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남들은 어학연수 몇 개월만 다녀와도 곧잘 하는 회화를 이소원은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2년 가까운 기간이 어디로 증발했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마저도 중간에 그만두고 돌아왔으니 취업이고 뭐고 될 리가 만무했다.
그렇게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길 좋아하던 이소원은 누굴 만나기 쪽 팔린다는 이유로 집에 처박혀 지냈다. 그러면서 가끔 승아를 보고 싶어 했다. 나 몰래 어린이집을 기웃거리다 낯선 사람을 수상히 여긴 어린이집 선생님이 나에게 얘기해 들킨 적도 있었다.
무슨 짓이냐고, 한마디라도 할라치면 열 달 배가 터지도록 품어 밑이 찢어져 가며 낳은 아이라고, 제 목숨을 담보로 한 생명이라고, 피를 토할 듯이 소리치곤 했다. 기른 정이 낳은 정보다 무섭다는 건 새빨간 거짓이라고도 했다. 격한 감정이 극에 달하면 생판 남의 손에 크는 승아가 불쌍하다고 울었다.
실은 자기를 연민하는 거면서.
그렇게 애달파하면서 이제 제가 키우겠다는 말은 절대 꺼내지 않는 것만 봐도 그랬다. 알량한 모성을 핑계로, 이소원은 종종 술에 취한 밤 전화를 걸어 왔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지루한 하소연을 들으면서 나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냥 종료 버튼을 누르지 않고 이따금 흘러나오는 그 애의 흐느낌 소리를 들었다.
불행한 게 나뿐만은 아니구나. 동질감은 질 나쁜 만족감을 안겨 준다. 하지만 정말 전화를 끊지 않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너무, 외로웠다.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갓난쟁이와 하루 종일 있으면 정신이 어떻게 되어 버릴 것 같아서, 울음소리가 고막을 먹먹해지도록 울려서, 고충을 나눌 이 하나 없어서. 이제는 끝이라고, 다신 보지 말자고, 그 지긋지긋하던 이소원의 주정이라도 듣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만큼 외로워서.
뼈처럼 자리 잡은 고독이 나를 더욱 정해준에게 매달리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문득 어젯밤 일이 떠올랐다. 한밤에 불쑥 찾아온 정해준이 드라이브를 제안했고, 차는 5분도 채 달리지 않아서 근처 공터에 멈췄다. 늦은 밤이고 인적 드문 곳이지만 제 위로 오르라는 요구에 당황했다. 머뭇거리자 정해준은 불쾌한 내색을 감추지 않았다.
“왜.”
“아니, 조금 놀라서.”
소심하게 중얼거리다 덧붙였다.
“이런, 아무 데서나 하는 거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누구나 저열한 욕망은 있잖아.”
창녀로 전락한 공주 주제에 뭘 가리냐는 비난이 함축되어 있었다. 혀를 빌어 음성으로 빚어지지 않고 생략된 말이 귓가에 왕왕 울렸다.
사랑하는 여자한테는 차마 할 수 없는 짓거리, 나와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언제 누가 들어올지 모를 이사실이든, 사방이 뻥 뚫린 차 안이든.
가슴 한구석 어딘가가 짓이겨진 것 같았다. 모욕감에도 불구하고 선선히 운전석으로 올랐다. 부끄럽게도 몸이 달았다. 어리석게도, 정해준이 나를 찾은 게 기뻤다.
목적이 성욕 해소뿐이라 해도 나를 원하는 건 원하는 거니까, 그렇게 합리화했다.
“너 진짜 음란하구나.”
흠뻑 젖어 번들거리는 비부가 노란 가로등 불빛 아래 여실히 드러났다. 음액이 줄줄 흐르는 아래를 확인한 정해준이 혀를 차며 벨트를 풀었다. 그러는 정해준의 물건도 끝이 젖어 있긴 매한가지였다. 징그럽게 치솟은 모양새와 달리 인내심이 있다는 점만 나와 달랐다.
“하, 할게.”
허벅지에 걸린 바지 때문에 자세가 엉거주춤했다. 어설프게 허리를 굽히다가 운전대에 앉고 말았다. 엉덩이에 눌린 경적이 크게 울려 기겁하고 튀어 올랐다. 황급히 주변을 살피는 내 손을 끌어다 정해준이 제 것을 쥐게 했다.
“손을 써.”
한심하다는 투였다. 주위를 아랑곳하지도 않았다. 머쓱해져 한 손에 쥐기 힘든 걸 붙잡고 천천히 허리를 내렸다. 아래를 맞추기 위해 쥐고 있는 기둥을 살짝 틀자 나지막한 신음이 흘렀다.
문득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이 생각났다. 그 밤, 정해준을 유혹한답시고 대담하게 그 위로 올랐던 기억이.
그때도 손을 쓰지 않고 어림짐작으로 성기를 끼우려 하다가 한 소리 들었던 것 같은데. 나란 사람은 학습이 안 되나 보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 사정 같은 건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때나 지금이나 관계에 서툴고.
다른 점이 있다면, 그때는 정해준이 먼저 허리를 올려쳐 관계를 주도했다면 지금은 진득하게 기다리고 있다는 점이었다. 어떻게 하나 두고 보자는 듯.
이 또한 ‘돈값’에 해당될까.
미안하게도 채 벗지 못해 양다리를 조이고 있는 바지 때문에 또다시 정해준을 실망시키는 건 예정된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아…….”
꼿꼿이 선 기둥을 삼 분의 일쯤 물었는데, 무릎이 굽혀지지 않아 더 앉지 못했다. 미안하다고 중얼거리며 다시 옷을 벗으려 몸을 세우려 했는데 순식간에 자세가 뒤집혔다. 정해준의 밑에 깔려 허리가 완전히 반으로 접힌 채 굵은 흉기에 푹푹 처박혔다.
늦은 밤 돌발적인 만남은 차 안을 뿌옇게 메운 거친 호흡과 함께 끝이 났다.
정말 섹스만이 목적이었던 듯, 글러브박스를 열어 보란 말에 확인하니 적지 않은 액수가 담긴 흰색 봉투가 있었다. 수치심에 얼굴이 붉어지기도 했지만, 상비된 콘돔 박스에 뺨이 더 홧홧해졌다.
“아…….”
간밤의 일을 떠올리다가 허벅지를 꾹 누르는 느낌에 정신을 차렸다. 다른 생각에 잠겨 있는 내가 못마땅했는지 정해준이 주의를 끌 듯 막 스타킹에 손가락을 걸어 끌어 내리려 하고 있었다.
오늘도 정해준은 근무 시간에 거리낌 없이 나를 불러들였다.
어제와 혹 비슷한 일이 있을까 싶어 잘 입지 않는 스커트를 꺼내 입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게 정해준의 심기를 거스른 듯했다. 너와 자고 싶다는 노골적인 사인으로 보였을까.
어쩌면 오전에 뭔가 불쾌한 일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팬티 아래 스타킹을 쭉 잡아당기는 손길에 조급함이 묻어났다. 그대로 찢을 심산인 듯해 황급히 어깨를 밀었으나 바위처럼 단단하게 버티고 선 몸은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잠깐, 내가 벗을게.”
“급해.”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닌 것 같았다. 아무리 몸뿐인 관계라고 합의한 사이라지만, 갑자기 불러들여서 제대로 옷도 벗기지 않고 냅다 욕망을 꽂아 버리는 건. 무엇보다 수치스러웠다. 이렇게 함부로…….
창녀보다 더 질 나쁜 무언가가 된 것 같다고 생각한 순간, 가랑이 사이에서 투두둑, 질긴 나일론 조직이 뜯어지는 소리가 났다. 뚫어진 구멍 사이로 파고든 검지가 거침없이 팬티를 젖혔다. 삽입까지는 순식간이었다.
“흐, 읏!”
“치마, 자주 입어.”
“아응…….”
“편하고 좋네.”
제가 원피스를 선물해 놓고도 남들 앞에선 입지 말라고 으름장 놓던 정해준이 떠올랐다. 다른 놈들이 껄떡대는 게 싫다고 했던가. 가감 없이 소유욕을 드러내던 정해준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데. 서러운 기분이 일었지만, 빨갛게 오른 열에 감춰지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팔을 뒤로 뻗어 책상을 짚은 상체는 흐트러짐 없이 단정했다. 스커트 속에 넣어 입은 블라우스는 정해준이 가슴을 건드리지 않아 마지막으로 다듬은 매무새 그대로였다.
누가 당장 이사실로 들어오더라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정도로 멀쩡했다. 그런데 아래는……, 밑구멍만 동그랗게 내놓은 채 정해준을 받아 내는 상황에 씁쓸함도 잠시, 난잡한 모양새에 비정상적일 정도로 흥분했다.
“아, 아아…….”
어떡해.
황급히 입을 틀어막으면서도 더 큰 쾌감을 끌어 내려 흔들어 대는 엉덩이는 막지 못했다. 정해준이 거추장스러운 속옷과 찢어진 스타킹을 벗겨내는 동안에도 잠깐을 못 참고 안달을 떨었다. 다시 들락거리기 시작한 성기가 눈물 나게 반가웠다.
찰싹, 제법 큰 마찰음이 들려온 건 찰나였다. 귀를 의심하며 움찔 멈췄다. 와중에도 질벽은 사납게 수축하며 가만히 묻어둔 정해준의 성기를 씹어 댔다.
“왜…….”
멈췄을까. 안쪽이 온통 근질근질한데, 시원하게 긁어 줬으면. 초조한 기분에 휩싸여 안달 난 허리를 들썩였다. 입구가 제가 물고 있는 살덩이를 감질나게 오물거리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 모양을 내려다보던 정해준이 신랄하게 뇌까렸다.
“이 정도면 내가 돈을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어떻게 생각해? 조롱 같은 물음과 함께 정해준이 허리를 슬며시 뒤로 물렸다. 끄트머리만 아슬아슬 걸친 정도로. 묵직하던 아랫배가 가벼워지자 그 간극에 단박에 애가 달았다. 간헐적으로 허전한 내부를 콱 움켜 대는 내부의 움직임에 배꼽 아래가 고통스럽게 뒤틀렸다.
“넣, 넣어 줘.”
육욕을 채우고픈 열망이 수치심을 이겼다. 눈물이 찔끔 맺힌 채 빌었다. 하지만 정해준은 쉽게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다. 입구에서 깔짝거리기만 했다. 버섯의 갓 같은 귀두가 음순을 몰고 들어갔다가 발간 속살을 물고 나올 때마다 안쪽의 수축은 더욱 심해졌다.
급한 대로 다리로 정해준의 허리를 감아 내 쪽으로 당겨 봤으나 헛수고였다. 버티고 선 채로 정해준이 요구했다. 매달리는 내 꼴이 퍽 마음에 든 듯이.
“더 졸라 봐.”
“……넣.”
“그런 거 말고.”
이미 들은 말은 시시하다며 정해준이 다시 주문했다.
“넣고 어떻게 해 줬으면 좋겠는지, 음?”
“세게, 쑤셔……줘, 아흣!”
너무 천박했나. 눈치를 살핀 순간 정해준의 눈빛이 음험하게 빛났다. 단박에 짓쳐든 성기가 자궁 문을 찧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