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광랑(狂狼), 환
수컷 늑대 셋이 산자락을 타고 내려오고 있었다. 무서운 속도였다.
떠돌이 수컷 무리의 ‘머리’는 단연코 제일 앞선 곳에서 달리고 있는 환이었다.
목적지는 그가 지난겨울에 찾아놓은 초가.
이 태백 출신의, 젊다 못해 새파란 수컷 무리는 방금 무산의 대가리를 처치하고 오는 길이었다.
“미친 곰 대가리라더니, 별것 아니던데!”
호탕한 목소리가 바람에 실렸다.
무산 지역에 자리를 잡은 지 어언 일 년. 우두머리 환은 동쪽 끝 태백에서부터 서쪽 끝으로 불리는 이곳 무산으로 내려오면서 무수한 풍문을 흩뿌리고 다닌 젊은 수컷이었다.
미친 늑대라 하여 광랑(狂狼).
수인화가 가능한 늑대 무리에서는 이미 알음알음 알려져 있을 정도의 호기롭고 혈기왕성한, 작지만 일당백 무리의 우두머리였다.
“그런데 대장, 무산의 늑대들과는 정말 접촉 안 할 거요? 왜 있잖소, 랑이라고 했던가. 그 젊은 암컷 머리가 이끄는.”
환이 데리고 다니는 아우 놈 중 크기가 큰 놈인 군길이 물었다.
“그래도 놈들한테 미친 곰을 처치했다고 알려는 놓는 게 낫지 않겠소?”
환이 코웃음 치며 대답했다.
“적선엔 취미 없다. 그놈들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겠지.”
퍽 신경질적인 투로 그가 덧붙였다.
“무엇보다 그 무리엔 내 암컷이 없었어. 그런 곳에 시간 낭비할 이유 따위 없다.”
환의 말에 그가 데리고 다니는 두 놈 중 작은 놈인 진팔이 한숨을 폭 내쉬었다.
그놈의 암컷 타령.
“아 진짜 대장, 언제까지 그 암컷을 찾아다니실 겁니까.”
지난해 전국 팔도를 돌아다니며 위명 자자한 수인들만 골라잡아 패고 다니던 환이 드디어 정착이란 걸 했다.
장소는 이 무산의 첩첩산중.
본디 방방곡곡을 다니며 제 이름 알리느라 바쁘던 환이었다. 기세가 거칠고 화려해 그가 들른 산의 머리마다 저 망나니를 담을 그릇을 가진 늑대는 없을 거라 단언했다.
바람 같은 수컷이라 했다. 풍운아도 그런 풍운아가 없다 하였다.
어떤 짐승은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벌써 관직 한자리 차지하곤 여러 고을 다스렸을 상이라고 했다. 또 다른 짐승은 환을 보며 왕이 되어 면류관을 쓰거나 반역자가 되어 칼을 차게 되거나 둘 중 하나는 했을 중간이 없는 운명이라고도 했다.
그럴 때마다 환은 큰소릴 치며 떠났다.
“이 간덩이 좁쌀만 한 놈들! 내 운명이야 내가 갈아 치우면 그만 아닌가!”
사방팔방을 뒤엎고 다니며 한라산 봉우리부터 백두산 끝자락까지 제 위명 무섭게도 떨쳤다. 가히 그를 막을 수 있는 짐승이 팔도에 없었다. 그를 만나는 자마다 과연 누가 저런 수컷의 고삐를 틀어쥘까 고심하였다.
그러던 환에게 드디어 수컷으로서 첫 발정기가 왔다.
오백 리도 넘는 먼 장소에서 한 암컷이 울부짖는 소리에 동해버린 것이었다.
그 장소가 바로 무산이었다.
진팔과 군길은 신이 났다.
드디어 우리 대장이 장가를 가긴 가는구나!
당최 까탈스럽기가 총각 귀신 감은 떼놓은 당상이라 도무지 못 갈 줄 알았는데. 대체 어떤 암컷이시려나.
아우들은 달리 바라는 게 없었다. 저 지독한 성질머리만 좀 눌러주실 수 있는 분이시면 충분했다.
기왕이면 아주 그냥 콱 꺾어버리셔도 좋고. 아니, 사실 어떤 분이시든 상관없었다.
군길은 단언했다.
“다리 네 개에 꼬리만 하나 달렸으면 지나가던 살쾡이를 데려와도 형수님으로 극진히 모실 생각이다.”
진팔도 동의했다.
일단 환의 상대가 같은 늑대 암컷이라는 데 의의를 두기로 했다.
아무튼, 중요한 건 큰형님이 장가를 가겠다 하신 것 아니겠나.
큰형님이 첫 타자를 끊어놔야 그 뒤를 이어 줄줄이 장가를 들든, 새끼를 보든 할 아우들에게 이번 일은 큰 경사가 아닐 수 없었다.
한데 문제가 하나 생겼다.
거리가 워낙 멀다 보니 도착했을 무렵엔 무산 암컷들의 발정기가 끝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첫 발정을 오게 한 암컷을 늑대 수컷이 놓칠 리가 없었다.
당연하게도 환은 군길과 진팔이 대경할 만한 결정을 내려버렸다.
“찾을 때까지 이곳에 머문다.”
“뭐, 뭐를요?”
“뭐긴 뭐야, 내 여자.”
날 발정 나게 한 그 암컷.
환의 그 한마디로 일행이 무산에 정착한 지 어언 일 년이었다.
물론 이미 랑이란 여두목이 차지하고 있는 산이라 완전한 정착은 어려웠다.
무력으로라도 차지한다면야 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자존심이란 게 있지. 엔간하면 여자 머리는 건들지 않는다는 게 환 나름의 신조였다.
대신 무산 꼭대기 절벽 가에 인간이 버리고 간 초가 하나를 찾아 때때로 머물다 갔다.
그러다 보니 문제가 들이닥쳤다.
그 암컷만 찾으면 그들 무리는 그녀의 뜻에 따라 무산이든 어디든 자리를 잡아야 했다.
암컷 늑대는 태어나 자란 곳을 잘 떠나지 않는 습성이 있었다. 성공적으로 짝을 맺으면 정착지는 높은 확률로 무산 근처가 될 테다.
그래서 환이 택한 방법은 무식하면서도 호방했다.
주변에 내로라하는 위험한 천적들을 다 때려 잡아놓은 것이었다.
근처 영동산의 백 년 묵었단 구렁이도, 포석 바위의 늑대 잡아먹는단 붉은 표범도 묵사발 내놓았다. 그리고 이젠 무산의 위명 자자한 미친 곰이 차례였다.
그렇게 환이 깔끔하게 산을 청소해 놓은 이유는 단 하나였다.
“내 여자가 임신하고 새끼라도 낳으면 불안해할 거 아니야. 행복한 가정의 방해물은 재깍재깍 치워놔야지.”
그 나름의 혼수 준비였다.
물론 그의 아우들은 그가 김칫국부터 들이켠다 생각했다.
일단 그 암컷 목소리라도 한번 들어보시고 그런 소리 하시라고 직언하고 싶은 것을 참았다.
한마디로 환은 준비된 신랑이었다.
아주 완벽히 장가들 준비가 안팎으로 만만했다. 상상으론 어쩌면 벌써 일곱 딸 열 아들 낳아 저 혼자 손주에 증손주까지 보고 있었다.
그런 환이 진팔은 조금 불쌍하기도 했다.
‘얼굴 한번 못 본 색시가 저리도 좋을까.’
저렇게 지극 정성으로 장가들 준비를 하는데, 정작 가장 중요한 게 빠져 있었다.
바로 신부였다.
말 그대로였다. 발정기가 끝나자마자 그 암컷이 종적을 감추고 사라져 버렸다. 환의 아래를 처음 세워버린 그 대단한 암컷 말이다.
온 무산을 이 잡듯 뒤져도 여태 발견하지 못했다. 일 년이 넘도록 그들은 환의 새색시 털끝 자락 한번 본 적이 없었다.
‘대체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분명 일 년 전 겨울 이맘때쯤 무산이 떠나가라 울부짖던 짝없는 암컷이 뿌린 암내를 진팔도 맡았더랬다.
진팔은 쩝쩝 입맛을 다셨다. 무심코 생각했다.
‘그 암컷 냄새가 과연 순간 혹할 정도로 엄청나게 야릇하고 달콤하긴 했… 앗.’
진팔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동시에 저도 모르게 곁에 함께 달리는 환을 슬쩍 살폈다.
눈치 빠른 우두머리는 아니나 다를까 벌써 낌새를 눈치채고 저를 향해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환이 으르렁거렸다.
“너 무슨 생각 했냐.”
하씨, 하여튼 짐승 아니랄까 봐 촉은 좋아서. 진팔은 얼른 대가리를 굴렸다.
“어떻게 하면 형님을 잘 모실지 생각했습죠.”
물론 환에겐 통하지 않았다. 환이 눈을 희번덕 떴다.
“씹, 얻다 대고 아부질이야. 확씨, 벼랑 끝으로 밀어버릴라.”
무산엔 벼랑 없는데. 하지만 진팔은 대꾸하지 않았다.
생각나는 대로 구시렁거렸다간 성질 나쁜 그들의 형님이 벼랑을 찾아 잠시 이동하자고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겨우 환의 눈 부라림에서 벗어난 진팔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후, 큰일 날 뻔했네.’
저건 귀신도 아니고 왜 이렇게 육감이 발달한 거야.
하여튼 형님을 모시면서 진팔은 한시도 방심할 수가 없었다. 제 생각까지 짐작하곤 휘두르려 하다니, 폭군이 따로 없었다.
‘그나저나 그 암컷, 정말 찾을 수 있을까.’
오늘도 그들은 허탕을 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미친 곰은 때려잡았어도 형님의 암컷은 찾지 못했다.
진팔은 돌아오는 길 내내 투덜거렸다. 심지어 그 말수 적은 군길도 말을 보탰다.
“그만 정리하고 태백으로 돌아갑시다, 대장. 더는 못 찾아요. 이렇게 종적을 감쪽같이 숨길 순 없다니까요?”
“…맞습니다. 수컷들 홀리는 늑대 암컷 귀신이 무산에 있는 게 분명합니다.”
아우들은 급기야 환의 그녀를 귀신 취급했다. 세상에 있을 리가 없단 뜻이었다.
한데 환의 고집이 그런 똥고집이 없었다.
그들의 대장은 이번에도 느긋한 소릴 해댔다.
“그 여자는 이미 내 여자다. 분명 나를 부르는 소리였어. 찾을 때까지 무산에서 머문다.”
그 소릴 하는 환의 표정이 꿈꾸듯 나른해 보였다.
두 아우는 그런 형님의 느글거리는 말투에 속을 게워낼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
진팔은 미친 소리도 정도껏 해야 된다고 여겼다.
“아니, 만나본 적도 없는데 도대체 언제부터 그 암컷이 대장 암컷이었습니까?”
“그 여자가 날 처음 발정 나게 했을 때부터.”
환이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대답했다.
진팔은 눈알을 굴렸다.
아무래도 그의 형님은 중증이었다. 상사병으로 치면 말기였다. 이런 건 약도 없었다.
“그리고.”
환이 한심하다는 듯, 달리는 진팔과 군길을 위아래로 흘겨봤다.
“한번 자기 좆을 세운 여자를 떠나는 놈이, 어디 사내새끼냐? 하여튼 이 근처 늑대 고추는 네놈들이 다 떨어트린다! 무튼 근본이 안 된 녀석들.”
그렇게 환의 한마디에 고추 떨어진 근본 없는 수컷이 된 진팔은 어이가 없어 입을 떡 벌렸다.
처음엔 형님이 농담을 진지하게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미친 소릴 하는 자가 환이면 얘긴 달랐다.
듣고 보면 환의 말도 아주 틀린 건 아니었다.
원래 늑대 수컷들의 발정엔 때가 없었다. 암컷이 발정이 오면, 그들이 뿌리는 암내의 여파를 따라서 발정이 나는 족속들이 바로 수컷들이었다. 그래서 첫 발정을 누가 시켰는가가 수컷들에겐 꽤 중대한 요소였다.
아무래도 한번 짝을 맺으면 백년해로하는 게 일반적이라. 누가 개 아니랄까 봐 첫정을 주고 나면 엔간해선 다른 데 눈 못 돌렸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얼굴 한번 보고 서로 냄새라도 한번 주고받았으면 내가 말을 않는다.’
그렇게 있는지도 모르는 암컷 찾아 무산의 떠돌이가 된 지 한 해. 진팔은 슬슬 진이 빠지기 시작했다.
“그만 포기하시고 다른 산에 가보세요. 널린 게 암컷입니다.”
달리면서 눈을 가늘게 뜨는 진팔에게 환이 코웃음 치며 단언했다.
“쯧쯧. 진팔이 이 개의 새끼야. 수컷이 되어 가지곤 한 우물을 못 파긴. 네가 그러니까 아직 장가를 못 간 거다.”
진팔은 바로 말대꾸했다.
“형님도 아직 못 갔잖습니까.”
“나는 곧 갈 거고.”
기막힌 자신감이었다. 진팔은 그런 대장이 걱정스러워 입을 열었다.
“그리고 형님, 한 우물뿐만 아니라 열 우물, 백 우물 파도 갈까 말까 한 게 바로 장갑니다. 뭘 좀 알고 얘길 하시지….”
“뭬야?”
습관적으로 욱한 환이 진팔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생각하고 보니까 더 화가 난다는 투였다.
“콱씨, 이게 어디서 누굴 가르치려 들어. 주둥이를 뽑아다가 흐르는 냇물에 씻겨버릴라.”
하여튼 저놈의 성질머리.
‘냇물에 씻기긴 뭘 씻겨. 신선한 야채도 아니고.’
진팔은 다시금 눈알을 위아래로 도룩도룩 굴려댔다. 어후, 저 입 걸레 형님을 대체 누가 데려가려나.
“저게 뭐지.”
그때였다. 아까부터 묵묵하게 네 발을 놀리던 군길이 뭔갈 발견하고 중얼거렸다.
세 늑대는 저마다 주둥이를 하늘로 들어 올렸다.
군길이 앞발로 가리킨 곳에 가느다란 연기가 조금씩 피어오르고 있었다.
‘연기?’
환의 미간이 움찔거렸다. 나머지 두 마리 늑대도 하늘을 향해 킁킁 낯선 냄새를 맡았다.
아무리 봐도 이 근방에 저런 연기가 피어오를 만한 장소는 없었다. 한 군데 있긴 했지만, 그곳은 빈 초가였다.
‘설마….’
오랜만에 세 수컷의 생각이 일치하는 순간이었다.
그들은 잠시간 서로를 멀뚱히 쳐다보다가 같은 박자에 발을 박차며 내달리기 시작했다.
초가에 도착하고 보니 정말 연기의 출처는 이곳이었다.
환은 빈정이 확 상하는 것을 느꼈다.
‘빈집으로 보이려 일부러 폐가처럼 내버려 두었는데….’
그사이 인간 산적 놈들이 그의 소유를 옳다구나 차지한 게 틀림없었다.
‘나중에 내 색시 주려고 영역 표시도 안 해놨는데 대체 언 놈의 짓이야?’
모가지를 확 비틀어 버릴까 보다.
환은 으르렁거리다 숨을 턱 멈추었다.
초가가 보이는 자리에서 세 수컷이 동시에 뭔가를 발견했다.
수풀이 포슬포슬하며 움직이더니 이윽고 뭔가가 파앗, 하고 튀어나왔다.
동시에 환의 귀가 쫑긋하고 튀어 올랐다.
‘늑대…?’
암컷이었다. 그것도 아주 젊은.
환의 눈이 단번에 휘둥그레졌다.
체구가 조그맣고 마르긴 했지만 새까만 털에 윤기가 흘렀다. 조심스러운 걸음걸이가 늘씬하고 맵시가 있었다.
살금살금 주변 눈치를 보면서도 초가까지 한달음에 다가오는 걸 보면 이곳을 한두 번 방문한 솜씨가 아니었다.
암컷은 입에 보자기 하나를 물고 있었다. 그녀는 초가의 마루에 보자기를 내려놓았다. 그러곤 킁킁 냄새를 맡다가 다시 뛰어 내려와 땅에 찍힌 제 발자국을 지웠다.
어찌나 철저하게 지우는지, 나중에 환 일행이 이 근방을 지나더라도 저 암컷의 흔적 하나 찾기 힘들 것 같았다.
늑대의 발자국을 다 지운 암컷이 제자리에서 한 바퀴를 훌쩍 뛰었다. 여우가 재주넘듯 가벼운 몸짓이었다.
이윽고 하얀 나신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와 동시에 환의 숨도 턱, 하고 막혔다.
‘……!’
검은 늑대가 순식간에 털 색깔만큼이나 새까만 머리 타래를 가진 어여쁜 처자로 변했다.
아찔한 광경이었다. 거짓말 안 하고 환의 인생에 있어 가장 심장 떨리는 순간이었다. 그와 동시에 아까부터 반쯤 넋을 놓은 채 그 광경을 지켜보던 그의 눈에 화악 불길이 일었다.
대번에 환의 목 깊은 쪽에서 그르렁거림이 흘러나왔다.
“씨팔, 다 눈 깔아라.”
파버리기 전에.
환은 제 곁의 두 아우 놈들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물론 저 암컷의 정체를 눈치챈 군길과 진팔은 진작에 고개를 땅에 처박은 채였다.
심지어 진팔은 앞발까지 가지런히 모아 눈앞을 가리고 있었다. 우두머리 암컷 되실 분의 나신을 잠깐이라도 본 스스로를 향한 자진 처벌이었다.
머리를 땅에 대다 못해 파버릴 기세로 묻어버린 군길과 진팔에 비해, 환의 시선은 올가미에 걸리기라도 한 듯 암컷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숨 쉬는 것도 까먹은 듯한 표정이었다.
보다 못한 진팔이 걱정되어 환을 툭툭 쳤다.
‘형님, 숨 좀 쉬시죠.’
그사이, 검은 머릿결이 비단처럼 고운 작은 체구의 여자는 옷을 주워 입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총총히 초가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까지도 환은 미동 없이 굳어진 채 여자가 사라진 초가의 문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꼭 뭐에 홀린 사람 같았다. 환의 벌겋게 충혈된 눈은 금방이라도 여자가 사라져 버린 초가 안쪽으로 함께 기어들어 갈 태세였다.
‘분명 저 여자다…!’
환은 속으로 확신했다.
우연도 이런 우연이 있을 수가 있나.
마침내 찾아냈다.
온 산이 떠나가라 들쑤시며 미친 듯이 찾아다녔던 그 암컷.
제 아랫도리를 세워놓고 나 몰라라 장장 일 년을 꼭꼭 숨어 있던 곳이 다름 아닌 제 초가라니.
엄청난 순간을 직면한 후, 환의 몸은 경직된 채 그대로 굳고 말았다.
결국, 한참 뒤까지도 초가의 입구를 노려보며 멍청하게 서 있는 환을 깨운 건 진팔이었다. 아우가 앞발로 벌어진 형님의 턱을 닫아주며 물었다.
“저… 대장, 곧 가신다면서요, 장가?”
왜 가만히 계세요. 저 암컷 안 쫓아가시고.
그제야 퍼뜩 환의 집 나갔던 정신이 돌아왔다. 그가 멍하게 중얼거렸다.
“옷.”
“예…?”
“옷이 필요해. 인간 옷으로.”
어느새 인간으로 변한 환이 군길의 봇짐을 정신없이 뒤지기 시작했다.
투덕거리며 세 늑대가 인간으로 변해 엎치락뒤치락 옷 찾아 입는 소리가 한동안 초겨울 풀숲을 울렸다.
야, 이 새끼야. 백정 옷은 저리 치워라. 씨팔, 양반 옷 이리 내놔. 아씨, 형님 그거 제 건데. 옷이 중요하냐, 내 장가가 중요하지. 하 씨, 이 빌어먹을 형님 새끼가. 지금 뭐라 했냐, 이게 죽고 싶나….
조용했던 초가 주위는 순식간에 시끌벅적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