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학기 초라서 아직 소설 읽을 정도의 여유가 있는 나를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던 정해준이 성큼성큼 다가와 얄밉다는 듯 코끝을 깨물었다.
책, 자기가 나 보라고 사다 놓고서. 웅얼거리자 어딜 앙탈이냐는 듯 잘근잘근 씹어 댔다.
“간지러워.”
책을 내려놓고 킥킥거리다 그대로 입술이 먹혔다. 안을 탐하는 혀끝의 움직임이 유난히 그악스러웠다. 뿌리 뽑을 듯 혀를 빨던 정해준이 아쉬운 한숨을 토해 내며 투덜거렸다.
“나 전과할까, 너네 과로.”
작년에도 비슷한 얘길 들었던 것 같은데. 연례행사 같은 건가.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이번엔 어쩐지 쉬이 넘어갈 수가 없었다. 악을 써 대던 이소원이 떠올라서였다.
집에서 조금만 도와줬으면, 아니, 수능 전날만이라도 나를 내버려 뒀으면, 나도 지금쯤 정해준과 같은 강의실에 앉아 있을 텐데. 씁쓸함을 삼키며 힘없이 대꾸했다.
“그래도 이왕 시작한 거 열심히 해야지.”
“어차피 예과 땐 별거 없어. 유급만 면하면 돼.”
“……다니고 싶어도 못 다니는 사람도 있잖아. 누군가한테는 거기가 꿈이었을 텐데.”
뱉어 놓고 나니 그 누군가가 너무 명확했다. 아차 싶었지만 이미 내뱉은 말이었다. 정해준도 내 속내를 눈치챈 듯 한동안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다가 순하게 중얼거렸다.
“알았어. 노력할게.”
그러면서도 눈을 빛내는 이유를 모르겠다.
“그런데, 그러려면 네가 도와줘야지.”
“내가? 뭐를……, 어떻게?”
전공이 다른데 도울 일이 있나? 작년에야 일반 생물학이나 미생물학 정도가 겹쳤지만, 본격적으로 인체에 대해 다루는 예과 2학년부터는 우리 과와 커리큘럼이 완전히 달랐다. 그래도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열과 성을 보태겠다고 결심했다가, 음흉하게 이를 드러내며 웃는 정해준을 보며 그게 순진한 다짐임을 깨달았다.
“주사 놓는 실습할 건데 엉덩이 좀 대줘 봐.”
갑자기 웬 주사?
“말도 안 되는……!”
항의를 가뿐히 무시한 정해준이 어깨를 잡아 나를 돌려세웠다. 무릎을 툭 쳐 엎드리게 하고선 제법 근엄하게 지시했다.
“이해원 환자, 바지 내리세요.”
제가 지시해 놓고 지퍼를 내리는 손길이 성급했다. 팬티까지 한 번에 손가락에 걸어 단박에 무릎까지 걸쳐 놓은 정해준이 급하게 숨을 들이켰다. 굳이 고개를 돌려 확인하지 않아도 음순을 까뒤집을 심사로 못 박혀 있을 두 눈을 안다. 뚫어질 듯 노려보는 시선에 노출된 두덩으로 뜨겁게 열이 올랐다.
“무슨 생각해.”
질금질금 애액이 배어 나오기 시작한 틈을 세로로 문지르며 정해준이 무심히 중얼거렸다.
“부끄, 럽단 생각.”
정해준이 내 표정을 확인하면서 섹스하는 걸 좋아하는 까닭에 이런 자세는 처음이었다. 이렇게 아랫도리만 내놓고, 마치 그 짓만을 위한 것처럼……. 나는 정해준의 얼굴을 볼 수 없음에도 맨몸이 무방비하게 노출된 불공평한 처지가 그저 야릇했다.
“뭐가 부끄러워. 우리 사이에.”
“스, 스핑크스 같아서.”
창피한 나머지 스핑크스로 치면 앞발에 해당하는 곳에 고개를 푹 묻었다.
“글쎄.”
무심한 대꾸와 함께 뭉툭한 끄트머리가 회음부를 묵직하게 찔러 댔다.
“핑크는 맞는데.”
“흣, 아…….”
불쑥 파고든 이물감에 눈앞이 하얗게 번졌다. 기대감에 벌써부터 안쪽이 벌름거렸다. 한데, 뭔가 낯설었다. 이상한 느낌에 뒤를 돌아봤다가 엉덩이 사이에 얼굴을 박고 있는 정해준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보, 보지 마!”
펄쩍 뛰었지만, 골반을 단단히 잡힌 뒤라 바르작거리는 게 고작이었다. 자기가 앞으로 하려는 짓을 내가 눈치챘다는 걸 안 정해준은 아예 대놓고 노골적으로 굴었다. 코를 묻어 둔 채 혀를 길게 세워 음핵을 할짝거리며 맛봤다.
“하지, 마, 아…….”
정해준과의 관계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다. 굵직한 성기가 내 안으로 완전히 자취를 감춰 까슬까슬한 음모만 맞비벼지는 장면이라든가, 다시 번들거리며 뽑히는 울퉁불퉁한 살 기둥을 눈 뜨고 볼 정도는 되었으니까. 하지만 이건…….
“해준, 아, 거기 너무, 흣!”
야릇한 기분에 아랫배가 배배 꼬였다. 맘껏 혀로 쑤시도록 엉덩이를 치켜든 자세라니. 거울을 보지 않아도 꼴이 훤하게 그려진 순간, 저 깊은 안쪽에서 뜨끈한 액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할짝할짝.
혀를 길게 뺀 정해준이 끝을 구부려 연신 고인 물을 퍼 올렸다. 정해준의 입 속으로 채 흘러들지 못한 액은 음순의 시작점에 고였다. 도독하게 솟은 정점에 맺혔다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똑 떨어지는 감각이 선연해 몸서리쳤다.
“해준아, 그냥, 그냥…….”
머리가 어떻게 되어 버릴 것 같은 이런 행위 말고, 그냥 박아 달라고 해야 하는데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한쪽 손등으로 입가를 슥 닦으며 고개를 뗀 정해준이 조금 전까지 혀로 쑤셔 댔던 구멍을 관찰했다. 엉덩이를 쥐어 벌린 양손의 악력이 상당했다. 내부가 고스란히 드러났겠지. 가느다란 주름 한 줄까지 낱낱이.
“그런 거, 하지 마, 해준아…….”
“그럼 어떻게 해 달라고.”
“박, 아니, 넣…….”
어떻게 해도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약간 서럽기도 했다. 개처럼 엎드려서 졸라 대는 게. 요구하지 않아도 매번 알아서 간지러운 부분을 긁어 주던 정해준인데, 오늘따라 못살게 구는 이유를 모르겠다.
어쩌면 이게 본심인지도 모르겠다는 깨달음이 살짝 스쳤을 때, 푸우욱, 성기가 끝까지 박혀 들었다.
“하흐흑!”
“좋아? 해원아.”
“응, 읏…….”
자세 때문인지 삽입이 유난히 깊었다. 턱, 턱, 정해준이 아래를 박아 댈 때마다 흥분으로 바짝 올라붙은 고환이 음핵을 때려 댔다. 차지게 들러붙었다가 눅진한 미련을 남기며 떨어지는 감촉에 몸을 떨었다.
“아, 아!”
강한 허리 짓에 성기가 몇 번 들고나지도 않았는데, 가까스로 유지하고 있던 상체가 기어이 무너졌다. 침대에 닿은 뺨이 일그러진 채 흉포한 움직임을 받아 내다가, 끝내 원망 섞인 눈초리를 보내고 말았다.
“그냥, 갑자기 심술이 나서.”
미친놈이 따로 없지. 자신을 향해 욕설을 뇌까린 정해준이 상체를 숙여 빨갛게 달아오른 내 귀 끝을 야물게 깨물었다.
“해원아, 왜…….”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내 양팔을 끌어 한 손에 손목을 그러쥔 정해준이 별안간 허리를 세게 쳐올렸다.
“아학!”
아랫배가 멍든 것처럼 얼얼했다. 과한 충격에 파들파들 떠는 몸에 대고 정해준은 말을 몰 듯 내달렸다. 꿰뚫린 채 사정없이 흔들렸다. 아, 이상해, 이런 거, 너무, 이상한데…….
“왜 박아 달라고 말 안 해? 이렇게 쑤셔 달라고 왜 말 안 하냐고!”
“응, 흣, 아흣!”
“가끔 보면 나만 원하는 거 같아.”
아니, 아니야. 대답 대신 고개를 저었지만 거친 움직임은 멈출 줄을 몰랐다.
“불안해. 너 떠날까 봐. 어느 날 갑자기 말도 없이 사라질까 봐…….”
네 불안은 나 때문이겠지. 무엇 하나 시원하게 얘기해 주는 게 없으니까. 집안 분위기는 어떤지, 너와 함께하지 못하는 시간 동안 가족들과는 무슨 얘기를 나누는지. 비밀스러운 내면은 흔들리는 눈빛, 억지로 끌어 올린 입매에서 드러나게 마련이니까.
“상상만으로도 애가 타. 미칠 것 같다고! 알아?”
그렇지 않아도 거세던 움직임이 더욱 흉포해졌다.
“뭐, 상관없지만.”
아무 데도 못 가게 지금처럼 박아 두면 될 일이라고, 사납게 뇌까린 정해준이 몇 번 더 허리를 쳐올리다 서슴없이 사정했다. 안쪽이 크게 부푸는 압박감에 눈을 홉떴다. 뒤늦게 늘 콘돔이 담겨 있는 서랍을 떠올렸다. 정해준이 그걸 열었었나?
“안, 안 되는데…….”
“이거 봐. 그딴 거나 생각하고 있지.”
풍만한 가슴을 받쳐 상체를 세워 올린 정해준이 고개를 틀어 입술을 맞췄다. 아래가 그러하듯 깊숙이 혀를 쑤셔 넣었다. 마치 벌을 주듯이.
“그런…….”
겨우 풀려나 울먹거리는 눈앞에 늘어진 콘돔이 놓였다. 미적지근하게 남은 온기가 방금 치른 관계의 흔적이 맞았다.
“됐어?”
“아…….”
“내가 설마 네 허락도 안 받고 그런 짓 할까 봐? 실망인데.”
반응을 떠보듯 표정을 살피던 정해준이 이내 미안한 웃음을 지었다.
“아니다, 내 잘못이다. 믿음을 못 준 내 잘못.”
“…….”
다시 다정한 정해준이다. 겨우 마음이 놓였다. 안도와 동시에 참고 있던 숨이 탁 터졌다. 아까부터 하고 싶던 말이 술술 흘러나왔다.
“……그런 거 하지 마. 너무, 이상해…….”
“엎드린 자세 많이 힘들었어? 네가 싫다면 안 할게.”
오래 바닥을 짚고 있었던 것도 아닌데, 손목을 주무르며 어쩔 줄 몰라 하는 정해준에게 다시 정확히 얘기해 줬다.
“그게 아니라, 아래에……, 그렇게는 별로야.”
“처음도 아닌데.”
곧잘 음부를 입으로 애무해 주기는 했었다. 주로 오랜 정사 끝에 나 혼자 맥을 못 추고 널브러져 있을 때, 다리를 ㄷ자로 벌려 놓고 중심에 고개를 박곤 했다. 음순을 빨고 혀를 쑤시다 제 흥에 겨워 자위할 때도 있었다. 내 배에 멋대로 정액을 흩뿌려 놓고 개구쟁이처럼 웃던 정해준을 떠올리며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이런 느낌은 아니었다고.
“그리고, 더럽잖아…….”
무엇보다 배설구와 맞닿아 있다는 게 영 마음에 걸렸다. 그게, 정해준의 눈높이에 있었다고 생각하니 수치스러워 다리가 배배 꼬였다.
“하나도 안 더러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