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화 (5/6)

4.

에르나 랑케와 디트리히 반 클라인 사이가 묘하다는 소식은 아주 빠르게 아카데미에 퍼졌다. 언제 그렇게 두 사람의 사이가 발전한 건지는 아무도 몰랐다.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적당히 거리를 두고 있는 듯 보였던 그들은 요새 들어 드러내놓고 친근함을 과시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디트리히 쪽이 훨씬 많이 에르나에게 들이대는 모습이었지만.

교수들은 대놓고 그들에게 어떻게 된 거냐고 묻지 못했다. 궁금해서 미칠 것 같으면서도, 체면이 있어서 그저 눈길만 슬금슬금 주면서 이제나저제나 기회만 엿봤다.

하지만 학생들에게는 그런 식으로 눈치를 볼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한창 피 끓는 십 대들이었다. 누군가의 달콤한 사랑 이야기는 그들에게는 가장 흥미로운 연구 주제였다.

“교수님! 질문 있습니다!”

수련 중간의 쉬는 시간, 연무장에서 한 학생이 용감하게 손을 들고 클라인에게 외쳤다. 자상하지만 엄격한 선생님인 클라인은 연습 중에는 사적인 담화를 금지했지만, 지금처럼 쉬는 중에는 쉬이 질문을 받아주었다.

그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세르 군. 뭐가 궁금하지?”

“혹시 랑케 교수님과 연애하십니까?”

오오, 하고 곳곳에서 흥분으로 가득 찬 탄성이 터져 나왔다. 어느 녀석은 휘파람을 불기까지 했다.

학생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 앞에서 디트리히는 여유롭기만 했다. 그는 팔짱을 낀 채로 조금 비스듬히 서서는 질문한 학생에게 되물었다.

“우세르 군이 보기에는 어떻지?”

“완전, 열렬히 연애 중이신 것 같습니다!”

“남들 눈에도 그렇게 보인다니 다행이군.”

그의 긍정에 학생들이 떠나가라 함성을 질렀다.

이쯤 되니 수련이고 뭐고 아이들은 디트리히에게서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혔다. 그가 감히 말 붙이기도 어려운 공작 각하라는 것도, 나중에 까마득한 상관이 될 수도 있는 기사단장이라는 것도 모조리 까먹은 모양이었다.

“언제부터 사귀신 거예요?”

“랑케 교수님한테 어떻게 고백하셨어요?”

“결혼하실 건가요? 네?”

지지배배 지저귀는 아이들에게 손을 내저어 단번에 조용히 시킨 디트리히는 피식 웃었다.

“그렇게 궁금한가? 나랑 랑케 교수님 사이가?”

“당연한 거 아닙니까!”

“사실 랑케 교수님이 얼마나 인기 있었는데요!”

“운 애들도 있다니까요?”

어떻게든 찾아내서 그녀에게 제 마음을 밀어붙이길 잘했다고 그는 다시 한번 확신했다. 아예 아이들의 입을 빌어서 이 기회에 둘 사이를 못 박아두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 그가 입을 열었다.

“사실 랑케 교수님과 나는…….”

* * *

와장창!

방 한쪽으로 날아간 잉크병이 산산조각 났다. 씩씩대며 책상 모서리를 붙잡은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뼈가 도드라지고 그 부분만 피부가 하얗게 번졌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쿠르트는 이를 빠드득 갈며 그가 사랑하는 여자의 이름을 되뇌었다.

“에르나…….”

배신감과 분노에 눈앞이 시뻘게지는 듯했다. 당연히, 그녀는 자신의 것이었다. 지옥 같은 전쟁터에서 꺼내와서 이 안락한 아카데미에 자리를 마련해 주고, 그녀의 마음에 난 상처를 3년 동안 보듬어준 건 바로 쿠르트 자신이었다. 조금 냉정한 태도도 부끄러움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아니면 아직도 마음의 상처가 다 낫지 않아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녀는 쿠르트를 기만한 것이다. 그를 실컷 이용해 먹고, 디트리히에게 안겼다. 마치 그를 모르는 사이인 양 굴어놓곤 사실은 한참 전부터 디트리히를 알았다고 한다.

클라인가의 후원을 받았었다니! 그와 한 지붕 아래에서 지냈었고, 원래부터 깊은 사이였다니!

몇 가지 오해 때문에 모르는 척하고 지냈지만, 다시 그를 받아주기로 했다니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애초에 그녀는 클라인가와 접점이 없는 듯 행동했다. 단 한 차례도 그녀의 입에서 클라인가에 대한 이야기도, 디트리히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 적이 없었다. 그랬는데 이제 와서, 디트리히와 연인이 되었다니.

“거짓말. 말도 안 돼.”

언젠가는 그 가녀린 몸을 끌어안고 입을 맞출 생각이었다. 너만을 사랑한다고, 널 위해서 뭐든 할 거라고, 자신만이 너를 지켜줄 수 있고 지켜왔다고 고백할 생각이었다. 디트리히가 나타난 이후로 더욱 조바심이 나던 터였다.

그랬는데 한발 늦어버렸다. 에르나는 쿠르트와 디트리히를 재보다가 결국 그를 버린 것이다. 디트리히 반 클라인이 가진 권력과 재력, 그리고 명예에 이끌려서. 그녀만을 올곧게 바라보았던 쿠르트의 순수한 마음을 짓밟았다.

머릿속이 뒤죽박죽되어서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당장이라도 그녀에게 쫓아가서 어떻게 그를 배신할 수 있느냐고 악다구니를 쓰고 싶은 심정이었다. 심장이 엉망으로 뛰어서 조이듯 아파왔다.

그 순간 생각이 또 다른 쪽으로 튀었다.

어쩌면 에르나는 디트리히에게 억지로 묶인 건지도 몰랐다. 고위 귀족들이 후원한 평민들은 대부분 계약서를 쓴다. 그녀도 클라인의 후원을 받았다면 분명 그 가문을 위한 일을 한다는 계약서를 썼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걸 무기로 해서 디트리히가 그녀를 쥐고 흔드는 건지도 몰랐다!

불쌍한 에르나 랑케. 그녀는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에게 강제로 묶인 신세로, 그게 아니라며 변명할 수도 없는 상태인 거다.

책상 위에 올려진 그의 손이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런 게 분명했다. 에르나가 디트리히를 원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그녀는 세속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로지 마법 연구 외에는 모르는 순진한 여자였다. 그런 여자가 클라인가의 재력이나 권력에 눈이 멀었을 리가 없었다.

“그래, 그럴 거야. 에르나는 그런 천박한 여자들과는 달라.”

자기 멋대로 머릿속에 그린 상에 꿰어 맞춘 에르나를 떠올리며 쿠르트는 이를 갈았다. 디트리히의 밑에서 눈물로 저항하는, 억지로 짐승 같은 기사 놈의 손에 유린당하는 에르나의 얼굴을 상상했다.

쿠르트는 그런 그녀를 구해내겠다는 다짐을 함과 동시에, 상상 속 디트리히의 얼굴을 지우고 거기에 제 모습을 그려 넣었다. 제 아래에서 행복에 겨운 교성을 지르며 쾌감에 몸부림치는 에르나를 떠올리자 대번에 피가 몰렸다.

“후우, 에르나. 에르나……. 내가, 당신을 구해줄게. 당신은 내 거야. 내가, 소중하게, 여겨줄 테니까…….”

끈적하고 역겨운 미소가 그의 입가에 걸렸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히 교수 숙소로 향했다. 일단 에르나를 찾아가서 그녀에게 사실대로 말하라고 종용할 생각이었다. 그가 지켜준다고 맹세한다면, 그녀는 분명 울며 도와달라고 매달릴 거라고 쿠르트는 확신했다.

쿠르트의 걸음은 조용하고도 조심스럽게 에르나의 방으로 향했다. 늦은 시간이니 당연히 그녀는 자기 방에서 혼자 쉬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의 예상은 빗나갔다.

아무리 노크해 보아도 에르나는 대답이 없었다. 문손잡이를 돌리자 단단하게 잠겨있었다.

이 늦은 시간에 자기 방에 없다니.

또다시 속이 뒤집혔다. 설마 정말로 디트리히와…….

그의 발걸음이 급히 계단으로 향했다.

디트리히는 단기로 아카데미에 머무는 처지였지만 워낙 귀한 몸이었기에 숙소를 그냥 내어줄 수가 없었다. 아무리 특별 대우는 필요 없다고 했더라도, 그렇게 할 수 없는 게 또 아카데미의 입장이었다.

그래서 교수 숙소의 가장 최상위층을 비웠다. 어차피 최상위층은 교수 두 사람만 쓰고 있었기에 그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다른 곳으로 옮겨가게 한 뒤, 그 층 전체를 디트리히에게 넘긴 것이다.

방 여러 개를 쓰지 않을까 예상한 것과 다르게 그는 개중 가장 좋은 방 두 개만을 사용했다. 그 두 개가 서로 연결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었다.

디트리히가 밝은 불빛을 싫어한다며 조도 낮은 조명으로 모조리 바꾼 복도를 쿠르트가 소리 없이 걸었다. 어두운 복도만큼이나 쿠르트의 얼굴에도 짙은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그의 걸음이 불빛이 새어 나오는 문 앞에서 멈췄다.

아주 조금 문이 열려있는 걸 본 쿠르트는 속으로 이를 갈았다. 정말로 이 안에, 에르나가 디트리히와 함께 있는 걸까. 하지만 그 사실을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안에서 말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쿠르트의 눈이 경악으로 크게 떠졌다.

‘정말로 그 두 사람이……!’

꽉 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그는 숨을 너무 격하게 내뿜지 않으려 노력했다. 여기서 들킨다면 썩 좋은 광경이 펼쳐질 것 같진 않았으니까.

“…으으.”

안에서 새어 나온 소리가 쿠르트의 귀에 날아와 박혔다. 그건 말소리가 아니었다. 어딘가 아픈 사람이 낼 법한 신음이었다. 그것도 남자의.

“…주인님, 아윽!”

“조용히 해.”

“잘못했, 아!”

“크게 소리 내면 더 혼난다고 말했을 텐데.”

대체 이게 무슨 소리지. 쿠르트는 혼란스러웠다. 자기가 들은 말이 뭔지 이해하지 못했다.

주인님이라고 말한 건 분명 디트리히 반 클라인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를 윽박지르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지금 대체… 저 둘이 무슨 짓을 하는 거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쿠르트는 문틈을 조심스럽게 들여다보았다. 완전히 닫히다 만 터라 정말 아주 가느다란 틈만 있어서, 안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고개를 조금씩 움직이니 안의 광경이 일부나마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는 마치 돌덩어리처럼 단단하게 굳어버렸다.

붉은 고수머리를 자연스럽게 늘어뜨린 에르나의 모습이 먼저 보였다. 평소 단정한 흰 셔츠에 톤 낮은 스커트 혹은 바지 차림을 고집하던 그녀는 검은 실크 슬립에 가운을 입은 채였다.

문을 약간 등진 채로 그녀는 소파 앞에 서있었다. 살짝 흘러내린 가운에 동그랗고 하얀 어깨가 드러나 빛났다. 그녀의 새하얀 얼굴은 표정이 없어 보였지만 쿠르트는 그녀가 제법 기분이 좋다는 사실을 금방 알아챘다.

정숙하지 못한 차림새를 한 그녀를 보자 쿠르트는 아랫도리가 일어서려는 걸 느꼈다. 남들이 보지 않을 때 에르나가 조금 야한 옷을 입을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런 건 쿠르트도 내심 보길 기대했던 것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녀의 손에 들린 말채찍은 이해하기 어려운 물건이었다.

아니, 차라리 에르나의 모습은 그러려니 했다.

기가 막힌 것은 디트리히 쪽이었다. 그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으로 소파에 앉아있었다. 그냥 앉은 것도 아니었다. 다리를 양쪽으로 벌린 채 무릎을 세워서 소파에 올리고는, 두 손으로 단단히 붙들고 있었다. 마치 에르나에게 제 수치스러운 꼴을 고스란히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그냥 쳐다보기만 했는데 이렇게 자지를 발딱 세우고, 좆물을 질질 흘려대면 내가 좋아할까, 안 좋아할까?”

“죄송, 합니다. 흐윽!”

에르나의 손이 번쩍 치켜 올라갔다가 사납게 내리꽂혔다. 그녀의 손에 들린 검은 말채찍이 사정없이 공기를 찢으며 내리꽂혔다. 그것은 디트리히의 벌떡 선 페니스 옆 여린 사타구니 살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한 대, 두 대, 세 대. 연달아 찰싹거리는 소리가 울릴 때마다 쿠르트의 몸이 움찔거렸고, 디트리히의 신음도 커졌다. 말의 다리를 닮은 남자의 다리에 붉은 줄이 좍좍 그어질 때마다 에르나의 입꼬리가 실룩거렸다. 그녀는 일곱 대를 후려친 다음에야 채찍질을 멈추었다.

보기만 해도 고통스러울 것 같았건만, 디트리히는 눈물 맺힌 눈을 곱게 접으며 웃었다. 오히려 그의 페니스에 더욱 힘이 들어가는 듯했다. 검붉어진 귀두 끝이 말간 액으로 젖어있었다.

“맞는 게 그렇게 좋아, 응?”

“하아, 으……. 주인님, 자지가 터질 거 같아요…….”

“누가 이런 꼴을 보고 그 고귀한 클라인 공작님이라고 생각하겠어, 응?”

에르나의 채찍 끝이 디트리히의 턱을 치켜들었다. 그녀와 눈을 맞춘 디트리히가 꽃처럼 웃었다.

“저는 주인님의 개새끼니까요. 전 주인님이 해주시는 건 뭐든 다 좋아…….”

“좆질하는 게 좋은 거겠지.”

또다시 채찍을 치켜드는 순간, 쿠르트는 입을 틀어막았다. 제가 비명을 지를 것만 같았다.

저 고운 입술에서 참혹한 말이 나올 거라고는 쿠르트는 단 한 번도 상상한 적이 없었다. 더럽고 괴이한 광경이었다.

저건 내 에르나가 아니야. 저 더러운 계집은 대체 누구야. 쿠르트는 고개를 저었다.

그 순간, 이상하게도 디트리히의 눈이 문 쪽을 바라보았다. 열락으로 물든 파란 눈은 놀랍게도 정확하게 쿠르트를 바라보았다.

“……!!”

그의 붉은 입술이 벌어졌다. 혀가 느릿하게 아랫입술을 핥았다.

디트리히의 눈이 말하고 있었다.

네놈이 넘보는 이 여자는, 자신의 것이라고. 디트리히만을 사랑해 줄 단 하나의 주인님이라고.

그러니까, 당장 여기서 꺼지라고.

비틀, 하고 쿠르트는 뒷걸음질 쳤다.

그 순간 에르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어딜 봐?”

“하아, 주인님. 문이…….”

그 말에 에르나가 홱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아무리 아무도 안 올라오는 곳이라지만… 발정 난 개새끼 여기 있다고 자랑이라도 하고 싶었어?”

혀를 차며 그녀는 문으로 몸을 돌렸다. 그녀는 손잡이를 잡고 바로 닫으려다가, 슬쩍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어둑한 복도에는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없었다.

그녀는 입술을 비죽하고는 문을 잘 닫았다. 정말이지 오직 클라인 공작 각하 혼자 쓰는 층이라 해도 너무 조심성이 없었다. 정말 재수 없게 누가 보기라도 하면 디트리히의 명예는 아주 나락으로 떨어지는 거였다.

아, 물론 에르나도 난감해지긴 마찬가지이지만 말이다.

문을 꼭 걸어 잠근 에르나가 다시 돌아서서 픽 웃었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디트리히는 땀에 푹 젖은 얼굴에 천사 같은 미소를 띠고 오직 그녀를 반겼다.

정말이지 저 얼굴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음탕한 꼴을 하고는 순수한 미소를 띤 디트리히 반 클라인을 아는 건 오직 에르나 자신뿐이라는 사실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뿌듯했다.

그에게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며 에르나는 걸치고 있던 가운을 천천히 벗어서 바닥에 그대로 흘렸다. 힘껏 채찍을 휘두르느라 이마와 등에 옅게 땀이 배어있었다. 공기에 노출된 살갗에 잠깐 소름이 돋았다.

“바로 앉아.”

그녀의 명령을 디트리히는 곧장 충실히 따랐다. 그의 다리 사이에 자리 잡고 선 에르나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보들보들한 금발을 쓰다듬어 주자, 디트리히는 이때껏 잘 참아왔던 충직한 개답게 얌전히 그녀의 손길을 음미했다.

“예쁘기도 하지, 내 강아지.”

“하아, 주인님… 저 잘 참았어요.”

“맞아, 잘 참았어. 착하다.”

그 말에 디트리히가 더욱 요사스럽게 웃었다. 그는 손을 뻗어 그녀의 둔부를 꼭 끌어안으며 납작한 배에 얼굴을 파묻었다. 되바라진 개의 행동을 제지할까 하다가, 에르나는 그냥 두기로 했다. 뜨거운 체온이 아랫배에 와 닿는 느낌이 좋았다.

스읍, 하.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뱉으며 디트리히는 몸을 바르르 떨었다.

“주인님 냄새가 너무 좋아요.”

“끝까지 얌전히 있으면, 상을 줄게.”

“주인님이 시키시는 거라면, 당연히. 무엇이든.”

그 말에 에르나는 만족스러운 기색으로 디트리히의 어깨를 슬쩍 밀었다. 소파에 완전히 기대어 앉은 그의 허벅지 위로 올라앉은 그녀의 슬립이 허리춤으로 말려 올라갔다. 조금만 건드리면 곧 사정할 것만 같은 페니스에 이미 애액으로 잔뜩 젖은 아래를 가져다 대고 천천히 문지르자, 디트리히가 으르렁대며 그녀의 어깨에 이마를 기대었다. 얇디얇은 속옷 너머로 움찔대는 음부가 느껴졌다.

자극을 견디느라 핏줄이 선 디트리히의 관자놀이에 가볍게 입을 맞춘 에르나가 그의 귀에 속삭였다.

“가만히 있어야지.”

힘겹게 고개를 끄덕이는 디트리히의 얼굴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확실히 나는 정상은 아니야.’

디트리히가 그냥 쾌락에 젖어버린 얼굴보다, 이렇게 힘겨워하거나 아파하는 얼굴이 더 흥분되는 걸 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자각하지 못한 때부터 에르나는 이미 상대를 괴롭히는 데에서 즐거움을 느꼈으니까. 그런 자신을 좋아한 쪽이 견디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제법 이기적인 생각이었지만, 에르나에게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대로 속옷을 벗어 던지고 디트리히의 것을 제 안에 밀어 넣는 상상을 잠시 했지만, 에르나는 곧 단념했다. 아직은 그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정확히는 용기가 나지 않았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계약서는 없어졌으니 그와 섹스한다 해도 아무 문제는 일어나지 않겠지만, 에르나는 어쩐지 이것이 최후의 보루같이 느껴졌다.

여전히 에르나는 디트리히를 믿지 못하는 건지도 몰랐다. 그가 에르나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가지지 못했기에 집착하는 것뿐이라고. 디트리히가 마침내 에르나의 모든 것을 다 알게 되었을 때, 그녀를 전부 가졌다고 생각하게 될 그때가 오면 단박에 마음이 식어버릴지도 몰랐다. 그런 순간을 떠올리면 심장이 떨어지는 듯했다.

언제부터 그를 그렇게나 원하게 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고작 몸 하나를 두고 그를 묶어두고 있다고 생각하면 자존심이 상하고 비참했지만, 이상하게도 에르나는 그런 식으로 관계를 갖지 않는 것을 계속 합리화했다.

다행히도 디트리히는 그녀를 졸라대거나 하지 않았다. 그저 이런 비정상적인 관계만으로도 만족한다는 듯, 그저 에르나의 손 안에서 기뻐하기만 했다. 그게 더욱 그녀를 불안하게 했다.

자꾸만 치밀어 오르는 부정적인 생각을 애써 밀어내며, 에르나는 두 손으로 디트리히의 뺨을 감쌌다. 그리고 그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조금 전까지 매섭게 채찍질하던 사람이라고는 조금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달콤한 미소가 그녀의 얼굴에 번졌다.

그런 에르나를 멍한 얼굴로 바라보던 디트리히가 입술을 달싹거리더니, 힘겹게 한마디를 토해냈다.

“…사랑해요.”

애달픈 고백에 돌아온 것은 나긋한 키스였다. 뜨거운 입술이 닿는 순간 디트리히는 눈을 감았다.

주인이 개에게 할 법한 키스는 절대 아니었다.

* * *

조금 달아오른 뺨을 슬슬 문지르며 에르나는 자신의 연구실로 가는 길이었다.

방금 전에도 자신이 걷는 길목에 몸을 숨기고 있던 디트리히에게 붙들려 아무도 없는 빈 교실에 끌려 들어갔다.

‘주인님이 너무 보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뻔뻔스럽게 몸을 맞붙여 오는 디트리히를 그녀는 쌀쌀맞게 밀어내질 못했다. 점점 무르게 변해가는 자신을 알곤 있었지만, 그의 얼굴을 마주하면 도무지 사납고 냉정하게 굴 수가 없었다.

처음부터 그녀가 주인으로 자리매김하는 때가 아니면 더더욱 그랬다. 디트리히는 에르나를 주인님이라고 불렀지만, 그건 사실상 애칭에 가까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에르나는 정신없이 입을 맞추다가, 슬금슬금 치맛자락 속으로 들어온 그의 손에 자신을 맡기고 짧은 열락에 빠졌다. 물론 소음 마법을 쓰는 건 잊지 않았다. 한순간이라도 그녀가 절정에 다다르지 않는 꼴은 보지 못하겠다는 듯 집요하게 애무해 대는 디트리히 때문이었다.

‘목소리를 들려주세요.’

‘흑, 으읏… 싫……. 아, 흐으으!’

‘왜요, 아깝게. 듣고 싶으니까 부탁드립니다.’

거부해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억지로 참고 말고 할 수준이 아니었으니까. 디트리히는 에르나를 끝의 끝까지 몰고 갔다.

‘아무래도, 중독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흐읏, 아! 잠깐, 거길 그렇게 누르, 면, 아!’

‘후우, 달콤해…….’

음핵을 건드리는 데 약하다는 걸 안 디트리히는 그녀가 거의 주저앉을 때까지 클리토리스를 괴롭히곤 했다. 물이 줄줄 흐르는 질구에 손가락을 쑤셔대며 혀로 잔뜩 충혈된 작은 돌기를 연신 희롱해 대면, 에르나는 머릿속이 희게 질리다 못해 아예 텅 비어버리곤 했다.

‘주인을, 읏, 이렇게 괴롭히는, 개가… 어디 있, 아흣, 아!’

‘주인님이 좋아하시니까요. 지금도 이렇게 잔뜩 흘려서 제 손을 다 젖게 하시곤.’

에르나는 결국 녹진녹진 녹아버린 상태로 그 방에서 나오고 말았다. 디트리히는 한 무릎을 세우고 앉아서는 거기에 그녀를 앉혀두고는 챙겨 온 손수건으로 꼼꼼하게 아래를 닦아내 주기까지 했다.

뻔뻔하기 짝이 없는 남자의 얼굴을 노려보았지만, 디트리히는 ‘뭐가 문제냐’는 얼굴로 웃을 뿐이었다.

자꾸만 그와의 음탕한 행위에 빠져드는 자신이 두려울 지경이었다. 자꾸 아까 있었던 일 때문에 다리 사이와 배꼽이 근질거려서 참을 수 없게 된 에르나는 복도에 우뚝 멈추어 서고 말았다.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숙인 채 심호흡을 했다.

“그만해. 정신 차려. 여긴 아카데미야. 일하는 곳이라고.”

몇 번이나 같은 소릴 되뇐 그녀는 낯빛을 정리하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지나가며 만난 학생들이 인사하는 것을 가볍게 고개 숙이는 것으로 받아주며 마침내 연구실 앞에 다다랐다. 문을 막 열고 들어가려는 때, 밑에 무언가가 놓인 게 눈에 걸렸다.

문틈으로 밀어 넣어진 흰 봉투를 발끝으로 살짝 건드렸다가 허리를 숙여서 주웠다. 그녀는 봉투의 앞뒤를 돌려보았다.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은 봉투는 평범한 밀랍으로 봉인된 채였다. 무언가 마법이라도 걸린 게 아닐까, 하고 슬쩍 살펴보았지만 정말이지 평범한 편지 봉투일 뿐이었다.

그녀는 어깨를 가볍게 으쓱하고는 그것을 들고 연구실로 들어갔다.

봉투를 대충 응접실 탁자에 던져둔 에르나는 평소처럼 찻주전자와 찻잔을 불러들였다. 디트리히에게 시달리다 온몸이 조금 나른해서 의자에도 비스듬하게 앉았다. 어느새 따뜻한 차가 찻잔에 담기고 나자, 그녀는 그것을 가볍게 한 모금 마시고는 봉투를 집어 들었다.

손가락을 입구에 넣고 툭 아래로 밀자 밀랍 봉인은 쉽게 떨어져 나갔다. 그 안에는 반으로 접은 흰 종이 한 장만이 들어있었다. 봉투는 대충 내던진 에르나는 종이를 펼쳤다.

조금 삐뚤빼뚤하게 쓰인 글씨를 그녀는 무심한 얼굴로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시선이 점점 아래로 내려갈수록 그녀의 얼굴이 희게 질려갔다. 비스듬히 앉았던 자세도 어느새 바르게 바뀌어있었다.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그리고 곧 그 종이는 에르나의 손에서 와그작 구겨졌다.

“어떻게…….”

익명으로 온 편지는 그다지 많은 내용을 담지 않았다. 하지만 목적 하나만은 확실했다.

[에르나 랑케, 당신이 디트리히 반 클라인과 변태적인 성행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가학 행위를 통해 쾌락을 얻는 클라인 공작에 대한 증거도 있다.]

[당장 클라인 공작과의 관계를 끊지 않으면, 디트리히 반 클라인의 비정상적인 취향에 대해서 세상에 알리겠다.]

이 편지를 보낸 사람은 디트리히를 망치고 싶어 하는 자였다. 그리고 그 빌미는, 에르나 자신이 제공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사흘 안에, 디트리히 반 클라인과의 관계를 정리했다는 사실을 모든 사람이 알도록 하지 않으면…….]

손 안에서 구겨진 종이가 화르륵 불탔다. 재가 고스란히 그녀의 무릎과 바닥에 떨어졌다.

이런 것은 남겨두어 봐야 좋을 게 없었다. 혹시라도 다른 사람의 눈에 띄었다가는 또 다른 문제를 불러일으킬 만한, 곤란한 물건이었다. 어차피 글씨체는 일부러 엉망으로 써두었을 테니 추적할 수 없을 테고 종이나 봉투는 너무 흔한 것이었다. 아카데미에 들락거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구할 수 있는 종류였다.

마치 돌덩어리처럼 굳은 채 에르나는 눈만 연신 깜빡거렸다. 미동도 하지 않는 그녀의 머릿속은 그 어떤 때보다도 거센 폭풍우에 휩싸여 있었다.

편지를 보낸 자를 사흘 안에 찾아내 입을 막을 것인가. 찾기만 한다면 죽이는 건 문제도 아니었다. 이미 전쟁터에서 직접 죽인 사람들이 한둘도 아니었다. 누군가의 피를 보는 것은 에르나에게 그다지 주저할 만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단서가 너무 적었다. 사흘 안에 찾아낼 자신이 없었다.

사실 가장 간단한 방법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아…….”

입술이 벌벌 떨렸다. 디트리히에게서 멀어지는 것, 그것이 답이었다.

그런데 조금도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이제야 겨우 9년 전의 오해를 풀고, 그의 마음을 받아주고 그녀도 마음을 열기 시작했는데. 협박범이 시키는 대로 하면 결국 이전과 똑같은 상태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더는 가까이 오지 말라’든가 ‘알은척하지 말라’고 한다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당연히 뭐가 문제냐고 디트리히는 캐물을 것이다. 집요하게 묻고 또 물을 게 뻔했다. 에르나에 대한 디트리히의 집착이라면 당연했다. 그렇게 해서 그에게 협박당한 사실을 묻는다면…….

그가 가진 권력을 이용한다면 협박한 사람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협박범은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는 자였다.

[디트리히 반 클라인이 날 찾으려 든다면 그 즉시 너희 두 사람의 추잡한 짓거리를 까발릴 것이다.]

에르나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뿐인 것처럼 보였다. 이전처럼 잔인하게, 또다시 그에게 더 큰 상처를 입히는 한이 있더라도 디트리히를 끊어낸다면 그는 안전할 것이다.

“대체, 왜. 왜…….”

너무 과한 욕심을 낸 것일까. 애초에 격에 맞지 않는 상대인데, 디트리히가 그녀를 잊지 못하고 찾아왔다는 이유만으로 너무 쉽게 마음의 빗장을 풀어버린 건가.

문득 9년 전, 그녀를 벌레 보듯 깔보던 남자가 생각났다. 디트리히를 닮았지만 훨씬 잔혹한 눈빛을 하고 있던 그의 아버지는 에르나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네가 디트리히에게 가당키나 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어처구니가 없군. 네가 가진 그 보잘것없는 재능이 그 아이에게 무슨 도움이 된다고? 설령 네 재주가 쓸 만하다고 해도, 그저 네가 디트리히의 옆에 서있는 것만으로도 그 아이의 가치가 깎여나간다는 사실을 모르겠나?’

디트리히에게는 그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좋은 혈통에, 양순하고, 그에게 도움이 될 만한 배경이 있어야 했다. 기품과 예의와 정숙함이, 고귀한 태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런 것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가지고 있느냐고 전대 공작은 묻지 않았다. 물을 필요도 없었으니까.

에르나는 입술을 깨물며 얼굴을 찌푸렸다.

그가 한 말은 전부 개소리라고, 마치 다짐이라도 하듯 계속 그렇게 생각하며 9년을 보냈다. 공작가를 피해 도망쳤던 전쟁터에서 광역 마법으로 수없이 많은 적군을 사살할 때, 쏟아지는 화살을 자신의 마법으로 막아내며 아군을 지켜낼 때, 곧 죽을 것 같았던 환자를 살려냈을 때. 나는 이렇게나 가치 있고 중요한 사람이라고 속으로 연신 소리쳤다.

그깟 혈통이 뭐라고, 그깟 귀족이 다 뭐라고. 그리고 그것이 거의 사실이라고 에르나도 슬슬 설득당하려던 차였다.

하지만 아니었다. 에르나라는 사람이 디트리히의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그에게 마음을 주고 그에게 제 애정을 표현하는 것으로 이렇게 금방 위기가 찾아왔다. 전대 공작이 그녀의 괴상한 취향을 알았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어쩌면 이런 미래를 예측했던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아아…….”

머리가 지끈거렸다. 두 눈을 꾹 감은 채로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저절로 허리가 수그러들었다. 무릎에 얼굴을 파묻자 붉은 머리카락이 커튼처럼 그녀의 얼굴을 가려주었다.

눈물이 나거나 하진 않았다. 애초에 디트리히가 그녀를 찾아온 것만 해도 신기한 일이었다. 그랬다. 신기한 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거다. 살다 보면 예측하기 힘든 놀라운 사건들이 발생하게 마련이었다. 그런 일들은 나중에 돌아보았을 때 잠시 아련한 기분을 불러일으키고, 또 곧 기억 한편에 묻힌다. 가끔은 슬플 수도, 가끔은 좋을 수도 있지만 그뿐인, 그런 추억이 된다.

어차피 디트리히는 1년만 있으면 아카데미를 떠날 사람이었다. 9년을 기다린 끝에 에르나를 만났다고는 하지만, 또 모르는 일이다. 시간이 지나면 그가 기억에 담아두었던 그녀와 지금의 그녀가 너무 다름에 실망할지도. 아니면 맛볼 만큼 맛보고 나서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여기며 돌아설지도.

어쨌든 그들의 결론은 이별이리라. 다만 이 편지가 두 사람 사이를 조금 빨리 끊어놓을 뿐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가슴 한쪽이 지끈거렸다.

멍청한 에르나, 미련 가지지 마. 애초에 네가 손에 넣을 만한 사람도 아니었잖아. 그가 자신을 잊지 않았다는 사실에, 그녀를 애타게 원한다는 사실에 발이 현실에서 동동 떠서는.

디트리히를 그냥 밀어낸다면 그는 절대 납득하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더욱 진드기처럼 들러붙거나, 에르나에 대한 애정과 미련을 드러내놓고 표현할지도 몰랐다.

그건 결코 협박범이 원하는 바가 아닐 것이다. 애초에 그 정도로 이 빌어먹을 협박범이 인내심이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차라리 디트리히가 에르나를 미워하게 만드는 편이 나았다. 다시는 그녀의 얼굴도 보고 싶지 않을 정도로 매몰차게 끊어낸다면 그는 안전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럴 수 있는 방법이 딱 한 가지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나쁜 년이지.”

에르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스스로를 욕했다.

어린 디트리히에게 마음을 줄 일이 아니었다. 다 가진 것 같지만 어쩐지 외로워 보였던 소년에게 눈길을 줄 게 아니었다. 자신을 무시하는 공작가 사람들에게 내심 우쭐하고 싶어서 디트리히를 더 예뻐할 것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녀의 방식대로 디트리히에게 애정을 퍼부어서는 안 되었다. 그게 비정상적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제하지 못하고, 또 은근히 희열을 느끼면서 디트리히의 목에 개 목걸이를 채운 순간에 모조리 비틀리고 망가진 거다.

나는 그 애에게 대체 무슨 짓을 한 걸까.

아주 한참을, 에르나는 그렇게 웅크린 채로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날 밤, 그녀는 보고 싶다고 찾아온 디트리히를 돌려보냈다.

“미안해, 몸이 안 좋아.”

“어디 아픈 데라도 있으십니까?”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냥 기운이 없어서 그래.”

“약을 가져다드릴까요? 아니면 제가 누님 옆에서 돌봐드리면…….”

“아니야, 디트리히. 그냥 쉬면 될 것 같아.”

냉큼 그의 제안을 거절하는 에르나의 얼굴은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저 피곤한 기색만이 조금 있을 뿐이었다. 그녀의 얼굴을 훑은 디트리히의 얼굴에 수심이 어렸다. 그는 침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제가 너무 자기 절제를 하지 못해서 몸이 불편해지신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무슨 소리야, 그게.”

“낮에, 제가 너무 덤벼서.”

“아냐. 그냥, 진짜 가끔 이렇게 몸이 안 좋을 때가 있어.”

뭘 말하는지 알아챈 에르나의 볼이 살짝 붉어졌다. 그녀가 손을 내저으며 부정하자 비로소 디트리히의 얼굴에 안도가 어렸다.

“정말 혼자 계셔도 괜찮겠습니까?”

“원래 혼자 잘해왔는걸.”

“하지만 지금은 제가 있잖아요.”

그 말에 에르나는 이상하게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래서 얼른 고개를 살짝 숙여 디트리히의 눈을 피했다. 괜히 그와 더 마주 보고 있으면 울 것만 같았다.

부모님이 돌아가셨던 날도, 전쟁터에서 처음으로 제 옆에서 사람이 죽어나갔던 날도 울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디트리히에 관련된 일에서만은 감정적이 되었다.

“…정말, 괜찮아. 고마워.”

그러니까 가봐. 슬쩍 제 가슴을 밀어내는 에르나의 정수리를 바라보는 디트리히의 얼굴이 잠시 굳어졌다가 다시 원래대로 예쁜 웃음을 띠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푹 쉬세요.”

“얼른 가.”

끝끝내 얼굴을 들지 않은 에르나는 그대로 몸을 돌려서 방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코앞에서 문이 닫히고 난 뒤에도 디트리히는 자리를 떠나지 않고 서있었다. 무언가 생각하는 듯 잔뜩 굳은 얼굴로 문을 바라보던 그는 작게 한숨을 쉬며 손끝으로 미간을 문질렀다.

“정말이지, 틈을 안 주시는군.”

어느 정도 예상하긴 했지만, 막상 에르나가 약해진 순간에 거절당하자 심장이 쿵 떨어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발걸음을 돌려 방으로 향하는 디트리히의 얼굴은 그 어떤 때보다도 차가웠다.

그다음 날도 에르나는 디트리히를 피했다. 그의 얼굴을 보면, 어쩐지 협박받은 일에 대해 모조리 다 말해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다행히도 두 사람의 수업 시간이 전부 엇갈려 있어서 에르나는 쉽게 그를 피해 다닐 수 있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한편, 그녀는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디트리히가 아카데미에 온 지 고작 몇 달밖에 되지 않았다. 오히려 떨어져 있던 시간이 훨씬 길었다. 디트리히가 불편했던 순간도 분명 있었다. 그런데 오늘, 단 하루 그를 보지 않기 위해 피해 다닌 시간이 너무 서글펐다.

내가 이 정도로 디트리히에게 마음을 많이 내어주었나? 에르나는 새삼스럽게 상처 입은 심장을 느끼며 자신을 비웃었다. 전부 자업자득인데 뭐가 그리 슬플 일이 있단 말인가.

그리고 그날 밤, 에르나는 결국 잠을 이루지 못했다. 불 꺼진 침실, 침대에 앉은 채로 그녀는 오래도록 생각에 잠겼다. 어떤 것이 최선인지를 가늠하는 일은 언제나 쉽지 않았지만, 오늘은 특히 더 그랬다.

마침내 동이 터오기 직전, 그녀는 무언가를 결심이라도 한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숙소에서 나온 그녀의 걸음은 연구실로 향했다.

책상 앞에 앉자 램프에 저절로 반짝하고 불이 들어왔다. 그녀는 빈 종이와 펜을 꺼내 들고는, 아주 잠시 멈칫했다가 주저함 없이 종이 위에 문장들을 써 내려갔다. 마침내 종이에 원하는 것을 모두 쓴 에르나의 얼굴은 후련하기만 했다.

펜을 책상 구석에 집어 던진 에르나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남은 건 디트리히에게 상처 주는 일뿐이었다. 가장 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으나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었다.

하루를 어찌 보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몇 번은 실수한 듯도 했다. 학생들이 “선생님도 실수를 하시네요!”라고 하며 와르르 웃는데 멍청하게 마주 웃기만 했다. 식사는 할 수가 없었다. 물만 마셨는데도 속이 조여들며 쓰라렸다.

아무것도 모르는 디트리히는 에르나가 ‘밤에 방에 찾아가겠다’라고 하자 매우 기뻐했다. 만약 꼬리가 있다면 열렬하게 흔들리는 모습이 보였을 것이다.

“기다릴게요.”

귓가에 속삭이고 멀어지는 디트리히의 뒷모습을 에르나는 한참 바라보았다. 아랫입술을 너무 꽉 깨물었는지 피가 맺혔다.

밤은 금세 찾아왔다. 창밖에 어두워지기까지 가만히 앉아있기만 하던 에르나는 마침내 하늘에서 붉은 기운이 모두 사라지고 별들이 하늘 꼭대기까지 올라가고 나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디트리히의 방에 가기 전에 에르나는 연구실과 침실 정리를 했다. 어차피 마법으로 하는 일이니 힘들지는 않았다.

정리를 마치고 나서는 몇 가지 물건을 마법 주머니에 담았다. 그에게는 쓸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물건들이었다. 아마 디트리히도 그녀가 자신에게 이딴 것들을 사용하리라고 생각하진 않을 것이다.

이 물건들은 디트리히에게서 도망치기 위한 핑계가 되어줄 것들이었다.

똑똑.

문을 두드리기가 무섭게 디트리히가 바로 튀어나왔다. 발그레한 볼을 한 그는 마치 소년처럼 보였다. 그는 행복해 보이는 얼굴로 그녀를 반겼다.

“누님.”

“들어가도 될까?”

“물론입니다.”

그가 슬쩍 옆으로 비켜서 주었다. 에르나는 몇 번이고 왔었던 디트리히의 응접실을 휘 돌아보았다. 뒤에서 문을 잠그는 소리가 들렸다. 저번에 문단속을 잘하라고 했던 걸 기억하는 모양이었다.

무감한 표정을 만들어내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 줄은 예전에는 미처 몰랐었다. 에르나는 입술을 아프게 깨물며 정신을 집중했다.

“오늘은 조금 거칠게 할 거야.”

“주인님께서 하시는 거라면 저는 뭐든 좋아요.”

순순히 대답하는 디트리히의 얼굴을 마주하기가 힘들었다. 단 한 번도 누구와 플레이하면서 이렇게 힘겨웠던 적이 없었다. 상대를 몰아붙이면 몰아붙일수록 흥분되기만 했는데, 오늘은 그렇지가 않았다.

그래도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에르나는 응접실 한중간에 서서 그녀를 기다리는 디트리히에게 다가갔다. 그가 입고 있는 셔츠의 단추를 풀자, 역시나 낡은 개 목걸이가 제일 먼저 드러났다.

에르나는 손끝으로 그것을 쓰다듬었다. 그 손길만으로도 흥분했는지 디트리히는 낮게 으르렁거렸다. 기대감과 정욕에 금세 그의 눈가가 붉게 물들었다.

“하아, 주인님…….”

“멋대로 입 열지 마. 건방지게.”

날카롭게 쏘아붙이며 에르나는 개 목걸이를 잡아챘다. 커다란 몸이 덜컥 앞으로 쏠렸다. 디트리히의 파란 눈이 동그래지며 그녀를 바라보았다가 이내 순종적인 빛을 띠었다. 그가 속삭였다.

“잘못했어요, 주인님.”

“정말 잘못했다고 생각은 해?”

그가 뭐라 답하기도 전에 에르나의 손이 움직였다. 손짓에 따라 충실히 움직이는 마력이 그의 오금을 쳤다. 갑작스러운 습격에 디트리히는 그대로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에게 마법을 쓴 적이 없는 에르나였기에 디트리히도 조금 놀란 눈치였다.

그의 목소리를 들으면 약해지기만 했다.

그녀는 허리춤에 달린 주먹보다 조금 큰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꺼냈다. 그녀의 손에는 동그란 공이 매달린 가죽끈이 들려있었다. 주머니에서 나오기에는 부피가 너무 컸다. 그걸 보고 놀라는 디트리히를 보며 에르나는 비죽 웃었다.

“마법사가 마법이 걸린 물건 쓰는 게 이상해? 됐고, 입 벌려.”

약간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린 건지, 디트리히는 느릿하게 입을 열면서도 에르나의 낯빛을 살피길 멈추지 않았다.

붉은 혀가 꿈틀대는 입 안에 공을 집어넣은 그녀는 가죽끈을 머리 뒤로 돌려 솜씨 좋게 묶었다. 입 안을 가득 채운 공 때문에 순식간에 입의 자유를 잃은 디트리히는 어눌한 소리로 우우거렸다. 조금 당황한 듯도 보였다.

그런 그의 턱을 붙든 에르나는 좌우로 홱홱 돌리며 살펴보더니 씩 웃었다.

“이제 좀 조용해졌네. 그치? 개는 개답게, 말을 못 해야 하는데.”

“아으, 으…….”

“디트리히, 한 번도 진짜 ‘개’인 적 없었잖아. 그치?”

다정한 손길로 금발을 쓰다듬는 에르나는 자애로운 주인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녀의 손은 곧 우악스럽게 디트리히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그의 눈가가 잠시 찌푸려졌다.

“우리 오늘은 진짜로 해보자. 그동안 했던 장난 같은 거 말고. 내 ‘취향’에 맞춰서 말이야.”

디트리히는 그녀의 말에 몸을 살짝 떨었다. 그의 눈에 떠오른 것은 기대일까, 두려움일까.

에르나는 그것을 제대로 읽기를 거부했다. 어차피 오늘 중요한 건 두 사람 사이의 유대도, 교감도, 만족도 아니었다. 디트리히가 오늘 굴욕감을 느끼고 에르나를 거부하게 되길 바랄 뿐이었다.

에르나는 디트리히의 목걸이를 붙들고 당겼다. 가볍게 힘을 주었을 뿐인데, 디트리히는 금방 알아차리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옷 입은 개는 없잖아. 그치? 전부 벗어.”

그녀의 말에 수긍하기라도 하듯 디트리히는 순순히 옷을 전부 벗어 던졌다. 그녀 앞에서 알몸으로 서는 건 부끄럽지 않은 일이었다. 아름다운 예술품처럼 잘 짜인 몸을 앞에 두고도 오늘따라 에르나는 아무 감흥도 없어 보였다. 그 점이 디트리히를 조금 불안하게 했다.

그를 보고 예뻐해 주던 주인님 같지 않았다. 무언가 달랐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물어볼 수도 없었다. 디트리히가 그런 궁금증을 가지고 묻고 싶어질 줄 미리 알기라도 한 건지, 입을 막아버렸으니 말이다.

심지어 이미 그녀가 방에 들어섰을 때부터 발기해 있던 페니스를 보는 눈조차 차가웠다. 평소에는 발정 난 좆을 보고는 ‘참 너도 어쩔 수 없다’는 듯 피식 웃곤 했는데…….

왜 그렇게 바라보는 건가요? 왜 조금의 애정도 느껴지지 않는 얼굴로 바라보는 건가요?

디트리히는 그녀에게 묻고 싶었다.

채찍을 휘두른 자리에 붉게 피가 배어 나와도 그녀의 목소리에, 또 손길에 애정이 배어났기 때문에 디트리히는 괜찮았다. 무섭거나 불안하기는커녕 오히려 행복했다. 그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만큼 에르나가 디트리히를 아낀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오늘은 전혀 그런 따뜻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낯선 감각이 그의 발끝부터 스멀스멀 몸을 지배해 가기 시작했다.

에르나의 눈은 사람이 아니라 개를 보고 있었다.

그의 불안함을 눈치채기라도 한 걸까. 에르나의 얼굴에서는 더욱 표정을 읽기 어려워졌다.

그녀가 한 발 가까이 다가서서는 그의 페니스에 손을 가져갔다. 뜨겁게 달아오른 성기에 손이 닿자 디트리히가 허리를 움찔했다. 그러자 그녀는 일부러 더 세게 손에 힘을 주었다.

“으으……!”

“움직이지 마.”

“우, 우으.”

“일단은 말이지.”

흰 손이 천천히 디트리히의 것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한 손에 넘치도록 차는 귀두를 손가락으로 슬슬 문지르다가, 귀두 갓을 손톱으로 긁어댔다.

예민하디예민한 부분을 일부러 심하게 자극하자 디트리히가 짐승같이 그르렁대며 허리를 뒤로 뺐다. 하지만 에르나는 페니스를 놓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바짝 몸을 붙이고는 손톱으로 요도구를 후벼댔다.

“이제 시작인데.”

“우으, 웃, 흐으!”

“이렇게 빨리 날뛰면 어떡해.”

그녀는 무심하게 디트리히의 성기를 바라보며 손을 더 열심히 움직였다. 조금 자란 손톱이 요도를 짓누르고,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면서 귀두가 짜부라졌다. 어느새 다른 한 손이 단단해진 기둥을 힘주어 흔들고 있었다. 얼굴과 목이, 가슴까지도 시뻘게진 디트리히가 헐떡대며 꺽꺽댔지만 에르나는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서있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다. 강인한 기사의 신체라 해도, 말초적인 강렬한 자극에는 무력하기만 했다. 온몸을 두드리는 강력한 쾌감의 파도에 디트리히는 헐떡거렸다.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채 삼킬 생각을 하지 못한 침이 툭툭 떨어졌다.

그는 벌벌 떨리는 손을 뻗어 에르나의 어깨를 짚었다. 그 와중에도 너무 힘주어 잡으면 에르나가 다치기라도 할까 봐 디트리히는 손에 힘을 주지 못했다.

다리가 휘청였다. 디트리히는 배 안쪽 깊은 곳에서부터 솟구치는 사정감을 느끼고는 고개를 젖혔다. 그걸 기다렸다는 듯, 에르나의 손이 더욱 격렬하게 움직였다.

“으으, 으아! 아아아!”

왈칵, 솟구쳐 나오는 정액을 에르나는 손바닥으로 덮었다. 두 손으로 귀두를 감싸고 꿀럭대며 흘러나온 그 몽글몽글한 탁한 액체를 손 안에 모았다. 디트리히가 울부짖는 것을 못 본 척하며 그의 정액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마침내 끝의 끝까지 모두 짜낸 디트리히가 헐떡이다가 풀썩, 무릎을 꿇었다. 가쁜 숨을 내뱉으며 그는 정액을 손에 잔뜩 모아 쥔 에르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녀는 원하는 것을 다 이루었는지, 어깨를 슬쩍 으쓱했다.

칭찬이라도 받고 싶었다. 그녀가 원하는 대로 잘해냈다고, 착한 개라고 이마에 입을 맞춰주길 바랐다.

하지만 에르나는 그의 감정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 같았다. 손을 옴폭하게 만든 채 모으고 선 그녀는 냉랭한 목소리로 다음 명령을 내릴 뿐이었다.

“두 손으로 짚고 엎드려.”

디트리히는 잠시 에르나를 바라보다가 시키는 대로 엎드렸다.

그녀가 오늘 무슨 생각인지는 알 수 없지만, 조금 기분이 나쁜 날인 듯했다. 하긴 그동안 디트리히에게 그녀가 맞춰주었던 건지도 몰랐다. 그도 이 특별한 관계를 가지는 사람들이 그렇게 다정하고 조심스럽게 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서로 가명으로 만났을 때 에르나는 친절하긴 했지만, 그가 디트리히라는 걸 알게 된 뒤로는 그때보다도 훨씬 그를 ‘봐주었다.’ 그 첫 번째 밤처럼, 집요하게 통제하고 아프게 만들지 않았다.

어쩌면 오늘 그동안 쌓였던 불만을 모조리 풀어버리려는 생각인지도 몰랐다. 주인님의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한 그의 실책인지도 몰랐다.

얌전히 바닥에 네발로 짚고 선 디트리히를 내려다보는 에르나의 눈빛이 더욱 짙어졌다. 그녀는 그의 등 뒤로 돌아가서 다리 사이에 자리 잡았다. 그녀는 손에 모아 둔 정액을 그의 엉덩이의 갈라진 곳에 흐르게 했다. 미적지근하고 미끈거리는 것이 닿자 디트리히가 흠칫 놀랐다.

에르나는 흥분에 마른 입술을 핥았다. 오늘 목적은 디트리히에게 모욕을 주고 그가 상처받아 에르나를 미워하게 만드는 것이었지만. 그렇지만…….

어쨌든 에르나는 상대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에서 쾌락을 얻는 비정상적 인간이었다. 자신의 행동에 두려움을 느끼는 디트리히를 보자 어쩔 수 없이 배 속에 확 불이 붙었다. 그녀의 두 눈에 음울한 빛이 번뜩였다.

“사람에게는 없지만, 개에게는 있는 게 뭘까?”

“우우, 웃.”

“디트리히는 개인데, 꼬리가 없잖아.”

정액으로 잔뜩 젖은 그녀의 손가락이 천천히 엉덩이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축축하게 젖은 항문이 불청객의 촉감에 움찔거렸다. 그것이 귀여워서 에르나는 손가락으로 슬슬 문질렀다.

그러다 천천히 손이 내려가 회음부에 닿았다. 동시에 그녀가 디트리히의 등 위로 엎드렸다. 나머지 한 손은 힘이 빠져서 늘어져 버린 그의 좆을 붙잡았다.

그녀가 무엇을 하려는 건지 알아챈 디트리히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어쩌면, 언젠가는 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다. 그녀를 기다리는 동안 그라고 해서 아무것도 안 하고 논 건 아니었다. 그 또한 고통에 민감한 사람이었고, 특히 에르나가 그에게 선사하는 여러 가지 종류의 가학적 행위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금방 달아오르곤 했다.

그는 이런 종류의 플레이를 하는 사람들이 즐기는 행위들에 대해서 충분히 공부했고, 알아보았다. 그러니 언젠가는 주인님이 자신에게 꼬리를 달아줄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은근히 기대도 했다.

그러나 막상 실제로 닥친 그 일은 그렇게 두근거리기만 하고 말 일이 아니었다. 인간으로서 가지고 있는 존엄이 무너지는 것만이 아니라 수컷으로서, 수많은 이들의 위에 군림하고 섰던 고귀한 사람으로서의 자존감이 흔들렸다.

자신이 너무나도 보잘것없고 하찮게 느껴졌다. 그것도 경애하고 숭배하는, 에르나의 손 아래에서 말이다.

그리고 더욱 우스운 건 그런 감정 속에서 부끄럽고 화가 나기도 하는 한편으로 착실히 흥분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에르나가 자신을 모욕하는 것이 어쩌면 이렇게도 기분이, 좋을 수가.

그의 하초는 그가 싸지른 정액에 축축하게 젖어갔다. 에르나는 땀이 배어난 디트리히의 등에 두어 차례 입을 맞추고는 속살거렸다.

“너, 기대되니? 뒷구멍이 발름거리는데.”

“후으, 으으… 우으, 으.”

“아, 그렇다고?”

진짜 너 변태 같다. 에르나가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속삭이는 소리에 디트리히의 귀가 붉어졌다. 그에 발맞춰 그의 페니스에도 점점 힘이 들어갔다.

시간을 오래 들여 풀어줄 생각은 그다지 없었다. 에르나의 손가락이 뒤를 슬슬 문지르다가 안으로 파고들었다. 무언가가 들어갈 일이 없는 곳이 침범당하자 불편하고 거북한 감각이 단번에 차올랐다.

그녀의 손가락이 내벽을 천천히 더듬으며 안으로 밀고 들어갔다가 다시 천천히 물러났다. 형용하기 어려운 기묘한 감각에 디트리히는 턱을 덜덜 떨었다. 기분이 나쁜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쾌감이 차올랐다.

“후으으……!”

“처음 아니야? 처음인데 느끼는 거야?”

“으으, 하으, 윽.”

“너, 내가 안 건드렸어도 언젠가는 그 술집에서 만났던 거 아닐까? 이렇게나, 음란해 빠져서는…….”

아니라고, 주인님이 아니면 이런 일에 자신은 흥분하지 않는다고 항변하고 싶었다. 하지만 입이 틀어막혀서 사람의 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 그나마도 안을 헤집는 손가락의 감각에 웅얼거림조차 의미를 잃고 말았지만.

에르나는 손가락으로 안을 더듬었다. 차분하게 움찔대는 내벽을 건드리다가 어느 한 부분을 힘주어 꽈악 눌렀다. 그 순간 디트리히는 눈앞에서 별이 튀는 것을 느꼈다.

“우웃!!”

쾌감이 그의 몸을 기습했다. 조금 전에 사정했는데도 디트리히의 성기는 또다시 정액을 토해냈다. 몸을 벌벌 떨던 디트리히의 상체가 무너져 내렸다. 귓가가 멍해지는 듯했다. 생각하지도 못한 자극에 그의 얼굴이 엉망으로 일그러졌다.

그녀의 손가락은 한 번만 그를 괴롭히지 않았다. 연달아 자꾸만 배 속 예민한 부분을 짓눌러대자, 디트리히는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침이 턱을 타고 흘러 바닥에 질질 흘렀다.

“하으으… 아아! 으, 아아아! 흐으, 으! 으으으!”

“잘 느끼네. 정말 훌륭한 개야, 너.”

“흐으, 으으읏, 후우윽!”

바닥에 깔린 카펫이 질척해졌다. 금세 비릿한 냄새가 방 안을 채웠다. 얼얼해진 아랫배와 저릿한 성기는 이제 누가 툭 건드리기만 해도 곧장 절정으로 달할 정도로 예민해졌다.

흥분으로 발그레해진 디트리히의 몸에 에르나는 몇 번 입을 맞추었다. 그러고는 주머니에서 손바닥보다 조금 짧고 흉측하게 생긴 애널 플러그를 꺼냈다. 그것의 끝에는 개의 꼬리처럼 생긴 길쭉한 털 뭉치가 달려있었다.

에르나의 손가락을 물고 있는 아래는 흐물거리며 풀려 있었다. 종종 허리를 바르르 떠는 디트리히의 엉덩이에 애널 플러그를 문지르며 물었다.

“힘들어? 못 견디겠어?”

“아, 으…….”

“그런 것치곤 네 여기는… 내 손가락을 놓아줄 생각을 안 하는데.”

그녀는 키득거리며 또다시 내벽을 문질렀다. 이제 디트리히의 신음은 숫제 울음처럼 들릴 정도였다. 쾌락과 고통에 몸부림치는 그를 보며 에르나는 제 다리 사이가 축축이 젖어든 것을 알아차렸다. 정말이지 자신은 어쩔 수 없는 말종이었다.

손가락이 아주 느릿하게 빠져나오자 디트리히가 울부짖었다. 그의 손이 뒤로 뻗어와서는 허우적대며 에르나의 손을 더듬었다. 그녀는 매정하게 그의 손을 쳐내고는 쏘아붙였다.

“어리광부리지 마. 오냐오냐했더니, 네가 조금만 힘든 티 내면 내가 또 봐주려니 하는 거야?”

“흐으…….”

“네 손으로 엉덩이 벌려. 네 꼬리를 달아주는 거잖아?”

처음으로 디트리히는 그녀의 앞에서 발발 떨었다. 그의 손이 떨리는 통에 제대로 자세를 잡지 못하자, 에르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그의 엉덩이를 세게 손으로 내리쳤다. 짝, 하는 소리와 함께 그가 화들짝 놀랐다.

“얼른.”

주인님의 재촉에 디트리히는 더듬더듬 제 둔부를 붙들고 양쪽으로 벌렸다. 에르나는 애널 플러그를 안으로 밀어 넣었다.

길이는 검지 하나 크기만 했지만, 양 끝이 좁은 것과 달리 중간은 제법 뚱뚱했다. 점점 압박이 커지자 디트리히가 우우, 하고 울부짖었다.

자꾸 힘이 들어가는 것을 보며 에르나는 연신 그의 볼기를 내리쳤다. 숨 쉬어. 힘 풀어야지. 달래는 듯, 몰아붙이는 듯한 에르나의 목소리를 몽롱한 정신으로 들으며 디트리히는 그녀의 말에 따르려 노력했다.

마침내 그의 안에 그것이 자리 잡았다. 엉덩이에서 살랑거리는 꼬리를 쓸어내린 에르나가 까르르 웃었다.

“정말로 개가 됐네, 디트리히.”

“으우… 으…….”

“이런 꼴을 보면 누가 너를 클라인 공작 각하라고 생각하겠어. 그치?”

에르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꼬리를 안으로 한 번 더 꾸욱 눌러 내렸다. 압박감에 디트리히가 바닥에 뺨을 더 거세게 밀어붙이며 신음했다.

“그럼 이제, 주인님을 즐겁게 해줘야지?”

어느새 에르나의 손에 그녀가 애용하는 가느다란 회초리가 들려있었다. 디트리히는 숨만 몰아쉬며 곁눈질로 제 주인을 흘끔거리기만 했다.

어쩐지 밤이 길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흐른 건지 디트리히는 가늠할 수가 없었다. 등과 둔부, 허벅지와 발바닥이 얼얼했다. 아마도 붉은 실선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을 게 분명했다.

후끈거리는 몸도 몸이었지만, 더 고통스러운 건 다른 쪽이었다. 에르나는 오늘 가할 수 있는 종류의 고통이라면 무엇이든 디트리히에게 선물할 생각인 모양이었다. 그녀가 디트리히의 뒤에 쑤셔 박았던 애널 플러그는 은은하게 진동해 댔다.

게다가 중간에 자꾸만 그가 정액을 흘려대는 게 보기 싫다며 가늘고 기다란 막대를 요도에 밀어 넣기까지 했다. 디트리히가 아파서 우는데도 에르나는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조금 전 에르나는 그의 좆에서 막대를 뽑아냈다. 안쪽을 긁고 나오는 막대의 감각에 디트리히는 몸을 바들바들 떨며 거의 맑은 물이 된 정액을 겨우 내보낼 수 있었다. 눈앞이 깜깜해지고 온몸의 기운이 쭉 빠져나갔다.

이어 그녀는 디트리히가 개에서 사람으로 돌아오게 해주었다.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꼬리를 끌어당기자 디트리히가 낮게 우우, 하고 울었다. 가장 두꺼운 부분이 걸리자 잔뜩 벌어졌던 뒤에서 폭, 하고 작은 소리가 나며 애널 플러그가 빠져나왔다.

“아으윽…….”

디트리히가 몸을 둥글게 말며 신음했다. 두꺼운 것이 빠져나간 뒷구멍이 벌름거리는 감각에 그는 몸을 떨었다. 그런 그를 토닥이며 그녀는 꼬리를 대충 근처에 던져버렸다.

자신이 흘린 온갖 체액으로 축축해진 카펫 위에 늘어져 옆으로 누운 디트리히를 에르나는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어느새 그녀의 볼도 제법 붉게 달아오른 채였다.

이제는 에르나가 자신을 예뻐해 주었으면 했다. 견디느라 고생했다고, 네가 너무 예뻐서 어쩔 수 없었다며 머리를 쓰다듬고 입을 맞춰주었으면 했다. 꼭 끌어안고 착한 개라서 좋다고 해주길 원했다.

눈물을 하도 흘려 짓무른 눈으로 그는 에르나를 바라보며 신음했다.

그런 그를 바라보던 에르나가 드디어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들고 있던 회초리를 내려놓은 그녀는 디트리히의 머리 뒤로 손을 돌려서 물려두었던 재갈을 풀어냈다. 오랫동안 벌리고 있던 턱이 아려왔다.

“아프니?”

“아, 음……. 괜찮, 습니다.”

“그래?”

그의 대답에 에르나는 가볍게 그의 어깨를 밀어 바르게 눕혔다. 그녀는 치마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서 속옷을 벗어 내렸다. 축축하게 젖은 속옷을 바닥에 대충 던져둔 에르나는 디트리히의 얼굴 위로 올라왔다. 그녀가 원하는 것을 알아차린 디트리히는 기꺼이 입을 벌렸다. 지금 에르나가 바라는 것은 디트리히가 바라는 것과 같았다.

입술에 닿는 에르나의 음순이 뜨겁고 축축했다. 언제부터 이렇게 물을 흘리고 있었던 걸까. 확실한 건, 에르나는 제 개를 괴롭히면서 완전히 흥분했다는 사실이었다.

디트리히는 이미 풀어질 대로 풀어진 에르나의 안쪽으로 제 혀를 밀어 넣었다. 곧장 안으로 파고드는 혀에 에르나는 끙끙대며 허리를 비틀었다. 그녀가 도망가기라도 할세라 디트리히의 두 손이 골반을 단단히 붙잡았다.

“하앙, 아! 아으응!”

치맛자락에 가려 질척하고 음란한 물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에르나는 디트리히가 얼마나 음탕하게 그녀의 아래를 탐하고 있는지 잘 알았다. 그의 이가 흥분해서 발딱 일어선 음핵을 연신 긁어내릴 때마다 안에서 자꾸만 애액이 흘러넘쳤다. 그의 혀와 입술이 그 뜨뜻한 액체를 모조리 훑어 삼키는 게 느껴졌다.

그가 얼마나 에르나를 애타게 원하는지 모를 수가 없었다. 어느새 치마 안으로 들어온 디트리히의 손이 그녀의 말랑한 엉덩이를 단단히 틀어쥐었다, 손가락 사이로 살들이 짓눌려 튀어나왔다.

긴 시간 참아왔던 만큼 디트리히는 들러붙었다. 에르나의 몸이 앞으로 풀썩 수그러졌다. 두 팔로 바닥을 짚고 겨우 버텨야 할 정도로, 디트리히는 그녀의 몸을 실컷 맛보고 희롱했다.

고작 입으로 애무하는 정도로도 이렇게나 좋았다. 아니, 사실은 디트리히와 몸이 맞닿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솔직해지자. 에르나는 스스로를 다그쳤다.

그녀는 디트리히가 좋았다. 그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했었던가? 사랑의 형태가 조금 다를 수는 있겠지만 에르나 또한 디트리히를 사랑하는 듯했다. 아니, 사랑했다.

그녀는 무릎걸음으로 기어 그에게서 도망쳤다. 몸을 돌려 바닥에 앉자마자 디트리히가 그녀에게 다가왔다. 번들거리는 입가를 혀로 핥으며 그가 에르나의 발목을 붙잡았다.

언뜻 무서우리만치 번뜩이는 빛이 그의 눈에 스치고 지나갔다. 그가 헐떡이면서 에르나에게 애원했다.

“주인님, 제가 오늘 시키는 대로 잘했다면… 상을 주세요.”

“어떤 상을 받길 바라는데?”

“주인님이 주시는, 거라면… 뭐든…….”

에르나는 디트리히의 이런 모습이 좋았다. 자신의 앞에서, 완전히 무너지고 망가지고 비틀려서 애원하고 울부짖고 마침내 그녀를 갈구하는 디트리히가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그런 디트리히를 보고 있자니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고작 친절하게 대해주었다는 이유만으로 사랑에 빠져서 9년이라는 시간 동안 에르나를 찾아다녔던 디트리히가 너무나도 불쌍하고, 사랑스러워서.

에르나는 치마를 붙잡고 위로 걷어 올렸다. 흥분으로 도톰하게 부풀어 오른 질구가 그의 앞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발름거리는 그 은밀한 속살을 자신의 손으로 살짝 잡아 벌리며 에르나가 마침내 그에게 허락했다.

“이리 와. 와서, 내 안에 네 좆을 넣어줘.”

“…주인님, 정말로……?”

“어서. 기다리게 하지 말고.”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디트리히가 번개처럼 에르나에게로 달려들었다. 그의 입술이 급하게 에르나의 입술을 찾아들었다. 혀와 혀가 마구 뒤엉켰다. 기교도 유혹도 없는, 그저 그녀의 안으로 파고들고 확인하고 싶은 마음만 가득한 키스였다.

에르나의 옷을 찢듯 벗겨낸 디트리히의 손이 동그란 유방을 꽉 쥐었다. 그의 손 안에서 짜부라드는 가슴이 조금 아파서 그녀는 신음을 흘렸다.

“하으, 아팟…….”

디트리히는 대답할 여유도 없었다. 그의 입술이 에르나의 입술과 코와 뺨, 턱에 몇 번이고 닿았다. 그는 성급하게 에르나의 목선을 깨물며 내려갔다. 그리고 마침내 비어있는 다른 한쪽 가슴의 끝을 베어 물었다. 에르나가 숨을 멈추며 허리를 튕겼다.

빳빳해진 유두를 혀로 굴리다가 그 끝을 혀로 짓눌렀다. 힘 있게 누르는 혀의 감각에 그녀는 연신 헐떡이며 그의 머리카락을 움켜쥘 뿐이었다. 그의 귓가에 맴도는 에르나의 신음은 디트리히를 더욱 흥분으로 몰고 갔다. 그의 숨이 뜨거워졌다.

한참 젖꼭지를 깨물어대던 그는 입 안 가득히 유륜을 베어 물더니 힘껏 빨아 당겼다. 츕츕, 하고 유두를 빠는 소리가 한참 울렸다.

“아, 읏… 좋아, 아……!”

에르나는 자신을 탐하는 디트리히의 몸짓을 마음껏 느끼며 눈을 감았다. 디트리히의 움직임이 조금 더 격렬해졌다. 양 가슴을 손으로 쥔 그는 그것을 밀가루 반죽이라도 되는 듯 멋대로 주물러댔다. 그의 혀가 양쪽 유두를 차례로 길게 핥았다.

그리고 점점 아래로 내려갔다. 납작한 배 곳곳에 입을 맞추던 그는 배꼽 주변을 코로 문질렀다. 부드럽고 따듯한 콧김이 에르나를 간지럽혔다. 피부에 오소소 닭살이 일었다. 짜릿한 감각이 등줄기를 타고 달렸다.

“디트리히… 흐으.”

“주인님만큼, 달콤한 사람은, 하, 없을 거예요.”

“빨리, 어서…….”

에르나는 디트리히의 머리를 위로 끌어당겼다. 그녀도 이제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그녀는 디트리히를 원했다. 그의 등을 회초리로 내리치면서도, 틀어막아 놓은 디트리히의 페니스를 손톱으로 긁어내리면서도, 눈물을 흘리는 그의 눈가에 입을 맞추면서도 원한 건 오직 하나였다.

그와 하나가 되고 싶었다. 디트리히가 자신의 안에 들어와서 엉망으로 휘저어주길 원했다. 원초적이고 가장 본능적인 그 행위 때문에 에르나는 필요 없는 모욕에 떨어야 했고, 디트리히에게 상처를 주고 도망쳐야 했다.

마침내 그 족쇄가 떨어져 나간 뒤에도 에르나는 디트리히와 관계 갖기를 주저했다. 디트리히에게 그것을 쥐여주고 나면, 그가… 더 이상 에르나를 원하지 않게 될까 봐.

하지만 오늘이 마지막이었다. 그녀가 가질 수 있는 것은 디트리히와의 최후의 강렬한 기억 하나뿐이었다.

그녀는 다리를 벌려 디트리히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그의 페니스가 꺼덕대며 에르나의 질구를 찔러댔다. 에르나는 허리를 들어 그의 것을 연신 건드렸다. 디트리히는 이를 악문 채로 무언가 참는 얼굴이었다.

“정말로, 괜찮겠어요?”

그의 물음에 에르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녀의 얼굴에 미묘한 웃음이 어렸다.

“대체 뭘 망설이는 거야?”

“하지만…….”

“디트리히, 우리는 9년을 기다렸잖아. 날… 더 기다리게 하지 마.”

그 말이 시동어라도 된 것처럼, 디트리히도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그의 것이 곧장 안으로 천천히 밀고 들어왔다. 거대한 압박감이 배 속을 짓눌러 대자 에르나가 숨을 멈추고 고개를 젖혔다. 디트리히는 그녀의 가느다란 몸을 꽉 끌어안은 채로 중얼거렸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조금만, 참, 아줘요.”

“하으, 아… 아, 파… 아!”

“조금만, 더…….”

“아, 아앗!”

디트리히의 페니스는 어지간히도 커서, 배가 부풀어 찢어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 묵직한 아픔은 금세 쾌감으로 변환되었다.

디트리히가 느릿하게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허리 짓을 시작한 그의 눈동자에 뜨겁고 끈적한 독점욕이 어렸다. 에르나는 그 눈에 잡아먹힐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래도 좋았다.

그녀는 손을 뻗어 그의 목을 끌어당겨 안았다.

“더, 더 빨리.”

“하아, 급하게 하면, 주인님이 다칠지도 모릅니다.”

“상관없어. 그러니까, 어서…….”

가느다랗게 떨리는 목소리가 그를 재촉해 댔다. 디트리히는 그녀의 목소리에 저항할 힘이 없었다. 이를 악물고 허리를 콱 쳐올렸다.

“하악!”

“읏, 힘… 빼세요…….”

“아, 으아… 아아앙, 아아!”

“으읏, 주인님… 안이 너무 조여…….”

한번 시작하니 디트리히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는 정신없이 제 성기를 에르나의 안으로 박아 넣었다. 그녀를 탐하고 쑤셔 넣고 흔들어대자, 에르나의 내벽이 그를 기다렸다는 듯 물어뜯으며 달라붙었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버려서, 디트리히는 정신없이 허리를 쳐올리기만 했다. 거칠기 짝이 없는 몸짓에 에르나의 몸은 폭풍 속의 연처럼 마구 흔들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트리히를 문 아랫입은 들어온 좆을 놓지 않겠다고 애를 썼다.

페니스가 밖으로 쭉 빠졌다가 안으로 쾅 찧고 들어갔다. 붉은 속살이 그를 따라 빠져나왔다가 밀려 들어갔다. 에르나는 제 안에서 펑펑 터지는 쾌감에 흐느꼈다.

“하앙, 아! 하으윽!”

“주인님, 하, 주인님……. 에르나, 안이 엄청, 조여서, 으윽.”

“디이, 아아, 디트, 흑, 아아!”

앞뒤로 치받던 것이 깊숙한 곳에 머무르며 문지르고 맴돌자, 질척해진 살점들이 찔걱대며 들러붙었다. 체액으로 엉망이 된 음모끼리 엉키고 쓸려댔다.

에르나는 가벼운 절정에 달하며 몸을 떨었다. 그녀의 안이 바들바들 떨리는 걸 느끼며 디트리히는 사정하지 않기 위해 턱에 힘을 주었다. 그의 잇새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이대로 더 에르나를 몰아붙이고 싶었다. 그녀가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박아 넣고, 또 박아 넣고. 그러다가 마침내 에르나가 쾌락에 못 이겨 혼절해 버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그녀를 그대로 제집에 데려다가 놓고, 깨어나면 또다시 집어삼키고, 그녀의 배 안에 자신의 씨물을 잔뜩 먹이고, 배가 부르고 부를 때까지 쏟아붓고 싶었다. 그러다가 화난 그녀에게 혼나고 매도당해도 좋으리라. 아니, 자신의 아이를 가져 배가 불룩하게 나온 에르나에게 채찍질당하는 건 어떨까.

저열하고 더러운 상상으로 가득한 채 디트리히는 계속 제 성기를 흔들었다. 질구에 귀두가 걸리도록 뽑아냈다가 안으로 쑤셔 박았다. 그녀의 내벽은 그가 물러나면 끈적하고 달콤한 시럽처럼 들러붙었다가 다시금 들어서면 또다시 밀어내곤 했다.

디트리히는 제 절정이 그리 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에르나와 함께 절정에 달하고 싶었다. 그의 몸짓이 다급해졌다. 에르나의 두 다리를 어깨에 올린 채로 완전히 찍어 누른 채, 그는 그녀를 꽉 끌어안고 허리를 흔들어댔다.

그의 발치에 조금 전까지 그의 뒤에 달려있던 꼬리가 널브러져 있었다. 꼬리가 없었지만, 디트리히는 자신이 지금 짐승 같은 꼴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디트리히를 끌어안은 채 에르나가 헐떡이며 그를 불렀다.

“디이, 디트리히…….”

“네, 에르나…….”

“내가, 널 사랑하나 봐.”

생각하지도 못한 말에 디트리히의 눈이 동그래졌다. 심지어 그의 움직임조차 멈추었다. 자신이 들은 말을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는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방금, 뭐라고…….”

“사랑해, 디트리히.”

그 순간 팍, 하고 안으로 다시금 치받는 페니스에 에르나는 숨이 막히는 소리를 냈다. 자궁 안쪽까지 치닫는 듯한 감각에 에르나는 억억대며 그의 등에 손톱을 세웠다.

“아, 제길……. 에르나. 다시 말해줘요.”

“사랑, 해……. 아흐윽! 아! 아앙!”

“또 말해줘요. 날 보고 말해주세요. 제발, 에르나. 한 번만 더.”

디트리히는 환희에 차서 연신 그녀에게 조르고 또 졸랐다. 우는 듯 웃는 듯 괴이한 얼굴을 하고 그는 계속 애걸했다. 디트리히의 아래에서 끈 떨어진 인형처럼 흔들리는 에르나는 그가 원하는 대로 계속 대답해 주었다. 사랑해, 사랑한다고.

자신을 향해 예쁜 말을 내뱉는 에르나의 입술에 디트리히는 자신의 입술을 깊이 파묻었다. 두 사람의 숨이 짙게 합해졌다. 맞닿은 가슴에서 심장 박동이 하나로 어우러졌다. 두 사람의 입에서는 더 이상 신음도, 교성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핑 도는 머리를 느끼며 에르나는 디트리히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그런 그녀의 귀에 디트리히는 마치 주술이라도 거는 것처럼 속삭였다.

“사랑해요. 사랑해. 처음 본 순간부터 계속 사랑했어요. 나한테는 당신밖에 없어요. 에르나. 영원히 내 것이 되어주세요. 내 주인이 되어줘요…….”

이대로 그의 부탁을 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서 그녀는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었다.

맞닿은 부분에서 타오르는 불꽃을 몸속 깊이 새기고 싶어서 에르나는 더욱 디트리히에게 바짝 매달렸다. 그에게 모든 것을 내맡긴 채로, 그녀는 끝을 알 수 없는 무저갱 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마침내 절정에 다다랐을 때, 에르나는 눈물을 흘리고 말았던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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