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den track 2. 리더의 위장을 아프게 하는 것들
장범수는, 밴드에서 기타 치고 노래하는 녀석들이자 한집에서 함께 사는 정도가 아닌 놈들에게 라이브 방송을 금지한 바 있었다. 지 애인밖에 모르는 팔불출 자식과 또라이 중에 상또라이 녀석이 함께하는 라이브 방송을 함부로 수락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놈 둘이 생방송을 한다면 예상치 못한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사태란 어쩌면, 가요계를 벌컥 뒤집어 놓을 그런 일이 될지도 몰랐다.
그러나 팬들은 섭섭해했다. 다른 연예인들은 거의 매일 밤 ‘라방’을 한다는데, 허구한 날 라방을 하는 통에 팬들이 수면 부족에 시달린다는데, 우리의 아티스트님들은 대체 왜 하질 않느냐고 아우성이었다. 멤버 두 명이 한집에 산다는 환상적인 조건하에 있으면 라이브 방송은 필수 항목 아니겠느냐면서, 우리도 수면 부족에 시달리고 싶다면서, 잘 먹고 너무 잘 자니까 살만 찐다면서, 간절한 바람을 담아 장범수를 조르고 또 졸랐다.
마음 약한 장범수는 결국, 절대로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는 것과, 침실이 아니라 스튜디오를 배경으로 한다는 조건을 걸고 여민찬과 제준희의 라이브 방송을 승인했다.
그리고 예고했던 방송 당일.
공식 계정으로 라이브 방송에 접속한 여민찬의 얼굴이 화면 한가득 나오는지라, 팬들은 반갑고 기쁜 반면에 놀라서 기겁을 해야 했다.
턱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각도에서조차 잘생긴 바람에 팬들을 혼란스럽게 만든 남자는, 핸드폰을 세팅하고 각도를 조정하고 있었다. 라이브 채팅창의 팬들은, 이런 각도에서조차도 굴욕이 없다니 놀랍다고 혀를 내두르는 한편으론 얼굴 그렇게 막 쓸 거면 나눔해 달라고 성화였다.
잘생긴 얼굴 막 쓰고 있는 남자가 자신의 얼굴을 반쯤 치워서 뒤쪽을 보여 주었는데 키보드 뒤에 제준희가 앉아있었다. 제준희가 중앙에 오도록 하려는 모양으로 뒤쪽을 힐끔거리면서 핸드폰 각도를 맞추는 동안, 팬들은 이 사람들 또 위아래 한 세트인 옷 나누어 입었다면서, 다 내려놓은 느낌의 한숨들을 쉬었다.
세팅을 마치고 일어선 여민찬이 키보드 옆으로 가서 앉았고, 바닥에 내려놓았던 어쿠스틱 기타를 들었다. 그러자 팬들은 돌잔치에서 돈을 잡은 아기의 엄마들처럼 좋아했다. 주로 일렉 기타를 치는 남자가 종종 어쿠스틱 기타를 연주하고 거기에 맞추어 제준희가 노래를 부를 때의 감성 충만한 분위기를 팬들은 무척 좋아했다.
기타를 끌어안은 여민찬이 키보드 앞의 제준희에게 귓속말을 했다. 그러자 픽 웃은 제준희도 여민찬의 귀에 대고 귓속말을 했다.
그즈음 채팅창엔 물음표가 한가득 찍히고 있었다. 지금 뭐하는 건데? 우리도 좀 알면 안 돼? 왜 비밀 얘기 하는데? 지금 우리 흉보는 거야? 하면서 난리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둘이서 서로의 귀에 대고 숙덕거리고들 있었는데, 여민찬이 말해야 할 순서에 못 한 말이 생각난 제준희가 귀가 아니라 입술을 들이대는 바람에 입술과 귀가 아니라 입술과 입술끼리 만나는 상황이 벌어졌다.
흠칫 놀란 여민찬과 제준희가 동시에 고개를 물리면서 가까스로 입맞춤 위기의 상황을 모면할 수 있었다. 하마터면 생방송으로 뽀뽀해버릴 뻔했던 상황이 웃겼던 두 사람이 킬킬대고 있는 와중에, 채팅창에서는 아쉬움의 탄식 소리가 자자했다. 남북 정상회담이 결렬되어도 이보단 덜 아쉽겠다고들 했다.
그러고들 있는데 여민찬이 스케치북을 들어 보였다.
‘범수 형이 말하지 말랬어요.’
또다시 물음표가 난무했다. 음소거를 요청했다는 장범수에게 그 이유를 묻는 글들이, 이 정도면 개틀링 머신 건 연사보다 빠른 것 아닌가 싶은 속도로 올라왔다.
그중에는, 아마도 범수 형이 생방송 사고를 우려해서 말 너무 많이 하지 말라고 했는데 장난꾸러기들이 장난치는 것일 거라고, 신 내린 점쟁이 같은 글들도 간간이 섞여서 올라왔다.
팬들의 추측에 대해 그렇다 아니다 말이 없는 여민찬이 스케치북을 한 장 넘겼다.
‘그 대신 준희가 노래를 불러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또 한 장을 넘겼다.
‘Run to you’3)
그러자 채팅창에선 혹시 바운스 바운스 댄스를 출 거냐면서, 만약 춘다면 누가 출 거냐며 또 난리였다.
채팅창에 올라오는 글을 읽던 여민찬이 흥, 하고 웃은 후에 준희의 귀에 대고 또 소곤거렸다. 제준희는 킥킥 웃었고, 팬들은 우리도 같이 얘기하자고 아우성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여민찬은 스케치북을 던져버렸다.
채팅창에선 터프하다고, 시크하다고, 쿨하다고, 너무 쿨해서 춥다고, 라방하면서 ‘추리닝’ 입고 나왔을 때부터 이미 쿨내가 진동했었다고 떠들고 있었다.
그런데 탁! 하고 스케치북 떨어지는 소리가 아마도 신호였던 모양이었다. 건반 위로 손을 올린 준희가 갑자기 연주를 시작했다.
예고도 하지 않고 시작된 연주에 당황한 팬들은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다면서 우왕좌왕하다가 가까스로 진정을 하고 감상 모드로 들어갔다.
준희는 그다지 기교가 필요하지 않은 단순한 연주를 하고 있었는데, 채팅창에선 준짜르트다, 준토벤이다 하며 칭송하고들 있었다. 과장이 꽤 섞인 드립들 사이로, 준희의 연주는 이상하게 뭉클하다고, 듣고 있으면 코끝이 찡하다는 진지한 소감들도 있었다.
두 마디 짧은 전주 뒤에 곧바로 시작되는 곡이었다. 평소 버릇대로 마이크에 입술을 붙인 준희가 지그시 눈을 감았다.
[With you-]
특유의 허스키한 미성으로 잔잔하게 첫 소절을 부르자, 채팅창의 팬들은 정말 소름 돋게 좋은 목소리라고, 고막이 녹아내리는 것 같다고, 목소리가 마치 벌꿀 카스텔라 같다고 하면서 음색을 칭찬했다.
당신과 함께하면 모든 일이 쉬워 보여요. 당신과 함께 있으면 내 심장은 제대로 뛰고, 당신과 함께 있으면 그제야 쉴 곳을 찾은 것 같아요.
준희가 그런 가사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끌어안은 기타의 바디 위에 양팔을 올리고 있는 여민찬은 입가에 미소를 걸고서 준희를 바라보고 있었다.
팬들은 여민찬 눈에서 올리고당 떨어진다고, 저 정도 찐득함이면 꿀도 아니고 조청이라고, 준희 목소리도 달아 죽겠는데 여민찬 눈빛 때문에 공복에 고혈당 쇼크가 오겠다고들 했다.
첫 소절을 준희 혼자 부르도록 한 후, 내내 준희만 보고 있었던 민찬이 드디어 기타를 제대로 잡았다. 팬들은 지금 막 여민찬 통장에 입금이 되었나보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첫 소절의 멜로디가 반복되는 두 번째 소절에서는 힘을 빼고 부드럽게 스트로크를 하는 기타 반주가 합류했다. 스트로크 전후로 기타의 바디를 두드려 퍼커션 소리까지 넣는 고난도의 연주였다. 하지만 여민찬은 제 손이나 기타의 지판이 아니라 계속해서 준희만 보고 있었다.
팬들은 준희 옆통수 따갑겠다고, 저러다 준희 옆통수에 빵꾸 나겠다고, 준희가 만약 팔자에 없는 탈모라도 온다면 그건 다 여민찬 탓이라고, 그런 걱정을 했다.
그리고 이어진 가사는, 내가 망가지고 지쳐있을 때 당신은 빗속에서 천사처럼 나타났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그런 메시지가 담긴 노래를 부르는 중에 살며시 눈을 뜬 준희의 초록색 눈동자가 빙그르 움직여 기타 소리가 나는 쪽을 향했다가, 다시 정면으로 빙그르 돌아왔다. 씩, 가볍게 미소를 지은 준희는 다시 눈을 감았다.
두 사람의 미세한 표정 변화를 놓치지 않고자 눈에 힘을 빡 주고 있었던 채팅창의 팬들은 들썩들썩했다. 지금 준희가 여민찬 보지 않았냐고, 저 눈빛과 저 웃음의 의미는 대체 뭐냐고, 빗속의 천사는 역시 여민찬이었던 거냐고, 범수형이 말하지 말랬다고 해서 지금 노래로 고백하는 거냐고, 하면서 말이다.
그러는 중에 노래는 코러스로 넘어갔다.
나는 당신에게 달려가고 있어요. 우리가 함께 했던 모든 밤들을 지나, 당신에게 달려가고 있어요.
속삭이듯이 부르던 첫 소절이나 감미롭고 부드럽게 부르던 중반과는 달리 한결 힘이 실린 목소리였다. 여민찬의 기타 연주 또한 물 흐르듯이 치던 다운 스트로크에서 칼립소로 바뀌었다. 그리고 여민찬은 빨라진 템포로 연주를 하는 중에 퍼커션까지 커버하고 있었다. 팔목 아래로 바디를 두드려 킥 소리를 대신하고, 손바닥으로 사이드를 두드려 스네어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팬들은, 여민찬은 어떻게 손을 저렇게 빨리 움직일 수 있는 거냐고, 손이 안 보인다고, 나는 여민찬 손이 없어진 줄 알았다고, 하면서 신기해했다.
사랑하는 이를 향해 달려가는 남자의 벅찬 가슴이 고스란히 느껴졌던 1절이 끝나고 이제, 기타 솔로 브릿지가 시작되었다. 이제껏 묵묵히 뒤를 받치는 역할만 했던 기타 소리가 피치를 올렸다. 쇠줄 특유의 따뜻하고 감미로운 소리였다. 기술 좋은 비브라토 덕분에 고막이 아니라 저 아래 심장까지 울리게 만드는, 그런 연주였다. 눈을 감고, 기타 소리를 느끼며 몸을 좌우로 흔들던 준희가 눈을 뜨고 돌아보았다.
준희가 돌아본 그 순간에도 계속해서 준희를 보고 있었던 민찬이 입가를 끌어올리고 더욱 진하게 웃었다. 그리고 준희는, 내내 자신을 향하고 있었을 시선과 미소를 느끼고 환하게 마주 웃어 주었다.
잠깐의 눈 맞춤이었다.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웃은 순간은 매우 짧았다. 하지만 그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은 팬들은, 연주하면서 눈 맞추고 웃는 거 너무 예쁘다고, 저 둘이 눈 맞추고 웃는데 왜 내가 행복하냐고, 감탄의 말을 연발했다.
노래는 이제 클라이맥스를 지나 마지막 소절에 이르렀다. 지난 몇 년간 서로를 향해 쉼 없이 달렸던 것처럼 힘을 실어 연주하고 노래하던 두 사람은, 배와 손에서 힘을 빼고 또 속도를 늦추었다. 풍파가 지난 후에 찾아오는 맑은 날씨처럼 고요해진 어조로 팬들을 향해 물었다.
당신은 아나요? 두 개의 심장이 하나인 것처럼 뛸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에요.
이미 오래전에 하나의 마음으로 합쳐진 바 있는 두 사람은, 서로 깊이 사랑하고 있음을 팬들에게 고백했다. 팬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모르겠지만, 두 사람 나름대로는 솔직한 마음을 노래로 전한 진심 어린 고백이었다.
말 많이 하지 말랬다고 해서 아예 말을 안 하면서 짓궂게 굴던 두 사람은 지금, 노래를 통해서 자신들의 마음을 보여 주고 있었다. 변함없이 늘 같은 자리에 있어 주면서 자신들의 노래와 연주를 들어 주는 고마운 팬들에게만큼은 진실을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진정성 있는 노래와 또 연주로 가슴속의 진실을 전했다.
준희의 노래도 끝났고, 건반과 기타 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깊은 여운을 남긴 마지막 반주까지 모두 끝났다.
팬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온갖 짤과 이모티콘을 동원하여 박수를 보냈다. 감수성 풍부한 팬들은 수건 물고 줄줄 울고 있는 그림이나 이모티콘을 연달아 올렸다. 슬픈 노래도 아닌데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고, 준희의 노래와 여민찬의 기타가 만나면 속에 있는 어딘가가 자꾸 건드려진다고, 가슴이 뭉클해서 눈물이 난다고들 했다. 두 사람의 관계가 친구이건, 가족이건, 연인이건, 그런 것 관계없이 앞으로 계속 응원할 것이라고 했다.
그랬다는 거지, 이런 글들이 두 사람에게 온전히 전달된 것은 아니었다. KTX 타고 가면서 보는 바깥 풍경처럼 빠르게 휙휙 올라가 버리는 글을 보며 헛웃음을 터트린 민찬이 또 준희에게 귀엣말을 했다.
팬들은 우리도 좀 같이 알자고 아우성을 하긴 했지만, 두 사람이 대강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것 같긴 했다. 동시 접속자의 수와 채팅창의 글 올라가는 속도를 볼 때, 너무 빠르게 올라가는 글들을 도저히 읽을 수가 없다는, 그런 말을 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팬들은 멈출 수가 없었다. 계속해서 감사의 말과 소감의 글을 올렸다.
그러다 누군가가 하트를 날렸고, 어느 순간부터 단합을 시작한 팬들이 이제는 동시에 하트를 올리고 있었다. 연달아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하트들이 합쳐지고 겹쳐져서 어느새 진한 하트를 그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