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늑대 가족
첫딸 이름은 희용이었다.
태몽을 용꿈을 꿔서였다. 부득이하게도 태몽을 꾼 사람은 진팔이었다.
“내, 내가 용꿈을 꿨습니다! 이제야 좀 장가를 들려나 봅니다!”
“예끼, 이놈아. 우리 애 태몽이 먼저지 네 장가가 먼저냐?”
순식간에 장가갈 꿈을 환네 부부의 태몽으로 뺏긴 진팔이었다.
그렇게 태어난 딸아이는 무려 용을 태몽으로 해서 낳은 아이인 만큼 튼튼하고 기가 센 게 환 못지않았다. 울음소리도 어찌나 우렁찬지. 젖 달라고 삐용삐용 울어댈 때면 온 무산이 떠나가라 악을 써대는 듯했다. 그러면 아버지가 된 환이 비몽사몽인 눈을 뜨고 주섬주섬 아이를 물어서 잠귀가 밝지 못한 어미 늑대인 연의 가슴팍에 직접 대어주었다.
“어머니가 잠귀가 어두워 다행이다. 그지, 희용아?”
환이 속삭이면 희용이가 대꾸하듯 주둥이를 움직이며 낑낑대었다. 연이 늑대의 모습으로 낳은 희용이었기에 희용이 역시 늑대 새끼의 모습으로 태어났다.
연은 젊은 만큼 몸을 풀고 나서 회복도 빨랐다. 본연이 늑대인 만큼 몸이 충분히 회복될 때까지 늑대의 모습으로 지냈다.
사흘째 되는 날부턴 주변에 산책도 나갔다.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연이 봄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걸 구경할 동안 집안일은 환이 고용한 다른 늑대들의 몫이었다.
연은 그저 끼니때마다 이제 환의 무리에 소속된 늑대들이 차려 주는 밥을 먹으며 희용이와 매일 놀았다.
늑대 수인의 핏줄인 희용은 쑥쑥 자라났다. 백일이 넘자 귀와 꼬리도 쏙 들어가더니 며칠 동안은 완벽하게 사람 모습으로 변할 줄 알게 되었다.
그걸 보며 환이 감격함은 물론이었다.
“우리 희용인 천재인가 봅니다, 연 님.”
“애들은 원래 백일 전후로 인간 모습으로 변하는 법을 깨우칩니다.”
그러면 연은 섣부르게 생각하지 마시라며 환의 극성스러움을 저 밑바닥까지 꾹 눌러주었다.
희용이는 온 무산 늑대들의 사랑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랐다. 돌이 지날 즈음에는 군길을 따라 사냥도 갔다. 그즈음엔 늑대 모습으론 거의 성체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물론 인간으로 변하면 여전히 갓 걸음마를 배운 아기 모습이었다. 보통 늑대 수인들은 늑대 모습으론 성장이 빨라도 인간 모습으론 자라는 게 더뎠다. 그래서 보통 인간 모습으로도 어느 정도 거동이 가능할 나이까지 늑대 모습으로 머무는 편이었다.
그런데 희용이는 웬걸, 사람 모습으로 변하는 것을 좋아했다. 아직 말도 못 하면서 종종 인간 아기 모습으로 변해 혼자 방 안에 누워 열 손가락을 꾸물꾸물하며 잼잼 놀이를 했다.
“어쩜 이렇게 아버지만 똑 닮을 수가 있을까요.”
연의 해산을 도왔던 늑대가 그런 희용이의 모습을 발견하고 귀엽다는 듯 피식 웃었다.
연은 이제 사람 나이로 두 살이 된 아이를 바라보았다. 확실히 연의 모습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뼈대가 벌써부터 단단하고 다리가 길쭉한 것이, 크면 아비 못지않게 장성할 듯싶었다.
그렇다고 또 예쁘지 아니하냐 하면 기가 막히도록 예쁘장하게 생겼다. 환 님의 미모를 쏙 빼닮았다.
연은 솔직히 제가 제 새끼를 예뻐라 하는 건 그 덕이 크다고 느꼈다.
‘환 님을 닮아서 다행이야.’
굳이 배 아파 낳은 자식이 저만 쏙 빼닮았으면 좀 아쉬웠을 것도 같았다.
물론 환의 생각은 좀 다른 듯했다.
“눈꼬리가 새초롬하니 연 님 닮았으면 더 좋았을 텐데요.”
환은 희용이를 볼 때마다 어쩔 수 없다는 듯 아쉽게 중얼거렸다.
“그래도 우리 희용이가 예쁘긴 합니다.”
헤벌쭉 웃으며 아기를 들어 올렸다 내리는 신랑을 보며 연은 둘째는 반드시 저를 닮게 태교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이는 많을수록 좋았으니까. 먹고살 걱정이 가득했던 예전이야 한둘만 낳아 잘 기르자고 생각했던 연이었다. 그러나 이젠 든든한 환 님도 계시겠다, 무산도 그들 부부 발아래 있겠다. 더 낳지 못할 이유는 없어 보였다.
그런데 문제는 환이었다. 임신 내내 고생하고 출산 때도 함께 늑대로 변해 곁에서 안달복달을 했던 사내였다.
연이 산고 때문에 낑낑거리면 곁에서 같이 끙끙거리다가 출산을 도와주던 늑대에게 정신 사납다고 쫓겨났었지. 희용이가 무사히 태어난 뒤에도 환은 둘째의 ‘둘’ 자도 꺼내지 않고 있었다.
‘어떻게 설득한다.’
슬슬 발정기도 다시 찾아올 텐데. 연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 * *
희용이를 낳고 다시 찾아온 첫 발정기는 환이 매듭짓기를 하지 않아 어영부영 넘겼다.
“환 님은 아이를 몇이나 낳고 싶으세요?”
죽겠다며 제 안에 사정하면서도 기어코 임신하지 못하도록 좆을 부풀리지 않는 사내를 보며 연은 어느 날 떠보듯 물었다.
“그거야 연 님 마음이지요. 전 희용이 하나 낳아주신 것만으로도 감지덕집니다.”
연은 조금 놀라고 말았다. 환이 다짜고짜 생기는 대로 낳자고 대뜸 졸라댈 줄 알았던 것이다.
실상 아까 제 안에 파묻은 기둥을 담금질하던 기세를 보면 애가 몇 번이고 더 들어서고도 남았다.
연은 아까 제 귓가에 거친 호흡을 뿌리며 배를 맞췄던 사내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막상 남편이 의욕이 없어 보이니 은근히 조급해지는 건 아내였다.
‘안 낳겠다고 하시면 어떡하지.’
연은 다리로 환의 허리를 감아올렸다. 사내는 아직도 제 위에 올라와 있었다. 환의 허리가 단숨에 긴장하는 게 느껴졌다.
“그럼 둘째는 갖기 싫으신 거예요?”
환의 콧잔등 역시 붉어진 듯했다. 밤이라 잘 보이진 않았지만. 그러나 대꾸하는 목소리는 태연했다.
“제가 왜 싫어하겠어요. 희용이도 물고 빠는 거 안 보이세요.”
“그럼 왜…. 안 하세요?”
“아직 해산하신 지 얼마 되지도 않으셨잖아요. 몸에 무리 갑니다.”
환이 연의 콧잔등에 입 맞추며 얘기했다. 그는 여전히 느긋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었다.
“그리고 저번 발정기는 지났잖아요. 이번에 찾아오면 노력하도록 할게요.”
연은 눈을 끔벅끔벅 감았다가 떴다. 만족스러운 대답이었다.
성격은 이 모양이었지만 연도 은근히 속정이 깊은 편이었다. 희용이에게 좋은 형제자매를 많이 만들어 주고 싶었다.
…어디까지나 힘닿는 데까지만.
은근슬쩍 다시 부풀어 오르기 시작하는 신랑의 분신이 아랫배로 느껴지자 연은 몸을 슬금슬금 뒤로 빼었다.
“그보다 희용이 엄마. 이번 단오제 때 시간 있으십니까?”
환이 급히 화제를 돌렸다. 그러면서도 방금 정사가 끝난 덕에 작게 맺혀 있는 연의 땀방울을 손가락을 다정히 훔쳐 주었다.
연은 희용이 엄마라는 호칭에 쿡쿡거리면서 웃었다. 바로 옆에 아기 희용이가 세상모르게 자고 있어서일까.
환은 평소엔 연 님이라 잘만 부르다가 아주 가끔 저 희용 엄마 소릴 했다. 그럴 때마다 연은 은근히 기분이 좋아졌다. 마치 그들의 사랑의 결실인 희용이가 부부의 사이를 더 굳건히 이어주는 밧줄이 되어 주는 느낌이었다.
연은 환을 밀어내었다. 그러곤 몸을 일으키며 풀어졌던 저고리를 다시 바로 잡았다. 환 역시 바지춤을 추스르곤 연이 폭 들어 있는 이불 속에 들어왔다.
이젠 당연하다는 듯이 팔베개다. 연은 그의 옆구리를 파고들며 제 머리통을 쓰다듬는 사내의 손길을 느꼈다.
“단오제요? 시간이야 있겠죠.”
희용이야 진팔이나 순이 할멈 같은 다른 늑대들에게 부탁하면 될 것이고.
“왜요? 무슨 일 있으십니까?”
연은 새초롬하게 물었다.
어둠 속에서 그런 연의 눈꼬리를 보며 환이 다시 입맛 다시듯 입술을 축이는 게 느껴졌다. 둘 다 늑대 눈깔이라 그런지 밤눈이 훤한 게 문제라면 문제일까.
하여튼 혈기 왕성하셔라.
저래놓고 둘째는 안 된다고? 말이 안 되지.
연은 얼른 눈을 감았다. 이미 한번 하셨으니까 오늘 밤은 더는 안 된다는 신호였다. 그 신호를 알아들은 환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단념하듯 도로 누웠다.
그가 연의 머리 타래를 계속해서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흠흠. 별건 아니고 요새 희용이 키운다고 연 님께서 그 좋아하시는 들판도 별로 못 나가고, 별도 못 보고, 같이 술도 못 마셨잖습니까.”
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긴 했다.
사실 연은 그런 것들을 애초에 잘 즐기지 않았다. 그냥 삼시 세끼 맛있는 밥을 먹고 제때 쉬기만 하면 만족하는 단순한 성정 때문일까. 굳이 꽃놀이나 별구경을 가지 않아도 충분히 만족하는 초가의 삶이어서 그다지 신경을 못 쓴 건 사실이었다.
“왜요, 단오제 구경 가시려고요?”
“예에. 희용인 진팔이에게 맡기고 우리 둘이서 말입니다.”
환이 어둠 속에서 눈을 빛냈다.
“분명 즐거워하실 겁니다.”
연은 곰곰이 생각했다.
요즘 애 낳고 키우느라 잊고 있었지만, 환은 인간사에 두루 박식했다. 인간의 모습으로도 참 다사다망한 사내이기도 했다. 총각 시절, 필시 이런 행사 때마다 아주 장히 즐겼을 게 눈에 훤했다.
연은 어디 한번 저를 데리고 나가서 놀아보시라며 눈웃음을 쳤다.
“그렇게 해요.”
환이 신난다는 듯 연을 더욱 꼭 끌어안았다. 어째 저보다 철없는 신랑을 키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런 분이 어찌 광랑이라 불리며 이 무산을 두루 다스리는지 가끔 보면 기이하기도 했다. 환이 제 앞에서만 저런다는 걸 이젠 알면서도 볼 때마다 놀라웠다.
연은 신랑을 마주 보고 누웠다. 환이 그녀의 등을 감싸고 토닥토닥하는 게 느껴졌다. 그 품이 크고 따스했다. 애처럼 구시다가도 또 이렇게 대뜸 안아주시면 그 손길이 퍽 사내다웠다. 크고 늠름하지 않은 부분이 없었다.
‘아무래도 됐지, 뭐.’
환의 품에 안기자 연은 모든 걱정 근심이 훨훨 날아가는 걸 느끼며 눈을 감았다.
내숭 잘 떠는 남편을 둔 걸 제 복이다 생각하고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 * *
단오제 날이 밝았다.
연은 진팔이 물어다 준 고운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청록빛 저고리에 남색 치마를 곱게 차려입은 채였다. 너무 신분이 높아 보이면 편히 놀기 힘들다며 환이 쓰개치마는 쓰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이거.”
환이 주섬주섬 품에서 뭔가를 꺼내 연에게 건네주었다.
연이 그를 받아 들고 놀란 눈을 했다.
비녀였다. 초록빛 비취 알이 굵게 박힌 것이 꽤 고가의 물건으로 보였다.
“아니 이렇게 귀한 걸….”
“한양에 있는 창고에서 집어 온 물건입니다. 게선 널려 있어요. 부담 갖지 마시고.”
물론 개중에 고르고 골라 좋아하실 만한 걸 가져오긴 했으나 환은 뒷말은 삼갔다.
환의 부인이 된 이후 기다란 댕기는 동글동글하게 말아 올려 쪽을 진 채 다녔던 연이었다.
“단오제에서 우리 부인이 제일 예쁘실 겁니다.”
환은 비녀를 꽂은 연을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여인 바라보듯 했다. 그 시선이 부담스럽지만은 않아서 연 역시 얼굴을 붉혔다.
“희용아, 어머니 아버지 다녀올게.”
“뺘뺘-!”
인간 아기의 모습을 한 채 진팔의 품에 안겨 있던 희용이 귀엽게 입술을 끔벅거렸다.
부부의 단오제행을 방해한 의외의 복병은 연이었다.
희용이를 맡겨두고 그냥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몇 번이나 뒤돌아보며 희용이와 진팔이 저희에게 손 흔드는 모습을 본 뒤에야 연은 환의 손에 이끌려 초가를 떠날 수 있었다.
“희용이 두고 가는 게 그렇게 마음에 걸리세요?”
연이 탄 말을 끌며 환이 물었다.
“저도 그럴 줄 몰랐는데 희용이가 자꾸 눈에 밟히더라고요. 미안해요, 환 님.”
“미안할 게 뭐가 있습니까. 그게 어머니 마음인걸요.”
그러면서 환은 이렇게 훌륭한 부모의 자질을 갖춘 연을 어머니로 둔 희용이는 참 행복한 아이라며 말을 늘어놓았다. 연은 그런 그의 공치사를 평소처럼 흘려들으며 서서히 단오제가 열리는 마을로 이동했다.
산 아래의 모든 마을이 하나로 모이는 큰 장터였다.
벌써 사람들로 복작복작했다. 엿가락 장수 냄새를 맡은 연의 코가 벌름거렸다. 향낭을 더 이상 차지 않는 연의 코는 본래 역할을 아주 잘 수행하고 있었다.
눈치 빠른 환이 냉큼 연을 내려두고 말을 맡기면서 엿을 한 움큼 사 왔다.
“여기 있습니다, 연 님.”
“고마워요.”
연은 환의 입에 먼저 엿가락을 넣어준 뒤 제 입에도 넣었다. 역시 맛있었다.
사람들 눈치를 보느라 환과 나란히 걸을 순 없었지만, 꼭 그의 한 보폭씩 뒤에서 이동하면서 연은 날름날름 엿을 까먹었다.
환은 서너 발걸음마다 뒤를 확인하며 그런 연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두고 온 희용이가 자꾸 눈에 밟혀서 즐기지 못하고 금방 돌아가자 하실 줄 알았는데, 연은 생각 외로 단오제를 잘 즐겼다.
“저기 보세요. 탈놀이 합니다. 구경하실래요?”
환이 사람들이 모여 있는 한구석을 가리켰다. 연은 그가 이끄는 대로 졸래졸래 쫓아가 윷놀이며, 탈춤이며, 아주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서 단오제를 장하게 즐겼다.
사실 너무 잘 즐긴 나머지, 그녀가 흥분한 걸 냄새로 눈치챈 환이 주의를 주기까지 했다.
“연 님, 귀나 꼬리 튀어나오지 않게 주의하셔야 해요.”
“어린애도 아니고 괜찮습니다.”
그렇게 당당하게 대꾸하긴 했지만 오랜만에 나와 보는 저잣거리에, 그것도 단오제라는 큰 행사에 연의 몸은 이미 흥분으로 뜨거워져 있었다. 가슴 역시 북처럼 콩콩 뛰었다.
‘재밌다! 생각보다 너무 재밌어…!’
연은 나중에 희용이가 크면 꼭 데리고 오겠노라 마음먹었다. 어서 희용이가 자라 이 모든 걸 함께 볼 수 있었으면 싶었다.
“저기 그네 뛰네요.”
환이 손가락으로 아녀자들이 잔뜩 모여 있는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소리에 연은 저도 모르게 귀가 쫑긋 튀어나올 뻔했다.
‘그네…!’
언젠가 랑 언니와 함께 몰래 엿봤던 단오제에서 그들 또래의 여자아이들이 하늘을 넘실넘실 날듯 그네를 타던 모습을 기억했다.
“언젠가 꼭 타보고 싶긴 했는데요….”
“조심만 하면 됩니다. 어떻게, 줄 설까요?”
환이 그네를 타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 앞으로 연을 데리고 갔다. 연은 못 이기는 척 그를 따라나섰다.
줄이 생각보다 길었지만, 연의 차례는 금방 돌아왔다.
“제가 밀어드리겠습니다.”
환의 힘이 너무 좋아 초반에 휘청인 걸 제외하곤, 연은 썩 그네를 잘 탔다.
드높이 둥실둥실 나는 그네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무섭게 치솟았다.
“무섭진 않으세요!”
환이 아래서 연에게 소리쳤다.
“아니요! 더 높이요! 진짜 좋습니다!”
연은 바람이 얼굴을 때리자 눈을 질끈 감으면서 대꾸했다. 아래에서 부부의 대화를 들은 구경꾼들 몇몇이 웃는 게 느껴졌다.
“부인께서 그네 맛을 알아버려서 어찌하나?”
몇몇은 환을 향해 낄낄거리기도 했다.
환은 그런 사람들의 소리를 무시하며 연이 무사히 그네에서 내려오는 걸 도왔다. 그러곤 낄낄거리던 사내들의 쪽을 한번 지그시 바라봐 주었다.
선명한 늑대 눈깔이었다. 환의 눈이 범상치 않은 걸 본 구경꾼들은 그들 부부를 향해 농쳤던 것을 후회하며 서로 못 본 척하기 바빴다.
“흠흠!”
아무리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본래 짐승인 그가 뿜어내는 기색을 느낀 것이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리고 요의가 마려웠다. 그들은 재빨리 환의 시선으로부터 도망쳤다.
환은 그들의 반응을 흡족하게 바라본 후 연을 다시 조심스럽게 모셨다.
“어때요, 오길 잘하셨지요?”
다정하게 웃는 사내에 연의 발간 볼이 더욱 새빨개졌다. 애 엄마가 돼서 놀이를 너무 즐겼나 싶었다.
“그, 그냥 그랬어요.”
연은 솔직하게 대답하지 못하고 얼버무렸다. 환이 그런 연의 말을 듣고 인상을 살짝 찌푸리듯 웃었다.
“그냥 솔직하게 말씀하셔도 되는데요.”
“…사실 너무 좋았습니다.”
솔직하게 말하라는데 뭐. 연은 냉큼 털어놔버렸다. 그제야 환이 활짝 웃었다.
“그러시라고 데려온 건데요.”
제가 신랑 하난 참 잘 얻었단 생각이 들었다. 연은 그를 보며 다시 두근거리려는 마음을 내리누르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그네를 다 타곤 널도 뛰었다. 환이 윷놀이 판에 끼어 판돈을 다 쓸어 담는 것도 구경했다.
이제 보니 환은 모든 내기 판의 귀재였다. 그가 돈을 건 승부는 백전백승의 기록을 자랑했다.
“어떻게 그렇게 누가 이길지 훤히 다 꿰세요?”
연은 그런 신랑이 신기해서 물었다.
환이 씨익 웃으며 귀를 가리켰다.
“누가 어디서 뭘 낼지, 얼마를 걸지 자세히 들어보면 다 들릴 겁니다, 연 님도.”
연도 환의 말을 듣고 시도해봤지만, 규칙을 제대로 알지 못해서 그런지 하는 족족 실패를 맛봤다.
연은 제풀에 죽어 저는 다른 걸 보러 간다고 했다. 환이 얼른 그녀를 달랬다. 판돈 얻은 거로 연에게 가락국수를 사준다고 했다.
“제가 맛집을 압니다.”
연은 또다시 그를 졸졸 따라갔다.
주막엔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는데 주모가 환을 잘 아는지 그를 보자마자 목 좋은 자리를 넘겨주었다.
“색시가 있었어? 장가든 줄 몰랐구먼!”
꾸벅 인사하는 연을 바라보며 주모가 호탕하게 웃었다.
“장가는 애저녁에 들었는걸. 벌써 애도 있어.”
그가 당연하다는 듯이 연을 소개하며 말했다. 맞는 말이긴 했지만 저렇게 다른 사람에게 제 색시라고 당당하게 밝히는 환이 어쩐지 조금은 부끄러웠다. 둘 사이엔 벌써 희용이도 있는데.
“환 행수한테 마누라랑 애가 있다고?”
주모가 크게 소리쳤다. 그 바람에 주변에 있던 다른 일하는 아낙네들도 그 소릴 다 들었다.
연은 아낙네들이 어쩐지 매우 아쉬워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특히 일하는 젊은 주모들의 낯빛이 푹 꺼졌다.
왠지 모르게 연은 환을 째려보고 싶은 기분이 되었다. 하지만 어젯밤 희용이가 잘 때까지 저 대신 어르고 달랜 환의 노고를 생각해 꾹 참았다.
“여기 국수가 먹을 만할 겁니다.”
환은 주모에게 웃돈을 얹어 주고 수정과도 떠 왔다. 제 건 먹을 생각도 안 하고 연의 입에 음식이 들어가는 모습만 살폈다. 그런 부부의 모습을 보던 주막의 사람들이 어느새 다가와 말 한마디씩을 얹고 있었다.
“환이 총각, 이거 완전 애처가네!”
“아이고, 이젠 총각 아니지!”
환의 얼굴을 아는 듯한 다른 손님들 역시 삼삼오오 말을 보태며 웃어댔다. 어느새 환과 연의 주위는 왁자지껄해졌다.
어쩐지 이 주막 사람들은 죄다 환과 친분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궁금해하는 걸 알아차린 그가 멋쩍어하며 대답해주었다.
“가끔 아우들을 데리고 오거든요. 몇 번 묵기도 했고.”
환은 주변에서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인간들에게 시시껄렁한 말 몇 마디를 내뱉었다. 환의 말에 진짜로 사람들이 입을 다물며 흩어지는 걸 보고 연은 그가 이 근방에서 꽤 입지가 있는 인물임을 깨달았다.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니 환이 이 근방의 옷감 장사치들과 연줄이 있는 것 같았다. 알고 보니 한양의 거대한 객주 하나가 그의 소유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지금은 제 다른 아우들에게 맡겨놓고 왔습니다. 언젠가 한양에도 데리고 가드릴게요. 여기랑은 또 다른 맛이 있을 겁니다.”
환이 신기해하는 연에게 약조하였다. 이렇게 그와 또 다른 약속이 늘었다.
연은 내심 좋아 속으로 미소 지었다. 그가 반드시 약속을 지킬 거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나고 자란 무산을 떠나는 건 내키지 않았지만, 환과 함께 간다면 별로 무섭지도 않을 것 같았다.
이제 남편과 단둘이서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그들에게 금방 관심을 끌 것 같았던 인간들은 의외로 꽤 끈질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무리의 사람들이 그들 주변으로 하나둘 몰려들었다.
“부창부수라더니, 색시도 엄청 곱네.”
“이 근방에서 저런 처자를 어디서 구해 와 장가를 들었대? 애는 또 언제 낳았고? 납치해 온 건 아니지? 으허허!”
“쓰흡! 남의 마누라한테 신경들 꺼.”
환은 그런 사람들의 성화를 싹 무시하고 연에게만 집중했다. 그는 연이 그들 때문에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환의 손사래 한 번에 나이 지긋한 다른 장사치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으이구, 덤빌 걸 덤비래유! 환이 행수한텐 안 돼, 안 돼!”
몇 마디 꺼내 보지도 못하고 환에게 다시 쫓겨나는 사람들을 보며 주모가 깔깔 웃어댔다.
정말 주모의 말대로, 다들 환을 어려워하면서도 어떻게든 환심을 사보려 그 주위를 얼쩡거리는 게 연의 눈에도 보였다.
‘역시 늑대들 사이에서 한 가닥 하는 우두머리는 인간들 사이에서도 지위가 높구나.’
연은 인생의 진리를 깨달았다.
“연 님, 안 드시고 뭐 하세요. 입맛에 안 맞으세요?”
“아닙니다. 먹고 있어요.”
연은 엔간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늘 높은 대접을 받는 환이 제게 항상 높임말을 쓰는 걸 의식했다.
희용이도 생겼겠다, 이 무산에서 도망갈 구석도 없겠다. 슬슬 아내인 제게 장난으로라도 푸대접을 할 법한데, 환은 초지일관 깍듯한 태도를 고수했다. 정말이지 한결같은 사내였다. 연은 어쩐지 그에게 고마워졌다.
“…그러고 보니 환 님은 항상 제게 높임말을 써주시는군요.”
연이 멋쩍게 한마디 꺼내자 그가 조금 놀란 것처럼 그녀를 바라보더니 이내 당연하다는 듯 미소 지었다.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내가 내 아내를 존중하고 아끼지 않으면 누가 그러겠습니까? 연 님은 곧 저고, 저는 곧 연 님입니다. 연 님께서 족두리 쓰시고 어여쁘게 제게 시집오셨던 그날부터, 아니, 연 님을 처음 마음에 담았던 그날부터 연 님께선 제 마음속에서 가장 귀한 분이십니다.”
저를 바라보는 환의 눈에서 꿀처럼 다디단 물이 뚝뚝 떨어지는 듯했다.
“연 님을 존중하고 배려하고 아끼는 건 곧 저를 귀히 여기는 일입니다. 연 님과 저는 한 몸이나 마찬가지니까요.”
연은 그런 환의 눈길을 받으며 벅차오르는 마음을 애써 달랬다. 예전엔 그저 제 신랑이 멋있고 듬직한 사내라고만 여겼다면 이젠 그를 향한 존경심이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었다.
연은 부끄러워 대꾸는 못 하고 손으로 열심히 젓가락을 놀렸다.
환의 그릇에 있는 가락국수는 줄어들 생각을 안 했다. 환은 자기 먹을 생각은 안 하고 계속 젓가락으로 연의 그릇에 벌건 깍두기를 얹어 주었다.
“진짜 맛집은 이 깍두기가 별미인 집입니다.”
역시 제 남편은 아는 게 많았다.
국수 한 그릇을 다 비우고 수정과까지 들이켠 연은 배도 부르겠다, 목 좋은 자리에 앉아 등도 따시겠다, 꾸벅꾸벅 졸았다. 주변의 다른 사람들이 신경 쓰일 법도 했지만, 부부는 구석진 곳에 앉아 있었다. 게다가 환의 덩치에 가려진 연은 잘 보이지도 않았다. 덕분에 그녀는 마음 놓고 졸 수 있었다.
“피곤하시죠? 조금만 쉬었다가 갑시다.”
환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상 아래에서 연의 발을 조물조물 주물러주었다. 연은 제 신랑이 최고라는 생각을 하며 계속 꾸벅꾸벅 감기는 눈을 비볐다.
그때 왈패처럼 보이는 무리 하나가 주막에 들어섰다. 그들은 환을 발견하곤 화색이 되어 소리쳤다.
“환이, 거기 있었는가?”
연은 그들을 발견한 환이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눈살을 찌푸리는 걸 보았다. 잠이 확 달아나는 기분이었다. 주변을 살펴보니 환의 얼굴을 아는 다른 사람들 역시 뭔가 잔뜩 기대하는 표정으로 그의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환을 발견한 사람 중 가장 늙수그레한 할아범 하나가 그에게 소리쳤다. 젊은 시절에 한 가닥 했을 것 같은 인상에다가, 큰 덩치를 가진 노인이었다.
“씨름 참전해야지! 게서 뭐 하고 있는 거야!”
연은 눈을 둥그렇게 떴다.
씨름?
노인이 첫판을 끊어 놓자, 다른 사람들도 일제히 환에게 다가와 성화를 부리기 시작했다.
“아니 소몰이가 어디 숨어 있나 했더니, 주막에 코 박고 있었구먼. 빨리 안 나오고 뭐 하시오! 다들 기다리고 있소.”
“난 저번에 환이 성님 없는데도 게에 걸어서 낭패였지 뭐요. 돈만 날렸어! 이번엔 꼭 참전하소, 엉? 제발 내가 이렇게 빕니다!”
연은 대체 무슨 일인지 몰라 환과 사람들만 연신 바라보았다.
그러자 주모가 다가와 그녀의 앞에 있는 그릇을 치우며 말해 주었다.
“색시를 어디서 데려왔는지 모르겠는데, 환이 총각, 아니, 환이 행수가 요 근방에서 유명해. 소몰이로. 떴다 하면 씨름판 상금인 소를 싹쓸이해 간다고 해서.”
그녀가 킬킬거리며 서방 하난 참 잘 얻었다고 연에게 귀띔해주었다.
“아니 볕에서 한 번도 일 안 해 본 것 같은 살갗 흰 고운 남정네가 그렇게 힘을 잘 쓸 줄 누가 알았겠어?”
연은 놀란 눈을 하고 환을 바라보았다.
‘그게 정말이에요, 환 님?’
연은 사람들이 주변에 왁자지껄 몰려 있는데 환에게 말을 걸 수 없어 속으로 질문했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 점잖은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내심 곤란한 듯 팔짱을 끼고 있었다. 환은 금방 대꾸했다.
‘가끔 심심풀이로 참전했었습니다. 그러니까 어렸을 때요. 진팔이 놈이 소고기를 먹고 싶다고 그렇게 울어대서….’
변명을 하던 환이 재빨리 팔짱을 풀고 연을 쳐다봤다. 연을 쳐다보는 열렬한 눈빛이 그가 결백하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맹세코 머리가 크고선 인간들과 겨뤄 우승하는, 그런 부끄러운 짓 따위 한 적 없습니다. 예전에 몇 번 우승한 거 가지고 이 근방 아저씨들이 집착하면서 매해 절 찾아다니는 것뿐이에요. 절대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연 님!’
환은 짐승 수인인 제가 인간과 겨룬다는 것 자체를 매우 부끄럽게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하긴 그럴 만도 했다.
인간 사내와 수인 사내를 견주어 누가 힘의 우위에 있느냐를 따지면 단연코 수인이었다. 몇몇 수인 사내들은 인간 사내와 대결한다는 것 자체를 치욕스럽게 여겼다. 벌레를 얕잡아 보듯, 먹잇감에 불과한 인간들을 상대로 정정당당하게 겨룬다는 것 자체가 그들에겐 성립되지 않는 전제였다.
그러나 연은 그런 수컷들의 세계 따윈 관심 없었다. 그때 연의 귀에 왈패 패거리 하나가 소리치는 말이 확 꽂혔다.
“이번엔 꼭 참전해서 소 한 마리 받아 가야지!”
소.
연의 심장이 두근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이, 이 기분은….’
환을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감정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연은 자신도 모르게 가슴께를 짚으며 요동치는 심장을 잠재우기 위해 노력했다.
“연 님…? 괜찮으십니까?”
환 역시 연의 이상 반응을 눈치채고 얼굴을 들이밀었다. 연은 그런 환의 손목을 덜컥 잡았다.
“환 님. 저….”
연은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말을 뱉을까 말까 고민했다. 목젖이 출렁이고, 목구멍에 차마 꺼내지 못한 말이 고여 근질거렸다.
‘연 님? 사람들 앞이라 말하기 곤란하시면 이쪽으로 얘기하세요.’
환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열렬한 시선을 보내왔다. 늘 침착한 아내가 갑자기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달복달하는 모습을 보이니 그도 걱정이 된 터였다.
‘환 님, 그게요….’
연의 목울대가 연신 출렁였다.
‘예, 듣고 있습니다. 뭐든지 말씀만 하세요.’
환은 연이 말만 꺼내면 산도 옮겨줄 태세로 대꾸하였다.
연은 환의 태도에 힘입어 모기만 한 목소리로 작게 입술을 벙끗거렸다. 주변 사람들은 너무 작아서 못 듣겠지만, 짐승인 환의 귀로는 잡아낼 수 있는 소리였다.
“…저 소고기 맛이 너무 궁금해요, 환 님.”
* * *
“이번 판은 따 놓은 당상이라고! 어이! 내기 판 다 내려! 더 이상 변동 없기야!”
“으하하! 존나게 버티면 언젠간 승리한다고! 언젠가 환이가 꼭 참전할 줄 난 믿고 있었다고!”
환을 데리러 주막까지 찾아온 왈패거리는 물론이거니와, 곁에서 듣고 있다가 어부지리로 씨름판 노름에 참여하게 된 사람들의 얼굴은 벌써부터 승리의 예감으로 반질거리고 있었다. 마치 우승을 미리 따놓기라도 한 듯 기세등등하였다. 그 뒤를 어쩐지 심란한 눈빛의 환이 뒷짐 지고 따랐다. 그 뒤엔 당연히 종종걸음으로 남편을 쫓는 연이 있었다.
‘내가 괜한 부탁을 드린 건가.’
연은 내심 속으로 환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환이 승부에서 질 것 같진 않았으나 이건 수인으로서의 명예도 달린 일이지 않나. 만약 환이 인간들을 상대로 이득을 취하고 있단 소문이 퍼지기라도 하면 그는 웃음거리가 될 게 뻔했다.
‘봐봐. 환 님도 곤란하신지 아까부터 표정이 안 좋으시잖아.’
연은 속으로 자책했다. 한숨이 폭폭 나오는 상황이었다. 결국, 연은 환에게 다가가 그의 옷자락을 붙들었다.
“왜 그러십니까?”
한창 상념에 빠져 있던 환이 고개를 내리깔고 물었다.
“저, 환 님. 이제 와서 말씀드리는 것도 그렇지만 굳이 참가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 말은….”
연은 꿀꺽 침을 삼켰다.
“소고기 맛 안 궁금해졌어요.”
물론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연이 소고기 맛을 안 궁금해할 리가. 환은 연을 너무도 잘 알았다. 그의 얼굴에 바로 웃음이 떠올랐다.
“제 안위를 걱정하시는 거면 문제없습니다. 연 님이 마음 쓰실 건 전혀 없어요.”
“하지만 아까부터 표정이 안 좋으셨잖아요.”
연은 시무룩하게 대꾸하였다. 아무리 풍파에 치여 뻔뻔한 성격을 갖게 된 연이었지만 태생부터 낯짝이 두꺼운 건 아니었다. 연은 염치없는 제 부탁 때문에 환이 곤란한 상황에 빠졌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 별다른 건 아닙니다.”
환이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대꾸했다.
곧 이어진 그의 대답에 연은 아까부터 하던 걱정을 싹 집어치웠다.
“어떻게 하면 인간을 상대로 어렵게 이긴 척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었어요.”
환의 낯짝에는 인간을 상대로 판을 벌인다는 것에 대한 일말의 죄책감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승부에 대한 집념과 연에게 소고기를 먹이겠다는 욕망만이 가득했다.
연은 꿀꺽 침을 삼켰다. 역시 그녀의 신랑이었다.
광랑(狂狼). 무산의 그악한 지배자. 태백 출신의 풍운아. 수인들 사이에서 악명 자자한 폭군이 눈앞에 있었다.
“이기는 거야 어려운 일이 아닌데, 문제는 방법입니다. 인간들도 머리가 있는지라, 너무 쉽게 이겨버리면 의심을 사기 마련이거든요.”
환에겐 이미 인간을 상대로 승부를 벌이고 있는 점에 대한 그 어떠한 수치도 존재하지 않았다.
한번 발을 들여놓은 이상, 제대로 우승을 차지해 반드시 연에게 소고기를 먹이겠다는 음심만이 가득했다.
과연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태도였다.
그런 제 신랑을 보며 연 역시 제 역할을 하기 위해 입을 벌렸다.
“…제가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그녀의 말에 환이 귀를 기울였다. 연은 새삼 부부는 닮는다는 말을 떠올렸다.
“…제가 구경꾼의 형세를 잘 파악하고 있다가, 환 님이 너무 우세하다고 여겨질 땐 두 눈을 가리는 시늉을 할게요. 그러면 환 님께서는 잠시 지는 척을 하는 겁니다. 그러다 제가 다시 손을 내리면 기회를 엿봐 승기를 잡으시는 겁니다.”
연의 목소리에는 탐욕이 가득했다. 오로지 소고기에 대한 열망만이 이 순간 그녀를 움직인다는 듯. 승부에 사활을 걸며 내기 돈을 건 사람들에 대한 일말의 동정도 내비치지 않았다.
환이 연의 말을 들으며 눈을 빛냈다.
“…제가 부인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뒀습니다.”
부부 사기단의 결성 순간이었다.
잠시 뒤, 연은 환과 함께 모래판으로 향하는 사내들을 뒤따라갔다.
단오제에서 가장 큰 볼거리인 모래판 주변엔 벌써 수많은 사람이 터를 잡고 모여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모래판 위에서 선수들이 벌써 장하게 한판 승부를 벌이고 있었다.
연은 환호성 지르는 아저씨들과 아녀자들 사이에 껴서 환이 웃통을 훌러덩 까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또 한편에서는 햇볕에 그을려 어두운 빛을 띤 피부의 남정네들이 땀에 젖은 가슴팍에 모래를 묻히고 있었다.
그 사이에 있으니 환의 비교적으로 흰 피부가 더 도드라져 보였다. 물론 체격이나 근육으론 비할 바 없이 그의 체구가 훨씬 더 장성하긴 했다.
환이 옷을 까자 뭇 아녀자들이 얼굴을 붉히며 키득거리는 소리가 연의 예민한 귓가에 들려왔다.
‘남의 남편 보고….’
연은 볼을 부루퉁하게 부풀리고 싶은 기분을 참았다. 그녀는 대신 환을 향해 당부의 말씀을 드렸다.
“다치진 마시고요!”
환이 자신만만히 대꾸했다.
“제가 다치겠습니까?”
인간을 상대로.
맞는 말이긴 했다. 수인이 인간을 상대로 힘을 쓰는 일에 질 수 있을 리가 없다. 상당히 편파적인 경기가 될 게 분명했지만 연은 입을 꾹 다물었다. 어차피 그들의 목적은 소였다.
문득 환이 연 쪽으로 다가왔다. 다른 남정네들과 다르게 유달리 흰 피부에도 어깨며 가슴, 복근 할 것 없이 근육이 쩍쩍 갈라진 장성한 몸이 움직이자 시선이 절로 집중되었다.
“이거나 잘 가지고 계세요.”
환이 벗은 자기 저고리를 연의 품에 안겨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모습을 본 몇몇 아녀자들이 질투와 부러움이 섞인 눈으로 연을 쳐다보았다. 연은 자신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해지는 기분이었다.
곧이어 경기가 시작되었다. 이변은 없었다.
환은 정말 말마따나 씨름의 귀신이 붙은 것인지 그와 붙기만 하면 그 어떤 장정이라도 한 방에 나가떨어졌다. 어느 순간부턴 그와 붙은 사내들이 불쌍해질 지경이었다.
연은 경기를 잘 지켜보고 있다가 환이 너무 연달아 승리하는 것 같으면 적당한 때를 노려 얼굴을 가리는 시늉을 했다. 그러면 환은 잘 훈련된 군인처럼 연의 신호를 알아듣고 귀신같이 모래판 위에 엎어졌다. 그 바람에 경기는 더욱 고조되었다.
본디 항시 한 사람만 이기는 경기는 재미가 없는 법이었다. 환이 적절할 때에 져주니 사람들은 환이 행수가 한창때만은 못한다고 욕하면서도 판에 웃돈을 얹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몰리니 내기 판은 절로 커져 갔다. 중개인은 입이 찢어져라 웃으며 소리쳐댔다.
“역대급이야! 역대급 판돈이라고!”
환이 준결승에 올라가면서 단오제에 왔던 사람 거의 전부가 씨름판에 찾아와 경기에 집중하였다. 연은 남편을 응원하며 해가 지는 것도 몰랐다.
“세상에, 어쩜 저렇게 힘 하나 들이지 않고 이길까.”
환의 몸짓 하나에 여인네들이 교태 섞인 앓는 소리를 내며 함께 쓰러졌다. 거침없이 제 신랑을 품평해대는 아낙네들 사이에서 연은 혼자 발그랗게 달아올라 환의 모습을 좇았다. 그에게서 떨어지는 땀 한 방울마저 어쩜 저리 요사스럽게 느껴지는지 몰랐다. 연은 자신도 모르게 앉은자리에서 몇 번이고 자세를 바꿔야 했다.
처음엔 환의 희멀건 피부를 보고 우승하긴 텄다며 판돈을 걸지 않던 양반들도 시간이 지날수록 제 신랑의 이름만 외쳐댔다.
마지막 승부가 펼쳐졌다.
연은 우승 상금을 확인하곤 마지막 승부에서 양보하기로 마음먹었다. 일 등 상품이 소 한 마리였고 이 등이 송아지 한 마리였기 때문이다.
연은 마지막 상대와 서로 마주 보고 선 환을 차마 쳐다보지 못하겠다는 듯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색시, 긴장하지 마!”
“환이가 이기겠지!”
그걸 보고 주변에선 연이 긴장했다고 생각하고 토닥여 주었다.
환은 연의 쪽을 힐끗 보더니 마지막 판에서 힘을 쭈욱 빼버렸다. 지금까지 치고 올라온 기세가 있었기에 바짝 긴장하고 있던 상대방은 그만 환의 위로 철퍼덕 엎어졌다. 환이 이길 것이라 생각했던 좌중은 크게 놀란 듯했지만 이내 환호성이 터졌다.
“준우승이야! 그래도 준우승이라고!”
연은 두 손으로 눈을 가리고 있다가 누군가 소리치는 말을 듣고 고개를 번쩍 치켜올렸다.
설마설마했는데 진짜 준우승할 줄이야.
물론 환이 인간을 상대로 질 리가 없었지만, 실로 그들이 세운 계획이 전부 먹혀 상금으로 송아지를 타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징이 울리고, 준우승자로 낙점된 환이 가슴팍을 깐 채로 성큼성큼 연에게 다가왔다. 호흡 하나 가빠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방금 그가 쓰러트리고 온 사내는 모래판 위에 여전히 널브러져 있었다.
“수고 많으셨어요.”
연은 냉큼 일어나 환의 가슴팍이며 무릎에 튄 모래알들을 털어주었다.
인간들을 상대로 사기를 친 느낌에 아주 약간의 죄책감이 들긴 했다. 그러나 환 덕분에 판돈도 역대급으로 올랐고 단오제도 물씬 흥에 겨웠으니 그걸로 갚은 셈 치기로 했다.
연에게서 옷을 받아 꿰입은 환이 상금으로 주어진 송아지 한 마리를 데려왔다.
“키워다 잡아먹읍시다.”
연은 그 순간 환을 향한 제 연모의 마음이 더없이 커지는 걸 느꼈다. 소고기를 얻어다 주는 사내라니. 제가 들은 그 어떤 말보다 낭만적인 말이었다.
‘환 님, 너무 좋아.’
인간을 상대로 씨름판에 참전하는 것도 자존심이 상했을 텐데. 소고기가 먹고 싶다는 제 한마디에 냉큼 우승해 온 사내가 어여뻤다.
환이 송아지를 맡길 중개인을 찾아 두리번거리며 연에게 말을 걸었다.
“송아지는 맡겨두고, 마지막으로 홍등 켜는 것만 보고 돌아갑시다.”
“네, 알았어요.”
연이 그의 이마에 떨어진 땀방울을 연신 훔쳐 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그가 원하는 건 뭐든 들어주고만 싶었다. 단오제의 밤이 더욱 깊어만 갔다.
* * *
어느새 밤이 찾아와 어둑해지고 사람들이 홍등을 하나둘씩 밝히기 시작했다.
밤에도 환한 등불을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는 연에게 환이 일러주었다.
“답교놀이 하려는 모양이에요.”
마을의 가장 큰 다리로 처녀, 총각들이 삼삼오오 모였다.
그즈음 되니 연은 피곤하기도 하고 어쩐지 아랫배도 시큰시큰하면서 나른해졌다. 몸이 조금 이상했다. 아까 환의 경기를 보면서 함께 가슴 졸였던 탓일까. 물론 그가 질까 봐 가슴 졸였다기보단, 사람들이 환의 능력을 두고 인간답지 않다고 수군거릴까 봐 걱정했던 거지만.
“하러 가겠습니까?”
“답교놀이요?”
환이 물었지만 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됐습니다. 혼인 안 한 처녀, 총각들이나 하는 놀이인데요.”
대답은 그렇게 하면서도 연은 내심 다리 구경을 하고 싶었다.
답교놀이는 흔히 말하는 다리를 밟으며 하는 산책이었다. 자기 나이만큼 다리 위를 왔다 갔다 하며 노는 것인데, 한 해의 건강과 풍년을 기원하는 의미이기도 했다.
놀이가 절정에 달할 때면 다리 양쪽에 밧줄을 매어 놓고 건장한 청년들을 앞세워 서로 힘겨루기를 하기도 했다. 다리밟기는 남녀가 함께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놀이 중 하나였기에 인기가 많았다.
“많이 피곤하세요? 연 님 얼굴이 붉습니다.”
환이 그런 연을 걱정스럽게 쳐다보았다.
제 이마를 손으로 짚어보다 연의 이마를 짚었다. 그래도 성이 안 차는지 이번엔 얼굴을 끌어당겨 제 이마에 연의 이마를 대었다.
“사, 사람들이 봅니다.”
연이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고 그를 밀쳐내었지만 환은 아무렇지도 않아 했다.
“부부인걸요. 괜찮습니다.”
그러면서 이거 이상하네, 하고 중얼거렸다. 킁킁, 연의 어깨를 양손으로 잡고 귀밑머리 아래쪽의 냄새를 맡았다.
연은 그때가 되니 완전 얼굴이 빨개져 그를 밀어내었다.
“아이참, 진짜 사람들이 본다니까요.”
“연 님 냄새가 심상치 않아요.”
환이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 않고 연의 이곳저곳을 지분대며 중얼거렸다.
냄새가 심상치 않다. 그건 연 역시 초저녁부터 느끼고 있었다. 아까 씨름판에서 제 신랑이 웃통을 까고 다른 남자들과 엎치락뒤치락하며 우승해, 상금으로 송아지까지 얻어 온 걸 본 탓일까. 목청껏 소리 지르며 제 신랑을 응원하느라 너무 흥분했는지도 몰랐다. 그도 아니면 희용이를 떨어트려 놓은 게 원인일지도.
“연 님한테 발정향이 나요.”
환이 진단을 내렸다.
“아, 아닐 거예요. 그럴 리가 없어요.”
연은 그런 그를 밀어내었다. 제가 생각해도 호랑이 장가가는 날에 오는 비처럼 오락가락한 몸 상태였다.
“이러다 말겠죠.”
하지만 그녀가 밀어내면 밀어낼수록 환은 연의 목덜미에 코를 들이밀었다.
“착각하기 힘든 향입니다. 이건 진짜로….”
이번에야말로 사람들이 저희 부부를 보며 수군거리는 게 느껴졌다. 연은 황급히 환을 밀어내었다.
“이, 이제 집에 가요!”
어차피 구경도 끝났겠다, 단오제도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었다. 누군가 축제는 열흘 동안 열리니 오늘 하루는 주막에서 묵고 가란 소리도 건넸지만, 환은 이를 거절했다.
“아내 몸 상태가 좀 심상찮아서.”
그 말을 하며 저를 보는 환의 눈빛이 어쩐지 먹잇감을 앞둔 짐승의 것이라 연은 바짝 긴장하고 말았다. 연은 괜스레 제게 꽂히는 그의 정열적인 시선을 모르는 척하며 발로 흙바닥 장난을 쳤다.
“가는 길에 다리나 밟으러 갑시다.”
환이 이대로 돌아가긴 아쉬운지 다시 한번 답교놀이를 청했다.
연은 환이 내심 답교놀이를 구경하고 싶던 제 마음을 눈치챈 것일까 흠칫 놀랐다.
“알았습니다.”
표정은 태연하게 했지만 대답은 냉큼 떨어졌다. 환이 그런 연을 보고 흐뭇하게 웃었다. 역시 들킨 게 맞나 보다.
‘다들 내 표정 구별하기 힘들다고 했는데….’
연은 늑대일 때도 제 심중을 잘 내비치지 않는 편이었다. 그러나 환은 어떻게 된 일인지 제 기분을 기가 막히게 잘 알아맞히곤 했다.
“사실 구경을 가고 싶긴 했습니다.”
연은 솔직하게 입을 열었다.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환이 짓궂은 웃음을 만들어내며 대꾸했다. 연은 헛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어떻게 아셨어요?”
“몸과 마음을 다해 온 정신을 연 님께만 집중하면 됩니다.”
환이 진지하게 대답했다.
어휴, 말을 말지. 연은 새빨개진 볼을 하곤 그의 열렬한 시선을 피했다.
“거짓말 아닌데요. 저 지금 연 님한테 엄청나게 집중하고 있어요. 하기 싫어도 하게 됩니다.”
환이 억울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지금 살짝 발정향이 올라오셔서 그런지 냄새만 맡아도 꼴려요. 연 님은 잘 모르시겠지만 수컷 된 입장에선 미치겠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연 님을 당장 으슥한 곳에 끌고 가서 다리 사이를 벌리게 만들어 빨고….”
연은 환의 솔직한 말에 놀라 펄쩍 뛸 뻔했다.
“환 님! 사람들 듣습니다!”
연은 눈을 새침하게 뜨고 그를 째려봤다. 그에 환이 죽겠다는 신음을 내질렀다.
“아, 그렇게 쳐다보시면 또 자지 서잖아요.”
“아, 진짜!”
연은 화들짝 놀라 주변을 돌아봤다.
다행히 밤이어도 모인 사람들로 인해 시끌시끌해서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정말 오늘 송아지를 타 오신 것만 아니었어도 환의 허리를 꼬집었을 터였다. 그랬다면 더 죽겠다며 낄낄거렸을 남자지만.
연은 새빨개진 얼굴로 슬쩍 팔을 들어 올려 제 냄새를 맡았다. 정말 환의 말대로 발정내가 나는 걸까.
희용이를 낳고 나서 다시 찾아왔던 첫 발정은 그대로 흐지부지되었었다.
보통 암컷 늑대는 가을과 겨울 사이에 발정이 찾아오곤 했지만 한번 임신과 출산을 겪고 나면 그 시기가 변동하는 경우가 많았다. 처녀 때보다 강도가 얕았지만 횟수는 더 많아지는 격이었다.
‘왠지 부끄러워.’
인간들 사이에 있어서 다행이었다. 만약 수컷 늑대들이라도 껴 있는 무리에서 발정이 터진 거였다면 연은 고개도 들 수 없을 정도로 창피했을 것이다. 여기 임신할 준비가 만만인 암컷 하나가 몸이 달아올라 있다고 공표하는 격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자기 코로 자기 냄새를 정확히 맡을 순 없으니 연은 불안했다.
‘그래도 아직 심하진 않겠지.’
발정향은 보통 첫날엔 미미하다가 두세 번째 날에 심해지기 시작한다.
연은 본능적으로 남편인 환의 곁에 더 바싹 달라붙었다. 어차피 날도 어둑하여지고 사람들도 주변엔 신경을 쓰지 않았다.
연은 은근슬쩍 앞서가는 환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의 옷자락을 잡을 생각이었는데 그가 기척을 느낀 것인지 대뜸 연의 손을 낚아채버렸다.
‘으아….’
연은 깜짝 놀랐지만 저도 모르게 환의 손을 꽉 쥐었다. 환의 길쭉한 손가락이 깍지를 끼며 연의 작은 손을 더욱 힘껏 감쌌다.
두 사람의 옷자락이 연결되었다. 겉으로 보면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은 직접 보이지 않았다.
환이 스멀스멀 기운을 풀어내는 게 느껴졌다. 연은 온몸으로 느껴지는 익숙한 수컷 머리 늑대의 기운에 안도감이 차오르는 걸 느꼈다.
‘아…. 환 님이 나 때문에….’
연은 이제 볼이 붉다 못해 귀까지 새빨개졌다.
인간들은 느낄 수 없었지만 연에게 진짜 발정이 온 것이라면 주변 짐승들도 이를 느낄 수 있을 터였다. 그러나 환은 그녀의 발정향을 제 기운으로 덮어, 행여 다른 짐승이나 예민한 인간이 그녀의 발정기를 알아차릴 가능성을 원천 봉쇄해버렸다. 내심 불안했던 연은 제 발정향이 그가 풀어내는 기운에 지워질 걸 떠올리니 한결 편안한 마음이 되었다.
“크아앙…!”
그들이 지나가자 저잣거리에서 뒹굴거리며 구르던 길고양이 한 마리가 기겁하며 물러났다. 몇몇 떠돌이 개들 역시 오줌을 지리며 입에 거품을 물었다.
“아이구, 개새끼가 왜 그런대.”
그 모습을 본 지나가던 장사치 하나가 혀를 끌끌 차다 환을 보곤 흠칫 놀랐다. 그 역시 개와 마찬가지로 슬금슬금 뒷걸음질 쳤다.
‘환 님 때문에 그러는 거구나.’
연은 그들이 안쓰러워 발걸음을 서둘렀다.
‘화, 환 님. 기세 좀 줄여주세요. 제 발정향을 들키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러다간 주변 짐승들이 다 환 님 때문에 놀라겠어요.’
연은 종종걸음으로 환을 따라나서며 그에게 부탁드렸다.
‘싫은데요.’
하지만 환장할 대답이 들려왔다.
‘내 암컷 발정 난 거 다른 새끼가 알게 되는 게 싫어요.’
연은 그 대답을 듣자마자 멍청하게 입술을 벌리고 말았다. 부끄러운데 참 그걸 어찌 말 못 할 지경으로 기분 좋기도 했던 것이다.
이내 그들이 지나가는 길목에 파도가 휩쓸고 간 자리처럼 빈 공간이 생기기 시작했다. 누구도 환의 앞길을 막으려 하지 않아서 생겨버린 광경이었다.
‘이러면 다리에서 인간들이랑 어울리지 못하잖아요.’
연은 고개도 들지 못하며 속으로 넌지시 항의했다.
‘알았어요, 알았습니다.’
환이 다시 기운을 느슨하게 푸는 게 느껴졌다. 연은 딱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낄 정도로만 풀어진 기운에 내심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제야 다시 고개를 들고 단오제의 마지막 놀이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다리에는 젊은 처녀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그와 몇 걸음 떨어진 곳엔 기운 장성한 총각들이 처녀들 쪽을 힐끗거리며 만담을 주고받거나 딴청을 피우고 있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가족끼리 설렁설렁 다리밟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희용이를 데려올 걸 그랬어요.”
어미로서의 본능이 어디 가지 않았다. 연은 희용이 생각이 간절해져 환에게 중얼거렸다.
환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연은 환이 희용이 생각을 같이 해주지 않아 조금 서운함을 느꼈다. 그래도 금방 떨치고 환과 함께 다리를 밟기 시작했다.
“바람이 선선하니 좋네요, 그죠?”
환이 중간중간 연을 확인하며 돌아보았다. 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밤바람이 춥진 않으시죠?”
아까 웃통을 훌러덩 까고 모래판 위를 뒹군 환이었다. 희용이를 가졌을 적에 환이 꽤 크게 앓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연의 질문에 환이 자존심 상한다는 듯 짐짓 강한 척을 했다.
“누누이 말하지만, 저는 연 님 앞에서만 이리 약해지는 겁니다. 어려서 병치레 한번 한 적 없는 몸입니다.”
“네네, 알고 있어요.”
연은 제 사내의 허세가 귀엽게 느껴졌다. 늘 제 앞에서 잘 보이고 싶어 전전긍긍하는 것처럼 느껴져 그녀를 미소 짓게 했다.
부부는 다리 위를 꽤 오랜 시간 동안 천천히 거닐었다. 동네에서 제일 큰 다리 중 하나였기에 한 번 건너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연은 환의 옷자락을 쥐고 따라가며 속삭였다.
“사람이 생각보다 엄청 많네요.”
“일 년에 딱 열흘 있는 날이니까요.”
바람도 선선히 불고 주변에 재잘거리는 사람들 소리가 연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다. 이런저런 주전부리를 파는 장사치들도 다리 위에 함께 올라와 있었다. 상인들이 소리치는 소리와 구경꾼들이 떠드는 소음이 일파만파 커져 갔다. 인파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늘어났다.
“꽉 잡고 계세요. 이러다 길 잃겠습니다.”
다리가 꽤 널찍하고 컸기에 몰려드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환이 주의를 주었다. 연은 알았다고 대꾸하며 정신없이 어둑해진 다리를 밝히는 홍등 불을 구경하였다. 울긋불긋하게 켜져 온 다리를 수놓은 불빛이 마치 꽃잎처럼 아름다웠다.
“아!”
그때 다리 위를 내달리던 아이 하나가 연을 툭 치고 지나갔다.
“예끼, 이놈아!”
장난을 치며 내달리는 아이를 잡으려 아낙네가 그 뒤를 정신없이 쫓다가 다시 한번 연 주변의 무리를 잔뜩 흐트러뜨려 놨다. 그 바람에 연은 환의 손을 놓치고 말았다. 하필이면 그 사이를 무장한 군졸들 수십 명이 지나쳐 갔다.
“비키시오! 비키시오!”
사람들은 창칼로 무장한 군졸들이 다리를 건널 수 있도록 허겁지겁 공간을 만들었다.
그 바람에 연은 사람들의 틈 속에서 순식간에 길을 잃었다. 온통 부대끼는 인파 속에서 순간적으로 환의 모습을 놓쳐버린 것이다.
평소라면 씩씩하게 환의 냄새를 따라 도로 그에게 돌아갔을 연이었다.
그러나 주변의 냄새가 온통 뒤섞이고 강물의 비린내까지 얽혀 환의 냄새를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그녀의 코가 개 코여도 이렇게 혼비백산한 가운데선 갈피를 잡기 힘들었다.
‘어쩐다.’
설상가상으로 몸의 열기가 이상하게 후덥지근한 게, 발정향이 제 안에서 퍼져가는 걸 느꼈다. 환이 내리누르고 있던 기세가 멀어지니 자연스럽게 나타난 현상이었다.
그로 인해 연은 제게서 나고 있던 짐승의 발정향이 생각보다 컸음을 알아챘다. 이젠 제 코로도 제 냄새를 알아차릴 수 있을 지경이었다.
연의 얼굴이 금방 곤란으로 붉어졌다. 정신도 조금 몽롱해지는 듯했다.
“이놈의 여편네가 여기 있었네!”
그때 누군가 연의 팔을 낚아챘다.
연은 깜짝 놀라 황급히 뒤를 돌았다. 처음 보는 사내였다.
“어라? 우리 마누라가 아니네.”
사내 하나가 뒷모습만 보고 연을 자신의 아내라고 착각한 것이었다. 그는 연에게 사과했지만 붙든 손을 놓진 않았다.
사내는 일 년에 몇 번 없는 휴식 기간인 단오제에 술을 거하게 걸친 찰나였다. 그의 코와 귓불이 술기운에 달아올라 있었다.
사내는 연의 얼굴을 보자마자 눈을 부릅떴다. 마르기만 하고 볼품없는 곰보 핀 얼굴을 가진 제 마누라와는 천지 차이인 말간 얼굴이 당혹감에 빠져 저를 올려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내의 눈이 연을 위아래로 훑었다. 맨질맨질한 까만 머리에 호두처럼 동그란 두 눈, 작게 솟은 코가 앙증맞고, 윤택하게 빛나는 흰 피부가 유독 하얀 미인이었다. 당황해서 살짝 벌어진 연의 입술마저 붉어 색정적으로 다가왔다.
사내의 목울대가 출렁이며 넘어갔다.
‘히야…. 물올랐네.’
다른 동물에 비해 후각이 예민하지 않았지만, 인간도 짐승은 짐승이었다. 인간 중에 짐승의 발정향을 민감하게 알아차리는 개체도 있는 법이었다.
사내는 연에게서 다른 여인들과 다른 뭔가를 알아차리고 침을 꼴깍 삼켰다.
기이하게 처음 본 이 여인에게 음심이 동했다. 어쩐지 사내의 가랑이 사이의 하초를 뻣뻣하게 만들고 목을 바짝바짝 타게 하는 뭔가가 이 여인에게 있었다.
‘어디 기생인가…. 촌구석에 이런 물건이….’
사내는 연이 풍기는 심상치 않은 발정의 기운을 유곽 출신이기 때문이라고 단단히 착각하고 말았다. 그녀를 기생으로 본 것이었다.
“놔주세요.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연 역시 뭔가를 느끼고 손을 비틀어 남자에게서 벗어나려 했다.
그러나 사내가 재빨리 그런 연의 팔뚝을 낚아챘다.
“잠깐만, 우리 어디서 보지 않았소? 어디 사시오? 장간거리 출신이요?”
사내가 술에 벌겋게 달아오른 주먹코를 들이밀며 치근덕거렸다. 장간거리는 무산 근처의 가장 큰 향락촌의 이름이었다.
엄연히 쪽까지 찐, 남편 있는 부녀자의 모습을 한 연이었다. 이는 아주 큰 실례가 아닐 수 없었다.
심지어 연은 그런 향락가가 존재하는지도 몰랐다. 늑대 암컷이 그런 인간들의 유곽 따위 알아서 뭐 하나. 그저 빨리 이 기분 나쁜 사내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
“왜 이러십니까. 놔주세요.”
그러나 사내는 계속해서 연의 팔을 붙들고 희롱하길 멈추지 않았다.
연은 눈살을 마구 찌푸렸다. 확 이 인간을 물어뜯고 도망가 버릴까. 하지만 그러기엔 너무 보는 눈이 많았다.
“거, 혼자요? 혼자면 나랑 같이 저 다리 밑에 조용한 곳으로 갑시다. 엽전은 여기 많네.”
사내가 경박스럽게 제 허리춤에 걸친 주머니를 흔들어 보이며 누런 이를 드러냈다. 사내의 의도를 눈치챈 연은 기겁하며 물러나려 했다.
그때 묵직한 손아귀가 턱 사내의 팔을 낚아챘다.
탁-!
그 바람에 순식간에 연의 팔이 사내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비틀거리던 사내는 꽤 큼지막한 소리와 함께 엉덩방아를 찧었다.
“어이쿠, 허리야. 웬 미친놈이…!”
“혼자일 리가 있나.”
익숙한 목소리가 연의 등 뒤에서 터져 나왔다.
그 순간 연은 온몸에 흐르기 시작했던 식은땀이 확 식는 걸 느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미친 듯이 뛰던 심장이 가라앉고 갑자기 고요한 바다처럼 차분한 안도감이 밀려들었다.
환이었다. 제 반려가 저를 찾아 돌아온 것이었다.
환과 떨어져 후들거리던 다리가 진정을 되찾고 마구 쿵쾅거리던 심장 박동 역시 원래 박자대로 맞춰지기 시작했다.
“척 봐도 귀한 댁 마님이신데, 네 동태 눈깔엔 그런 것도 안 보이나 보지?”
사내의 팔을 잡아 뽑을 듯 움켜쥔 환이 어둑해진 시야 속에서 매섭게 으르렁거렸다.
“누, 누구시오!”
환이 심상치 않은 자임을 짐작한 사내가 외쳤다.
“누구겠어. 여기 이 귀하신 여자분 바깥양반.”
환이 툭 내뱉었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주변에 다 들릴 정도로 충분히 컸다.
그 바람에 그들의 주변에 몰려 있던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북적거리는 다리 한가운데였지만 다 따지고 보면 이웃 동네 사람들이었다. 사람들은 남의 아내를 건드린 파렴치한이 누구냐며 웅성거렸다.
“어, 어이쿠! 미안합니다. 바깥양반 계신 줄 몰랐네! 잘못 봤어요. 내가 눈이 삐었나!”
연에게 몹쓸 추파를 걸었던 사내는 냉큼 꼬리를 내렸다. 주위의 시선도 시선이었거니와 제 앞을 가로막은 남자가 보통 사내가 아님을 진작 짐작했기 때문이다. 같은 수컷끼리의 본능이 사내를 위협하고 있었다. 도망치라고.
“아니, 이 미친 영감탱이가! 여기서 뭐 하는 거요!”
그때 누군가 인파를 헤치고 앞으로 나왔다. 사내의 아내인 듯했다.
환의 서슬 퍼런 기운을 받아내지 못하고 주춤거리며 물러나던 사내가 화들짝 놀랐다.
연은 사내가 자신인 줄 착각하였다는 아내를 유심히 눈여겨보았다.
과연 사내의 아내는 연처럼 작은 체구를 지니고 있었지만, 전혀 다른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늙수그레한 외양은 아무리 봐도 연의 또래로는 보이지 않았다. 이는 두세 개가 휑하니 나가 있었고 기녀처럼 대충 틀어 올린 머리는 연처럼 쪽을 찌고 있지도 않았다.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더 심해졌다. 이제는 사내가 정말 저를 아내로 착각한 것인지 의심이 갈 정도였다.
“에이, 우라질! 여자가 어딜 하늘 같은 서방 일에 참견을 해! 퉤! 재수가 옴 붙으려니!”
아내가 달라붙어 일이 커지자 사내는 엉거주춤 일어서 바가지를 긁기 시작한 여자를 대충 끌곤 서둘러 사라져버렸다. 사태를 처음부터 지켜보지 않은 사람도 사내가 상당히 당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다급한 몸짓이었다.
“쯧쯧, 저 양반 시간 날 때마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장간거리를 들락날락하더니. 이젠 하다 하다 남의 귀한 부인한테까지 저 지랄을 하네.”
“저 댁 여편네만 죽상이지. 어쩌다 저런 신랑을 만나 가지고, 으이구.”
비록 환과 연의 행색은 그다지 고귀하지 않았지만, 환이 이미 입으로 귀한 부인이라고 시인한 연이었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허우대가 멀쩡한 두 사람을 신분을 감추고 단오제에 참석한 높으신 분들이라고 생각하였다. 그와 동시에 환과 같은 남자를 남편으로 둔 여인에게 파렴치한 짓을 한 사내를 저마다 욕하기 바빴다.
연은 사람들의 웅성거림을 들으며 환에게 다가갔다.
“환 님…!”
환은 남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고 연의 손을 덥석 붙들었다. 그걸 본 몇몇 젊은 처자들이 얼굴을 붉혔다.
연은 제가 무사한지 이곳저곳을 살피는 남편의 행동에도 그 순간 창피함은커녕 안도감을 느꼈다.
‘다행이다.’
환과 육체적으로 맞닿으니 다시 심신에 물결과 같은 안정이 밀려들었다. 그와 동시에 아랫배에서 뭔가 콕콕 터지는 것 같은 싸함이 느껴졌다.
연은 그 순간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찔 떨었다. 연 역시 경험해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터였다. 그러나 이건 분명한 발정의 전조였다.
연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살짝 들어 올려 환의 표정을 살폈다. 부부의 눈이 마주치고 연은 황급히 눈을 내리깔았다.
‘환 님 시선이….’
너무 뜨거워.
연은 갑자기 다리 사이가 젖어 들고 목덜미에 열이 화끈하게 오르는 걸 느꼈다.
“…안 되겠습니다. 지금 당장 떠나야겠어요.”
연은 주변을 둘러보며 불안하게 중얼거렸다. 구경거리가 없어진 사람들은 이미 그들의 주변을 떠난 지 오래였다. 그러나 다리 위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많았다.
연은 발정기를 맞은 암컷다운 태도를 보였다. 불안함에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으슥한 곳으로 가고 싶은 본능을 억누르지 못했다.
그때 꼼지락거리는 연의 손을 환이 냅다 붙들었다. 그리고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연은 그가 자신이 부탁한 대로 다리를 빠져나가는 걸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송아지를 맡겨둔 곳에 찾아가려는가 싶었다. 그러나 환의 발걸음이 향하는 방향은 그곳이 아니었다.
“환 님, 어디로….”
연은 보다 못해 종종걸음으로 환을 쫓다 물었다. 환은 대답하지 않고 뭔가를 찾듯 계속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그 모습이 마치 숨을 곳을 찾는 짐승처럼 민첩해 보였다.
연은 제 몸이 기이하게 계속 달궈지는 것을 느꼈다. 뭔가 이상했다.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터질 것만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허공에 대고 짐승처럼 냄새를 맡으며 바람의 방향을 확인한 환이 냅다 연의 몸을 들어 올렸다.
연은 소스라치게 놀라 환의 목을 붙들었다.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혹여 누가 보기라도 했을까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연은 소리쳤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날도 이미 저물었고, 아무도 못 봤습니다.”
그러나 환은 아랑곳하지 않고 연을 소중하게 고쳐 들더니 위풍당당한 걸음걸이로 한 방향을 향해 걸었다.
종잇장 들듯 가벼이 제 부인을 안은 환이 도착한 곳은 다리 밑에 있는 거리의 아주 으슥한 골목이었다.
연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런 구석진 곳에 빈 곳간이 하나 있었다. 겉은 아주 낡아 보였는데 최근까지도 사용되고 있었는지 의외로 안은 먼지 하나 보이지 않도록 깨끗했다.
“환 님. 여긴 왜….”
연은 당혹감에 중얼거렸다. 어쩌면 물어보면서도 이미 대답을 알고 있었다.
환이 한쪽 눈썹을 치켜세우며 입을 열었다.
“안 되겠습니다. 한 번만 하고 갑시다.”
표정 하나 바꾸지 않은 당당함이었다. 마치 맡겨둔 물건 찾아오기라도 하듯 오만함까지 엿보였다.
연은 예상했음에도 치밀어 오는 당혹감에 입술을 깨물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환은 연에게 주춤거릴 시간도 주지 않았다. 연의 몸을 높게 쌓아 올려진 짚더미에 앉힌 그가 바로 그녀의 치맛자락을 걷어 올렸다.
“지금 연 님 향이 절정입니다. 제대로 터지셨어요.”
제 밑으로 기어들어 와 단숨에 두 허벅지를 벌리는 그의 행동에 연은 기겁하며 숨을 헉 들이마셨다.
말갛게 드러난 흰 허벅지를 입술의 연한 살을 이용해 가볍게 깨문 그가 신음했다.
“후우, 미치겠네. 연 님은 알고 계셨는지 모르겠어요. 아까부터 제가, 씹, 이걸 참는다고….”
말캉한 혀가 허벅지 안쪽을 더듬고 올라갔다. 연은 견딜 수 없이 야릇한 감각에 두 종아리를 버둥거렸다. 그러자 두 손이 그녀의 다리를 꽉 붙들었다.
“화, 환 님. 잠깐, 잠깐만….”
연은 그를 멈추려고 시도는 해봤다. 그러나 사방은 어둑했다. 저도 늑대인지라 예민한 후각으로 이미 근처에 사람이 없음을 알고 있었다. 설사 있더라도 이젠 연이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오늘 뭔 일이 벌어져도 벌어지겠다 싶던 참이었다. 다리 위에서부터 저를 바라보는 환의 표정도 심상치 않았거니와 제 몸 상태도 몸 상태였다. 온몸은 이미 휘몰아치는 발정향의 여파로 흐물흐물 녹아내리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그와 정신없이 몸을 겹치길 누구보다 원하는 사람이 스스로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사이 환의 머리는 허벅지 안쪽으로 더 기어들어 왔다. 속곳을 벗기는 손길이 평상시보다 거칠고 다급했다. 연은 거대한 어깨 위로 들어 올려진 종아리를 버둥대면서도 그가 속곳을 벗길 수 있게 도왔다.
“흐읍…!”
환의 입술이 바로 다리 사이의 밀지로 파고들었다. 연은 치마폭 속에 들어온 사내를 정신없이 끌어안으며 밭은 숨을 퍼트렸다. 눈앞이 새빨개지는 흥분감에 둘 다 제정신이 아닌 듯했다.
“하앙…!”
연은 자신도 모르게 앙칼진 암괭이 울음소리를 내곤 깜짝 놀라 입을 틀어막았다. 제 허벅다리를 가볍게 문 그가 웃음소리를 내었다.
“왜요. 그냥 신음 소리 들려줘요. 나 더 흥분하게.”
허벅지 사이에서 그의 낮은 저음이 들리자 안쪽이 바르르 떨리듯 진동하는 기분이었다.
“완전 제대로 젖었어요, 여기. 막 흘러.”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그가 액이 흐른 부분을 길게 핥아 올리며 다시 파고들었다. 혓바닥이 통통히 부풀어 오른 음순 주위를 길게 문지르는 느낌이 말로 형용 못 할 정도로 색스러웠다.
“아흑…!”
연은 제 가랑이 사이에 무릎 꿇고 정신없이 빨아대는 사내의 뒤통수를 내려다보다 결국 자지러지며 뒤로 넘어갔다.
통통 튀고 난리가 난 종아리가 등을 사정없이 후리는데도 환은 아랑곳하지 않고 보지를 빠는 데 여념이 없었다.
이윽고 짤막한 절정을 느낀 연이 외마디 비명과 함께 몸을 움찔 떨었다가 추욱 늘어뜨렸다. 가늘게 눈을 뜬 연의 시야로 어둠 속에서 사내의 몸이 일어서는 게 보였다. 빛이 없는 곳에서도 연의 눈은 그의 얼굴을 가감 없이 알아볼 수 있었다.
저를 발라먹을 듯이 쳐다보는 완벽한 짐승의 눈. 제 신랑의 상태를 알아차린 연의 심장이 단숨에 졸아들었다. 제 심장이 제 것 같지 않게 쿵쾅거리고 있었다.
연은 숨길 수 없는 발정기임이 분명했다. 지금 신랑이 제 안으로 들어와 좆질을 하고 안에 사정한다면 빼도 박도 못하게 매듭이 지어질 터였다. 그렇다면 두 수인은 꼼짝없이 아래가 연결된 채 아침까지 이 곳간을 빠져나가지 못하리라.
덜컥 겁이 들었다. 연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참고, 제 다리를 벌려 그 사이로 들어오는 환을 밀어내었다.
“자, 잠시만요. 환 님…. 여기선 안…!”
“알아요, 알아. 여기서 안 해.”
그러나 후욱, 거친 숨을 뱉어내는 환의 목소리는 이미 손쓸 수 없을 정도로 가라앉아 있었다. 바들바들 떨며 밀어내려는 가느다란 팔을 제압하곤 통통하게 여문 엉덩이를 한가득 주물렀다. 연의 다리가 자연스럽게 더 활짝 벌어졌다. 그곳에 이미 팽팽하게 곤두선 물건을 비비며 환이 그녀의 귓불을 물었다.
“하아, 그래도 넣는 건 괜찮죠?”
참을 수 없다는 듯 연의 허벅다리와 엉덩이를 과실의 과즙을 짜듯 벌려 주무르는 손길이 매우 노골적이었다. 앞서 전력으로 달리기라도 한 것처럼 연의 몸 앞에서 거친 호흡을 내뱉는 사내의 요구는 너무나도 유혹적이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서른 번만 왔다 갔다 할게, 응?”
연은 판단력이 술에 물을 탄 것처럼 흐려지는 걸 느꼈다. 그녀는 웅얼거렸다.
“저, 절대 여기서…. 그건 하시면 안 돼요, 알았죠?”
“응, 알았어요. 씨발, 그런 거 걱정하지 말고, 응?”
그가 잡고 있던 연의 골반을 바짝 당겼다. 연의 시야가 순식간에 그의 가슴팍에 가려졌다. 환이 호흡을 거칠게 뿜어내며 그녀의 안으로 들어왔다.
연은 환의 목에 팔을 걸고 고개를 그의 가슴팍에 묻었다. 환이 그르렁거리는 신음을 내뱉었다. 그녀의 것이 미칠 듯이 수축하며 그의 것을 죄어왔다. 눈앞이 새하얘지는 쾌감에 그가 이를 사리물었다.
“아! 으응! 흣…!”
이윽고 첩첩거리는 살을 치대는 소리가 날 정도로 격한 출납이 시작되었다. 들어갈 때마다 바짝 조이며 수축하는 안쪽이 그의 것을 씹어댔다. 연의 눈이 짙은 욕망으로 흐트러졌다.
그렇게 안고 또 안은 아내의 몸인데 여전히 처음 들어왔던 그때처럼 그를 미치게 만들었다.
환은 정신없이 그녀의 안을 뭉갰다. 어이없음에 실소가 나올 지경이었다.
“왜 이렇게, 맛있게 먹어요, 나 환장하게….”
처음부터 정낭이 음부에 철썩 달라붙을 정도로 격한 삽입이었다. 연의 상체가 환이 밀어붙이는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자꾸 둥글게 휘었다. 환의 몸이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따라붙었다. 연이 걸터앉은 짚더미가 마구잡이로 흔들려 곧 무너질 것만 같았다.
지탱할 곳을 곧 잃을 위기에 처한 연이 환의 몸에 더욱 달라붙었다. 앓는 듯 끙끙거리는 소리가 연의 목구멍에서 터져 나왔다.
“으응, 흣, 악…!”
갑자기 몸이 번쩍 들어 올려졌다. 휘청이는 짚더미에서 연을 번쩍 들어 올린 환이 그대로 그녀를 벽에 기대게 했다.
순간 연의 온몸이 벽과 환의 단단한 몸체 사이에 찌그러질 정도로 깊은 삽입이 이루어졌다. 연은 이를 악물고 짓쳐오는 사내의 몸짓을 감내했다. 스물넷…. 스물다섯…. 얼마 지나지 않아 발가락이 곱아들고 종아리가 그의 근육질 허리에 붙었다.
“하으응!”
이내 빠른 절정이 찾아왔다. 그를 품은 곳이 빠듯하게 조여들며 연의 상체가 무너져 내렸다. 그녀가 몸서리치며 신음을 내뱉었다.
그런데도 환의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다. 약속한 서른 번이 지났는데, 가혹한 허리 짓은 계속됐다.
“딱 서른 번만 더….”
진짜 약속. 그가 연의 귓불을 깨물며 다급하게 중얼거렸다.
연은 몸부림쳤지만 이미 온몸을 환에게 의탁하고 있는 자세였다. 벗어날 길이 없었다. 턱턱 치받는 소리에 그녀의 종아리가 정신없이 흔들렸다. 연의 눈가에 어느새 눈물이 고여 떨어졌다. 너무 격한 몸짓에 허벅다리 안쪽이 저릿해져 왔다.
발정기에 접어든 몸은 금세 신호가 왔다. 정신없이 나부끼는 연의 몸에 다시 힘이 들어가기 시작하고 애처로운 신음이 격해져 갔다.
그때였다. 한계까지 예민해진 연의 귓가에 소음이 들려왔다. 사람 목소리였다.
“장 서방이 이번에 또 계집질하다 걸렸다던데?”
“무슨 소리야. 아까 얼굴 허옇게 질린 게 처녀 귀신이라도 본 것 같더구먼….”
연은 격한 호흡을 들이켜며 환의 팔을 끌어안았다.
환 역시 움직임을 잠시 멈췄다. 그 바람에 그의 좆이 빠듯하게 안으로 들어차자, 연은 다시 흐느낄 뻔했다.
“후우, 괜찮아요. 어차피 여기로 못 들어와.”
환이 재빨리 그녀를 달랬다.
그의 말이 맞았다. 늑대의 귀에 들릴 정도면 아직 거리가 멀다는 뜻이었다.
“당신은 저기 신경 쓰지 마. 나한테 집중해요.”
그러면서 질금질금 담금질한 안쪽을 비비기 시작했다. 연은 기겁하며 그의 가슴을 팡팡 때렸다. 그러면서 환에게 정신없이 속삭였다.
“그, 그래도…. 하으, 읏!”
“뭐가 그래도야. 아, 또 조였어. 이러면서 맨날 먼저 그만하려고 하고….”
연 님은 진짜 나빠요. 그가 으르렁거리며 핀잔하였다. 다가오기 시작하는 발소리는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환이 격한 호흡을 내뿜으며 입술로 그녀의 목덜미를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이번에 진짜 끝낼게요, 응? 소리도 크게 안 내고, 안에 하지도 않고. 오십 번 만에 빠르고 간결하게 한 방. 어?”
삼십 번에 또 삼십 번이 추가됐다가 이번엔 다시 오십 번이 얹어졌다. 연은 울며 겨자 먹기로 다시 환의 목덜미에 팔을 걸었다. 모종의 허락인 셈이었다.
“안에 하시면 안 돼요, 알았죠?”
연은 다시 한번 당부했다. 여기서 그와 몸이 엮인 채 밤을 지새우는 것만큼은 안 됐다.
“응, 응. 알았어요. 안에 안 할게요.”
환이 거듭 약속했다. 그가 입가를 끌어 올리며 다시 그녀의 안에 천천히 박아 넣기 시작했다.
“아…! 읍, 흐으…!”
연은 다시 신음이 터져 나오려는 걸 입술을 깨물어 참았다. 눈물이 찔끔 배어 나왔다. 헤어 나올 수 없는 성감에 정신과 육체가 지배되는 기분이었다.
인간들의 발걸음이 더욱 커져 갔다. 그와 동시에 얽힌 아래에서 나는 질척하게 살 치대는 소리가 더는 숨길 수 없을 만큼 울려댔다.
연은 환의 품 안에서 바르작거리며 몸부림쳤다. 그가 주는 감각과, 가까워져 오는 사람들에게 들킬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연을 믿을 수 없게도 더 달아오르게끔 만들었다.
“읍, 흐응…!”
입술을 짓씹는 연에게 환이 입맞춤했다. 입이 막혀 안쪽을 씹지도 못하고 연의 신음이 목구멍에 걸렸다. 그 와중에 첩첩 소리를 내는 아래는 완벽한 박자로 틀어박히고 있었다. 질끈 감긴 연의 눈 사이로 기어코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짐승일 때나 내뱉을 법한 신음이 환의 입술에 틀어막혀 가슴께에서 끅끅거렸다.
마흔일곱…. 마흔여덟….
빠르게 움직이는 환의 허리가 활짝 벌려진 연의 다리 사이 속으로 파묻혀갔다. 이미 흥건한 액이 허벅지를 타고 종아리까지 흘러내린 뒤였다.
자박자박.
“…흐읍!”
유달리 발소리가 가까이 들려왔다. 더는 어떻게 해 볼 수 없을 지경으로 혼을 놓아버린 연의 입술이 벌어졌다.
턱-! 그 순간 환이 거세게 그녀의 끝까지 치받고 들어왔다. 깜짝 놀란 그녀의 골반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엉치뼈가 들리고 엉덩이가 스스로 움직이며 그의 것을 조이기 시작했다. 내벽이 그의 것을 씹듯이 조여대자, 환은 신음을 토해내지 않기 위해 어금니를 사리물었다. 동시에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는 연의 입술을 커다란 손바닥으로 막았다.
“…우읍!”
정신없이 경련하는 연의 몸이 환의 몸에 들러붙었다. 안으로 쏘아져 들어오는 정액을 느끼며 뭔가가 연의 눈가에서 줄줄 쏟아졌다.
입과 다리 사이가 그에게 온전히 틀어막힌 채 감각에 허우적대는 여체를 붙잡은 환이 다시 한번 허리를 퉁겼다.
한 번, 두 번, 세 번…. 꼼꼼히 싸준 정액을 안에 처바르듯 좆 기둥이 안쪽을 무섭게 메꾸고 비벼댔다.
연은 그의 몸짓에 흔들리며 넋을 놓고 있다가 바로 가까이 들리는 발자국 소리에 눈을 부릅떴다.
터벅, 터벅….
환 역시 몸을 굳혔다. 그러나 처박힌 좆은 빼내지 않았다. 연의 안쪽이 다시 한번 올라붙으며 조이자 그가 미세한 신음을 흘렸다.
“가만있어요.”
그가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눈을 꼭 감은 연의 안쪽이 다시 바짝 수축하자 그가 잠깐 웃음을 흘린 것도 같았다.
이윽고 바깥을 지나가는 사내들의 발소리가 줄어들었다. 멀리 간 것 같았다. 연은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고개를 바짝 치켜들고 애꿎다는 듯 손으로 솜방망이질 하며 환의 가슴팍을 푹푹 내리쳤다.
“안에 안 싼다고…!”
속았다는 서러움에 저도 모르게 다시 눈물이 핑 돌았다. 환이 얼른 그런 그녀의 허리를 다정하게 문지르며 대꾸했다.
“안에 안 했잖아.”
“이게 안 한 거예요!”
연은 아직도 연결된 부위가 생생히 느껴지는 아래를 힐끗 보며 작게 소리 질렀다.
“안 부풀렸잖아요. 안에 안 싼다고는 말 안 했는데.”
연은 그의 당당한 미소를 보곤 대꾸할 말을 잃었다. 정말 그의 말마따나 연의 안에 깊숙이 틀어박힌 좆은 외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환이 그것을 설설 빼내자 툭 하는 소리와 함께 꺼떡거리는 좆 기둥이 모습을 드러냈다. 애액과 정액으로 엉망이 된 몰골이었다.
“이거 참는 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닌데….”
환이 불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딴에는 정말 억울한 모양새였다. 연은 그를 향해 눈을 흘겼다.
“삐지기 없기예요. 이리 와요, 아래 쓰라릴 거 아니야. 빨아줄게.”
대충 정리해 바지춤을 추스른 그가 연을 다시 예의 짚더미 위에 내려놓았다. 환이 부은 연의 눈가를 바라보며 혀를 끌었다.
“또 울었어요?”
“환 님 때문이에요.”
연은 억울했다. 힘들다고 온몸으로 표현했는데 입까지 막아놓고 저를 몰아친 건 제 신랑이었다.
“알았어요, 내가 다 잘못했어. 그러니까 다리 좀 벌립시다.”
환이 다시 재주껏 연을 달래기 시작했다. 연은 흥흥거리면서도 다시 제 밑으로 기어들어 가는 환의 손을 잡으며 얌전히 허벅지를 벌렸다.
* * *
발정기는 발정기였는지, 연의 아래를 정신없이 빨아대다 다시 불이 붙고 말았다. 그러나 한 번은 참았어도 두 번까지는 장담 못 할 일이라, 연은 제 보지를 눈앞에 두고 환장하는 사내를 겨우겨우 밀어낸 뒤 곳간을 벗어났다.
“집에 돌아가서 해요, 집에.”
환은 기어코 집에선 끝까지 가도 삐지지 않겠단 약속을 받아내었다.
“그래도 아직 밀어낼 정신은 있으신가 봐요.”
그가 키득거리며 놀려대는 말에 연은 새빨개진 채 대꾸를 포기했다. 정말 환의 말마따나, 발정기의 절정에 달할 때의 연은 그를 밀어내긴커녕 조금이라도 오래 그의 것을 담고 싶어 몸부림치는 걸 아는 까닭이었다.
부부는 황급히 말에 올라탔다. 상금으로 받은 송아지도 야무지게 챙겼다.
아까 마을로 향할 땐 경치도 구경하며 천천히 말을 몰았던 환은 거의 달리다시피 하며 초가에 도착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도달한 곳엔 육아에 지친 진팔이 잠든 희용이를 배 위에 올려두고 뻗어 있었다.
“욕봤다, 진팔아.”
환이 진팔을 깨워 그의 손에 송아지 줄을 쥐여 주며 말했다.
“잘 키워서 잡아먹자꾸나.”
송아지를 발견한 진팔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형님 혹시 씨름….”
“쓰흡! 씨름, 뭐 그런 데 참가하고 그런 거 아니다. 이 형님을 뭐로 보고.”
진팔의 말이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중간에 그의 말을 자른 환이 호통을 쳤다.
연은 그런 남편을 보며 진팔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진팔에게도 코가 달려 있는지라 냉큼 연의 상태를 눈치챈 후였다.
“저, 전 가봅니다. 당분간 안 오겠습니다.”
눈치 빠른 그는 송아지 줄을 쥐고 부리나케 도망치듯 떠났다.
연은 희용이를 안아 들고 자리에 제대로 눕힌 뒤 진팔이 미리 끓여 놓은 물로 몸을 씻었다.
욕탕에서 황급히 땀과 먼지에 전 몸을 씻어내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화, 환 님…!”
연은 깜짝 놀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웃통을 활짝 깐 환이 서 있던 것이다.
“진팔이도 없고, 희용이도 자고요. 약속했던 거 해주시깁니다?”
환이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다가와 연의 손에 들려 있던 바가지로 물을 퍼 저도 머리를 감았다. 쏴아, 쏴아. 훌러덩 바지까지 벗어 던진 환이 냇가에서 멱 감듯 흙먼지 뒤집어쓴 몸을 씻어 내렸다.
마침 저도 씻는 걸 마친 터라 연은 속곳 차림을 하고 방 안으로 성급히 줄행랑을 쳤다.
방에 들어와선 옷을 갈아입고 굳이 희용이 곁에 바짝 붙어 누웠다.
연은 팔을 들어 올려 제 겨드랑이 사이 냄새를 킁킁 맡았다. 전 느낄 수 없지만 분명 발정향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게, 아랫배가 뜨겁고 다리 사이가 축축하게 젖어 들고 있었다. 이렇게 점점 진해지다가 내일이나 모레쯤엔 정말 절정에 달할 테다.
또 한다고 했으니까, 또 하겠지.
연은 괜스레 밀려드는 기대감 아닌 기대감과 약간의 걱정으로 희용이를 재우는 척 통통한 아기의 배를 연신 두드렸다. 토닥토닥.
탁.
그때 상반신을 벗어 던진 환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가 돌아오자 연의 코가 반응했다.
수컷 내가 물씬 풍겼다. 역시 여느 저잣거리로 나가 온갖 체향을 맡아도 제일은 제 신랑 냄새라는 게 실감이 났다.
환은 아무 말도 없이 다가왔다. 뒤에서부터 환의 팔이 밀려 들어와 연의 몸이 순식간에 희용에게서 떨어졌다.
“으앗.”
“희용이만 토닥거리지 마시고 신랑도 좀 해주세요.”
연은 볼을 붉혔다.
“애, 애도 아니고. 누가 토닥거려야 주무실 겁니까.”
환이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날 정도로 낮게 웃었다.
“배 말고 그 아래를 토닥거려 주시면 좋을 것 같은데.”
환의 뼈 있는 말에 연의 시선이 절로 움푹 솟아오른 환의 바지춤으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벌써부터 연의 체향을 맡고 함께 발정 난 수컷의 몸은 뜨끈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연을 제 몸 위에 태운 환이 연신 허리를 퉁기듯 들썩였다.
“하아…. 연 님 향 때문에 진짜 매번 미치겠어요.”
연은 눈을 질끈 감았다.
하필이면 발정이 오늘 터져버려선.
단오제에서 물씬 즐기다 집에 와서 좀 쉬려나 싶었더니 이젠 이놈의 몸이 그녀를 가만두지 않았다.
연의 허벅다리를 잡고 벌린 뒤 제 하체를 감싸게 한 환이 그대로 허리를 위아래로 연신 퉁겨대었다. 그 바람에 은밀한 부분이 계속 마찰되어 연은 신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아, 진짜…. 향이 점점 진해지네요.”
환이 그녀의 귓바퀴를 물며 속삭였다.
“임신시키고 싶어.”
그 말에 연의 아랫배가 움푹 좁아 들었다.
연의 목가를 연신 지분대던 환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녀의 치맛자락을 훌러덩 벗겨버린 그가 자신의 바지춤 역시 끌어 내렸다.
배꼽까지 올라붙은 거대한 좆을 대충 끼워 맞추고 단번에 올렸다. 이미 젖어 충분히 준비된 그녀의 아래는 그를 약간 빠듯하지만, 곧장 수월히 받아들였다.
“흐읏, 아악…!”
“화씨, 조여….”
애액이 넘실거려 흐르는 안쪽은 댕돌같이 단단한 좆을 품으며 막힘없이 조여대고 있었다.
“존나게 좋아요, 연 님. 막 뜨거워서 데겠어….”
오늘따라 환의 입이 거칠었다. 낮에 단오제의 씨름판이 영향이었나 싶었다.
엉덩이를 주물럭대는 손길도 거칠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 그게 오히려 기이하게 연의 흥분을 도왔다.
“흐읍, 하으윽…!”
이윽고 철썩거리는 소리가 날 정도로 환이 허리를 위로 박아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꽉 조여대는 보지 구멍을 파고 드나들었다. 첩, 첩, 첩.
“흐으, 아아…!”
그때쯤 되어선 연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어쩜 이렇게 빨리 흥분도가 높아질 수 있을까.
“허벅지에 힘 더 줘요. 보지는 힘 풀고. 씨발, 끊어질 것 같잖아.”
“흡, 희, 희용이 듣는…. 아…!”
“아기는 자니까 신경 쓰지 말고…. 씹.”
애 신경 쓰지 말고, 둘이서 둘째나 빨리 만들어요.
마지막 속삭임이 연의 정점을 파고든 듯했다.
환의 위에 올라탄 채 연은 그네를 타듯 앞뒤로 넘실넘실 흔들렸다.
“아까 연 님 그네 타실 때부터 이 짓 하고 싶어서, 내가 씨발….”
동그랗고 조막만 한 엉덩이에 곧추선 좆을 찧어 넣으며 환이 그르렁거렸다. 짐승같이 신음하며 정신없이 안을 파고들었다.
“아, 아…! 흡, 으읏…!”
저고리를 풀어 헤치자 댕젖 같은 가슴 두 알이 튀어나왔다. 연의 몸이 환을 타고 위아래로 솟구칠 때마다 유두가 출렁이며 떨어질 듯 흔들렸다.
“아흑, 으…! 난 몰라…!”
연은 온몸이 쪼그라드는 감각을 느끼며 이를 악 깨물었다. 안이 벌벌 떨리면서 수축하고 좆을 조여댔다. 절정을 느낀 몸이 환의 위에서 몸서리쳤다. 풀썩 주저앉은 연의 결합지는 샘물이 터져 나오듯 젖어 흐른 액체로 미끄덩거렸다.
“씹, 쌀 뻔했네.”
오늘따라 시정잡배 못잖은 환의 주둥이가 문제였다.
잔뜩 흥분한 그가 연의 몸을 단번에 뒤집었다.
“쉬, 쉬었다가…!”
“쉬긴 뭘 쉬어요. 내가 이걸 두고 참은 게 용하지.”
일 년 내내 배부르게 만들든가 해야지. 낮은 음성이 흘린 소리에 연은 아랫배가 덜덜 떨리는 걸 느꼈다.
“우리 천천히 해요, 천천히이…! 아읏…!”
“천천히는. 있어 봐요.”
찰싹. 무릎을 가파르게 세우고 허리를 낮춰 엉덩이를 추켜올린 그가 손바닥을 놀렸다.
“앗, 응…!”
이미 젖어 홍수가 난 부분을 정확하게 때렸다. 아프지는 않았지만 눈가에 눈물이 찔끔 날 정도였다.
이윽고 좆이 살덩이를 가르고 단번에 안으로 처박혔다.
“진짜 조그매 가지고 더 조여. 미칠 것 같네.”
탁, 탁, 탁. 정낭이 엉덩이 골 사이와 회음을 때리는 차진 소리가 이윽고 울려 퍼졌다. 연은 허리를 비틀며 신음했다. 환은 벗어나려는 궁둥이를 붙잡고 개처럼 좆질을 했다.
“자꾸 도망가네. 화나게. 이게 신랑 두고 어딜 가려고.”
“도, 도망 안…! 흡…! 아읏, 으!”
완벽하게 흥분한 음성.
제 신랑의 눈깔이 돌아버린 건 확실히 알 것 같았다.
머리채가 잡히고 상체가 더욱 낮춰졌다. 엉덩이만 하늘로 잔뜩 들어 올린 수치스러운 자세. 그 상태로 음부와 자지만이 맞닿아 첩첩거리는 음란한 소리를 뿌려댔다. 완벽한 짐승의 교접.
“학, 하읍, 앗, 응…!”
“자세 낮추지 말고.”
찰싹!
아으응! 소리가 절로 나도록 볼기를 맞았다.
이제 연의 뒤는 자연스럽게 스스로 흔들리며 환의 좆을 품고 있었다. 기둥을 먹었다 뱉는 틈 사이로 추접스럽게 흘린 침 같은 애액이 묻어나왔다.
“진짜 씹어 먹네. 미치게.”
연의 엉덩이에 대고 박아대는 환의 속도 역시 빨라져 있었다. 연은 이제 아기가 깰까 봐 이불보까지 입에 물었다. 그렇게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몸서리치는데, 이미 샅이 서로 맞붙는 차진 살 소리가 거세서 소용없을 듯싶었다.
철썩, 철썩!
“우웁…! 우우음…!”
연은 이제 눈가에 눈물까지 맺힌 채 골반을 스스로 흔들었다. 몸이 미친 것 같았다. 남편의 돌덩이 같은 허벅지에 대고 스스로 엉덩이를 갖다 밀어붙였다.
음순을 거치고 길게 안쪽까지 밀려드는 좆 기둥이 질 주름을 쑤시고 파고들었다. 황홀한 절정감이 숨도 못 쉬게 이어졌다.
이윽고 바닥을 짚던 연의 손이 주먹을 만들며 비틀거렸다. 무너져 내리는 여체 위로 환이 마지막으로 강하게 짓쳐 들었다.
“윽.”
소리 없는 연의 비명에 묻혀 환의 짤막한 신음은 들리지도 않았다.
“흐읍, 음….”
연은 익숙하게 찾아오는 고통을 잠시간 인내했다. 그 보상처럼 눈살이 절로 찌푸려질 정도의 강한 쾌감이 순식간에 짓쳐 들었다. 제 수컷의 좆이 제 안에서 남김없이 부푸는 감각은 언제 받아도 익숙지 않은 느낌이었다.
안이 마개로 꽉 막히는 기분. 그리고 몹시도 뜨거워져 델 것만 같았다. 연의 엉덩이가 어디 도망가지 못하도록 환의 손아귀가 볼기를 꽉 붙들고 놔주질 않았다. 그렇게 안 해도 어디 도망 못 가는데. 꼼짝없이 그의 아이만 주룩 낳아 키우게 생긴 팔자였다.
두 암수컷은 한참을 그렇게 아래를 끼운 채 몸을 포개고 있었다.
또 얼마간 그렇게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의 무거운 체중이 감당이 안 됐다. 그걸 귀신같이 알아챈 사내가 눈 깜짝할 사이에 몸을 뒤집었다.
“으, 으아…. 천천히.”
“다치게 안 합니다.”
잔뜩 부푼 예민한 부분이 아려 연은 저도 모르게 신음했다.
아래는 연결된 채로 젖은 온 피부가 맞닿아 있으니 아직 절정이 끝나지 않은 것처럼 흥분감이 지속되었다. 연은 가물거리는 눈을 들어 환을 올려다보았다.
“내일 아침께에 희용이는 순이 할멈 댁에 맡깁시다.”
어차피 연의 발정기는 이삼일 후에 더 진해질 테다. 그때가 되면 자식이고 뭐고 없이 둘 다 눈이 벌게져선 서로 찧고 빻고 절구질하기에만 바쁜 짐승의 시간을 보낼 텐데, 미리부터 안전한 곳에 믿고 보내 놓는 게 나았다.
“왜, 아직도 희용이 걱정되십니까?”
암컷이어서일까. 아래 빠듯하게 부푼 남편의 좆을 한가득 품고서도 새끼 걱정뿐이었다. 연의 표정이 눈에 띄게 그늘이 져 있었다.
“괜찮겠죠? 희용이가 어려서….”
“희용이도 좋아할 겁니다. 순이 할멈께서도 잘 설명해 주실 거고요. 동생 생기는 일인데요.”
연은 볼을 붉혔다.
“그, 그런 건 설명 안 해주셔도 됩니다. 아직 어린앤데요!”
환이 킬킬거리며 알았다고 대답한 뒤 연의 입술을 물었다.
다시 숨을 앗아갈 듯한 입맞춤이 이어졌다.
“하아….”
연은 제 입술에서 무슨 생명수라도 나오는 듯 빨아대는 사내에게서 겨우 벗어난 채 눈을 흘겼다. 저만 바라보고 저만 좋아하는 사내다. 저를 바라보는 눈빛에 조건 없는 애정이 가득했다.
“정말…. 환 님은 저 없으면 어떻게 사시려고 그러십니까.”
연은 중얼거렸다.
그러자 대뜸 환의 눈동자가 큼지막해졌다.
“아니, 연 님이 없는데 제가 왜 삽니까?”
상상도 할 수조차 없다는 태도였다. 그 대꾸에 연은 결국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자잘한 떨림이 그녀의 가슴에서부터 그의 가슴까지 이어졌다.
“전 평생 우리 연 님 뒤를 졸래졸래 따라다니며 꼬리 치며 살렵니다. 저 두고 어디 가시면 십 리도 못 가 발병 나실 겁니다.”
연은 장담하는 환을 짐짓 째려보는 척했다. 그 바람에 제 안쪽에 들어와 있는 환의 것이 움틀거리는 게 느껴졌다.
“아, 또 쌀 것 같잖아요.”
그의 말에 연은 예쁘게 눈을 흘겼다. 환이 그를 모르는 척하며 냉큼 덧붙였다.
“우리 연 님은 발병 나시면 안 되니까. 그냥 저랑 희용이가 매일 눈물로 밤을 지새우며 슬퍼하는 거로 바꾸죠, 그럼.”
그런 말을 하는 환의 눈빛이 너무 진심이라 연은 쿡쿡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부부는 몸과 마음이 이어진 채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며 밤을 지새웠다. 할 얘기가 끊임없이 쏟아졌다.
연은 다시 한번 자신의 짝이 이런 사내여서 감사하다고 생각했다. 동이 트면서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연은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 * *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발정기도 지나갔다. 그 후 연은 진팔과 군길, 희용이 그리고 환과 함께 소고기를 거하게 먹었다. 진팔이가 환이 타 온 송아지를 팔고 웃돈을 얹어 소를 사 온 것이었다.
생애 처음 먹어본 소는 그야말로 감격 그 자체였다. 연은 발정기 내내 환에게 뺏긴 기운을 다시 찾겠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소를 먹어 치워 갔다.
환은 곁에서 흐뭇하게 그런 연과 딸 희용이의 시중을 들었다. 진팔과 군길은 연이 배부르게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남은 고기를 포식했다. 소 한 마리가 반나절 만에 통째로 없어졌다.
“아, 배불러. 이렇게 움직일 수도 없게 먹어 본 적은 정말 오랜만인 것 같아요.”
연은 늑대로 변한 희용이를 끌어안고 남편인 환의 곁에 누워 부른 배를 통통 두드렸다. 배부른 희용이도 기분이 좋은지 주둥이를 씰룩이며 캉캉 짖었다.
“앞으로도 얼마든지 더 먹여드리겠습니다.”
환이 그런 희용이와 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얘기했다. 다른 손으론 모녀의 얼굴을 향해 부채를 연신 부쳐주고 있었다.
연은 듣기만 해도 배가 부른 그 약속을 곱씹고 또 곱씹었다. 그러다가 작게 중얼거렸다.
“약속을 또 지켜주셔서 감사해요.”
소 먹여 주겠다던 약속. 그 밖에 다른 약속들도 전부 다.
연은 그런 환을 보며 그의 손을 부드럽게 감쌌다. 환이 그녀를 향해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얼마든지요. 앞으로도 계속 약속해 드리겠습니다. 우리 연 님과 희용이와….”
환의 손이 아직 납작하기만 한 연의 배를 살짝 감쌌다.
“…우리 둘째에게 말입니다.”
환의 목소리가 나직하게 연의 귓가를 울렸다.
“제 생을 바쳐서요.”
연은 눈을 감은 채 감정을 다스렸다. 어쩐지 울컥하는 마음이 올라와 희용이의 털을 쓰다듬는 손에 힘이 실리고 말았다.
정말 그가 약속을 지킬 거란 걸 알아서.
이듬해 봄에도 그 후의 봄에도 그와 함께라면 서럽거나 아픈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여름의 문턱에 걸쳐진 싱그러운 봄바람이 가족의 피부를 간질이는 어느 날이었다.
<늑대 신랑> 외전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