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아, 해준아, 더, 더 세게. 흑……!”
자학을 대신할 주문인 줄 모르고 표정을 굳힌 정해준이 아래를 거세게 놀렸다. 쿵, 쿵, 머리가 울리도록 안을 찧는 살덩이에 박히며 나도 엉덩이를 어설프게나마 움직여 보려 노력했다. 조금이라도 정해준을 더 기쁘게 해 주고 싶었다.
서툰 요분질에 성감을 자극받은 정해준이 골반 양옆을 꽉 잡았다. 허공에 반쯤 뜬 채 더는 움직이지 못하고 흉흉한 성기의 출납을 지켜봤다. 주저앉지 않으려 허벅지에 힘을 주었다가 눈앞에 번쩍 번개가 내렸다.
“아아, 읏, 응, 아…….”
벌어진 허벅지가 달달 떨렸다. 그대로 골반을 콱 잡아 내린 정해준이 가장 깊숙한 곳에 정욕을 분출했다.
“크흣…….”
관계 시 신음을 내는 일이 드문 정해준이었다. 쾌감으로 범벅된 신음에 상당한 만족감을 안긴 것 같아 홀로 뿌듯해했다. 우리가 함께 절정에 오른 것도,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났다. 이제, 이런 일 없을 거니까. 감히 바라선 안 되니까.
“해원아? 왜 울어.”
뚝, 흐른 눈물에 놀란 정해준이 몸을 물리려 했지만 싫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냥, 내가 서투른 게 미워.”
“무슨…….”
말도 안 된다며 당장에 부정한 정해준이 제 말을 증명하듯 몸을 으스러지게 끌어안았다. 그 바람에 슬쩍 물러난 정해준의 분신에 대고 엉덩이를 꾹 눌러앉았다. 다시 매끄럽게 들어와 박힌 살 기둥이 아랫배 가득 둔중하게 들어찼다.
“불길한데.”
“뭐가?”
“않던 짓 하는 게.”
순간 심장이 발끝까지 쿵, 떨어지는 것 같았지만 애써 태연함을 가장했다. 여행 와서 그런지 기분이 색다르다고 그럴듯한 핑계를 대가며.
“그냥, 이 안에 있는 동안은 내 것 같아서.”
“바보.”
사랑스러워 못 견디겠다는 듯, 뜨거운 입맞춤이 이마에 집중적으로 떨어졌다.
“어디에 있어도 네 거야.”
“응…….”
애매하게 웃고 말았다. 배꼽 아래가 온통 무지근한 둔통을 몸에 새길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여 평생 아팠으면.
계속 이대로 있고 싶다는 주문에 정해준은 난처한 웃음을 지었다. 내일 일정을 위해서라도 씻고 자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둘 다 팽팽히 맞서다 애매한 타협을 이뤄 냈다. 내게 분신을 묻어 둔 채로 나를 번쩍 들어 안고 욕실로 향하는 정해준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잘생겼어?”
“응, 잘생겼어.”
“우리 해원이 좋겠네. 잘생긴 남편도 예약해 두고.”
“으응…….”
와중에 자극이 차곡차곡 쌓였다. 쿵, 쿵,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반동으로 성기가 뽑혔다가 도로 박히길 반복했다. 뭉클뭉클, 정액 덩어리가 허벅지를 타고 미끄러지는 감각도, 너무 자극적이었다. 자지러질 것만 같아 정해준의 목을 꼭 그러안고 속삭였다.
“또 하고 싶어…….”
욕조를 몇 걸음 앞두고 정해준이 방향을 틀었다. 화장대 앞에 나를 세워 놓고 턱을 받쳐 억지로 거울을 보게 했다.
“넌 네 얼굴을 좀 볼 필요가 있어.”
“무슨…….”
“네가 얼마나 야한지. 음?”
성기가 쑥 뽑혀 나간 아랫도리가 허전한 감각도 잠시. 푸욱, 짓쳐드는 감각에 눈앞이 하얗게 바랬다. 이곳까지 옮겨지는 동안 터질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쌓여 있던 자극이 일시에 폭발했다.
“아아앙!”
“거절을 못 하게 만든다니까.”
중얼거린 정해준이 그대로 나를 엎드려 놓은 채 난폭하게 허리를 놀렸다. 절정이 휩쓸고 간 지 얼마 안 된 몸은 지나치게 예민해서, 울퉁불퉁한 성기가 내벽을 긁어내리는 움직임이 그대로 느껴졌다. 과한 자극에 가슴이 납작하게 눌린 채 엉엉 울었다.
정해준의 말대로 볼만했다.
***
“내가 이걸 얼마나 해 보고 싶었는지 알아?”
머리카락을 감겨 주며 정해준이 투덜댔다. 제집에서 몸을 섞을 때마다 기진한 몸을 어떻게든 욕조로 데려가 꼬박꼬박 씻겨 주던 정해준이었지만, 머리카락만은 손대지 못했다. 샴푸 냄새가 달라지면 식구들의 의심을 살지도 모른다는 내 주장 때문이었다.
처음인 것치고 능숙했다. 정수리를 꾹꾹 눌러 마사지해 주는 솜씨며, 거품이 남지 않도록 헹궈 내는 손길까지. 굉장한 서비스를 받은 것 같아, 절로 나도 똑같이 해 주고픈 마음이 일었다.
“나도 너 씻겨 줄래.”
“그럴래?”
정해준이 선뜻 몸을 맡겼다. 머리는 이미 감은 후였고 남은 건 몸이어서 샤워 볼에 비누를 문질러 거품을 낸 것까진 좋았는데.
“…….”
결이 명확한 근육과 단단한 골격을 보고 있자니, 나와 사뭇 다른 남성의 몸에 쉬이 손이 가지 않았다. 거부감이 아니라, 마음껏 탐해 보고픈 욕망 때문에.
“이러다 밤새우겠다.”
“아, 응…….”
천천히 샤워 볼을 움직여 너른 가슴팍과 탄탄한 복부에 거품을 칠했다. 이어 길게 뻗은 다리에도. 강인하여 우아한 몸이었다.
사람 몸이 이럴 수도 있구나. 감탄하며 샤워 볼 밑에 슬쩍 손가락을 세웠다. 손끝에 새기듯 차례로 근육의 음영을 덧그렸다.
문득 질투가 일었다. 나와 헤어지면, 다른 여자가 너를 차지하게 되겠지. 그 여자에게도 가없이 다정할까? 내게 그랬듯이?
‘싫어!’
산채로 심장을 뜯기면 이런 느낌일까. 울고 싶은 기분에 빠진 것도 잠시, 정해준이 짓궂게 손을 끌어다 중심으로 옮겨 놓는 바람에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여기는?”
“…….”
“건너뛰면 쓰나. 제일 신경 써서 닦아 줘야 할 것 같은데.”
오늘 제일 많이 썼잖아.
진담 섞인 농담에 어찌 반응할 바를 모르고 그 위에 멍청히 샤워 볼을 올려놓았다. 그러자 꺼떡거리며 일어선 성기가 샤워 볼을 툭 치워 버렸다.
“어…….”
분명히 아까까지만 해도 이걸 쥐기도 하고 매만지기도 했는데. 성적인 행위를 하고 있지 않은 성기는 낯설기만 했다.
“얼른.”
“응, 알았어.”
정해준의 재촉에 얼결에 양손으로 성기를 쥐었다. 위아래로 손을 움직이며 거품을 펴 바르자 살아 있는 것처럼 불끈불끈 움직였다. 민망함을 견디지 못하고 두 손을 모아 성기를 감싼 채 시선을 천장에 매달아 놓았다. 그러자 울퉁불퉁한 손안의 감각이 더욱 두드러졌다.
빨리, 차라리 빨리하고 끝내자.
나름 계획을 세우고 상하로 세차게 손을 미끄러뜨린 게 패인이었다. 꺼떡댈 때는 언제고 우뚝 발기한 성기가 꼿꼿하게 자리를 지켰다.
“어…….”
이러면 안 되는데. 경악한 표정에 정해준이 황당한 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진짜, 너 때문에 미치겠다.”
내 손 위로 손을 겹친 정해준이 제 것을 세차게 흔들어 댔다. 살짝 찌푸린 낯이 지나치게 선정적이다.
“앗!”
넋을 놓고 바라보는 와중에 손안의 기둥이 한 차례 더 부피를 키웠다고 생각한 순간, 뭉글뭉글한 덩어리가 연달아 쏘아졌다. 별안간 얼굴을 덮은 정액 세례에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가 물씬 풍겨 오는 진한 수컷 냄새에 정신이 어질해졌다.
“미안. 우리 해원이 머리 다시 감겨 줘야겠네.”
머리카락까지 튀어 적잖이 엉겨 붙은 정액을 훑어 낸 정해준이 물을 세게 틀었다.
감기는 것만 잘하는 줄 알았는데, 정해준은 말리는 것도 잘했다.
“졸려?”
“조금…….”
나른하게 대꾸했다. 머리카락을 살살 흔드는 손길에 사르륵 눈이 감겼다. 왜 이렇게 잘하지? 여자 머리를 말려 본 적이 있나? 그럴 리가 없다는 걸 잘 아는데도 괜히 질투가 일었다. 만에 하나, 라는 가정하에.
“전에 해 본 적 있어? 이런 거.”
“아니.”
매끄럽게 대꾸한 정해준의 만면에 뿌듯한 미소가 들어찼다.
“동영상 보고 배웠어.”
“배웠다고?”
뭘 머리 말리는 걸 배워서까지. 그냥 드라이어로 대강 말리면 되는 거 아닌가? 별스럽다고 생각하면서도 배시시 웃음이 샜다.
“머리 말리는 것도 기술이 필요해. 열풍에 머릿결 상하지 않게 골고루 빨리, 동시에 안 엉키게.”
“그렇구나.”
그러고 보니 요리도 배웠다고 했었지. 나를, 오직 나만을 위해서.
문득 가슴이 찌르르, 울렸다. 어디 가서 이만한 사랑을 받을까. 감히, 내 주제에. 너 없이 살 수는 있을까. 발밑이 꺼지는 것만 같다. 아래는 가없는 수렁.
이조차도 이기적인 생각이라는 걸 안다. 내 처지만 생각하는. 정해준은 영문도 모르고 헤어짐을 겪어야 하는데.
‘뭐라고 말하지.’
답이 없었다. 시간을 아무리 준대도 낼 수 없는 답. 막막함에 잠겨 있다가 다 됐다는 말에 겨우 정신을 차렸다. 부드러운 빗질에 찰랑거리는 머릿결을 보며 뿌듯해하는 정해준의 모습에 억지로 웃었다.
“많이 피곤한가 봐. 이제 자자. 내일 해 뜨는 거 보려면 지금이라도 눈 붙여야지.”
“응.”
몰려오던 졸음은 솟구친 걱정에 어느새 물러간 지 오래였다. 그래도 순순히 침대로 올랐다. 불을 끌 테니까, 표정을 읽히지 않으려고.
나란히 누운 나를 제 품에 당겨 가둔 정해준이 감격에 겨워 나직하게 속삭였다.
“우리 같이 보내는 첫날 밤이네.”
“응…….”
자는 척, 맥없이 대꾸했다. 더 얘기하지 않고 가만가만 어깨를 다독이는 손길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지 않으면 눈물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눈꺼풀에 갇힌 눈물이 겨우 갈무리되고 나서 다시 눈을 떴을 땐 고요한 암흑이 시야를 부드럽게 덮고 있었다.
온몸이 나른했지만 정신은 또렷했다. 처음 온 여행도, 처음 와 본 호텔도, 모두 낯설어서 긴장감이 쉬이 풀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같이 보내는 첫 밤이니까.
푸른빛을 띤 어둠이 정해준의 주위에 내려앉아 있었다.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잠들어 있는 정해준이 마냥 신기한 한편 흘러가는 시간이 야속하다. 영영 아침이 오지 않으면 얼마나 좋을까.
모로 누워 어스름과 암흑이 수묵으로 그려낸 정해준의 옆얼굴을 찬찬히 눈에 담았다. 잘생긴 이마, 곧고 높은 능선을 그리는 코, 그 아래 단정히 자리 잡은 입술.
한참을 물끄러미 보고 있자니 졸리진 않지만 자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너와 함께 잠드는 것도 좋을 것이다. 나란히 아침을 맞는 기분은 또 어떨까. 아직 같이 해 보고 싶은 게 많은데, 해 보지 못한 것도 많은데, 이제는 요원한 일이 됐다.
‘잘 자. 사랑해. ……미안해.’
죄악 같은 고백을 마음속으로 삼키며 정해준의 이마에 살포시 입술을 맞췄다. 그러다 아쉬워서 뺨으로 옮겨 또 한 번. 입술로 옮겨 또 한 번. 마음 같아선 수 없이 입술을 내리고 싶지만 이러다 깨겠다 싶어 슬쩍 몸을 떼다가,
“앗……!”
그대로 허리가 붙잡혔다. 자고 있는 줄 알았는데 혹시 나 때문에 깬 건가? 그러기엔 안은 팔의 힘이나 어둠 속에서도 나를 직시하는 시선이 너무 또렷했다.
“이건 뭐 잘 때도 예쁜 짓을 하니 마음 놓고 잘 수가 없네.”
“미안, 나 때문에 깬 거야?”
“아니. 아까부터 깨어 있었는데.”
처음부터 잠들지 않았단 말에 당황했다. 그럼 내가 지금껏 훔쳐보고, 입 맞추는 걸 알면서 눈감아주고 있었다는 건데.
“어…….”
나쁜 짓을 몰래 하다 들킨 사람처럼 부끄러워졌다. 아닌가? 도둑 키스니까 나쁜 짓인가? 그것도 도둑질이라고 몸 둘 바를 몰라 애꿎은 입술이나 깨무는 사이 정해준이 쉽게 체위를 뒤집었다.
“일출은 다음에 보자.”
허벅지 안쪽을 꾸욱 누르는 고간이 어느새 묵직하게 부풀어 있었다. 기약할 수 없는 다음을 뱉는 대신 정해준의 뜨거운 숨결을 달게 받았다.
혼과 숨을 나누는 마지막 순간인 만큼 격렬하게 타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