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정해준이 몇몇 애들의 연락에 마음만 고맙게 받고 조문은 정중히 사양하겠다고 간단히 답은 해 줬다고 들었는데. 가뜩이나 시험 앞두고 찝찝해하던 애들이 당사자의 조문 사양이라는 훌륭한 핑계에 일제히 안도한 얼굴로 떠들어대던 모습이 떠올랐다.
결국 직접 조문 온 사람은 나 하나라는 데 생각이 미치자 괜히 걸음 해 부담을 주는 게 아닌가 싶어졌다. 본인이 괜찮다고 했는데도 굳이. 상중이니 오죽 정신없을까. 슬픔에만 잠겨 있기에도 짧은 시간인데.
아무래도 경황없고 복잡할 테지. 어려서 자리를 지키는 것 외엔 딱히 한 일이 없었음에도 아빠의 장례식 때 우왕좌왕 혼란스러웠던 기억을 떠올리자 갑자기 자신이 없어졌다. 무작정 찾아온 스스로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냥 정해준이 다시 등교했을 때 잘 보내 드리고 왔냐고 안부 정도만 물어도 됐을 것을.
‘그냥 돌아가자.’
돌이켜 생각해도 나 따위가 별 위로가 될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의아해하지 않을까. 뭘 여기까지 왔냐고. 그러니 어설픈 위로 같은 건 나중에……, 그래, 나중에.
국화꽃 줄기에 붙은 시든 이파리를 떼어 내며 천천히 돌아서자마자, 긴가민가하면서도 반가움 섞인 목소리가 발목을 잡았다.
“이해원?”
이런 상황은 예상치 못했는데. 난감해하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어색해하며 뒤돌았다. 하룻밤 새에 그늘진 정해준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맞네, 이해원.”
나임을 확인하고 그림자를 덧씌운 듯 어둑했던 낯빛이 일시에 환해졌다. 성큼성큼 다가와 눈앞에 우뚝 선 정해준이 진짜네, 하고 믿기지 않는 듯 중얼거렸다.
“소식 듣고 조문 왔는데…….”
“그럼 들어오지 않고.”
손에 들린 국화꽃을 보고 정해준은 몹시 감동 받은 표정이 되었다.
“진짜 고맙다.”
“응…….”
걱정했던 것과 달리 보통 이상으로 고마워하는 모습을 보니 새삼 우리의 애매한 관계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내게 휴대전화가 있었다면, 그래서 안부를 물었다면 정해준은 뭐라고 답했을까. 다른 애들에게 그랬듯이 정중한 사양이 돌아왔을까. 아니면 너만은 꼭 와 주었으면 한다고 했을까.
모를 일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하등 쓸데없는 망상이기도 했다. 휴대전화는 없고 나는 이 자리에 있는 이상 본래 목적에 맞게 작은 위로나마 건네기로 했다.
“많이 힘들지.”
대답 대신 정해준은 씩 웃어 보였다. 그나마도 곧 씁쓸한 기운과 함께 가라앉았지만.
막연히 짐작했던 것과 달리 정해준의 눈가엔 물기가 없었다. 가칠한 입술과 깊어진 눈매가 파리하나 건조했다.
담담해서 더욱 슬퍼 보이는 모습에 어린 시절의 내가 겹쳐졌다. 숨어서야 겨우 울음을 터뜨릴 수 있었던 내가. 혹 정해준도 참고 있을까? 물론 내 경우와 상황은 판이하게 다르겠지만…….
신경 쓰이는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계절에 맞지 않게 얇은 셔츠에 내 속이 다 시렸다. 내가 찾아오긴 했지만 우리 만남은 우연이라는 걸 상기해냈다. 볼 일 있는 사람 붙잡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어디 가려던 거 아니었어?”
외투도 없이 슬리퍼 차림으로 나온 걸 지적하자 정해준이 머쓱하게 웃어 보였다.
“아……. 찬바람 맞고 싶어서. 저 안, 되게 따뜻하거든. 나만 따뜻한 게 할아버지한테 미안해서.”
“…….”
늘 그렇듯 위로가 서툴다. 무어라 대꾸해야 좋을지 몰라 멀쩡한 국화 이파리 두 장이 애꿎게 뜯겨 나갔다.
“나 되게 예뻐하셨는데 난 좋은 손자가 아니었거든. 곁에서 자라는 거 보고 싶다고 한국에서 같이 살자는데 홀랑 엄마 따라가선 방학 땐 귀찮다고 잘 안 들어오고. 여기 오자마자 할아버지 병실부터 찾았는데 내 얼굴 못 알아보시더라. 결국 못난 손자 놈 끝까지 그리워하다 돌아가시게 만들었네.”
후회로 점철된 자조가 정해준의 입가에 쓰게 걸렸다 사라졌다. 나는 여전히 할 말을 찾지 못했다. 때로는 침묵이 두어 마디 말보다 나은 법이라고, 핑계를 찾으며 가만히 귀를 열어 두었다.
“더 나쁜 건 뭔지 알아?”
꼭 도발하는 눈빛이었다. 위협하듯 낮아진 음성에 긴장하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모르겠어.”
“널 기다렸어.”
“…….”
“큰일 당했으니까, 네가 제 발로 날 찾아와 주지 않을까, 하고. 기대하고 바랐어.”
“…….”
“우습지? 할아버지의 죽음을 그딴 기회로 이용하려는 게.”
그런 자신이 혐오스럽다는 듯, 정해준이 괴롭게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꼭 우는 것처럼 보이는 웃음에 가슴이 새큰거리며 저릿저릿한 감각이 되살아났다.
길지 않은 대화를 나누는 동안 거세진 바람이 우리 둘 사이를 할퀴었다. 살갗이 아릴 정도로 찬 바람을 대신 맞아 주고 싶었다. 한 발, 앞으로 다가서자 정해준의 낯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이해원.”
“감기 걸리겠다. 그러면…….”
“…….”
“할아버지도 속상해하실걸. 너 많이 아끼셨다며.”
속을 가늠하듯 가느스름하게 눈을 뜨고 지켜보던 정해준의 입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내가 생각해도 유치한 발언이었다. 고인은 고인일 뿐, 사후의 영적 세계를 믿지 않는 나였기에 왜 그런 말이 나갔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정해준의 자책을 덜어 주는 덴 성공한 듯했다.
“안아 주라.”
“…….”
“한 번만.”
어깨너비만큼 벌어진 팔을 물끄러미 보다가 그보다 더 넓게 팔을 벌렸다. 가만가만 다가가는 순간순간 가슴이 터질 듯이 뛰었다가 욱신욱신 죄어들었다. 마침내 조심스럽게 허리에 팔을 둘렀을 때, 정해준이 숨 막히도록 내 등허리를 받쳐 안았다.
“정해, 준…….”
“잠시만. 잠시만 이러고 있을게.”
내 정수리에 고개를 묻은 정해준이 뜨거운 숨을 몰아쉬었다. 뺨에 닿은 심장이 거칠게 뛰는 것과 달리 나를 품은 상체는 가늘게 떨리고 있어서 뒤늦게 그가 울고 있음을 알았다.
***
그날 이후로 급격히 가까워진 건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 사이에 무언가 변화가 있었다는 건 부정하지 못하겠다. 무어라 정의 내리기 어려운, 몽글몽글하고 달달한 감정이 마음속 깊숙이 자리를 잡았다는 것을.
겉보기엔 달라진 게 없었다. 늘 그렇듯 교실에선 서로 말 붙이는 법 없이 덤덤하게 책을 파고 도서관에서는 자리만 붙어 있을 뿐, 각자 할 일을 했다.
고만고만한 날들이 이어지는 동안 이따금 마음 한구석이 반짝반짝 빛을 냈다. 그럴 땐 괜히 명치끝이 간질간질하면서 혀끝이 달았다. 주로 학교를 벗어나 정해준과 단둘이 있을 때 그랬다.
본인 공부하기도 바쁠 텐데 정해준은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꾸준히 내가 약한 부분을 봐주고 있었다. 명목은 과외지만, 데이트하는 기분이 드는 걸 부정할 수 없다. 특히 카페나 도서관으로 이동할 때에.
“예행연습.”
인적 드문 산책로가 나타나자 앞뒤를 살펴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한 정해준이 냉큼 손을 잡았다. 온 신경이 손바닥으로 내달렸다. 정해준과 닿으면 오감이 민감해졌다. 코끝을 스치는 바람의 냄새, 살갗에 닿는 공기의 온도, 보채듯 지저귀는 새소리…….
차갑지만 상쾌한 초겨울 바람을 맞으며 바스락바스락 부서지는 낙엽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때, 맞잡은 손의 중지를 뻗어 내 손목 안쪽을 가만가만 문지르며 정해준이 중얼거렸다.
“빨리 졸업하고 싶다.”
입시가 끝나면 사귀자고 했던 약속을 상기하며 얼굴이 붉어졌다. 갑자기 소매 안에 들여놓은 손가락의 움직임이 더없이 간질간질하게 느껴졌다. 손과 손목의 경계에 열기가 고이는 느낌. 반복해서 위아래로 쓰는 동작에 어떤 의도가 있어 보이지 않는데도 그랬다. 슬그머니 팔을 빼자 서운한 낯을 한 정해준이 보란 듯 입술을 비죽였다.
아, 귀엽다.
순간 속마음이 튀어나올 것 같아 얼른 입 안쪽 살을 깨물었다. 그게 좀 뚱해 보였나 보다. 비죽대던 표정을 집어치운 정해준이 눈치를 보며 심기를 살폈다.
“화났어? 멋대로 손잡아서?”
“아니, 그건 아닌데…….”
이렇게 다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뭐라도 되는 것처럼 내 비위를 맞추려 애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익숙해질까 두려워서, 꼭 내가 특별한 사람처럼 느껴지는 게…….
“그냥, 집안 분위기가 좀 많이 보수적이어서.”
“아.”
그런 거라면 십분 이해한다는 듯 안도한 정해준이 하나하나 손을 꼽았다.
“검소하고, 보수적이고, 엄하고.”
“맞아.”
분위기가 어색해지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여기며 쓰게 웃었다. 정해준이 짚은 세 가지는 나한테만 해당이라 서글프기도 하고, 한편으론 할머니 말씀대로 그저 감사만 해도 모자랄 판에 건방진 생각인가 자책도 되고.
“벌써 긴장되네.”
“뭐가?”
“나중에 인사드릴 때.”
아직 사귀는 건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결혼 생각인가 싶어서 살며시 웃음이 났다. 느슨해진 틈을 타 다시 정해준의 손이 부드럽게 감겨 왔다. 그러더니 제 손에 쥐어져 보이지도 않는 내 손을 내려다보며 한 소리 했다.
“왜 이렇게 손이 차?”
“원래 좀 그래. 몸이 찬 편이야.”
“내가 따뜻하게 해 줄게.”
잡은 내 손을 다른 손으로 옮겨 잡고선 은근슬쩍 어깨에 팔을 걸친 정해준이 상체를 숙이고 눈을 맞춰 왔다. 덕분에 그 품에 폭 싸인 꼴이 됐다. 따스하고 아늑한 품이었다. 그대로 눌어붙고 싶을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