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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6. 영원 (79/79)

외전 6. 영원

수도에 위치한 라스페가 저택. 봄을 맞아 옅은 푸른색으로 치장해 둔 집무실에 정적을 깨는 소음이 들렸다.

책상에 앉아 서류를 살피던 에드문트가 소리의 출처를 바라보았다. 복도로 향하는 손잡이가 덜거덕거리는 걸 보니 문 너머에 누가 있을지는 뻔했다. 제 딴에는 소리 내지 않고 몰래 열겠다고 아등바등하는 걸 테지.

그래서 에드문트는, 들어오라는 말 대신 이미 다 읽은 서류로 눈을 돌렸다.

곧 문이 살짝 열리더니 도톰하게 깔아 둔 융단 위로 옷감 스치는 소리가 요란했다. 그 소리들을 숨기는 걸 돕고자 에드문트가 일부러 요란하게 종이를 넘겼다.

“아야.”

‘콩’ 하는 작은 소리와 함께 확실한 인기척이 들리고 난 뒤에야 에드문트가 읽는 척 들고 있던 서류를 내렸다. 책상 반대편에는 집무실에 몰래 들어온 손님이 담장 너머를 구경하듯 에드문트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비죽 올라온 눈동자를 뒤늦게 발견한 척 놀라는 연기를 하니 상대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꽃피길 바라며.

그의 바람대로 연푸른빛 눈동자를 담은 아이의 얼굴에 웃음이 피어났다. 저를 열심히 쫓아다니던 엘리아의 어린 시절을 그려 놓은 듯했다.

작은 입술이 열리어 낸 소리마저 ‘에디’라고 부르던 그 시절 목소리를 떠올리게 했으니.

“아빠.”

사랑스러웠다. 다른 감상을 떠올리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내가 아빠 놀라게 했다. 그치.”

“응, 언제 왔어?”

“방금 전에 열었는데 몰랐지? 이제 소리 안 내고 열 수 있어. 레니 경이 열어 준 거 아니야, 진짜로!”

아이는 제 할 말 다 끝내고는 책상을 빙 둘러 뛰어 에드문트를 향해 뛰어왔다. 에드문트는 의자를 뒤로 밀어 앉아 아이를 품에 받아 냈다.

“방금 왔어. 아빠가 갑자기 보고 싶어져서.”

에드문트는 아이의 다정한 말에 입 맞추어 화답했다. 통통한 얼굴에 입술이 닿으니 아이가 장난친답시고 제 얼굴을 양껏 비비었다. 곧 다섯 살이 될 아이에게서 지금껏 어디서 놀다 왔는지가 가늠되는 향이 배어 나풀거렸다.

아침부터 집무실에만 있었던 에드문트는 아이가 담아 온 흔적들을 하나씩 살피며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냈을지 가늠해 보았다.

밝은 금발에 따스한 햇볕이 있는 걸 보면 정원에 나가 사용인들의 아이들과 숨바꼭질을 하고 놀았으리라. 입가에 식당에 준비해 두었을 달콤한 과자 향이 묻어 있는 걸 보니, 신나게 뛰어놀다 배가 고파져 간식을 달라 집사에게 엉기었겠지.

덕분에 구태여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프지 않고, 씩씩하게 하루를 보냈으리라는 걸.

“오늘은 뭐 하고 지냈는지 말해 줄래?”

하나 에드문트는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재미있게 놀다 왔다는 말을 직접 듣는 기쁨을 알았기에.

“알았어. 여기 앉아서 이야기해 줄까? 근데 나는 저기 소파도 좋은데.”

에드문트는 아이를 번쩍 안아 들고는 소파로 자리를 옮겨 주었다. 아이는 에드문트의 다리를 베고 누워선 낮에 무얼 했는지를 조잘조잘 이야기했다. 로앙 백작가의 기사, 테오 경과 위겐 부인의 딸 루이즈가 아이의 놀이 상대였다고 했다.

“아빠, 근데 아빠도 엄마 많이 보고 싶어?”

에드문트가 나뭇가지를 주워 기사들을 흉내 내고 놀았다는 이야기를 경청하던 중이었다. 아이가 불쑥 엄마 이야기를 꺼냈다.

라스페 공작가에는 현재 에드문트와 아이, 둘뿐이었다. 엘리아는 백작이 된 뒤로 1년에 한 번씩 영지에 내려가야 했고, 이번에는 특히 그 기간이 길어 벌써 한 달째 부재중이었다.

“루이즈가 그러는데 유모가 테오 경 보고 싶어서 쪼끔 울었대. 그래서 전에 엄마가 일하러 가기 전에 나한테 했던 말이 생각났어.”

“무슨 말이었는데?”

“엄마가 뭐랬냐면, 아빠가 엄마 보고 싶어서 울지도 모르니까 매일 안아 주라고 했어. 그래서 내가 아침마다 아빠 안아 줬잖아. 아빠 나 덕분에 안 울지?”

아이가 기대감에 가득 차 물었다. 에드문트는 엘리아가 로앙가 영지로 떠나기 전 아이를 앉혀 두고 전했을 말을 짐작해 보며 미소 지었다.

“그러네. 매일 보고 싶었는데, 매일 안아 준 덕분에 외롭지 않았어.”

원하는 대답을 들은 아이가 좋다며 소파에 누운 채로 꼬물거렸다. 혹여 아이가 바닥으로 떨어질까 싶어 옳게 앉혀 주니, 작은 몸이 에드문트의 옆구리에 파고들어 덥석 안겨 왔다.

“아빠, 우리 엄마 생각난 김에 엄마 방 잘 있는지 보러 갈까? 같이 가 줄게.”

“엄마 방에 가고 싶어?”

“으응, 아빠가 가고 싶을까 봐 그러지.”

시침 떼어 봐야 아이의 속내가 무엇인지는 뻔히 보였다. 예전에 에드문트가 엘리아의 성년 선물을 가득 채워 보여 주었던 방에 들어가고 싶다는 말이었다.

에드문트는 잠시 고민했다. 뭐든 해 주고야 싶지만, 말썽꾸러기 아이는 이제 겨우 다섯 살이면서도 사고 친 전적이 많이 쌓여 있었다.

그중 하나는 엘리아의 옛 방에 있는 물건들을 구경한답시고 장식장에 매달렸다가 크게 다칠 뻔한 일이었다. 당시 옆에 있던 에드문트가 넘어지던 장식장을 몸을 던져 막아 내지 않았더라면, 아이가 깔려 크게 다칠 뻔했던 아찔한 순간이었다.

엘리아는 뒤늦게 사고 소식을 전해 듣고선 방문을 잠그고, 아이 혼자서는 절대 들어갈 수 없도록 조처했다.

그럴수록 아이는 더욱 방 안에 들어가고 싶어 했다. 이제는 유행 지난 물건들이 가득한 곳일 뿐인데도. 제 어머니가 사랑하는 곳이 궁금한지 자주 이렇게 들어가고 싶다 조르곤 했다.

“이번엔 진짜 보기만 할게. 응? 눈으로 구경하기로 약속할게요.”

안 쓰는 경어까지 쓰며 부탁하니 에드문트로서는 도리가 없었다. 엘리아를 닮은, 그리고 조금은 저를 닮기도 한 아이를 그대로 안아 들고 2층으로 향했다.

“아빠. 내가 못 참을 수도 있으니까, 그러니까 나 잘 잡고 있어. 알았지?”

호기심에 손 뻗고 싶은 걸 꾹 참고 눈으로만 보겠다는 아이가 대견했다. 에드문트는 아이가 방 안을 구경하기 편하도록 자세를 잡아 주었다. 그의 팔을 의자 삼아 걸터앉은 아이가 손가락으로 방 안 이곳저곳을 가리켰다.

선물했던 꽃 중 가장 예쁜 걸 골라 남겨 둔다고 하나씩 묘사해 둔 그림, 임신한 동안 누워 낮잠을 자곤 했던 커다란 쿠션, 가을이 다가오거든 꺼내어 덮던 남부산 모포, 벌써 촉을 열두 번은 넘게 바꾸어 쓰다 이제는 장식용으로 남겨 둔 펜…….

아이는 에드문트가 자리를 조금씩 옮겨 줄 때마다 손가락으로 그가 엘리아를 위해 준비했던 선물을 가리켰다. 그러고는 그에게 들었던, 혹은 엘리아가 알려 주었던 이야기를 제 입으로 전달해 주었다.

“이거는 엄마가 아빠한테 편지 쓸 때만 쓰는 펜이라고 했어. 그치?”

때론 그조차 모르는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그는 엘리아가 제가 선물한 펜으로 처음 적어 주었던 편지를 떠올렸다.

<사랑해, 에디. 나는 더는 시간이 두렵지 않아.

1분이 흐르고, 10분이 지나 찾아오는 건 불확실한 미래가 아닌 내가 너를 가장 많이 사랑하는 순간이 될 거야.

어제보다 더 가득한, 내일이 되면 더욱 깊어질 사랑을 네게 고백할게.

네 긴 삶 속에서, 나의 온 생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네가 아니었던 날이 단 하루도 존재하지 않음을 부디 알아주기를.>

에드문트는 그날 새벽에 했던 것처럼 엘리아의 고백을 다시금 곱씹었다. 한 장을 가득 채웠던 그때의 편지는 이제 함께한 세월만큼 가득 쌓여 집무실 서랍을 가득 채울 정도였다.

손이 탈 때마다 닳는 게 아까워 내용만 떠올리곤 했는데. 오늘 아이를 재우고 나면 오랜만에 꺼내 보아야지.

“아빠, 왜 갑자기 뽀뽀해?”

“펜 이야기 알려 줘서, 고맙다고 인사하고 싶어서.”

“헤헤.”

에드문트가 아이를 추어 안아 통통한 볼에 얼굴을 맞댔다. 고맙다는 말에 아이도 그의 목을 끌어안고 얼굴을 비비었다.

두 사람이 그렇게 서로 애정을 나누다가, 너른 창을 죽 따라 걸어 오르골 앞에 도착했다. 어느새 수백 가지로 늘어난 오르골 앞에서 아이가 반짝반짝 눈을 빛냈다.

“아빠는 여기서 뭐가 제일 좋댔지?”

에드문트는 백 번을 물으면 백 번을 같은 답을 할 거면서, 고민하는 척하다가 세 번째 칸에 있는 매를 가리켰다. 엘리아가 제게 처음 선물해 준 오르골이었다.

“나한테도 물어봐. 여기에서 뭐가 제일 좋은지 질문해 줘.”

“음. 제일 좋아하는 오르골 알려 줄래?”

아이는 원하는 대로 질문해 준 아버지를 향해 씩 웃더니 에드문트의 볼에 쪽 소리 나게 입을 맞췄다. 그러고는 맑은 눈동자 안에 에드문트를 담았다.

“나는 여기에서 아빠를 제일 사랑해.”

“……오르골보다 더?”

“응, 제일 많이.”

푸른 하늘에 비친, 서른셋이 된 남자가 기쁘게 웃음 지었다. 아이의 둥근 이마에 입술을 눌러 마음을 표현했다.

이 작은 몸에, 겨우 다섯 살 난 아이가 품은 사랑이 어찌나 깊은지. 또 어찌나 아름다운지. 입술이 닿는 곳마다 자신의 마음까지 일렁였다.

아이가 제 간절한 사랑의 결실이기 때문일까. 죽음의 끝에 마침내 꽃 피운 사랑에 맺혀 이리도 아름답고 귀한 걸까.

“니클라스.”

그가 엘리아가 아닌 다른 이들을 사랑할 수 있음을 알려 주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아이는 온 힘을 다해 그를 사랑해 주었다. 그리하여 에드문트 역시,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인생을 상상할 수가 없었다.

사랑을 모르던 시절 에드문트의 모습을, 아이는 알지 못했다.

“아빠도, 그리고 엄마도. 여기 있는 오르골을 전부 다 합친 것보다, 너를 훨씬 더 많이 좋아해.”

“으응. 좋아하는 거 말고. 사랑해야지. 왜냐면 나는 엄마랑 아빠를 사랑하는데 좋아하기만 하면 안 되잖아.”

저를 사랑해 달라고 하는 아이를 에드문트가 품에 더 가깝게 끌어안았다. 그러고는, 아이를 처음 만났던 순간부터 품었던 마음을 표현해 주었다.

“사랑해. 아주 많이.”

“엄마 보고 싶어도 참아. 이제 몇 밤 안 남았잖아. 그치.”

“응, 울지 않고 잘 참을게.”

체온을 나누고, 서로의 마음을 보듬으면 금방 또 하루가 지나갔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였으니. 사랑을 기다리는 것 또한 이전만큼 어렵지 않았다.

* * *

엘리아는 돌아오기로 약속한 날보다 하루 늦게 에드문트와 아이의 곁으로 돌아왔다.

“엄마, 엄마아…….”

“니클라스, 아빠랑 잘 지냈어? 어휴. 엄마가 늦게 와서 미안해.”

아이가 가장 먼저 달려가 엘리아를 차지했다. 의연한 척했지만 겨우 다섯 살. 한 달간 얼굴 못 본 엄마를 안고 얼마나 울던지. 엄마에게 보여 주겠다고 방에 가득 펼쳐 둔 편지, 그리고 공부한 흔적을 자랑도 못 하고 지쳐 잠들어 버렸다.

“어쩌지? 니클라스가 점점 나 닮으려나 봐. 이렇게 눈물 많은 줄 몰랐네.”

엘리아는 제 품에 안겨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보듬어 주었다. 저 닮아서 어쩌나 말은 걱정하듯 했지만, 감정 표현 많은 아이가 늘 고마웠다.

제가 없는 틈에 에드문트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가득 해 주었을 테니까.

아이를 달래 주느라 아직 옷도 갈아입지 못한 엘리아를 위해, 에드문트가 잠든 아이를 직접 방으로 데려다주고 돌아왔다. 엘리아는 아이를 에드문트에게 안겨 주고 나서야 겨우 겉옷을 벗고 소파에 푹 기대어 앉았다.

장장 1주일하고도 이틀을 더 마차에서 보냈으니, 더는 체력이 남아 있질 않았다. 따듯한 물에 몸을 풀고 싶다는 욕구와, 이대로 잠들어 버리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던 엘리아가 눈을 감아 버렸다.

“으음.”

“그대로 있어. 옮겨 줄 테니까.”

선잠이 든 걸 깨운 이는 에드문트였다. 조심스럽게 엘리아를 안아 든 그가 욕실로 향했다. 문이 열리고, 목욕 준비를 마친 사용인들이 자리를 비워 주는 소리가 들렸다.

곧, 욕실 한편에 준비된 기다란 의자에 엘리아의 등이 닿았다. 피곤한 탓에 잠에서 깨고도 좀체 눈뜨기가 힘들었다. 에드문트도 구태여 엘리아를 깨우지 않고 제 할 일을 했다.

커다란 손이 엘리아를 감싼 옷을 하나씩 풀어 나갔다. 목 끝까지 잠근 단추를 하나씩 벌려 속옷만 남으니 욕실에 가득한 눅눅한 온기가 맨살에 파고들었다.

비몽사몽한 와중에 느껴진 감각에 엘리아가 천천히 눈꺼풀을 올릴 때였다.

시선이, 닿을 줄은 몰랐는데. 제 옷을 풀어 주던 에드문트가 실은 내내 제가 눈떠 주길 바랐던 거였는지. 해가 떠난 하늘처럼 짙은 푸른빛이 엘리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몽롱하게 뜬 눈으로 그의 눈 너머로 비치는 열기를 감상했다.

그리웠다. 아이의 맑은 목소리만큼이나, 만나지 못한 지난 시간 내내 에드문트가 가슴에 사무친 탓에. 이제 자연스러워진 그의 미소, 목소리.

조금도 시들지 않는, 저를 향한 열망까지.

“에디, 나…….”

그리웠노라 말하려 했는데. 엘리아가 깨어났음을 확인한 에드문트가 곧장 입술을 겹쳐 왔다. 아이를 다독이느라 바빴던 여자가 겨우 그의 차지가 되었으니, 남은 옷을 풀어내리는 손이 갈급히 움직였다. 뽀얗게 습기 찬 욕실에 입 맞추는 소리가 울렸다.

엘리아가 숨이 가빠 손을 달싹인 뒤에야 에드문트가 입술을 놓아 주었다. 그러나 겨우 멀어진 입술이 다시 입가에 닿아 오더니 아래로 미끄러졌다. 다시 더운 숨이 터져 나왔다.

“흐으, 보고 싶었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말해 줘. 보고 싶었다고.”

말할 틈도 없이 저를 몰아붙여 놓고선 뻔뻔하기도 하지. 엘리아가 겨우 숨을 고르곤 에드문트를 흘겨보자, 그는 웃으며 엘리아에게 다시 입을 맞추었다.

옅은 입맞춤을 이어 가면서도 그는 제 할 일을 잊지 않았다. 따듯한 물에 적신 수건으로 엘리아의 몸을 닦아 주고, 체온이 떨어지지 않도록 곧장 욕조로 자리를 옮겼다.

잔잔하던 목욕물이 찰랑거리며 두 사람을 반겼다. 커다란 욕조는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도 충분할 정도였지만 에드문트는 엘리아를 더욱 바짝 끌어안았다.

역시나. 따듯한 물에 들어온 엘리아의 몸이 금세 흐물거리며 에드문트의 품을 필요로 했다. 팔을 둘러 단단히 잡아 주니 엘리아가 그에게 완전히 몸을 맡긴 채 진한 한숨을 흘렸다.

욕조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쉼 없이 엘리아를 달뜨게 하던 에드문트의 손은 이제 미동조차 없었다. 두 사람의 심장 뛰는 소리, 그리고 욕조에 맺힌 물방울 톡톡 떨어지는 소리만 남아 고요했다.

홀로 지새우던 밤이 길었으니 엘리아는 적막함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대로 에드문트를 남겨 두고 잠들어 버리는 대신 입 열어 졸음을 쫓아냈다.

빈 곳을 제 마음으로 가득 채워 보려 했다.

“에디, 나 사실 많이 후회했어. 떠나던 날 마차 출발하자마자…… 당신이랑, 니클라스 두고 혼자 영지에 내려가기로 했던 거. 정말 많이 후회되더라.”

장거리 여행을 힘들어하는 아이에게 미안해 홀로 내려가겠다 했던 건데. 저 하나만 태우고 구르기 시작하는 마차 안에서 얼마나 서럽던지. 외롭던지.

외젠과 데이지를 만나면 잠시나마 잊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고모님, 저도 니클라스 공자가 많이 보고 싶어요. 내년에는 꼭 같이 와 주세요.>

온몸으로 두고 온 가족을 그리워하고 말아, 이제 여덟 살 된 조카아이까지 저를 위로해 주려 하더라.

“보고 싶어서, 많이 후회했어.”

엘리아는 물기를 눅진히 머금은 손으로 에드문트를 어루만졌다. 남자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스물두 살 때와 다를 바가 없었다. 시간이 감히 훔쳐 가지 못할 아름다움이 전신에 흘러넘쳤다.

그러나 변한 것도 있었다.

“엘리, 나도 그랬어. 너 혼자 보낸 걸 많이 후회했어.”

그리워 후회했노라는 에드문트의 목소리는 더할 나위 없이 다정했고, 미소는 황홀했다. 이제 그는 누군가를 의식적으로 흉내 내지 않고도 웃을 줄 알고, 다정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연말에 영지에 내려갈 때는 함께 가자. 니클라스에게도 그편이 훨씬 좋을 거야.”

에드문트는 제 턱 언저리에 멈춰 있던 엘리아의 손에 입을 맞추었다. 손끝 하나하나에 맺히는 입맞춤이 아슬아슬하게 경계를 오갈 뿐, 수위를 넘지 않았다.

채 다 풀어내지 못한 열망은 아마 제가 잠든 뒤 홀로 감내할 생각이리라.

“괜찮아?”

더 보듬고, 돌아왔다는 걸 실감하고 싶은 마음을 채워 주고 싶었다. 오는 도중에 비가 많이 와서 하루를 지체하지 않았더라면……. 그럼 이 순간 마음껏 그에게 입 맞추고 끌어안을 체력을 남겨 둘 수 있었을 텐데.

“괜찮아. 내일도 있으니까.”

“내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안 봐주겠다는 것처럼 들리네.”

맞닿은 몸 너머로 잔잔한 웃음소리가 넘어왔다. 에드문트가 조금씩 미끄러져 내려가던 엘리아의 몸을 다시 추슬러 안았다. 좀 더 바짝, 심장이 맞닿을 때까지.

“내일 아침에 니클라스에게 검술 가르쳐 주기로 했어.”

“검술을 가르친다고?”

이번에는 엘리아의 몸이 웃음소리와 함께 들썩였다. 혹여 아이가 벌써 부담을 느낄까 봐 뭐든 가르치는 걸 주저했으면서. 검술 가르쳐 준다는 핑계로 실컷 놀게 하곤 일찍 잠들게 할 속셈이 빤히 보였다.

“그럼 나는?”

“아침에 안 깨울 테니까 푹 자 둬.”

에드문트의 흑심 어린 말이 부끄러울 법도 한데, 엘리아는 변함없었다. 살짝 식은 물을 찰박거리며 엘리아가 자세를 바꾸었다. 그의 어깨를 짚은 채 몸을 일으키니 그럭저럭 에드문트와 시선이 비슷해졌다.

“에드문트.”

무릎걸음으로 다가가 그의 아랫입술을 물었다. 자연히 두 사람의 심장이 맞닿았다.

“내일 아주 늦게까지 푹 자려면, 나도 당신 필요한데…….”

겹쳐진 입술 틈새로 웃음이 흘렀다.

그리고 웃음이 끝나자 물소리가 거세어졌다.

식은 물을 대신할, 열기가 두 사람에게서 퍼져 나갔다.

* * *

엘리아가 에드문트의 품에 안겨 침실로 돌아온 건 새벽 해가 뜨기 직전이 되어서였다. 수건으로 머리를 꼼꼼히 말리고, 침대에 눕혀 이불을 덮어 줄 때까지 엘리아는 뒤척임 한번 보이질 않았다.

지칠 때까지 몸을 겹쳐 서로를 쉼 없이 확인했으면서, 엘리아가 침대에 누운 모습을 보고서야 이별이 끝났다는 게 실감이 났다.

엘리아가 스물여덟을 넘기면 불안감도 전부 끝날 줄 알았건만. 사랑이 끝나지 않는 한, 눈에 잠시라도 보이지 않으면 그립고 염려되는 마음은 끝나지 않을 모양이었다.

그래도 처음이었다. 한 달이 넘도록 엘리아와 멀어져 있었는데도, 그는 환각에 휘말리지 않았다.

전부 엘리아의 노력 덕분이었다.

그는 침대에 걸터앉은 채 스물아홉이 된 엘리아를 내려다보았다. 시간이 두고 간 아름다움이 차곡차곡 쌓여, 어느 한 곳 모자람 없이 찬란했다.

그러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스물아홉이라는 숫자는 에드문트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스물아홉의 엘리아를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었기에.

혹여 같은 시간, 같은 방식으로 아내를 잃게 되는 건 아닐까. 그런 지독한 운명이 제게 징벌처럼 내리진 않을까 두려웠다.

엘리아가 스물여덟 번째 생일을 지나 보내고, 스물아홉 번째 생일을 앞둔 가을이 가까워질수록 공포심은 커져만 갔다.

급기야 죽은 엘리아가 이혼 서류를 남기고 떠났던 그날을 한 달 앞두고, 완치된 줄 알았던 불안 증세가 다시금 그를 잠식했다.

<에드문트. 당신을 떠날…….>

환각을 시작으로, 엘리아와 함께 잠들고서도 악몽을 꾸었다. 간신히 잠에서 깨어나고도 귓가에 비명이 맺혀 잠들 때까지 이명을 겪었다.

에드문트는 엘리아를 힘껏 끌어안고 환청을 견뎠다. 다신, 제게 돌아오지 않겠다는 아픈 말을 어떻게든 외면하고 싶어서.

그러나 사흘이 지나도 과거의 기억은 선명해질 뿐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에드문트가 엘리아에게 자신의 증세를 고백했다.

엘리아는 눈가를 붉게 물들인 채 그를 있는 힘껏 끌어안아 주었다.

<내일까지도 말 안 하면, 나 정말 화내려고 했어.>

에드문트와 눈이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남자의 아픔이 다시 시작되었다는 것을. 분명 그때의 이별이 반복될까 봐 두려운 탓에.

그가 스스로 손 뻗어 도움 요청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결단은, 두 사람 모두에게 잔인하고도 고통스러웠다. 하나 엘리아도, 에드문트도 결국 훌륭히 극복했다.

<아무 걱정 하지 마. 절대로 당신 떠나지 않을 거야.>

엘리아는 그날 바로 자신과 에드문트의 외부 일정을 모조리 취소했다. 부부가 갑자기 일정을 줄이자 사람들이 너나없이 호기심을 드러냈다.

<크게 두 분께 해가 될 만한 소문이 퍼지진 않았습니다. 대부분은 백작님께서 둘째를 가지신 게 아니냐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보좌관 루카스가 소문을 핑계로 넌지시 연유를 물었을 때, 엘리아는 그저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에드문트의 비밀을 아는 한스는 마치 예상하고 있었던 것처럼 그들의 칩거를 도왔다.

<가을 말까지의 일정을 모두 정리하고, 저택 내부 호위를 늘리겠습니다.>

그리고 벨젠 경은, 갑작스러운 호위 요구에도 군말 없이 따랐다.

<제 목숨을 걸고, 세 분을 안전히 지켜 드리겠습니다.>

이미 복수는 모두 끝난 뒤였지만, 라스페 공작가의 기사들은 크라우제 후작이 살아 있을 때보다 신경을 곤두세워 에드문트와 엘리아, 그리고 니클라스를 보호했다.

<엄마, 왜 어제도 오늘도 밖에 안 나가?>

<우리 니클라스랑 아빠랑 같이 있고 싶어서.>

마차 사용을 최소화하니 자연스레 세 식구가 저택 밖을 나설 일이 사라졌다. 손님은 신원이 확실한 이들만 골라 받았고, 식사 전 독을 감별하는 절차도 더욱 강화되었다.

<엘리, 내가 따로 지내는 편이 낫지 않을까.>

<아니, 절대 당신 혼자 두지 않을 거야. 아이도 당신에게 힘이 되어 줄 거야.>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에드문트는 혹여 제가 정신이 나가 두 사람을 해칠까 봐 두려워해야만 했다.

<괜찮아. 괜찮아 에드문트. 나 여기 있어. 당신 절대 떠나지 않아. 다시는 떠나지 않기로 약속했으니까. 오늘보다 내일 더 많이 사랑하기로 맹세했잖아.>

그럴 때마다 엘리아가 그를 힘껏 끌어안았다. 악몽이 두려워 본능적으로 잠을 피하는 그를 밤새 보듬고, 또 사랑한다고 말해 주었다.

또 엘리아의 말대로, 에드문트가 괴로워할 때마다 아이의 목소리가 힘이 되어 주었다.

<아빠. 아빠아.>

네 살에 접어든 아이는 에드문트의 낯선 모습에도 무섭단 소리 한번 하지 않았다. 작은 손으로 저도 같이 안아 달라며 에드문트에게 거리낌 없이 엉기었고, 때론 엘리아보다 먼저 그의 증세를 발견하고는 두 손으로 그의 팔을 꼭 붙들었다.

<아빠, 아프지 마. 아프면 안 돼.>

두 사람에게 기대어 에드문트는 다행히 사고 없이 첫 1주일을 버텼다.

<햇빛을 보는 게 도움이 될 겁니다.>

의원의 제안으로 둘째 주에는 셋이 함께 정원을 거닐었다. 아직 푸르른 정원 사이사이를 아이가 부지런히 뛰어다녔다.

<이거 봐! 나뭇잎에 가을이 이만큼 왔어. 여기 노란색이 끝까지 오면 엄마 생일 되는 거야. 그치?>

넘어지고, 새로운 놀잇감을 발견해 기뻐하고, 손 닿지 않는 곳에 핀 꽃이 갖고 싶다고 엉엉 울기도 하고. 바쁘게 뛰어노는 아이를 지켜보느라 에드문트와 엘리아는 시간 가는 걸 잊었다.

<낮에는 들리지 않았다니, 효과가 있는 것 같아. 그치?>

셋째 주에는 사랑하는 이들을 저택에 초대했다. 첫날에는 한스 경, 테오 경과 벨젠 경이 모처럼 각자의 가족을 데려와 저택이 떠들썩했다. 니클라스는 한스의 딸, 그리고 벨젠 경의 아들과 함께 해가 질 때까지 정원에서 뛰어놀았다.

에드문트는 그날 내내 엘리아의 손을 잡고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옛날 생각이 났어.>

<옛날?>

<우리가 아주 어렸을 적에. 가끔 네가 오는 날에 나가지 않고 3층 창가에서 네가 노는 걸 내려다보곤 했거든.>

<아마 그때 나 당신 부르고 싶어서 일부러 재미있는 척 놀았을 거야. 아주 어렸을 때부터 당신은 내 눈에 너무 예뻤는걸.>

악몽 때문에 쉽게 잠들지 못하는 에드문트를 위해, 엘리아가 나란히 누워 함께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엘리, 너는 그 어리던 시절부터 내게 특별했어.>

에드문트는 먼저 까무룩 잠이 든 엘리아에게 속삭였다. 그를 불안케 하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엘리아가 잠들기 전 말해 준 이야기들을 곱씹으며 아침을 기다렸다.

그렇게, 하루를 또 무사히 넘겼다.

다음 날에는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외젠과 데이지가 로앙 백작령에서 올가를 데리고 며칠간 공작가에 머물기로 했다.

<두 분 모두 한 달 동안 쉬기로 하셨다면서요? 이런 기회가 흔치 않을 것 같아서 저희도 일정 전부 미뤄 두고 왔어요.>

외젠은 원하는 대로 여러 귀족가의 후원을 받는 화가가 되었고, 데이지는 최근 중남부 학술원에서 작은 강의 하나를 맡아 무엇 하나 부족함 없이 지내고 있었다.

엘리아와 에드문트가 아니었더라면 체념하고 살았을 꿈 같은 삶이었다.

그만큼 외젠은 제 몫을 넘겨받아 바쁠 엘리아가 늘 신경 쓰였다. 아무리 자신들이 영지에 살며 일을 돕는다고 해도 뭐든 더 도와주고 싶은 마음만 간절했다. 그래서 엘리아에게서 수도에 올라와 달라는 편지를 받자마자 망설임 없이 짐을 챙겼다.

<엘리 네가 이렇게나 바쁘게 살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 니클라스도 우리한테 맡겨 두고 편히 쉬어.>

외젠과 데이지가 와 준 덕분에 엘리아는 안심하고 에드문트에게만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다. 단둘이서 서로를 바라보다가, 문득 떠오르는 옛 기억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풍족한 시간이었다.

<따듯한 물에 몸을 푹 담그고 나와서, 한 시간만 잠들어 보자. 당신 깨울 때 벨젠 경과 같이 있을 테니까 무슨 일 생길까 봐 걱정하지 말고.>

악몽을 피할 방법을 같이 고민해 보기도 했다. 이틀에 걸친 여러 시도 끝에, 약의 도움을 받아 짧게 잠드는 방식이 효과적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제 수면 시간이 부족해 증세가 악화되는 걸 막을 수 있었으니 큰 장애물을 넘긴 셈이었다.

그 다음 날부터는 평상시처럼 일상생활이 가능해졌다. 다 함께 둘러앉아 아침을 먹고, 가득 쌓인 서류 중 몇 개에 손을 대기도 했다. 서류에 쓰인 날짜, 그리고 내용을 통해 새삼 이전 생의 마지막 날이 지척에 다가왔음을 실감했다.

<에디, 내가 그날을 당신 생에서 다섯 번째로 행복한 날로 만들어 줄게.>

<다섯 번째?>

<당신이 처음으로 내게 선물을 준 날, 호수에 다녀왔던 날, 내가 당신에게 청혼한 날……. 그리고 우리 아이가 태어난 날. 그다음이 이번 가을이 될 거야.>

엘리아는 에드문트의 행복한 날에 전부 자신을 끼워 넣었다.

자신의 생 가장 소중한 순간에 에드문트가 존재하듯, 그의 가장 찬란한 순간에도 자신이 있었음을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좋은 아침입니다, 공작님. 오늘 아이들과 그림을 그릴까 하는데 공작님께서도 한번 그려 보시겠습니까? 어릴 적 실력 생각하면 잘하실 것 같은데요.>

외젠은 평화를 되찾은 에드문트의 하루를 그림으로 가득 채워 주었다. 에드문트는 아이들과 함께 캔버스 앞에 앉아 그림을 배웠다. 실상 그가 외젠의 시범을 한 번 보더니 단숨에 똑같이 흉내 내는 바람에, 배울 것도 없었다.

<아빠, 나는 새 그려 줘. 그리고 토끼도!>

옆에서 구경하던 엘리아가 사용인들에게 커다란 캔버스를 꺼내 오도록 지시했다. 아이들은 제 키보다 한참 큰 캔버스에 좋아하는 것들을 가득 채웠다.

<한스 경! 한스 경도 와서 그려요. 네?>

아래층에서 일하다 구경 온 한스도 도련님 채근에 어설프게나마 사슴 그림을 하나 그려 넣었다. 엘리아와 데이지도 조금씩 거들어 두 식구가 함께 하루도 다 끝나지 않아 그림을 완성했다.

<에디, 좀 쉴까?>

간혹 힘든 순간이 오기도 했다. 함께 있음에도 이별로 고통받는 것이 어리석다는 걸 알면서도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으니까.

그가 과거에 겪었던 이별이 소리가 되어, 희뿌연 형상이 되어 자꾸만 그의 곁에 나타났기에.

하지만 그럴 때마다 엘리아가 그를 불러 주었다. 새카만 굴 속의 한 줄기 빛 같았다. 사방에서 들리는 메아리에 헤매던 에드문트를 밖으로 이끌어 주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엘리아 역시 힘이 들었을 텐데도 그에게는 내색 한번 하지 않아서.

<손잡고 있어도 될까.>

에드문트도 버틸 수 있었다.

외젠과 데이지가 떠나기 전 마지막 날에는 저택에 그들이 믿고 초대할 수 있는 사람들을 모두 불렀다.

엘리아는 그들을 옷 방으로 이끌어 사람들에게 가장 화려하고 우스꽝스러운 옷을 찾아올 것을 주문했다. 다섯 명의 아이들이 쪼르르 앉아 1등을 뽑았다.

자신의 옷장임에도 무슨 옷이 있는지 모르는 엘리아는 그럭저럭 평범하다는 평가를 들었고, 데이지는 때론 지는 싸움도 할 줄 알아야 한다며 무난한 옷을 골라 엘리아의 야유를 들었다. 승자는 의외로 가장 열의를 보인 테오 경의 아내, 위겐 부인이 차지했다.

<우리 엄마가 제일 웃겨!>

승리의 기쁨도 잠시 부상으로 엘리아가 입은 드레스를 선물하겠다고 하는 바람에, 위겐 부인은 그날 온종일 골칫덩어리 드레스를 어떻게 처분해야 할지 고민해야 했다.

여자들끼리 벌인 경쟁이 한참 웃음을 몰고 온 반면, 남자들의 경쟁은 장기 자랑으로 변질되었다. 한스는 촉감만으로 가장 비싼 옷을 골라내는 묘기를 선보였으며, 테오 경은 사람들이 크라바트를 독특한 방식으로 묶어 한 손으로 푸는 걸 신기해하자 즉석 강습에 나섰다.

<어, 어떻게 미안해…….>

손재주 없는 엘리아가 에드문트의 목에 연습하다가 그만 그의 목을 조를 뻔해 한바탕 난리가 나기도 했다.

그리고 에드문트는, 무얼 어떻게 입혀도 그럭저럭 잘 어울리는 바람에 사람들의 호승심을 자극했다. 데이지가 회심의 역작이라며 딱 붙는 가죽 바지와 소매가 풍성한 블라우스로 도전했지만, 에드문트가 입으니 우습기는커녕 잘 어울리기만 했다.

<있잖아, 에디. 사람들 다 가면 내 옷 한 번만 입어 봐 주면 안 돼?>

에드문트는 엘리아가 농담한다고 생각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엘리아는 매우 진지한 태도로 제 옷 중 그에게 맞을 만한 옷을 찾겠다고 옷장을 뒤집었다.

<한데 엘리아 님, 저희 무슨 준비를 한다고 이곳에 모이지 않았던가요?>

호위를 겸하느라 아이들의 옆에서 구경꾼 노릇을 하던 벨젠 경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엘리아는 그제야 본 목적을 까맣게 잊었다는 걸 깨달았다.

<오르골 틀어 놓고 연회 때처럼 춤추려고 했는데. 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아서…… 근데 우리끼리 더 신나서 애들 생각도 못 했네.>

어느새 밤이 깊어 저들끼리 놀던 아이들이 소파에 누워 잠들어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엉망진창으로 옷을 입은 어른들끼리만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누며 마지막 날의 아쉬움을 달랬다.

물론 엘리아는 틈틈이 에드문트와 눈을 마주치며 아픈 곳 없는지를 살폈다. 한 손에는 각자 좋아하는 포도주를, 다른 한 손으로는 서로의 손을 잡은 채.

다들 ‘아직도 그리 서로 좋으시냐.’라고 놀려도 자리가 끝날 때까지 엘리아는 에드문트와 떨어지지 않았다.

* * *

<엘리아 님, 생일 미리 축하드려요.>

마지막 날. 데이지가 로앙 영지로 돌아가는 마차에 오르기 전 이른 생일 축하 인사를 전했다. 스물아홉을 앞두고도 여전히 제게는 한 아이의 어머니가 아닌, 자신의 첫 아이로 느껴지는 엘리아를 위하여.

<두 분, 무슨 일이 생겨도 무사히 이겨 내실 수 있길 바라요.>

마음을 가득 담아 기원해 주었다. 말하지 않아도 제 고민을 알아준 데이지의 다정한 위로에 엘리아의 눈에 물기가 맺혔다.

<응, 그럴게. 고마워 데이지.>

사람들을 함께 배웅하던 니클라스도 에드문트의 품에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 마차 바퀴가 굴러 떠나자마자 서럽게 울고 말았다.

온 얼굴로 슬픔을 표현하는 아이의 모습에 가슴이 아팠다. 그리워하는 그 마음만은 누구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었기에.

<곧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

<벌써 보고 싶은데……. 왜 다들 가 버리는 거야?>

에드문트는 아이를 다독여 주고 싶었지만, 저에게도 늘 버겁기만 한 이별을 아이에게 이해시켜 주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아빠가 같이 기다려 줄게.>

<그럼 아빠도 없으면?>

울먹거리는 아이의 목소리가 그의 감정까지 파도치게 했다.

그러게. 사랑하는 아이의 곁에, 소중한 사람 하나 없으면 많이 슬플 텐데. 저 역시 언제고 아이가 행복하기만을 바라고 또 바라거늘.

외로우면 어쩌나. 그래서 네가 아프면 마음이 찢어질 텐데.

그때 엘리아가 에드문트와 아이에게 다가왔다. 답을 찾지 못해 서로를 꼭 끌어안고 있던 두 사람을 두 팔 벌려 안아 주었다.

<언제나 곁에 있을 거야. 잠시 헤어져 있더라도 엄마랑 아빠가 늘 너를 생각할 거니까. 함께 보낸 시간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지 않을 테니까.>

엘리아는 아이와 에드문트를 달래 주었다. 그러고는 두 사람을 이끌고 저택 1층으로 향했다. 복도에는 언제 걸어 두었는지, 지난번 외젠 가족과 함께 채운 캔버스가 벽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거 봐. 우리 같이 그림 그리던 거 하나도 안 도망가고 여기 있잖아. 어디 보자, 여기 있는 커다란 새는 누가 그렸을까?>

<내가 그렸어! 그리고 여기 사슴은 올가랑 같이 그렸어.>

아이는 손으로 캔버스를 콕콕 찍어 함께 그린 추억을 생각해 내느라 보고 싶다 울었던 건 금방 잊어버렸다. 엘리아와 에드문트가 한참 캔버스 앞에서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 주었다.

그 후, 늦은 저녁이 되어 잠자리에 들 때까지 에드문트는 엘리아의 말을 곱씹었다. 이따금 저를 부르는 환청을…… 떠나온 여자의 남은 흔적을 마주하면서.

<엘리.>

그는 잠이 든 아이를 유모에게 맡긴 뒤 엘리아를 불렀다. 스물여덟의 여자가 저를 돌아봐 주었다.

이제 나이로 구분 지을 수 없게 된 자신의 연인. 아내. 사랑.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이 그림 속에, 너를 닮은 아이에게, 편지 속에 남겨져 있어도. 무엇도 널 대신할 수 없어.>

그는 어떻게 생각해 봐도 제 인생의 비극에 이별 이상을 떠올릴 수가 없었다. 이별을 만남으로, 순간을 영원으로 치환할 수만 있다면.

전부 줘 버릴 텐데. 그렇게라도 확신받고 싶거늘.

<너를 잃고 싶지 않아. 잃고선 살 수가 없어. 결국 나는 영원을 이루고야 말 거야. 네가 내 곁에 존재하는 시간만큼을 영원 삼아서.>

어쩔 수 없었다. 에드문트는 엘리아가 존재하지 않는 시간을 버텨 낼 수 없을 테고, 당장 내일이 되었든, 10년 뒤이든 상실한 순간 제 삶을 끝내 단 한순간도 홀로 남지 않을 터였다.

과오를 반복할 제게 죽음이 다시 벌을 준다고 할지라도.

<에디. 에드문트.>

여전히 애칭으로 자신을 불러 주는 현실의 여자가 그를 어루만졌다. 저 없이 단 하루도 살지 않겠다는 남자가 애틋하여, 또한 안쓰러워서.

눈으로, 귀로, 붉은 입술로 저를 실감케 했다. 하여 에드문트가 눈으로, 소리로, 따듯한 숨결로 엘리아를 느꼈다. 잃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나도 그래. 때론 삶이 너무도 버겁기까지 해. 어느 누구도 우리의 내일을 보장해 주지 않을 때, 확신할 수 없을 때. 사랑하지 않았다면 그저 흘려보냈을 시간이 너무나 절박해서.>

엘리아의 입술이 뺨을 스치고, 목선을 따라 조금씩 내려왔다. 새하얀 가운을 살짝 젖혀 쇄골에 입 맞추고…….

심장에 닿았다. 이미 한 번 상처 입은 곳에. 어쩌면 기어코 저를 잃은 남자의 검이 다시 파고들 자리를 붉은 입술로 꾹 눌렀다. 아직 흐르지 않는 피를 지혈하듯.

<하지만 에디. 너무 두려워하지 마. 당신의 곁에서 영원을 아주 오랫동안 지켜 줄게. 그리고 내가 없는 순간을 잠시도 버티지 않겠다면, 강제하지 않을게. 혹여 죽음이 나를 너무 일찍 데려가려 한다면…….>

엘리아는 심장에서 입술을 떼어 에드문트를 바라보았다.

<다시 내게 와. 내 생의 어떤 순간에 당신이 찾아오더라도 결국 당신을 사랑할 테니까. 당신의 세 번째, 네 번째 삶까지 전부 나로 채워 줄게.>

그날, 에드문트는 잠들 때까지 엘리아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다.

<내가 당신에게 유일하듯, 에드문트. 제멋대로 애칭을 부르던 아주 어린 시절부터, 네가 내게 유일했어.>

엘리아 역시 제 스물여덟 해의 생을 잘게 쪼개어 매 순간순간 그를 의식하고, 기어코 마음에 담았음을 알게 해 주었다.

* * *

1주일 뒤. 세찬 가을비가 내렸다. 에드문트가 엘리아를 잃었던 날을 재현하듯.

가을 색 완연한 나뭇잎마다 빗방울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환청과 섞여 그날의 기억을 생생하게 되살렸다.

<에디.>

스물여덟의 여자가, 남자를 불렀다. 그때는 듣지 못했던 애칭으로. 딱딱한 어조로 이별을 고하는 환청을 덮으려 했다.

<같이 집무실에 가자. 괜찮을 거야.>

엘리아는 에드문트를 이끌고 여자가 이별을 고했던 장소로 향했다.

커튼을 반만 쳐 둔 창가, 펜 한 자루와 서류 한 통만 놓여 있는 책상. 그때와 다르지 않은 광경을 본 에드문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손등을 쓸어 그를 도닥여 준 뒤, 함께 창문 앞에 서서 커튼을 걷었다.

<뭐가 보여?>

<……마차가 있어.>

에드문트의 눈동자가 떨리더니 뿌옇게 김 서린 창문 한편을 응시했다. 구석진 곳은 아직 매끈하여 그럭저럭 밖을 볼 수가 있었다.

하면 시선이 닿은 곳은 어디이던가. 엘리아는 에드문트를 바라보느라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정말 창밖에 마차 한 대가 비를 쫄딱 맞고 있을지도.

그곳에, 이혼 서류를 두고 떠나려던 스물여덟의 여자가…… 있을지도.

에드문트의 손이 그때처럼 창문을 짚었다. 톡톡, 빗방울 부딪히는 진동이 그의 손에 맺혔다. 적어도 그때처럼 내리는 이 비는 현실이었으니.

달려 나가면, 그럼 잡을 수 있을까. 과거에 잃어버린 여자를 구할 수 있을까.

수백 번, 제게 허락된 시간을 모조리 그 가정에 쏟아부었던 때가 있었다.

결국 집무실을 떠나지 못하고선 이혼 서류를 서랍에 밀어 넣었을 때, 사고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시신으로 돌아온 여자를 목도했을 때.

떠나던 마차를 붙들지 못한 걸 죽을 만큼 후회했었다.

그러나 마차가 실재하던가, 이 희뿌연 창 너머로 그가 본 것은 정말 죽음을 향해 달려갈 스물여덟의 여자이던가.

<또 다른 건? 나는 당신을 보고 있느라 볼 수가 없어. 그러니 나 대신 확인해 줘. 우리 아이가 언젠가 올라가고 싶어 하는 커다란 나무가 보여?>

에디는 엘리아의 부탁에 창문 너머를 응시했다. 희뿌연 창밖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마차 한 대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내가 말하는 나무, 언제 심었던 건지 기억나?>

<……네가 스무 살일 때. 로앙가에서 옮겨 심어 왔지.>

<맞아. 자리 잡아 주지 못할까 봐 많이 걱정했는데, 다음 해에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잖아.>

<그랬지.>

<내가 아이 가졌을 때 다른 좋은 곳 두고는 굳이 저 나무 아래에서 낮잠 자고 싶다고 졸랐던 것도 기억나지? 막상 누워 보니까 벌레도 많고, 나뭇잎 틈새로 햇빛이 들어와서 한잠도 못 자긴 했지만.>

<네가 푹 잔 줄 알았는데. 불편해한 줄 몰랐어.>

<당신이 준비해 주고, 나 재운다고 고생한 거 미안해서. 그래서 눈 꾹 감고 자는 척했지. 그러고는 다시는 나무 밑에서 낮잠 자고 싶단 말 안 꺼냈잖아?>

<음.>

<근데 가끔 그런 생각 들어. 니클라스가 배 속에서 그때 일을 기억해서 저 나무를 각별히 좋아하는 건 아닐까? 나 그때 결국 낮잠은 못 잤지만, 행복했거든.>

창밖을 향하던 에드문트의 얼굴이 옆으로, 그리고 아래로 죽 떨어졌다. 스물여덟의 엘리아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왼손에 깍지를 끼더니 그대로 자신의 얼굴에 가져다 대었다. 손에 온기가 가득 넘쳐흘렀다.

에드문트는 다시 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김 서린 창을 짚어 미끄러트렸다. 그의 손이 지난 곳에 투명한 유리가 드러났다.

<엘리.>

보이지 않았다.

<보여. 저기에 있어.>

기억이 다시 데리고 갔는지, 다가오던 죽음이 타고 떠났는지.

<우리 아이가 좋아하는 나무. 여기에서 아주 잘 보여.>

마차는 사라지고, 그가 새로이 일군 삶이 녹아 있는 정원만 남아 있었다.

행복만 남아 있었다.

<또 뭐가 보여?>

<네가 열여덟 때 심었던 꽃나무도 잘 보여.>

<벌써 꽃이 몇 송이 피었을 거야. 내일 비 그치거든 보러 가자.>

<그래. 그러자.>

정원에 있는 나무를 전부 헤아릴 때까지 에드문트가 창밖을 바라보며 추억을 함께 이야기했다. 엘리아가 품에 기대어 그의 눈에 비친 풍경을 머릿속에서 그려 냈다.

<에디, 책상 위에 내가 올려 둔 거 아직 못 봤지? 지금 확인해 봐.>

이혼 서류가 놓여 있던 자리에 올려져 있던 건 엘리아가 쓴 편지였다. 이별을 고하는 서명 대신, 사랑한다는 마음이 가득 담겨 있었다. 에드문트는 감사의 인사로 엘리아에게 입을 맞추었다.

편지를 보관하기 위해 서랍을 열었는데, 커다란 서랍 두 개에 엘리아의 편지가 가득 차 넣을 자리가 없었다.

<우리, 오늘 밤에 이거 꺼내서 같이 읽어 볼까?>

두 사람은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수백 통에 이르는 편지를 꺼내 하나씩 읽어 보았다. 갑작스러운 초대에 응하겠다 보냈던 엘리아의 답신을 시작으로, 세월이 지나 색 바랜 푸른 편지 봉투, 지금 보니 퍽 어설픈 보고서…… 그리고 그리움을 가득 담아 보냈던 스물세 통의 편지들.

이제는 웃으며 말할 수 있는 추억들을 하나씩 넘기다 보니, 밤이 깊어 있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편지에 빠져 있던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네. 자정이 넘었어.>

<그러네. 하루가 지나갔네.>

혹여 다시 이별이 찾아올까 봐 두려웠던 하루가 지나갔다.

이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과거가 되었다.

에드문트가 먼저 손을 뻗자, 엘리아가 웃으며 그의 품에 파고들었다. 환각으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따스한 체온이 그의 심장에 닿았다.

괜찮은지 물어보고,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두 사람 모두 먹먹한 감정에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이 마음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한참을 고민하던 에드문트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엘리아.>

다시 한 번. 이번에는 시선을 맞춘 채.

긴 시간을 지나와 마침내 만난 스물여덟의 여자에게, 서른둘의 남자가…….

<엘리아, 사랑해. 영원토록.>

반복된 시간을 지나와 서로에게 처음이 될 고백을 전했다.

<오늘의 너를 만나기 위해 먼 길을 돌아왔어. 너를 위해 죽어서도 죽지 못해 다시 살았어. 엘리. 엘리아.>

이제 그는 더는 애칭으로, 이름으로 여자를 구분 지을 필요가 없었다.

열여덟, 열아홉……. 스물일곱. 그리고 스물여덟의 어느 가을날을 두 번씩 지나 보내어 이제 제 인생에 단 하나뿐인 엘리아와 조우했으니.

<에디, 사랑해. 영원토록 네 곁에 있을게.>

그날을 마지막으로 에드문트를 괴롭히던 두려움이 사라졌다.

오직 엘리이고, 엘리아인 사랑만 그의 곁에 남았다.

* * *

“으음…… 당신 안 잤어?”

아침 해가 어슴푸레 뜰 때 즈음, 엘리아가 몸을 뒤척이더니 천천히 눈을 떴다. 밤새도록 엘리아의 곁에 깨어 있던 에드문트가 아침 인사를 건넸다. 이마에 한 번, 그리고 졸음이 묻어 있는 눈가에 한 번.

“잠이 안 와서. 좀 더 자. 아직 피곤하잖아.”

“음……. 옆에 누워서 안아 주면 다시 잘 수 있을 것 같기도 해.”

배시시 웃으며 그에게 팔 뻗는 여자는 스물아홉이었다. 그리고 기꺼이 옆에 누워 엘리아를 끌어안은 에드문트는 서른셋.

두 사람은 이제 매일 단 한 번도 겪어 본 적 없는 날을 살아간다.

“엘리아.”

“으음.”

“엘리.”

“한 번 더 불러 줘.”

“어느 쪽으로?”

한때는 어색했고, 유일한 자신인 적도 있었던 애칭. 그리고 제 이름임에도 낯선 사람에게 빼앗긴 것만 같았던 이름.

둘 중 무얼 원하느냐는 질문에 엘리아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무엇이든, 당신이 좋아하는 거로.”

에드문트가 엘리아의 대답을 듣더니 소리 내 웃었다. 그리고 바짝 끌어안은 엘리아의 귓가에 입을 맞추며 이름을 불렀다.

간질간질한 감각에 웃음이 터지는 바람에 그의 목소리가 제 웃음소리 뒤에 숨어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아무 상관 없었다. 아무래도 좋았다.

엘리아였거나, 엘리였거나. 둘 중 무엇이었든, 자신임을 의심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바라던 대로 그의 유일한 사람이 되어, 사랑할 것이기에.

영원토록.

행복으로 가득할 우리의 삶이 끝날 때까지.

나만 모르는 이야기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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