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6/20)

(6)

* * *

“다녀오셨습니까, 주인님.”

“음.”

외근에서 돌아온 녹턴은 충실한 집사의 정중한 인사에 짧은 말로 화답했다. 그는 재킷을 벗어 집사 시몬에게 건네며 물었다.

“내가 없는 동안 무슨 일은 없었겠지.”

정말로 무슨 일이 있었을까 봐 걱정했다기보다는, 대공저에 돌아오면 언제나 묻는, 습관적인 질문이었다.

주인의 예정된 질문에 시몬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이걸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라는 근심이 한껏 묻어나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걱정이 된다고 대답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사실…… 있었습니다. 셔우드 백작 부인과 영식이 셔우드 영애를 만나러 왔습니다.”

“뭐라고?”

집무실을 향해 걷던 녹턴이 뒤따르던 집사를 향해 몸을 돌렸다. 무심하던 그의 얼굴은 대리석처럼 딱딱하게 굳은 채였다.

* * *

그것은 단순한 선의였다.

다른 사람이 들으면 기겁할지도 모른다. 그만큼이나 ‘녹턴 블랙웰’이라는 말과 ‘선의’라는 말은 짝이 맞지 않았다.

녹턴 자신 역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괴물 대공, 흑의 악마, 친부를 제 손으로 살해한 패륜아인 자신이 누군가에게 순수한 호의를 품는다는 것 자체가 농담거리도 되지 않는 허튼소리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는.

“물론입니다. 그 정도도 없었다면 이 자리에 나오지도 않았을 겁니다.”

자신의 손아귀에도 꺾일 정도로 가냘픈 몸을 가지고 있는 주제에, 조금도 겁먹은 기색을 보이지 않던 여자의 모습을 아직도 기억한다.

제국 최고의 기사들조차 두려워하는 자신을, 이런 조그마한 인간이 똑바로 눈을 마주친 채 자신감을 드러낼 때의 신선함이라니.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었다.

‘이 여자는 뭐지?’

녹턴의 형형한 자색 눈동자가 그녀의 작은 몸을 꿰뚫었다.

블랙웰에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광증.

한 번 발현되면 피를 보아야만 해소되는 블랙웰의 광증은 몹시 위험하지만, 그 위험성만큼이나 지고한 능력을 동반하기에 경외받았다.

광기와 진실은 동전의 양면이다.

많은 문화권에서 신탁을 받들던 신관들은 약물의 도움을 받아 광기에 빠진 채 신탁을 읊었으며, 편견이 그들을 배척하기 이전 시대에 광인들은 세계의 이면을 보는 현자이자 주술사로서 추앙받았다.

블랙웰 역시 그러하다.

블랙웰의 광기가 동반하는 능력은 ‘진실을 보는 눈’.

인간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마안(魔眼)이 있었기에 블랙웰은 그토록 짧은 세월 안에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두려움은 힘이다. 무지는 두려움을 부른다.

혜성처럼 나타나 많은 것이 신비에 싸여 있는 블랙웰 대공가는 알려져 있지 않기에 두려움의 상징이었다.

그 힘을 유지하기 위하여, 블랙웰의 능력은 가문의 사람 외에는 철저히 비밀에 부쳐져 있다.

녹턴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타난 이후로 꾸준히 번성만을 계속하고 있는 블랙웰 대공가의 최고의 황금기를 이룩해 냈다는 그의 업적에는 그의 냉철한 성정과 영민함, 정치력 역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겠지만, 그의 능력 역시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그의 ‘진실을 보는 눈’ 앞에 선 자는 그 누구도 녹턴을 속일 수 없었다.

그의 눈은 현명한 자, 우둔한 자를 구분하고 선의를 품은 자와 악의를 품은 자를 눈길 한 번만으로도 가려냈다.

그로 인해 최고의 인재를 최적의 위치에 올려놓고, 악심을 품은 자는 일찌감치 그 뿌리부터 뽑아내니 블랙웰이 번영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런 그의 눈앞에 있는 이 작은 여자의 본질은…….

‘이상하군.’

녹턴은 남몰래 미간에 손가락을 대고 눌렀다.

‘이런 형태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라리아 셔우드. 그의 뒷조사에 따르면 변변찮은 교육조차 제대로 받은 적 없는 백작가의 영애.

그저 흔하디흔한, 수도에 널리고 깔린 평범한 귀족 영애여야 할 그녀는, 그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색깔을 품고 있었다.

그것은 이 세계의 색이 아닌 것만 같았다. 그 어느 인간도 본 적 없고, 상상한 적도 없을 듯한 그런 빛.

‘이 여자, 정말 인간이긴 한 건가?’

이런 형태를 띠고 있는 자가 인간이길 믿기보다는 차라리 신이라고 믿는 쪽이 더 나을 것이었다.

‘아니면, 설마…….’

점의 세계의 인간은 선의 세계를 상상할 수 없고, 선의 세계의 인간은 평면의 세계를 상상할 수 없고, 평면의 세계의 인간은 입체의 세계를 상상해낼 수 없듯이.

이런 색이 존재하는 세계를 상상해낼 수 없는 그의 눈에, 그녀는 완전히 다른 세계의 존재인 것만 같아 보였다.

이런 ‘존재’가 자신에게 온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도 자신의 양자들의 시녀가 되기 위해 찾아온 이유는?

머릿속에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의 정체와 의도에 대해 고민하며, 녹턴은 말했다.

“흥미롭군요. 어디 한번 보여 주시죠, 영애.”

그 낯선 존재를 처음 직면했을 때, 녹턴은 당연히 경계심을 품었다.

하지만 그의 ‘진실을 보는 눈’이 보여 준 것은 그녀의 이질적인 부분뿐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도무지 이 세계의 존재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이질적임과 동시에, 믿을 수 없이 순수하고, 강렬하며, 따뜻한 색채를 띠고 있었다.

오래전에 메말라 붙었다고 생각한 심장에 아주 한순간이나마 그 온기가 와닿을 정도로. 따뜻하고, 뜨겁기까지 한 그 색깔.

경이롭기까지 한 그 찬란한 색.

‘이 존재가 무슨 의도를 품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녹턴은 직감했다.

‘이런 색을 가진 이상, 악의를 가지고 블랙웰에 접근한 것은 아닐 것이다.’

모든 ‘진실을 보는 눈’의 소유자들이 그러하듯 그는 자신의 직관을 믿었다.

그녀가 어떤 존재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하나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그녀는 분명히 그에게, 그의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존재였다.

녹턴 블랙웰은 라리아 셔우드를 그 자리에서 고용했다. 그의 양자들의 하나뿐인 보육 시녀로서.

그를 둘러싼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그녀가 해로운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은 확신할 수 있었으나 이리도 이질적인 존재를 아이들에게 붙여 놓았으니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녀를 고용한 바로 그날 밤, 그는 그녀에게 찾아갔다.

“……영애의 머리에 붙어 있었다.”

인간이 아니라 신으로 느껴질 정도로 경이로운 색을 띠고 있는 그녀는, 놀랍게도 꽤 평범한 반응을 보였다.

밤에 그와 눈을 마주치면 놀라고, 머리에 깃털을 붙이고 다녔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할 줄도 알았다.

‘신이나 괴물은 아닌가 보군.’

우습게도 다른 자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이 평범함에 지금은 안심이 됐다.

다른 인간과는 달랐으나 그녀는 인간적이었다. 최소한 그가 본 숱한 비겁하고, 야비하며, 악한 인간들에 비하면 훨씬.

“주인님, 일전에 지시하신 셔우드 영애의 대공저에서의 행적 조사를 마쳤습니다.”

오래지 않아, 그녀가 아이들을 헌신적으로 돌본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출퇴근할 시간, 쉴 시간마저 줄여 가며 아이들을 보살피는 그녀는 어딜 가든 눈에 띄었고, 곧 저택 안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본인의 주장대로라면 오로지 독학만으로 양육법을 배웠다는 그녀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자질과 정성을 보였다.

그리고 그 정점은, 물론 불면과 악몽 증상을 보이던 미하일의 호전이었다.

그 이질성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무척이나 이로운 존재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였다.

그리고…….

“그러니까…… 영애가 셔우드 백작가를 나와 이곳에 시녀로 취직한 것은. 집안과는 합의되지 않은 일, 즉 가출이었다, 이 말이군.”

단순한 백작 영애라고 보기에는 여전히 많은 의문점이 남는 그녀였으나, 그녀에게도 인간적인 고민은 있었다.

“……집이…… 너무 불편해서요.”

이토록 찬란한 색에 일순간이나마 그늘이 드리워지는 것을 보았을 때 녹턴은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신인지 인간인지도 알 수 없는 그녀도 집안 문제 같은 지극히 인간적인 부분에서 괴로움을 느끼고, 그 아픔을 표현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처음 그녀의 형용할 수 없는 색을 보았을 때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인간적인 모습이었다.

그리고 믿을 수 없게도, 그 인간적인 부분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이로운 그녀가 가진 가녀림을 감싸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녹턴 블랙웰에게는 끔찍할 정도로 어울리지 않는 감성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런 마음이 들었다.

한숨 한 번에 날아갈, 정말 일순간의 변덕 같은 감정이었지만.

단지 그것뿐이었다.

“사정은 잘 알았다, 셔우드 영애. 영애가 다시 붙들려 가는 일이 없도록 그대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은 함구하도록 하지.”

그녀를 도와준 것은 그저 한순간의 변덕이었다. 녹턴 블랙웰이라는 인간의 인생에 다시 없을, 우습도록 작은 선의였다.

그는 그렇게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했다.

이 결정이 끝내 어디까지 갈지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채.

그리고…….

“대체 무슨 소란이지.”

“어째서 내 아이들의 시녀를 데려가려 하는 거지?”

“나와 내 아이들에겐 셔우드 영애가 필요하다.”

그녀의 이질적인, 하지만 아름답고 선명한 색채에 먹구름 같은 고통의 그림자가 드리운 것을 본 순간…….

그는 그것이 보기 싫다고 느꼈다.

고작 그것 때문이었다. 고작 그런 이유로, 녹턴은 자신의 이익과는 조금의 상관도 없는 일에 직접 나섰다.

그의 성격과 인생철학과 정면으로 반하는 행동이었지만, 그때는 조금도 의식하지 못했다.

“영애.”

고작 그런 이유로 녹턴은 그녀의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모두에게 그녀가 자신의 약혼녀라고 소개했다.

뒤늦게서야 그녀는 유능한 인재이니까, 자신과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이니까, 따위의 이유로 합리화했지만, 그때 자신의 행동에는 고작 그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녀를 잃어버릴 뻔하고 나서야 조금씩, 그녀를 잃어선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웃으시는 게 좋겠어요, 전하. 적어도 공자님과 공녀님을 대하실 때만이라도요.”

처음에는 제 발로 찾아왔던 그녀를, 너무나 이질적이라는 이유로 경계했던 그녀를…….

“아니에요. 분명 금방 그렇게 될 거예요.”

오히려 붙잡고 싶어지게 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포기하지 마세요. 이제 얼마 안 남았어요.”

그녀의 그 이질적인 존재감이. 아름다운 색이…….

다정한 말이, 언제나 열정적인 태도가, 조금 커다란 손짓이, 장난스런 웃음소리가…….

저도 모르는 새 젖어 드는 가랑비처럼 그의 무감각한 심장에 스며들었다.

“정말 감사해요! 저 진짜 열심히 할게요. 절대 후회하지 않으시도록 할 테니까요!”

그녀의 부드러운 노랫소리에 잠에 들던 어느 밤, 그는 무의식적으로 직감했는지도 모른다.

가까운 장래에, 그녀가 자신의 삶에 필수 불가결한 존재가 되어 버릴지도 모르겠다고.

그때까지 이젠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만일 그때가 되면, 그때가 되면 자신은…….

“치사해, 라리아! 아버지랑은 맨날 가치 자면서!”

아이의 떼쓰는 소리를 들은 것은 우연이었다.

그날따라 늦은 시간까지 오지 않는 그녀를 찾으러 갔다가 들은 그 소리에 발걸음을 멈췄다.

아이들이 떼를 잘 쓴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다.

오늘따라 다소 심하게 떼를 부리는 것 같긴 했지만, 그녀의 자질이라면 오랜 시간을 들이면 충분히 달랠 수 있으리라는 것도, 역시 알고 있었다.

“그럼 내일 밤으로 하지. 자네트, 미하일, 셔우드 영애, 그리고 내가 모두 한 침대에서 자는 거다.”

하지만 자신이 충동적으로 그 말을 내뱉게 만든 것은 대체 무엇이었는지,

그것만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타인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진실을 보는 눈’으로도 자신의 마음은 볼 수 없다니 애석한 일이었다.

문제는 그다음 날에 일어났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초조한 기분으로 하루를 날려 보낸 날이었다.

아이들과 라리아와 한 침대에서 자겠다고 선언했던 그때는 충동적으로 행한 것이었지만, 막상 지나고 보니 대체 자신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했나 싶었다.

우스운 일이었다.

6년 전 그 사건 이후로 그 어떤 것에도 불안함을 느껴 본 적이 없는 자신이었는데.

야만족을 토벌하러 갈 때에도, 배신자를 숙청하러 갈 때에도 단 한 번도 떨어 본 적이 없었는데 지금 그는 고작 아이들과 여자 한 명과 한 침대에서 잔다는 그 별것 아닌 일에 온갖 생각을 다 하고 있었다.

‘대체 내가 왜 이러는 거지?’

아무리 되뇌어 봐도 여전히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복잡한 머릿속에 자꾸만 그녀의 모습이 끼어들었다.

수십 번도 더 자신의 침실을 드나들었던 그녀가 새삼스럽게 언제나와 다른 이유로 자신의 침실 문지방을 넘는다는 것이 기분을 이상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지금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어떤 잠옷을 입고 올지 역시 궁금했다.

그런 자신에게 헛웃음이 났다.

사내인지라 여자와 한 침대를 쓴다는 사실에서 흑심을 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걸까.

자신만은 추잡하게 구는 다른 놈들과는 다르리라 믿었건만, 자신 역시 어쩔 수 없는 인간이었던 건지도 모른다.

온갖 더러운 인간군상을 보아 왔다.

앞에서는 고귀한 척하는 자들이 뒤에서는 상상도 못 할 정도로 추잡한 짓들을 벌이고 다니는 모습 정돈 신물 나게 보았다.

이러한 것들을 모르지 않는 그가 여자를 침대에 끌어들여 본 적이 없는 것은 단순히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어떤 여자도 그의 관심을 끌지 못했고 욕망을 동하게 만들지 못했다.

그런 사사로운 것에 신경을 쓰기에는 지나치게 다사다난한 인생이기도 했고.

그런 그였으니, 이제 와서 여자의 육체에 불순한 감정을 품는 자신이 더더욱 실망스러울 수밖에.

하지만 고대하던 그녀의 모습을 본 순간.

“전하, 왜 그러세요?”

그 한순간, 그는 자신이 고민하던 모든 것을 잊어버릴 수밖에는 없었다.

그만큼이나 그녀는, 절대적이었다. 깨물면 붉은빛을 드러낼 희고 얇은 피부에서는 달콤한 꽃향기가 났다.

한 팔에도 안을 수 있을 법한 가는 허리와, 그 근처에서 치렁치렁 흔들리는 윤기 흐르는 머리카락은 또 어떻고.

그녀의 육체가 품고 있는 매혹은 그녀 특유의 강렬하고 아름다운 색채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보다도 더 절대적이기에, 그 어떠한 사내도 벗어날 수 없는 것이 당연해 보였다.

난생처음으로 느껴보는 강렬한 육욕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 탓에 자제력을 잃을 뻔했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이가 때맞춰 사고를 친 덕에 그는 이성을 되찾았다.

모두가 잠든 밤. 녹턴은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팔을 뻗으면 닿을 듯한 거리. 창문에서 쏟아지는 어스름한 별빛 아래에서 그녀의 뺨과 속눈썹이 희게 빛났다.

혼란스러웠다. 조금 전 느낀 그 강렬한 충동은 그저 한순간의 변덕일 뿐인 걸까. 아니면…….

“전하.”

눈을 뜬 그녀와 시선이 마주친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자신의 시선을 눈치챈 그녀의 눈동자에 당혹감과 의문이 서리는 것이 보였다.

자신이 조금 전 그녀에게 품었던 그 모든 욕망을 알게 된다면 그녀는 어떻게 반응할까. 그를 힐난할까. 경멸하는 눈으로 볼까.

그녀는 자신에게 어떤 마음을, 감정을 품고 있을까.

어처구니없게도, 그것이 궁금해졌다.

정말이지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일투성이였다. 타인의 눈치 따윈 보지 않고, 타인의 감정 따위 단 한 번도 궁금해한 적이 없었던 자신이?

대단한 권력자도, 부호도 아닌, 한낱 자신의 사용인일 뿐인 백작 영애의 마음을 새삼스럽게 궁금해한다고?

우습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녀가 자신에게 품는 감정이 자신이 그녀에게 품는 감정과 같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6년 전 그 사건 이후로 그 어떤 것도 바라지 않고 욕망하지 않았던, 산송장이나 다름없던 자신은, 어처구니없게도 그것을 바라고 있었다.

그랬던 그 순간이었다.

“……!”

그의 눈앞에서, 그녀의 아름다운 색채에 그늘이 졌다.

그 한순간, 경이롭고 아름다운 색이 괴로운 듯 뒤틀리는 모습만은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녀가 그 어느 때에도 보인 적 없는 얼굴로 입술을 깨무는 모습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무엇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는 걸까.

그녀의 마음을, 자신이 모르는 것을 알고 싶었다. ‘진실을 보는 눈’조차 보여 주지 않는 그녀의 진짜 모습이 보고 싶었다.

그녀의 괴로움을 덜어 주고 싶었다.

충동적으로 손을 뻗어 그녀의 입술을 눌렀다. 그제야 그녀는 깜짝 놀란 눈으로 입술을 깨무는 것을 멈추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이것뿐이었다. 단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던 힘도, 권력도, 그 어떤 것도 지금 이 순간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팔을 하나씩 내어주고 잠에 든 그녀의 얼굴을 보면서 그는 자신 안의 감정의 윤곽을 더듬어 나갔다.

처음에는 그저…… 이 세계의 것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그녀가 낯설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그녀는 유용했다. 그로서는 굳이 내쳐 버려야 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생각보다 더, 유용했고, 더, 강렬했다.

그녀는 모든 지점에서 그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그런 그녀에게 약간의 도움을 주는 것쯤은, 약간의 시간을 할애하는 것쯤은 별로 수고로운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약간’은 쌓이고 쌓여서 지금에 이르렀다. 어느덧 그녀의 낯선 색채는 그의 시커멓고 말라붙은 가슴 속까지 물들여 버렸다.

그녀에 대해 더 알고 싶다. 더 많은 시간을 공유하고 싶다. 그녀를 곁에 두고 싶다.

하지만 사용인 같은 형태로도 충분한지는 알 수 없었다.

그녀의 환상적이고 기묘한 색채에 그늘이 지는 것은 어울리지 않았다. 그녀에게 어울리는 것은…… 그래. 웃는 얼굴이다.

그녀의 웃는 얼굴을 떠올린 녹턴은 저도 모르게 픽 하고 웃고 말았다.

마치 신과도 같은 경외감이 드는 색채에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순수하고 인간적인, 그리고 제법…… 사랑스러운…….

정말로 이상한 기분이었다. 6년 전 그 사건 이후로, 그의 세계는 검은 타르와 같은 진득진득한 무채색이 된 지 오래이건만.

그녀가 나타난 뒤로는, 세계에 채도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마치 온 세계에 그녀의 색채가 옮아 온 것처럼…….

쿵 쿵 쿵 쿵 쿵, 심장이 경쾌한 소리로 박동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기분은 이상하게 싫지 않았다.

모두가 잠든 방에서 녹턴은 몇 번이고 한숨을 내쉬었다.

뒤척이고, 마른세수를 하고, 눈을 깜빡였다. 이런 복잡한 기분으로는 도저히 잠들 수 없었다.

그녀가 노래를 불러 주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그녀가 노래를 불러 주든, 그러지 않든, 그가 잠들지 못했을 것은 똑같으니까.

<1권 끝. 2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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