요. 전하께서 아신다면…….”

이령은 머리를 흔들었다.

“아직은 때가 아니야.”

“어떤 때를 기다리시는 건데요?”

“내가 불러서 오는 건 안 돼. 전하가 자발적으로 오셔야지.”

“마마…….”

“전하의 마음을 확인하려면 어쩔 수 없어. 검무에겐 이령이뿐이라는 걸 황후마마에게 증명하고 오셔야 해.”

이령은 입술을 뜯으며 눈에 힘을 줬다. 다시는 후처 소리를 하지 못하도록 검무가 싹을 잘라야 했다.

“마마, 마마!”

황태자궁의 여관 가연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밖에서 무슨 소식이라도 들었는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서 달려오는 바람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뭐야, 뭔데 네 표정이 그렇게 안 좋아?”

뛰어온 건 가연인데 숨이 넘어가는 건 금란이었다.

“황후전에 대장군의 손녀가 들었대요. 후, 후처로 삼으시려는 요량이라고…….”

우르릉 쾅!

하늘이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이령과 금란은 깜짝 놀라 하늘을 올려다봤다. 안 그래도 흐렸던 하늘 곳곳이 번쩍거리기 시작하더니 먹구름이 빠르게 움직였다.

마치 바람을 타고 휙휙 날아다니는 것처럼 위화감이 대단했다.

“마마, 안으로 드세요. 큰 비가 쏟아질 것 같아요.”

금란이 이령을 부축했다.

“가연아, 대장군의 손녀…… 얼굴을 보았니?”

“예.”

“곱디?”

“예…….”

“호리호리하디?”

가연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마마, 걱정하지 마세요. 미인이라고 해도 전하의 눈엔 호박일 거예요!”

금란은 이령의 노파심을 씻어주려고 애썼다.

“예, 맞아요! 금란의 말처럼 마마를 향한 마음이 일편단심인 걸요! 전하껜 마마가 전부예요.”

이령은 눈가를 쓸었다. 어느새 눈물이 말라 있었다. 대장군의 손녀에 대해선 자주 들었다. 바로 황후의 입을 통해서 말이다.

황후에겐 입안의 혀처럼 굴기로 소문이 자자했던 탓에 항상 비교를 당했다. 각방을 쓰게 해서 검무와 떨어트린 것도 대장군의 손녀와 만나게 하려고 꾸민 상황이었다.

이럴 거라는 걸 예상했으면서 가슴 한가운데가 텅 빈 것 같다. 이령은 비틀거리며 처소로 향했다. 이러다 픽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흐느적흐느적 걸음을 뗄 때 다시 한번 하늘이 포효했다.

우르릉 쾅!

황후전의 넓은 궁실 밖에선 하늘이 조각조각 찢어지는 소리를 내며 고약하게 굴었다.

순식간에 밤이 된 듯 사위가 새카맣게 변하더니 이내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침묵을 밀어냈다.

검무의 시선은 황후와 대장군의 손녀 선옥을 번갈아보느라 바삐 움직였다.

누가 봐도 한껏 꾸민 선옥은 검무의 눈에 들고 싶어 생글생글 웃고 있었고 황후도 흡족한 듯 안색이 환했다.

“뭡니까? 이 호박은?”

호박이라는 소리에 선옥의 얼굴이 새빨갛게 익었다. 지금까지 이와 같은 모욕을 느껴본 적이 없었는지 황태자의 시비조에 혼이 빠져나간 표정이었다.

당황한 건 황후도 마찬가지였다. 대장군이 애지중지하는 손녀인 걸 모르지 않을 텐데 호박이라니?

황후는 도끼눈을 뜬 채 다그쳤다.

“황태자는 말조심하라!”

“어마마마께서 부르신다고 하여 기껏 어려운 걸음을 했더니 호박이 앉아 있네요? 이 호박을 후처로 삼으라는 말씀은 내뱉지 마세요. 이 자리에서 박살을 내버릴 테니까.”

검무는 삐딱하게 선 자세로 연신 코웃음을 쳤다.

“어디서 저런 걸 골라 와서…….”

“대장군의 손녀요. 욕보이려는 게요!”

대장군의 손녀라는 걸 다시 한번 강조하면서 말조심을 시키려고 했지만 통할 리가 없었다. 검무는 귓구멍을 막은 것처럼 연신 이죽거렸다.

“욕을 보이는 건 소자가 아니라 어마마마입니다. 소자의 성질머리가 어떤지 알면서도 데리고 와 앉혔습니까? 다 엎어 버리고 이 자리에서 모자지간의 연도 끊고 싶으십니까!”

“이, 이…… 감히 네…… 네가 어느 안전이라고…… 모자의 연을 끊어? 네 정녕 패륜을 입에 담느냐!”

“예, 그겁니다. 어마마마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패륜을 저질러 폐위되길 바라시면 계속 훼방을 놓으세요.”

“뭐…….”

“소자가 폐위 된다면 어마마마도 황후전을 비우게 될 겁니다. 그땐 어마마마의 신세가 매우 처량하게 될 텐데, 해 보시겠습니까?”

검무는 황후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동시에 제 마음대로 되지 않아 불만이 많은 아들인 제 자신을 재물로 삼았다.

“소자가 황제가 되어야 어마마마도 무사합니다. 아시죠?”

“협박하는 게요!”

“예, 협박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다시는 이런 식으로 일을 꾸미지 마세요.”

“미, 미친 게요. 황태자는 제정신이 아니오!”

“예, 저는 미쳤습니다. 그러니까 더는 자극하지 마세요. 소자, 눈이 홱 돌면…… 무슨 짓을 할지 모릅니다.”

황후는 어이가 없어 숨만 토했다. 대장군의 손녀 앞에서 망신을 당해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었다.

“너, 호박.”

돌아서려던 검무가 선옥을 불렀다.

“예…….”

“대장군께 오늘 당한 일을 고대로 전하렴. 그리고 황태자는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 서방님으로 삼기 힘들 것 같으니까 명문가 출신의 성품이 반듯한 자로 찾아 달라고. 알겠느냐!”

“예…….”

선옥이 참고 있던 눈물을 떨어트렸지만 검무는 냉랭한 눈초리로 생김새를 훑고는 황후에게 경고했다.

“소자의 앞을 막지 마세요. 막는 자, 그게 누구든 벱니다.”

이제 더는 못 견디겠다.

이령이 견디라고 해서 어금니를 꽉 깨물었는데 한계에 닿았다. 이령이 보고 싶어서 미쳐 가고 있었다.

검무는 찬바람이 불도록 차갑게 돌아선 후 황후전을 나왔다. 빗방울이 거칠게 쏟아지고 있었다.

“황태자궁으로 모실까요?”

이치가 챙이 넓은 우산으로 머리 위를 덮으며 물었다. 검무는 후, 하고 입바람을 크게 불어 찝찝한 기분을 날려 버렸다.

“그래, 나흘이면 참을 만큼 참았다.”

“곧 마차를…….”

“뛸 것이다.”

“예?”

“쫓아오지 마라, 황태자비에게 가련다!”

몸이 뜨겁다. 화를 낸 탓에 열기가 정수리까지 뻗친 탓도 있었지만 가슴을 누르고 있던 답답함이 개운하게 가셨다. 그리고 아랫도리가 불끈거렸다.

발기부전이라는 진단을 받았던 아랫도리에 불꽃이 번져 슬슬 고개가 들렸다. 태의는 명의다. 마음의 병 때문에 풀이 죽었던 걸 딱 집어내니 상을 내리고 싶었다.

양물도 제 주인이 누구인지 알고 살아서 꿈틀거리는데 무슨 놈의 색광? 그리고 처에게만 색광이면 좀 어떠리!

아버지처럼 후궁이 기쁨이라는 소리를 해 대는 것도 아닌데.

검무는 빗속을 뛰었다. 황후전에서 황태자궁까지 먼 거리였지만 개의치 않았다. 얼굴을 때리는 빗방울을 혀끝으로 맛을 본 그가 별안간 웃음을 터트렸다.

저 멀리서 이령이 뛰어오는 게 보였다. 빗속을 달리는 게 어지간히 급했던 모양이다.

“이령아!”

황궁이 떠나가라 이령을 부른 검무가 양팔을 벌렸다. 그러자 잠시 멈칫했던 그녀가 두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주저앉았다.

“이령아, 이령아!”

이령이 주저앉는 바람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검무는 한달음에 도착해 상태를 살폈다.

“왜, 왜 어디 다쳤느냐?”

“견딜 수가 없었어요.”

“뭘.”

“화, 황후전에 대장군의 손녀가 들었다는 소리를 듣고…… 무서워서…… 얌전히 기다릴 수 없었어요.”

이령의 눈에서 눈물이 부글부글 끓어 넘쳤다.

“신첩은 전하가 다른 여인에게 눈길 주는 거 싫어요…… 생각만으로도 무서워.”

“바보.”

검무는 이령이 통곡하듯 오열하자 힘껏 끌어안았다.

“견디라고 한 건 너였다.”

“잘못했어요.”

“다시는 견디라고 하지 마라!”

“응.”

“내게 천생배필은 너 하나인데 다른 이를 이 마음에 담을 수 있겠느냐! 내 마음이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열릴 것 같으냐!”

검무는 이령의 얼굴을 커다란 손바닥으로 문지르듯 닦으며 눈시울을 붉혔다.

“보고 싶어서 미치는 줄 알았다.”

“그리워서 혼났어요.”

“안고 싶어서 돌아 버리는 줄 알았지.”

“안기고 싶어서 많이 울었어요.”

이령이 입술을 파르르 떨며 멈추지 않는 눈물을 떨궈 내자 검무의 눈빛이 변했다. 먹구름을 할퀴듯 번쩍거리던 섬광이 새카만 눈동자에서도 요동쳤다.

“그 몸이 으스러지도록 안을 것이다.”

“떨어지지 않을 거예요.”

“네 신음으로 천둥소리를 막아 버릴 것이다.”

검무는 이령을 일으켜 세운 후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녀를 가장 가까운 전각으로 이끌었다.

우당탕탕!

발로 문을 걷어찰 만큼 검무는 매우 급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져도 지금처럼 발을 동동 구르지 않을 거다. 나흘 만에 만난 이령은 비를 맞아 차가웠다.

혹여 고뿔에 걸리면 어쩌나 걱정이 앞섰던 그는 젖은 옷을 다급한 손길로 벗기며 입술을 겹쳤다.

맞붙인 입술 사이로 숨이 넘나들고 한 덩어리로 꼬고 있던 혀가 후루룩 소리를 내며 타액을 삼킬 때마다 뜨거운 숨결이 차가운 실내 공기를 밀어냈다.

그는 벽과 가슴 사이에 발가벗은 그녀를 가두며 매끄러운 살결을 어루만졌다. 숨소리가 짐승이 목울대를 긁으며 내는 소리와 흡사했다.

“조금 전에 태의가 발기부전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이렇게…… 튼실한걸.”

“네가 세운 게야.”

“신첩이 명약인지요?”

“이놈도 주인을 알아보는 게지. 너만이 나를 세울 수 있다는 것도.”

검무는 이령의 뺨에 입을 맞추며 앵두처럼 붉고 단단한 젖꼭지를 비틀었다.

“감히 내게서 떼어놓으려고 하다니…… 용서하지 않을 게야.”

“이렇게 다시 만났으니까…… 앗…… 분노를 삼키셔요.”

“어떻게 삼켜, 곱씹을수록 화가 나는데.”

검무는 이령의 다리를 제 허리에 걸치며 벌어진 가랑이 사이로 드러난 회음부를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그리운 건 나만이 아니었지.”

“독수공방은 못 하겠어요.”

“밤새 생각나던?”

“어찌나 근질근질하고…… 찌릿찌릿하던지요. 들어와야 할 게 감감무소식이니 은밀한 곳도 외로움에 몸부림을 치더이다.”

“그 외로움을 지금 끝낼 게야.”

검무는 손가락으로 음순을 간질이다가 후끈한 바람과 애액을 내보내기 시작한 질 구멍에 손가락을 넣었다. 동시에 두 개나 넣은 그는 곧장 내벽을 자극하며 입술을 또 다시 겹쳤다.

“아아…….”

이령이 신음을 흘렸다. 그녀는 그의 목에 양팔을 감았다. 허리에 양다리 또한 걸쳐 놓으니 그가 다른 한 손으로 엉덩이를 받치며 혀뿌리를 뽑을 기세로 숨을 들이마셨다.

“아…….”

질 안에서 회오리를 만들던 손가락이 쑥 빠져나갔다. 아쉬운 마음에 침을 삼키는 동시에 허리를 비틀자, 검무가 귀두로 질 입구를 위아래로 두드렸다.

“읍!”

정신이 번쩍 난 이령은 숨을 들이마시며 눈을 크게 부라렸다. 귀두로 공알을 탁탁 소리가 나게 두드리자 벼락을 맞은 듯 엉덩이 계곡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으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엉덩이가 들썩거리고 발바닥이 간질간질해서 허리가 원을 그렸다.

처음에는 가볍게 돌렸지만 검무가 짓궂게 장난하듯 들어갈 듯 말 듯 애를 태우자 엉덩이에 손바닥 자국이 나도록 찰싹 때렸다.

“읏!”

“장난치지 말고 넣어요.”

이령이 엄한 어조로 꾸짖듯이 명령했다. 급한 건 이령이 더한 모양이다.

“부인이 더 급했구려.”

“오늘부터 재우지 않을 거예요.”

“하하.”

“웃을 일이 아닐 텐데요? 신첩 때문에 코피를 흘리면 안 돼요.”

이령의 도발은 상큼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흘린 적 없었던 코피를 오늘 흘리려나? 꽤 기대된다.

“웃!”

단박에 찌르고 들어간 양물이 자궁벽을 강하게 들이받자 이령이 등을 휘었다.

“살 것 같군.”

검무는 눈을 감았다. 온천수처럼 뜨겁지만 기분을 좋게 하는 여성에 남성을 파묻으면 극락에 온 기분이 들었다.

이령은 뜨거웠다. 검무는 자신을 으깨듯이 꽉 물고 쉽사리 놔주지 않는 힘을 즐겼다. 천천히 허리를 흔들기 시작하자 이령 또한 허리를 들썩거렸다.

이럴 땐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는 게 이들이었다.

“아흣!”

나흘의 시간 동안 금욕 생활을 했더니 힘이 남아돌았다.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잃어버린 것처럼 축 늘어져 있던 검무의 등에 날개 달린 듯 훨훨 날았다.

우르릉 쾅!

천둥번개가 대지를 흔들어 대도 검무와 이령을 떨어트려 놓을 수 없었다. 그녀를 침상에 눕힌 그가 근육질의 몸매로 덮었다.

손가락을 겹친 채 입술을 포개고 양물을 꽂아 넣은 엉덩이를 신나게 흔들어 대자 침상이 찌걱거리기 시작했다.

검무가 허벅지를 당기며 가열차게 몰아붙이자 현기증이 일었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발가락을 오므렸다.

“하읏!”

몸을 반으로 가를 기세로 몰아붙이는 통에 소변을 질끔질끔 흘리기 시작했다.

“아아…….”

그녀가 다리를 바르작거리자 그의 입가에 말간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는 손가락으로 음핵과 요도구 사이를 분주하게 오가며 마찰열을 일으켰다.

“저, 전하!”

이령이 고개를 저었지만 검무는 가랑이 사이를 점령한 손을 치우지 않았다. 외려 움찔거리는 요도구를 누른 손끝에 힘을 주며 짓궂게 굴었다.

“하압!”

폭포수 같은 물줄기가 쏟아지는 빗물만큼 기세 좋게 솟구쳤다.

“아아아, 아!”

오줌이 터졌지만 검무는 멈추지 않고 색마처럼 내달렸다.

“하압, 하압, 하!”

이령이 허리를 들썩거리며 요분질을 시작했다. 한껏 달궈진 여성이 벼락을 맞을 양 발작을 일으켰다.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며 폐부 또한 부풀렸다가 한껏 쭈그러졌다.

숨이 달아올라 고개를 젖힌 그녀의 시선이 열린 창문에 머물렀다. 반쯤 열린 창문 틈으로 시커먼 하늘이 들어왔다.

황금빛의 섬광이 하늘을 쥐락펴락하며 절규하는 사이 황홀경의 문턱에 다다른 여체가 튕겨져 올랐다.

이령은 신음을 들이마시며 검무를 와락 끌어안았다. 검무 또한 절정의 순간을 맞아 그녀처럼 부들부들 떨었다.

격렬했던 동작이 뚝 끊어졌다. 검무는 이령의 가는 여체 위로 쓰러졌다. 심장박동이 귀 바로 옆에서 뛰는 것 같았다.

짧은 시간이었으나 만족감을 따지면 최고였다. 그는 그녀의 젖가슴을 부드럽게 감싸쥐며 야릇한 시선을 보냈다.

“이렇게 좋은 걸 나흘이나 못 했으니…… 욕구불만인 게지.”

“해소 되셨어요?”

“겨우 한 번으로?”

검무는 이령의 눈가에 입을 맞추며 나른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리고 그녀의 다리를 제 허리 위에 올리며 키득 웃었다.

“재우지 않겠다고 말한 건 자네였어.”

시원하게 내보냈으면 한동안 시체처럼 늘어져 있어야 할 텐데, 색광이 키우는 용은 그새 기력을 되찾아 이령의 동굴 속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외전 끝>

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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