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싶었다. 살기 위해 나라까지 바쳤다.
그러나 젖은 눈시울 속에 비친 남편의 모습은 초연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대의 조국은 앞으로 제국의 식민지로서 무한한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오. 잘 가시오, 아르시노에.”
죽어가는 망막이 비추는 건 그의 웃는 얼굴이었다.
또다시 모든 것을 잃은 루시는 이번에야말로 그에게 반격하리라 결심하고서 네 번째 삶의 막을 올린다.
세 번의 죽음이 가져다준 진리는 단순했다.
첫째, 가련한 궁중의 꽃이 아닌 한눈에 모든 전황을 파악할 수 있는 매가 될 것.
둘째, 제국을 치기 위해서 왕좌를 거머쥐는 것.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성군이 되십시오, 폐하.”
모든 것을 섬멸할 수 있는 가장 예리한 검.
발터 하이베르그의 주인이 되는 것.
* * *
“괜찮아.”
마음대로 해도 돼.
응석 부리듯 속삭이며 그의 관자놀이에 입술을 내리눌렀다.
보드라운 감촉이 이어질수록 그의 뇌리를 메운 상념도 조금씩 희미해져 갔다.
남은 건, 눈을 감은 채 제 입술을 탐하는 눈앞의 여자가 미칠 듯이 사랑스럽다는 사실과.
저 상기된 얼굴을 울리고 싶다는 욕망, 두 가지뿐이었다.
“…원하신다면.”
그는 흐트러지는 주군의 모습을 단 하나도 놓치지 않고 눈에 담았다.
검은 욕망이 그보다 더 검은 눈동자 속에 숨어 소리 없이 루시를 삼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