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화(외전) (10/11)

1장 늑대 신부

초가에 야시꾸리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인네의 신음이라기보단 흥분한 사내의 거친 호흡에 가까웠다.

신음 소리가 어디에서 나는지, 연은 잘 알고 있었다. 신랑인 환이 제 가랑이 사이를 뚫어져라 보며 수음 중이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너무 뜨거웠다. 그것만으로도 애가 달 정도로. 부른 배를 하고 있는 아내가 저리도 좋은 것일까. 늘 답 있는 고민을 늘어놓게 하는 사내다.

연은 아이를 가져 부푼 젖가슴 밑으로 팔을 받쳤다. 나머지 팔론 제 앞에 떡하니 자리한 남편의 우람한 가슴팍을 짚고 있었다.

“흐읏, 아…!”

결국, 참지 못한 연이 신음을 내뱉었다.

“이, 이 자세 싫어요.”

저는 이불을 밑에 잔뜩 깔고 기대서 누워 있는 상태였다. 당연히 두 다리는 애를 낳듯 활짝 벌렸다. 개구리처럼 벌린 종아리 사이로 환이 무릎을 꿇은 채 들어와 있었다. 그는 벌떡 기립하다 못해 하늘을 찌를 듯 곤두선 기둥을 잡고 위아래로 연신 주물렀다.

그의 두 눈이 고정된 곳은 당연히 분홍빛 속살이 벌어진 연의 구멍 입구였다. 이미 한 차례 뿌옇게 싼 물이 주룩, 갈라진 살덩이 사이와 엉덩이 골을 타고 흘러내린 장소.

“…싫어요?”

흥분을 자제하는 듯 잔뜩 억눌린 환의 목소리가 짐승 우는 소리처럼 흘러나왔다. 그의 음성이 너무 굵고 낮아서 연의 피부에 닭살이 다 돋을 지경이었다.

“그럼 어떻게, 다시 넣을까요?”

당연히 저 말이 떨어질 줄 알았다. 아주 기다렸다는 듯이.

아무튼 틈만 나면 넣으려고 환장했지. 그러면서 진짜 넣어주지도 않는다. 간 보듯 귀두 끝을 여린 살 끝에 문대는 척, 쓰다듬기만 수차례.

아무튼, 진짜 성격 나쁘다니깐. 연은 눈을 흘겼다.

지금도 연의 허벅지에 벌건 손자국이 남을 정도로 쥐고 벌리게 한 채였다. 제 신랑 성정을 잘 아는 연이었다. 기이하리만치 정사나 색사에 있어선 가혹하게 굴었다. 이미 제 씨를 가득 품고 함지박만 하게 부푼 아내의 배는 보이지 않는 건지.

그 와중에 좆을 세우고 있는 굳은살 박인 큼직한 손은 멈추지 않는다. 그가 커다란 손에 쥔, 두 사람의 체액을 처바른 좆 기둥이 위아래로 움직이며 나는 치덕거리는 소음마저 야릇했다.

벌써 끄트머리에 좆물을 살짝 머금은 선단이 검붉고 촉촉하다. 하늘을 향해 치솟은 물건은 저 자신을 풀어낼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길게 늘어진 씨물 주머니마저 그 중앙에 달린 기둥처럼 알이 굵고 우람했다. 절로 연의 침이 꼴깍 넘어갔다. 입 안에 침샘이 도는 것처럼, 활짝 벌린 연의 음부 역시 애액을 빠끔히 흘리고 있었다.

환은 그 아기 주먹 같은 걸 대고 연의 입구에 치덕거리며 비볐다. 금방이라도 들어갈 듯, 구멍이 움찔거리며 삼킬 준비가 만만인 게 느껴졌다.

“아니. 그렇다고 진짜 넣진, 말고…!”

끄트머리만 살짝 들어갔다 도로 빠졌다. 연의 응석 때문이었다. 힘들다, 아프다, 안이 찢어질 것 같다, 배가 당긴다. 그래서 열에 아홉은 환의 손바닥 안에서 사정을 끝마치곤 했다.

“그럴 줄 알았어요.”

흥분감이 짙게 깔린 환의 음성이 낮은 웃음을 뿌렸다. 약간은 쉰 목소리.

“다리 잡고 더 버티고나 있어요.”

다소 음험한 명령이 떨어졌다.

치덕거리는 소음이 거세졌다. 제 좆을 쓰다듬는 손의 속도가 빨라졌다.

연의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에 믿을 수 없게도 열이 더 올랐다. 연은 양 무릎께를 손으로 잡고 버텼다. 벌린 제 다리 사이로 남편의 시선이 닭 쫓는 개의 것처럼 맹렬하게 꽂히는 걸 느꼈다.

제 그곳이 그렇게나 좋은 걸까.

거친 숨이 더 거세어질수록 연의 심장도 역시나 함께 격양되었다. 이게 다 저 혈기왕성한 제 신랑 때문이었다.

“안에, 쌀게요.”

제 신랑은 중간에 뭐가 됐든 꼭 마지막은 그녀의 안에서 끝마치려 했다. 중증이었다.

하지만 연은 그런 그를 거부할 수가 없었다.

그 버릇을 만든 게 저란 걸 아주 잘 알고 있어서였다.

“너, 넣고 있어…. 아, 환 님…! 환 님, 제발 나가지 마세요…!”

“안에…! 안에 싸아…!”

발정기 때 버릇을 못 이기고 끝나고 나서도 몇 번을 더 그런 말로 그를 흥분시켰던 게 죄라면 죄였다. 제 무덤 구멍을 제가 판 것이었다. 이 경우에 그 구멍은 다른 구멍이었지만.

이윽고 환이 짧은 신음성을 토해내며 다급하게 그녀의 종아리 안쪽을 잡고 끌어당겼다.

“…읏.”

순식간에 연의 몸이 끌려 들어가며 아래가 맞추어졌다.

“앗, 응…!”

연은 안을 반쯤 파고드는 사내의 그악한 양물 크기에 외마디 비명을 내질렀다. 작은 새가 나무에서 떨어져 날개를 파닥거리듯 움츠리는 여체를 환이 꽉 붙들었다. 이미 충분한 사정액으로 질척하게 젖어 든 안쪽이었지만 여전히 크기는 익숙해지지 않았다.

음순을 기어코 벌리고 치밀어 든 선단은 기둥의 반쯤을 그녀의 안에 파묻은 채 깊은 사정을 했다.

사정하며, 기둥은 기어코 뿌리 끝까지 치밀어 올라왔다. 지난번 터놓은 길에 뿌린 씨물을 받아들여 임신한 여체의 안쪽을 다시 한번 같은 냄새로 뒤덮는다. 완벽한 영역 표시였다.

‘진짜 너무해….’

연은 환의 거구에 찌부러진 채 헐떡거리며 생각했다. 양도 많고 시간도 길다. 울컥울컥 진하게도 쏟아 내는 환의 고환이 젖은 둔부 사이로 느껴질 정도였다.

환의 손이 연의 피부를 톡톡 쓰다듬듯 두드렸다. 임신한 후로 더욱 통통해진 엉덩잇살을 꾹 잡아 누르며 더 잘 먹으라고 성화였다.

“흐으, 응…!”

그것만으로도 짤막하지만 강한 성감을 느낀 연은 몸서리쳤다. 이전번의 진득한 애무로 이미 달아올라 있던 몸이었다. 질 주름은 거부감 없이 신랑의 양물을 품은 채 조이기 시작했다. 이미 수차례 쏟아 내고 있는 성기에서 더 뽑아질 게 없나 주무르듯이. 환과 연 둘 다 몸을 덜덜 떨며 생식기를 서로 맞춘 채 꿈틀거렸다. 온몸에 소름이 돋을 듯한 절정의 느낌이 이어졌다.

“하아, 속이 날로 여무니…. 어째 갈수록 미치겠습니다.”

마침내 연의 속에서 빠져나온 환이 실성한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연은 속으로 웃었다. 그건 이쪽이야말로 마찬가지라고 투정 부리려다 또 한판이 시작될까 꾹 눌러 참았다. 맨날 힘들다, 너무하다, 당신이 나쁘다 별의별 투정을 하지만 속으론 좋은 건 사실이었으니까.

그러고서도 끝이 아니었다.

환은 사정을 마친 후 기진맥진해진 그녀를 눕혀놓고 다시 연의 아래를 빨기 시작했다. 누가 늑대 아니랄까 봐, 아주 살덩이 사이에 낀 액 한 방울마저 남김없이 핥아 마실 태세였다.

짐승이니 낯부끄러울 것도 없고 거칠 것도 없다. 오로지 본능만으로 이루어지는 행동이었다.

인간 겉가죽을 쓰고도 이런데, 출산 후 안정기가 되면 늑대로 돌아가 또 어떤 식으로 거칠게 밀어붙일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이 사내와 함께 있으면 사시사철이 발정기 같았다. 진팔과 군길이 기회가 오자마자 이 초가를 부리나케 벗어난 것도 이해가 되었다.

“하여튼, 짐승.”

연은 제 다리 사이에 꿀물이라도 발라 놓은 듯 혀를 떼질 못하는 사내를 흘겼다. 그의 질긴 애무로 인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걸 느꼈다. 다시금 가랑이 사이가 간질거렸다.

“칭찬 감사합니다?”

부른 배 때문에 보이지 않았던 환의 머리통이 다리 사이로 불쑥 올라왔다. 그가 짓궂은 웃음을 지었다.

하긴, 그 딴엔 칭찬일 수밖에 없다. 본연이 짐승인걸.

짐승을 짐승답다고 하는데 당연히 곱게 들릴 수밖에.

“괴물.”

하여 연은 단어의 수위를 높였다.

“지금 신랑더러 괴물이라 한 것입니까?”

연의 말에 신랑의 눈썹 한쪽이 휘까닥 위로 올라갔다. 또 장난기 서린 목소리.

“미워 죽겠어.”

연은 마음에도 없는 소릴 하며 투정을 부렸다. 생떼였다.

“좋아 죽겠다며 아까 눈가에 눈물까지 맺힌 채 소리쳤던 이가 누구셨더라.”

그걸 아는 환이니 화를 낼 리가 없다. 오히려 귀엽다는 듯, 샐쭉해진 연의 입술 위로 입맞춤이 떨어졌다.

“저리 가요. 아, 아래 빨아대던 입술로…! 더럽게!”

“어차피 아까 연 님께서도 제 아래를 빨아주셨잖아요. 피차일반입니다?”

“그, 그래도…!”

부부간에 너무 격의가 없어도 문제일까. 다른 집 부부의 밤 사정은 알 길이 없으니 당최 모르겠다.

갓 부부가 된 두 짐승의 밤은 매일이 질펀하고 더럽게까지 느껴질 정도의 색사요, 정사로 가득 차 있었다.

밤낮도 없고 시간도 대중없었다. 일하다 눈 맞으면 신랑의 팔에 담뿍 안겨 방으로 직행하였다. 연은 창고로 향하던 길에 불쑥 끌려간 적도 있었다. 달덩이 같은 엉덩이만 뒤로 까곤 몸이 앞으로 고꾸라질 지경까지 뒤치기를 당했다. 죽겠다고 소리치는 걸 오늘 진짜 죽여 드리겠다고 작정하며 받아치니 당해낼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부르기 시작한 배를 고이 받쳐주며 딱 감당해낼 만큼만 추삽질하니 저절로 앙탈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제 남편은 그렇게 광포하게 짐승 소릴 내며 쑤시고 박다가 사정할 때는 엉덩이를 하늘 높이 치켜들게 하곤 딱 잡아 내리누르며 안에 듬뿍 쏟아내곤 했다. 종래엔 걷다가 그의 씨물이 허벅다리 사이로 뚝뚝 떨어지는 걸 느끼곤 식겁해야 했다.

“연 님은 늘 나를 미치게 만들어요. 언제쯤 덜 예쁠래요?”

배가 부르면 좀 나아질까 했는데 웬걸, 날이 갈수록 속이 옹골차고 쫀득해진다며 신랑은 더 난리를 쳐댔다. 그렇게 남편이 저를 수시로 덮치는데도 제 몸이 미쳤는지, 할 때마다 힘들긴 해도 종국엔 좋다며 스스로 허리를 흔들게 되고 말았다.

가끔은 밥상에 수저를 얹다가도 손가락이 스치면 상을 엎었다. 연의 딴엔 그 순간만큼은 진짜 성욕이 모든 욕구를 이긴 셈이었다. 밥을 마다하고 환과 붙어먹다니. 그만큼 부부 금실이 좋단 소리였다. 환과 손가락 피부만 스쳐도 아랫배가 근질거리며 난리가 났다.

연은 그때를 생각하며 얼굴을 붉혔다.

‘내가 생각해도 심하지. 암, 그럼.’

하지만 뭐 어떠랴 싶었다. 어차피 무산의 늑대들은 죄다 두 수인이 부부라는 걸 아는 터다. 신혼부부끼리 눈만 맞으면 뭐 하는지도 알겠지.

발정 난 들개처럼 눈만 맞으면 아래 생식기를 서로 맞춰 찧고 빻고 절구질이라. 하도 몸을 섞어 냄새도 둘이서 온통 뒤섞여버린 지 오래였다. 이제 연에게선 환의 씨물 냄새가 나고 환에게선 연의 암내가 났다.

‘그래도 이제 아기도 태어나는데….’

연은 곰곰이 생각했다. 역시 과한 건 모자라느니만 못하다는 격언이 떠올라서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과해요.”

연은 환의 입술을 밀어냈다. 아직도 제 맨살에 대고 쪽쪽거리고 있었다. 하여튼 절제란 게 좀 필요했다.

“이제 우리 아가도 태어날 텐데, 좀 자중하세요. 서방님.”

연이 빨개진 얼굴로 제 신랑을 훈계했다.

그러나 먹힐 리가 있나.

“하, 그 서방이란 소리 좀 더 해봐요.”

곧장 화끈거리는 남편의 손이 제 부푼 젖가슴과 겨드랑이 사이로 들어왔다. 연은 한숨과 함께 눈알을 굴렸다.

“그만하시라고요, 서방님.”

“하, 씨. 진짜 꼴려. 저 또 섰어요.”

아니나 다를까 남편의 다리 사이는 다시 바짝 곤두서 있었다. 연은 이 남자를 상대로 이기는 걸 포기했다.

제가 그렇게 좋을까.

하지만 더는 안 된다. 임신 중 지나친 정사는 좋지 않다고 몇 번이나 순이 할멈에게 훈계를 듣지 않았던가.

“아이참, 환 님.”

연은 환의 손바닥을 가져다가 제 볼에 비비기 시작했다. 원래 불어오는 바람에 맞바람을 치면 안 되는 법이었다. 환과 살며 연이 배운 사실 중 하나였다.

연은 콧소리를 섞어서 환에게 애교 부리기 시작했다.

“여보, 저 진짜 힘들어요. 우리 아기도 너무 힘들대.”

환의 몸이 그 순간 딱 멈췄다. 먹힌 것이다.

날이 갈수록 느는 건 요행이요, 능구렁이 뱀처럼 술렁술렁 상황을 넘어가는 처세술뿐이었다.

처음엔 성격상 불가능할 거라 여겼다. 혀가 반 토막 난 것 같은 이런 소리는 혀를 자른대도 못 할 거라고. 그러나 그건 연의 착각이었다. 살려니 못 할 짓은 세상에 없었다. 신혼은 늑대도 바꾼다. 연은 혼자 뒷간에서 연습한 대로 혀를 짧게 말았다. 그리고 입술을 살짝 내민 채로 아기 소리를 내었다.

“네, 응? 아가가 진짜 더는 못 하겠답니다.”

아니나 다를까, 환의 입꼬리가 점점 더 하늘로 승천하기 시작했다.

“허허, 그렇습니까? 어디, 우리 애가 또 뭐라고 합니까?”

“음…. 아버지 양물이 너무 크고 굵어서 아기집이 다칠까 봐 겁난다 합니다.”

이 정도 입바른 소리는 이제 입술에 침도 안 바르고 나왔다.

그것보다도 하루 종일 손 하나 까딱 안 한 저와 아기를 위해 집안일을 다 돌본 환 님이 아닌가. 혀 잘린 소리쯤이야 백 번이고 해드릴 수 있었다. 힘도 들이지 않고 입술만 벙긋거리면 되는 일이니까. 물론 낯가죽이 제 것이 아닌 듯 화끈거리며 벗겨지는 기분이 들었지만 연은 허벅지를 꼬집어가며 참았다.

하지만 환은 게서 멈추지 않았다.

“또, 또 뭐라고 합니까?”

“음, 음….”

그제부턴 연도 할 말이 없었다.

이제 슬슬 부끄러움이 밀려들던 찰나였다. 평소 안 하던 짓을 하려니 피부가 가렵고 근질거리는 게 두드러기가 올라올 것 같았다.

하여튼 일 절만 하시지.

그런데도 눈치 없는 사내는 좋다고 보채며 성화였다. 아주 기대하는 눈빛이 만만이다. 부부 성격이 이렇게 다른데도 지지고 볶고 잘 사니 참 기이했다.

연은 뭐라도 말해줘야 할 것 같아 머리를 쥐어 짜냈다.

“음, 또… 빨리 세상 밖으로 나와서 아버지를 보고 싶다고 하네요.”

좀 약했나. 슬쩍 눈을 들어 환의 눈치를 보았다. 이번에도 먹혔나 자신이 없었다.

한데 환의 눈빛이 갑자기 그윽하니 깊어졌다.

“그건 아버지도 마찬가지라고 전해주세요.”

연은 침을 꼴깍 삼켰다. 그 눈빛이 으슥한 방 안에서도 저와 제 배 속의 아이를 쓰다듬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이참. 정말 방심할 수가 없는 남자였다. 왜 이렇게 훅 들어오시는지.

연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미 전하고 계신걸요.”

부부는 서로 얼굴이 빨개진 채 눈을 마주했다. 아마 늑대 상태였다면 두 꼬리가 미친 듯이 펄떡이고 있었을 것 같았다.

쪽. 연의 이마에 환의 입맞춤이 떨어졌다.

다 풀어 헤쳐진 연의 옷가지를 단정히 해주고 자신도 다 챙겨 입고선 환이 팔베개를 해주었다. 커다랗고 따듯한 손이 부른 배를 살살 쓰다듬어 주었다. 이제 자잔 신호였다.

연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잠자리도 삼세판이라고 한 번 더 하자고 조르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하긴, 배가 이렇게 부르니 환의 입장에서도 많이 봐주는 거겠지만.

‘아가야, 오늘도 무사히 넘겼다.’

연은 부른 배에다 대고 혼자 생각했다.

그러면서 환의 가슴팍에 얼굴을 기대곤 흐뭇하게 잠에 빠져들었다.

* * *

바야흐로, 봄이었다. 눈꽃이 녹는 계절의 변화에 가장 먼저 반응한 건 배 속의 아이였다.

“에구구, 허리야.”

연은 뒷짐을 지고 배를 통통 발로 차는 아기를 쓰다듬었다. 만삭이었다. 그런 그녀를 걱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환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우리 연 님 배가 이렇게 부르니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습니다.”

“아이고, 됐습니다. 저도 아기도 멀쩡한데 뭘요. 우리 집에서 제일 걱정 많으신 분은 아무래도 환 님 같으십니다.”

연이 환을 배웅하던 찰나였다. 이래 보여도 머리 늑대인지라 중간중간 영역을 돌보러 나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군길과 진팔은 분가를 했다. 봄이 시작되어 날씨가 풀리면서 푸릇푸릇한 새싹이 돋아나고, 먹거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태백 출신인 환의 아우들 역시 그의 초가를 벗어나 이 무산에서 각자도생을 시작한 것이다.

연은 군길과 진팔이 기회를 틈타 재빨리 벗어난 걸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저들도 늑대니 듣는 귀가 있었을 텐데….’

지금까지 함께 살면서 환이 시도 때도 없이 연에게 하자고 들이미는 걸 아우들이 눈치챌라 얼마나 가슴 졸였는지 몰랐다. 부부 사이가 좀 좋아야지 말이야.

예상대로 진팔과 군길은 환의 초가를 속 시원하게 벗어났다. 아주 기다렸다는 듯이 부리나케 도망쳤다. 그러곤 아주 떵떵거리며 잘나갔다. 그들은 지금 무산의 중간 머리가 되어 무리를 이끌고 있었다.

우두머리 암컷이던 랑은 자취를 감춰버렸다. 환 무리에게 당한 치욕과 까발려진 제 비밀을 감당치 못한 거였다.

자연스럽게 승계는 그 남편인 대광에게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이미 대광은 두 불알을 잃고 무리의 꼬리로 전락해버린 지 오래였다. 그는 무리에 간신히 붙어 근근이 빌어먹고 사는 처지였다.

“연 님. 저희를 돌봐주세요. 저희 우두머리가 되어주세요.”

무산의 무리들은 마지막으로 연을 찾아 무릎 꿇고 빌었다. 저희를 굽어살펴 달라고 애원했다. 그러나 섣불리 우두머리 역할을 맡기엔 연도 곤란했다. 서서히 배가 불러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휘에는 원래부터 뜻이 없기도 했다.

연은 하는 수 없이 제 남편인 환에게 무산의 무리들을 위탁하려고 했다. 이미 환의 영역이라 선포된 지역에 빌붙어 살게 된 늑대들이었다. 차라리 환이 정식으로 저희를 다스려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그들에게도 없잖아 있었다.

“저 바쁜데요.”

환이 단칼에 거절하기 전까지는.

환은 아주 멀쩡한 낯짝을 하고서, 저는 머리 늑대질 하기엔 시간이 없다 딱 잘라 말했다. 거절하는 태도가 무지 당당했다.

“아니, 왜요?”

“곧 아기가 태어나는데 예비 아버지인 제가 시간이 있겠습니까? 배불러 오시는 연 님도 보필하여야 하고, 산실도 채워야 하고, 아기가 태어나면 또 돌봐야 하니 밤잠 잘 시간도 없어질 텐데요.”

환의 말에 연은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환도 육아할 일이 생기면 제가 다 한다 하지 않았나.

“그럼 무산의 늑대들은 누가 다스리죠?”

“동생들이나 시키죠, 뭐.”

그래서 환의 두 아우, 진팔과 군길이 나서게 되었다. 무산의 늑대들이야 환과 긴밀히 연결돼 있는 그들을 중간 머리로 모시는 것이 차선이기에 제안을 환영했다. 좋은 결말이었다.

‘그나저나 말만 번지르르하신 줄 알았더니.’

환은 정말로 약속을 지켰다. 임신하고 나서부턴 정말 모든 일에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 연이었다.

연은 환이 아기를 낳고도 이런 태도를 고수할 거란 걸 이젠 거의 확신할 수 있었다.

‘일단 낳아주기만 하면 당신께서 다 키우겠다더니….’

연은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피식 웃음이 나왔다.

‘정말 생기는 대로 낳아버릴까 보다.’

그게 위험한 생각인 줄 연은 정말이지 꿈에도 몰랐다.

대광은 완전히 무리의 노예처럼 전락해 있었다. 랑이 도망치고 뒷배와 생식 능력을 둘 다 잃은 대광은 죽은 상태일 때가 더 나을지도 모를 만큼 고난의 시간을 겪는 중이었다.

무산의 늑대들은 환과 연의 눈치를 보느라 대광은 일절 상대조차 하지 않았다. 대광은 마치 무리에서 따돌림당할 적의 연과 같이 배척받고 있었다. 물론 실상은 그때보다 참혹했다. 무리의 중간 머리가 환의 아우들이었기에. 누구 동생 아니랄까 봐 두 늑대는 대광을 미친 듯이 못살게 굴고 있었다. 저런 꼴을 당하느니 무리를 떠나 홀로 사는 게 낫겠단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대광은 곧 죽어도 무리에 붙어 있고자 했다. 그 의지가 거머리같이 질겼다. 환은 그런 대광의 모습을 보며 무리에 붙어 있어야만 살아남는 한심한 놈이라고 코웃음 쳤다.

“무리를 뛰쳐나가는 용기가 있으셨던 연 님에 비하면 그놈은 바닥에 기는 지렁이보다 한심한 놈이 틀림없습니다.”

연은 그의 말에 깊이 공감했지만 배 속의 아이를 생각해서 점잖게 남편을 타일렀다.

“대광 오라버니 얘긴 하지 마세요. 태교에 안 좋습니다.”

그 뒤로 연은 대광 오라버니에 대한 소식은 칼같이 잘라내었다. 더는 그 일을 신경 쓰고 싶지도 않았고.

현재 초가에는 연과 환, 두 수인만 남아 있었다. 얼마 안 되는 신혼을 즐기고 있는 두 사람이었다. 두 수인은 웬만한 일이 아니면 초가 밖을 벗어나지 않으며 알콩달콩 지냈다. 다만 이렇게 몇 날에 한 번, 환이 무리를 둘러보기 위해 나가는 경우가 있었다.

오늘 역시 그런 날이었다. 아무리 두 아우에게 맡겼다지만 실질적 우두머리가 아예 주둥이를 내비치지 않으면 기강이 빠질 수 있다고 했다.

“아주 안 나갈 수는 없잖아요, 환 님. 얼른 다녀오세요.”

“후우…. 연 님 말씀이 맞긴 맞습니다. 어쩌다 한 번씩 가서 무리를 들쑤셔 놔야 돼요. 부침개 뒤집듯이. 안 그러면 탄단 말이죠.”

환이 무리를 부침개에 비유하며 말했다. 연은 대충 무리가 잘 있나 확인하고 오겠다는 말로 알아들었다. 또 그가 돌아오면 함께 부침개를 만들어 먹어야겠다고도 생각했다.

연은 환을 얼른 보내주었다.

“그럼 적당히 잘 뒤집고 돌아오세요.”

마지막엔 이 말을 빼놓지 않았다.

“절대 다치지 마시고요.”

연은 늘 그렇게 환을 배웅하였다. 어쨌거나 가족을 한번 잃은 경험이 그녀 안에 깊게 자리했다. 새 가족인 제 신랑만큼은 오래도록 무탈하셨으면 했다. 무산에서 이 사내를 다치게 할 사람이 어디 있겠냐 싶지만.

“네, 다녀오리다.”

환은 연이 배웅할 때마다 세상 행복하다는 표정으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이, 참. 머리 흐트러집니다.”

연은 첫 발정 이후로 줄곧 시집간 아녀자들처럼 머리에 쪽을 찐 채였다. 가끔씩 환이 그런 연의 동그란 머리를 발라먹을 듯이 바라볼 때가 있었다. 지금처럼.

연은 환을 경계했다. 그때마다 담뿍 안겨 방으로 직행한 게 몇 번인가.

“어여 가세요.”

연은 환을 얼른 밀어냈다. 지금은 절대 안 된다. 환의 표정이 대번에 시무룩해졌다.

“다녀오면 해주시기예요?”

대체 뭘 해달라는 건가. 연은 게슴츠레하게 뜬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그러곤 자꾸 제 허리께로 파고드는 환의 손을 냉큼 꼬집어 떼어냈다.

“아야, 아야….”

환이 아픈 척하며 눈물을 글썽이는 시늉을 보였다. 연은 코웃음도 치지 않고 그를 보내었다. 저렇게 약한 척해도, 산 아래로만 내려갔다 하면 무산의 온 늑대들이 벌벌 떠는 짐승이 되는 걸 아는 터였다. 어쩜 이리 내숭을 잘 떠시는지.

‘남편 버릇을 잘못 들였다는 게 이런 걸까….’

연은 두세 걸음마다 뒤돌아보며 저와 배 속의 아기에게 손을 흔드는 환 님께 대강 손을 흔들어주면서 생각했다.

‘아가야, 그래도 너는 아빠를 닮거라.’

물론 주접은 조금만 덜 떨면 좋을 것 같구나. 연은 아기에게 신신당부하였다.

* * *

환이 무리를 둘러보러 간 사이, 연은 강가로 또 얼음낚시를 갔다.

‘이번에는 물고기를 반드시 낚고야 말겠어.’

지난번에는 대광 오라버니 때문에 실패했지만, 연은 이번에야말로 기필코 환을 위한 물 반찬을 만들리라 다짐하였다.

봄이 찾아와 얼었던 물이 사르르 녹은 시점이었다. 낚시는 의외로 성공적이었다. 연은 수월하게 물고기 몇 마리를 낚을 수 있었다. 그렇게 연은 기분이 째져선 물고기가 첨벙거리는 바구니를 들고 초가로 돌아갔다.

‘신난다.’

그녀는 흥얼거리기까지 했다. 환이 조심하라고 했던 구역도 조심조심 넘어갔다. 만삭이라 배가 잔뜩 불러서 뒤뚱뒤뚱해도, 남편인 환에게 싱싱한 반찬을 차려 줄 생각을 하니 절로 흐뭇해졌다.

연은 신선한 공기를 마시기 위해 숨을 흠뻑 들이켰다. 그때, 인상을 찌푸리게 하는 냄새가 느껴졌다.

흐릿한 피 냄새.

‘웬 피 냄새가…?’

연은 자신도 모르게 코를 킁킁거렸다. 수인의 본능이었다.

‘이 냄새는 분명….’

연은 불안함에 떨면서 초가로 돌아왔다. 초가에 가까이 갈수록 피 냄새가 절정에 달했다. 일이 터진 것이었다. 피 냄새에 환의 냄새가 섞여 있었다.

방 안에서부터 나직한 신음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다친 게 분명했다. 그 누군가가 제발 자신이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길 연은 빌었다. 그녀는 가슴이 철렁 떨어지는 걸 느끼며 초가로 뒤뚱뒤뚱 달려갔다.

아니나 다를까 그곳엔 환이 누워 있었다.

“환 님…!”

연은 그를 발견하자마자 입을 틀어막고 소리쳤다.

“연 님…!”

연을 발견한 환의 눈가 역시 커졌다. 그가 황급히 그녀의 눈에서 몸을 돌렸다. 뭔가를 가리는 몸짓이 분명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일단 나가 계시면….”

그가 답지 않게 횡설수설했다. 환의 곁엔 진팔이 있었다. 두 사람 다 급하게 초가로 온 것이 분명했다. 주변엔 환이 흘린 게 분명한 피가 뚝뚝 떨어져 있었다.

“어디 봐요!”

연은 대경해 소리치며 환에게 달려들었다. 환은 그 와중에도 임신한 연이 다칠까 봐 말했다.

“뛰지 마세요, 조심조심! 아무 일도 아닌데….”

이윽고 피를 흘리는 환의 발이 연의 눈에 들어왔다. 환의 왼쪽 발목에 깊이 박힌 덫이 그의 맨살을 꿰뚫고 들어가 있었다.

“세상에…! 아무 일도 아니긴 뭐가 아니에요!”

“여, 연 님…! 임산부가 이런 거 보시면 안 됩니다!”

환이 더 당황스러워하며 연을 향해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진팔이 황급히 그런 그를 막아섰다.

“형님,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시끄럽다, 이 새끼야! 지금 이깟 다리가 문제냐! 네 형수 얼굴 하얗게 질린 거 안 보이냐!”

환의 호통이 떨어졌다.

“아니, 지금 형님 다리에 피가 철철….”

“닥치고, 일단 나가 있어라!”

환이 진팔을 내쫓아 보냈다. 살다 살다 의원에게 축객령을 내리는 환자가 다 있었다.

외려 연이 나가려는 진팔을 붙잡고 늘어졌다.

“아니 다치신 분을 두고 나가면 어떡하십니까…!”

진팔은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져 허우적대었다.

한 분은 꺼지라 호통이고 한 분은 어찌 나가시냐 붙들고 늘어지시니,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할지 몰랐다.

승자는 물론 연이었다. 진팔의 형수는 환을 상대로 백전백승인 기록을 지니고 계셨다. 이번 역시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다.

연은 기어코 진팔의 바짓가랑이를 붙들어 환의 앞으로 끌고 왔다.

“빠, 빨리 치료를 해주셔야 할 것 아닙니까!”

덫.

그게 얼마나 무서운 건지 알고 있었다. 연의 삼촌 하나도 인간이 쳐놓은 덫에 걸렸다가 명을 달리했다. 그때의 기억이 연의 가슴을 후벼 파는 것 같았다. 아무리 평소에 싸늘하고 감정 표현 없는 것 같던 연도 위급한 상황엔 어쩔 수 없었다. 얼굴이 창백해지고,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처럼 눈가가 물기로 가득 차올랐다.

환이 그런 그녀를 달래었다.

“별일 아니래도요.”

“그치만, 그치만 피가 이렇게나 많이 납니다!”

환은 속으로 혀를 찼다. 좀 더 일찍 집에 들어올 걸 그랬다. 바구니를 보아하니, 또 저를 주겠다고 홑몸도 아닌 몸으로 물 낚시까지 다녀온 게 분명했다.

새삼 산에 덫을 놓아 그와 그의 처에게 이런 불상사를 안겨준 놈에 대한 분노가 일었다.

‘그 새끼, 반드시 찾아낸다.’

물론 연의 앞에선 그런 티를 하나도 내지 않았다. 환은 그저 민망스러워하며 계면쩍은 얼굴로 뒤통수를 만졌다.

“정말 아무것도 아닙니다. 연 님. 걱정하실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연은 그의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발견했다.

“아무것도 아닌 일이 아닌데요!”

식은땀까지 흘리는 환을 보자, 연은 정신이 아찔했다. 그녀가 떨어트린 바구니에서 튀어나온 물고기들이 몇 번 펄떡거리는 걸 본 환의 눈매가 곱게 휘어졌다.

“오늘 저녁은 물 반찬이네요.”

그 딴에는 분위기를 풀어보고자 한 말이었다. 그러나 허실허실 웃으니, 지금 웃음이 나오냐고 바로 핀잔이 돌아왔다.

사나이 자존심이 있지. 환은 이깟 일에 눈 하나 깜박 안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실제로 별일 아니기도 했고.

연 님의 턱을 타고 떨어지려는 눈물방울부터 훔쳐줬다.

“뚝, 하세요. 배 속의 아기 놀라겠습니다.”

연은 울먹울먹하면서도 입술을 꾹 다물었다.

“저, 저는 신경 쓰지 마시고 얼른 치료부터 하셔야죠.”

“할 겁니다. 보세요, 진팔이가 하고 있지 않습니까?”

정말 아래를 내려다보니 진팔이 환의 왼발을 물어버린 덫의 주위를 조심스럽게 뜯고 있었다.

연은 그 광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토악질이 나올 것 같았다. 살 속 깊이 파묻힌 덫의 날카로운 가시가 그의 발목을 야무지게 물고 있었다. 그 주변으로 흙더미와 가시덤불이 딸려오고, 피로 범벅된 꼴이었다.

끔찍했다.

연은 혼절할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비틀거렸다. 환이 그런 연의 손을 재빨리 잡아주었다.

연의 눈을 가려준 환이 말했다.

“보지 마세요.”

가린 환의 손등 사이로 기어코 눈물이 다시 한번 비집고 나올 것 같았지만, 연은 이를 악물고 참았다.

환 님이 이런 고통을 당하고 계시는데 제가 울 수야 있을까.

“저도 치료가 다 끝날 때까지 여기 있을래요.”

연은 제 눈을 가린 환의 손바닥을 잡았다. 그리고 두 손으로 꼭 붙들었다.

진팔은 빠르게 진료를 이어나갔다. 손재주가 좋은 수인답게 능숙하게 덫을 빼내었다.

환은 아까완 달리 신음 한번 내지르지 않았다. 곁에서 배부른 아내가 안색이 창백하게 질려 있는데 당연한 일이었다. 가장의 책임이었다.

진팔도 조금 놀랐다. 평소 같았으면 온갖 욕설을 씨불이며 생지랄을 떨었을 환이 장수 못지않게 허리를 꼿꼿이 펴고 앉아선 치료받고 있었다.

‘늑대가 장가를 가더니 변했나.’

물론 진팔은 이를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이래 보여도 꽤 긴박한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자칫 잘못하다간 우리 형님 다리 한쪽이 뎅강 잘려나가게 생겼다.

상처는 예상보다 깊었다. 다리를 잃을 수도 있는 상처였지만 다행히 대처가 빨랐다. 고통스럽다고 몸부림치면 더 깊숙이 들어가는 게 바로 덫이었다. 환이 그걸 참아낸 덕분에 그나마 덫을 빼는 시늉이라도 해 볼 수 있었다. 진팔은 상처를 소금물로 씻어낸 뒤 조심스럽게 덫을 제거하였다. 살이 파인 부분이 꽤 깊었지만 그래도 뼈는 상하지 않은 듯 보였다.

진팔은 그 위로 물풀을 듬뿍 바르고 붕대를 재빠르게 감아내었다.

“다 됐습니다.”

이제 눈 뜨셔도 돼요. 그 소리에 연은 환의 손을 떼어내고 눈을 떴다.

가장 먼저 보이는 건 신랑의 얼굴이었다. 식은땀이 흥건하였다. 분명 저를 향해 웃음을 띠고 있는데도.

너무 마음이 아팠다. 연은 재빨리 제 소매로 환의 이마를 닦아주었다.

“어쩌다 이렇게 되신 겁니까. 제가, 제가…. 그렇게 조심하시라고 당부하였는데.”

말을 잇지 못하는 연을 두고 환이 입을 열었다.

“제가 경솔했습니다. 연 님이 홀로 계실 생각을 하니 발걸음이 자연히 빨라지더군요.”

그래서 평소에 하지도 않을 실수를 하고 말았다며 그가 계면쩍게 웃었다. 물론 속으로는 산 아랫마을의 사냥꾼 새끼들을 하나하나 조져 놓을 생각에 머리가 팽글팽글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 환의 속사정을 전혀 모르는 순진한 연은 소매로 환의 땀방울만 연신 닦아주었다.

“정말 조심치 못하시고…. 저를 걱정시키셨습니다. 환 님.”

“예. 내가 미안합니다. 연 님.”

환의 다정한 대답에 다시 눈물이 차오를 것 같아서 연은 재빨리 휙 고개를 돌려버렸다.

진팔이 입을 열었다.

“이게 끝이 아닙니다. 앞으로 곪지 않기 위해선 관리가 필수입니다. 열이 더 오를 수도 있어요.”

진팔이 연에게 몇 가지 주의할 점을 일러주었다.

“다리는 꼼짝 없이 쓰지 마시고 잠을 푹 주무셔야 합니다. 특히 물이 닿지 않게 하셔야 해요.”

진팔이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알았습니다. 걱정 붙들어 매세요.”

연은 팔을 걷어붙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자 환이 그런 그녀의 앞을 재빨리 막아섰다.

“무슨 소리. 연 님은 가만히 계셔도 됩니다. 어차피 네가 와서 집안일 거들 거 아니냐, 진팔아.”

환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그러자 진팔이 바닥에서 펄쩍 뛰어올랐다.

“저는 형님이 두고 오신 일 마무리 지으러 가봐야 합니다!”

그러나 진팔의 시선도 잔뜩 부풀 대로 부푼 연의 배에 향했다. 그녀를 보고 진팔이 걱정스럽게 입을 열었다.

“하긴, 형수님 출산일이 내일모레인데 형님을 이대로 두기도 그렇죠. 저도 일이 끝나는 대로 와보겠습니다. 아니면, 어떻게, 다른 늑대라도 구해서 보내 볼까요?”

연은 고민했다. 무리에 임신한 암컷이 저 혼자도 아니고, 새 계절인 봄철을 맞느라 다들 분주할 터였다. 아무리 배가 남산만 하게 불렀어도 제 두 손이 멀쩡한데 환이 아프단 이유로 그들을 불러들일 순 없었다.

연은 씩씩하게 대꾸하였다.

“저 혼자서도 괜찮습니다.”

사실 조금 걱정되는 건 사실이었다.

‘아기가 오늘내일로 태어날 것 같긴 하지만….’

연은 가만히 제 배를 내려다봤다. 이제 정말 출산일이 며칠 남지 않았다. 이 상황에 제 신랑께서 다리를 다치신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도 연은 괘념치 않으려 노력했다. 뭐든, 일이 닥치면 하게 되는 법 아닌가.

그때 환이 냉큼 말했다.

“됐습니다. 연 님. 진팔아, 집안일 거들어주실 늑대 한 마리 모셔오너라. 보수는 넉넉히 드릴 테니, 연 님 보필을 잘할 만한 분으로.”

절대 만삭인 연에게 부담을 지우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그럼 그렇게 해요.”

연은 그런 의지를 굳이 거절하진 않았다. 솔직히 도와줄 분이 계시면 좋을 것 같긴 했다. 주겠다는 걸 못 받아먹진 않는 연이었다.

연은 환과 함께 이 초가에 살게 되면서 남의 도움 받는 법을 익히게 되었다. 모든 일을 저 혼자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배운 셈이었다.

진팔은 며칠만 기다리시면 도움 주실 늑대와 함께 오겠노라 하였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연에게 욕보시라 하곤 자기는 홀연히 떠나버렸다.

언젠가부터 그들이 사는 신혼집의 대문도 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은 진팔이었다. 연은 그 이유를 충분히 알 것도 같았다.

* * *

그다음 날부터 팔자에도 없는 연의 남편 간병이 시작되었다.

일단 하룻밤 푹 자고 나니까 환의 상태가 썩 괜찮아졌다. 식은땀도 안 흘리고. 환부를 감싸고 있던 붕대를 푹 적셨던 피도 말라붙어 있었다.

“저 이제 다 나은 것 같습니다.”

환이 냉큼 말했다. 그러면서 연의 세숫물을 받아 오겠다며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연은 환의 가슴팍을 확 밀쳐버렸다.

“제가 합니다! 진팔 님이 움직일 생각도 말라고 한 말을 잊으셨어요!”

연의 기세에 밀려 환도 어쩌지 못했다.

연은 세숫대야에 물을 가득 담고 낑낑거리면서 들어왔다. 환이 또 냉큼 그걸 제가 대신 받으려고 하였다.

연은 그런 그에게 분노의 눈빛을 보냈다. 그러자 환이 또 깨갱 해선 얌전히 자리에 앉았다.

“자. 킁, 하세요.”

연은 세 살배기 아기를 앉혀 놓은 기분으로 환의 세수를 도와주었다.

그런데 웃겼다. 제가 물수건을 가지고 환에게 다가가려고 하면, 환이 한 다리로만 일어서선 됐다고 제가 하겠다며 한사코 손을 내저었다. 아프신 분은 앉아나 계시라 호통을 쳐도 말을 듣질 않았다. 그는 희한한 데에서 고집을 부렸다.

“제가 죽는 한이 있어도 만삭인 우리 부인 일은 못 시킵니다.”

“어차피 지금 죽기 직전이십니다.”

“왜 멀쩡히 살아 있는 신랑을 골로 보내십니까. 그저 다리 한쪽만 성치 못할 뿐입니다.”

“예에. 거의 잘리기 직전이시죠.”

연은 그런 제 신랑이 새삼 골 때린다고 생각했다. 가만히 앉아 간병이나 받으시라고 말하며 남편 허벅다리를 찰싹 때렸다.

환은 환대로 불만이었다. 그저 다리 한 짝이 덫에 걸린 것뿐이었다. 한데 연은 신랑이 당장 죽어 장례라도 치를 것처럼 부산을 떨었다.

연은 환을 흘겨보며 짐짓 센 척을 했다.

“이 정도 병간호 일은 저도 할 수 있습니다. 어린애가 아닌걸요.”

“저야말로 어린애가 아닙니다. 이까짓 세수는 저 혼자 할 수 있어요.”

환은 부루퉁하게 대꾸하였다. 연은 그 말을 무시하고 손수건으로 그의 코와 입을 벅벅 문질러댔다. 보송보송한 수건으로 물기도 닦아드렸다. 그리고 어설프게나마 환의 환부를 감싸고 있던 붕대도 착실하게 갈아냈다.

물론 환의 도움을 조금 받았다.

“거기, 거기 아닙니다. 예, 예…. 그곳을 살살 감싸…. 큭! 아, 괜찮습니다. 부인의 손길이라면 그 어떤 고통도 참을 수 있…. 어억!”

“미, 미안해요.”

연이 황급히 사과했다.

그러자 환이 과장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제 가슴 위로 손을 얹었다. 매우 인자한 표정이었다.

“괜찮습니다. 연 님께서 지금 당장 제 가슴을 칼로 찌른다고 해도 안 아플 거예요.”

“아니요. 칼로 찌르면 아파요. 환 님. 진짜로 아플 거라고요.”

연은 그의 말을 단칼에 잘라냈다.

다행히 환부를 감싸는 건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 와중에 뭔가를 발견한 연은 흠칫하고 말았다.

신랑의 바지춤 부근이 다시 울끈 올라가 있었던 것이다.

“…아침이라서 그렇습니다.”

은근슬쩍 눈을 피한 환이 변명하였다.

연은 못 본 척하였다. 뒷간이나 가시라며 환을 부축해 주었다.

환이 못 이긴 척 일어서며 연의 몸에 제 몸을 기대었다. 체구 차가 워낙 확연하여서 연의 몸이 환에게 가려 보이질 않았다.

“환 님, 제대로 기대셔야죠!”

연은 남편을 나무랐다. 제가 생각해도 그다지 친절한 간호인은 못 되었다.

그러나 환은 그녀가 지적하여도 전혀 타격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매우 곤란한 표정으로 대답하였다.

“제대로 기대면 큰일 날 텐데요.”

연은 그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환의 체구는 저보다 훨씬 컸다. 그가 제게 작정하고 기댔다간 저도 아기도 압살을 당할 게 뻔했다.

하여튼 새끼 때 뭘 드셔서 덩치가 이리 산만 하신지 몰랐다. 밤일을 할 때도 이 밑에 깔리면 아주 숨도 못 쉬겠는 연이었다. 잘 알지, 잘 알고말고.

연이 볼을 붉히며 짐짓 환을 흘겨봤다. 그 눈빛에 환의 입꼬리가 위로 승천하는 것도 모른 채.

“자, 영차.”

환이 연의 허리를 끌어안고 걸음을 지속했다.

어느새 엉기적엉기적 걷는 환의 몸에 연이 되레 기댄 자세가 되어 있었다.

‘이러면 부축하는 의미가 없어지는데.’

연은 멍하니 생각했다. 그냥 뒷간에 함께 가는 것 같은 자세가 되어버렸다.

“자, 장난치지 마시고요!”

연이 급히 제 본분을 깨닫고 소리쳤다. 그러자 환이 멀끔한 얼굴로 대꾸하였다.

“아니 연 님께서 제 지팡이가 되어 주고 계시지 않습니까? 존재만으로도 엄청 힘이 납니다.”

하여튼 저 넉살은.

그러면서 환의 손이 제 허리와 가슴께를 지분거린다. 전혀 아픈 분 같아 뵈지 않았다.

이 늑대, 분명 제대로 걸을 수 있는데 이렇게 들러붙는 것이 분명했다. 아주 그냥 기회다 싶은 모양이었다. 제 아내를 평소와 같이 물고 빨 기회.

연은 볼을 부풀리며 생각했다.

‘아니, 어제 덫에 걸려 피를 한 바가지 쏟은 분이 맞으신가.’

지금 하는 모습으로만 보면 피가 부족하긴커녕 혈기가 넘쳐흐르는 것 같은데.

그래도 그 와중에 배가 남산인 연이 힘들까 봐 보폭도 맞추고, 허리를 감은 팔뚝에 핏줄이 솟을 만큼 몸에 힘을 주고 있었다. 그 덕에 연은 하나도 힘들이지 않고 그를 뒷간까지 모시고 갈 수 있었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볼일 보고 나오셔요.”

뒷간에 도착한 연은 얼른 신랑의 등을 떠밀었다.

꼭 낳지도 않은 애를 돌보는 느낌이었다.

환은 또 좋다고 싱글싱글이었다. 그가 중얼거렸다.

“연 님이랑 한시도 떨어지지 않게 해달라고 달님께 소원을 빌었더니 이걸 이런 식으로 들어주시네요.”

연은 그게 무슨 개소린가 싶었다. 그러다 어차피 늑대도 개라는 걸 떠올리곤 욕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튼, 빌어도 그런 소원을 비세요!”

연은 작게 핀잔을 주었다. 그러나 말로는 타박해도 손으론 환의 옷깃을 바로 고쳐주었다. 그러자 연의 타박에 풀 죽은 표정을 했던 환이 금세 기분이 좋아졌는지 활짝 웃었다.

“역시 연 님은 너무 다정하세요. 위험할 정도로요.”

그러면서 또 그윽해진 눈길로 저를 내려다봤다. 연은 할 말을 잃었다.

“소, 소변 보고 싶으셨다면서요. 안 들어가시고 뭐 하세요!”

연은 신랑 등짝을 떠밀며 뒷간으로 보냈다.

‘환 님은 참 별것도 아닌 일에 기분이 좋아지시는구나. 이럴 때면 정말 속 편하신 분이셔.’

연은 흠흠거리며 생각했다. 그래도 다리를 다쳤다고 죽상이 되어 울적해하시지 않는 남자라 다행이었다. 정말 환이 우울해했다면 위로에 소질이 없는 연은 곁에서 아무 말도 해주지 못했을 거다.

연이 멀찍이 떨어져서 흙바닥을 차며 기다리는데 무슨 소리가 들리긴 들렸다. 늑대 귀를 속일 순 없었다.

‘흠흠….’

연은 얼굴을 붉혔다.

‘무슨 폭포수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 소릴 들으니까 요전번에 제 가랑이 사이에 눈을 고정하고 헐떡이던 환의 신음도 생각나고 참 기분이 뒤숭숭했다. 하여튼 제 신랑 건강하단 건 충분히 알겠다.

연은 다시 나왔던 길 그대로 환을 방까지 바래다주었다. 물론 이번에도 제가 환을 바래다주는 건지 환이 저를 바래다주는 건지 모를 상황이 펼쳐졌다.

시간은 또 흘러 아침을 먹을 때가 되었다. 다행히 배부른 연 님을 걱정하던 진팔이 국을 끓이고 가긴 했다.

“아궁이로 밥만 짓고 나서 시래깃국이랑 같이 먹으면 될 것 같아요.”

연은 팔을 걷어붙였다.

그런데 이번에도 환이 가만히 있질 못했다. 혼자 부엌께에서 부른 배를 잡고 낑낑거리며 일하는데,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아니나 다를까 신랑이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습니다. 연 님이 눈에 안 보이시니깐 미칠 것 같아요.”

미간에 잔뜩 내 천(川) 자를 그린 환이 절뚝이면서 다가왔다.

“진팔 님이 한동안 걷지 말라고 하신 것 잊으셨어요!”

연은 기겁하며 환의 등을 떠밀어 다시 방 안으로 모시고 가려 했다. 그의 어깨도 아프지 않게 찰싹찰싹 때렸다. 가만히 맞으면서 환이 울상을 지었다.

“그러긴 했는데요, 아무래도 안 되겠습니다.”

아무리 마님께서 방 안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마시라 불호령을 내렸대도 말이다. 만삭인 아내를 어디 부엌가에 홀로 둘 수 있으랴.

“저는 그냥 평생 연 님 시중 노릇이나 할 팔잔가 봅니다. 연 님 일 시키고 저 혼자 누워 있으려니 마음이 편하질 않아요.”

환은 연이 들고 있던 주걱을 대신 받아 들고 남은 한 손으로 제 가슴께를 짚었다.

“콩만 한 분께 일을 시키려니까 제 여기가 쓰린 걸 어쩝니까.”

연은 제 남편을 향해 눈을 흘겼다. 그래도 환은 맞는 소리만 늘어놓았다.

“부인이 자기 아이 임신해서 남산만 하게 배부른 채로 낑낑거리며 눈앞에서 왔다 갔다 하는데, 그걸 어느 사내가 두고만 보겠습니까.”

그러면서 환이 연을 은근슬쩍 꼴린 눈깔로 바라보았다.

“차라리 지금 당장 연 님 가랑이 사이를 빨라고 시키면 빨겠는데요.”

…잘 나가다가 꼭 삐딱선이다.

연은 어이가 없었다. 자기 배를 손으로 가리켰다.

“배가 이런데도 저를 보면 그런 소리가 나오세요?”

“오히려 더 좋던데요. 배가 커질수록 안쪽이 더 여물어서 저를 콱 조여주시는데, 어쩌다 가물에 콩 나듯 몸을 허락해 주실 때마다 저는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듯한….”

연은 황급히 환의 입을 두 손으로 막았다. 그마저도 까치발을 들어 올려야 했다.

“이, 이제 아이 아버지 되시는 분이 그런 소리 좀…!”

연의 손바닥에 입이 가로막힌 환이 웅얼거리는 소릴 내었다.

“이거또 마니 자중한 거심니다? 원래는….”

연은 다시 한번 환의 팔뚝을 찰싹 때렸다. 이 사내가 농담하는 거 보니까 다 나은 모양이었다.

“사, 상 차려 올 테니까 밥이나 드세요!”

그렇게 연이 낑낑거리면서 차린 상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환이 또 그걸 곁에서 두고 보기만 하겠나.

절뚝거리는 다리로 따라오더니 두 팔로 상을 번쩍 들어 올려버렸다.

연은 당혹스러웠다. 진짜 이러면 누가 누굴 돌보는 건지 모르겠다. 그래도 부른 배를 안고 부엌가에서 방까지 갈 생각에 눈앞이 아득했었기에 다행이었다.

흠흠, 헛기침하며 연은 그대로 상을 들고 가는 환을 총총 따라 방 안으로 들어왔다.

“자, 아…. 하세요!”

밥상을 들고 방 안으로 들어와서도 마찬가지였다. 두 손 두 발이 멀쩡한 건 저인데 외려 숟가락을 들고 먹이려는 건 환이었다.

“아, 진짜 장난치지 마세요!”

“쓰흡! 출산일이 가까울수록 더 잘 먹어야 하는 법입니다. 속이 부대낀다고 어제저녁도 새 모이만큼 드셨잖아요.”

하긴 요즘 환은 연에게 한 술이라도 더 먹이려고 안달이었다.

제가 좋아하는 물 반찬을 솥뚜껑에 구워서 내놨는데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저 연 먹이기에 열심이었다.

“아, 진짜! 환 님 드시라고요! 저 말고 환 님 입에 넣으시라니깐요?”

“알아요, 알았습니다. 자, 이거 한 입만…. 옳지!”

그런 환이 고마운 건지 어쩐 건지 연은 그 정성이 갸륵해서라도 그가 들이미는 숟가락을 한 입 받아먹었다. 그렇게 한 입, 두 입 하다 보니 어느새 연의 밥공기가 싹 비워졌다. 그 와중에 외면당한 환의 밥공기는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었다.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었다.

그를 발견한 연이 겸연쩍어 중얼거렸다.

“환 님 밥이 다 식어버렸잖아요.”

“식으면 좀 어떻습니까? 찬밥도 밥입니다?”

그제야 환이 뿌듯하게 웃으면서 밥을 퍼먹기 시작했다. 이미 살코기며 국 건더기는 다 연에게 떠먹인 후라 남은 건 가시에 붙은 살점 몇 개랑 건더기 없는 국물뿐이었다. 환은 그런데도 연이 차려 온 상이라며 맛있다, 하면서 다 먹었다.

“우리 연 님께서 나 먹으라고 배부른 몸으로 낚아 오신 물건들인데 남겨야 되겠습니까?”

환은 밥그릇에 물을 붓고 남은 밥알에 고기 찌꺼기까지 싹 다 마셔 말끔하게 설거지를 해버렸다.

그렇게 아침 차려 먹고, 점심 차려 먹고, 저녁 차려 먹는 데에 하루가 다 갔다. 만삭의 몸으로 연이 집안일을 좀 하려고 설렁설렁 움직이면, 귀신같이 낌새를 눈치챈 환이 절뚝절뚝 그녀를 따라붙었다.

결국, 연의 손에서 시작한 모든 일은 환의 손을 거치고 끝을 보았다.

‘이러면 간병의 의미가 없어지는데.’

연은 살짝 양심에 찔렸지만 저는 환의 새끼를 밴 몸이라고 생각하니 조금 있던 죄책감도 눈 녹듯 사라져버렸다. 가만히 누워 있는 것도 힘든 산달의 임산부였다. 실은 환이 이리 극성인 게 아주 싫지만은 않았다. 조금 더 보태서 말하면 꽤 많이 고마웠다.

말마따나 환은 정말 환부가 전혀 아프지 않다는 듯 굴었고, 일상생활을 하는 데도 전혀 지장이 없어 보였다.

그게 문제였다.

“정말 거뜬합니다. 평소랑 다른 점이 전혀 없어요.”

연은 그 말을 믿지 말았어야 했다. 아무리 환 님이 천하장사 같으신 사내라고 해도, 저 또한 덫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는 터였는데. 전날 발목의 반이 분질러질 뻔한 분이셨는데 말이다. 그날 저녁 잠자리에 들며 환의 이마에 맺히던 식은땀도 연은 눈치채질 못했다.

“주무세요.”

여느 때와 같이 저에게 팔베개해 주시려는 분을 저만치 밀어내었다. 조금 더 따듯한 데서 주무시게 하기 위해서였다.

환부의 붕대를 한번 또 갈긴 했다. 좀 부은 것 같기도 하고, 진물이 약간 생긴 것 같았지만 인간의 몸으로 보이는 병색은 잘 모르는 연이었다.

‘내일이면 돌봐주실 늑대가 오신다고 했으니까. 그때까지만 버티시면 되겠지.’

연은 안심하고 잠에 빠져들었다. 자꾸 제 옆구리를 파고들려는 사내를 뜨끈한 아랫목 쪽으로 밀어냈다.

“자꾸 이러시면 안 돼요. 눈감고 열까지 센 뒤 잠드시는 거예요?”

“음. 알겠습니다.”

환이 말 잘 듣는 착한 아이처럼 대꾸했다.

‘진팔 님이 잘 먹고 잘 자면 낫는다고 했으니까.’

연은 그 말을 찰떡같이 믿었다. 하루 종일 저를 병아리 새끼처럼 졸졸 따라다니고, 평소처럼 제 할 일을 죄다 도맡아 대신하고. 밥을 평소보다 부실하게 먹긴 했어도 환이 좀처럼 아픈 티를 내질 않아서 전혀 몰랐던 거다.

사달은 그날 새벽에 일어났다.

연은 옆에서 느껴지는 기이한 열기에 제 피부마저 화끈거리는 걸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다.

아궁이는 새벽녘에 한 번 나가서 불을 지켜봐 주지 않으면 차갑게 식기 마련인데 방이 왜 뜨끈할까 싶었다.

그러다 불현듯 옆에 누워 있는 신랑 생각이 났다.

“환 님, 환 님…!”

연은 식겁하여 제 남편을 깨웠다.

아니나 다를까, 환의 이마를 타고 식은땀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이 열기가 환의 몸에서 나오고 있다는 증거였다. 황급히 그의 옷자락을 들쳐 손을 밀어 넣으니 몸이 불덩이였다.

“으음. 몸이 좀 이상한 것 같습니다. 연 님.”

환이 눈을 감은 채 연에게 투정 부리듯 중얼거렸다.

“연 님이 두 분으로 보입니다. 여기가 말로만 듣던 천당인가 봅니다.”

지금껏 착하게 산 상을 받는 모양이에요. 환의 중얼거림에 연은 그럴 리가 없다며 대경실색했다.

태어나서 한 번도 이렇게 앓아 본 적이 없는 사내였다. 저도 이런 적이 처음이라는 듯, 그가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지도 못하며 우물거렸다.

“빨리 일어나서 연 님 밥 차려드려야 하는데….”

연은 정신도 못 차리고 헛소리하는 사내를 보고 기겁했다.

“아, 아직 새벽입니다, 환 님. 밥 먹을 시간이 아니에요.”

밥 먹을 시간도 구분 못 하는 제 서방이 안 좋은 상태라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전날 아픈데도 무리해서 탈이 난 게 분명했다.

‘내 잘못이다. 아무리 괜찮다고 말씀하셔도 진짜 믿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지만 이미 사태는 일어나버렸다. 연은 환을 다시 제대로 간호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환 님. 정신 차리셔야 해요. 아파도 좀만 참으세요.”

일단 부른 배를 끌어안고 뒤뚱뒤뚱 마당가로 가 물을 한 바가지 떠 왔다. 환의 목을 억지로 들어 올려 물부터 들이켜게 했다. 그리고 환의 저고리를 풀어 헤친 뒤 창을 열었다. 아직 쌀쌀한 날씨라서 찬 바람이 들어왔다. 저고리를 푸니 건실한 근육질의 몸이 땀투성이였다. 연은 그 몸을 찬물에 적신 수건으로 연신 닦아내었다.

그러길 또 몇 시진. 차도는 보이지 않는 듯했다.

연은 이제 초조해지는 걸 느꼈다. 다른 방도가 절실했다.

그때 어디서 주워들은 얘기가 생각났다. 연은 환의 앞으로 냉큼 기어가 말했다.

“환 님, 환 님…. 늑대 몸으로 변하시겠어요? 그러면 고통을 견디기가 훨씬 수월해지실 거예요.”

짐승으로 변하면 사람일 때보다 고통을 훨씬 오래 견딜 수 있었다.

한데 환은 사경을 헤매는지 아내인 제 말이 들리지도 않는 듯 보였다.

사실 환은 기력을 소진해 잠에 깊이 빠져든 것이었으나, 연은 인간일 때의 병색을 잘 알지 못했다. 이미 절로 낫고 있어 그대로 두기만 하면 완치될 터였다. 그러나 연은 그가 정말 위급 상황에 빠진 줄 착각하였다.

‘진팔 님이 오실 아침까진 어떻게든 버텨야 하는데…. 어쩌지.’

연은 안절부절못하다가 그의 곁으로 엉거주춤 네발로 기어 다가갔다.

짐승의 모습으로 수인을 변화시키는 데엔 육체적 자극만 한 게 없었다. 더군다나 지금처럼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할 땐 몸을 마음대로 쓸 수 없을 테다. 그가 늑대 모습으로 변할 수 있도록 아내인 제가 돕는 게 맞았다.

연은 다가가 환의 귀밑머리를 쓸어내리며 목덜미에 입술을 붙였다.

‘평소에 여기를 핥아드리면 좋아하셨지.’

동맥이 흐르는 바로 그 자리였다. 혈 자리를 누르듯 입술로 그가 평소에 예민하게 느끼는 자리를 꾹꾹 누르고 핥았다.

배가 부른 처지에 그를 애무하듯 이러고 있으니 육체가 금방 고단해졌다. 그래도 서방을 살리는 일이다, 생각하니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아침까지만 버티셔요, 환 님….’

아침이면 진팔이 도움을 줄 늑대와 함께 도착할 거다. 연은 간절한 마음으로 그의 목덜미며 땀으로 젖은 가슴팍을 열심히 더듬었다. 환의 가슴팍을 어루만지다 이대론 턱도 없겠단 생각이 들었다.

‘늑대로 변할 생각을 않으시네.’

연은 눈을 질끈 감고 젖꼭지 부분을 입에 댄 채 쪽쪽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환의 바지춤 사이로 가려졌던 것이 대번에 우뚝 기립하는 게 느껴졌다. 그런데도 환은 늑대로 변하긴커녕 귀나 꼬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머리 늑대라서 그러신가, 그것도 아니면 정신력이 좋으신 건가….’

끄응 앓는 소리를 내면서도 좀처럼 짐승 모습으로 바뀌질 않으셨다.

연은 조바심을 느꼈다. 환장할 지경이었다. 환 님이 이렇게 끙끙 앓을 정도로 아프신데…. 어서 빨리 고통을 줄여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연은 결국 손을 내려 환의 바지춤을 끌어 내렸다.

모습을 드러낸 환의 성기에 자신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이래도 되나 싶은 죄책감이 강하게 일었다.

‘환 님, 다 환 님을 살리려고 하는 짓이에요. 용서해 주세요.’

연은 눈을 질끈 감고 환의 아래에 손을 뻗었다.

배꼽까지 올라붙은 장대한 기둥과 그 아래 씨주머니가 불끈거리며 힘을 받듯 위용을 과시하고 있었다. 아픈 와중에도 이렇게 제 손길에 반응하다니.

‘사내는 젓가락 들 힘만 있어도 그 짓을 한다고 하던데.’

그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나.

사실 환은 기운을 서서히 차리고 있었기 때문에 저런 반응이 온 거였지만, 연은 그 사실을 꿈에도 몰랐다.

그저 환이 조금이라도 덜 고통스럽도록 짐승 모습으로 변할 수 있게 돕고 싶었다. 그 외의 것은 아무렴 어떠랴 싶었다.

‘환 님…. 그만 버티시고 늑대 모습으로 돌아가세요.’

연은 손바닥을 내려 환의 고환과 그 위로 우뚝 기립한 물건을 슬슬 쓸기 시작했다.

바로 환의 옆구리가 움틀거리며 반응이 쏟아져 나왔다.

연은 그 기세를 몰아 고개를 숙여 환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혀를 쏙 그의 입 안에 넣고 그가 매일 밤마다 제게 했던 것처럼 놀렸다. 손으로는 그의 장대한 기둥을 설설 쓸어내렸다.

“으음….”

환의 손가락이 갑자기 이불보를 세게 그러쥐었다. 식은땀을 흘리는 와중에 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연은 그것을 좋은 신호로 봤다. 손에 쥐고 있는 기둥을 위아래로 쓸기를 반복했다. 환이 반응할수록 더욱 손에 힘을 주었다.

위아래로, 위아래로….

그의 기둥 끄트머리에서 말간 액체가 맺히기 시작했다. 연은 그를 엄지로 문지르며 젖기 시작한 기둥을 더 힘차게 비볐다.

환의 입술이 움찔거리고 복근이 움틀거렸다. 그렇게 한참을 했는데도 그는 늑대로 변하기는커녕 씨물을 뱉어낼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연은 허억, 숨을 뱉어내며 환의 입에서 입술을 떼어 냈다.

‘그렇다면….’

최후의 방법이었다. 연은 부른 배를 끌어안고 힘겹게 환의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엎드려 그의 곧추선 양물을 입에 가득 품었다.

“우움….”

연은 언젠가 제 고개를 잡고 내렸던 환의 손아귀 힘을 기억해냈다. 그만큼 세게 입술에 힘을 주고 상체를 움직였다. 그의 좆을 입에 물고 정신없이 고개를 꺼떡거리기 시작했다.

“움, 우움…!”

환에게서 흘러나온 씨물과 제 타액이 섞인 액체가 줄줄 입술을 타고 흘렀다. 그걸 윤활유로 삼아 연은 더욱 열심히 구음했다. 손으론 그 아래 씨물과 회음 근처를 더듬었다.

‘그만 제발 늑대로 변하세요…!’

그때 뭔가가 그녀의 고개에 닿았다. 잠에서 깬 환이 팔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짚은 것이었다.

“우움…!”

깜짝 놀란 연이 콜록거리며 움직임을 멈췄지만 환의 손 때문에 고개를 뺄 수도, 입에 문 좆을 뱉어낼 수도 없었다.

그 순간, 연은 환과 눈을 딱 맞닥뜨리고 말았다.

완벽한 짐승의 눈.

임신해서 남산만 하게 배부른 아내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곤 온통 타액으로 범벅된 채 제 좆을 물고 끙끙거리는데, 그 어떤 사내가 이 상황에서 음전함을 유지할 수 있을까.

“하아, 이게 무슨….”

환의 입에서 아연실색한 음성이 튀어나왔다. 습관대로 욕설이 튀어나오지 않은 게 다행일 정도였다. 그의 귓불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환은 땀을 흘리고 있었으나 몸은 급격히 나아진 상태였다. 워낙에 체력이 좋기도 했고 생명력도 짐승 같아서 이까짓 열병은 하룻밤 사이에 떨쳐버린 셈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병마를 이기고 잠에서 깨고 보니 도무지 이길 수 없는 거대한 적이 버티고 있는 기분이었다. 바로 맨젖가슴을 드러낸 채 젖은 입술로 제 성기를 물고 있는 연이었다.

‘씨발, 이게 무슨 상황이지….’

더군다나 연이 만삭이라 하루에 서너 번 해대던 것을 주에 서너 번으로 줄인 참이었다. 환의 입장에선 한 주 내내 굶은 그의 입 앞에 잘 익은 고기를 들이미는 격이었다.

환은 진심으로 눈앞의 광경이 꿈이라고 생각했다. 이게 웬 떡이냐, 하며 그르렁 달려들었다.

그대로 미루고 미뤘던 정사의 시작이었다.

환의 팔 근육에 핏줄이 곤두섰다. 그가 엉덩이를 들어 올리며 허리를 쳐올리기 시작했다. 연의 입술에 반쯤만 물려 있던 좆이 뿌리까지 처박혔다.

“음, 음…!”

연은 치밀어 오는 생리적 고통에 눈물이 찔끔 배어 나오는 걸 느꼈다. 그렇지 않아도 흉흉한 게 크기가 크기인지라 버거워 숨을 쉬기 힘들었는데, 이젠 끝까지 박히는 바람에 목젖을 건드는 느낌이었다. 고통스러운 동시에 환이 아픈 와중에도 이런 힘을 발휘한다는 게 그악스럽기까지 했다.

“컥, 흐읍…!”

결국 연의 눈가에 맺힌 눈물방울이 볼을 타고 흘러 환의 허벅다리에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환의 허벅다리가 부들거리며 떨렸다. 그제야 제 머리칼을 움켜쥐고 있던 사내의 힘 좋은 손아귀가 떨어져 나갔다.

“…하아….”

이제 끝인가 싶었다. 그런데 환의 상체가 갑자기 올라오더니 벌컥 연의 겨드랑이가 붙들렸다.

순식간에 배부른 연의 상체가 딸려가고, 느슨히 풀렸던 저고리가 완벽히 풀어 헤쳐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자세가 바뀌고, 젖이 돌아 부푼 연의 가슴팍으로 환의 좆이 비벼졌다.

“아읏, 응…!”

연은 환의 신호를 알아차리고 두 손으로 제 가슴골을 모았다.

몇 번 해본 적 있었다. 가슴으로 환의 좆 대가리를 비비는 일은.

“허억. 허억…. 연 님….”

눈을 아찔하게 감은 환의 관자놀이로 땀이 주룩주룩 떨어졌다. 상체를 비스듬하게 세운 채 가슴으로 제 좆을 애무해 주는 아내를 온몸으로 느끼는 사내의 모습은 가히 절경에 가까웠다.

그의 복근이 사정없이 움틀거리고 호흡이 거칠어졌다. 환은 힘이 들어간 손으로 연의 목덜미와 머리칼을 어루만졌다. 콧등을 찌푸린 채 그가 사정없이 신음했다.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연의 가랑이 사이가 착실하게 젖어 들었다.

기분이 아주 묘했다. 평소에는 환이 저를 물고 빠는데, 이번엔 제가 그를 애무해주고 있었다. 그런데도 귀찮거나 싫지 않았다. 제가 이런 취향이었나 싶었다.

마치 정신이 온전치 못한 환을 제가 범하는 것 같은 기분.

육체적으로 너무 힘든데도 멈출 수가 없었다. 연은 그때부터 저 역시 반쯤 정신이 나갔다. 젖으로 빵빵하게 부푼 아린 가슴 사이로 그의 붉으락푸르락 솟은 좆 대가리를 품고 조여대었다. 그 바람에 모유가 비집고 흘러나와 그의 기둥을 사정액처럼 적셨다.

“크…. 흑….”

환의 신음이 거칠어지며 콧잔등에 서린 땀방울이 툭, 하고 떨어졌다.

그 순간이었다.

연의 겨드랑이 사이가 다시 잡히고 이번엔 숨도 쉬지 못할 틈에 그녀의 몸이 번쩍 들어 올려졌다. 부푼 배를 끌어안고 몸을 움츠린 연을 환이 제 배 위로 끌어당겼다. 연의 두 다리가 활짝 벌어졌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의 위에 앉아 있었다.

“흐, 흐읏…!”

환의 거친 손바닥이 연의 아래를 몇 번 슥슥 비볐다. 마치 혼곤한 와중에도 그녀가 충분히 젖었는지 확인하듯이. 지리기라도 한 것처럼 완전히 축축한 아래를 확인한 그가 더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연의 몸을 살짝 들어 올렸다. 그녀의 아래에 제 발딱 기립한 좆을 끼워 맞췄다. 기둥은 미끄러지듯 안으로 밀려 들어갔다.

“흐응…!”

연은 빠듯하게 제 안쪽에 들어차는 좆 기둥을 느끼며 신음했다. 어찌나 젖어 있던지, 흐르는 냇가에 손을 철벅대며 담갔어도 이런 소리는 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도 다 품기엔 너무 버거운 기둥이었다. 아기가 나올 구멍이 힘겹게 벌어지며 임신을 위해 씨물을 제공한 그 좆을 조였다.

연은 자신도 모르게 배를 보호하듯 끌어안고 몸을 잔뜩 움츠렸다. 환이 그 상태로 약간 멈칫하였다. 하지만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듯, 신음과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반 정도 넣은 상태로 연을 빠듯하게 끌어안은 환이 허리를 몇 번 퉁겼다. 연의 안쪽이 자지러지며 바짝 수축하기 시작했다. 이미 흥분의 정점에 달해 있던 여체는 넣은 것만으로도 절정에 다다라 환호성을 질러댔다.

“아읏, 흡!”

뒤로 넘어가려는 연의 출렁이는 가슴께가 환의 눈앞에서 넘실거렸다. 이미 그가 지려놓은 정액과 뽀얀 모유가 번들거리는 젖가슴이었다.

“허억, 씹….”

환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튀어나오며 그가 허벅지를 몇 번 더 튕겨내었다. 갑자기 결합이 확 깊어졌다. 뿌리 끝까지 넣을 기세로 박자, 용솟음하듯 닿은 부분이 아기집 입구라도 되는 것 같았다.

“아윽, 하읏…! 환 님…! 아가, 우리 아가가… 살살…!”

“알아요…. 조금, 조금만….”

달달 떨리는 연의 허벅지가 조여들고 뒤로 넘어가려는 여체의 팔을 환이 잡아당겼다.

연은 절정의 여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신음을 뿌리며 남편의 몸 위로 무너져 내렸다. 그런 연의 몸을 환이 꽉 잡았다.

이윽고 미친 듯이 살 치대는 소리가 났다. 환의 허벅다리와 연의 엉치뼈가 맞닿아 내는 소리.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젖어 철썩이는 소음이 방을 울렸다. 연의 흐느낌과 환의 신음이 절정에 달했을 때였다.

그 순간, 뭔가가 그의 좆을 꽉 잡았다가 놓듯 벅찬 해방감이 환의 전신에 치솟았다.

“큭….”

연은 본능적으로 제 씨를 안으로 뿌리려는 사내의 손에 제 엉덩이가 콱 맞물려 잡히는 걸 느꼈다. 그대로 절구를 찧듯 크게 원을 그리며 비비기까지 했다. 완벽한 극치감에 연 역시 짤막하게 소리를 흩뿌렸다.

“아, 아학…!”

봇물이 터져 나오듯 뭔가가 그의 안에서 끝없이 샘솟았다. 연은 잘잘 떨리는 그의 허벅지 힘에 제 힘없는 살이 딸려가 박히는 걸 느꼈다. 안에 박힌 환의 좆이 끊임없이 뭔갈 뱉어냈다. 오줌보라도 갈기듯 거세고 시원하기까지 한 씨물 줄기였다.

그렇게 얼마나 자세를 고정시키고 있었을까.

방망이를 찧어 가루를 내듯 안을 처바르던 기둥이 툭, 하고 빠져나왔다. 아직도 기세가 매서워 아픈 이의 것 같지 않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어느새 연의 볼을 타고 턱 끝에 맺혔던 눈물방울이 사정없이 떨어졌다. 그대로 무너지는 연의 몸을 환이 받아 챘다. 겨우겨우 그녀를 옆에 고이 누인 환이 마지막 한숨을 길게 토해내었다.

“이게…. 무슨….”

어느새 그의 이마에 줄줄 흐르던 땀이 식어 있었다.

그때까지도 늑대로 변하지 않은 환의 의지를 대단하다고 칭찬해야 할지, 막달의 몸으로 이런 기가 막힌 정사를 감당해낸 연이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눈앞의 상황이 꿈이 아닌 걸 인지한 그가 대경하며 쓰러진 아내를 바라보았다.

‘아뿔싸.’

일을 내버린 것이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제가 몹쓸 짓을 했다는 것은 눈에 들어왔다. 머리가 다 지끈거렸다. 골머리를 짚던 그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일단 일을 수습해야 했다. 환은 훤히 드러난 아내의 부른 배와 가슴을 옷으로 꼭꼭 여며주었다. 땀에 젖은 귀밑머리를 쓸어 주고 이불까지 고이 덮어 드렸다.

완전히 기진맥진해져 잠들어버린 아내를 내려다보며 환은 생각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했더니….’

아무래도 그를 늑대로 변신시키고 싶어 이런 짓을 저지른 게 분명했다. 어디서 늑대 모습으로 있으면 고통이 줄어든단 소릴 들은 거겠지.

‘하…. 진짜. 연 님, 귀여워….’

아내가 저를 그렇게까지나 생각해줬다는 뿌듯함에 환은 이불에 머리를 묻었다. 그와 동시에 치밀어오르는 죄책감에 발을 구르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대체 임신한 아내한테 무슨 짓을 한 건지.

‘아, 그런데….’

이불에 머리를 박은 환은 문득 세상의 온갖 피로가 제게 밀려드는 걸 느꼈다.

‘왜 이렇게 피곤하지.’

아무리 낫는 중이었다지만 몇 시진 전까지만 해도 열병과 싸우던 몸이었다. 조금 전엔 격한 정사까지 있었다. 그의 몸은 결국 버티지 못했다.

그렇게 환 역시 아내의 곁에서 장렬하게 쓰러졌다.

환의 몸이 순식간에 부푸는가 싶더니 귀가 솟고 꼬리가 튀어나왔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이불에 덮인 연의 곁에 거대한 짐승 한 마리가 쓰러진 꼴이 되었다.

환은 그 상태로 연과 함께 정신없이 잠에 빠져들었다.

아침나절에 집으로 찾아온 진팔은 그 꼴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아이고, 형님! 형수님!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람…!”

다행히 진팔과 그가 데려온 도우미 늑대는 부부를 위해 빠른 처치를 했다.

환은 그 후로도 하루를 꼬박 잠만 잤다. 물론 연도 함께 누워 간호를 받았다.

자리에 누운 지 이틀 만에 완벽하게 회복된 몸으로 일어난 환은 언제 사경을 헤맸었냐는 듯 생생하기가 갓 태어난 짐승 못잖았다. 발모가지가 덜렁 잘린 것 같았던 환부도 씻은 듯이 나아버렸다. 그가 갖고 태어난 타고난 생명력이었다.

오히려 그 사달이 난 뒤에 가볍게 앓은 건 연이었다. 그런 그녀를 환이 재간병하는 사태마저 벌어졌다.

“고생시켜서 미안합니다.”

환은 그전까지도 아내를 아기처럼 싸고돌더니 그 후론 더했다. 또 뭔가 죄지은 사람처럼 연의 몸엔 손도 대려 하질 않았다.

연은 제 신랑이 대체 왜 이러시나, 의문이 들었지만, 그냥 그대로 넘겼다.

“아시면 됐습니다.”

연은 제가 그의 정성 어린 간호를 받을 만하다고 여겼다. 그가 극성맞게 구는 게 귀찮다고는 생각했지만 다 저를 위하는 마음이라 생각하니 나쁘지만도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그의 정성스러운 보살핌 덕에 연 역시 금세 기운을 차렸다. 그렇게 임신 막달을 무사히 넘긴 연이었다.

그들의 첫 아이는 그날이 있은 후 꼬박 이 주 만에 태어났다. 연의 당찬 기합과 환의 눈물 바람 속에서 태어난 귀중한 첫 아이였다.

아이는 아주 더할 나위 없이 건강하였다. 연은 훗날 아이를 어르면서 너 태어나기 직전 아버지가 덫에 걸려 큰일 날 뻔하셨다고 얘기해주곤 했다. 상처가 덧나 열병까지 난 아주 큰 사달이었다고.

“그러니까 아가 너도 아버지 닮아 몸 튼튼하다고 방심하지 말고 덫 같은 게 있으면 조심히 피해 다니거라, 응?”

“…….”

“네 아버지 같으신 분도 사경을 헤매실 땐 눈앞의 아내가 꿈인지 생신지도 못 알아보시더구나.”

“…….”

아직 눈도 뜨지 못한 아이를 얼러대는 아내의 말을 듣고도 환은 침묵을 지켰다.

환은 절대 입 밖으로 발설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사실 그때 그가 꽤 멀쩡한 정신이었단 걸. 원만한 부부생활의 지속을 위해 그가 무덤까지 안고 갈 비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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