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고 싶은 걸 어쩌누?
“황제폐하께서 금일부터 각방을 쓰시고 금욕을 하시라고 하셨습니다.”
황명에 의한 각방과 금욕.
검무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어머니 황후의 뜻이라면 그나마 이해가 가겠는데, 아버지가 각방을 쓰라고 해? 매일 밤마다 새 여인을 끼고 살면서 무슨 자격으로 조강지처뿐인 제게 합궁을 하라 마라인가?
얼토당토 않는 소리에 검무는 인상을 찌푸렸다.
“각방을 써야 하는 이유를 말해 보라.”
“건강한 후사를 얻기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
“각방을 쓰지 않으면 비리비리한 것이 태어난다던!”
“그것이 아니오라, 황태자비마마께서도 쉬는 날이 있어야 수태를 할 텐데, 매일매일 합궁을 하시니 그대로 흘려보내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하시어.”
“그게 이유냐.”
“황태손을 기다리는 마음이 간절하다고 여겨 주십시오.”
“아바마마께선 나를 욕보이시는구나. 내 나이가 몇인데 환관 나부랭이에게 금욕하라, 각방을 쓰라는 말을 듣게 해!”
새카맣게 그을린 눈썹에 성질이 스며들어 가닥가닥 뻣뻣하게 날을 세웠다. 이럴 땐 성난 호랑이 같았고 주변의 공기가 이글이글 타오를 만큼 사나운 기세가 들끓었다.
검무는 길고 곧은 손가락으로 탁자를 퉁퉁, 소리가 나게 두드리며 환관을 노려봤다. 일부러 나이 일흔 살을 넘긴 환관에게 황명을 전달하게 한 건 아버지, 황제의 잔꾀다.
아버지의 속내가 물속처럼 들여다보였던 검무가 탁자를 내리쳤다. 쾅! 힘줄과 핏줄이 울뚝불뚝 튀어나온 손등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령과 떨어져 지내라고?
그건 목에 칼이 들어와도 싫다. 이 눈에 흙이 들어가도 각방은 어림없는 소리.
“나는 각방을 쓰지 않겠다.”
“황명이옵니다.”
“황명을 어기면 내 목을 치겠다고 하시더냐!”
“그, 그것은 아니옵고.”
“아바마마를 뵈어야겠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자 늙은 환관이 무릎을 꿇고 앉아 흐느껴 울듯이 읍소하였다.
“전하께서 맞서면 그 화살이 황태자비마마께 돌아갑니다. 마마를 아끼신다면 성난 마음을 누그러트리시지요.”
“금욕은 가능하나 각방은 어렵다.”
“한 방에 계시는데 참을 수 있다,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소인은 아닌 쪽에 제 목숨을 걸겠습니다.”
목숨까지 걸어?
이 늙은 것이 말 한 번 강직하게 잘 한다. 명을 재촉하는 것도 모르고. 검무는 코웃음을 쳤다.
“네가 아주 미쳤구나? 네깟 게 무엇이관대 목숨을 걸어? 그걸 걸면 내가 오냐, 알았다. 오기로라도 건드려 보겠다! 이럴 줄 알았더냐!”
“소, 소인은 그런 뜻이 아니옵고…….”
“어리석은 것, 감히 나에게 대해서 잘 안다고 떠들어 대? 이참에 황태자를 대하는 법도를 가르쳐야겠구나.”
이참에 본보기를 보여 줄 참이었던 검무는 환관을 지나치자마자 집무실의 문을 활짝 열었다.
10개의 궁실이 딸린 황태자궁 동쪽에 위치한 전각이자 황태자의 집무실인 동화당의 문이 걷어차인 것처럼 열렸다.
우당탕! 요란한 소리를 내며 벌어진 문틈으로 검무가 나타나자 밖에서 대기 중이던 이치와 타래가 흠칫 놀라 뒤를 돌았다.
“아바마마께 가야겠다! 차비를 놓으라!”
검무의 목소리가 표정만큼이나 심상치 않았던 탓에 이치와 타래도 긴장했다.
안에서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 가늠할 수 없어 눈동자만 뱅그르르 굴릴 때 늙은 환관이 튀어나와 검무의 앞을 막았다.
“전하, 황태자비마마를 생각하십시오.”
“생각해서 이러는 게지!”
“황태자비마마께서 황후전으로 거처를 옮기길 바라십니까!”
늙은 환관에게 발길질을 해서라도 지나치려던 찰나 검무의 동작이 그쳤다. 뜬 발을 내리지 못한 그가 늙은 환관에게 물었다.
“황태자비가 황후전으로 옮겨 가?”
“전하께서 받아들이지 않으시면 황후마마께서 행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럴 땐 두 분께서 죽이 척척 맞으시는구나! 밤에도 좀 잘 맞아보시지!”
“저, 전하…… 듣는 귀가 많습니다.”
이치가 주변을 둘러보며 걱정했지만 검무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누가 감히 황태자궁에서 들은 것을 내뱉어!”
황태자궁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선 각별하게 관리했기 때문에 검무는 자신에 차 있었다. 황태자궁의 담벼락을 넘는 소리가 있다면 주둥이를 놀린 자를 색출해 엄벌로 다스리는 것으로 유명했다.
“타래, 이 늙은 것에게 황태자궁의 법도를 가르쳐라! 이 몸에 대해 아주 잘 아는 것처럼 시건방을 떨어 대니 합당한 벌을 주어야지.”
“또 그렇게 흥분하시면 손해를 보시는 건 전하셔요.”
봄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처럼 낭창낭창하고 부드러운 음성이 살벌한 분위기를 한순간에 바꾸어 놓았다. 황태자비 이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분홍색 저고리에 초록색 치마를 입은 그녀는 그야말로 봄 그 자체였다.
볼록한 이마와 뺨에서는 윤기가 흘렀고 고양이 눈매를 닮은 눈꼬리는 명필이 붓끝을 살짝 올린 듯 도도하게 치켜 올라갔다.
큼직한 눈에 작지만 오뚝한 콧날, 혈색이 좋은 입술을 소복하게 담아 놓은 얼굴형은 턱이 날카로워 미인 중에서도 으뜸이라 불리는 경국지색이었다.
무표정을 지어도 아름다운 황태자비가 입꼬리를 올리고 눈웃음을 짓자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검무가 와르르 무너졌다.
까칠한 성격이 무뎌진 칼날처럼 둥글둥글하게 변해 서늘했던 분위기를 날려 버렸다. 그는 사랑하는 지어미의 등장에 활짝 웃었다.
“자네는 지금 이 길로 폐하께 전하의 뜻을 전하게나. 내일부터 각방을 쓸 것이고 금욕 또한 할 테니까 염려 마시라고.”
“부인!”
“전하는 폐하의 자식이나 신하이기도 하옵니다. 가장 신뢰하는 아들이자 신하면서 어찌하여 매번 반항만 하세요. 폐위될 일이 없으니 겁날 것도 없어요?”
이령은 검무를 꾸짖는 동시에 아름다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섭섭해하는 마음을 달랬다.
“전하는 성격을 좀 죽이셔야 해요.”
“언제는 호방한 게 좋다더니.”
이령은 검무의 손을 잡으며 애교 섞인 눈빛을 보냈다.
“신첩은 대인배가 좋아요.”
“속 좁은 지아비라 실망인가?”
“또 그러신다.”
검무는 입술을 삐쭉거렸다. 단단히 토라진 모양이었다. 그녀는 푸시시 웃으며 눈치를 보느라 자리를 뜨지 못 한 늙은 환관에게 손짓했다.
검무는 제게 맡기고 소임대로 하라는 손동작이었다. 황태자궁의 실세인 황태자비의 허락을 받아낸 늙은 환관이 부리나케 도망치기 시작했다.
검무는 여전히 입술을 삐쭉거렸고 이치와 타래는 눈치껏 뒤를 돌았다.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금란과 노을 역시 먼 산을 바라보며 스리슬쩍 뒤를 돌았다.
사랑이 넘치는 부부의 밀담 같은 대화를 방해하고 싶지 않은 듯 모두가 눈치껏 행동하자 이령이 검무를 데리고 후원으로 향했다.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사뿐사뿐 한 발, 한 발을 가볍게 교차하던 이령의 허리를 검무가 부드럽게 감쌌다. 치렁치렁한 소매에 가려져 있었지만 근육질의 몸을 만들고 있어 철근 같은 팔은 힘이 넘쳐 단단했다.
“어떻게 각방을 쓰겠다고 해? 자네는 내가 없어도 잠이 잘 오나?”
검무는 제 쪽으로 이령을 끌어당기며 눈매를 가늘게 떴다.
“나의 피는 하루 종일 뜨겁고 나의 심장은 단 한시도 두근거리는 것을 멈추지 않아.”
“피가 차갑게 식고 심장이 멈추면 시체지요.”
“이 사람이 분위기 깨는 소리를 해. 서운하다는 게야.”
“알아요, 서운해하시는 거. 신첩 또한 서방님과 각방을 써야 한다는 게 고통스러워요. 항상 함께했던 방에 홀로 남게 되면 불면증에 걸리겠지요. 서방님이 보고 싶어서 눈가가 짓무를 거예요. 그러다 곡기도 끊고 상사병에 걸린 것처럼 시름시름 앓을 거예요. 혹 쓰러지면…… 그때는 폐하와 황후마마 모두 마음을 바꾸시지 않을까 머리도 굴려 보겠지요.”
“쓰러져? 이 사람이, 내 가슴이 너덜거리는 꼴을 봐야겠나! 그건 안 되지, 각방을 썼다고 시름시름 앓아서 되겠나!”
검무는 머리를 흔들었다. 이령이 아파? 있을 수 없었다. 귀하디귀한 처의 일신에 변고가 생긴다면 황궁을 확 뒤집어 놓을 것 같았다.
“각방은 더욱 안 될 말이야! 자네에게 변고가 생기면 나는 미쳐. 미치는 꼴을 보고 싶으면 고뿔이라도 걸려 보든가.”
이령은 풋, 하고 터진 웃음을 손으로 가렸다. 이런 반응에 가슴이 설레 웃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하오나…… 각방을 쓰지 않으면 안 돼요.”
“원점으로 돌아온 건가?”
“흉흉한 소문 때문에 그러지요.”
이령은 검무의 눈치를 보듯 곁눈으로 흘끗흘끗 훔쳐보았다. 그 역시도 흉흉한 소문에 대해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누군가 퍼트린 허언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아 어깨만 으쓱거렸다.
“씨가…… 뿌리를 내리기도 전에 폭우를 만나 휩쓸린다고 하잖아요. 거의 매일매일 합궁을 한다는 게 이상하게 보이기도 하겠지요.”
이령의 얼굴에 그늘이 생겼다. 검무의 눈매가 바늘처럼 좁아졌다.
“그 잡것의 아가리를 찢어 버려야겠다!”
“황후마마께 들었어요.”
이령의 대답에 검무는 콧등을 구겼다. 환관이나 여관이 떠들어 댄 소리라고 하면 당장 잡아들일 테지만 하필이면 왜 또 어머니람.
“조금 전에 황후마마의 부름을 받고 다녀오는 길이에요.”
“황후전으로 거처를 옮기라고 하시든가!”
검무는 늙은 환관의 말이 생각 나 언성을 높였다.
“전하께서 싫다고 하시면 그때는…….”
“열 받네, 진짜.”
“대신 전하께서 각방을 쓰겠다고 하시면 무량전으로 옮기라고 하셨어요.”
무량전이라면 황제의 침전이었다. 검무는 입술에 잇자국이 생기도록 꽉 깨물었다. 발을 묶어 두려는 심산에 구역질이 올라오려고 했다.
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질투심을 갖는 게 말이 되나?
왜 그렇게 떼어놓지 못해 안달인가!
검무는 입매를 비틀었다.
“에잇!”
검무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려다 어금니를 깨물었다.
“이게 아바마마 때문이다! 어마마마를 보듬어 주시지 않으니 자꾸만 아들에게 의지하는 게야.”
“그런 말씀 마셔요.”
“틀린 말도 아닌 걸.”
검무는 콧구멍을 벌름벌름, 킁킁대며 분노를 씹어 삼키려고 애썼지만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잊을 만하면 후궁을 들이는 황제의 여성 편력의 피해자에는 검무도 있어 짜증이 치솟았다.
“당신께서 독수공방의 세월이 길다고 아들인 나도 그러라는 겐가. 거 참, 눈물 나는 모정이다.”
“밤낮이 없는 게 걱정스럽다고 하셨어요.”
이령도 시어머니에 대해 할 말이 많았지만 흥분하는 검무를 달래느라 인상 한 번을 찌푸릴 수 없었다.
“황후마마께선 항상 전하를 걱정하세요. 정욕이 과한 것도…….”
“그게 흠인가? 이해를 못 하겠군.”
“넘치면 부족한 만 못하다고 하잖아요.”
“나는 넘쳐야 만족하네. 그런 성격인 걸 어쩌라고? 두 분을 닮아서 이런 건데 그런 면을 우려하시다니 어이가 없구나.”
검무가 흥분하는 사이 황태자궁의 후원에 들어섰다. 이령이 성심을 다해 가꾼 후원은 달맞이꽃이 만개해 온통 노란 빛을 띠고 있었고 곳곳에 심어 놓은 다양한 종류의 꽃과 조화를 이루며 향긋한 향기를 피웠다.
이령의 발길이 자연스럽게 연못가로 향했다. 매일매일 밥을 주는 주인이 다가오니 비단 잉어들이 모여들었다.
생각 없이 사는 것처럼 보여도 주인을 알아보는 게 신기해서 정성을 다해 돌봤더니 황후전의 비단 잉어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황후는 그마저도 마음에 들지 않는지 비단 잉어를 돌보듯이 내조를 잘 하라고 매일같이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오늘도 불러다 황후전의 비단잉어가 새끼를 쳤다며 한숨을 쉬었다. 아들을 치마폭에 묻어 놓은 며느리가 무자식인 게 못마땅해 죽겠는지 기어코 ‘후처’ 얘기를 꺼내 억장을 무너트렸다.
“황태자도 슬슬 후처를 들일 때가 된 것 같으니 황태자비도 마음의 준비를 해두렴.”
당신은 지아비가 후궁을 들일 때마다 도끼눈을 뜨면서 며느리에겐 후처를 들이는 걸 이해하라고 하시니 치가 떨리게 싫었다.
“태평성대를 원한다면 후사를 많이 두어 황실의 핏줄을 늘리는 게다.”
정작 당신은 후궁들이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들으면 광기에 가까운 분노를 터트리면서 핏줄을 늘려?
존경할 만한 시어머니는 아니었지만, 없던 정마저 떨어져 말을 섞는 것도 싫었다.
“투기 하지 마라, 황후의 자리는 쉬이 변할 수 없으나 황태자비는 얼마든지 바꿀 수 있거든. 알겠느냐?”
당신처럼 황위를 이를 적통 황태자를 얻지 못했으니 무늬만 황태자비라는 뜻으로 들렸다. 그만큼 불안한 처지에 있으니 시키는 대로 하라는 시어머니가 참 밉다.
당신은 못 하는 걸 며느리에겐 참고 견디며 투기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다니.
제 딸이었어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이령은 후원을 걸으며 시어머니에게 들었던 말을 곱씹었다. 자존심이 상해서 미칠 노릇이었지만 검무에겐 내색할 수 없었다.
시어머니와 있었던 일을 전했다간 저 성질에 황후전을 뒤집고도 남았다. 그건 바람직하지 않았다. 검무를 자극해서 좋을 게 없었다. 피해를 보는 건 이령이 될 터였다.
모자 사이를 이간질했다는 오해를 살 수 있었고 전후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이 던지는 비난의 화살을 맨몸으로 받아야 했다.
시어머니가 바라는 대로 폐위가 될 명분을 만들어 주는 꼴이었다.
“항간에는 황태자가 황태자비에게 푹 빠져 밤낮이 없이 달려든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그건 병이다. 어떻게 하루에 일곱…… 망측해서 입에 담기도 민망하구나. 그게 짐승이지 사람이냐? 매일매일 그러고 어떻게 살아? 그러니 황태자비도 병을 치료하는 기간이라고 생각하렴.”
병을 치료한다면서 후처를 들일 생각이나 해?
앞뒤가 맞는 말을 해야지 수긍할 텐데 시어머니가 하시는 말에 단 한 번도 토를 달지 않고 언제나 예예, 받아들이기만 했더니 바보 천치로 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고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무는 법인데 소녀의 티를 벗어 가고 머리도 굵어지는 며느리에게 무슨 봉변을 당하시려고.
곱씹을수록 화가 난다.
며느리의 성격을 모르고 한 말이겠지만 잘못 봐도 한참을 잘못 봤다.
지아비를 다른 여인과 나눈다? 그렇겐 못한다.
시아버지처럼 후궁을 들여?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안 될 말이지.
이령은 턱을 당겼다.
검무에게 여인은 한 명이면 충분해.
지아비를 향한 소유욕이 드러난 눈빛이 반짝반짝 빛나자 검무가 옆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나와 있으면서 생각은 다른 곳에 있구나.”
“전하를 생각한 걸요.”
“나를?”
“전하는 신첩의 사내라는 생각.”
“하하하!”
검무가 웃음을 터트렸다.
“미치겠네, 정말. 이렇게 달콤해도 되나! 오늘은 작정하고 녹이려고 하는구나!”
검무는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뛸 듯이 기뻐했다.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통에 덩달아 배 속이 간질간질했지만 이쯤에서 분위기를 깨 줘야 했다.
“환관에겐 내일부터 각방을 쓰겠다고 했지만 오늘부터 해야 할 듯해서요.”
“이 사람이!”
소스라치게 놀란 검무가 소리를 질렀다. 좋다 말았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노려보던 것도 잠시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윽박을 질렀다.
“나를 들었다가 놓았다가, 어느 장단을 맞추라는 게야! 애간장을 다 녹여서 무엇에 쓰려고!”
“이령이만 바라보게 만들지요.”
“허허! 지금도 보고 있다. 매일매일 보고 담는데 뭘 또 얼마나!”
“전하가 이령이만 찾았으면 좋겠어요.”
이령이, 이령이.
제 이름을 꺼내며 속눈썹을 파르르 떨 때면 욕정이 치솟았다. 가랑이 사이에 화마가 번지기 시작했다. 볼록하게 솟구쳐 오르는 양물 때문이라도 그녀를 자빠트리고 싶어 손가락이 근질거렸다.
“지금부터 금욕하세요.”
“이 사람아, 그렇게 고약한 소리는 농으로도 하는 게 아니야.”
이미 빳빳하게 서 버린 건 어쩌고 금욕을 입에 담아.
검무는 난처해 죽겠다는 시선으로 배꼽 아래를 응시했다.
“급한 불은 꺼 줘야겠네.”
“홀라당 태워 버리세요.”
평소 같았으면 주변을 살핀 후 바지를 내려 입으로 빨아 주었을 이령이 단호한 어조로 거절하자 검무는 울상을 지었다.
“이걸 태우면 나만 손해인가?”
“참을 줄도 알고 고통을 견디는 법도 익히셔야 해요.”
“그러다 내가 엇나가면 어쩌려고?”
“그땐 저 연못에 빠져 죽을 거예요.”
“어허! 또 그렇게 험한 소리를 입에 담는다!”
“농이 아닌 걸요, 이령이한테 전하가 전부이듯, 전하도 이령이만 봐주세요.”
이령은 검무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누르며 앙칼진 눈빛을 보냈다.
“이령이 거예요. 그리고 이것도…….”
이령은 손끝을 쭉 내려 독버섯처럼 솟아오른 양물을 가리켰다.
“이령이만 먹을 수 있어요.”
먹는대…….
검무는 풋, 하고 웃었다. 울컥거렸던 감정이 꿀물에 푹 절었다. 그는 입꼬리를 올리며 황홀경에 취한 시선을 보냈다.
“발칙한 그 표현이 좋아.”
“며칠만 고생하시면 이령이가 전부 먹어 줄게요. 여기도…….”
이령의 손가락이 입술을 살포시 눌러 형태를 뭉갰다.
“여기도…….”
다시 또 손가락이 밑으로 내려가 양물을 푹 찔렀다.
“맛있게 얌얌.”
맛있게 얌얌이래…….
미쳐 버리겠네…….
사람이야, 요물이야?
검무는 이령에게 홀딱 빠진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좋아, 잘 견뎌 보지 뭐! 단, 그땐 하루에 열 번이다.”
“열 번이나요?”
“다 까지고 헐어서 한동안 걷지도 못할 게야.”
“어머나.”
이령은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검무가 내뱉은 열 번. 그 열 번을 상상하고 말았다. 음부에 찌르르 전율이 퍼졌다. 허벅지를 딱 붙이고 있었지만 애액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것 같아 불안했다.
검무에겐 견디라고 했지만 아슬아슬한 건 정작 자신이었음을 이령은 지금에야 깨달았다. 흠뻑 젖은 것도 민망한데, 질 구멍은 왜 이렇게 벌렁거린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