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7/11)

6. 진실

환은 진실로 당황했다.

모든 게 완벽한 순간이었다.

새하얀 눈이 사방을 덮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우신 분의 손을 잡고 함께 그 위를 걸었다. 마치 둘 사이의 미래를 찍듯, 흰 눈 위에 나란히 두 쌍의 새 발자국을 내었다.

눈 가지고 할 수 있는 놀이는 다 하였다. 귓가에 차르르 퍼지는 연의 웃음도 몇 번이나 들었다. 연은 분명 즐거워했다.

마지막엔 점잖게 다시 돌려보내 드리기까지 했다.

성질 같았으면 대뜸 안아 들고 신방 차렸을 것을 혼신의 힘을 끌어모아 참았다.

‘어차피 봄 오기 전 내 여인 되실 몸이다.’

겨우내 염불 외듯 되뇐 거, 이번 한 번 역시 못 참을까 싶었다.

이 밤 지나면 제 품에 폭 안기실 걸 알기에. 피곤하실 게 분명한 오늘은 그냥 놔드리고자 했다. 그 생각을 한 스스로를 심지어 약간 기특하게 여기기도 했다.

그래서 환은 그 순간이 그들에게 완벽하다고 자부했다.

군고구마가 좀 차가웠던 것 빼고는.

연이 옥구슬 같은 눈물을 후두둑 흘리며 그의 소맷자락을 붙들기 전까지는 말이다.

“여, 연 님. 왜 그러십니까. 제가 연 님의 마음을 상하게 했습니까?”

환은 아연실색하며 물었다.

허둥지둥 눈물 젖은 볼로 손을 가져다 대었다. 그러자 연이 더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흡, 흐읍…. 다 제 잘못입니다. 환 님께는 잘못이 없습니다….”

그래서 환은 대경하고 말았다.

“아, 아니…. 왜 우십니까. 잘못이라니요? 연 님…. 연 님…?”

심장이 덜커덩, 하고 저 밑의 지하 대장군 목전까지 떨어져 내린 것 같았다.

“일단 들어갑시다. 들어가서 얘기합시다….”

일단은 추우실 게 분명하니 우는 이를 달래고 어르며 큰 방에 들어오긴 했다.

하지만 눈물 흘리시는 이는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예 제 소맷자락을 붙들고 끄윽끄윽 하며 울어대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왜 울어도 예쁘시냐…. 환장하게.’

마음이 쓰리다 못해 아릴 지경이었다.

살면서 남이 우는 꼴을 보며 이리 마음 아픈 건 또 처음이었다.

평소엔 씩씩하기 그지없는 여자가 이리 서럽게 우니 더 마음이 무너지는 듯했다.

그렇지 않아도 이 겨울 온 마음을 바친 분이었다. 그런 분이 제 눈앞에서 눈물을 보이니, 환은 가슴이 찢어져 너덜거린다는 게 어떤 건지 드디어 알 것 같았다.

이건.

이건….

‘좆같네….’

환은 진심으로 그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그도 같이 울고 싶었다.

“연 님, 연 님…. 울지 마십시오. 제 가슴도, 씨, 아프잖아요….”

남이 울면 더 골려준 적은 있어도 달래본 건 처음이라 환은 애를 먹었다.

일단 우는 이 눈물을 양손으로 연신 닦아내렸다. 그래도 퐁퐁 샘처럼 솟아났다. 혹시나 싶어 혀로도 핥아봤다. 그랬더니 폭포 터진 것처럼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우리 연 님 착하다. 이제 안 우신다, 뚝!”

아이 달래듯 모로 안아 들고 둥개둥개 흔들기까지 했다.

추운 날씨로 벌게진 코에 연신 입술을 찍고, 버선 벗겨서 찬 발바닥을 손으로 꼭 감싸 쥐고 주물렀다. 발이 너무 찬데, 또 그의 손안에서 너무 작아 보여 더욱 애처로웠다.

그랬더니 연 님이 아예 그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대성통곡을 하셨다. 결국, 환도 고개를 내리깔고 우는 소릴 냈다.

“하씨…. 진짜, 연 님…. 대체 왜 우시는 겁니까.”

그렇게 둘이서 별의별 환장할 짓거리를 하다 겨우 진정하였다.

환은 딸꾹질하기 시작한 연을 제 품에 가두고 젖은 얼굴을 계속해서 닦아주었다.

“도대체 왜 우셨던 겁니까. 아깐 아이처럼 웃지 않으셨습니까. 웃다 울면 말 못 할 부위에 털이 난다 하였습니다. 저를 놀라게 하셨어요.”

잘 놀다 들어가는 줄 알았는데, 이리 울어버려서 환은 마음이 상했다. 연에게 미안하고 죄스러운 게 말도 못 했다. 대체 뭐가 잘못된 건가, 제가 실수를 했나, 속으로 억겁 번을 고민했다.

그러자 환의 소맷자락 안에 숨은 연의 입술이 꿈틀했다.

“…누, 눈이 내려서….”

“예?”

환은 당황했다.

아니, 평소에 그리 영특하고 사리 분별 잘하시는 분이 눈이 좀 왔다고 이렇게 울 수 있나.

환의 머리론 이해가 가질 않았다.

“눈이 내려서 우셨다고요? 왜요?”

이번엔 대답이 쉬이 나오지 않았다.

환은 다시 한번 아이 어르듯이 품에 안은 여자를 둥개둥개 흔들었다. 그제야 소맷자락에 숨겨져 있던 발간 얼굴이 빼꼼하고 나왔다.

“눈이 와버리면, 봄이 오잖아요. 봄이 오면….”

환은 연의 말을 듣기 위해서 귀를 바짝 세워야 했다. 연의 목소리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갈 기세로 작았다.

“…환 님은 가버리실 거잖아요.”

마지막 단어를 뱉을 때 상상만으로 눈물이 나는지, 연의 눈에 다시 왈칵 물이 차올랐다.

“허어….”

환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었다.

그는 한참을 벙쪄 있었다.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몰려들었다.

이윽고 환의 입술 끝이 움찔거렸다. 애틋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고. 또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오려다가도 젖은 얼굴을 보니 같이 울컥할 것 같다.

환은 그냥 연을 끌어안고 중얼거렸다.

“…어디서부터 틀린 부분을 고쳐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연 님.”

“그냥, 고치지 마세요, 끅!”

연은 제가 한 말이 창피한지 다시 얼굴을 그의 가슴팍에 묻어버렸다.

환의 입장에선 대성통곡할 노릇이었다.

이거 어쩐다.

‘떠날 생각 없었는데.’

떠나긴커녕 아주 연 님 마음에 똬리를 틀어 평생을 옭아맬 작정이었다. 마음을 허락하시면 당장에 짝부터 맺고 백년가약 하여 올봄부터 새끼 줄줄이 볼 생각이었다. 어디로든 도망 못 가게.

한데 봄이 오면 저를 보내실 생각이었다니.

‘누구 마음대로?’

약간 괘씸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지금까지 저 꼬시느라 발등에 불 떨어졌던 사내는 안 보이시는 건지. 평소에 안 하던 짓거리를 해서 명이 단축된 남자를 버려두고 혼자 어딜 가시려는지.

그때 그의 품에서 연이 빼꼼하니 고개를 내밀었다.

이미 눈물은 다 그친 후였다. 벌게진 눈에 무슨 결심 같은 것도 서려 있었다.

이제야 제가 무슨 짓을 저지른 건지 감이 돌아오기 시작한 듯싶었다. 연의 두 볼이 슬슬 현실을 인지하고 달아오르고 있었다. 간밤의 술과 좀전의 나들이에 취해 평소라면 하지 않을 짓을 한 거였다.

당황해하는 연은 또 그런대로 사랑스러웠다.

‘하, 씨. 지금 입 맞추면 뺨 맞으려나.’

환은 아까부터 방망이질 쳐대며 나대는 제 심장을 누르고 연의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뜨거운 불덩이가 가슴에 내려앉은 것 같았다. 마음만 같아선 저 여린 몸을 당장 내리누르고 차마 말로는 다 못 할 그 이상의 것을 막 해버리고 싶었다.

이미 제 것이라 점찍어둔 여인이었다. 이젠 서로 마음까지 확인한 거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환이 희대의 고민을 거듭하는 와중이었다.

연이 꼼지락거리며 환의 무릎에서 내려왔다.

“내려 주세요.”

환이 몇 번이고 다시 잡아당겨 끌어안으려는 걸 거듭 마다하고 굳이 바닥에 앉으려 했다.

아직 온돌이 따뜻하여 환은 바닥에 앉겠다는 여자를 참았다.

고개를 푹 수그린 여자는 죄인 같았다. 얼굴은 울어서 엉망에 입술은 또 왜 부었는지 모르겠다.

환의 불타오르는 시선이 게에 꽂혔다. 저걸 콱 물어버리고 싶었다.

“아직 할 말이 남으셨습니까?”

초조한 환의 발바닥이 온돌 바닥을 탁, 탁 쳐댔다.

그러거나 말거나 연이 일단 환을 앞에 두고 절부터 올렸다. 환은 엉겁결에 절을 받고 맞절을 했다.

환장했다. 이건 또 뭐지. 가례라도 올리자는 건가. 그래도 일단 연이 하니 저도 같이 했다.

연이 콧물을 닦아내며 훌쩍였다.

“제가 나가겠습니다. 당장은 아니 되구요…. 이 겨울 지나고 봄이 오거든 나가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환은 위로 펄쩍 뛰어올랐다.

“뭐라고요!”

대경실색한 그의 표정을 못 본 연은 연신 눈물을 닦아내며 중얼거렸다.

“이대론 못 삽니다. 환 님께 피해를 드릴 수 없어요. 제가 나가겠습니다.”

환은 얼이 빠졌다.

아니, 대체 이번엔 또 뭐가 문제여서.

환은 열불이 나는 속을 가다듬고 심호흡을 했다.

“일단, 그…. 이유를 좀 알 수 있을까요?”

연이 빼꼼히 고개를 들었다. 얼굴이 붉었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바로 내리깔았다.

“제가…. 환 님을….”

연의 목구멍에 다시 울음이 차올랐다. 그녀가 새빨개진 얼굴을 하고 소리쳤다.

“연모해 버렸습니다. 환 님을 연모한다고요…!”

환은 입을 딱 벌렸다. 까딱 잘못했다간 눈이 뒤집힐 뻔했다. 목구멍이 턱 하고 막히고 심장이 미친 듯이 방망이질했다.

아니, 그거야말로 경사가 아닌가.

당장에 성수 뜨고 조상께 절하고 혼례 올려도 모자랄 판에 떠난다니.

“그래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더욱 같이 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환은 인내를 거듭하여 물었다. 어금니까지 같이 사리문 건 굳이 티 내지 않았다.

이유를 묻자 다시금 연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떨어졌다.

흐느낀 끝에 심호흡을 하는가 싶던 연이 겨우 말을 꺼냈다.

“제가 실은….”

겨울바람이 창호지를 두드리는 소리가 연의 목소리와 함께 울렸다.

연은 환에게 모든 사정을 털어놓았다.

몇 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연은 구구절절 저 살았던 이야기를 환에게 이실직고하였다.

머리 늑대인 랑의 동생으로 자란 생. 미친 곰에게 물려 뜯긴 부모님 얘기. 형부 대광과의 일. 그 사이에 치여 무리에서 쫓겨난 일. 아무 연고 없이 홀로 이 겨울을 날 뻔했다가 은인 같으신 환 님을 만나 뵙고 이렇게 기운을 차린 일까지.

연의 눈에서 쉼 없이 뜨거운 눈물이 떨어졌다.

“환 님. 제가…. 제가 실은 인간이 아니오라 짐승입니다. 이런 미천한 짐승의 몸을 하고 환 님을 연모했어요. 제가 몹쓸 짓을 저지른 거 압니다. 정말 염치도 없는 짓을 한 거지요.”

연이 환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펑펑 울었다. 애처롭게도, 가슴이 터질 것 같다는 듯 쥐어짜며.

“아시겠습니까? 사실, 사실 저는 짐승입니다. 늑대입니다. 인간이 아니란 말입니다.”

하면서 우리는 이루어질 수 없다고 연이 고개를 푹 숙였다.

환은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어찌 보면 연의 말을 못 들은 사람 같은 표정이었다.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한 얼굴.

‘이제 끝이로구나.’

연은 그의 반응을 미루어 보아 짐작했다. 이젠 정말 쫓겨나도 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연이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눈물을 닦기 시작할 때, 나직한 환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래도 어디 저만 할까요.”

“…예?”

훌쩍. 연은 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들어 올렸다.

환의 멀쩡한 얼굴이 저를 향해 싱긋이 웃고 있었다.

“여기 어디 또 저만 한 짐승이 있을까, 이 말입니다.”

“예…?”

연은 바보처럼 되물었다.

“연 님. 어제 한 내기에서 제가 이긴 거 알고 계시지요?”

환은 제 말을 알아듣지 못한 사람처럼 딴소리했다.

분명 눈이 내릴 거라는 내기에서 환이 그녀를 이긴 것은 맞았다.

연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어제 제게 뭘 거셨는지 기억하십니까?”

연은 그제야 떠오르는 단편의 기억을 더듬었다.

“향낭을… 가져가신다고.”

“그럼 제가 이 향낭을 가져가도 되겠지요?”

연은 어리둥절했다. 눈물이 앞을 가리는 와중에도 환이 기이하게 침착한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지금껏 불쌍한 여인인 줄 알고 보살펴 줬던 이가 짐승, 그것도 늑대라는데, 어쩜 저리 침착하실 수 있는 걸까.

앉은 자리에서 바로 쫓겨날 것을 예상했던 연은 그대로 굳고 말았다. 일단 대답했다.

“네, 네에….”

그리고 그때였다.

연이 가져가셔도 된다 허락하자마자 환이 손을 뻗었다.

탁-!

연의 목덜미에 흉터처럼 자리하고 있던 향낭이 떨어져 나간 것은 순식간이었다.

어찌해볼 새도 없었다. 연은 제 몸에서 떨어져 나간 향낭이 환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을 보고 입술을 벌렸다.

“아…!”

연은 자신도 모르게 두 손을 방어하듯 가슴을 끌어안았다. 향낭이 벗겨진 것만으로도 어째서인지 발가벗겨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환은 그 향낭을 쥔 채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마치 그 향낭을 제 원수 보듯 노려보다, 방 안에 켜져 있던 향초에 짓눌러 버렸다.

치이익-!

환의 손바닥에 있던 향낭이 순식간에 타들어 갔다. 향낭이 타는 냄새와 살 타들어 가는 냄새가 연의 코를 자극했다.

“화, 환 님!”

연은 깜짝 놀라 튀어나가 환의 손을 살폈다.

“뭐, 뭐 하시는 거예요!”

울먹이며 환의 손을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손에 남은 향낭 주머니는 거뭇한 한 줌의 재로 변해 있었다.

“원수 처치랄까요.”

환이 그녀를 향해 싱긋이 웃어 보였다.

방금의 일로 타들어 가던 촛대의 불이 꺼져버렸기에 보통 인간이라면 아무것도 볼 수 없었을 테지만, 연은 달랐다.

“이제 연 님께 이 향낭이 필요한 일은 없으실 겁니다.”

환이 명료한 목소리로 단언했다.

촛불은 꺼졌지만, 연을 바라보는 그의 눈이 더없이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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