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낙과-22화 (22/77)

22화

열기 어린 눈이 내 모습을 훑었다. 골반까지 말려 올라간 치맛자락, 한쪽 발목에 걸쳐 달랑거리는 속옷, 식탁에 엉덩이만을 간신히 걸친 채 정해준을 받아들이기 위해 활짝 벌어진 다리…….

바지 앞섶만 벌어졌을 뿐, 단정하게 갖춰 입은 정해준과는 여러모로 대조적이었다. 갑자기 입고 있는 원피스가 눈에 확 튀었다. 꼭 섹스만을 위한 것처럼…….

“침대, 로 가…….”

“조금만 더.”

냉정하게 잘라내며 정해준이 말랑한 허벅지 뒤를 잡아 손바닥으로 눌렀다. 자연히 자세가 뒤로 젖혀져 식탁에 완전히 누운 꼴이 됐다. 일부러 그런 게 분명했다. 가끔, 주로 잠자리에서 내가 제 맘에 안 드는 짓을 할 때 가차 없이 구는 구석이 있었다.

식탁 위 조명 아래 훤히 드러난 음부를 퍽퍽 쑤셔 대는 굵다란 살 기둥, 안달하며 기둥을 쫓아 딸려 나오는 빨간 속살을 보란 듯 눈짓하며 정해준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내 게 그렇게 맛있어?”

“아아…….”

고개를 돌리고 신음이 새는 입을 틀어막았다. 허벅지 안쪽이 펄떡펄떡 뛰기 시작했다. 그 모양을 보고 정해준이 심술궂게 지적했다.

“또 먼저 가네, 우리 해원이.”

“아, 아아! 흐윽!”

아득히 높은 곳에 홀로 오른 기분에 눈 흘길 정신도 없었다. 발발 떨리는 몸을 고쳐 안으며 정해준이 거칠게 허리를 놀려 댔다.

침대로 나를 옮겨 준 건 기어코 한차례 사정을 하고 난 후였다. 언제 마구 해 댔냐는 듯, 더없이 소중하게 안아서. 그러면서 피식피식 웃는 모양이 수상했다. 성기가 빠져나갔는데도 여전히 이물감이 남아 있는 사타구니도.

뭐지.

손을 내려 아래를 더듬더듬 더듬었다. 꽉 맞물린 탓에 채 빠져나가지 못한 콘돔이 아직도 질구에 꽂혀 있었다. 살짝 힘주어 당기자 쑤욱 뽑혀 나왔다.

“절경이네.”

“…….”

정해준의 놀림에 뒤늦게 창피한 짓을 했다는 자각이 들었다. 지나치게 난잡한 꼴이었다는 것도. 이런 장면을 놓칠 정해준이 아니라는 걸 미처 고려하지 못했다.

“너무해.”

뻔히 알면서 그대로 놔두고.

“예쁜 걸 어떡해.”

“뭘 자꾸 예쁘대.”

“예쁜 걸 예쁘다고 하지 그럼 뭐라고 해.”

한 마디도 지지 않고 따박따박 대꾸하며 정해준이 적신 수건으로 다리 사이를 꼼꼼하게 닦아 주기 시작했다. 적당히 따뜻한 수건이 살살 문질러지는 느낌이 좋았다. 허리 아래만 닦는 건 좀 이상하지만.

“됐다.”

할 일을 마친 정해준이 허리에 둘둘 말려 있던 치마를 도로 곱게 내렸다. 제가 입혀 놓은 원피스가 몹시 마음에 든듯했다. 약간, 어이가 없었다.

“속옷은……?”

“좀 이따 또 할 건데.”

“뭐?”

“그냥 지금 할까?”

능글맞게 웃으며 정해준이 제 허리춤에 손을 갖다 댔다. 어느새 중심이 불룩했다. 동시에 다른 손으론 치마 밑단을 걷어 올렸다. 고스란히 노출된 음부에 정해준이 음험하게 눈을 빛냈다. 역시 이런 의도로 원피스를 준비한 게 맞았다. 알고는 있었지만, 감출 생각도 없이 노골적으로 드러낸 야욕에 황당해졌다.

“나는 더 기다릴 수 있는데 얘는 참을성이 없대.”

“또……?”

얼이 빠져서 물었다.

“몸으로 익힌 건 오래가잖아.”

셔츠와 바지를 훌훌 벗어 던진 정해준이 서랍에서 태연하게 콘돔을 꺼내 포장을 찢었다. 익숙한 손길로 그것을 성기에 씌우곤 구겨진 포장은 침대 가장자리에 아무렇게나 툭 던져 놓았다.

“너, 죽을 때까지 나 못 잊게 하려고.”

다리 사이를 무릎으로 찍어 벌린 정해준이 내 손을 끌어다 제 몸에 붙였다. 단단한 감촉에 놀라 흠칫 떼는 손등을 꾹 누르며 힘주어 말했다.

“나 만져 줘. 네 몸으로 기억해.”

체온, 체취, 심장 소리, 살갗의 감촉까지 모조리.

거부할 수 없는 명령에 이끌려 가만히 손을 움직였다. 탄탄한 복부가 가만가만 짚어 보는 손가락을 탄력 있게 튕겨 냈다. 같은 사람인데 왜 이렇게 차이가 날까.

“지금 장난해?”

신기해하며 만지작거리는 내 모습에 어처구니없는 웃음을 터트린 정해준이 내 코끝을 아프지 않게 비틀었다. 받는 건 꽤 익숙해졌는데, 애무는 영 서투른 게 무안해졌다.

“미안.”

“잘 가르쳐 놓지 못한 선생 탓이지.”

나의 미숙함마저도 제 앞으로 달아 놓은 정해준이 손에 두툼한 성기를 쥐여 주었다. 눈으로 보는 것과 다른 묵직함에 깜짝 놀라 입이 멍하니 벌어졌다. 참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내린 정해준이 곧장 혀를 쑤셔 넣었다.

“애무는, 씹…….”

성기를 쥔 내 손 위에 자기 손을 겹친 정해준이 살 기둥을 그대로 질구에 꽂아 넣었다. 정해준이 들어설 길을 내느라 골반이 빠듯하게 벌어졌다. 이 감각이 익숙해지긴 할까.

“흣, 읏!”

아랫배에 손을 대 얇은 뱃가죽 밑으로 슬근슬근 드나드는 제 성기를 확인한 정해준이 한쪽 눈살을 찌푸리며 음험하게 웃었다.

“내 몸은 여기로 기억하자, 해원아.”

***

분명 여기저기 떨어진 콘돔을 싹 주워다 버리는 걸 봤는데. 까무룩 정신을 놓았다가 깨니 고요 속에서 나를 응시하고 있던 까만 두 눈에 이채가 돌기 시작했다.

“목마르지?”

선선히 내미는 물을 마시고 다시 누운 것까진 좋았건만, 완전 기진맥진 늘어진 몸에 입술을 꿍꿍 찍으며 슬슬 가랑이 사이를 더듬기 시작하는 손길에 몸서리를 쳤다. 피곤하지도 않나? 하루 종일 엎드려서 잠만 자던 땐 언제고 거뜬히 날밤을 새울 기세에 완전히 기가 질려 버렸다.

“옛날엔 틈만 나면 자더니.”

“내가?”

정해준이 의외라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마치 자신은 전혀 그런 적 없다는 듯. 이제 답답해진 건 나였다. 그렇게 자 놓고 기억이 안 난다니, 말이 되나?

“수업 시간이고 쉬는 시간이고 안 가리고 엎드려 잤잖아. 너 때문에 내가 선생님들 눈치를 얼마나 많이 봤는데.”

“아, 그거.”

피식 웃은 정해준이 목덜미를 잘게 깨물며 짓궂은 투로 중얼거렸다.

“나 잔 적 없는데.”

“어……, 진짜? 아닌데? 분명히…….”

실은 잠든 게 아니었다니? 그랬나? 그러고 보니 그랬던 것 같기도. 깨우면 바로 일어났던 거나, 내가 훔쳐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던 거나. 그렇다 하더라도 자는 척을 굳이 왜?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에도 정해준의 손가락은 착실하게 음핵을 비비고 있었다. 으응, 허리를 뒤채며 의구심 가득한 시선을 던졌다.

“일부러, 왜 그랬는데?”

“네가 안 쫓아내니까.”

“뭐?”

“자고 있으면 그냥 놔두더라고. 내가 깨어 있으면 피해 다니기 바빴잖아?”

“아…….”

예상 밖의 대답에 놀랐다. 조금 억울하기도 했다. 첫날부터 엎드려 자 놓고. 그때는 뭣도 모를 땐데. 그건 뭐였냐고 따지자 정말 알고 싶으냐며 위험하게 눈을 빛냈다. 왜 사람을 그런 눈으로 보지? 속을 낱낱이 헤집을 것처럼, 한입에 잡아 삼킬 듯이.

“그건.”

줄곧 갈라진 틈을 문질러 푹 젖은 정해준의 손이 갑자기 내 손을 덮듯이 잡아 자신의 중심으로 이끌었다. 어느새 부푼 성기가 뼈처럼 단단했다. 나도 모르게 손가락을 꼼지락거리자 그에 반응하듯 꺼떡거리기까지 했다. 손목을 비틀어 빼려고 했으나 어딜, 하고 중얼거린 정해준이 손을 위아래로 움직였다. 마치 사이좋게 손을 겹치고 문지르는 것처럼.

자위를 돕는 모양새에 얼굴이 뜨거워졌다. 빨개진 내 귀를 입 안에 넣고 혀로 살살 굴리며 나른한 숨을 내쉰 정해준이 다시 힘주어 손을 쥐락펴락하자 그 안에 갇힌 내 손도 자연히 성기를 주물럭거렸다.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운 감촉이 손바닥을 둔중하게 자극했다.

“이거 숨기느라.”

“…….”

괜히 물었나 봐. 내 곁에서 계속 이런 상태였다고? 첫날부터? 아찔한 기분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래 봤자 소용없다는 듯 정해준이 계속해서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낮게 가라앉은 음성이 더없이 음란했다.

“미친놈처럼 종일 발기해선 꺼지질 않는데 차라리 잘라 버리고 싶었다고. 알아?”

“몰, 몰랐어.”

“안 자르길 잘했지.”

흥, 코웃음 치며 입구에 끄트머리를 끼운 정해준이 그대로 허리를 꾸욱 밀어 올렸다. 이미 푹 물러 있던 내부는 무리 없이 굵다란 살 기둥을 받아들였다. 그렇다 해도 밑동까지 완전히 내 안쪽으로 자취를 감췄을 땐 어쩔 수 없이 앓는 소리를 흘렸다.

“흐흑……!”

흐느끼며 잘게 떨리는 어깨 위로 정해준이 만족스러운 신음을 토해 냈다. 그러곤 다소 심술궂게 아래를 퍽퍽 박아 댔다.

“이 짓거리 없이 어떻게 살라고.”

“아…….”

다시 사나운 허리 짓이 시작됐다. 열락을 되풀이할 시간이었다.

***

오전 공강이 겹쳐 오붓하게 시간을 보냈다. 개강 후엔 공강이 겹칠 때마다 정해준의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게 일상이 됐다.

정해준이 샤워를 마치길 기다리며 정해준의 앨범을 꺼내 들었다. 내가 모르는 정해준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을 앨범을.

가족에 대해선 자세히 물어보지 못했다. 내가 자신의 가족에 대해 궁금해하는 만큼 정해준도 궁금해할 텐데, 곧이곧대로 대답해 줄 자신이 없어서. 그런 의미에서 앨범은 호기심을 채워 주는 훌륭한 방편이었다. 내가 모르는 시절의 정해준을 만날 수 있으니까.

너른 마당에서 혀를 길게 빼고 학학 웃고 있는 레트리버와 폭신한 개의 배에 머리를 베고 잠든 정해준의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강아지를 키우는 게 소원이었던 내 어린 시절이 떠올라서. 딱 이런 느낌의 금빛 털을 가진 강아지와 친구로 지내는 상상을 곧잘 했었다.

때마침 씻고 나온 정해준이 수건으로 머리카락의 물기를 털며 함께 사진을 감상했다. 사진 속 강아지를 응시하는 눈빛에 따스한 애정이 깃들어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