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해준, 흣, 아…….”
“고고한 사슴인 줄 알았더니 맹한 토끼였고.”
“그래서……, 싫어?”
“아니. 잡아먹긴 토끼가 더 맛있지.”
묻어 두었던 손가락을 꺼낸 정해준이 애액으로 흠뻑 젖은 손가락을 보란 듯 핥아 올리며 음미하듯 눈살을 찡그렸다. 지독하게 야한 모습에 눈앞이 아찔했다.
헐떡대는 나를 두고 정해준이 잠깐 떨어져 나갔다. 언제 챙겨 놨는지 서랍을 열어 콘돔 박스를 꺼내 올려놨다. 안을 생각 없다고, 즐기기만 하라고 했던 것치곤 준비가 철저했다. 놀리고 싶었지만, 그럴 처지가 못 되었다.
“그냥……, 해도 돼.”
콘돔을 꺼내 막 잇새에 문 순간, 팔을 잡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지 정해준이 불만스럽게 눈살을 찌푸렸다. 해소되지 못한 정욕이 고스란히 떠오른 눈을 피하며 작게 속삭였다.
“피임약 먹었어.”
가로막는 것 없이, 정해준과 맞닿고 싶었다. 얇은 한 겹의 막마저도 치워 버리고 싶었다.
“……대담하네.”
혀 차는 소리와 함께 헛웃음을 탁 터트린 정해준이 이내 정색하고 물었다.
“생으로 하라고? 그럼 안에 해도 돼?”
“응…….”
“이해원.”
양 발목을 잡아 활짝 벌린 정해준이 끄트머리를 입구에 정조준했다. 아마도 발름거리고 있을 발간 속살에 눈을 빛내며.
“어떻게 감당하려고 이래.”
“으읏, 하으…….”
굵은 살 기둥이 끝도 없이 짓쳐들었다. 마침내 가장 안쪽에 닿은 귀두가 고개를 꾹꾹 치받았다. 자궁 목을 밀어 올리는 압박감에 호흡이 불규칙하게 끊어졌다.
“좋다, 해원아.”
“흣, 으…….”
쾌감에 겨워 일그러진 눈매를 보며 함께 흥분했다. 짓눌린 내벽이 주륵 눈물을 흘리며 버거워하자, 순순히 아래를 물려 준 정해준은 선단이 입구에 빠듯하게 걸리자마자 다시 거세게 허리를 쳐올렸다.
“하흣, 아아……!”
단박에 끝까지 파고든 양감에 순간 숨이 멎었다. 단단한 살덩이가 내벽을 짓누르는 압박감이 상당해 찔끔, 눈물이 흘렀다. 뻐근하다 못해 먹먹한 감각에 후회할 거라던 정해준의 경고가 떠올랐지만 때는 늦었다.
“살살…….”
애처로운 사정에 정해준이 콧등을 찡그렸다.
“여기는 달라고 조르는데.”
당치 않다는 듯 부정하며 허리를 놀렸다. 척, 척, 쳐올릴 때마다 젖은 살갗끼리 맞붙었다 떨어지는 소리가 음란하게 귓전을 울려 댔다. 응, 읏, 아응! 멋대로 질러 대는 신음 소리에 잠시 움직임을 멈춘 정해준이 보란 듯 느릿느릿 움직였다.
“이렇게 악착같이 달라붙는데 안 먹여 줄 수가 없잖아, 내가. 응?”
슬근슬근 드나드는 성기에 달라붙은 빨간 속살이 탐욕스럽게 우물거리고 있었다. 울퉁불퉁 불거진 핏줄을 빨아먹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난잡한 광경에 아연해졌다.
“아…….”
침대 시트를 끌어다 얼굴을 가렸다. 다시 살 부딪치는 소리가 빨라지며 낯을 가린 천이 휙 벗겨졌다. 한순간이라도 제 시야에서 벗어나는 걸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두 눈을 뚫어져라 응시하는 시선이 집요했다.
“해준아, 정해준.”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쾌감에 젖은 정해준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순간 정해준의 호흡이 잠시 끊겼다. 억눌린 신음과 함께 허리를 곧추세우고 파정했다. 꾸덕꾸덕한 정액이 맞물린 틈으로 비어져 나오는 느낌에 잠시 멍해졌다.
“아……?”
먼저 절정에 도달한 정해준은 처음이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었는데 정해준이 사납게 뇌까렸다.
“좆 병신도 아니고.”
그러면서도 희부연 정액이 여전히 제 것으로 꽉 막혀 있는 구멍 둘레로 흘러내리는 모양을 황홀한 눈초리로 감상했다.
“아……, 보지 마, 그런 거.”
“왜, 예쁜데.”
“해준아, 제발…….”
“느낌, 진짜 좋다. 해원아.”
한차례 사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부피는 조금도 줄지 않은 성기를 슬금슬금 먹이면서 정해준이 조곤조곤 타일렀다.
“그래도 앞으론 이런 이유로 피임약 먹지 마. 보약도 아니고.”
제 분신이 꽂힐 때마다 울컥울컥 정액을 토해 내는 광경을 질리도록 구경하고도 아쉬운 손길로 문질러 대다가 더 이상 나올 게 없을 즈음에야 정해준은 성기를 뽑아냈다. 이대로 끝인가 했는데 차가운 생수를 들고 온 것뿐이었다.
“수분 보충.”
“응?”
“이제 우리 해원이도 가게 해 줘야지.”
“어……, 오늘 컨디션 안 좋은 거 아니고?”
전에 없던 일에 걱정하여 묻자, 정해준은 진심으로 자존심 상한 표정이 되었다.
“내 컨디션이 안 좋은 게 아니라 네가 심했던 거지. 반칙이야. 갑자기 얼굴 만지는 거.”
“응…….”
내가 만져 주는 걸 그렇게나 좋아했구나. 그런 것도 모르고 애무는 서툴단 이유로 여태 받기만 했다. 정해준에게도 가슴이나 고환 같은 성감대가 있다는 걸 알지만 부끄러운 기분에 선뜻 손을 대기가 뭐 했다.
더불어 언젠가 나를 엎드려 놓고 할 때 눈알이 빙글 돈 게 보일 정도로 흥분했던 정해준을 떠올렸다. 유난히 수줍어하는 나를 위해 거의 정자세 위주지만, 실은 색다른 걸 원하지 않을까. 이를테면…….
반응을 살피며 조심스레 허벅지 위로 오르자 정해준이 기가 찬 탄식을 뱉었다.
“오늘 내 생일인가.”
“나도 해 볼래.”
머릿속을 들여다볼 것처럼 가만히 두 눈을 쳐다보던 정해준이 뜻대로 해 보라는 의미로 상체를 비스듬히 기대앉았다. 자세가 바뀌어서 그런가, 우뚝 선 음경이 유독 낯설게 보였다. 성기가 아니라 말뚝 같은 느낌. 등줄기가 오싹오싹 떨리는 걸 느끼며 천천히 허리를 내렸다.
“어…….”
제대로 조준했다고 생각했는데 둘의 체액으로 범벅인 구멍에 닿자마자 성기가 주욱 미끄러졌다. 이게 아닌가? 좀 더 힘을 줘서 앉아야 하나. 나름 세게 엉덩이를 움직였는데, 더 빨리 미끄러졌다는 차이를 제외하곤 비슷한 일이 반복됐다.
“잠깐만…….”
기마 자세로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다가 아무래도 이건 아닌 것 같아 눈앞에 놓인 널찍한 어깨를 짚자 정해준의 눈빛이 흥미로 빛났다. 확실히, 지탱할 게 있으니 나았다. 보다 안정적으로 귀두 끝을 맞춰 앉았는데, 조금 박혀 들었다가 도로 튕겨 나가고 말았다.
“음…….”
애매한 자극에 질벽이 발끈발끈 수축했다. 못 견디게 근질거리기도 했다. 차라리 정해준이 알아서 움직이게 둘걸, 스스로 애를 태우는 꼴이었다. 난감해하며 허리를 위아래로 올렸다 내렸다, 무릎을 굽혔다 폈다 하는 나를 안타까운 눈으로 지켜보던 정해준이 혀를 찼다.
“손으로 쥐고 해야지, 해원아.”
“아…….”
내가 처음 삽입을 시도한다고 너무 우리의 첫 경험만 생각했다. 정해준이 허리만 놀리던 게 생각나서. 평소엔 으레 기둥을 받쳐 들고 찔러 넣던 게 뒤늦게 떠올랐다.
“그럼…….”
정해준의 조언대로 조심스럽게 기둥을 감아쥐었다. 와중에 뿌리를 잡아 고정하는 게 좋은지, 중간 위 지점을 잡는 게 좋은지 알 수 없어 헤맸다. 손가락이 붙었다가 떨어질 때마다 말라붙은 정액이 끈끈하게 묻어났다.
“진짜 돌겠네.”
흥분 가득한 정해준의 혼잣말에 그냥 아무렇게나 쥐고 서둘러 입구를 맞췄다.
“흣!”
마침내, 선단이 꾸욱, 존재감을 과시하며 질구를 비집고 들어섰다.
성공했다.
고작 그거 하나 했다고 지나치게 뿌듯해했나 보다. 정해준의 인내가 한계에 다다른 것도 모르고. 별안간 허리를 크게 쳐올린 정해준 때문에 엉덩이가 반쯤 튀어 올랐다가 그 반동으로 푹 주저앉았다. 단박에 꿰뚫린 순간.
“아흣!”
육중한 쾌감이 등줄기를 관통했다. 새된 신음과 함께 정해준의 가슴팍에 엎어졌다. 그대로 뒷목을 감아 안은 정해준이 입술 사이로 혀를 쑤셔 넣었다. 안을 마구 휘젓다가 웅크려 있던 내 혀를 찾아 쭉쭉 빨아 댔다.
“우읍, 읏, 읍……!”
강하게 당겼다 놓아질 때마다 배꼽 아래가 움찔움찔 수축하며 박아 둔 정해준의 분신을 조였다. 마치 성기가 밀어 올린 내벽의 끄트머리가 뾰족한 혀인 양, 빨아 대는 족족 살 기둥을 움켜 댔다.
선연한 움직임에 맞춰 정해준이 그대로 허리를 쳐올렸다. 마치 말 위에 엎드린 것 같은 자세로 거칠게 내달리는 정해준을 받아 냈다.
“아응, 아, 앗! 앙!”
밀리는 호흡 때문에 상체를 일으켰다가 본격적으로 세차게 움직이는 정해준 때문에 숨은 고르지도 못하고 엉망으로 흐느꼈다. 따라서 몸을 세운 정해준이 제멋대로 출렁출렁 움직이는 가슴을 세게 쥐고 주물렀다. 볼록 솟은 한쪽 유두를 손가락 사이에 끼워 사정없이 비벼 대는 동안 다른 쪽은 뾰족하게 빨렸다.
“아아앙!”
눈앞이 하얗게 번지는 소리에 정해준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빨아주는 거 진짜 좋아한다니까.”
잇새에 물린 빨간 젖꼭지 때문에 악랄하게 보이는 웃음이었다. 상관없었다. 차라리 악랄했으면 좋겠다. 마구 난도질하고 헐도록 헤집길 바랐다. 그리하여 엉망으로 망가지길, 진심으로 바랐다.
네게 아픈 이별을 고할 나 따위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