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내부를 가득 메운 성기가 버거워 새된 신음과 함께 숨이 멎은 채 그대로 절정에 올랐다. 정해준의 두툼한 분신을 뿌리 끝까지 물고 새하얗게 벌어진 가랑이가 파들파들 떨렸다. 쾌감이 너무 심해 왜 우는지도 모르고 눈물을 쏟았다.
“아…….”
내 몸인데도 적나라한 반응이 낯설어 상체를 지탱하던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 바람에 자세가 흔들리자 정해준이 싸늘하게 을러 댔다.
“자세 제대로 잡아. 너만 가면 끝이야?”
하는 수 없이 다시 책상을 짚어 허리를 바로 세웠다. 그러자 완전히 박혀 보이지 않는 거근과 맞닿아 뒤엉킨 서로의 치모가 남김없이 보였다. 가늘고 밝은 다갈색 음모와 짙고 억센 터럭을 푹 적시고 있는 애액이 너무 외설스러워 차라리 눈을 감고 싶었다. 이 사이에도 극치에 오른 쾌감을 털어 내지 못한 내벽은 단단한 살 기둥을 힘차게 쥐어 잡고 있었다.
보란 듯이, 정해준이 손가락 한 마디만큼 성기를 뽑아 여전히 성성한 상태를 확인시켜 주었다. 우뚝 꽂힌 붉은 살덩이가 홀로 절정에 올라 잘게 경련하는 허벅지와 대조를 이뤘다. 다시 남성을 푹 찔러 넣으며 정해준이 무심히 중얼거렸다.
“돈을 받아야 하는 건 나라니까.”
“아, 읏, 아아!”
한껏 예민해진 내벽을 울퉁불퉁한 휩쓸 때마다 비명과도 같은 신음이 흘렀다. 자극이 너무 심했다. 가려운 부위를 계속해서 긁으면 처음엔 시원하다가 나중에는 살갗이 충혈되고 쓰라린 것처럼 안쪽이 온통 홧홧했다. 와중에 배꼽 주변이 지잉, 길게 울리며 음부 전체가 감전된 것처럼 저릿저릿해졌다. 절정의 전조였다.
냉엄하게 내려다보는 정해준의 비웃음 섞인 눈초리조차 흥분을 가속했다. 계속 바라봐 주길 바랐다. 엉망으로 흐트러진 내 모습을. 창녀처럼 요분질을 해 대고 싶기도 했고, 굳게 다문 입술에 혀를 밀어 넣고 싶기도 했다. 충동이 만들어 낸 상상에 한껏 격앙된 찰나, 뜨뜻하고 말간 액이 깊이 감춰진 샘에서 분출됐다.
“무슨……. 아, 안 돼……! 하흣……!”
결국 눈앞이 하얗게 바랬다.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전율에 몸을 떨었다. 첫 번째 파고와는 감히 견줄 수 없는 높은 쾌감이 기분을 아득하게 끌어올렸다. 자의로 조절할 수 없는 경련이 전신을 뒤흔들었다.
요의와 비슷한 감각과 함께 왈칵 쏟아진 액이 허벅지를 질펀하게 적시고 일부는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그걸 자각하자 서서히 떨림이 잦아들었다. 엉엉 울고 싶은 기분에 휩싸인 순간, 추락은 예견됐다. 완전히 무너진 채 절정의 여운과 수치심에 젖어 흐느꼈다.
“못 말리겠네.”
한심한 꼬락서니를 내버려 두고 오금 뒤를 눌러 내 양다리를 벌린 정해준이 풀어 내지 못한 욕구를 위해 마저 허리를 움직였다. 질컥질컥, 흠뻑 젖은 음부를 중심으로 마찰음이 음란하게 울려 퍼졌다. 이따금 반사적으로 몸이 움찔거렸으나, 늘어져 있는 건 매한가지였다. 푹 무른 내부를 성의 없이 치대던 정해준이 짧은 감상평을 내놨다.
“이건 이것대로 맛있고.”
그러곤 으레 때가 되어 배설하는 양 느긋하게 사정했다. 양이 꽤 많았다. 채 콘돔에 담기지 못한 사출액이 비부를 비집고 알끈처럼 줄줄 흘러나왔다. 질척하게 젖은 엉덩이에 종잇장이 달라붙었다. 떼어 낼 때도 찌직, 민망한 소리를 내더니 흐늘거리며 찢어졌다. 확인하자 우리 팀에서 올려두었던 보고서였다.
“다시 복사해 올게.”
“그래 줄래?”
아직 음란한 살 내음이 떠도는 이사실에서 정해준만이 멀쩡했다. 이사실에 들어섰을 때와 달리 개운해 보이기도 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모니터를 응시하는 정해준 앞에서 돌돌 말린 채 발목에 걸려 있던 팬티를 어색하게 올려 입고 너덜거리는 스타킹을 수습했다. 딸깍, 딸깍, 클릭 소리만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섞여들었다.
축축하게 들러붙는 속옷에 당황했지만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찢어진 서류를 잡았을 때, 두툼한 봉투가 그 위로 툭 던져졌다. 이쪽을 보지도 않은 채, 정해준이 턱짓으로 봉투를 가리켰다.
“오늘은 저녁에 미팅이 잡혀서 못 데려다주겠다.”
“고마워.”
처음보다 확실히 액수가 늘었다. 단순히 성기를 애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섹스까지 마쳤으니까. 정해준의 말대로 몸값을 치른 셈이었다.
이 돈을 쓸 일은 아마도 평생 없을 테지만, 지금껏 그래 왔던 것처럼 짤막한 인사와 함께 순순히 받아 들자 그 모습을 정해준이 복잡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병원비 많이 들어?”
무슨 병원비? 잠깐 의아해하다가 손에 들린 두툼한 감촉을 상기하고, 이 대가가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떠올려 냈다.
“아직, 검사 결과 다 나와 봐야 알아.”
“……그래.”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걸까.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정해준이 이내 문을 눈짓했다. 이만 나가 보라는 뜻이었다. 눈짓 하나로 원래의 위치로 돌아간 사원으로서 이사를 향해 공손히 인사하고 문을 나섰다.
팀원들이 연수로 다 빠진 연구실은 썰렁했다. 여유롭게 짐을 챙겨 내려와 버스를 기다리는데 김규환이 옆에 와서 섰다. 나처럼 개인 사정으로 불참한 인원이 두엇 있다고는 들었는데 그게 김규환인 줄은 몰랐다.
“해원 씨, 집에 가세요?”
“네.”
밤샘이 잦은지 눈 밑이 거무죽죽했다. 며칠째 깎지 않은 수염이 지저분해 보인다고 생각하며 가볍게 눈인사를 나누고 버스가 몇 분 있다가 도착하는지 다시 한번 전광판을 확인했다.
“오늘은 혼자 가시네요.”
의미심장하게 들리는 질문이었다. 무슨 의도로 묻는 건지 알 수 없어 말을 아낀 채 바라보자 김규환도 시선을 받아치듯 빤히 쳐다보았다. 파충류처럼 번들거리는 눈에 기분이 나빠졌다.
“따로 할 말이라도 있으신가요?”
“아니요. 그냥, 이사님 차 타고 가는 걸 봐서요.”
마치 범죄를 목격했다는 투였다. 그게 무슨 권리라도 되는 것처럼 나를 취조하려 들었다.
“요즘 들어 이사님께 자주 불려가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예요?”
“이상하잖아요. 이해원 씨는 일개 사원일 뿐인데 높으신 분 사무실에 그렇게 드나들 일이 뭘까.”
잊을 만하면 선을 넘는 김규환을 참아 왔지만, 이번만큼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불쾌해졌다. 지난번 회식 때 나에게 관심 있다는 걸 드러낸 이후로 더 심해진 것 같았다. 부탁한 적도 없는 내 커피를 뽑아 온다든가, 자기가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한다는 듯이 다른 사람들에게 공공연히 내 스케줄을 묻고 다닌다든가.
“김규환 씨.”
한 톤 낮아진 목소리에 김규환이 얼른 꼬리를 사렸다.
“제가 너무 주제넘었나요? 그럴 의도는 아니었는데. 아, 저기 버스 오네요. 내일 봐요, 해원 씨.”
정말 피곤한 스타일이었다. 기회를 봐 가며 살살 긁다가 반응이 안 좋으면 조심하는 척했다가 또 기회를 노리는.
한편으론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정해준을 위해서라도. 만에 하나, 추문이라도 퍼지면 나도 나지만 직책이 직책인 만큼 정해준에게는 치명타가 될 수 있으니까.
***
그러니까 앞으로는 되도록 이사실에서의 만남을 피하고, 호의는 고맙지만 집에도 바래다줄 필요 없다는 거절은 순전히 정해준을 위한 것이었다.
“아무래도 보는 눈이 많으니까…….”
영 언짢아하는 기색에 자신 없이 이유를 덧붙였는데, 역시나 정해준의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그럼 어디서 하는데? 내 집?”
“아니. 그럴, 그럴 마음은 없어.”
황급히 손사래 쳤다. 정해준의 사적인 공간을 침범할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지난날, 정해준의 집에서 으레 내 집처럼 머물렀던 기억을 아프게 부정하며 어떤 수작이 아님을 밝혔다. 잠자리를 나누는 사이가 됐다고 해서 다시 우리 관계를 어떻게 해 보려는 건 아니라고.
딴엔 최선을 다해 해명했다고 생각했는데, 어째 보기 좋게 일그러진 정해준의 낯은 펴질 줄을 몰랐다. 벌레라도 씹은 것처럼 불쾌하게 미간을 구기고 있다가 짜증 섞인 한숨을 훅 쏟아 냈다.
“알았어. 만나는 건 내가 따로 연락할게, 그럼.”
“아, 응…….”
얼추 이야기는 마무리가 됐지만, 어쩐지 석연찮은 느낌이 들었다. 머뭇거리며 서 있자 날카롭게 머리카락을 쓸어 올린 정해준이 미간을 구겼다.
“뭐 더 할 얘기 있어?”
“집에서 결혼 서두르라고 한다고 들었어.”
망설이다가 꺼내놓고 나니 안 하느니만 못한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감히 그런 걸 물어볼 자격이 되나. 자동차 안에서, 이사실 책상 위에서, 정해준 말마따나 개처럼 흘레붙는 주제에. 그것도 돈을 받고.
새삼 스스로의 뻔뻔스러움에 치를 떨었지만, 쏟아진 물, 쏘아진 화살과 같은 말을 수습할 재주가 없었다. 반면 정해준의 얼굴엔 약간의 흥미가 어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