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롤로그 (1/11)

여는 장

연은 제게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몰랐다.

환이 저 역시 짐승이라고 말한 것. 그가 제 향낭을 벗겨 버렸다는 것. 그리고 그게 벌거벗은 것만큼이나 부끄럽다는 점뿐이었다.

“내, 냄새가…. 저한테 냄새가 날 텐데요.”

연은 재로 남아버린 한때 향낭이었던 것을 붙들고 울먹였다.

“냄새요? 무슨 냄새 말입니까?”

환이 제 손을 움킨 연의 손을 도리어 꽉 쥐며 물었다. 그와 동시에 연의 몸을 잡아당겼다.

연은 힘없이 그에게 딸려가 안기며 겨우 입을 벌렸다.

“지, 지독한 암내가….”

연은 발정기 때 짝없는 암컷이 들었던 핀잔을 기억했다.

‘지독한 암내 좀 저리 치워!’

‘짝없이 발정한 티 내냐! 발정 난 암컷 내를 폴폴 풍기고 다니네!’

몇몇 무례한 수컷들은 낑낑거리는 연의 궁둥이에 대고 일부러 킁킁거리며 줄 듯 말 듯 희롱하기까지 했다.

그때의 기억이 연의 안에 아직 선명했다. 거의 공포에 가까운 기억이었다.

한데 환은 연이 예상한 반응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대체 뭐가 지독하다는 말씀이십니까?”

환이 연의 손목을 끌어당겨 킁킁 냄새를 맡으며 중얼거렸다. 도통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게다가 거의 뭔가에 취한 듯 몽롱한 음성까지.

연은 그런 환의 태도에 기겁했다.

제 손목을 끌어당겨 냄새를 맡은 환이 마치 백 년 묵은 삼산주를 들이켠 사내처럼 목구멍 안쪽에서 끓는 신음을 내었다.

“서서히 돌아오고 있습니다. 향낭에 가렸던 연 님의 본래 향이….”

‘향…. 향이라고 했다.’

환은 연의 냄새를 향이라고 했다.

마치 꽃에서 나는 향처럼.

연은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우선 이 인간, 아니, 인간인 줄로만 알았던 사내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 제 몸이 일단 도망치라고 경고하고 있었다.

그러나 환이 그렇게 두지 않았다.

앉은 자세에서 그녀의 몸을 조금 더 끌어당겼다. 연의 몸은 힘없이 환의 품에 딸려 들어갔다.

전에도 느꼈지만, 당최 거부할 수가 없는 힘이다. 환은 마치 그녀의 몸이 깃털이라도 되는 것처럼 쉽게 쉽게 들어 올린다.

“이곳도, 향이 납니다. 짐승을 미치게 만드는 향 말이에요.”

연의 손목에 대고 깊은숨을 들이켜던 환의 코가 점점 팔의 윗부분으로 올라갔다. 팔 안쪽의 접히는 부분을 혀로 핥듯 쓸었다.

“흣!”

“필시 그대를 놀렸다 하는 그 수컷 새끼들도 남몰래 연 님의 향기를 떠올리며 미친 듯이 자위했을 거야.”

연은 그 감촉에 움찔하고 몸을 떨었다. 환은 멈추지 않고 더 위로 올라갔다.

걷어 올려붙인 연의 소맷자락을 들추고 겨드랑이로 향했다.

연의 인간 몸은 본래 타고나길 체모가 적었다. 털 한 올 없이 깨끗한 겨드랑이를 더듬는 환의 손이 연의 옷고름을 순식간에 풀었다.

피할 새도 없이 드러난 그녀의 겨드랑이에 환이 코를 묻었다. 마치 꽃내음을 들이켜듯 숨을 들이쉬었다.

“하…. 진짜, 상상했던 것 이상입니다.”

그르릉. 그의 목구멍에서 짐승이 흘릴 법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양잿물이라도 들이부은 양, 진득한 것이 끓는 소리.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소리기도 했다.

‘이건…. 이건….’

착각할 수가 없었다.

연의 등줄기를 타고 저릿한 전류가 흘러내렸다.

‘이건 분명 발정 직전의 수컷들이 내던 소리다.’

연은 지금이 대체 무슨 상황인지 아직도 감이 오지 않았다.

초가의 주인이자 저를 받아들여 주신 환 님이 제 옷을 벗기는데도, 제 몸을 깊숙이 끌어당겨 냄새를 맡는데도. 그는 역겹다고 인상을 찌푸리거나 저리 치우라 역정을 내지 않았다. 오히려 안달하며 연의 살갗에 제 코와 입술을 비볐다.

“너무 좋아요, 연 님….”

진팔과 군길 같은 장성한 사내들을 널브러지게 만든 술에도 멀쩡하던 환 님이었다. 그런데 그런 환이 지금 연의 앞에서 술에 취한 사내처럼 비틀대고 있었다.

‘이, 이게 대체….’

환 님은 제가 짐승인 것에 전혀 개의치 않아 하신다. 오히려 제 발정향에 같이 동한 수컷 짐승처럼 굴었다.

“화, 환 님….”

환이 연의 몸을 훌쩍 들어 올려 품에 완전히 가뒀다. 연의 몸은 제대로 된 반항 한 번 하지 못하고 그의 가슴팍에 갇혔다.

“바로 이 냄새였습니다…. 지난해 겨울 저를 시도 때도 없이 괴롭히고, 잠 못 이루게 하고, 결국엔 스스로 세워 싸게 만들었던 그 향이….”

환이 그대로 연의 목덜미에 코를 박고 신음했다. 몇 번이고 향을 들이켜며 끓는 한숨을 내쉬었다.

“얼마나 놀랐는지 아십니까. 또 얼마나 안도했는진 아십니까. 뿌리신 향기에 발정 난 수컷이, 온 산을 돌아다니며 그댈 찾아 울부짖는데도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분이…. 이리 제 초가에 얌전히 숨어 계셨을 줄은….”

환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연의 심장이 덜컹거리며 떨어졌다.

“그, 그게 대체….”

저고리는 어느새 벗겨져 있었다. 치마로 동여맨 연의 부푼 가슴과 그 위의 선명한 빗장뼈가 드러났다.

연의 빗장뼈에서 나는 살내가 마치 성수인 양 들이켜던 환이 갑자기 그녀의 허리를 붙잡고 내렸다.

“아, 아앗….”

연의 몸이 순식간에 넘어져 온돌이 따끈한 방바닥에 쓰러졌다. 그 위로 환이 올라탔다. 그가 버둥거리는 연의 가느다란 두 다리를 제 허리에 감게 했다.

그가 꼼짝없는 인간이라고 믿고 있던 연은 환이 보여주는 힘에 놀라 어찌할 바를 몰랐다.

‘분명 인간 남자는 짐승 수인에 비해 힘이 약하다고 했는데….’

저를 품에 가둔 남자는 힘이 셌고, 철근보다 무거웠다. 손목을 붙든 힘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었다.

게다가 공기 중에 퍼지는, 어렴풋이 느껴지기 시작한 이 냄새.

‘서, 설마…. 거짓말이야.’

환이 당황으로 어쩔 줄 몰라 하는 여자를 붙들고 졸랐다.

“연 님, 제 냄새도 맡아주세요.”

거대한 몸을 그녀의 살갗에 비비며 입술을 빗장뼈에 찍었다. 그가 애원한다.

“제발요.”

경황이 없는 연은 환이 시키는 대로 그의 몸을 끌어안았다.

그러나 냄새를 맡지 않아도 연은 이미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향낭으로 인해 막혀 있던 연의 코가 제 기능을 되찾고 벌름거리기 시작했다.

그간 연 자신의 암내뿐만 아니라 주변의 다른 냄새까지 지우던 향이 사라지자 그곳에 줄곧 자리하던 내가 코를 뚫고 들어왔다.

온 방이 짐승 냄새로 진동하고 있었다. 사방팔방에 무르익어 터질 듯한 수컷의 발정향.

늑대였다.

그것도 살면서 본 가장 큰 수컷 늑대.

“하, 하윽…!”

연은 신음을 내질렀다. 그녀는 순식간에 다리를 오므렸다. 가랑이 사이에서 뭔가가 왈칵 쏟아졌다.

그러나 떡 버티고 있던 환의 허리에 막힌 다리는 오히려 그의 몸을 조이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몰랐다.

진정으로 몰랐다.

연은 완전히 겁에 질려버렸다. 기겁하며 몸을 움츠렸다.

“화, 환 님…! 저는…!”

연은 본능적으로 제 위에 탄 수컷에게서 벗어나려 발버둥 쳤다. 강한 기세를 뿜어대는 수컷을 마주한 암컷의 당연한 반응이었다.

“자, 잠시만…. 환 님! 저, 전…!”

무서워.

무서워……!

이 수컷은 머리 늑대다. 그것도 덩치가 곰보다 큰. 그 기세 또한 말로 형용이 불가능했다.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수컷이 아니었다. 순식간에 간덩이가 쪼그라들고 꼬리뼈가 말려 올라가는 기분이었다. 석류가 터지듯 연의 두 눈에 눈물이 왈칵 차올랐다.

“환 님! 일단…. 자, 잠깐만…! 놔주…!”

연은 다급하게 외쳤다. 거의 본능에 가까웠다. 말이 머리를 거치지 않고 튀어나왔다.

그와 반대로 몸은 착실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지난겨울, 그렇게나 갈구하던 수컷 짐승의 몸에 깔린 걸 인식한 암컷의 몸은 흐물흐물 풀어졌다.

온몸은 덜덜 떨리고, 가랑이 사이 구멍 속은 축축하게 젖어 들고, 가느다란 복숭아뼈가 분홍빛으로 달아올라 마구 꼼지락거렸다.

“하아, 이제 아셨습니까? 연 님, 저도 짐승 새낍니다.”

환은 제 정체를 눈치채고 움츠러든 여체를 꾹 내리누르며 마침내 속삭였다. 그의 코가 만개하기 시작한 암컷의 발정향을 만끽하듯 숨을 들이켰다.

그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달래듯 발작하는 몸을 쓰다듬으며 단언했다.

“짐승이 짐승을 연모하는 게 무엇이 문제입니까? 연 님 잘못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제 아래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암컷을 담은 그의 눈이 한밤중 짐승의 것처럼 번뜩이고 있었다.

그의 눈엔 겁에 질린 그녀도 이토록 사랑스러울 따름이었다.

오히려 좋았다. 이러면 두려워서라도 제 초가로부터 도망치진 못할 테니.

심지어 겁을 먹은 냄새조차 그 나름대로 환의 아랫도리를 동하게 하고, 그 안의 음심을 부채질했다. 그러나 제 암컷은 처음이었고, 어리고, 또한 작았다.

처음임은 그 역시 마찬가지였으나 아무래도 대소(大小)의 차이가 있지 않은가. 한눈에 봐도 극과 극인 체구를 하나로 맞추려면 필시 그에 따른 고통이 상당할 게 자명했다.

환도 걱정이 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제 밑의 여체를 그대로 놔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암컷을 내려다보는 수컷의 눈빛이 서슬 퍼렇게 가라앉았다.

“힘들고 아파도 참고 착하게 제 암컷이 되시는 겁니다. 중간에 도망가시면 아니 됩니다?”

환이 그녀의 귀밑머리에 입술 끝을 붙이며 속삭였다. 미리부터 으름장을 놓았다. 성질머리가 어디 가지 않은 탓이었다.

어찌 됐든 그는 준비가 만만이었다.

서툴고 어린 제 암컷을 살살 달래 뼛속까지 샅샅이 발라 먹을 준비가.

아주 오랫동안 기다린 만큼, 그는 모든 일을 아주 착실하게, 하나하나 짚어가며 제대로 할 생각이었다.

이 발정기의 시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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