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화 (3/12)

***

확실히 빼고 날수록 몸이 가볍다.

이레째 이령을 불러 씨물을 빼냈더니 정신도 맑고 기분도 좋아졌다. 조반에 올라온 음식들 모두 달게 느껴지는 게 확실히 건강을 되찾고 있다는 걸 증명하고 있었다.

“오늘부터 합궁은 새벽과 초저녁만 행하셔야 합니다.”

태의가 탕약을 올리며 말했다.

“자주 빼야 좋다더니?”

“냉궁마마께서 견디지 못하실 겁니다.”

“내, 냉궁마마? 자네…… 폐황후에게 냉궁이라고 한 겐가?”

“예, 황태후마마의 명이십니다.”

“폐황후라고 불러도 충분히 수치스러울 텐데, 냉궁이라니.”

제겐 미운 지어미가 맞다만 꼭 그렇게까지 냉궁이라는 불명예를 붙여야 했나, 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태의의 대답을 기다렸다.

“황실의 예법에 맞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개화궁이라는 궁호가 있거늘.”

“폐서인에게 어찌 궁호를 붙이느냐며…… 그리고 폐하의 용안에 상처를 입힌 죄인이기 때문에 냉궁이 합당하다고 하셨습니다.”

“……틀린 말도 아니구나.”

검무는 탕약을 쭉 들이켠 후 이령에 대해 물었다.

“합궁을 하게 되면 냉궁에겐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습니다.”

“그래?”

“음과 양의 조화를 통해 치료하는 것이니 염려 마십시오.”

“음과 양…….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소신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검무가 마신 탕약 사발을 챙긴 태의가 방을 나갔다. 석연치 않은 기분이 들었지만 음과 양의 조화를 통해 치료한다고 하니 말문이 막혔다.

“……죽이려고 했던 처에게 도움을 받다니…… 신경 쓰이게.”

이령은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살을 섞을 때마다 어릴 때 생각이 나서 죽을 맛이었다. 황태자비로 입궁했던 날 이령은 달맞이꽃을 머리에 꽂고 있었다.

꽃이 예뻐서 화관을 만들어 썼다며 천진난만하게 웃었지만 황태후에게 눈물이 쏙 빠지게 혼났다.

장차 황후가 될 황태자비가 천것들이나 하는 걸로 황실의 분위기를 헤쳤다는 게 꾸지람을 듣게 된 이유였다.

된서리를 맞은 양 흐느껴 우는 모습이 꽤 귀여워서 밤새 위로해 주었던 기억, 화관을 만든다고 꺾었던 꽃을 땅에 묻어 주며 미안하다고 사과하던 모습 등등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마음이 복잡하다.

미워서 죽겠는데…… 마음에서 도려냈다고 말했지만 꽃을 꺾어 버리듯 쉽게 정리될 수 있겠나.

그리고 이령을 안을 때마다 증오심이 깎이는 게 느껴진다.

제 목숨을 구했으니 공을 인정해 황후로 복권을 시켜야 하나…….

이런 저런 갈등으로 한숨이 습관처럼 터졌다.

하지만…….

눈가에 생긴 흉터를 생각하면 느슨했던 마음에 고삐가 채워졌다.

생명의 은인이라며 복권했다간 전보다 더 기고만장해져 할퀴는 데서 끝나지 않아 목을 조르려고 할지도 몰랐다. 황제인 제 권위를 무참히 박살낸 걸 잊어선 안 됐다.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내가 눈치껏 자리를 피했을 텐데.”

아니다.

자리만 피했다고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었다. 문제는 감정의 골이다. 사랑했던 마음을 엉망진창으로 짓밟는 감정. 그것은 미움.

검무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령 때문에 생각과 마음이 복잡해져 한숨이 쏟아져 나왔다.

“……밉다. 너도 밉고 나도 밉다.”

되돌리자니 많은 것이 우려되고 예정대로 독약을 내리자니 후회할 게 뻔한 이 상황이 참 싫다.

머리가 지끈거렸던 검무는 한숨을 깊이 내쉰 후 몸을 일으켰다.

“좀 걷자.”

온통 이령 생각뿐인 상황이 탐탁지 않았던 그는 기분 전환을 위해 방을 나왔다. 그러자 밖에서 대기 중이던 환관 이치가 화들짝 놀랐다.

“폐, 폐하…… 아직은 거동하지 마시라는 태의의 당부가 있었습니다.”

“답답해서 걸어야겠다.”

“하오나…….”

“누가 뛰어다닌다고 했느냐? 좀 걷다가 힘들어지면 돌아와 쉬마.”

“……예.”

검무의 고집을 누가 꺾으랴.

이치는 검무의 뒤를 조용히 따랐다.

“너 혼자뿐이냐? 다들 어디 갔느냐?”

최측근인 환관과 여관이 보이지 않아 의아했던 검무는 이치를 응시했다.

“잠시 쉬라고 하였습니다.”

“쉬긴…… 어디서 사고나 치지 않으면 다행이지.”

황태자궁 시절부터 동고동락했던 자들이라 검무에겐 벗 이상이었다. 그 중 맏형인 이치는 검무에게도 안정감을 주는 인물이었다.

“제가 없으면 시끌시끌한 편이지만 눈치가 있는 자들이니 심려치 마십시오.”

검무는 피식 웃기만 했다. 이제 정말 살 만해지긴 한 모양이다. 농을 던질 여유도 생기고 쉬이 지치던 것도 없었다. 그는 뒷짐을 진 채 발길이 닿는 대로 걸었다.

“개화궁이 생각보다 넓구나.”

“궁실만 5개, 잘 가꾸어진 후원에는 연못과 산책로가 조성되었고 꽃과 나무가 우겨져 있어 운치가 좋습니다.”

“궁실이 5개나? 죄인이 기거하기엔 호화롭구나.”

“개화궁을 유폐지로 정하신 건 폐하십니다.”

“이 정도로 호화로운 줄 몰랐다.”

괜히 심술보가 터진 검무는 황제의 침전으로 사용된 전각을 벗어나 좁은 문을 하나 넘었다.

“이곳은 냉궁마마께서 기거하시는 전각이옵니다.”

“냉궁마마, 그 이름 참 거슬려.”

“예?”

“아니다.”

검무는 머리를 가볍게 저었다. 그는 이령의 거처를 구경했다. 화려한 조경에 비해 궁실의 내부는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침상과 전신 거울이 전부였다.

“삭막하구나.”

기가 막힐 정도로.

이것저것 꾸미고 가꾸는 걸 즐겨했던 이령의 성격에 어울리지 않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이령은 항상 침의와 머리카락을 묶은 끈만 착용했었다.

폐서인이 됐다곤 하나 장신구 하나 정도는 있을 법한데도 그녀는 자신을 꾸미지 않았다.

“화장 도구를 가지고 오지 않은 게냐? 아니면 어마마마께서 빈손으로 황후전을 비우라고 명하였느냐?”

“수일 전에 사사될 운명이었기에 그 전에 짐을 정리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죽기 전에 정리했다?”

“예.”

“지금은 살아 있으니 사는 동안에 사용할 건 채워야지.”

이치는 고개를 숙일 뿐 대답하지 않았다. 새로 채워 봤자 얼마 사용하지도 못 하고 죽습니다,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마음뿐이었다.

황태후가 내린 함구령이 아니래도 검무가 받을 충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불쌍하게 보여서 동정심을 사려는 겐가.”

“그럴 리가요. 마마의 성격을 모르셔요?”

“모르겠다.”

“폐하…….”

“그렇게 극악스럽게 변할 줄 누가 알았겠느냐? 눈이 홱 돌아서 달려들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해.”

또 다시 열이 오른다.

검무는 주먹을 쥐었다. 핏발이 터져 새빨갛게 된 눈을 희번덕 치켜뜬 그녀는 흡사 광인이었다. 그 정도로 투기심이 강할 줄 몰랐던 그로선 다양한 감정이 들 수밖에 없었다.

“나가자.”

코끝이 시린 만큼 짜증이 치솟았던 검무는 몸을 돌렸다.

“다른 곳으로 뫼실까요?”

“산책로로 가자.”

검무는 이령의 거처를 나왔다. 머릿속이 복잡해서 걸어 보려다가 짜증이 치밀었다. 울컥거리는 감정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그는 잰걸음을 걸었다. 얼마 안 가 산책로가 나왔다.

개화궁의 궁벽 아래, 둘레를 친 길은 황후전의 후원 못지않게 잘 꾸며져 있었다. 얇고 좁은 개울을 건널 수 있도록 징검다리가 있었다.

검무는 주변을 둘러봤다. 개울가 주변이 온통 노란 꽃으로 해사했다. 자세히 보니 달맞이꽃이었다.

“달맞이꽃이 많이 피었구나.”

“어젯밤에 금란이 심어 놓았습니다.”

“금란이라면 황후전에 있던?”

“예, 지금도 마마의 곁을 지키고 있습니다.”

“달맞이꽃…… 그이가 좋아하던 꽃이지.”

“금란이 마마의 기분을 풀어 드리고자 준비한 것 같습니다.”

검무는 입꼬리를 올렸다. ‘냉궁마마’가 거슬린다니까 ‘마마’라고 호칭을 바꾼 이치의 재간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어릴 때부터 다 같이 자라다시피해서 그런가 이치는 검무의 생각을 빠르게 읽을 줄 알았다.

“마마, 이곳 좀 보셔요! 마마가 좋아하시는 달맞이꽃이에요!”

금란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 이곳에 꽃이? 그제까지는 없었는데.”

“제가 옮겼지요! 우리 마마께서 좋아하시는 꽃이잖아요.”

검무는 무의식적으로 나무 뒤에 숨었다.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금란과 그 뒤를 따르는 이령이 차례로 시야에 들어왔다. 나무 뒤에 숨어서 보니까 이령에겐 금란만 있는 게 아니었다.

황제의 수발을 드는 환관들과 여관들 중 여섯이 섞여 있었다.

“저것들이…….”

“석삼, 노을, 타래, 연다, 고식, 가연 모두 마마께서 황태자비로 입궁한 날로부터 지금까지 쭉 모셨던 충복이옵니다. 마마는 곧 숨을 거두실 테지요. 폐하께서 내린 독을 마시고요. 그러니까…… 함께 지낼 수 있는 동안만이라도 좋은 추억을 쌓게 해 주십시오. 저희도 마마를 보내 드릴 시간이 필요하옵니다.”

내색하지 않으려고 했으나 제 동기들이 이령의 기분을 살려 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니 이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태의의 말대로 검무가 건강을 되찾을수록 이령은 죽어 가지 않나. 죽음은 피할 수 없게 됐으니 같이 지내는 동안만이라도 예전처럼 다정하게 지냈으면 했다.

“환궁 후에는 개화궁에 있었던 일을 함구하게 될 것이다. 저이와 있었던 일을 기억에서 지우라고 할 게야.”

“……예.”

“너도 용서하라, 떼쓰지 마라.”

“용서는 하시지요.”

“이놈이!”

“복권하시라곤 말씀 올리지 못하옵니다. 그러나 헤어질 땐 용서하셨다고 말씀해 주세요. 마마도 편히 가실 수 있을 테니까요.”

“용서가 쉽게 될 것 같았으면 사사하라고 하였겠느냐!”

검무는 인상을 한껏 찌푸린 채 이치를 나무라다가 이령에게 시선을 돌렸다. 환관과 여관들이 이령 앞에서 재롱을 부리거나 만담을 하듯이 대화를 하는 모습이 거슬렸다. 저렇게 있으니까 꼭 과거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황태자궁에 있을 때도 철마다 달맞이꽃을 심었고 그 주변에 모두가 모여 앉아 소풍을 즐겼다. 지금이 딱 그때 같아 눈가가 욱신거렸다.

“호호호.”

이령이 웃는다.

근심 걱정이 없는 사람처럼 웃기면 웃고 질문을 하면 대답하며 그렇게 웃고 있었다. 자신은 지옥에 떨어트려 놓았으면서 해맑게 지내는 모습에 화가 치밀었다.

너 때문에 구미호인 줄 모르고 화살을 날렸어!

복장 터지게 하는 너 때문에!

이령을 붙들고 소리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검무는 주먹만 지그시 쥐었다. 활시위를 당길 때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했었다.

이대로 죽여도 되나, 후회하지 않을 자신은 있나?

살린다고 해도 문제인 게 후궁 문제 때문에 매번 싸우게 될 터다. 후궁을 들이지 않겠노라 약속할 수도 없는 게 둘 사이에 아이가 없으니 황실에선 후사를 이을 후궁을 들이라 압박을 넣을 터.

둘 중 하나에게 문제가 있는 게 틀림없다. 매일매일 물고 빨며 사랑해 주었다. 족히 10명의 자식을 봤어야 했기 때문에 그로서도 후궁 문제만큼은 확신할 수 없었다.

후사를 이어야 하는 책임만 없었어도…….

후사와 후궁 문제만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돌아섰다.

“저이…… 몹시 성가셔.”

폐하?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던 이령의 시선이 검무를 찾아냈다. 이치를 데리고 돌아서는 모습을 쫓던 눈동자가 하늘을 더듬었다.

검무의 등이 넓어서 눈가가 시큰거렸다. 저 등에 자주 업혔던 게 생각났다. 하지만 죽으라는 말을 남기도 돌아설 땐 부수거나 넘어설 수 없을 만큼 튼튼한 벽이었다.

“자네와 나는 끝났어.”

“마음에서 도려낸 자네를 다시 들이지 않아.”

“살려 달라고 애원하지 말게.”

곱씹지 않으려고 해도 자꾸 생각난다. 들을 때도 마음이 아팠지만 정말 섭섭했나 보다. 어차피 죽을 목숨이고 살려 준다고 해도 살아날 방법이 없는데도 왜 그렇게 숨이 막힐 만큼 고통스럽던지.

이령은 욱신거리는 가슴을 지그시 눌렀다. 진통 효과를 늘리는 탕약을 조석으로 마시면 심장통도 가라앉아야 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너무 아프다. 탕약의 효과가 심장통에 효과가 없어서 큰일이었다.

“마마, 무슨 생각을 하세요?”

금란이 달맞이꽃으로 팔찌를 만들다가 물었다.

“응…… 그냥, 이것저것.”

이령은 생각나는 대로 둘러댔다. 검무가 지나갔다는 걸 눈치챈 사람은 이령뿐인 듯했다. 석삼, 노을, 타래, 연다, 고식, 가연, 금란 모두 꽃다발을 만들거나 화관을 만드는 데 푹 빠져 있었다.

“마마, 이거 써 보세요.”

노을이 화관을 내밀었다. 노을은 올해 20살이 된 환관으로 눈웃음을 칠 땐 꼭 계집애처럼 예뻤다. 그녀는 노을이 건넨 화관을 머리에 썼다.

“어때, 예뻐?”

“네! 선녀님 같아요.”

“노을이 너도 예쁘게 해 줄게.”

예쁜 걸 좋아하는 노을의 귀에 달맞이꽃을 꽂아준 이령은 흐뭇하게 웃었다.

“우리 노을이도 곱구나.”

“정말요? 정말로 고와요?”

“예뻐, 아주 많이 예뻐.”

“감사합니다. 호호.”

“사내놈이 예쁘다는 말을 저리 좋아한다니까.”

타래가 인상을 확 구겼다. 노을과 같은 환관이지만 황제의 호위부 소속인 타래는 남성미가 강해 계집애 같은 노을이 항상 못마땅했다.

“또 시작이야, 또! 넌 내가 예쁜 게 싫으냐?”

“그 입 닫아라, 짜증나려고 하니까.”

“나도 네가 짜증나거든, 흥!”

노을이 귀에 꽂은 꽃을 가볍게 어루만지며 등을 돌리자 타래가 주먹을 쥐어 한 대 패려고 했다.

“너희는 여전하구나? 평생 이렇게 아웅다웅 싸우며 살 거니?”

“쟤가 나쁜 거예요, 마마.”

노을이 앙탈을 부르며 이령의 팔을 잡았다. 그러자 금란이 그의 머리에 꿀밤을 날리며 꽥 소리를 질렀다.

“어딜 만져!”

“마마, 금란이 때렸어요!”

“노을이한테 왜 그래, 마음이 여린 아이니 잘 챙겨 주라니까.”

이령은 노을이 울 것 같아 꿀밤을 맞은 곳을 가볍게 어루만져 준 후 방글 웃었다. 노을은 꼭 강아지 같았다.

이령의 옆에 찰싹 붙어 애교를 떨어 댔다. 그 모습에 모두 혀를 내둘렀지만 싫은 건 아니었다.

노을이 있어서 다행인 게 옆에서 쉬지도 않고 쫑알거리는 바람에 분위기가 가라앉을 틈이 없었다. 그런 점에선 노을에게 감사했다.

“마마! 손목이 왜 이렇게 얇아요! 식사를 거르시면 안 돼요!”

“응…… 잘 먹을게. 그러니까 노을이도 끼니 잘 거르고 타래하고 그만 싸워.”

“아잉, 마마도 차암.”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렴. 나처럼 도중에 놓치지 않게 조심하면서 호호백발이 되어서도 이처럼 정답게 지내야 해. 알았지?”

이령은 타래를 빤히 쳐다봤다. 틈만 나면 노을을 구박하지만 걱정하는 마음은 그 누구보다 깊다는 걸 안다. 그녀는 모두의 얼굴을 쭉 훑으며 자신이 느끼는 인연에 대해 말했다.

“소중할수록 거리를 두고 너무 많은 것을 보여 주거나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마. 깨지기 쉬운 사발 대하듯이 여긴다면 나처럼 실패하지 않을 거야.”

2장. 거친 입맞춤

어둑어둑해진 저녁, 석반을 물린 이령의 궁실을 태의가 찾았다. 식후에 진맥을 한 후 탕약을 올리는 게 그가 할 일이었다. 혈색이나 눈동자의 색은 건강한 색을 띠었으나 맥이 빨랐다.

“코피가 흐르지 않는 걸 보니 내성이 생긴 모양일세.”

이령은 자신에게 생긴 변화를 말했지만 태의는 예상했다는 듯 대꾸하지 않았다. 그는 진통 효과를 높인 탕약을 내밀었다.

“내성이 생겼다는 것은 통증이 심해진다는 뜻이옵니다. 안 그래도 이를 염려하여 탕약에 환각제를 추가하였습니다.”

“환각이라면 헛것을 볼 수도 있다는 겐가?”

통증이 심해진다는 뜻.

이 말만으로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으나 이령으로선 환각제가 더 걱정스러웠다.

“그건 아니옵니다…….”

“헛것을 보는 게 아니라면 어떤 환각인가?” “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통증을 가라앉히는 최음 효과가 있어서 합궁을 하실 때…… 꽤 좋은 기분이 들고…… 합궁을 마치신 후엔 숙면을 취할 수 있습니다.”

“그래…….”

“깨물리거나 압박이 심한 통증 또한 느끼지 못하게 되옵니다.”

“혹…… 심장통도 멈출까? 간혹 가슴 한가운데가 짜르르 할 때가 있어서.”

태의는 이령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심장통. 그것은 울화가 맺힌 탓이기 때문에 약으로 풀 게 못 된다고 대답해야 했으나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입꼬리를 내린 그는 이령이 탕약을 들이켜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꿀꺽꿀꺽.

탕약을 넘기는 소리가 급했다. 쓰디쓴 약을 인상 한 번 찌푸리지 않고 마시는 모습에 태의는 인상을 찌푸렸다. 다디단 과일주를 마시듯 들이켜는 바람에 제 입이 썼다.

어쩜 저렇게…….

진통 효과가 강하게 들어가도 혀가 마비됐을 리는 없는데? 독한 건지 쓴 것을 잘 먹는 건지 헷갈렸다.

당혹감을 숨기지 못하는 태의를 비웃듯 이령이 탕약 그릇을 내려놓았다. 그녀는 손수건으로 입가를 닦은 후 평소 즐겨 먹던 박하 사탕을 집었다.

“다른 할 말이 없으면 이만 물러가게.”

“평안한 밤이 되시옵소서.”

탕약 그릇을 챙긴 태의가 방을 나갔다. 그녀는 박하 사탕을 입에 넣고 이리저리 굴리며 실소를 흘렸다.

평안한 밤이 되라니, 불가능할 걸 알면서.

이령은 박하 사탕을 한 개 더 집어서 입에 넣었다. 박하의 시원한 향에 코와 목이 시원해지고 명치를 아프게 누르고 있던 체증이 가신 듯 후련했다.

약 효과가 빠른지 몰라도 가라앉아 있었던 기분이 조금씩 가벼워졌다.

“마마, 소인 금란입니다. 들어가겠습니다.”

금란이 들어왔다. 검무의 궁실로 옮겨갈 시간이었기 때문에 금란이 옷가지를 챙겨 왔다. 옷이라고 해 봤자 발가벗은 몸을 가릴 정도의 장옷뿐이었지만 정성스럽게 개켜져 있었다.

“단장을 하셔야지요. 마마께서 좋아하시는 박하 잎으로 우린 물로 목욕을 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건…… 끝내고 나와서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끝나고 나면요?”

“누차 말했잖아. 내가 꾸미거나 향을 내면 폐하는 꿍꿍이속이 있어서 그런다고 생각하실 거야. 오해를 사고 싶지 않아.”

“오늘은 낮에 땀을 좀 흘리셨는데…….”

“그런 것까지 신경을 써야 하니? 그 정도로 소중한 사내도 아닌데.”

이령은 차갑게 대답한 후 박하 사탕을 뱉었다.

“폐하는 지존이 되기 위해 태어나신 분이야. 모두가 그분의 마음에 들려고 노력한단다. 그래서 조금만 꾸며도 제게 잘 보이려고 한다고 생각해.”

“그, 그렇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나는 씻지 않을 거야. 꾸미지 않아. 버리는 건 폐하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이참이 아셨으면 좋겠구나.”

“말로 표현해도 모르실 텐데요.”

금란이 정곡을 찌르는 바람에 이령은 한숨을 쉬었다.

“다녀올 테니까 기다리렴.”

궁실을 나오자 새카만 어둠이 그녀를 맞이했다.

검무의 궁실과 이어진 길엔 등불이 놓여 있어 어둡지 않았으나 아무도 없는 길을 혼자 걸으려니 기분이 이상했다.

꼭 저승길을 걷는 것 같아서 안 그래도 가라앉은 마음이 표정으로 드러났다.

검무를 받아들인 지 이레가 지났다. 다리를 벌리고 누워 있으면 쇠꼬챙이처럼 달아오른 양물이 아래를 쑤셔 댄 기간이기도 했다.

불과 몇 달 전에는 몸을 만지고 싶어서 안달하던 손길이 뚝 끊겼다. 그녀만큼이나 앙금이 쌓였을 테니 건드리고 싶지 않은 마음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이대로 건조하고 삭막한 잠자리만 하다가 끝내야 하는 건지 헷갈린다. 목숨을 걸고 하는 잠자리라면 만족감이라는 보상이 있어야 할 텐데 지금의 이령에겐 아무것도 없었다.

검무에겐 시간 제한이라는 압박이 없으니 신경전을 하든, 용서를 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듯 무엇이든 할 만했다. 하지만 이령의 사정은 달랐다.

살아서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이 잘려 나간다고 생각하면 서운한 감정만 앞세우며 뻣뻣하게 구는 게 현명하지 않았다.

유혹해서 다시금 빠져들게 할까? 그 순간이라도 가슴 설레어 볼까?

옛 기억을 되살리듯 단둘만의 시간을 갖는다면 화가 쌓여 딱딱하게 변한 마음이 말랑말랑하게 풀릴 터다.

이령은 검무가 지내는 궁실에 들어서다 말고 걸음을 멈추었다. 오늘밤 번은 이치와 타래, 노을이었다. 셋은 궁실 앞에 모여 있다가 그녀를 발견하곤 고개를 숙였다.

“폐하의 심기는 어떠시니?”

이령의 물음에 이치가 차분한 어조로 설명했다.

“수라도 남김없이 드셨고 몸과 마음이 한결 개운하다고 하셨습니다.”

“태의는 다녀갔느냐?”

“예, 원래 건강 체질인데다 처방대로 잘 따라주신 덕분에 호전되는 속도가 빠르다고 하였습니다.”

이치의 대답에 노을은 울상을 지었다. 검무가 빨리 호전될수록 이령의 죽음이 앞당겨진다는 게 노을을 슬프게 했다. 어디 노을뿐이겠나. 태의의 말을 전한 이치와 타래 역시 안색이 어두웠다.

“잘됐구나.”

“마마…….”

눈가를 붉힌 노을이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자 타래가 팔을 잡았다.

“입 다물어. 너 때문에 마마의 심기만 어지러워지니까.”

“타래…….”

“노을아, 타래의 말이 맞아. 감정을 잘 추슬러 다오. 얼마 남지 않았으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구나.”

“정녕…… 괜찮으신 거예요?”

“노을이 너!”

타래가 눈에 힘을 주며 다그치려고 하는 바람에 이령이 손을 들어 말렸다.

“타래야, 노을인 정이 많고 마음이 약해. 나를 걱정하는 거니 너무 몰아세우지 마라. 저 약한 마음에 상처 나.”

이령은 노을이라면 타박부터 주는 타래에게 부탁의 시선을 보낸 후 숨을 들이마셨다. 진심을 꺼내면 눈물이 날 것 같아 괜찮은 척 연기를 했지만 노을에겐 진심을 말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노을아, 사실은 나…… 괜찮지 않아. 괜찮지 않은데도 죽을힘을 다해서 괜찮은 척하려고 노력하는 거니까 감정을 잘 추슬러 줘. 부탁할게.”

“마마…….”

“황태후마마의 명을 잊었니? 나에 관한 것을 폐하께서 아시면 너는 물론 네 가족의 씨를 말린다고 하셨잖아. 정신 차려.”

이령은 우아한 어조로 노을을 꾸짖고는 이치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치, 네가 잘 설명하렴. 타래는 다그치는 편이니까 네가 조곤조곤 이해시키고, 이해시키는 게 힘들면 그땐 타래에게 넘겨. 그리고 타래. 네 손까지 써야 한다면 이해를 못 하는 멍충이일 테니까 작살을 내려. 이건 명령이야. 알겠느냐?”

“예, 마마. 명심하겠습니다.”

노을이 입방정을 떨어 댈 것 같아 걱정됐던 이령은 이치와 타래를 번갈아 봤다. 입단속을 잘 시켜 달라는 부탁이었다.

“작살낼 기회만 찾고 있으니 믿고 맡겨 주십시오.”

타래가 주먹을 쥐었다. 그때야 노을이 입술을 안으로 말았다.

“저 역시 입조심을 시키겠습니다. 마마께서 원하지 않으시는 일이니 뜻에 따르겠습니다.”

“고마워. 그럼 나는 이만 들어가네.”

이령은 세 사람을 지나쳐 궁실 안으로 들어갔다. 궁실은 넓은 접견실을 중심으로 총 6개의 방이 있었다.

황제가 기거하는 곳이니만큼 휘황찬란하게 꾸며져 있었지만 이령의 눈에는 그 어떤 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는 묵묵히 걸음을 떼 옷을 갈아입을 수 있는 방에서 환복했다.

속살이 비칠 만큼 얇고 가벼운 흰색 침의의 허리끈을 가볍게 멘 그녀는 마음을 다잡듯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검무가 기다리고 있는 방문 앞에 섰다. 문고리에 손가락을 걸쳤지만 잡아당기는 건 쉽지 않았다.

괜히 심장이 뛰었다. 탕약에 추가했다는 최음약 때문인지 몰라도 얼굴에 열감이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가슴도 부푼 느낌이다. 그녀는 젖가슴을 슬며시 감쌌다. 월경 전 젖가슴이 땅땅하게 부풀거나 욱신거리고 젖꼭지가 굵어지는 것처럼 그녀의 상태가 그때 같았다.

탕약 탓인 게 확실했다. 약 효과가 돌 만할 때 심장이 두근거리고 유두가 커진 걸 보면.

“신경 자체를 마비시키는 약이 아니었나?”

이령은 입술에 침을 발라 두근거림을 진정시켰다. 한참 동안 문 밖에 서 있던 그녀가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서서히 열리는 문틈으로 향냄새가 맡아지고 뿌연 연기 너머로 검무의 모습이 들어왔다. 한쪽 무릎을 세운 그는 삐딱하게 앉아 무언가 골똘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도 그녀처럼 속살이 비칠 만큼 얇은 침의를 입고 있었다. 허리끈을 대강 묶었는지 가슴이 활짝 열려 근육질의 상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검무는 비가 오나 눈이 내리나 항상 무술을 익혔다. 땀을 비 오듯이 쏟아 내야지만 개운해 하는 성격이었다. 그 덕에 그는 건강했고 대장군에 버금가는 무술 실력과 탄탄한 몸을 가질 수 있었다.

이령은 넓은 어깨와 탄탄한 가슴과 배를 차례로 훑다가 가랑이 사이로 시선을 내렸다.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은 탓에 주인을 닮아 건강미가 넘치는 낭심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다 드러냈다.

복주머니처럼 생긴 음낭과 화포처럼 엄청난 위력을 자랑하는 남경은 기운이 빠져 늘어져 있음에도 제법 굵어 실했다.

그녀는 차분히 걸음을 옮겨 그의 앞에 섰다. 그때야 방바닥에 묻고 있던 시선을 들어 올린 그가 그녀를 응시했다.

태의의 말대로 호전되는 속도가 빠르긴 했다. 새벽에 봤던 낯빛보다 훨씬 생생했다. 눈빛에서 사라졌던 총기가 날카롭게 빛나 가슴 안에서 우지끈 소리가 났다.

아주 새카만 흑진주가 윤기를 흘리듯 검무의 눈동자도 그러했다. 이령은 그가 저런 눈빛을 할 때마다 미소를 짓곤 했다. 자신을 원한다는 강렬한 신호 같은 느낌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건 그녀의 착각이었다. 저 눈빛은 양면성이 있었다.

“차라리 죽어.”

눈가에 손톱자국을 냈을 때 검무가 이령에게 한 말이었다. 강이령은 그때 죽었다. 은애하는 지아비에게 죽으라는 말을 들었으니까.

또 곱씹어 버렸다. 충격과 절망감이 큰 탓이었다.

이령은 고개를 숙였다. 옛날 일을 생각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는데 떠올리고 고통스러워하는 자신이 바보 같았다.

“불을 끌게요.”

이령은 방안을 밝힌 촛불을 모두 껐다. 그리고 미리 펴 놓은 이부자리에 눕기 전 장옷을 벗어 잘 개켜 놓았다. 반듯한 자세로 누운 그녀는 무릎을 세웠다.

“준비됐어요.”

이령은 눈을 감고 기다렸다. 검무가 빨리 파정을 마쳤으면 하는 마음뿐이었지만 서늘한 공기만이 살갗에 달았다. 검무가 움직이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안 하세요?”

이령이 물었지만 대꾸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는 숨을 깊이 들이마신 만큼 배꼽이 움푹 들어갈 정도로 길게 내쉬었다.

들숨과 날숨이 크게 세 번 정도 교차될 때까지도 검무가 꼼짝하지 않자 누워 있던 이령이 몸을 일으켰다.

“할 마음이 없으셔요?”

“하긴 해야겠지.”

“주저하지 마세요.”

“주저하게 만드는 게 누군데.”

“죄책감이라도 드신다는 투로 들려요.”

“뻣뻣해서 할 마음이 없다는 소릴세.”

검무의 목소리는 공격적이었다.

“급한 불을 끄고 나니까 간사해져. 지난 사흘 동안은 구멍에 넣고 빼는 것만 생각했었지. 한데 좀 살 만하니까 불편하지 뭔가.”

“그럼 어떻게 하길 바라세요?”

“입술을 겹치지 말라고 해서 안 했는데 뭐든 겹쳐야겠어.”

“아랫도리만 잘 돌리면 될걸.”

“그 말투가 참…… 고약하군. 거슬려.”

이령의 대답에 검무가 눈매를 일그러트렸다. 그는 호랑이가 먹잇감을 노려보듯 살기등등한 시선으로 그녀의 얼굴을 꿰뚫었다.

이령은 손톱 끝을 뜯었다. 검무의 시선이 어찌나 따끔하던지 숨통이 조이는 기분이었다.

“정말 살 만해지긴 했나 봐요. 다른 것도 원하시니.”

“나무토막 같은 것과 하려니 맛이 안 나.”

“뻣뻣하다고만 표현하셔도 될 걸.”

“예쁜 구석이 있어야지.”

예쁜 구석이 없긴 마찬가지인데.

하지만 이 말을 했다간 언쟁을 벌일 것 같았던 그녀는 손톱으로 손바닥을 지그시 누르기만 했다.

“대꾸 안 하나?”

“싸우기 싫어요.”

“마찬가지일세.”

“그렇다고 오해를 사기도 싫고요.”

“무슨 오해?”

검무의 음성은 자세처럼 삐딱했다.

“제가 폐하께 예전처럼 안기면 매달리는 걸로 보일 텐데…….”

“황제의 용안에 상처를 냈어. 잠자리 몇 번으로 용서할 수 있겠나?”

“……저도 오해하지 않아도 되겠지요?”

“애정이 다시 생길 거라는 그런 오해 말인가?”

“예.”

“꿈 깨, 그럴 리는 없어.”

내성이 생겼다고 생각했지만 검무가 하는 말마다 아프다. 태의의 탕약이 듣지 않는 건 심장통뿐만이 아닌 듯했다.

“우린 끝났어.”

그렇게 강조하지 않아도 아는데…….

이령은 윗입술을 안으로 말았다. 검무의 화가 쉽게 풀리지 않을 걸 안다. 고집스럽기도 했지만 돌아서면 뒤를 돌아보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 탓에 희망을 품은 적은 없지만 다시 한번 확인 받고 나니 코끝이 찡하고 눈가가 시큰거렸다.

“환궁하게 되면 원래대로 처리할 걸세.”

검무는 어금니를 깨물었다. 생각해 보니까 이령의 입에서 잘못했다는 말 한마디를 듣지 못했다.

눈가에 상처를 냈을 때 무릎을 꿇고 앉아 두 손을 싹싹 빌며 용서를 구했다면 이 정도로 화가 나지 않았을 터다.

독약을 내리겠다고 했을 때도 이령은 입을 꾹 다물었다. 개화궁으로 내쫒을 때도 그녀는 그에게 잘못을 빌지 않았다.

미안하다, 그 말 한마디면 됐을 걸.

검무는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내가 자네라면 다른 말을 했을 게야.”

뭐, 잘못했다는 말?

이령은 입꼬리를 올렸다.

잘못했다는 말을 하기도 전에 죽으라고 한 사람이 누군데.

“자네, 그렇게 안 봤는데…… 정말 어리석어.”

전부였던 사람이 반쪽이 될 수도 있는데 어떻게 받아들여? 또 그 전부였던 사람이 죽으라고 하는데 어떻게 용서해? 잘못했다는 말은 나도 듣고 싶은걸…….

속에 있는 말을 꺼내면 말싸움밖에 되지 않는다. 지긋지긋하게 싸웠기 때문에 이젠 조용히 지내고 싶었던 이령은 입술만 달싹거렸다.

그리고 무언가를 따질 땐 개선이 될 거라는 희망이 있어야지만 용기가 나는 법이다. 검무와 이령에겐 그런 기회가 없을 것 같다.

어차피…… 죽을 테니까.

이령은 씁쓸한 마음을 달래듯 미소만 지그시 베어 물었다. 불을 꺼 놓길 잘했다. 눈물을 참는 모습을 숨길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벙어리가 됐나!”

“폐하가 원하는 걸 해 드릴게요. 대신 소원 한 가지만 들어주실 수 있어요?”

“소원?”

“황태자비로 입궁하기 전엔 부정이 탄다고 하여 대문 밖을 못 나갔습니다. 입궁 후에는 당연히 황궁 안에서만 살았지요. 그래서 대문 밖에는 어떤 세상이 있는지 몰라요. 죽기 전에 구경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세요.”

“불허하네. 자네는 죄인이야. 폐서인이 되어 유폐된 걸 잊었나?”

“거절하신다면 뻣뻣한 상태로 구멍이나 쑤셔야 할 거예요.”

“어느 안전이라고 막돼먹은 소리를 지껄이는 게야!”

“어차피 죽을 목숨, 두려울 게 무언가요.”

이령이 뻔뻔한 만큼 배짱을 부리자 검무는 당황했다.

“자네…….”

“폐하와 저는 속궁합 하나는 잘 맞았지요. 절정에 오를 때마다 폐하는 거친 숨을 토하며 기뻐했습니다. 기억나지요?”

“지금보단 좋았지.”

“태의가 그런데 제가 먹는 탕약에 최음약을 넣었대요. 그 탓에 젖꼭지가 단단하게 부풀었어요. 입에 넣고 굴리고 싶지 않으셔요? 배란기처럼 몸이 뜨거워요. 오늘…… 작정하고 달려든다면…… 꽤 좋을 텐데요.”

검무는 잇몸이 욱신거릴 만큼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아는 맛이 무서운 법이다. 배란기의 이령은 더없이 야릇했고 농염했으며 도발적이었다.

어금니를 질끈 깨물고 고통스러워하는 사이 양물이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그는 욕지거리가 쏟아지려고 해 입매를 비틀었다.

“뻣뻣했던 몸이 착착 감기는 건 물론 탄성을 터트릴 만큼 조이기도 하겠지요. 폐하는 조이는 걸 참 좋아하시잖아요.”

“자네…… 작정하고 도발하는데…….”

“살려 달라고 부탁한 것도 아닌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거라면…… 뻣뻣한 거나 안으세요. 뭐 어차피 환궁하시면 새장가를 들 테고, 새 황후와 실컷 하시면 될 테니까요.”

이령은 일부러 뜸을 들이듯이 주절거린 후 다시 한번 배짱을 튕겼다.

“폐하께서 안 된다고 하시면 더는 욕심 내지 않을게요.”

검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꼭 나가야겠나?”

“예.”

“한두 번만 나가.”

“없던 얘기로 해요.”

“나가 봤자 좋을 거 없어.”

“좋을 거 없다면서 암행은 왜 그렇게 자주 나가셨어요? 대서절(大暑節: 대서를 명절로 이르는 말)에 같이 나가 보자고 꼬드긴 날도 있잖아요. 곧…… 그 대서절인 걸 아세요?”

대서절은 호녕국이 세워진 개국일이기도 하여 나라 곳곳에서 크고 작은 축제가 열렸다. 검무는 대서절의 개국 의식을 마친 후엔 꼭 암행을 나가 백성들과 어울리곤 했었다.

열대야가 기승을 부릴 만큼 더운 날씨였으나 외향적인 그에겐 더위 따윈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대서절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약 한 달 남짓. 느긋하게 즐길 생각이 없었다고 해도 조바심이 고개를 들었다.

“그 전에 환궁하셔야지요.”

검무의 걱정을 읽은 듯 이령이 조바심을 부추겼다.

“시간이 별로 없어요.”

“영악한 것.”

검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건 약점을 건드리는 일이었다. 대서절이 그에게 얼마나 중요한 행사인지 아는 그녀였기에 입을 찢어 버리고 싶었다.

“꽃망울 같았던 그 입술이 어쩌다가 요망해졌을까.”

“가시가 돋친 탓이겠지요.”

“자네의 욕심이 만든 가시야.”

“싸우지 말아요. 신첩이 원하는 걸 들어주신다고만 하세요.”

“좋아! 매일매일 나가는 걸 윤허하지! 하나 혼자 나갈 순 없다. 이치와 타래의 감시와 호위를 받으라!”

“감읍하옵니…… 끅!”

말을 채 잇기도 전에 검무가 달려들었다. 그는 그녀의 양 손목을 아플 정도로 세게 쥐어 옴짝달싹하지 못하도록 결박한 후 쓰러트렸다.

이령은 겁을 집어먹었다. 심장이 달아날 만큼 소스라치게 놀란 탓에 비명도 터지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즐거움에 비명을 질렀을 테지만 검무가 무서웠다. 지어미에게 애정이 남아 있지 않은 황제는 마음만 먹으면 목을 조를 수 있을 것 같았다.

검무가 입술을 겹쳤다. 욕정을 참느라 힘들었나 보다. 그는 그녀의 입술을 아플 정도로 세게 짓뭉개며 혀를 목구멍 깊숙이 밀어 넣었다. 목젖에 닿은 혀 때문에 기침이 터졌지만 그건 그녀의 사정이었다.

그는 그녀가 침을 흘리며 괴로워해도 틀어막은 입술을 떼지 않았다. 혀를 욱여넣고 잇몸을 희롱하거나 천장을 간질이는 등 온갖 기교로 자신의 욕망을 충족해 갔다.

“흣!”

이령이 허리를 들었다. 검무가 젖가슴을 움켜쥐었다. 그녀가 일러준 대로 강낭콩만 하게 부풀고 딱딱해진 유두를 꼬집었다. 그는 손톱 끝으로 유두를 콩알 굴리듯이 뱅글뱅글 돌리며 간질였다.

간지러운 손길로 그녀의 애를 태우는 건 여전했다. 익숙해진 습관은 좀처럼 버리거나 지우기 어려운 것처럼 어릴 때부터 굴렸던 동작 그대로 침전의 공기를 데웠다.

“아아, 아…….”

이령이 허벅지를 넓게 벌렸다. 젖꼭지를 굴리던 손가락이 유방을 아프게 쥐었다. 입술을 포개고 있던 입이 턱에 잇자국을 내더니 젖무덤으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윽!”

검무가 유방을 입 안 가득 넣은 후 세게 깨물었다. 이령에겐 그 어떤 상처도 내지 않으려고 조심하던 지아비가 아니었다.

그는 그녀를 욕구를 해소할 상대로만 여기기로 한 이상 본능대로 움직였다. 짐승처럼 거칠고 악인처럼 무자비하며 감정이 없는 것처럼 고통을 주었다.

검무가 유두를 깨물었다. 깨물어 없애겠다는 듯 잘근거리는 의지가 강했다. 깨물렸다고 눈물이 찔끔 날 만큼 아프지 않았다. 하지만 통증 외의 신경이 예민해져 음부가 잔뜩 젖었다.

가랑이 사이, 예민한 감각이 모여 움푹 패고 후끈후끈한 열기와 애액이 질척한 음부가 덜덜덜 떨렸다.

음부를 새카맣게 뒤덮었던 음모에도 힘이 바싹 들어가 솟구쳐 올랐다. 엉덩이에 힘이 들어갈 정도로 긴장하자 젖가슴에 멍이 들도록 깨물거나 씹어 대던 혀가 납작한 배에 침을 축이기 시작했다.

곧장 음부까지 내려온 그가 참외를 갈라놓은 것처럼 생긴 음부에 코를 박았다. 늘 향기로운 향내를 풍기던 음부에서 오취가 은근하게 맡아지자 검무는 고개를 들었다.

몸을 씻을 때도 법도에 맞추고 황제인 제 비위에 거슬릴 만한 향기는 몸에 입히지 않았으면서.

이젠 될 대로 되라는 식인가?

후각을 자극할 만큼 들부드레하고 쌉싸래한 향내를 폐부 깊이 들이마셨다. 찝찌름해야 마땅할 텐데 신선한 반항으로만 여겨져 코웃음이 쳐진다.

“오늘은 독특한 향내가 나는군.”

“씻지 않았어요.”

“어째서?”

“두 번 씻기 싫어서겠죠.”

“꼭 씻어야지만 안았던 것도 아니니까…… 잊었나 본데…… 한참 불이 붙었을 땐 자네가 흘린 요(尿:소변)을 빨아 마시는 걸 즐겨했어.”

씻지 않은 게 대단한 복수라도 되는 양 생각하지 말라는 뜻에서 한 말이었다. 이령은 대꾸하지 않았다.

옛 기억 따위…….

이령은 고개를 돌렸다.

부질없다, 전부 부질없어.

상실감이 명치를 찔렀다. 미간을 찌푸리며 명치의 통증을 견디는 사이 검무가 회음부에 입술을 붙였다. 혀로 갈라진 살점을 핥아 대며 침 삼키는 소리를 냈다. 그녀는 손톱을 깨물었다. 또 다시 심장이 찌르르 아파 눈물이 맺혔다.

그가 혀를 팔랑팔랑 움직이며 질 입구를 자극할 때마다 발가락 끝까지 열기가 뻗쳤다.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신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참아 봤지만 쉽지 않았다.

깨물고 있던 손톱을 입에 넣은 그녀는 신음하며 손가락을 빨았다. 성감대를 잘 알고 있었던 만큼 검무는 잔악했다. 그는 손가락으로 질 구멍을 넓힌 후 혀를 깊숙이 넣었다.

볼록하게 솟아오른 음순을 입술과 윗니로 긁듯이 애무하자 이령이 아랫배를 꿀렁거렸다. 물처럼 맑은 애액이 왈칵 쏟아져 그의 입안을 가득 채웠다.

애액은 새큼한 맛이 강했다. 그는 집요하게 파고들어 애액을 전부 빨아 마신 후 그녀의 다리를 부드러운 손길로 어루만졌다.

손끝에 심장이 달렸나 보다. 이령의 다리를 감싸 쥔 손가락이 저릿저릿했다. 그는 고개를 들어 그녀의 얼굴을 응시했다.

어떤 표정인지 궁금했지만 컴컴해서 보이지 않았다. 불을 끄지 말걸 그랬다. 뒤늦은 후회로 인해 인상이 찌푸려진다.

“아!”

이령이 허벅지 안쪽을 떨었다. 경련을 일으키듯 부르르 떨던 그녀가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어쩔 줄 몰라했다.

열기가 오른 음부를 자극한 바람에 절정의 문턱에 빠르게 도달한 것 같았다.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서운했다.

전에는 간드러지는 신음소리로 정신을 혼미하게 했었는데 지금은 입술을 꽉 깨문 듯 간헐적으로 내뱉는 게 전부였다.

그는 상체를 일으켜 앉은 후 그녀의 허리를 가볍게 들어올렸다. 벌겋게 성이 난 양물이 자신을 빡빡하게 조이는 구멍에 빨리 박히고 싶다며 흔들거렸다.

그는 그녀의 엉덩이를 넓게 벌린 후 귀두부터 천천히 밀어 넣었다. 그러자 그녀가 가슴을 앞으로 내밀었다.

꼿꼿하게 세운 척추 뼈와 뒤로 빠진 엉덩이, 긴장한 허벅지가 양물의 기운을 반기며 꿈틀댔다.

“아아…….”

이령을 일으켜 앉힌 검무가 허벅지를 들썩거렸다. 자궁을 꿰뚫을 것처럼 처박히는 힘에 그만 몸이 흔들거렸다.

그녀는 그의 목에 팔을 감았다. 풍만한 젖가슴이 탄탄한 가슴이 닿아 뭉개졌다. 몸을 흔들거릴 때마다 젖꼭지가 맨살에 쓸려 심장 언저리가 간질간질했다.

이제야 찌르르 하던 심장통이 가시고 환희의 파동이 배 속을 뜨겁게 달구기 시작했다.

“아아…… 흐으읏.”

이령이 매달리기 시작했다. 눈앞이 번쩍거릴 만한 자극에 엉덩이가 뒤로 빠졌다. 그는 그녀가 양물을 뱉어내지 못하도록 엉덩이를 꽉 누르며 가열하게 박아 댔다.

“아아…… 폐하…… 처, 천천히…… 아!”

양물만큼이나 힘이 넘치는 팔뚝이 가는 여체를 옥죄며 요동치기 시작했다. 무릎을 세우고 앉은 자세로 그를 받아들이던 그녀가 도망치려고 하자 그가 뒤로 누웠다.

그녀를 제 위에 올린 그가 엉덩이를 들이치기 시작했다. 밑에서 치받는 힘이 광포하여 이성의 끈이 스르르 풀려 버린 이령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아앙…… 아!”

이령이 말을 타듯이 허리를 들썩거렸다. 단정하게 묶었던 머리카락이 풀려 어깨와 허리를 덮었다.

그것은 그녀와 한 몸인지라 황야를 달리듯 허리를 유연하게 돌릴 때마다 자유를 만난 듯 허공에서 나풀거렸다.

젖가슴 또한 덜렁거렸다. 속도를 올려붙일 땐 커다란 것이 턱까지 치고 올라왔다가 배꼽까지 떨어졌다.

검무가 덜렁거리는 유방을 양손에 쥐고 힘을 주었다. 손톱으로 유두를 긁는 등 자극의 강도를 올리자 그녀가 철퍽거리는 소리를 내다 말고 허리를 빙글빙글 돌렸다.

검무는 고개를 뒤로 젖혔다.

역시, 이거다.

바로 이 맛이다.

이령이 작정하고 기교를 부르자 검무의 숨소리가 거칠게 변했다. 구멍에 대고 박을 때와는 만족감이 달랐다. 양물을 터트릴 기세로 조이는 힘과 이글거리는 열기에 현기증이 일었다.

“아…….”

이번에는 검무가 신음했다. 그러자 그녀가 그의 뺨을 양손으로 감싸 고정한 후 입술을 겹쳤다. 엄지손가락으로 입술을 문지르며 입을 맞추자 머리카락이 쭈뼛거렸다.

가슴 안에서 쿵! 하는 소리가 나더니 눈물이 왈칵 솟구쳤다. 그는 몸을 굴렸다. 그녀를 깔고 누운 그는 머리카락 속에 손가락을 넣어 뒤통수를 단단히 쥐었다.

입술이 맞붙었다가 떨어질 때마다 침 섞이는 소리가 들쩍지근했다. 두 개의 혀가 한 덩어리였던 것처럼 꼬였다가 두 개로 갈라졌다. 입술과 턱 주변이 누구의 것인지도 모를 침으로 인해 끈적거렸다.

그는 윗입술을 깨물며 뜨거운 입김을 흩뿌렸다. 그러자 그녀가 벌리고 있던 다리를 그의 허리에 걸쳤다.

팔을 어루만지던 손이 등 근육을 쓸어내렸다. 손끝이 등줄기를 타고 내려가 꼬리뼈를 지나자 그가 부르르 떨었다. 짓궂은 습관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튀어나왔다.

검무가 엉덩이를 조였다. 돌처럼 딱딱해진 엉덩이 근육과 긴장한 허벅지가 날뛰기 시작하더니 속도를 올렸다.

투명했던 애액이 산양유처럼 변했다. 힘이 넘치는 양물이 거침없이 진퇴를 반복하자 새하얀 애액이 사방으로 튀었다. 내리꽂히는 꼬챙이와 방망이처럼 둔부를 치대는 불알의 감각에 하복부가 얼얼해질 때였다.

“폐하!”

이령이 발버둥을 치며 검무를 밀쳤다. 허리를 들썩거리며 바동거리는 걸 보니 황홀경에 취한 모양이다.

“흐읏, 으!”

이령이 몸을 움츠렸다. 배가 홀쭉해질 정도로 힘을 주며 경련했다. 검무 또한 입술을 깨물었다. 쪼그라져 좁아진 구멍이 양물을 부러트릴 기세로 힘을 줬다.

인상이 확 구겨졌다. 목에 핏대가 솟아올랐다. 파정의 여운이 후두부를 강하게 때렸다. 목덜미를 타고 흐르던 전율이 낭심을 쥐락펴락 가지고 논다.

검무가 뒤로 물러났다. 그녀의 안에 씨물을 그득 들이부었지만 성이 차지 않았다. 그는 축 늘어진 이령의 턱을 아프게 눌러 입술을 벌렸다.

황홀경의 여운이 가시지 않아 움찔거리던 이령이 숨을 들이마셨다. 긴장한 그녀가 어깨를 움츠리자 검무가 입술을 깨물었다.

“읍!”

갑작스러운 입맞춤에 숨이 막혔다. 그에게 깨물렸던 입술이 찢어진 모양이다. 피비린 맛이 났다. 그도 피비린 맛을 느꼈을 텐데 주저하거나 멈추지 않았다.

허기를 채우려는 듯 침을 삼키며 입술을 위아래로 할짝거리는 혀 놀림이 갈급했다. 그렇게 숨을 돌릴 틈도 없이 입을 맞추던 그가 그녀의 손을 억지로 쥐어 양물을 감싸게 했다.

양물을 흔들어 보라는 듯 손목을 눌렀다. 그녀는 그가 시키는 대로 손을 흔들었다. 파정으로 인해 본래의 크기로 돌아가 축 처져 있던 양물이 부활하는 게 피부로 느껴졌다.

그 생생한 촉감에 배 속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처럼 근질거렸다. 그리고 회음부와 항문 주변이 찌릿찌릿했다.

타고난 정력가가 아니랄까 봐 금방 고개를 든다. 가슴이 뛴다. 그를 받아들였던 질 구멍이 벌렁벌렁 흥분하기 시작했다.

손 안에서 완전한 모습을 되찾은 양물이 미끄덩거리는 체액을 주르륵 흘렸다. 그녀는 귀두를 손톱으로 꾹 누르며 다리를 들어올렸다.

벌어진 음부에 맞닿은 고환을 슥슥 소리가 나게 문지르자 검무가 입술을 뗐다. 상체를 들어올린 그가 그녀의 골반을 가볍게 누른 후 부드럽게 삽입했다.

“흣.”

끝이 뭉뚝한 좆이 조금 전에 마찰열을 지폈던 통로를 지나치자 젖꼭지가 얼얼했다. 그녀가 반응을 해 주었더니 어젯밤이나 새벽처럼 미적지근한 태도가 사라졌다.

정력의 화신이 되살아난 양 오늘밤은 한두 번으로는 끝날 것 같지 않았다. 어쩌면 동이 틀 때까지 검무를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그를 종일 받아들이는 건 흔하고 익숙한 일 중 하나였지만 그가 황위에 오른 후론 오랜만이었다.

황태자 시절엔 성기가 헐어서 걸어 다니지 못할 만큼 비벼 대거나 넘나드는 게 일상이었다.

그 정도로 정력가인 검무가 한 달 이상 관계를 하지 않았으니 욕구 불만일 터였다. 어찌 보면 욕구를 풀지 못해 불만족 상태였던 건 검무만이 아니었다.

검무에게 상처를 받았어도 배꼽 아래 감각은 즐거움에 도취되어 물기에 젖어 있었다. 육체에도 배신을 당한 기분이 든다.

제게 죽으라고 했던 사내인데 뭐가 좋아서 엉덩이를 쳐들고 신음이나 흘리는 건지.

만만하게 보이는 건 싫은데…….

쉽게 받아들이고 흥분하며 좋아하는 걸 온몸으로 표현해 버리면 그를 용서한 꼴이 되잖아.

그건 정말 싫은데…….

3장. 흠뻑 젖은

아프다.

남근에 묻은 물기를 닦던 검무의 인상이 잔뜩 일그러졌다. 물에 들어가 있을 때도 따끔거리긴 했지만 스치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번쩍 들 만큼 상처가 난 건 몰랐다.

뱀이 벗어 놓은 허물처럼 음경에 하얀 막이 생겼다. 귀두는 빨갛게 익은 데다 퉁퉁 부어 있었다.

“조절했어야 했나?”

동이 틀 때까지 7번이나 관계를 맺었던 건 무모했다. 몸 상태가 예전 같지 않다는 걸 깜빡하고 예전처럼 몰아붙였다.

어릴 땐 이령과 사랑을 나누는 게 좋았다. 한번 시작하면 7번은 기본이었다. 아니다, 7번이 무언가 종일 관계를 맺는 바람에 황태후에게 혼쭐이 나기도 했었다. 부황도 걱정이 되는지 그런 쪽으로 중독된 게 아니냐며 태의를 보내기도 했었다.

결과적으로 중독이 아니었고 각방을 쓰는 건 검무의 반항심을 부추기는 일이라 없던 일이 됐었다. 그 후론 황태후의 눈치를 봐 횟수를 줄이긴 했지만 검무의 정력은 망측하리만큼 남달랐다.

이령의 몸속에 신체의 일부를 삽입해 놓은 것만으로도 사랑스럽고 행복했기 때문에 멈출 수 없었다.

어젯밤에도 그 행복감을 느꼈다. 오랜만에 느껴 보는 감정이었던 탓에 매우 기뻤다. 입맞춤 또한 그를 흥분시켜 제정신이 아니었다.

오랜만에 느껴본 황홀경에 그만 입에 침이 고였다. 고환이 땡땡하게 부어오르기 시작했지만 통증이 동반됐다. 검무는 인상을 썼다.

“……이 상태론 못 하겠는데.”

통증 때문에 이령과의 잠자리를 못 하게 될 것 같아 짜증부터 일었다.

“이렇다니까……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다…….”

이 모든 게 이령 때문이다.

속궁합이 잘 맞는 걸 떠나 박아 넣는 것만으로도 미치게 좋아서 자꾸만 생각이 난다.

“태의를 불러야 하는데…….”

민망하다.

보이지 못할 것이 없는 사이라고는 하지만 체면이 깎이는 기분이 든다. 헐어 버린 남경을 걱정스레 쳐다볼 때였다. 바깥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폐하, 노을이옵니다. 안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노을이 목욕간으로 들어오자 수건을 목간통에 걸쳐 놓은 후 바지를 입었다. 원래는 환관들이 목욕 시중을 들어야 했으나 조용히 있고 싶어 모두 물렸다.

“대기하고 있으라니까 그 사이를 못 참고.”

“그것이 아니오라 마마께서 개화궁 밖을 나가시겠다고…… 폐하께서 윤허를 하셨다고…….”

“그이의 말대로 윤허했다.”

“이치와 타래가 호위하는 것도요?”

의외라는 듯 당황한 노을의 안색이 안 좋았다. 검무는 고개를 끄덕거려 대답을 대신했다. 그러자 노을이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

“폐하, 소인도 같이 가면 아니 되옵니까? 저도 나가고 싶어요.”

노을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검무는 눈을 흘겨 떠 꼬리를 치며 애교를 부리는 강아지처럼 해맑은 그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었다.

“넌 남아.”

“왜요오…….”

“너까지 나가면 정신 없어해.”

“누가요? 소인이 정신이 뺀다는 말씀이셔요?”

“옆에서 계속 쫑알거리면 정신없으니 너는 남아서 좋아하는 주전부리나 해.”

“히잉.”

노을이 입술을 삐쭉거렸다.

“폐하는 나만 미워해.”

“사내놈이…….”

“이치랑 타래만 좋아하셔.”

“버릇없이 굴지 마라. 볼기짝에 불을 붙여줄 게야.”

“개화궁 밖에 재미난 것이 얼마나 많은지 폐하도 아시잖아요. 소인도 따라가게 해 주세요. 이치가 남고 소인이 나가는 게 폐하께서도 안심할 수 있잖아요.”

“안 돼.”

“히잉, 폐하앙.”

그는 한숨을 쉬었다. 어릴 때부터 같이 지낸 탓에 귀여워해 주었더니 자신의 신분을 망각하고 엉길 때가 있었다.

그렇다고 혼쭐을 내주기도 애매해 정사에 개입하거나 부정을 저지르지만 않으면 웬만한 건 모른 척했더니 어리광이 늘었다.

“이치는 어디 있느냐?”

“밖에요…….”

“넌 그 주둥이부터 넣고 여기 남아 뒷정리를 해.”

어리광을 부리는 노을을 따끔하게 대한 검무는 옷을 갖추어 입은 후 목욕간을 나왔다. 이치와 타래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노을에게 들으셨지요?”

이치가 물었다. 검무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조심히 다녀오너라.”

“소인이 자리를 비워도 되겠습니까?”

이치는 걱정스러운 듯 안색을 굳혔다.

“만에 하나…….”

“석삼도 있고 연다나 고식도 있으니 걱정하지 마라. 그리고 반푼이긴 해도 노을이도 있잖으냐.”

무덤덤한 어조로 대답한 검무는 이령의 궁실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새벽까지 자신을 받아들였으면 피곤할 만도 한데 밖을 나갈 생각을 하다니 의지가 대단하다.

“그이는 어떻더냐?”

“피곤해 보이셨으나 들떠 계십니다.”

“바깥 구경이 처음이니 놓치지 않도록 신경을 바싹 써야 한다.”

“맡겨 주십시오.”

타래가 우직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이치만큼 타래를 신뢰했던 검무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돌아섰다. 그가 돌아선 방향에 길이 하나 있었다.

그 길은 이령의 처소와 이어져 있었다. 그는 그녀의 상태가 궁금해 걸음을 옮겼다. 걸을 때마다 남근이 쓸렸다. 욱신거리는 통에 인상이 찌푸려진다.

그는 눈가를 찡그린 채 이령의 전각 앞에 섰다. 금란이 쫑알거리는 게 들리나 싶더니 곧 이령이 밖으로 나왔다.

외출한다고 해서 화려하게 꾸민 건 아니었지만 해사한 표정에 뱃속이 꼬였다. 그는 시비를 걸 듯이 물었다.

“자네는 피곤하지 않나?”

검무는 못마땅한 표정과 말투로 물었지만 이령은 환하게 웃었다.

“외출 생각에 기운이 펄펄 나요.”

“기운이 펄펄 난다?”

“내내 궁금했거든요. 궁벽 밖의 세상이 어떤 곳인지.”

“사람이 사는 곳이네. 다 비슷하고 위험하지.”

“초 치지 마세요.”

눈썹을 높이 휜 이령이 쏘아붙이는 바람에 검무는 화제를 돌렸다.

“이치와 타래가 개화궁의 주변에 대해선 잘 알지만 들뜬 나머지 촐랑거리며 돌아다니지 말게. 그러다 길이라도 잃어버리면 이치와 타래만 곤란해져. 금란, 너도 주변을 경계하며 신중하게 행동하라.”

즐거운 시간을 보내라고 듣기 좋게 말하면 좋은데 심보가 꼬여 내뱉는 말마다 삐딱했다. 이령은 그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곱지 않은 눈빛이긴 했지만 말다툼만큼은 피하고 싶은지 입술을 꽉 깨물고 있었다.

“자네는 죄인이야. 잊지 말고.”

죄인이라는 단어에 이령은 억지웃음을 지었다. 이것은 명백한 도발이었으나 그가 바란 대로 반응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녀는 웃음을 유지한 채 대답했다.

“예, 폐하.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자네도 조…….”

맨 끝으로 이령이 걱정돼 조심하라는 말을 하려고 했지만 검무의 말허리가 잘렸다.

“이만 다녀오겠습니다.”

“말하는 중간에 자르긴가?”

“폐하께서 하시는 말씀을 다 듣다간 저녁이 되겠어요.”

“이 사람이…….”

“국수도 먹어야 하고 구경할 곳도 많으니까 비켜주세요.”

이령은 쌀쌀맞게 말했다. 끝난 사이라면서 왜 자꾸 말을 시켜?

“시간이 없으니 서두를게요.”

“너무 들뜨지 말게. 체통에 안…….”

“황후도 무엇도 아닌데 체통은 지켜서 무엇하게요? 엿이나 바꿔 먹으면 몰라…….”

“이 사람이!”

“시간이 없으니 다녀오겠습니다.”

이령은 새치름하게 뜬 눈매처럼 쌀쌀맞게 말한 후 검무를 지나쳤다. 그는 뒷짐을 쥐었다. 일부러 들른 보람이 없어 괜히 머쓱했다. 이령의 관심 밖으로 내쳐진 것 같아 기분이 오묘했다.

“다녀오겠습니다.”

이치와 타래가 이령을 따라 나섰다. 검무는 입매를 비틀었다. 기분이 이상하다. 이령, 그녀는 분명히 새벽까지만 해도 뜨거웠다. 제 품에 안겨 흐느꼈고 신음했으며 꽉 끌어안았다.

오랜만에 좋은 시간을 보냈으면 분위기가 바뀌어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철저한 착각인 듯 그녀에게 있어 그는 관심 밖이었다.

그녀는 나비처럼 가벼운 걸음걸이를 내디디며 정면만 보고 걸었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검무의 시선이 어떻다는 걸 분명히 느꼈을 텐데도 뒤 한번 돌아보지 않았다.

가슴 언저리가 뻐근하고 뱃속이 따끔거리며 목화 솜 몇 덩이를 입에 꽉 문 것처럼 답답했다.

“기분이…… 더럽다.”

검무는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본심에 순간 흠칫했다. 곧바로 입을 다문 그는 주변을 훓었다. 다행히 들은 자는 없었지만 눈동자에 스민 당혹감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목욕간에서 노을이 나오는 모습을 우두커니 지켜보는 눈매에 고민이 찼다.

설마…… 관심 받고 싶어진 걸까?

“하…… 이거 참.”

검무는 머리를 흔들어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모든 잡념을 지웠다.

*

네 살 생일을 치르고 나자 황태자비 후보라는 소식을 접했다. 황태자비의 후보가 되면 아홉 살에 황태자비로 간택이 되기 전까지 내당에서 황실의 예법에 대해 배우고 익히며 지낸 탓에 집 밖을 나가 본 적이 없었다.

훗날 황후가 될 몸이라는 건 존귀하여 부정이 타선 안 된다는 이유로 꽁꽁 숨겨진 삶을 살아야 했다.

그랬던 탓에 친정에서 황실로 이동하는 가마도 천으로 가려져 바깥이 어떤 곳인지 알 길이 없었다.

이령에게 바깥세상은 미지의 세계였고 더위로 인해 축축 처진 수풀도, 바싹 말라붙은 나뭇잎도 마냥 신기하고 신비로웠다.

그리고 친정이나 황궁에서 먹었던 국수와 전혀 다른 빛깔이 국수 또한 그녀에겐 새로웠다.

“고명이 없는데도 맛있어 보여.”

“예, 고기나 채소 고명이 없는 대신 양념장이라고 하는 이것을 넣어서 먹으면 일품이옵니다.”

이치가 먹는 법을 가르쳐주자 이령은 시키는 대로 했다. 국수는 끼니보단 입이 심심할 때 먹는 주전부리였다. 그렇기 때문에 양이 많은 편은 아니었으나 국물까지 마시면 배가 부를 것 같았다.

“마마, 국물 맛이 아주 좋아요.”

금란도 신기한 듯 국물 맛을 보며 국물을 낸 식재료를 알아맞히려고 했다.

“음, 개운하구나.”

이령도 국물을 맛본 후 면을 크게 집어 입에 넣고 오물오물 씹었다. 그러자 이치와 타래도 맛을 보며 흐뭇해했다.

“맛있어.”

이령은 국수를 호로록 입에 넣으며 방글방글 웃었다. 이치와 타래, 두 사람은 아이처럼 좋아하는 모습을 흐뭇한 시선으로 바라보았지만 곧 인상이 바뀌었다.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두 사람은 서로 눈을 마주친 후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거리가 좀 떨어진 곳에 사내와 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국수를 먹느라 여념이 없었고 사내는 이령에게 노골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이치와 타래가 눈에 힘을 주고 노려보자 사내의 관심이 둘에게 옮겨졌다.

긴 머리카락을 허리까지 내린 그는 쌀가루를 발라 놓은 양 피부가 하얗고 고왔다. 눈동자에 총기가 흘렀으며 올라간 입술 끝에서는 겁이 없는 자의 여유가 풍겼다.

“이치, 타래…… 신경 쓰이는 거라도 있니?”

분위기가 순식간에 삭막해지자 이령이 걱정했다.

“아닙니다.”

이치가 억지웃음을 지었다.

아니긴, 아까부터 저 사내만 쳐다보고 있었으면서…….

이령은 고개를 옆으로 숙여 자신을 쳐다보는 사내를 응시했다. 몸을 그녀 쪽으로 돌린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왜 저렇게 쳐다본담?

싸움을 걸 것 같은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분위기가 묘했다. 노골적으로 쳐다보는 시선에서 의구심이 느껴질 만큼 뺨을 따끔거리게 했다.

혹 개화궁에 유폐된 폐황후인 걸 알아본 걸까?

그럴 리가 없는데…….

이령은 뺨을 감쌌다. 아주 어릴 때 황태자비로 입궁한 탓에 그녀의 얼굴을 아는 이는 친정과 황실, 환관과 여관, 조정의 최고 대신들 몇몇뿐이었다.

폐황후임을 모르는 자라면 왜 저렇게 쳐다보는 걸까?

신경이 쓰이는 만큼 사내를 흘끗거리는 시선 또한 잦았다. 흡!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빨개진 얼굴을 얼른 돌렸다. 불에 덴 것처럼 따끔거리는 뺨과 빠르게 심장. 그녀는 입술에 침을 축이며 국수 사발에 시선을 고정했다.

이령이 귀까지 붉히자 타래가 조용히 아뢨다.

“예감이 안 좋으니 이만 일어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타래의 음성은 나직했다. 솜털이 솟구치게 하는 기운이 신경 쓰였다.

“그래, 이만 일어나는 게 좋겠어.”

얼굴이 빨개진 이령이 물로 입을 헹군 후 몸을 일으키자 사내도 움직였다. 아이는 국수를 포기할 수 없는지 그릇에 얼굴을 처박고 있었다. 일행이 아닌가 싶을 만큼 아이에게 관심이 없는 태도에 이령은 어깨를 움츠렸다.

“마마, 제 뒤에 서세요.”

금란이 이령을 보호했다. 사내의 눈초리가 신경 쓰인 건 이치와 타래뿐만이 아닌 듯 그녀 역시 긴장했다.

“왜 저렇게 봐. 기분이 이상하구나.”

“그러게요, 마마가 고와서 보는 것 같긴 한데…… 무안하네요.”

“고와서 보는 것 같진 않아.”

이령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호감이 생겨서 쳐다보는 눈빛과 의문과 분노 등이 섞인 시선은 다르다. 그에게선 후자의 분위기가 흩뿌려지고 있었다. 이치와 타래가 긴장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이령은 서둘러 국수집을 나왔다. 어린아이처럼 해맑았던 낯빛이 붉게 익었다. 그녀는 손등으로 뺨을 누르며 화끈거리는 열감을 떨어트렸다. 고개가 저절로 뒤로 돌아갔다. 그 사내가 달려들까 봐 겁이 난 탓이었다. 그녀가 시선을 어깨 너머로 보내며 불안해할 때 타래가 속삭였다.

“마마, 뒤는 소인이 잘 보고 있으니 앞을 보십시오.”

타래가 이령을 안심시키듯 덧붙였다.

“소인의 실력을 믿으세요.”

“못 믿어서 그러는 게 아니야. 신경이 좀 쓰여서…….”

“대서절 준비로 거리가 복잡합니다. 조심하십시오.”

이령이 말끝을 흐리자 타래가 바로 앞을 지나는 행렬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국수집에서 본 사내에게 신경을 쓴 탓에 바로 코앞을 지나는 수많은 인파를 못 봤다.

뒤늦게 발견한 그녀는 흙먼지가 뿌옇게 일어날 만큼 많은 사람들이 오와 열을 맞춰 지나가자 당황했다.

“웬 사람들이 이렇게 많아?”

“대서절 때문입니다. 축제 준비가 한창이지요.”

이치가 설명했다. 그녀는 눈을 말똥말똥 떴다.

“이 사람들이 모두 대서절을 준비하는 인력이야? 그걸 어떻게 알아?”

“복장을 보십시오. 맞춰 입은 옷, 악기를 든 자, 얼굴에 그림을 그린 자 등등만 보아도 노동을 하러 가는 건 아니옵니다.”

“대서절 축제…… 언젠가 노을한테 들었어. 꽤 재미있다지?”

“예, 이틀 내내 축제 기간이라 밤에도 불야성을 이룹니다.”

“나도 보고 싶다.”

대서절까지 살아 있을까?

문득 음울한 생각에 사로잡힌다. 그녀의 혼잣말에 이치와 타래는 입을 다물었다. 금란 또한 장담할 수 없을 만큼 시간이 얼마 없다는 걸 잘 알아 못 들은 척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이령은 저 때문에 분위기가 가라앉자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저기 앉을까? 앉아서 사람 구경을 하자꾸나.”

이령은 느티나무가 보이자 손으로 가리켰다. 따가운 볕을 맞는 것보단 그늘에 앉아 잠시 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마마, 쓰개를 쓰셔요.”

금란이 쓰개를 머리에 얹으려고 했지만 이령은 머리를 흔들었다.

“번거롭구나. 내 얼굴을 누가 안다고.”

“하오나…….”

“나중에 쓸게.”

이령은 쓰개를 옆으로 치우며 이치와 타래를 흘끗 쳐다봤다. 둘의 안색이 정말 안 좋다. 제가 생각 없이 내뱉은 말 때문인지 국수집에서 본 사내 때문인지 알 순 없었지만 긴장을 풀지 못 하는 건 분명했다.

느티나무 아래, 기단처럼 만든 돌 위에 앉은 이령은 고개를 들었다. 다소곳한 여인이 머리카락을 흩트리는 것처럼 흩날리는 느티나무 이파리 사이로 맑은 하늘이 보였다.

적당히 부는 바람 또한 선선해서 가라앉았던 기분이 살랑거렸다.

*

오후에서 저녁으로 향하는 시간, 눈이 시릴 만큼 푸르던 하늘도 붉은 기운을 머금어 주황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이령이 외출한 탓인지 기분이 바닥을 치던 검무가 태의에게 물었다.

“어떤가?”

그의 시선은 손목에 손가락을 올려 진맥하는 태의에게 고정됐다. 긴장하고 있던 태의의 안색이 밝아졌다. 그는 손목에서 손가락을 거둔 후 검무의 눈동자 색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흰자위의 색이 청색에 가까운 흰색을 되찾았사옵니다. 조금 빠르게 뛰던 맥도 정상이옵니다.”

“독은?”

“이 정도면 거의 다 배출이 되었다고 보아도 무방하옵니다.”

“거의 다? 태의가 예상했던 날짜보다 호전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왜 그런 것이냐.”

“소신도 구미호의 독이라는 건 의서에서 읽었기 때문에 정확한 정보가 없사옵니다. 그저 추측하건데 폐하께서 원체 강건하시고 냉궁마마께서 잘 받아들이시는 체질인 듯하여…….”

태의의 안색이 밝다. 검무의 병세가 생각했던 것보다 빨리 호전된 게 그의 불안을 말끔하게 씻겨 준 듯했다. 지금과 같은 속도라면 빠르면 보름 안에 환궁할 수 있었다.

“대서절 전엔 환궁할 수 있겠나?”

“수일 내로도 환궁이 가능하십니다.”

“수일 내로?”

“몇 번만 더…… 합궁을 하시면 완쾌되시리라 사료되옵니다.”

“벌써 그렇게 되나.”

검무는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조심스레 숨을 내쉬었다. 수일 내로 환궁한다, 합궁을 몇 번만 더 하면 완쾌할 것 같다는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태의…… 궁금한 게 있는데…….”

“예, 폐하.”

“그이가 정말 불임인가?”

검무의 물음에 태의는 당황했다.

“불임이 맞느냐는 게야.”

“……예. 회임에 대한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회임할까봐 걱정하는 것 같나?”

검무가 되물었다. 태의의 낯빛이 우중충하게 변했다.

“냉궁마마를 복권하실…….”

“짐의 목숨을 구한 공이 있으니 이대로 사사하는 게 온당한지 고민 중이다.”

검무는 태의의 표정을 주시했다.

“죽을 뻔한 걸 생각하면…… 그이의 죄를 용서하는 게 맞겠지.”

“공을 생각해 주신다면야…….”

태의는 말끝을 흐렸다. 검무는 그의 반응이 떨떠름한 게 마음에 걸려 눈썹을 높이 휘었다.

“자네의 생각은 어떠한가?”

“신은 폐하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신하일 뿐이옵니다. 더구나 냉궁마마에 관한 것은 소신이 생각을 입에 담을 수 없음을 헤아려 주시옵소서.”

이제 와서 사사의 명을 거둔다고 해도 이령을 구할 방법이 없었던 태의는 몸을 사렸다.

“……황태후전의 눈치를 보는 겐가?”

“그것이 아니오라 소신은 그저…… 의술을 다루는 자라…….”

태의의 대답에 성에 차지 않았던 검무는 입매를 비틀었다. 가려운 곳을 말해 줬음에도 눈치 없이 대꾸하는 게 못마땅해 죽겠다. 그렇다고 어심을 헤아리지 못한다며 꾸짖을 수도 없어 입술만 바싹 말랐다.

“어쨌든 태의는 명의다. 덕분에 살았구나.”

“냉궁마마의 공이 큽니다. 소신은 그저 의서에 적힌 대로 행하였을 뿐이옵니다.”

“자네의 공을 그이에게 돌리는구나.”

“소신의 공이 아님을 잘 아옵니다.”

“안다면서…… 눈치가 그렇게 없나.”

“예?”

“아니야, 혼잣말이니 괘념치 마라.”

태의의 태도가 못마땅했던 검무는 입매를 비틀었다. 잠시 잠깐 침묵이 흘렀다. 태의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에 잠겨 있다가 힘겹게 입술을 뗐다.

“따,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해 주신다면 냉궁마마께서 기뻐하시리라 사료되옵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

검무는 피식 웃었다. 고민 끝에 한다는 소리가 겨우 따뜻한 말 한마디? 저렇게 아둔했나? 가려운 곳을 긁을 줄도 모르고 웬 헛소리? 전의를 상실한 패잔병처럼 허탈해하던 검무가 손을 털었다.

“이만 물러가도 좋다.”

검무는 태의를 물리고는 입맛을 다셨다. 공을 인정하여 복권시키는 건 어떻겠느냐? 라고 대답해 주길 바란 것도 아니면서 신경질이 날 만큼 서운했다.

“쯧.”

혀를 차며 감정의 기복을 가라앉히던 검무가 이마를 짚었다. 그는 열어 놓은 창문 밖을 노려봤다. 곧 저녁인데 이령은 아직도 밖에 있다. 곧 저녁인데.

“이치, 눈치가 없어진 겐가…… 빨리 들어올 것이지.”

콧바람을 씩씩거리며 이마를 문지를 때였다. 노을과 석삼이 들어왔다. 두 사람의 손엔 주전부리와 서책이 들려 있었다.

“폐하, 입이 심심하시지요? 소인이 떡을 찌었습니다.”

노을이 총총총 걸어왔다.

“얼마나 맛난지 몰라요.”

“너나 먹어.”

검무가 짜증조로 쏘아붙이자 노을과 석삼이 눈치를 봤다. 괜히 들어왔나 싶은 모양이다.

“시, 심기가 불편하세요? 호, 혹…… 마마께서 늦는 게 마음에…….”

“헛소리 그만하고 너는 떡이나 먹어.”

검무는 신경질을 부렸다. 개똥 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 애가 탔다. 특히 저 생각 없이 떡이나 들고 온 노을은 한 대 쥐어박고 싶었다.

떡을 가지고 올 게 아니라 이령이 어디쯤 있다는 소식을 알아 와야지.

저렇게 답답해서…….

“폐하는 나만 미워해.”

“한마디만 더 해, 들고 있는 떡을 목구멍까지 쑤셔 넣어 줄 테니까.”

오늘은 노을의 어리광이 통하지 않는 날이었다. 노을은 설움이 북받치는지 울상을 지었다. 저럴 땐 영락없는 계집이다. 피곤하다. 그는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쉬었다.

“소인들은 나중에 다시 들르겠습니다.”

석삼이 검무의 눈치를 보며 뒷걸음을 걸었다. 슬금슬금 도망치는 모양새가 검무의 화를 돋우지 않도록 조심했지만 틀렸다.

“이치와 타래는 언제 오는 게야!”

“그, 글쎄요.”

“어디에서 무얼 하는지 파악도 못 했느냐?”

“타, 타래가 어련히 잘하겠나 싶은데…….”

“해가 저물어 가서 하는 말이야.”

석삼의 대답이 시원찮아 부아가 끓었던 검무가 인상을 구겼다. 석삼과 노을은 어깨를 움츠린 채 고개를 숙였다.

“하나같이 눈치가 없다. 하나같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검무가 두 사람을 노려봤다.

“왜 몰라, 왜! 종일 붙어 있으면서 한 평도 하지 않는 마음을 왜 못 읽어!”

“마음이 어찌 한 평밖에 되지 않는다고…… 마음은 크기나 규모를 따질 수 없…….”

“노을!”

“예…… 폐하.”

“눈치가 없다는 소리야, 눈치가. 다른 때는 듣기 싫은 소리도 잘만 해 대더니 그이에 대해선 왜 그렇게 아둔한 겐지. 쯧쯧.”

이렇게까지 말했으면 반응이 와야 하는데 노을과 석삼은 입술을 꼭 붙인 채 꼬물거렸다. 할 말은 많지만 생각나는 대로 내뱉을 수 없어 답답한 모양이다.

검무는 혀를 차도 눈치없이 구는 두 사람을 노려보다가 지나쳤다.

“답답하구나, 후원을 좀 걸어야겠다.”

검무는 신경질을 부린 후 궁실을 나왔다.

“평소엔 하지 말라는 것만 골라 하더니…… 에휴, 답답해서.”

이령의 귀가 시간이 늦어질수록 검무의 애는 붉게 변하는 하늘처럼 활활 탔다. 이러다 한 줌의 재가 되는 건 아닌지.

“무정한 인사 같으니라고…… 고집불통이지…… 이쯤 되면 살갑게 굴 만도 한데 얼음처럼 차갑기만 하니까 뭐가 돼!”

켜켜이 쌓인 짜증이 노을과 석삼에서 벗어나 이령에게 향했다.

“못 이기는 척하고 살려 달라고 하면 좀 좋아? 이대로 환궁이라니…… 젠장.”

환궁, 그 단어 때문에 전신의 신경이 바늘처럼 날을 세웠다.

“이치도 그렇다, 눈치껏 들어와야지!”

이번에는 이치에게 화가 났다.

“타래, 이 녀석도 똑같아!”

타래도 이치와 마찬가지로 화를 돋운다. 그는 험악하게 일그러트린 얼굴을 두 손으로 비볐다. 얼굴을 문지르는 소리가 초조한 마음처럼 버석거렸다.

“복권 시키라는 말을 듣고 싶어서 몸이 달으셨네.”

노을이 석삼에게만 들릴 정도로 아주 작은 음성으로 속삭였다.

“쉿, 조용히 해. 괜히 말 한마디를 잘못 꺼냈다간 아작이 날 분위기야.”

“귀 막고 계신데 뭐. 저렇게 흥분해 계실 땐 혼자만의 생각에 갇혀 있잖아.”

“노을아…….”

“답답해서 그래, 답답해서. 누군 복권 시켜 달라고 말할 줄 몰라서 입을 다물고 있다던? 소용이 없는 소리니까…… 꺼내지도 않는 게지.”

“너 자꾸 쓸데없는 소리 할 거야? 그러다 말실수를 하면 어쩌려고 그래?”

“나도 그만한 눈치는 있으니까 그렇게 걱정하지 마. 입을 잘못 놀려서 죽고 싶진 않아.”

노을은 입술을 삐쭉거리다 걸음을 뗐다. 그러자 석삼이 그의 팔을 잡았다.

“어디 가?”

“폐하께.”

“무슨 소리를 하려고?”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구경만 하셔.”

노을은 한쪽 눈을 깜빡거린 후 검무에게 향했다. 검무는 궁문 근처의 산책로를 어슬렁거렸다.

수일 내로 환궁…….

검무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환궁 전에 분위기를 바꾸어야 할 것 같은데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초조해야 하는 건 내가 아닌데…… 왜 거꾸로 된 거야.”

“마마를 기다리시는 거예요?”

노을이 조심스레 묻자 얼굴을 붉힌 검무가 발끈했다.

“누가 기다려. 이치를 기다리는 게다.”

“이치를 좋아하세요? 보통은 좋아하는 사람을 기다릴 때 초조해하던데.”

검무는 눈살만 찌푸릴 뿐 대꾸하지 않았다.

“소인은 마마가 오래오래 살았으면 좋겠어요.”

“복권을 시키라는 게냐!”

“아뇨…… 그냥 오래오래 사셨으면 해요.”

“그 말이 복권을 시키라는 게지.”

“아뇨, 그런 뜻이 아닙니다요.”

노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오래 사는 게 어떻게 복권이에요? 소인은 그저 마마께서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어요. 진심이에요.”

“그러니까 네 말은 오래오래 살게 하려면 복권을 시켜야 한다는 게 아니야.”

“아이참, 소인은 복권을 바라지 않아요. 그저 오래오래…….”

“말장난하자는 게야!”

검무가 윽박을 질렀다. 태의에 이어 노을까지 복권을 시키라는 말을 하지 않아 기분이 이상했던 검무는 인상에 힘을 줬다.

“오래오래 살길 바란다면 복권밖에 더 있느냐? 다시 황후전으로 돌아가야지 오래오래 사는 게지!”

“아닌데…… 폐하는 아무것도 모르시면서…… 화를 내시고…… 진짜 오래오래 사셨으면 하는 건데…….”

노을의 성격으로 미루어 짐작건대 복권을 시켜 달라고 엉길 법도 한데 자꾸 딴소리를 해 부아가 치밀었다.

“말을 하려면 분명하게 해야지, 그렇게 빙빙 돌리는 말하는 걸 제일 싫어하는 걸 알면…….”

“폐하, 마마께서 돌아오셨습니다!”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두 사람을 지켜보던 석삼이 큰소리로 고했다. 쿵! 가슴 안에서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소리를 냈다.

그는 궁문 쪽으로 몸을 돌렸다. 이치와 타래, 금란과 함께 이령이 걸어오고 있었다. 그는 씰룩거리는 입술을 손으로 문지르며 웃음기를 지웠다.

“오늘 밤에는 안 들어오나 싶었지.”

검무가 빈정거려도 이령은 어깨만 으쓱거렸다.

“구경해 보니 어떻던가?”

“뭐가요?”

“신이 나?”

“예, 구경거리가 많아서 좋았어요.”

“좋았겠군.”

“예, 좋았습니다.”

이령은 간단하게 대꾸하고는 제 처소로 향했다.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그로선 기운이 빠질 만한 반응이었다. 그는 그녀의 뒤를 빠른 걸음으로 따라 붙으며 말을 붙였다.

“눈에 가장 많이 뜨이던 게 무엇이든가?”

“사내요.”

이령이 무심하게 툭 뱉은 말에 검무가 두 눈을 부라렸다. 눈에서 불기둥이 치솟았다.

“사……내?”

“그럼 꽃과 나무라고 할까요? 멋진 사내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눈요기를 실컷 하고 왔지요.”

“눈요기로 성이 차나?”

검무는 어금니를 깨물었다. 그는 그녀의 어깨를 아프게 잡아 돌려세웠다.

“해 달라는 대로 해 주었더니 감히 엉뚱한 것을 눈에 담고 와?”

“눈요기만 하든 눈요기를 한 사내와 몽정을 하든 제 마음인데 폐하께서 왜 언짢아하세요?”

“망측한 소리를 입에 담으니까 언짢은 게지.”

“망측한 소리를 입에 담아요? 매일매일 망측한 것을 몸에 담는 건 뭔데요?”

이령은 주변을 둘러봤다. 두 사람이 말다툼을 할 것 같으니까 모두 도망치고 없었다. 그녀는 이때다 싶어 검무의 양물을 덥석 잡아 세게 쥐었다.

“뭐, 뭐 하는 게야.”

“아무도 없어요.”

“밀실도 아닌 밖에서 뭘 하는 게야.”

“멱살을 잡고 싶은데 손이 안 닿잖아요. 그러니 어째요? 잡을 수 있는 다른 걸 쥐어야지요.”

이령이 눈매를 사납게 치켜들었다.

“폐하, 왜 자꾸 질척거려요?”

“뭐?”

“제가 눈요기를 하든, 몽정을 하든 폐하와 무슨 상관이라고 망측하네 뭐하네…… 왜 그렇게 말이 많으시냐고요.”

이령이 짜증조로 조곤조곤 따지자 검무는 당황했다.

“제게 관심 있어요? 죽이고 싶었지만 이젠 살리고 싶어요? 살 정이 무섭긴 한가 봐요? 죽이려고 했던 마음까지 가시게 한 걸 보면요.”

“놓고 말해.”

검무는 입매를 비틀었다. 그의 시선은 이령이 꽉 잡은 가랑이에 머물러 있었다.

“왜요, 터질까 봐 겁나요?”

“겁대가리를 상실한 게지?”

“확 터트려서 딴 년들이 이 맛을 모르게 할까 봐.”

“자네!”

“사내구실을 못 하게 되면 제 마음 속 깊은 곳에 뭉친 분노와 배신감이 사라질까요?”

“자네가 왜 분노하나, 자네가 왜 배신감을 입에 올려.”

“왜요, 그러한 감정은 오롯이 폐하만이 느껴야 하는 감정인가요?”

이령은 손에 힘을 주며 은근히 압박했다. 그의 얼굴이 석양처럼 검붉게 익었다.

“자네…….”

검무는 눈에 힘을 줬지만 이령이 곧 푸시시 웃으며 손에 준 힘을 빼고 부드럽게 어루만지자 뺨을 붉혔다.

“여긴 참…… 짐승이네요. 그새 발딱 섰잖아요.”

“자네의 손이 닿으면 항상 섰어.”

“단순한 분.”

“단순한 걸 알면 자꾸…… 건드리지 말지?”

“이미 건드렸으니 어째요? 이걸 잠재우려면 스스로 빼시든…… 제 가랑이를 벌리셔야 하는데…….”

이령이 약을 올리듯 속삭이자 검무의 콧바람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자네 참…… 미치게 해.”

검무는 제 양물을 쥔 이령의 손을 부드럽게 감싸며 물었다.

“자네 때문에 복잡해.”

“당연히 복잡하겠지요, 살을 섞을 때마다 폐하께선 어쩔 줄 몰라하니까요.”

“그런 게 느껴지나?”

“우리의 살정을 무시하지 마셔요. 폐하의 숨소리만 들어도 생각을 읽을 수 있어요.”

“자네 참 얄미워.”

“폐하께 저는 밉고 징글징글하고 얄밉기만 하겠죠. 상관없어요.”

상관이 없다는 말에 검무는 울컥했다.

“왜 상관이 없어, 왜.”

“이룰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죠. 폐하와 백년해로하는 건 틀린 것 같아요.”

이령은 검무의 손을 가볍게 밀친 후 눈웃음을 지었다.

“땀을 많이 흘렸어요. 찝찝해서 씻고 싶…….”

“그때까진 못 기다려.”

검무는 이령의 어깨를 잡아 주변을 둘러봤다. 근처에 이령의 처소가 있었다.

“발딱 세웠으니 가라앉혀야겠네.”

4장. 죽어 가는 이령

검무가 씨물을 내보내겠다고 하면 거부할 수 없다. 이령은 토를 달거나 저항하지 않고 그에게 끌려갔다.

그는 그녀의 처소에 들어와 문을 닫았다. 금란이 들어올 리 없겠지만 그 누구의 방해도 받고 싶지 않았던 그는 문을 걸어 잠갔다. 그녀는 눈을 감고 그가 하는 양을 덤덤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자신을 멀뚱히 보고 있는 이령에게 걸어와 입술부터 겹쳤다. 오른팔을 벽에 붙인 그는 머리 위에서 찍어 누르는 분위기를 자아냈다.

고압적이긴 했으나 뜨거운 입바람을 거칠게 뿜어 대는 바람에 두려움은 없었다. 붉게 달궈진 얼굴에 금방 땀방울이 돋아났다.

왼손으로 그녀의 턱을 잡아 얼굴을 고정한 그는 부리부리하게 치켜뜬 눈에 힘을 줬다. 사냥감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것처럼 눈을 단 한 번도 깜빡이지 않았다.

입을 꽉 채운 혀가 이령의 입안을 구석구석 신나게 유영했다. 속도감 있게 팔랑거리다가 입천장을 눌렀다. 잇몸을 쓸다가 치아를 문지르고 입술을 빨아들이다가 내뱉었다.

입술이 맞붙었다가 떨어질 때마다 침 냄새가 달콤하게 풍겼다. 그는 그녀의 턱을 아프지 않게 깨물어 타액을 묻혔다. 턱을 잡고 있던 손이 목선을 따라 가슴골로 향했다.

그는 저고리 속에 손을 넣어 젖가슴을 움켜쥐었다. 커다란 젖가슴이 물컹거렸다. 한 손으로는 모두 쥘 수 없을 만한 크기에 자지가 꿈틀거렸다.

황제의 가랑이 사이에 똬리를 틀고 있던 용이 용맹하고 우렁찬 기운을 불끈거리며 고개를 쳐들었다. 그것은 바지 밖으로 툭 불거져 튀어나올 만큼 거대하고 힘이 넘쳤다.

그는 그녀의 옷을 가슴께에서 양 옆으로 벌렸다. 유방이 와르르 쏟아져 내렸다. 그는 두 손으로 젖가슴을 쓸어 올렸다.

탐스럽게 열린 앵두처럼 먹음직한 윤기를 좌르르 흘리며 고혹적인 자태를 뽐낸 유두에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쳤다. 갈비뼈를 뚫고 튀어오를 것처럼 쿵쾅거렸다.

검무는 숨을 한 움큼 들이마셨다. 하마터면 욕지거리가 튀어나올 뻔했다. 젖가슴에서 풍기는 땀 냄새가 유두 특유의 향과 섞여 심장을 움켜쥐었다.

“눈을 뜨고 날 봐.”

이령은 검무가 시키는 대로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색기가 도는 눈망울에 검무가 비쳤다. 그는 유두를 살짝 꼬집었다.

“아…….”

검무와 시선을 맞붙인 이령이 입술을 살짝 들어 신음을 토했다. 유두를 손가락으로 굴리며 목을 깨문 그가 살점을 세게 빨아 들였다.

새빨간 자국이 생겼다. 목과 어깨, 가슴엔 그가 만든 붉은 자국들이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가슴골로 내려온 입술이 유두를 집어삼켰다. 욕심을 내 턱을 크게 벌렸지만 다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젖가슴에 집착하듯 혀를 굴렸고 그녀는 벽에 뒤통수를 붙이며 신음했다.

간질간질한 감각이 젖꼭지를 딱딱하게 굳혔다. 벽을 짚은 손가락 끝에 힘이 들어갔다. 손톱을 세운 그녀가 발을 들어 그의 종아리를 문지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인내심이 바닥난 그가 그녀를 번쩍 들었다. 그녀는 깃털처럼 가벼웠다. 한번에 들어올린 그는 거추장스럽게 싸고 있던 옷을 신경질적으로 벗겼다. 눈 깜짝할 사이에 알몸이 된 그녀는 가슴을 들썩거렸다.

그녀의 허벅지를 제 어깨에 걸친 그는 한 번 더 벽에 밀어붙였다. 그리고 넓게 벌어진 음부에 얼굴을 파묻었다.

“아!”

이령이 움찔했다. 벼락을 맞은 것처럼 몸이 펄떡거렸다. 그가 음모 사이에 숨어 있던 돌기가 깨물렸다. 화들짝 놀란 그녀는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허리를 뒤로 젖혔다.

그는 그녀의 엉덩이를 한손으로 고정한 후 붉은빛이 강한 음핵과 갈라진 살점 사이에 숨어 투명한 점액질을 머금은 질 구멍을 찾았다. 손가락이 구멍을 찾았다.

“으읏…….”

그녀는 그의 머리를 감쌌다. 손가락 두 개가 동시에 들어와 질 내벽을 문지르며 들락날락하는 바람에 정신이 흐려지고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아…… 아…….”

“몸은 이렇게 달아올랐으면서 관심이 없다?”

“아무 말도 마요…….”

“입을 맞추는 것만으도 이렇게 젖었으면서.”

“수, 수다쟁이.”

“누구 때문인데.”

“흣!”

이령이 엉덩이 근육을 조였다. 그가 질 천장을 자극했다. 오돌토돌한 돌기가 볼록하게 솟은 곳을 짓궂을 만큼 문질렀더니 골반 뼈 주변이 콕콕 찔렀다.

손가락과 혀로 인해 예민해진 회음부가 물에 빠진 것처럼 흠뻑 젖어들었다. 그가 발라 놓은 침과 그녀가 흘리는 애액 때문이었다.

“흡!”

그가 뒤로 물러났다. 그 바람에 벽에 기대고 있었던 그녀의 중심이 앞으로 쏠렸다. 그는 그녀를 제 어깨에 걸친 후 침상으로 걸어갔다.

폭신폭신한 이불 위에 던지듯 내려놓은 그가 옷을 벗기 시작했다. 살이 꽉 찬 게처럼 탄탄한 어깨와 가슴, 복근이 드러났다.

6척이 넘는 장신이 바지를 벗었다. 말 허벅지처럼 두껍고 탄탄한 다리와 독이 바싹 오른 성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힘줄과 핏줄에 휘감긴 허벅지에 입에 침이 고였다. 이령은 넋을 놓은 시선으로 허벅지와 양물을 응시했다. 노골적인 시선엔 음란한 기운이 득시글거렸다.

검무가 귀두를 쥐었다. 붉게 타올랐다. 자세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번쩍 들게 했던 통증이 사라졌다. 신기하다고 해야 할지 그만큼 정욕이 강했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지체할 수 없었다.

터지기 직전인 성기를 이령에게 파묻고 혼신을 다해 흔들고 싶었다. 그는 그녀에게 명령했다.

“뒤돌아.”

이령은 그가 시키는 대로 고양이가 옹크린 자세를 했다. 다리를 벌린 채 엉덩이를 쳐들자 그가 벌려 놓은 구멍에서 애액이 주르륵 흘렀다.

이령은 이불을 꼭 쥐며 입술에 침을 발랐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자세였다. 이 자세로 양물을 받아들이면 배 속 깊이 꽂을 수 있었고 젖가슴이 바닥에 쓸렸다.

바닥을 스치는 유두, 뭉개지는 유방에서 피어나는 야릇한 기운을 즐겼던 그녀가 발가락을 오므렸다.

그녀가 이 자세를 좋아한다는 걸 잘 알았던 그가 손가락으로 회음부 전체를 쓸었다.

“아!”

검무가 공알을 눌렀다. 엉덩이가 들썩인다. 그녀는 그러모은 이불에 얼굴을 파묻으며 신음을 삼켰다.

검무가 나비의 날개처럼 벌어진 소음순 사이에 숨어 있던 살점을 간질이기 시작했다. 살살 어루만지며 열감을 키운 그가 엉덩이 계곡에 남근을 비볐다.

불기둥처럼 뜨거운 것이 음부와 항문을 비벼 대는 바람에 눈앞이 번쩍거렸다.

“넣어 줄까?”

검무가 물었다.

“좀 이따가…… 넣고 지금은 계속 만져 줘요.”

이령의 요구에 검무는 입꼬리를 올렸다. 이럴 땐 앙큼해서 귀엽다.

“이렇게?”

“응…… 으음…… 응.”

검무가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이는 바람에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발등으로 이불을 툭툭 두드리며 엉덩이를 높이 세웠다.

“아앙…….”

“이렇게 만져 주니 갈 것 같으냐?”

“하아, 아…… 아…….”

“손가락만으로 만족이 돼?”

“으음…… 음.”

“좋으냐?”

“항상…… 흐읏.”

이령은 솔직했다. 검무와는 속궁합이 잘 맞아 잠자리를 하는 게 즐거웠다. 강하면 강한 대로 부드러우면 부드러운 대로 서로에게 잘 맞추며 색을 탐했다.

“더 쑤셔 줘요.”

이령의 요구는 음탕했다. 그가 그녀를 놓을 수 없는 이유 중엔 바로 이런 점이 있었다. 욕망에 충실한 만큼 도발적이다.

“손가락보다 굵은 걸로 쑤실까?”

“응…….”

흐느낌이 섞인 대답에 검무는 활짝 웃었다. 그는 이 순간을 기다린 양 음경을 단박에 내리꽂았다. 백발백중의 명중률을 보이는 궁수처럼 정력적으로 구멍을 넓히며 자세를 취한 그가 상체를 숙였다.

자궁벽은 물론 배 속의 장기를 밀치며 몸을 가르는 힘에 그만 다리에 준 힘이 풀렸다. 개구리처럼 뻗어 버린 그녀는 부들부들 떨었다. 자신을 꽉 채운 맛에 돌아 버릴 지경이다.

하복부를 조이는 감각과 배꼽을 중심으로 퍼지는 열기, 찌릿한 젖꼭지, 춤을 추고 싶어하는 엉덩이.

이령은 발가락을 넓게 폈다가 오므리며 숨을 헐떡거렸다.

“좋아…….”

이령이 속삭였다.

“뜨거워서 좋고…… 간지러워서 좋아.”

검무가 알아듣지 못하도록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린 이령은 음부를 움찔거렸다. 그녀는 손을 배 아래로 가져가 돌기를 문질렀다.

“아항…… 아…….”

이령은 꿈틀거렸다. 자위를 하듯이 손가락으로 공알을 굴리며 손끝에서 느껴지는 딱딱한 감각에 깊이 빠져든다.

한 팔로 그녀를 가볍게 들어올린 그가 등에 입을 맞추며 서서히 움직였다.

남근이 흔들릴 때마다 음부를 때리는 고환의 자극이 극에 달했다. 머리카락이 쭈뼛거리거나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전율로 인해 눈앞이 흐려졌다.

머릿속이 안개로 가득 찬 것 같았다. 그가 젖가슴과 배를 교차하며 쓸어내리며 허리를 튕길 때마다 가랑이 사이에 불꽃이 피었다.

그녀는 엉덩이를 흔들었다. 물기가 가득하게 고인 구멍을 쑤셨다가 빠지는 힘에 정신이 아찔했다. 미세한 자극에도 방광이 진동하는 게 느껴졌다.

귀두가 질 구멍을 파고들 때, 검무가 엄지손가락으로 항문을 가볍게 문질렀다.

“흐으윽!”

음부와 항문을 에워싼 근육이 긴장해 움츠렸다. 그녀는 어깨를 바닥에 붙였다. 이불을 쥔 손에 힘줄이 볼록하게 솟아오를 만큼 힘이 들어갔다.

“아흡!”

검무가 엉덩이를 끌어당기며 신나게 박아 댔다. 얼굴을 덮은 땀방울을 비 오듯이 떨어트리며 자신을 태웠다.

그녀의 몸을 넘나드는 기운이 방광을 치댔다. 오줌이 마려웠다. 낯선 감각은 아니었지만 오늘은 유독 심했다.

“그, 그만…… 흣!”

이령이 허벅지를 오므리며 허리를 비틀자 검무가 흰 눈동자를 크게 벌렸다. 참을 수 없는 색광(色狂)에 빠져 버린 얼굴은 환희에 차 있었다.

그는 그녀를 억지로 돌려 눕힌 후 자신도 누웠다. 그리고 그녀를 자신의 배 위에 앉힌 후 양손을 꽉 잡았다.

황홀경의 문턱에 오른 이령이 신음했다. 어깨에 턱을 문지르며 허리를 돌렸다. 꽃잎처럼 벌어진 소음순이 음낭을 문질렀다.

음모가 쓸리는 소리가 거칠다. 그녀가 교태를 부리듯 허리를 흔들며 얼굴을 붉히자 홀린 듯이 바라보고 있던 그가 상체를 일으켰다.

인내심이 바닥난 듯 참을 수 없다는 표정이던 그가 그녀의 입술을 부드럽게 깨물었다. 침 섞이는 소리가 질척거린다. 그는 혀를 할짝거리며 귓불을 희롱했다.

“읏!”

부풀어진 유두를 꼬집은 그가 혀를 댔다.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다. 그녀는 두 손으로 입을 꾹 눌렀다. 몸이 움찔거렸다.

그가 엉덩이를 가볍게 감쌌다. 힘을 줘 밑으로 내리자 그녀가 부들부들 떨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엉덩이 계곡을 쓸어내렸다.

“아앙…….”

뺨을 붉힌 이령은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가 입술을 겹쳤다.

“이름을 불러줘.”

검무가 속삭였다.

“싫어요…….”

“예전처럼 불러.”

“싫……어.”

“정이 떨어져서 싫은 겐가?”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게 될까 봐…… 그래서 싫어요.”

이령은 흐트러지는 숨소리만큼 절실한 표정이었다.

“네 꿈이 무언데.”

“말하지 않을 거예요.”

“말해.”

“싫어요.”

이령은 고집을 부렸다. 여인이 품을 수 있는 꿈이라는 게 뻔할 텐데 뭘 묻느냐고 퉁명스럽게 대꾸할 법도 했지만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말해, 네 꿈…….”

“제 꿈에 페하는 없어요. 그러니까 묻지 마요.”

이령은 거짓말을 했다. 검무를 닮은 아이들을 많이 낳아 하나씩 기르는 재미로 사는 게 꿈이었지만 이룰 수 없다.

검무의 이름을 부르게 되면 언젠가는 그런 꿈을 이룰 수 있으리란 착각에 빠질 것 같아 두렵다.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는 건 하고 싶지 않았다.

“날 닮은 아이를 낳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면 네 소원은 이루어졌을걸.”

검무는 인상을 구겼다.

“폐하…….”

“왜.”

“폐하를 닮은 아이는 다른 여인이 낳아 줄 거예요.”

이령은 눈을 감았다. 눈물이 나려고 한다. 그녀는 그의 목에 팔을 감았다. 목이 굵고 어깨가 넓은 지아비와 이별할 날이 가까워온다.

단꿈을 꾸는 게 사치일 만큼 무정해야 한다. 무정한 이별만이 고통을 줄일 유일한 수단이다.

“히잇!”

이령이 숨을 들이마셨다. 검무가 공알을 꼬집었다. 듣고 싶은 얘기를 해 주지 않으니 화가 난 모양이다. 못돼먹은 손가락이 공알을 터트릴 기세로 연거푸 꼬집었다.

“아, 하, 하지…… 앗!”

이령은 검무의 손을 밀쳤지만 헛된 저항이었다. 그는 힘으로 밀어붙였고 그녀는 허벅지를 달달 떨었다.

“아, 안 돼…….”

이령은 고개를 뒤로 젖혔다. 눈앞이 번쩍거렸다.

“나와요, 안 돼…… 아…… 아…….”

이령이 괴로워하자 검무가 허리를 안아 올렸다. 커다란 걸 품고 있던 질 구멍이 텅 비었다. 스산한 기운이 닿을 즈음 그가 그녀를 자신의 허벅지에 올린 후 손가락으로 요도구를 비벼댔다.

“폐하아…….”

“곧 기분 좋아질 게다.”

“싫어요, 이런 거 정말…… 흐흡!”

“넌 항상 반대로 말하지. 싫다면서 그 누구보다 즐겼다는 걸 모를 것 같으냐?”

“아하, 아!”

“곧 시원해질 터.”

“읍!”

손을 빠르게 터는 걸 반복할 때 요도구가 뻐끔거렸다.

“아!”

움찔거리던 이령이 배를 들어올렸다. 허벅지를 오므리며 팔과 다리를 바동거렸지만 검무는 악착같았다.

잠시 후 그의 노력이 통했다.

이령이 황금빛 물줄기를 높이 쏘아 올렸다. 폭포수처럼 힘차게 솟구친 오줌이 특유의 향을 풍기며 사방으로 튀었다. 그리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기력을 빼앗긴 충분한 양이었다.

봄바람에 흔들리던 꽃잎이 맥없이 떨어지듯 검무의 품에 쓰러진 이령이 거친 숨을 토했다.

“벌써 가 버린 건 아니겠지?”

검무가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난 아직 자네에게 씨물을 붓지 않았어.”

축 늘어져 있던 이령이 검무를 바라봤다. 그녀는 몽롱해지는 의식을 놓치지 않으려고 미간을 찌푸렸다. 흐트러진 초점이 그의 얼굴을 더듬었다.

그녀는 그의 뺨을 손으로 감싸며 나직한 음성으로 속삭였다.

“잔뜩 부어 주세요, 그것이…… 폐하께서 하실 일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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