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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나만 모르는 이야기 (70/79)

70. 나만 모르는 이야기

“에디, 뭘 비밀로 하려고 했던 거야?”

저열한 침묵을 강요받던 중 끼어든 목소리에, 한스가 먼저 정신 차렸다.

어디서부터 들었을까.

남자의 구차한 애원을 들었을까. 스스로를 비참하다고 규정하는 자기 비하를 하는 모습을, 보았을까.

‘제기랄, 다시 환각을 보시는 것 같은데. 또 눈앞에 아가씨를 두고 죽었느니 착각하면…….’

한스는 공작이 엘리아와 대화 나누기를 원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좋지 않았다. 일단 예고도 없이 마주친 두 사람을 진정시키는 게 우선이었다.

“엘리아 아가씨, 그게 그러니까 공작님께서 깨어나신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러나 엘리아는 한스의 시도를 가차 없이 끊어 냈다.

“한스, 나가요. 에디가 괜찮아진 것 같으니 이야기 나눠야겠어요.”

고집을 부려 봐야 한스가 엘리아를 이길 수는 없었으니, 그는 침통한 표정으로 문을 향해 몸을 돌렸다.

엘리아는 한스가 방을 나서자마자 문을 닫았다. 쫓겨난 한스가 무어라 하는 소리가 잠시 들렸지만, 닫아 버린 문이 소리를 막아 버렸다.

엘리아는 한스와 에드문트가 나눈 대화를 듣지는 못했지만, 그가 저를 쫓아내려고 했다는 것 정도는 눈치껏 알 수 있었다.

엘리아에겐 장장 열흘 만에 처음 온 기회였다. 절대로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비록, 당장 무슨 말을 꺼내 그와 대화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울지라도 말이다.

“에디, 있잖아. 그러니까…….”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더라. 분명 깨어나거든 해 주리라 결심한 말이 있었는데.

실은 매일 그가 눈을 뜨면 건네 왔는데.

‘아. 맞다. 좋은 꿈 꾸었느냐고…… 물어보려고 했지.’

그럼 에드문트가 ‘따듯한 꿈 꾸었다.’라는 대답을 해 주길 바라면서.

언젠간 엘리아가 아닌 엘리라는 이름을 부르며 대답해 줄 거라고 기대하며 열흘 내내 연습하는 척 말을 걸었다.

“보고 싶었어.”

그러나 엘리아는 당장 솟구친 감정에 굴복하고 말았다. 보고 싶었다 고백했다.

비록 열흘간 곁에 있었지만, 때로는 대화를 나누기도 했지만 에드문트에게 그 상대는 진짜 자신이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엘리아는 에드문트와 지금 막 만난 것처럼 인사했다.

“보고 싶었어. 정말로.”

몸이 절로 움직였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그를 끌어안고 싶다는 욕망, 반대로 자제해야 한다는 이성이 뒤엉겨 다리가 멋대로 휘청거렸다.

바보 같은 꼴로 그와의 거리를 좁혀 갔다.

에드문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다가오는 엘리아를 바라보기만 했다.

‘여전히 환각을 보고 있는 걸까. 더 가까이 가면, 그럼 알 수 있으려나.’

이제 두 사람 사이에는 누군가 마음만 먹으면 쉽게 좁힐 수 있는 짧은 간격만이 남았다. 엘리아는 에드문트의 표정을 살피며 한 걸음씩 보탰다.

융단이 집어삼킨 발소리를 대신하듯, 그가 입을 열어 소리 냈다.

“……엘리.”

다만 입술만 겨우 살짝 달싹여 내뱉은 바람에 엘리아에게 확신을 주지 못했다. 다시, 검푸른 가운을 향해 한 걸음 더 내디뎠다.

“엘리.”

그제야 에드문트가 좀 더 또렷하게 엘리아를 불렀다.

까슬까슬한 목소리는, 글로 옮겨 적으면 사방으로 잉크가 번져 뾰족한 가시가 맺힌 듯 보이리라.

“안녕, 에디.”

긴 기다림 끝에 찾아온 초여름. 공작가의 창문 없는 방에서 다시 인사했다.

“네가 정말 많이 보고 싶었어.”

드디어, 엘리아가 기다리던 연인을 만났다.

* * *

엘리아는 매일 상상했다. 늘 좌절의 연속이었지만 다음 날은 인사 나눌 수 있길 바라며 버텨 왔다. 에드문트와 눈을 맞춘 채 인사할 때 어떤 기분일지, 또 그는 어떻게 반응해 줄지를 그려 보곤 했다.

그 숱한 상상들 속에 존재했을까.

남자가 입을 다문 채 움직이지 않는 모습을 하고, 저 혼자 애끓어 한 걸음 한 걸음 좁혀 가다 위압감에 멈추어 버려야 하는…….

그런 재회를 상상해 본 적이 있었을까.

엘리아는 고개를 바짝 들어 에드문트의 얼굴을 살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을 아무리 바라본들 반가움을 찾을 수는 없었다.

되레 달갑지 않아 하는 거부감만 꽉 채워져 있었다.

엘리아가 두 걸음을 남겨 두고 멈춰 서자 그제야 그가 경직되었던 몸에 힘을 풀 수 있었다.

안도감이었다.

“미안해, 엘리. 걱정했다고 들었어. 좀……. 일이 있었어.”

이내 어설픈 변명으로 엘리아를 밀어냈다. 멈추어 선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에디.”

“로앙에 돌아가. 벨젠 경이 데려다줄 거야.”

기껏 남자가 엘리아를 애칭으로 불렀으나, 엘리아는 도저히 기뻐할 수가 없었다. 저를 앞에 두고 명백히 피하려 들었으니까.

“왜. 왜 내가 여기 있으면 안 되는데? 왜 너는 여태 아팠던 건데?”

“나중에 설명할게, 엘리.”

“집사가 죽은 것 때문에?”

에드문트는 곧장 움찔하며 반응을 보였다. 엘리아가 그조차 잠시 잊고 있던 상처를 들추어내려 들었으니까.

“집사 일, 언제 알려 주려고 했어? 영원히 말 안 할 생각이었어? 왜, 내가 죄책감에 말라 버릴까 봐? 아니면, 내가 바보같이 누가 죽는다는 소리에 비실대는 한심한 애라서? 내가…….”

보고 싶다고 했는데 대꾸 한 번 없고, 심지어 저를 거부하고 피하려고만 했으니 괜찮을 리 없었다. 뾰족한 어투가 처음으로 에드문트를 향해 왔다.

그러더니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겨우 어깨에 오는 얼굴이 감정을 삭이느라, 참아야 한다고 스스로를 억누르고 또 억눌렀다.

“……후우.”

손에 얼굴을 묻고, 간신히 감정을 추스른 엘리아가 사과를 건넸다.

“미안해, 에디. 그게……. 유감이야. 좋은 사람이었는데. 내가, 진작 찾아왔어야 했는데. 그에게 용서를 빌었어야 했는데.”

“…….”

“장례는 네 뜻대로 일단 미뤄 두었어. 그렇지만 날이 너무 더워지기 전에 치르는 게 좋을 것 같아. 마음이 많이 아프겠지만, 보내 줘야……. 아니, 미안해. 이런 이야기를 하려던 게 아닌데.”

초조한 마음이 제멋대로 장례식이니 하는 이야기까지 꺼내게 했다. 뒤늦게 수습하려 했는데 도통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차분하게 그의 상태를 살피고, 따듯하게 안아 준 뒤 그를 위로해 줄 생각이었다. 아마 저를 미덥지 않다 여길 에드문트에게 실은 저도 아무것도 모르는 게 아니라고, 알려 주고 싶었다.

“그러니까, 내가 하려던 말은…… 전에 네가 로앙가에 왔을 때 말했잖아.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엘리.”

간신히 주섬주섬 꺼내 올리는 말을 에드문트가 중단시켰다. 엘리아의 얼굴이 금방 붉게 달아올랐다. 더듬거리던 스스로의 꼴이 창피한 나머지.

“미안해.”

에드문트는 당장이라도 등 돌려 외면하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참았다. 의무처럼 몸에 박인 다정한 연인 행세를 했다.

“열흘이나 이곳에 있었다고 들었어. 로앙 백작도 염려할 테니 저택에 돌아가.”

“아니, 나는 괜찮으니까 우리 이야기 좀 해. 응? 우리 대화 한번 못 했잖아…….”

“나중에.”

“나중이라니 대체……. 에디!”

애탄 설득에도 에드문트는 엘리아를 지나쳐 문을 향해 걸었다. 누구든 밖에 있는 사람을 시켜 엘리아를 내보낼 작정이었다.

엘리아가 급히 그의 팔을 붙잡았다. 그러자…….

“읏.”

진청색 가운이 줄 부드러운 감촉을 느낄 새도 없이, 아릿한 통증에 신음했다.

두 사람의 시선이 한곳으로 향했다.

가운을 붙잡았던 엘리아의 팔, 그 위에 붉은 자국이 생겼다. 에드문트가 팔을 잡고 뿌리치며 남긴 흔적이었다.

에드문트의 얼굴이 굳어졌다. 발갛게 흔적이 남은 엘리아의 팔과 달리 제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일방적인 폭력이었다. 비록 무의식중에 저지른 행위였지만.

“내가…… 미안해.”

그는 벨젠 경을 불러내려던 생각은 까맣게 잊은 채, 스스로를 뒤로 물러 엘리아에게서 떼어 내려 했다. 그러자 엘리아가 뒷걸음질 치는 그의 가운을 급히 붙잡았다.

몸에 닿는 감각에 하마터면 또다시 밀쳐 낼 뻔했다. 간신히, 아까처럼 뿌리치지 않고 버텼다.

“에디, 나 괜찮아. 안 아파. 정말이야. 내가 멋대로 붙잡아서, 놀라게 해서 미안해. 응? 그러니까…….”

“미안해. 미안해, 엘리아.”

엘리아는 밀어내지 않은 걸 허락으로 생각했는지 가운을 붙든 손에 힘을 실었다. 절벽을 기어오르는 짐승처럼 팔에 엉겨 붙었다. 엘리아의 몸이 중심을 잃고 휘청이는 것까지 고스란히 느껴졌다.

허리를 끌어안아 잡아 주자, 그의 팔에 엘리아가 더욱 절박하게 매달렸다. 그러더니…….

“왜 다시 엘리아라고 불러?”

대신 에드문트를 휘청이게 했다.

“엘리라고 불러 줘. 나도 에디라고 불렀잖아. 그러니까, 나 불러 줘.”

엘리아는 넘어질 뻔한 일 따위는 상관하지 않았다. 그저 에드문트를 붙잡고 호소하기에 바빴다. 애칭을 불러 달라고 요구해 왔다.

에드문트가 그런 엘리아의 반응을 이해하는 데에는 다소 시간이 걸렸다.

“엘리아 말고, 다른 사람 말고.”

그리고 애칭에 집착하는 태도에 위화감을 느끼자마자, 엘리아가 덧붙였다.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을 불러 달라고. 네가 ‘엘리아’라 부르던 여자는 저와 다른 사람이 아니냐고.

“나 알고 있었단 말이야. 네가 나한테 엘리아라고 부를 때, 그게 내가 아닌 것 같다고 계속 느껴 왔어. 그리고 네가 아픈 와중에 계속 나를 엘리아라고만 불러서, 나는…….”

저도 뒤늦게야 알았던, 언제부턴가 어린 연인과 죽은 아내를 구별하여 불러 왔음을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는 고백을 듣는 순간, 힘겹게 끌어안고 있던 평정심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에드문트는 눈을 감았다.

‘열흘이나 곁에 있었다니, 아마 눈치챌 거라고 각오하긴 했지만…….’

제가 미쳐 버린 꼴을 전부 알 거라고 짐작은 했다. 하지만 각오를 했다고 엘리아의 말로 듣는 게 괜찮아지진 않더라.

비참함이 그를 꿰뚫어 바닥에 고정했다. 비극의 전리품으로 박제되었다.

“에디, 보고 싶었어. 너무 보고 싶었어. 이렇게 네가 나를 엘리라고 불러 주고, 바라봐 주는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

그를 올려다보는 엘리아의 눈동자를, 그 안에 슬픔이 고이는 광경을 강제로 눈에 담았다. 나뭇가지에 꿰인 사체 꼴인 에드문트는 지켜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설령 그가 자유로운들 닿을 수 없는, 노을이 붉게 타올랐다.

“에디 너는 괜찮았어? 아니잖아. 괜찮지 않았잖아.”

아. 늘 아름다운 노을처럼, 가을에 필 꽃처럼 보였는데.

어째서일까. 해가 죽어 가며 피를 흩뿌린 흔적처럼 보였다. 바닥이 없는 아래로 추락하는 꽃의 마지막을 연상케 했다.

어쩌면 내내 착각해 온 게 아닐까.

“나는 네가 보고 싶어서…… 너무 힘들 땐 오르골을 바라봤어. 너라고 여기고 사랑한다고 매일 이야기했어. 그러다가 정말 미칠 것 같아서 밖으로 뛰쳐나가 네가 있을 곳을 한참 보다가 돌아와야 했어. 에디.”

여자는 애달픈 사랑을 말하는데, 남자는 눈가에 있는 붉은 흔적이 퍼지는 길을 좇았다. 의심으로까지 번져 나갔다.

<에드문트, 당신은 불길이야. 모두 집어삼켜 버려. 내 사랑마저 집어삼켜 버리곤, 되돌려 주지를 않아.>

불길이었던가.

나를 태울 불길이 네 얼굴에 비치는 모습이었는데……. 주홍빛 꽃이 핀다고 착각하고, 사랑이라 여겼던 건 아니었을까?

“에디, 나 좀 봐 줘.”

엘리아는 그의 시선이 저를 비켜 간 걸 눈치채고선 손을 뻗었다. 도망갈 수가 없었다. 허리를 붙든 손을 풀었다간 엘리아를 놓치게 될 테니까.

그를 제 몸을 인질로 결박해 두었으니, 엘리아는 마음껏 손을 뻗어 남자의 뺨을 어루만졌다. 안쓰러울 정도로 마른 얼굴을 타고 올라가 마른 눈 아래를 쓸었다.

“에디…….”

남자는 이 비참한 순간에도 욕정을 느꼈다.

떨리는 여자의 목소리 때문에. 어우러진 손길 탓에. 살점이 떨어져 나올 듯 짙은 체온 때문에.

아니, 그저 제가 추한 탓이었다.

“에디. 나, 이름 불러 주면 안 될까?”

견뎌 보려 했다. 숨이 막혀 죽는 한이 있어도 목구멍에 처넣고 감추고 싶었다. 이 저열한 욕망을, 너는 전부 다 알 거라고 착각하겠지만 결국 아무것도 모를 테니까.

“에디. 에드문트. 말, 제발 말 좀 해. 뭐라도 좋으니까…….”

엘리아는 기어코 화를 냈다. 아무런 답을 주지 않는 남자를 원망했다.

미끄러진 엘리아의 손이 그의 팔을 잡고 아우성쳤다. 그마저도 음욕을 일게 했다.

“나한테 왜 말을 안 해 주는 건데. 이제 내가, 싫어? 좋아한 적이 없었어? 전부 기만이었던 거야? 아니잖아. 그런 거 아니잖아. 사랑한다고, 나 사랑한다고 네가 분명 말했는데, 내가 분명 들었는데…….”

그리고, 물에 흠뻑 빠져 어눌한 비명은 환청을 닮았더라. 현실이 아닌 곳에서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제발, 에디. 제발 말 좀…….”

원망을 토하는 여자를 내려다보던, 남자의 눈이 점점 어두워졌다. 좋아한 적이 없었느냐는, 전부 기만이고 거짓이었냐는 투정을 먹고 몸집을 불렸다.

“……네가 싫어졌냐고.”

굴에 박혀 있던 괴물이 좁아터진 인내를 뚫고 나왔다.

지금이라도 다시 다정한 연인인 척 군다면 여자를 속일 수 있으리라. 나도 네가 너무 그리웠고 보고 싶었다고, 사랑해 달라고 속삭이면 여자는 당장 남자를 품어 주리라.

하지만 잠시뿐이리라. 여자는 다시 알아챌 것이다.

<어차피 아름다운 건 잠시뿐이잖아요. 결국, 다 시들어 버릴 텐데.>

왜냐하면, 영원한 건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그리하여 에드문트는 전부, 전부 버리고 말았다.

당장 지척에 있는 침대에 밀어 넣어 눈가를 짓씹고, 혀를 얽고, 목덜미에 이를 박아 넣고 싶은 충동을. 터지는 숨소리마저 전부 집어삼켜 가며 탐하고자 하는 이 욕망을.

네가 막힌 입 안으로 비명을 지르건, 이름을 부르건 개의치 않은 채 내 욕구만 채우면 그만일, 불길 같은 감정이 전부임을. 숨기기를 포기했다.

다정하지 않은 목소리, 살갑지 않은 얼굴…….

“좋아한 적이 없었느냐고. 엘리, 알려 줄까.”

여자의 동공이 흔들렸다.

“내가 너를 얼마나 욕망하는지, 어린 너는 이해하지도 못할 텐데.”

사랑받기 위한 기만을. 남을 흉내 낸 거울이나 다름없는 제 껍데기를 걷어 내자 언어에는 높낮이가 사라졌다. 붉은 눈물을 흩뿌리는 여자를 보면서도 연민하기를 잊었다.

감정이라곤 단 하나.

“감히 네가, 감당할 수도 없을 텐데.”

전부 집어삼킬 줄만 아는, 지독한 소유욕만 남았다.

* * *

에드문트 라스페는 무언가를 지극히 욕망해 본 적이 없었다.

공작가의 후계자라는 혈통과 함께 부와 권력이 이미 태어난 보상으로 모두 주어졌기에 그는 원하는 게 없었고, 그리하여 감정을 학습할 기회도 없었다.

욕망이 없으니 결핍을 몰랐다. 성취에 무심해 기쁨을 배우지 못했으며, 실패한 적 없었기에 좌절을, 상실을 깨치지 못하였다.

하면 사랑은 어떻던가. 그의 가족이 주지 않은 사랑을 엘리아가 가르쳐 주었다. 그러나 피차 사랑에 무지했던 남녀는 애정을 주고받는 행위에 서툴기 그지없었다.

처음 자각한 사랑이 소유욕을, 욕정을 불러일으키자 에드문트는 주저하지 않고 탐닉했다. 그의 사랑이 고팠던 엘리아는 에드문트의 모든 행위가 사랑이길 바라며 전부 받아들였다.

한번 비틀린 사랑은 교정되지 못한 채 악화되기만 했다. 권력 투쟁이 이어지며 에드문트는 오직 엘리아를 보호해야 한다는 강박에만 집중했다. 그가 떠난 자리를 홀로 지켜야 했던 엘리아는 인내와 체념만을 키워야만 했다.

<당신을 사랑했어. 사랑했는데…….>

결국 그들의 사랑은 허망하게 끝나고 말았다. 남겨진 에드문트는 후회와 슬픔에 더불어 결핍과 좌절, 상실을 강제로 학습했다.

그리고 두 번째 기회는 성취와 기쁨을, 그를 목마르게 하는 욕망을 가르쳤다.

<엘리, 네가 보고 싶었어.>

뒤늦게 깨친 감정들이 그를 충동질했다. 어린 엘리아를 완전히 소유하기 위해 연극까지 불사하게 했다.

종래에는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사랑받기 위해서 거짓이 진짜가 되길 바라기까지 했다. 조금이라도 끔찍하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어 연인의 앞에서 늘 인내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이제, 에드문트는 어린 엘리아만을 위해 존재했던 인내심을 전부 놓아 버렸다.

허리를 감고 있던 팔을 바짝 끌어왔다. 배려 없이 잡아챈 몸이 휘청이며 안겨 왔다.

“에, 에디……?”

제 앞에서 다 자란 척을 하지만, 이렇게 품에 안겨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을 보일 때마다 자각한다.

아직 덜 여물었고, 저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여자라는 걸.

이 어린 여자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왜 두려워할 줄 모르냐는 말에 무섭지 않다고 호기롭게 굴었다.

엘리아에게 자신은 스물두 살이며, 다정한 타인을 흉내 내던 누군가였을 테니까. 그러니 무섭지 않았겠지.

“에디, 숨…… 숨 막혀. 조금만.”

약해질 대로 약해진 몸이었지만 엘리아를 품에 가두는 건 어렵지 않았다. 배려 없이 끌어당기기만 하자, 엘리아는 불편을 호소하더니 스스로 에드문트의 목에 팔을 감았다.

안정감을 누릴 틈을 주지 않고 입술을 내렸다. 놀라서 커다랗게 떠진 눈 아래, 두 사람의 붉은 입술이 맞붙었다.

“입.”

가깝게 붙어 서로의 시야를 잠식한 눈동자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와중에 에드문트가 각도를 달리해 입술을 깊게 눌렀다.

“열어.”

예고 없는 접촉에 놀랐지만, 엘리아는 입술이 주는 감촉에 저항할 수가 없었다. 주홍빛 눈동자에 그를 밀어낸다는 선택지가 서서히 사라져 갔다.

에드문트가 아직 열리지 않은 입술을 진득하게 훑어 남은 망설임을 덜어 내는 걸 도왔다.

“흐읏…….”

엘리아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신음을 핑계로 슬쩍 벌어진 입이 천천히 그를 받아들였다.

남자는 감질나게 열리는 입술을 기다려 주지 않았다. 좁은 틈을 비집어 침입하는 거센 동작에 엘리아의 목이 속절없이 꺾였다. 그는 엘리아의 목 뒤를 받쳐 달아날 틈조차 주지 않았다.

그러나, 정작 혀를 얽자 절박하게 엉겨 온 건 엘리아였다. 망설임은 전부 던진 채, 숨 쉬는 것도 잊은 채 허겁지겁 에드문트를 삼켰다. 그마저도 부족했는지 이가 닿는 대로 전부 짓씹어 대며 그를 부추겼다.

가쁘게 내쉬는 숨 사이로는 연신 남자의 이름을 불렀다. 에디, 에드문트. 이름의 주인이 그 소리를 전부 집어삼켰으나, 엘리아는 쉬지 않고 제가 탐하는 사람을 확인하려 들었다.

그리고 눈은…… 잠시도 떨어지지 않고 그를 바라보았다.

눈물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거면서, 억지로 뜬 채 에드문트를 한순간도 놓치려 하지 않았다.

기꺼이, 그 도발에 응해 주었다.

엇갈리던 대화는 사라지고 소리만 남았다.

발이 허공에 뜬 엘리아가 신음을 토하고, 그 뱉은 숨을 집어삼키고, 침대 위로 겹쳐진 두 사람의 몸이 추락하는……. 소리만 남아 헐떡였다.

* * *

입맞춤은 한참 동안 이어졌다. 서로를 탐닉하느라 끝을 모르고 계속 연장되기만 한 탓이었다.

엘리아가 숨이 가빠 잠시 입술을 떼 숨을 고르면, 에드문트는 물러서는 듯하다가도 다시 목덜미를 씹어 대며 입술을 찾아 올라왔다.

그때마다 엘리아는 재개된 입맞춤에 열렬히 호응했다.

때론 에드문트가 먼저 입술을 떼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엘리아는 그의 가운을 움켜쥐고 제게 끌어당겼다.

<도망가지 마, 에디. 가지 마…….>

엘리아는 에드문트를 흉내 내 목덜미를 물어뜯겠다며 아무렇게나 이를 세웠다. 가운 틈새로 드러난 쇄골에 새빨간 잇자국이 새겨질 때마다 그가 느낀 흥분이 엘리아의 온몸으로 전해졌다.

간신히 떨어진 두 사람은 상대의 꼴을 확인한 뒤에야 깨달았다.

서로에게 상처 주기 위해 시작한 행위였다. 자꾸 엇갈리기만 하는 대화에서 달아나기 위해 택한 도피처였다.

“에디.”

그러나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충족감이 서로를 채웠다. 울혈이 남은 여자의 살결에 남자가 감격했고, 제가 새긴 상처가 덧씌워진 남자의 입술에 여자가 전율했다.

“나는…….”

엘리아는 아직도 숨이 모자란 듯 헐떡였다. 높이 솟았다 내려가는 가슴팍이 보는 사람마저 아프게 했다.

“나는, 하나도 안 무서워. 감당할 수 있어.”

“…….”

“네가 무섭지 않아.”

힘겹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어 가며 기껏 뱉은 말은, 남자의 조롱에 대한 대답이었다. 감당할 수 없을 거라던 그의 말에 엘리아는 스스로를 던져 증명하려 했다.

하지만 남자에게는 우스운 도발일 뿐이었다. 무섭지 않았다는 말은, 견뎌 냈다는 뜻이지 정말 아무렇지 않았다는 뜻일 리 없었으니까.

“내가, 정말 무섭게 하길 바라?”

실상 에드문트가 먼저 시작한 입맞춤에는 엘리아를 두려움에 빠뜨리겠다는 의도가 없었다. 겉껍데기를 벗어 내고 욕망에 충실했을 뿐이었다.

이번에는, 의도를 담아 움직여 보았다.

물러나 있던 몸을 숙여 다시 엘리아 위에 드리웠다. 제 까만 그림자가 침대에 널브러진 엘리아를, 전부 집어삼켰다.

그 광경에 흡족함을 느꼈으나 표정으로 드러나지는 않았다.

“원한다면, 평생 이 저택에 갇혀 나를 감당하겠다고 말해 봐. 네 곁에 환청을 듣고, 환각과 대화하는 미친 남자만 존재할 세상이 두렵지가 않다면.”

고저 없는 목소리로 진득한 소유욕을 드러내자, 무섭지 않다며 고집부리던 몸이 움츠러들었다. 가련한 모습을 달래고 싶다는 충동과 더 몰아붙이고 싶다는 가학심이 교차했다.

에드문트는 제가 느낀 양가적인 감정을 그대로 드러냈다.

“로앙가에 돌아가. 그럼 다시 사람처럼 굴어 줄 테니. 네게 다정하기만 한 연인 행세를 해 줄 테니까.”

에드문트는 엘리아의 이마에 입술을 눌렀다. 다정하게 굴어 줄 테니 굴복하라는 종용이었다.

엘리아에게는 조롱이었다. 너는 어차피 이 다정함이 좋아 남자를 사랑하지 않았느냐는 날 선 추궁이기도 했다.

의도를 알아챈 엘리아가 있는 힘껏 그를 밀어냈다. 어깨에 닿은 무게감은 하찮았지만, 순순히 엘리아의 위에서 비켜 주었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엘리아는 균형을 잡지 못해 한참이나 휘청거렸다.

그럼에도 괜찮은 척을 해 댔다. 간신히 바닥을 딛고 서 에드문트를 마주 보았다.

“네가, 에디 네가 말해 봐. 정말 내가 상처 입기를 원해? 그래. 네가 나를 돌려보내겠다고 이런 식으로 차갑게 굴면, 나 상처 받아. 속상해서 울고 싶어.”

한 음절씩 뱉어 낼 때마다 퉁퉁 부은 입술이 아려 왔다. 상처가 나서 아팠다.

그래도 포기할 수가 없었다.

“울고 싶고, 네가 미운데…… 그래도 나는 포기 안 할 거야. 네가 이렇게 뻔한 수작질로 나 밀어내도 널 혼자 둘 생각 절대 없어. 네가 왜 환각을 보는 건지, 무얼 두려워하는지 알고 싶어.”

고였던 눈물을 떨쳐 내고선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제 눈물이 묻어난 뺨, 찢어진 입술, 자신의 흔적들을.

남자에게 흔적을 새긴 게 겨우 몇 분 전이었는데, 다시 기갈이 일었다. 스스로가 미친 것 같았다.

에드문트가 자신을 밀어내려 하는 태도에 정말 미쳐 버린 걸지도 몰랐다.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니…… 너야말로 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잖아. 십수 년을 네 차가운 태도를 견뎌 왔는데,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네가 무서울 것 같아?”

엘리아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억지로 옮겼다. 간신히 도착한 곳은 방 한쪽 구석에 둔 가방 앞이었다.

커다란 가방을 질질 끌어 다시 에드문트에게 왔다. 휘청거리는 몸이 당장이라도 가방 위로 쓰러질 것만 같았다.

“이거, 네게 보여 주려고 가져온 거야.”

엘리아는 힘이 다 빠진 손으로 간신히 가방을 열었다. 그러고는 외젠과 데이지에게 보여 주었던 다섯 개의 봉투를 집어 들었다.

“약속했잖아. 서로 위한답시고 거짓말을 하지 않기로. 그래서 나도 네가 돌아오면 전부 말하려고 했어. 내가…… 우리 부모님이, 마차 사고가 아니라는 거…….”

바닥에 처박힌 여자를 바라보던 에드문트가 마차 사고라는 단어에 움찔했다. 엘리아는 그의 거부 반응을 보고도 기어이 봉투에서 종이 하나를 꺼냈다.

마치 그들이 어린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에드문트는 엘리아를 피해 달아나려고 했고, 엘리아는 그런 에드문트에게 다가가려 했다.

보여 주고 싶은 소중한 것들을 손에 꼭 움켜쥐고선 에드문트의 관심을 끌려 발버둥 쳤다.

“이거 열두 살 때, 우리 약혼했던 해에 찾은 거야. 부모님이 남긴 글을 발견해서…….”

엘리아가 억지로 그의 손에 종이를 쥐여 주었다. 부모님의 유품이었고, 아무것도 모르던 그들의 딸을 깨우친 글이었다.

<1황자 시해. 증거.>

<출발. 초봄의 두 번째 월요일. 기밀…….>

에드문트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1황자가 살해당했다는 증거를 찾아 헤매던 로앙 백작 부부가 남긴 흔적이었다.

열두 살 때라면, 전부 알고 있었다는 의미다.

어린 엘리아뿐만 아니라, 저와 결혼했던 죽은 여자도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제게 거짓말을 한다는 걸 알면서도 짐짓 모른 척을 해 왔다는 의미였다.

혼란스러웠다.

“에디.”

<에드문트.>

에드문트의 죽음으로 인해 둘로 갈라진, 열여덟의 여자와 스물여덟의 여자가 동시에 그를 불렀다.

“나, 다 알고 있었어.”

<당신은 정말 내가 아무것도 모를 거라 생각했어?>

모를 거라고 여겼다. 아내가 거짓말에 능숙한 덕분이었을까?

그보다는 에드문트가 무심한 탓이었으리라. 애초에 엘리아에게 진실을 숨기는 데에만 관심을 가졌을 뿐, 이미 알고 있을 거라는 짐작은 해 본 적도 없었으니까.

“에디, 네가 말 안 해 줬다고 화내는 거 절대 아냐. 말 안 하고 숨겼던 건 나도 마찬가지였고…… 나 때문에, 외젠이 부탁했던 것 때문에 일부러 비밀로 했던 거잖아. 언젠가 말해 주려고 했잖아. 그치?”

동의를 구하는 물음에 에드문트의 눈이 흔들렸다.

말하려고 했던가? 그래, 분명히 에드문트는 서점에서 닐스 튀링겐을 만난 뒤 보고서를…….

<거짓말. 전부 숨기려고 했잖아.>

머릿속으로 변명을 쌓아 올리던 중 비난이 들려왔다. 10년의 거짓말과 침묵이 엘리아의 목소리를 빌려 그를 취조하려 들었다.

<아픈 모습을 조금이라도 보이면 그걸 핑계로 침묵하려 했잖아. 평생 여자를 기만하길 원했잖아. 마치 죽은 내게 했던 것처럼.>

에드문트가 쥐고 있던 종이에서 시선을 떼었다. 까마득한 아래에서 엘리아가 그를 올려다보았다.

“말해 주고 싶었어. 내가 에디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약하고, 아둔하지는 않다고. 만일 네가 도움이 필요하다면 손잡아 줄 수 있다고. 혼자 버틸 필요 없다는 걸 알려 주고 싶었어.”

엘리아는 청색의 융단 위에 핀 들꽃처럼 보였다. 남자의 발에 짓눌려 꺾여 버리게 될 줄도 모르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에디, 내가 돕게 해 줘. 네가 홀로 끌어안고 있는 아픔을 나눠 갖게 해 줘. 네가 기댈 버팀목으로 삼아 준다면 같이 휘청이게 되는 한이 있어도 너와 함께할 거야.”

바람에 정처 없이 흩날리며 소리를 내는데 들을 수가 없었다.

과거에서부터 불어온 태풍이 그를 귀먹게 했다.

그래도 소리는 낼 수 있었다. 에드문트가 입을 열었다.

……태풍에 쓸려 온, 아내를 향해서.

“네가 아파할 거라고 들었어. 그래서 알리지 않았어. 너를 보호하고 싶었어.”

“에디, 알아. 이해해. 나 역시 같은 마음이었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까 봐 알면서도 티를 내지 않으려고…….”

“떠날 때도 말하지 않았잖아. 내가 알아주지 않아서, 끝끝내 침묵하는 걸 보고 실망해서 떠났던 거였을까.”

그의 손에 들려 있던 종이가 나풀거리며 떨어졌다. 그 광경에 한눈파는 바람에 에드문트에게 시선을 떼고 말았다.

다시, 저를 내려다보는 그의 시선을 찾아 돌아왔을 때.

“……에디?”

에드문트의 눈동자는 환각을 보던 때처럼 안개가 가득 끼어 있었다.

“그래. 당신이 말하기 전에 내가 고백했어야 했는데. 마음뿐만 아니라 당신의 부모가 죽은 이유조차 속여 왔다고, 마지막 순간에라도 고백하고 용서를 구했어야 했는데.”

“에디, 나 좀 봐. 응? 나 여기, 조금 전까지 나랑 이야기하고 있었…….”

“네가 아무것도 모르는 줄 알았는데…… 정말 아무것도 몰랐던 건, 나였던 거야.”

“에디, 누구한테 말하는 거야. 나, 나 여기 있잖아. 나 죽은 거 아니야. 이렇게 네 앞에 있잖아. 절대 안 떠날 거라고, 네가 가라고 해도 안 갈 거라고 말했잖아!”

엘리아는 환각에 빼앗긴 그를 되찾으려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에드문트의 귓가에 죽은 여자가, 환청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으니까.

“에디, 에드문트!”

또한 발치에는 시체가 가득했다. 그는 시체 한 구 한 구의 이름을 전부 떠올릴 수 있었다.

그 수많은 시체가 차곡차곡 쌓여 현실의 엘리아를 지워 냈다.

<착각하지 마, 에드문트. 사랑해 보려고 애썼을 뿐이야. 그마저도 네가 전부 죽여 버렸지만.>

엘리아는 비록 그가 보는 환각을 함께 공유할 수는 없었지만, 에드문트가 더는 자신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에디, 제발. 제발 그렇게 죄책감에 아파하지 마. 나를 죽였다고 생각하면……. 어째서 죄책감을…….”

엘리아는 어떻게든 끔찍한 공포에서 남자를 구해 내고 싶었다. 그를 끌어안기 위해 바닥에서 일어나려고 했는데, 마음이 급한 탓에 자꾸 주저앉고 말았다.

“으읏.”

어떻게든 일어나려고 바닥을 짚던 엘리아의 손이 가방 안에 처박혔다. 당황하여 손을 휘적거리던 엘리아의 손에…… 딱딱한 물건이 스쳤다.

무심코 손가락에 걸린 물건을 움켜쥐었다. 한 손에 쥐기 버거운 그 물건은, 분명…….

단검이었다.

* * *

엘리아는 가방에 처박힌 손을 꺼내려 허우적거리던 중, 금속이 주는 차가운 감촉에 정신이 들었다.

착각이 아니라면, 손에 스친 건 분명 단검 손잡이였다. 검날이 살에 닿은 것도 아닐 텐데 오싹한 감각과 함께 소름이 돋았다.

‘처음 왔을 때 벨젠 경이 준 단검……. 분명 가방에 넣어 두었지.’

저택에 온 날 벨젠 경이 위험한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 갖고 있으라며 제게 건네주었다. 하지만 엘리아는 차라리 제가 다칠지언정 그에게 단검을 휘둘러 스스로를 보호할 생각은 없었다.

하여 엘리아는 받은 단검을 가방 깊숙이 숨겨 두었다. 그 단검이 하필 지금 손에 잡힌 것이다.

‘……아니면, 여행에서 돌아온 뒤 그대로 가방에 넣어 두었던 단검일 수도.’

엘리아는 2년여 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후 가방에서 단검을 꺼낸 기억이 없었다. 데이지가 짐을 꺼낸다고 가방 안을 살폈겠지만, 바닥 아래쪽에 숨겨 두었으니 발견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컸다.

하면 제 손에 잡힌 건 둘 중 무엇일까.

에드문트의 피를 받아 내라며 기사가 안겨 주었던 단검일까?

혹은 복수를 꿈꾸고도 결국 단 한 번도 휘두르지 못했던 날붙이를 다시 붙잡은 걸까.

운이 나쁘다면 후자일 테고, 그럼 가능성이 적지만 독이 남아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엘리아는 거기까지 생각할 여력이 없었다. 에드문트가 제 눈앞에서 당장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공작님께서 집사에게 사과하셨습니다. 전부 공작님 본인 탓이라고…… 며칠 후에는, 동부에 있는 기사가 사망했다는 소식까지 전해 들으셔야 했습니다.>

늘 엘리아가 죽을 거라며 두려워했을 남자를 안아 주고 싶었다. 혼자 아파할 필요 없다고 설득해 제게 의지하길 바랐다.

더 나아가 알려 주고 싶었다. 한스 경과 벨젠 경, 그리고 공작가의 가신들뿐만 아니라 로앙가의 사람들도 그를 아끼고 염려한다는 걸.

그가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에드문트는 모르고 있을 테니까.

“에디, 나 원망해도 돼. 너까지 상처 줄지도 모른다는 거 나도 알아. 하지만 네가 현실이 아닌 죽음에 죄책감을 느끼는 거 도저히 내버려 둘 수가 없어. 이러다 네가 영영 나를 떠날까 봐, 나는 그게 너무 무서워.”

엘리아는 손에 쥔 단검을 가방에서 꺼냈다. 검집을 벗겨 내 날을 살폈으나 방이 어두운 탓에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아프겠지. 너무 아프면 어떻게 하지? 두려웠지만 공포에 우선하는 감정이 엘리아를 충동질했다.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켰다.

“얼마든지 아파도 좋아. 너를 돌려받을 수만 있다면…… 제발 돌려줘. 돌려받고 싶어.”

엘리아는 자신의 등을 떠미는 감정이 사랑이라 여겼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하지만 소유욕에 불과할지도 몰랐다.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던 경험이 그 어떤 것도 빼앗기고 싶지 않다는 이기적인 마음이 되어 어리석은 선택으로 몰고 가는 걸지도.

“……널 잃고 싶지 않아. 누구에게도 빼앗기고 싶지 않아. 내 이름으로 다른 사람을 부르지 않으면 좋겠어.”

혹은 연인의 구원자가 되어, 사랑받고 싶다는 집착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실로 이기적이고, 비열한 희생이었다.

단검을 쥔 손을 얼굴 위까지 들어 올렸다. 검날의 반사광이 에드문트를 자극했다.

그가 겨우 낯선 물건을 감지할 때쯤…….

“으읏…….”

고통에 터진 소리가 환청의 틈을 비집고 그에게 닿았다. 점점이 떨어지는 붉은 물방울, 꽃잎이 낙화하는 광경을 그려 내며 그를 유혹했다.

바닥에 붉은 꽃이 가득 피었다. 불을 닮아 뜨겁고 짙은 붉은색이었다.

엘리아는 울고 싶었다. 그러나 기쁨이 눈물을 틀어막았다.

“에드문트……. 에디.”

바닥에 펼쳐진 붉은 풍경화는 엘리아가 그린 것 중 가장 아름답고 가치 있었다.

사랑하는 연인이, 다시 저를 바라보게 해 주었으니까.

* * *

새하얗게 빛나는 단검이 허공을 가르고, 격통을 호소하는 신음이 들려온 순간.

환청이 멈추고, 방 안 가득 쌓여 있던 시체 또한 사라졌다. 에드문트는 비로소 점점이 떨어진 핏자국을 발견했다.

떨어지는 핏물이 제 발치까지 찾아와 엉겨 굳은 듯했다. 발이 묶인 채 멍하니 붉은 얼룩을 바라보았다.

‘어째서 익숙해 보이는 거지.’

시선을 올리자 피를 떨구는 가는 팔이 보였다. 그 모습이 무척이나 익숙했다.

대체 어디서 보았던 걸까.

곧장 돌아오지 못한 이성이 눈앞의 광경에만 몰두했다. 제 팔에서 흐르는 피에 놀란 엘리아가 한 걸음 물러서는 모습에, 뒤늦게 기시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분명, 그때와 닮았다.

<이리 주십시오. 영원하지도 않고, 그냥 썩어 버릴 편지 따위 왜 그리 쥐고 있으십니까? 엘리아 님께 돌려 드리고 오겠습니다.>

환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던 제 추한 꼴에, 보좌관이 화를 내며 손에 쥐고 있던 봉투를 빼앗으려 했을 때.

‘두려워 열지도 못한 봉투를 빼앗기고 싶지가 않아서, 그래서 도망치다가 봉투가 찢어졌지.’

그때 바닥에 떨어지던 편지를 보며 꽃잎 같다고 생각했다. 마치 지금 눈앞에 뚝뚝 방울져 흐르는 피처럼.

겹치는 기억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당신은 불길이야. 모두 집어삼켜 버려. 내 사랑마저 집어삼켜 버리곤, 되돌려 주지를 않아. 나는 타고 남은 재 가루만 끌어안아야 했어.>

남자가 사랑을 전부 집어삼켜 버렸다며 화를 내고 돌아서던, 아내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그때 에드문트는 아내가 상처 받은 마음을 드러낸 뒤에야 그 안에 사랑이 있었음을 깨달았다.

<도련님께서,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지금보다 더 아끼는 사람들과 늘 행복하셨으면…….>

끝까지 저를 원망하지 않던, 어리석은 집사의 마지막 모습과도 닮아 있었다.

꺼멓게 곯은 상처에 제 눈물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며, 에드문트는 그제야 자신을 도련님이라 불러 주던 집사가 소중한 사람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찢어진 봉투에서 떨어지던 수십 통의 편지를 보고서 깨달았음에도, 잊고 있었다.

<공작님, 엘리아 아가씨가 보내신 편지가 스물세 통이나 됩니다. 심지어 벨젠 경을 통해 열 통을 더 보내오셨고요.>

어린 연인이 사랑을 가득 담아 보내 주었음을.

그렇게 몇 차례나 어리석게 굴었으면서. 깨달음은 전부 외면하고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말았다.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했지만, 너야말로 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잖아.>

몇 번이나 사랑한다고 말해 주던 연인을 밀어내기만 했다.

저를 봐 달라며, 애칭으로 불러 달라고 소리 지르던 여자가 기어코 제 살을 벌리는 꼴을 보고서야 깨닫다니.

제가 감히 거부해서는 안 될, 지극한 사랑을 품고 있음을 여태껏 외면해 왔다니.

“…….”

툭툭, 팔목을 타고 붉은 꽃잎이 재차 떨어졌다. 작은 소리에 그의 목소리가 묻혀 들리지 않았다. 다시 한 번, 목을 쥐어짜 연인을 불렀다.

당연히, 간절히 원하던 여자의 애칭으로.

“엘리.”

엘리. 엘리. 엘리아. 부르고 또 불렀는데 답이 없었다. 조급한 마음에 엘리아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한 걸음, 두 걸음. 가까워지면서도 계속 엘리아를 불렀다.

마침내, 지척에 도달한 에드문트가 손을 뻗었다. 지혈이 필요한 상처 위쪽을 강하게 쥐자, 엘리아가 움찔거렸다.

혹여 제가 두려워 피할까 봐 스스로 몸을 낮추었다. 엘리아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바닥에 처박힌 무릎에 질척한 감각이 스몄다. 엘리아가 흘린 핏물이었다.

흘린 피는 많지 않았지만, 그는 익사할 것만 같은 공포를 느꼈다.

“단검 내려놔, 엘리. 네가 다칠 수도 있어.”

두려움을 느낀 탓일까. 다정한 목소리를 내 보려 노력했는데 잘되지 않았다. 여자를 그저 겁먹게만 할 자신의 목소리가 지극히 혐오스러웠다.

그러나 어떻게든 엘리아가 단검을 놓게 해야 했다. 검에 익숙지 않은 이들이 공포에 질려 스스로에게 큰 상처를 입히는 일은 자주 일어나는 사고였다.

에드문트는 반응이 없자 무릎 꿇고 있던 몸을 다시 일으켰다. 엘리아가 움찔거리며 뒤로 물러서려 했지만 이미 상처 난 팔을 붙잡힌 채였다.

“엘리.”

단검을 쥔 손 위로 에드문트가 자신의 손을 겹쳐 올렸다. 엘리아의 시선이 그 위에 덧대어졌다.

장갑이 없는, 깨끗한 맨손이었다.

“손 펴.”

짧은 명령과 함께 에드문트의 손가락이 엘리아의 손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작은 손가락이 하나씩 하나씩 단검에서 떨어져 나갔다.

사슴 문양이 새겨진 단도가 바닥에 떨어져 둔탁한 소음을 냈다. 소리에 놀란 엘리아가 버둥거리자, 지혈을 위해 붙든 팔을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품에 안긴 엘리아가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기어코 눈물을 줄줄 흘렸다.

그를 다시 돌려받았다는 안도감에 시작된 눈물이었다. 이내 원망이 되었다.

피가 흘러나오던 순간을 다시 떠올리니 공포심이 일었다. 단검으로 찌른 팔목은 차마 눈길도 주지 못했다.

물론 어지간히 독하게 마음먹지 않는 한 제 살 찌르는 게 쉬울 리 없었으니 상처는 깊지 않았다. 그래도 피 자체가 주는 공포는 상당했다.

엘리아는 어떻게든 눈물을 그쳐 보려고 주먹을 꽉 쥐었다. 상처에서 고통이 시작되어 번져 나갔다.

뒤늦게 엄습해 오는 통증, 자해까지 했다는 비참함이 눈물을 부추겨 댔다. 끅끅거리며 통증을 견디다 못해 입이 벌어졌다.

“……아파.”

아프다는, 원초적이고 어린애 같은 말이 기다렸다는 듯 터져 나왔다.

“에디, 나 너무 아파.”

“미안해, 엘리. 잘못했어.”

남자의 어조는 다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애칭을 부르는 것만큼은 잊지 않았다.

에드문트가 정신을 차렸다는 걸 다시금 확인한 엘리아가 더욱 서럽게 울었다. 그의 가슴팍을 전부 적시다 못해 제 옷까지 잔뜩 젖어 들어갔다.

이윽고 품에서 벗어나겠다며 발버둥 쳤다. 몸에 담아 두기 벅찬 원망을 힘겹게 쏟아 냈다.

“너, 에디 너 진짜 미워. 내가 피 나고 울고, 그제야 봐 주고……! 나는 이런 상처 났을 때보다 훨씬 더 많이 아팠는데! 마음이 아파서 죽을 것 같았는데!”

엘리아가 쏟아 내는 설움이 그의 심장에 그대로 메다 꽂혔다.

아팠다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그가 죽고자 심장에 처박았던 검날 같았다.

“이딴 상처보다, 네가 나 못 알아보는 거, 그게 더 아팠어! 가 버리라는 말 들었을 때, 그때가 훨씬 아팠단 말이야! 너는 왜 나를 밀어내기만 해? 좋아한다고 했으면서, 왜 자꾸 나를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만들려고 해!”

엘리아가 분을 이기지 못하고 에드문트의 가슴팍을 때렸다. 악에 받친 주먹질을 그대로 맞아 주었다. 화는커녕 동정심만 더욱 부추길 뿐이었다.

“미안해. 미안해, 엘리.”

저를 때리면 화가 좀 풀릴까 싶어 에드문트가 허리를 끌어안고 있던 팔을 살짝 풀었다. 그러자 주먹질 몇 번에 힘이 다 빠진 엘리아의 몸이 미끄러지고 말았다.

에드문트가 급히 무너지는 몸을 붙잡아 침대로 이끌었다. 저항할 힘이 남지 않은 엘리아가 에드문트가 이끄는 대로 끌려가 침대에 걸터앉았다.

에드문트가 그 앞에 다시 무릎을 꿇었다.

“내가 잘못했어.”

눈을 맞추고 여자의 애칭을 불렀다. 엘리. 다시 그를 뿌리치지 않는 걸 확인한 뒤, 피가 멎은 상처 아래에 입을 맞추었다.

가는 팔을 따라 내려오던 입술이 손등에 닿았다.

두 사람이 마음을 확인하고, 처음으로 맞닿았던 체온 위에서 속죄했다.

“네가 아프지 않기를 원했어.”

입술이 움직일 때마다 통증을 대신할 뜨거운 숨결이 스몄다.

“널 아무것도 아닌 사람 취급하려 했던 게 아니었어. 믿어 줘. 엘리 네가, 단 하루도 내게 의미 없던 날이 없었어.”

에드문트는 엘리아가 내지른 설움을 듣고, 비로소 그간 여자가 홀로 견딘 고통을 이해했다.

‘다시는, 스물여덟의 네가 내 곁에서 겪은 고통을 다시 겪게 하지 않겠다 다짐했는데.’

하나 그는 죽음을 겪은 뒤에도 실수를 반복했다. 다정하게 굴면, 다른 사람처럼 굴면 괜찮아질 거라고 착각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엘리아가 겪어야 할 고난을 전부 제가 대리하며, 제 희생이 아내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의 애정이라 여겼다.

그 결과 엘리아는 거짓말에 에워싸인 채 방치되었고, 스스로가 쓸모없다고 자조하며 매일 슬퍼했으리라.

지난 생에서도, 심지어 새로 거머쥔 생에서조차.

“그럼 왜…… 대체 왜 그랬어. 에디. 내가 네게 의미 있었다면, 왜 같이 아파하지도 못하게 밀어내기만 했던 거야……? 사랑한다고 했으면서 왜 나를,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엘리아는 말을 끝맺지 못하고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간신히 정신을 잃지는 않았지만, 더는 몸이 버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저처럼 바닥으로 떨어진 여자를 그가 단단히 붙들어 끌어안았다.

“엘리, 너를 행복하게 해 주고 싶었어. 네가 원하는 걸 알려 하지도 않았으면서, 그저 너를 내 손으로 행복하게 해 주고만 싶었어. 너를 위한 삶을 살고 싶었어.”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고 싶었으나 욕망을 모르던 남자는 여자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몰랐다. 제가 가진 재물과 권력을 안겨 주면 행복할 거라고 착각했다.

엘리아에게, 엘리에게. 같은 사람이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에게 에드문트는 죄를 고백했다.

그러나 결코, 사랑하지 않은 적 없었노라 알려 주고 싶었다.

“내가 가진 것을 전부 네게 주고, 나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게 해야 네가 행복해질 거라고 믿었어.”

차분한 목소리가 죄를 고백했다.

“내가 너무 끔찍하고 무서웠을 테니까. 나를 제외한 모든 걸 네게 주면 될 거라고 여겼어. 네가 나를 사랑해 줄 줄은 몰랐어.”

엘리아는 그의 고백을 들으며 눈물로 어깨를 전부 적셨다. 검날이 찢은 살갗보다도 흐르는 눈물에 베인 얼굴이 훨씬 아플 지경이었다.

“에디, 나는…….”

나는, 네게 의미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 에디 너를 사랑했고, 질투했으니까. 내 생에 매 순간 가장 아름답던 사람이었으니까.

속삭임에도 미치지 못하는 작은 고백이 에드문트를 위해 울렸다.

들었을까.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들렸을까.

“전부 다 말할게. 내가 왜 너를 죽었다 여겼는지, 어떤 악몽을 꾸었던 건지.”

아마도, 전해진 것 같다.

“엘리 네게 사랑받고 싶었어. 오직 네가 나를 사랑해 주기만을 바랐어. 하지만…… 나를 사랑해 주지 않아도 돼. 다시 나를 버려도 괜찮아. 모든 걸 알고 난 뒤 나를 사랑해 주지 않아도 돼. 이제 나는 네가 행복하기만을 바라.”

감은 눈 위로 입술이 닿았다.

절절한 고백에 답을 해 주고 싶었는데.

“사랑해, 엘리. 꿈에서 널 그리워하고서야 깨달았어. 아주 오래전부터…… 너는 내게 특별한 사람이었어.”

그토록 염원하던 고백을 들었으니 웃어 주고 싶었는데.

“엘리, 엘리아.”

의식이 희미해지기 전, 말을 했는데.

“엘리!”

나도 너를 오래전부터 사랑했다고 말했는데.

들었을까.

전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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