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뭐라고 얘기하지. 종일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까 고민했다. 과외가 아니면 학원 특강이라도 듣고 싶다고. 하지만 나를 쏘아볼 할머니의 완고한 시선과 무관심으로 일관할 엄마를 떠올리면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벌써부터 혀가 굳었다.
일이 그르치려고 그랬는지 모르겠다. 공교롭게도 이소원이 과외받아 봤자 성적은 여전히 제자리다, 선생들이 실력이 없는 거다, 대학생 용돈벌이에 무얼 기대하겠느냐, 그러니 입시 전문 강사진이 포진한 대형 학원에 보내 달라고 떼를 쓰고 난 뒤였다.
이소원의 속셈은 잘 알고 있다. 함께 다니는 무리들이 하교 후 어울려 놀러 다니는 걸 부러워하며 다음에는 자기도 끼겠다고 다짐하는 내용의 통화를 몇 번이나 들었으니까. 학원을 핑계로 마음껏 놀고 싶은 거겠지.
하지만 난 진짜 절실한데. 조금만, 아주 조금만 밀어주면, 평생 폐 끼치지 않고 살 수 있을 텐데. 간절한 마음이 혀끝에 용기를 불어넣었다. 그게 바로 이소원의 억지로 인해 다소 험악해진 집안 분위기에도 입을 연 이유였다.
한두 달이라도 좋으니 과외를 시켜 달라고, 조심스럽게 부탁하는 내게 할머니는 눈을 세모로 떠 보였다. 익숙한 반응이었는데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몽둥이에 익숙해진 개처럼 오금을 떠는 내게 싸늘한 꾸지람이 떨어졌다.
“너는 어린 것이 염치도 없구나. 과외? 허, 너, 감히 네가 무어라고 이거 해 달라, 저거 해 달라, 입에 올려? 어디서 되바라진 짓거리냐!”
“한 번만, 딱 한 번만 도와주시면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 없게 할게요. 성인 되면 독립할게요. 그러려면……!”
탕! 손바닥으로 거세게 탁자를 내려치는 소리에 움찔하느라 애원도 끊겨 버렸다. 가뜩이나 심기 불편했던 차에 마침 잘 걸렸다는 듯, 할머니의 비난 또한 평소보다 모질었다.
“그 핏줄이니 오죽할까마는, 물에 빠진 놈 구해 놓으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꼴은 더 이상 눈 뜨고 못 보겠구나. 내 이건 짚고 넘어가야겠다. 너, 네가 이 집에 있는 거, 그거 당연한 거 아니다. 개도 키우는데 입양한다 생각하고 피 한 방울 안 섞인 너를 들인 거야. 내 딸 가정 망쳐 놓은 말종의 자식인 거 눈 딱 감고. 한데 과외? 네가 생각이 있는 게냐? 성적 좀 좋다고 교만에 빠져서는 분수도 모르고 기어올라? 배은망덕한 것!”
마지막은 숫제 고함이었다. 틀어졌구나. 어차피 예상한 바이긴 하지만……. 쉬이 체념하면서 나도 모르게 시선이 엄마에게로 갔다.
이럴 때 엄마의 생각이 궁금했다. 처음 나와 이소원을 데리고 본가에 들어왔을 때 발도 못 들이게 했던 할머니는 그렇다 쳐도, 엄마는, 엄마도 정말 그렇게 생각할까? 개도 키우는데 머리 검은 짐승 하나쯤 키우자고? 정말, 그런 이유로?
하지만 엄마는 언제나 그렇듯 아무 말이 없었다. 내가 바라보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내 쪽으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할머니의 호통을 들어 넘겼다. 멍하니 방 한구석을 응시하고 있는 엄마를 보면 꼭 모르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생기 없이 무표정한 얼굴. 아빠가 살아계셨을 땐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던 엄마였는데.
‘해원아, 우리 해원이는 피부가 하얘서 안 어울리는 색이 없네. 예쁘기도 하지, 내 딸.’
첫 만남 때 선물로 사 왔다며 연노랑 원피스를 내게 대 보며 환히 웃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내가 읽는 책은 글밥이 많아 재미없다고 찡찡대는 이소원을 달래 가며 우리 둘을 양옆에 나란히 끼고 앉아 책을 읽어 줬던 기억도, 감기로 고열을 앓을 때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옆에 붙어서 밤이 새도록 적신 수건으로 이마며 가슴을 닦아 줬던 기억도.
“아…….”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고 생각했는데 무심결에 깜박인 순간, 고인 것을 털어 낸 눈앞이 다시 명료해졌다. 한층 매서워진 눈초리의 할머니와 가면을 쓴 듯 무표정한 엄마가 각자의 방식대로 보이지 않는 벽을 세우고 있었다. 물러나는 것 말곤 선택의 여지가 없도록.
“죄송, 죄송합니다.”
비루먹은 개처럼 비척비척 물러났다. 거실을 지나 복도 끝, 현관 바로 옆에 놓인 내 방, 동떨어진 외딴섬이 달칵! 고독한 비명을 지르며 열렸다. 막막한 기분을 안고 가방 속 교재들을 끄집어냈다. 펼쳐만 놓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다가 문득 내려다보니 정해준과 주고받았던 낙서가 적혀 있었다.
[이름 한자, 무슨 해야? 바다 해? 海]
[본보기 해. 楷]
[우린 같은 해를 품고 사네.]
같은 해. 글자가 번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가만히 종이를 쓸었다. 정해준이 전학 온 날 보았던 강렬한 빛 한 줄기가 떠올랐다. 그러자 따스한 빛이 스미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절망을 어루만지는 온기처럼.
***
겨울을 준비하느라 앙상하게 마른 나무가 끝내 가지 끝의 나뭇잎을 떨어뜨렸다. 괜히 기분마저 스산한 이때, 정해준이 결석했다. 빈 옆자리를 보며 괜히 신경이 쓰였다. 간혹 늦잠으로 지각하는 애들은 있으니까 인내심을 갖고 기다렸지만 혹시나가 역시나였다.
‘무슨 일 있나.’
반나절이 지나도록 싱숭생숭했다. 휴대전화가 없으니 연락할 방도도 없었다. 갑갑한 기분에 창밖 하늘을 올려다보길 여러 번, 소식을 알게 된 건 점심시간에 평소 정해준과 어울리는 몇몇이 떠드는 얘기를 듣고서였다.
“가 봐야 하는 거 아닌가?”
“원래 할아버지 상도 챙기나?”
“야, 그런 데 괜히 갔다가 부정 타는 거 아니야? 수능 얼마 안 남았는데.”
아무리 미신이라 해도 민감할 시기였다. 누군가의 우려 섞인 목소리에 조금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서로 눈치만 보던 무리 중 하나가 뭘 그런 걸 신경 쓰냐며 타박했다.
“새꺄, 그래도 가족이 죽었다는데. 다 미신이지. 정 걸리면 갔다 와서 소금 뿌리든가.”
“그런가? 장례식장 어딘지 알아?”
“대상 병원이겠지 뭐.”
“돈도 내야겠지?”
“무식하기는. 돈이 뭐냐? 돈이? 조의금 몰라, 조의금?”
병상에 누워 계신다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구나. 언젠가 정해준이 지나가던 말로 얘기하던 게 떠올랐다. 이런 못난 놈도 손자라고 제가 온 뒤로 할아버지께서 의사가 예견한 시한을 훌쩍 넘도록 버티고 계시다고.
울고 있을까. 늘 입매가 보기 좋게 휘어진 모습만 봐 와서 정해준의 눈물로 젖은 얼굴이 쉬이 상상되지 않았다. 겨우 물기 어린 두 눈을 그려내자 이번엔 마음이 한구석이 새큰거렸다.
가 보는 게 좋으려나.
그래도 매일 보는 사이인데. 대상 병원이랬지. 무심코 노트에 대상까지 끄적이다가 누가 볼세라 깜짝 놀라 지웠다.
‘내가 왜.’
그냥 같은 반일 뿐인데. 찾아가면 꼭 특별한 사이 같잖아.
‘아닌가……?’
너무 부담스럽지 않게, 하지만 멀지 않게 제 존재를 시시각각 드러내던 정해준이 떠올랐다. 자주 농담으로 웃게 해 주는 것도, 공부를 봐주겠다며 선뜻 제안한 것도, 기다리겠다는 약속도. 하지만 아직은 짝꿍일 뿐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는데.
‘그게 아니지.’
다 떠나서 슬플 테니까 위로 정도는 해 줄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래도, 꼭 조문 갈 필요까지는…….
치열하게 고민에 빠져 있다가 이렇게까지 신경 쓸 일인가 싶어 다시 또 심각해졌다. 나도 내 속을 모르겠다. 그냥, 마음이 자꾸만 어디론가 내달렸다. 또 주린 것처럼 배 속이 허했다. 점심을 먹은 직후인데도 그랬다. 그저 옆자리가 비었을 뿐인데.
괜히 위장 근처를 손으로 눌러 보다가 이도 저도 아닌 결론을 냈다.
‘공부나 하자.’
어차피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수업이 끝나고 나면 저 혼자 방황하던 마음도 길을 찾겠지, 그렇게 막연히 기대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뜻대로 되지 않았음을, 적지 못한 게 있다며 잠시 교과서를 빌려 갔던 애가 무슨 필기를 빨간색으로만 하냐고 핀잔해서 깨달았다.
“눈 아파.”
“어…….”
듣고 보니 정말 그랬다. 주로 파란색으로 필기하고 빨간색은 중요한 부분 밑줄이나 별 표할 때나 쓰는데 오늘 수업들은 부분은 온통 빨간색으로 도배가 돼 있었다. 다른 과목을 확인해 봐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도 그걸 몰랐다니, 완전히 넋을 빼고 있었구나 싶다.
자율학습 시간 내내 붉은색 칠갑인 책을 노려보다가 중간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탁 소리가 나게 책을 덮었다. 그대로 짐을 챙겨 교문을 빠져나왔다.
눈에 띄는 대로 꽃집을 찾아 들어가 흰색 국화꽃 한 송이를 샀다. 조의금을 낼 만한 돈은 가지고 있지 않았으므로.
대상 병원은 초행길임에도 자주 지나다니던 길 근처라 장례식장은 익숙하게 찾았지만, 그 앞에서도 한참을 망설였다.
역시 여기까지 찾아온 건 유난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