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꿈같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하늘은 뒤덮인 비구름으로 온통 암울했다. 순탄치 않은 앞날을 예고하듯.
우리는 장마에 시작해서 장마에 끝나는구나.
제주를 떠날 때 만해도 화창하기만 했는데, 서울은 겹겹이 쌓인 먹구름 때문에 하늘이 낮았다. 빛 한 줄기 없는 어두컴컴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정해준과의 첫 만남을 추억했다. 빛 한 줄기와 함께 나타났던 열여덟의 정해준을. 그때의 오묘했던 감정을.
이제는 소년티를 찾아볼 수 없는 정해준이 발레파킹을 담당했던 직원에게 차 키를 넘겨받으며 내 쪽으로 팔을 뻗었다. 나 대신 여행 가방을 끌려 했으나 손잡이를 넘겨주지 않으려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공주, 또 엄한 데 힘 뺀다.”
“……해준아, 우리 여기서 헤어지자.”
“무슨 소리야.”
못 들을 소릴 들은 사람처럼 눈썹을 찡그린 정해준이 날씨를 확인하기 위해 무성한 먹구름을 쏘아보았다. 그게 신호라도 된 듯 후두둑,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거보란 듯 정해준이 다시 여행 가방 손잡이를 당겼다.
끌려가지 않기 위해 힘을 주어 버티며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반복했다.
“여기서 헤어지자.”
가시를 삼킨 것처럼 목구멍이 쓰라려서 다른 말은 차마 나오질 않았다. 헤어지잔 말도 겨우 뱉었다. 내가 어떻게 너에게 우리의 이별을 설명할 수 있을까. 내가 어떻게.
분명 제대로 들었으면서 정해준은 못 알아들은 척했다.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넋 나간 얼굴을 하고선.
“일기예보에 비 많이 온댔어. 괜히 버스 탄다고 고생하지 말고. 내가 잘 모셔다 줄게.”
“그게 아니라, 우리, 그만 만나자는 뜻이야.”
여행 가방 손잡이를 쥐고 있던 정해준의 손에서 힘이 탁 풀렸다. 물러선 건 아니었다. 손잡이를 쥔 손이 내 손목으로 옮겨 왔을 뿐.
“잠깐 얘기 좀 해.”
“아니, 여기서 끝이야. 헤어지자.”
녹음기처럼 같은 말만 반복했다. 겉은 담담했지만, 속마음은 아니었다. 빗속에 뛰어들어 미친년처럼 엉엉 울고 싶었다. 체면 때문에, 주위 시선을 의식해서가 아니었다. 그런 모습을 보였다간 나보다 더 미칠 정해준을 알아서였다.
어금니를 꽉 물었다 푼 정해준이 낮은 한숨과 함께 침착을 가장하며 나를 설득하려 애썼다. 혼란한 속마음을 반영한 시선이 어지러이 흔들렸다.
“이 빗속에 널 혼자 보내라고?”
“제발, 나를 그냥 내버려 둬.”
“……그럼 울지나 말든가.”
“해준아.”
“이유나 듣자. 그러니까 잔말 말고 타. 나 절대로 너 혼자 안 보낼 거니까. 너 이대로 버스 타면 나도 차 버리고 너 따라 타.”
정말 그러고도 남을 기세여서, 어쩔 수 없이 조수석에 올랐다. 목을 옥죄는 침묵만이 둘 사이를 감돌았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데, 그래도 이해해 보려고 정해준이 이를 사리물었다 놓을 때마다 한숨이 무겁게 깔렸다. 그럴 때마다 긴장으로 핏기가 사라지도록 주먹을 쥐어대는 나 때문에 그마저도 참는 게 눈에 걸렸다.
마침내 집 근처 공터에 다다라 시동마저 꺼진 차 안은 지붕을 때리는 빗소리로 가득 찼다. 가만히 운전대를 손으로 톡톡 두드리던 정해준이 한 번 크게 숨을 몰아쉬고 조용히 물었다.
“왜.”
결국. 예정된 수순에 느리게 눈을 감았다가 떴다. 나직한 한마디가 가슴을 철퇴처럼 내리쳤다. 각오하지 않은 건 아니었으나 아픔이 덜어지진 않았다.
“그냥, 다 부담스러워.”
“그냥.”
대답을 곱씹은 정해준이 씁쓸하면서도 어이없는 헛웃음을 흘렸다.
“성의 없네.”
애초에 이유가 없는 이별이었다. 자의가 아니었으니까. 이소원의 비밀은 세상에 새어 나가면 안 되었고, 내가 꾸며 낼 핑계는 빈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안 되었다. 지난 시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는 걸, 이제 와서 깨닫는다. 내가 내놓지 못하는 이유를 정해준이 고심하여 꺼내고 있었으므로.
“뭐가 그렇게 부담스러운데? 차? 시계? 집? 검소하지 않아서 그래?”
“…….”
정해준은 이별의 이유를 자신에게서 찾았다. 내가 대체 뭘 한 거지. 충격에 숨이 턱 막혔다. 아무 말도 못 하는 내 눈치를 살피며 정해준은 계속 자신의 잘못을 뒤져 조심스럽게 확인을 받았다.
“아니면 내가, 너희 학과로 전과하고 싶다고 해서 그래? 자존심……, 상했어?”
그게 뭐라고. 별것도 아닌 걸 마음에 품고 있었을까, 정해준은. 그런 얘기가 아니었지 않나. 내가 너무 좋아서, 다 버리고 온단 소리였는데. 자존심 상하기는커녕 기뻤는데. 그랬는데…….
“어.”
“…….”
이별을 네 탓으로 돌리는 혀를 자르고 싶다.
“결혼하자는 것도 부담스러워. 우리 아직 어리잖아.”
비밀히 욕망했으면서, 부정하는 나를 저주한다. 나 같은 건 평생 불행하라고.
“고칠게.”
정해준이 즉각 빌었다. 억지로 띤 미소가 입가에 위태롭게 걸려 있었다.
“내가 다 고칠게. 그러니까 그런 말은 하지 말자, 우리.”
“……늦었어.”
“해원아.”
“그냥, 진짜 다 질렸어.”
“내일 다시 얘기하자.”
망연히 창밖만 내다보던 정해준이 한발 물러섰다. 다시 시동이 부드럽게 걸렸다. 내일 또 이 짓을 하라고? 못해, 나는.
“여기서 그만두자. 내일, 안 볼 거야. 연락도 하지 마.”
“해원아.”
“제발…….”
“같이 유학 갈래?”
“……뭐?”
헤어지자는 사람한테 같이 유학 가자니, 제정신인가. 헛웃음이 나왔지만 따지고 보면 둘 중 누구도 제정신일 수 없었다. 어떻게든 붙잡고 싶은 심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제안에 미칠 것만 같다. 아니, 이미 미쳤나. 속이 아프다 못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내려 줘.”
“집 앞까지 바래다줄게.”
“내려 달라고!”
악을 쓰자 놀란 정해준이 급정거했다. 폭우 속을 내달리는 동안 그대로 못 박힌 듯 서 있는 정해준의 차 뒤로 늘어선 다른 차들이 요란하게 경적을 울려 댔다.
머리로는 소음을 인식했지만 내 속이 더 소란스러운 탓에 시끄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
“해원 학생, 걱정했어. 다행히 회장님하고 사모님은 출타하셨어. 얼른 씻어. 응?”
비에 흠뻑 젖은 쥐 꼴로 들어서자 김 여사님이 종종거리며 나를 맞았다. 네. 짧게 대꾸하고 거실을 거쳤다. 부푼 배 위에 팝콘을 올려놓은 이소원이 TV를 보며 깔깔 웃고 있었다.
이제는 가릴 생각도 안 하는 봉긋한 배를 노려보며 가정했다. 만에 하나, 배 속의 아이가 잘못될 경우는…….
‘없나?’
물음표에 악의가 길게 꼬리를 붙여 따라붙었다. 그럴 가능성이 적다는 데 실망한 순간, 잠시나마 끔찍한 바람을 품었던 자신에게 소스라치게 놀랐다.
괴물 같아.
몸서리가 쳐졌다. 뒤늦게 오한이 들어 오소소 돋는 소름을 무심코 문지르자 인기척을 느낀 이소원이 이쪽을 돌아보며 밉살스럽게 눈을 치떴다.
“야! 너 미쳤지? 엄마 카드 들고 아주 신나게 긁었더라?”
그깟 커피값 몇 번 계산한 거 갖고 제 카드도 아니면서 이소원이 유세를 떨었다. 내가 정해준에게 받은 거에 비하면 티끌 하나에도 못 미치는데, 미안하고 죄스러워 죽겠는데.
“네가 십 대 소녀야? 어? 가출? 웃기지도 않아서 진짜.”
이소원의 땍땍거리는 소음에 정해준의 차 뒤에서 귀를 찢을 기세로 울려 대던 경적 소리가 뒤늦게 고막으로 밀려드는 것 같았다. 머리가 깨질 것 같아 관자놀이를 누르며 일갈했다.
“닥쳐.”
“허……, 와…….”
본색 드러내는 거 보라고, 웅얼거리면서도 기세에 눌렸는지 이소원이 마침내 입을 닫았다. 이제는 턱까지 덜덜 떨리기 시작한 오한을 씻어 내기 위해 뜨거운 물줄기에 몸을 맡겼다. 하지만 아무리 수온을 높여도, 피부가 데일 것처럼 뜨거워도 오한은 가시지 않았다.
힘겹게 샤워를 마치고 나서야 깨달았다. 비에 젖어 생긴 오한이 아니라 뼛속 깊이 자리 잡은 고독이 내뿜는 한기라는 것을.
한기를 감아 안듯 어깨를 껴안고 웅크렸다. 이건 내 몫이다. 온전히 혼자 감당해야 할 슬픔. 슬픔의 맛은 쓴물이 올라오도록 신랄했다.
과연 내게 주어진 것답다고, 곱씹으며 오도카니 앉아 고독을 지켰다.
***
유난히 긴 장마였다. 방 안에만 처박혀 있었는데 진탕 젖어 지냈다. 눈물에 절은 베갯잇에선 줄곧 시큼한 냄새가 났다. 파과의 냄새였다. 그러니까 꼭, 정해준이 내게서 나는 향기 같다던 풋사과가 썩으면 이런 냄새가 나지 않을까. 멍하니 상념에 잠겨 있는데 김 여사님이 조심스레 정해준의 존재를 알렸다.
“해원 학생, 남자 친구 찾아온 것 같은데. 안 나가 봐도 괜찮아?”
비가 이렇게 쏟아지는데 몇 시간 째 밖이라고? 벌떡 일어나려다 멈칫했다.
“……됐어요.”
마음 약해지면 안 돼. 자꾸 무너지려는 마음을 다잡았다. 나라고 마냥 모질지만은 못했다. 지칠 줄 모르고 걸려 오는 전화에 연결 버튼을 누르기도 했다.
-해원아.
한숨 같은 중얼거림이 들려와 숨을 죽였다. 한순간 정적이 흐른 건 정해준 쪽도 마찬가지였다.
-……이해원? 해원이 너 맞지?
정말 받을 줄은 몰랐는지 더듬거리던 정해준이 혹시 끊을세라 담아 뒀던 말을 다급하게 쏟아냈다.
-내가 뭐 실수했어? 여행 가서, 네 마음에 거슬리게 했다거나. 일단 미안해. 아니, 성의 없게 보일 거 아는데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 진심으로, 내가 잘 모르겠어서 그래. 알려 주면 고칠게. 해원아.
잘못한 게 없는데 스스로를 수 없이 검열했을 정해준의 괴로움을 떠올리자 숨이 턱 막혔다. 미친 사람처럼 소리치고 싶었다.
잘못한 거 없어. 네겐 티끌만큼도 잘못 없어. 다 내 잘못이야. 존재 자체가 잘못인 내가.
하지만 그러지 못하고 그냥 종료 버튼을 눌렀다. 뚝 끊겨 잠시 점멸하다 검게 변한 휴대전화 화면을 바라보다가 아예 전원을 꺼 버렸다. 저질러놓은 비겁이 숨통을 콱 조였다.
굳이 네 잘못을 따지자면, 처음부터 나와 엮인 게 잘못 아닐까. 나처럼 재수 없는 애와. 처음부터 균형이 틀어진 관계였다. 아무리 검정을 하양이라 불러도 검정이 하양이 될 수 없듯, 아무리 나를 공주님이라 불러도 나는 공주가 될 수 없다.
한때나마 신데렐라의 속내를 궁금해했던 스스로에게 실소가 터졌다.
신데렐라라니. 글쎄, 굳이 따지자면 성냥팔이 소녀쯤 되지 않을까. 한데도 당치 않게 순간이나마 공주가 되는 꿈을 그렸다. 그런 면에선 할머니의 말이 맞았다. 주제 파악도 못 하고 감히 위만 바라보는 건방진 년.
해준아. 왕자는 왕자에 걸맞은 여자를 만나야 하지 않을까. 가짜 공주 말고 진짜 공주.
탄탄대로일 게 뻔한 네 앞길을 막아서는 장애물이 되고 싶진 않았다. 나 하나로도 충분히 자격 미달인데 이소원의 아이까지 얹혀선 시작부터 실격이었다. 정말로 감히 바라선 안 되는 건, 바로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겠지.
사실대로 털어놓지 않는 건 기꺼이 진창으로 뛰어들 정해준을 알아서였다. 비록 끝은 엉망이었지만 좋은 모습으로만 기억되고 싶은,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