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무슨 생각해.”
“음…….”
정말, 이건 무슨 감정일까. 그런 상상을 해서일까, 옆에 앉은 정해준과 제대로 눈도 못 마주치고 사춘기 소녀로 돌아간 것처럼 옷자락이나 비틀게 되니.
“그냥, 예전 생각나서.”
정해준에겐 들추기 싫은 기억일지 모르겠다. 그냥 두어도 빛바래기 마련인 추억, 내가 튀긴 구정물로 인해 온통 얼룩졌을 테니.
내 예상을 확인시켜 주듯 정해준은 듣기 싫다는 듯 더 묻지 않고 입술을 겹쳤다. 예고된 대가에 가만히 눈을 감고 응했다.
“…….”
가까이 다가온 숨결이 속눈썹을 간질였다. 평소답지 않게 뜸을 들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커다란 손이 뺨을 쥐고 당겼다. 촉촉하고 말캉한 입술이 아랫입술을 가볍게 물었다 놓았다. 첫 키스를 연상시키는 접촉에 기분이 묘해졌다.
이런 건……, 너무 이상한데.
혀를 부드럽게 감아 얽고, 달래듯 빨아들이고……, 시종 부드러운 입맞춤에 혼란스러웠다. 자꾸 눈물이 고이려 했다. 흉포하게 굴지 않기를 바랐는데, 막상 예전처럼 다정하게 다루니 오히려 견디기가 힘들었다.
“그만……!”
나도 모르게 밀쳐 냈으나, 단단한 어깨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윗도리 속으로 불쑥 쳐들어온 손이 말랑한 가슴을 쥐고 기분 좋게 주물렀다. 어떻게 하면 가슴을 만져 주는 것만으로도 흥분하는지, 정해준은 익히 알고 있었다. 장악하듯 가슴 전체를 손바닥으로 움키고 정점을 꼬집듯 비벼 주면 금세 다리 사이에 열기가 고인다는 것도.
전엔 곧잘 그렇게 만져 성감을 끌어내곤 했다. 바로 그 방식대로, 정해준이 가슴을 애무하고 있었다.
“흐으…….”
축축하게 젖은 신음에 가슴의 주도권은 입술로 넘어갔다. 손을 가랑이 사이로 내린 정해준이 젖먹이처럼 유륜 전체를 힘 있게 물어 쭉쭉 빨아들이며, 아래의 반응을 확인했다. 부드러운 살덩이를 강하게 빠느라 정해준의 볼이 홀쭉해질 때마다 우물거리는 입구가 칠칠치 못하게 음액을 울컥울컥 뱉어 냈다.
“피임약,”
말끝에 채 물음표가 찍히기 전에 잘게 도리질 쳤다.
“지금은, 아니.”
후…….
조바심 섞인 한숨과 함께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벌떡 일어나 앉은 정해준이 지갑을 뒤졌다. 툭 떨어진 콘돔을 집어 급하게 포장을 까느라 찌푸린 미간이 한창 몸이 달은 이십 대 초반 같아 설핏 웃음이 났다.
“뭘 웃어.”
퉁명스럽게 뱉은 정해준이 두툼한 성기 끝을 보란 듯 도톰한 둔덕에 대고 비벼 댔다. 뒤엉킨 음모 아래, 도독한 정점을 꾹꾹 누르며.
“앗, 으, 응!”
음핵이 짓이겨질 때마다 눈앞이 번쩍거렸다. 심술궂게 분풀이를 마친 정해준이 내 양 발목을 잡아 제 어깨에 걸치고 깊숙이 파고들었다. 몸이 반으로 접히며 달뜬 교성이 터져나갔다.
“아흐읏……!”
“후으…….”
끝까지 제대로 닿았나 가늠하듯 안을 쿵쿵 찧은 정해준이 느릿느릿 빠져나갔다가, 도로 퍽, 박혀 들었다. 성기가 빠져나갈 때마다 내벽 또한 미련을 떨며 뒤를 쫓았다. 빨갛게 딸려 나와선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다시 안으로 거세게 밀려들어 가길 반복했다.
몇 차례 지나지 않아서 배꼽 부근이 움찔움찔 수축했다. 쾌감의 전조에 기대 어린 떨림이 일었다.
“벌써 가려고?”
굵직한 저음이 탁하게 흐려져 있었다. 멍청하게 끄덕이자 헛웃음을 친 정해준이 상체를 세워 규칙적으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탁, 탁, 탁, 탁.
체액에 젖어 끈적거리는 음낭이 회음을 찰싹찰싹 차지게 때려 댔다. 끈끈하게 들러붙었다가 질척질척 떨어지며 음부를 뜨겁게 달궜다.
“아, 아아!”
시야가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본능적으로 팔을 허우적거렸다. 온기를 찾는 간절한 손짓에 상체를 굽힌 정해준이 순순히 붙잡혀 줬다. 목덜미를 그러안도록.
숨 막히도록 그러안자 아랫배가 빈틈없이 맞닿으며 뭉클한 가슴이 납작하게 짓눌렸다. 그마저도 좋았다.
어디고 짓쑤셔지고, 짓이겨졌으면. 그 상대가 정해준이라면 온몸, 남김없이 으깨어져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하여 급하게 짓쳐드는 혀를 달게 받아 삼켰다. 손가락 하나 들어갈 틈 없이 밀착한 채, 정해준이 박혀 있는 아래를 잘게 흔들었다.
“하읏, 응……!”
몸 안에서 무언가 터져나간 것 같았다. 충격에 바르르 몸을 떠는 동안, 정해준이 길게 정액을 뽑아냈다.
일부러 맞춘 걸까. 동시에 절정에 오른 게 너무 오랜만의 일이라 잠시 얼떨떨했다. 사뭇 달라진 분위기도. 차 안이나 이사실 책상 위에서 했던, 배설에 가까운 섹스와는 달랐다. 콕 집어 말할 순 없지만, 분명 교감이 있었다.
어리둥절하여 눈만 깜박이는 사이 다시 안쪽이 부풀었다. 엉덩이를 뒤로 물려 침대 가장자리를 향해 엉금엉금 기어나가자 쑤욱 뽑혀 나간 성기가 뒤에서 다시 박혀 들었다. 해소되지 않은 절정의 여운이 일시에 터져나가며 안을 강하게 죄었다.
“흣……!”
단단히 꿰놓은 아랫도리에 제게서 달아나는 건 용납하지 않겠다는 집요함이 묻어났다. 가쁜 숨을 겨우 다스렸을 때쯤, 여전히 아래를 깊숙이 박아둔 채 정해준이 귓가에 음울하게 속삭였다.
“미운 사람이 있어.”
“…….”
그게 누구인지는 너무 명백했다. 아까 듣지 못했던 답이기도 했다. 겨우 숨을 골랐다고 생각했는데, 가슴이 쿵쾅쿵쾅 걷잡을 수 없이 뛰었다. 갈비뼈가 뻐근하도록 아프게 조이는 속에 입술을 깨물었다.
“너무 미워서 차라리 죽어 없는 세상이었음 좋겠는데.”
“…….”
“그런 세상에선 나도 따라 죽고 싶을 땐 어떻게 해야 해.”
원망이 귀에 고였다. 묵직하여 좀처럼 흘려지지 않았다. 벌을 주듯 물렸다가 격렬히 처박히는 움직임에 신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
정해준이 음울한 속내를 내비친 이후, 우리 둘 사이에 확연한 변화가 있었다.
일단 아무 때나 불러내서 섹스를 요구하지 않았다. 그리고 만남의 장소는 대부분 우리 집이었다. 먼저 퇴근해 소파에 길게 누워 있는 정해준을 발견할 때도 잦았다.
김규환이라는 훌륭한 핑계가 있었지만, 정말 어디까지나 핑계라는 건 둘 다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었다.
관계 후에 주어지던 지폐 몇 장도 없어졌다. 대신 지갑에 정해준이 준 신용카드가 새로이 자리 잡았다.
“편하게 써.”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카드 한도를 들으며 그렇게도 한도를 늘려주는구나, 신기해했다. 물론 정해준이 준 카드를 쓰는 일은 없었다. 이따금 꺼내서 검은색 무광 카드의 부들부들한 표면을 만지작거리기는 했다.
그건 어떤 상징 같은 거였다. 정해준의 호의는 대가를 수반한 허상이니 지금의 달콤함에 마냥 젖지 말라는 경고.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볼썽사나운 꼴을 보인 날도 있었다. 시작은 뜬금없이 도착한 택배 때문이었다. 발신인이 명확치 않은 큼직한 박스 안에는 연령에 맞지도 않는 인형들과 크고 작은 사이즈의 옷들이 두서없이 담겨 있었다. 외에도 승아가 목도 못 가누는 아기일 때부터 모아 온 듯한 잡동사니들이 잔뜩 우겨져 있는 모습에 바로 이소원을 떠올렸다.
이소원이 대체 무슨 생각으로 보낸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보나 마나 취한 김에 자기연민에 젖어서 충동적으로 바리바리 싸 보냈겠지. 어쨌거나 내 입장에서는 아무짝에 쓸모없는 쓰레기였다.
“이딴 걸……!”
생각 없이 불쑥불쑥 남의 삶을 침범하는 건 이소원이나 김성철이나 두 남녀가 판박이다. 커다란 봉투를 가져와 마구잡이로 담아 넣자 제 몫임을 알아보고 반색하며 달려들었던 승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 버려? 승아 건데!”
“승아 거 아니야. 내려놔.”
숫제 쓰레기봉투에 매달려 흔들리는 승아를 억지로 떼어 놓았다. 몇 개는 최근에 산 듯한 것도 있었다. 승아도 충분히 갖고 놀 수 있는. 하지만 이소원이 멋대로 던져 놓은 연민의 투사물들이 집구석에 돌아다니는 꼴을 두고 볼 수는 없었다.
뭔데. 뭔데 이제 와서 엄마 노릇이라도 하려고? 아니면 이모 노릇? 웃기고 있네.
애가 아프다는데 회사에 전화 걸어서 병원비 떼먹으려 하냐고 난장을 쳐놓고, 밤낮없이 울어 대는 갓난아기 붙잡고 같이 우는 내게 할 말 못 할 말 가리지 않고 패악을 떨어 놓고. 애 키우는 유세 떨지 말라고 했던가, 계모티 내지 말라고 했던가. 하도 어처구니없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뒤죽박죽 두서없이 악담이 떠오르는 가운데 이소원 특유의 심술궂은 표정만이 선명했다.
“놓으라고!”
홧김에 쓰레기봉투를 확 잡아당기자 벌렁 나동그라진 승아가 귀가 찢어질 듯이 울어 댔다. 사정 봐주지 않고 울어 대는 어린아이의 울음이 신경을 날카롭게 깎아 세웠다. 꼭 귓전에서 사이렌이 울리는 것 같아 반사적으로 귀를 막았다.
아무리 울어도 제 뜻이 통하지 않자 승아가 빽! 소리 질렀다.
“엄마 미워! 나빠! 싫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