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낙과-76화 (76/77)

76화

“아니…….”

정해준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라는 건 김규환이 더 잘 알 테다. 비밀로 해 달라고 했던 건, 티끌이 아무리 하찮아도 거슬리는 건 거슬리는 거니까. 나는 그냥 정해준이 신경 쓰는 게 싫었을 뿐인데.

이런 당연한 걸 일일이 설명해야 하나? 한숨부터 나와 이해를 구하는 건 일찌감치 포기했다. 동시에 얄궂은 감정도 들었다. 정해준이 대놓고 질투하는 게 은근히 흐뭇해서는…….

어쭈. 어이없다는 듯 혀를 찬 정해준이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따졌다.

“웃어?”

배시시 흘린 웃음에 결국 속마음을 들키고 말았다.

“응.”

“으응?”

“좋아서. 그냥, 다 좋아서.”

김규환의 음침한 시선 같은 건 무시하고 아예 보란 듯 손을 잡고 천천히 걸었다. 정해준으로 머리고 가슴이고 온통 꽉 차서 그런 데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아름 씨가 그러는데 죽기 전에 이거 안 했으면 정말 후회되겠다 싶은 일을 찾아보래.”

“좋은 조언이네.”

“응. 아름 씨 대학 동기가 늦깎이 수험생으로 다시 의대 갔는데 되게 좋아 보이더라. 힘에 부치긴 하겠지만.”

“너도 도전해 보지 그래.”

대수롭지 않게 툭 던졌지만, 내 반응을 기민하게 살피는 게 느껴졌다. 다른 사람의 도전은 마냥 멋있기만 한데, 막상 내가 그 길을 걷는다 생각하니 조심스럽다.

“그건……, 조금 더 생각해 보고.”

“그래. 천천히 생각해도 돼. 언제든 늦지 않았으니까.”

“고마워.”

늦지 않았다는 것만큼 적절한 위로도 없을 거라 생각하며, 다소 무거워진 분위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화제를 돌렸다.

“참, 내가 오늘 밥 산다니까 아름 씨가 뭐라는지 알아? 이카래.”

“이카?”

“응. 이사님 카드. 너무 웃기지.”

신나서 재잘대는 나를 물끄러미 보던 정해준이 짚었다.

“좋았나 보네.”

“어? 응.”

초등학교 때는 아빠의 재혼과 이사 때문에, 중, 고등학교 때는 의도적으로 내가 멀리하면서, 대학교 1, 2학년 때는 정해준과 붙어 지내느라, 복학했을 때는 미혼모라는 소문이 싹 돌아서 누군가와 친해질 기회가 별로 없었다. 사실상 첫 친구나 다름없다는 말에 정해준이 볼멘 소릴 했다.

“나는? 내가 있잖아.”

“어……, 여자 중에서.”

정정하다가 예전, 우리가 짝꿍일 때 정해준이 화장실도 혼자 다닌다고 놀렸던 기억이 났다. 너도 화장실은 혼자 다니지 않냐고 받아쳤던가. 추억에 잠겨 부러 새침을 떨었다.

“넌 화장실도 같이 못 가 주잖아.”

“못 간 게 아니라 안 간 건데.”

“어…….”

순전히 농담이었는데 음험한 속셈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정해준의 미소에 아차 싶었다. 지금도 샤워할 때마다 같이 하지 못해 안달인데 이런 실수를 저지르다니.

“앞으론 같이 가 줄게. 우리 해원이 그동안 혼자 화장실 다니느라 외로웠어요?”

한술 더 뜨는 정해준의 능청에 말문이 막혀 아연하게 눈만 깜박였다.

아니나 다를까. 밤새 시달릴 것만 같은 직감에 나란히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급히 화장실로 대피하는 내 뒤로 정해준이 바짝 따라붙었다.

“나, 나 진짜 급한데.”

이런 말까지 하게 되다니. 창피함을 무릅쓰고 밀어냈지만 정해준은 꿈쩍도 않았다.

“어. 나도 급해.”

급하다면서 표정은 여유만만이다. 성나서 잔뜩 부푼 앞섶을 보면 또 아예 없는 말 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 그럼 너 먼저, 읏, 하읍!”

갈급한 입맞춤을 시작으로 불쑥 침범한 혀가 고일 새도 없이 타액을 끌어갔다. 혀뿌리까지 거칠게 파고들면서도 안쪽을 쓸어 올리는 혀끝은 부드러워서 사르르 눈이 감겼다. 좋아. 채 입 밖에 내지 못한 말이 신음처럼 울렸다.

“으음…….”

내 귀에도 달게만 들리는 앓는 소리에 셔츠 속으로 정해준의 큼직한 손이 바로 난입해 브래지어를 잡아 내렸다. 급하게 움켜쥐는 손길이 우악스러운데도 싫지 않았다. 자극적으로 유두를 빙빙 돌리는 것보다 가슴 전체를 덮고 주무르는 편을 훨씬 좋아해서.

“하아…….”

한숨처럼 나른하게 흘린 신음에 정해준의 손이 방향을 바꿔 바지 속으로 향했다. 그제야 마냥 야릇한 흥분에 취해 있을 때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거기는, 안, 앗……!”

이미 촉촉하게 젖어 있던 음순 사이로 길쭉한 손가락이 매끄럽게 진입했다. 샘을 퍼내듯 구부러진 손가락이 입구를 들고나는 움직임에 찔꺽찔꺽 음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달가운 반응에 정해준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 바람에 줄곧 빨리던 혀가 잇새에 짓눌렸다.

“아아……!”

고통스러워하는 반응에 얼른 고개를 떼면서도 아래는 괜찮지 않냐는 듯, 혀를 놓아준 정해준의 손가락이 더욱 요란하게 안을 쑤셔댔다. 나 또한 틈을 놓치지 않고 빌었다.

“씻고, 씻고 해…….”

“내가 깨끗하게 빨아 줄게.”

“그런, 싫, 더러워. 아, 안 돼……!”

간절한 애원에 나를 번쩍 안아 든 정해준이 욕실로 향했다. 이대로 욕조로 직행하나 싶어 안심했는데, 나를 내려놓은 곳은 화장대였다. 능숙하게 바지를 벗긴 정해준이 양 발목을 잡아 훤히 드러나게 벌렸다.

움직임을 포착한 등이 자동으로 번쩍 켜져 마치 스포트라이트처럼 아래를 훤히 비췄다. 음액으로 번들거리는 밑 부분을 발견하자마자 수치스러움에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이러지 마, 아, 해준아…….”

“응, 해원아. 나도 사랑해.”

중얼거리는 정해준의 두 눈이 홀린 듯 벌어진 구멍에 박혀 있었다. 시선만으로도 이미 꿰뚫린 거나 마찬가지였다. 점점 음부로 내려가는 정해준의 얼굴에 발버둥 쳤지만 고작 발목을 까딱거리는 게 움직일 수 있는 전부였다.

“궁금했어.”

“해준아, 제발.”

“네 일상 냄새, 무슨 맛일지.”

곧게 뻗은 코끝이 음핵을 지그시 누른다 싶더니 단단하게 일어선 혀가 끝내 갈라진 틈을 길게 핥아 올렸다. 큰 날개와 작은 날개 사이 주름의 얄팍한 살점도, 살뜰하게 먹혀들어 갔다. 순식간에 둔덕 전체를 탐욕스럽게 집어삼킨 정해준의 혀가 구멍 안을 비집고 들어서서 내벽을 달게 핥았다.

“흐윽……!”

눈앞이 하얗게 번지는 쾌감과 함께 파드득 몸을 떨었다. 정해준의 얼굴이 가랑이 사이에 딱 붙어서, 두툼한 혀가 성기처럼 드나들고 있다는 게 믿겨지지가 않았다. 혀와 속살의 마찰이 주는 쾌감보다 외설적인 장면에 더 흥분했다.

음모가 엉겨 붙은 콧대라든가, 규칙적으로 흔들리는 정해준의 고개라든가……. 내게 이런 면이 있으리라곤 미처 몰랐다.

“아, 아아……, 너무……!”

옴찔옴찔 조이는 내벽과 혀 말고 다른 걸 원한다고 빠르게 발름거리는 아랫입술의 움직임이 내게도 선연했다. 안쪽 깊숙한 곳부터 무언가가 주르륵 흐르는 느낌이 났다.

정해준이 사정할 때 이런 느낌일까. 말 그대로 쌀 것 같다는 직감이 들자마자 무의식적으로 허벅지를 오므렸으나 정해준의 손아귀에 꽉 붙잡힌 채였다.

“앗, 하흑……!”

무방비하게 벌어진 채로 말간 액을 쏘아냈다. 점도 낮은 투명한 체액이 왈칵 정해준의 얼굴을 적셨다.

“아, 진짜…….”

수치심에 눈물이 나려 했다. 아니, 이미 눈가는 발갛게 젖어 있었다. 너무 흥분한 나머지 사지를 발발 떨면서 울고 있는 나를 직시하며 정해준이 보란 듯 혀를 내밀어 입술에 묻은 음액을 핥았다.

“진해서 맛있네.”

“정말, 앞으론 이러지 마…….”

낯부끄러워 도저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푹 내리꽂힌 시선에 흠뻑 젖은 가랑이가 들어왔다. 위고 아래고 어디에도 눈 둘 데가 없어 그냥 두 눈을 꽉 감아 버렸다. 그러다 지퍼 내려가는 소리에 도로 눈을 떴다. 이대로 바로?

놀란 토끼 눈에 배꼽을 찌를 듯 약이 바짝 오른 성기가 들어왔다. 팽팽하게 부푼 끝을 혀가 넓혀 놓은 구멍에 맞대며 정해준이 험악하게 중얼거렸다.

“네가 아까 뽀뽀했을 때부터 이 상태였어.”

차에서 바로 덮치지 않은 게 용하다며 스스로를 칭찬한 정해준이 그대로 허리를 꾸욱 밀어 넣었다. 안을 짓뭉개며 끝없이 밀려드는 살 기둥에 몸서리치며 신음했다.

“하으윽!”

“아……. 좋다, 해원아.”

꿀이 뚝뚝 떨어질 것처럼 농밀한 음성이 귓가에 감겼다. 가감 없이 흘러드는 짙은 쾌감에 덩달아 흥분했다. 그대로 척척 허리를 올려붙이는 움직임에 나를 온전히 내맡겼다.

***

정해준이 전학 온 해의 소풍날과 꼭 같은 날씨였다. 같은 장소라 그렇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지만.

“무슨 생각해?”

“시험을 앞두고 소풍이라니.”

설렘이라곤 느껴지지 않는 무뚝뚝한 반응에 정해준이 가볍게 볼을 꼬집었다.

“우와, 그렇게 얘기해 주니까 진짜 기대되고 신난다.”

“미안.”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때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은데. 누구 머리에서 나온 생각인가 궁금해했었지.

이번엔 누구 머리에서 나온 생각인가 하면 내 머리에서 나온 생각이었다. 본격적으로 수험생활에 돌입하기 전에 승아랑 좋은 추억을 남겨야 하지 않겠냐는 정해준의 부추김이 좀 있었지만.

첫 모의고사고 얼마나 부족한지 알아보기 위해 치르는 시험이라 부담은 없었다. 그럼에도 굳이 시험이라는 단어를 꺼낸 건, 승아와의 마지막을 회피하려는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그동안은 하루에 한 시간이라도 만나 꼬박꼬박 함께 시간을 보냈었는데, 내일부터 승아는 완전히 이소원과 함께 살게 됐다.

걱정했던 것과 다르게 승아는 이소원과의 새로운 생활에 빠르게 적응했다. 각종 심리상담도 도움이 됐겠지만 무엇보다 김 여사님의 도움이 컸다. 낯선 집에 마음 붙일 수 있도록 세심하게 신경 써 주셨다 들었다. 덕분에 나를 ‘이모’라고 부르는 승아의 동그란 얼굴에선 구김살을 찾아볼 수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