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체념
모든 비극에 전조가 있는 건 아니다. 하나 어떤 비극에는 전조가 있다.
사람을 한 번 무너뜨린 최초의 비극이, 때론 그 전조가 되기도 한다.
에드문트에게는 그랬다. 과거의 실수를 뉘우치기 전에 반복하고야 만 상실. 이미 한 번 잃은 사랑, 다시 한 번 잃어야 했던 사람. 집사의 죽음.
남자의 비극은 이제 시작이었다. 에드문트는 기민하게 그 낌새를 눈치채고 스스로를 저택 집무실에 가두었다.
죽은 집사의 시신을 지하 석실에 안치해 둔 채 들여다보지도 않고, 에드문트는 단 한 발짝도 사람들 앞에 나오려 들지 않았다.
그 심상치 않은 기색에 공작가의 가신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이제 곧 여름이니 아무리 귀한 곳에 안치해 둔들 저러다간 속절없이 썩어 가기만 할 텐데요. 어서 장례를 치러야 하는데 공작님께선 대관절 무슨 생각이신지…….”
“저리 칩거하신 모습을 보면 분명 많이 상심하신 걸 겁니다.”
“글쎄요. 사람이 그리 한순간에 변하는 게 가능이나 합니까? 우리끼리 이렇게 떠들어 봐야 공작님의 의도는 알 수 없으니, 기다릴 수밖에요. 곧 나오시겠지요.”
모두 우려 섞인 한마디를 뱉어 댔으나 결론이 나오질 않았다. 공작의 상태가 심상찮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금방 나아질 거라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엉키다 끝날 뿐이었다.
그리하여 누구 하나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선 공작의 안위를 살피려 하지는 않았다.
“그나저나 시신 문제도 문제이지만 어서 새 집사가 와야 할 것 같습니다. 한스 경 보십시오. 저러다 시체 하나 더 만들겠습니다.”
다들 얼굴 보이지 않는 공작을 찾아가느니, 격무에 시달리게 된 한스를 동정하는 걸 더욱 유익하게 여겼다. 사람들 앞을 지나던 한스가 씁쓸한 미소를 보이고는 속내를 삼켰다.
‘죽겠군. 내가 먼저 죽을지, 아니면 공작께서 먼저 미쳐 죽을지 모르겠지만.’
새 집사를 뽑는 대신 당분간 한스가 저택 일을 일임하기로 했다. 군데군데 지울 새도 없이 남은 집사의 흔적에 괴로워하면서, 한스는 부지런히 집사의 과거 행적을 쫓아다녀야 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아직 미숙하여서…….>
옷 한 벌 꺼내는 일도 쉽지 않았고, 실수가 자꾸 반복되었다. 한스는 나름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했지만 돌아 버릴 지경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를 미치게 하는 건 제 실수에도 아무 말 꺼내지 않는 공작의 무심한 태도, 그리고 아직 공작의 손 한번 닿지 않은 두꺼운 봉투였다.
<공작님, 엘리아 아가씨가 보내신 편지가 스물세 통이나 됩니다. 심지어 벨젠 경을 통해 열 통을 더 보내오셨고요.>
한스가 연신 열어 봐 달라며 애걸했으나 여전히 봉투에는 손댄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에드문트가 수도에 돌아온 줄은 까맣게 모르는 아가씨께서 편지 수십 통을 더 보내왔건만. 남자는 편지를 꺼내 읽지 않았다.
마치 보이지 않는 것처럼. 자신의 몫이 아닌 것처럼 치부했다.
엘리아마저 제게 멀리 밀어내는, 그것이 진짜 전조였음을 한스는 뒤늦게 깨닫고 후회해야 했다.
* * *
집사가 죽은 지 1주일째 되던 날. 에드문트의 앞에 소식 하나가 올라왔다.
“하필 크라우제 후작의 동태가 수상하다는 보고가 들어오는 바람에 인력이 많지 않았습니다. 교란 작전일 줄은…….”
메클렌 자작을 호위하던 공작가의 기사가 급습을 당했다는 보고였다.
라스페가에서 압박 수위를 높이자, 동부에 갇힌 후작은 벼랑 끝에 내몰린 쥐가 되어 메클렌 자작을 물어뜯었다. 오랫동안 준비했을 계획이 전부 뒤틀리고 말았으니, 입 싸게 떠들어 대는 그에게 어떻게든 보복을 가하고 싶었으리라.
“피해는?”
“메클렌가는 기사 셋을 잃었으며 자작 본인 역시 다친 모양이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저희 측은…… 메클렌 자작을 보호하던 두 기사, 그리고 병사 여섯까지 도합 여덟 명이 사망했습니다.”
에드문트는 정예 기사 두 명이 모두 사망했다는 말에 보고서를 펼쳤다. 에드문트가 이전에 지시한 대로 이졸다 경과 랄프 경, 두 사람이 메클렌 자작을 호위했다는 정보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중 한 사람만이 후작의 습격에 사망했다는 것도.
“습격에 사망한 건 랄프 경뿐인데. 이졸다 경은 어떻게 된 건가.”
“후작가의 급습을 막던 중 랄프 경이 치명상을 입어 사망하였고, 이졸다 경은…… 습격 후 후퇴하던 크라우제 후작을 홀로 뒤쫓았다고 합니다. 후작에게 부상을 입히기까지 했으나 결국 사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졸다 경이, 랄프 경의 복수를 자청했단 말인가.”
“예, 실은 두 사람이 연인이었던지라…….”
에드문트는 ‘연인’이라는 말에 뒤이어 천둥소리를 들었다. 분명, 들었는데.
“……공작님? 괜찮으십니까?”
고개를 돌려 바라본 하늘은 구름 하나 없이 맑았다.
이상하지. 분명 들었는데.
“계속, 계속하게.”
만약 한스가 자리에 있었다면 에드문트가 환청을 들었음을 눈치챘겠으나 그는 하필 새 집사를 구하는 일로 바빠 자리를 비운 참이었다.
덕분에 에드문트는 마음껏 귀 열어 존재치 않는 소리를 들었다.
<에드문트.>
이번에는 누군가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시체로 돌아왔던 아내이던가. 제 눈앞에서 독을 먹고 죽어 버린 조부이던가. 한 번도 애정을 준 적 없던 부모이던가.
희미한 소리에 귀 기울이느라 가신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들을 수가 없었다.
“후작가에서 악수를 둔 셈입니다. 동부에서 아무리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었다고는 해도 미수로 끝났던 납치를 다시 시도하다니요.”
“그렇습니다. 저희 쪽 피해는 병사까지 총 여덟이었지만, 후작은 자신을 보호하던 기사만 무려 여섯을 잃은 데다 본인까지 부상당하지 않았습니까.”
“전부 이졸다 경께서…… 비록 무모한 복수를 시도했으나 홀로 다섯 기사의 몫을 해 준 덕분이지요. 메클렌 자작의 곁에 기사를 남겨 두신 공작님의 혜안 덕분임은 물론이고요.”
“이제 후작이 저희에게 두 번이나 당했다는 소식이 파다할 테니, 그의 기존 세력마저 떨어질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다들 입 모아 공작가의 성공을 자축했다.
그러나 에드문트는 오로지 죽은 사람에 관한 생각에만 몰두했다.
“죽은 이들은, 그들 시신은 어쨌는가.”
“예? 아……. 전부 메클렌가 측의 사망자들과 함께 장례를 치렀습니다. 장례가 끝난 두 기사와 병사들의 시신은 각자의 가족에게 인계될 예정입니다.”
죽은 기사가 누군가의 연인이었다는 말이, 병사들의 시신을 인계받을 가족이라는 단어가 에드문트의 가슴에 더욱 세게 박혀 들어왔다.
묻고 싶었다. 저와 같은 심경이었을까. 정작 그가 누구보다 먼저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겪었으면서.
‘아니. 같을 리가. 그들은 가족이고, 연인이라지 않았나.’
에드문트와는 달랐다. 자신은 연인을 잃은 적은 없었지 않았던가. 그저 홀로 사랑하던 여자가 저를 떠났을 뿐이었으니.
같은 심경일 리는 없었다.
“두 사람이 연인이었다는 걸 다들 알고 있었는가.”
“굳이 숨길 일은 아니었으니, 대부분 알고 있었습니다.”
에드문트의 질문에 기사 하나가 떨떠름하게 대꾸했다.
“그랬군. 내가…… 미안하게 되었다고, 그렇게 전하게.”
“…….”
아무도,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하여 에드문트는 다시 한 번 이야기했다.
“기사들의 유가족에게……. 그리고 죽은 병사들의 가족에게도 애도와 함께 넉넉한 보상을 내리도록.”
죄책감을 타인의 앞에 전시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리 어렵지도 않았다.
다만, 문제가 된 건 아무도 그의 죄책감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오직 에드문트만이 알고 있었다.
이전 생에서는 죽을 운명이 아니었던 두 연인이 에드문트의 선택으로 인해 죽어 버렸다는 것도.
그 하나만이 알고 있는 진실이었다.
죽지 않았어야 할 자들이 자신 때문에 죽었다는 죄악감에 에드문트가 또다시 무너졌으나, 그 역시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었다.
“유가족들 모두 공작님의 애도에 감사할 겁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위안조차 되어 주지 못할 텅 빈 말을 남기고 물러났다.
그가 마지막으로 온전한 모습을 보인 순간인 줄 알았다면, 그랬다면 다들 쉬이 물러가지 않았을 텐데.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떠나고, 문이 닫혔다.
<둘이 연인 사이였습니다.>
<복수하려다 죽어…….>
가신들이 남긴 목소리가 바닥을 구르다 먼지와 뒤엉겨선, 누구도 꺼낸 적 없는 원망으로 자라났다. 에드문트가 키워 낸 어둠이었다.
<당신이 모두를 죽인 겁니다.>
<그러게 왜 허튼짓을 하셨습니까. 메클렌 자작이 죽어 버리든 말든 방치하는 쪽이 당신과 더 어울렸을 텐데.>
<감정을 자각했다고, 그게 온전히 당신 것인 줄 알았습니까?>
에드문트가 닫힌 문 가까이 다가갔다. 금을 입힌 화려한 손잡이를 누르자 잠금장치에서 묵직한 쇠 마찰음이 들렸다.
덕분에 소리가 전부 멎었다.
에드문트가 홀로 남았다.
* * *
그는 조용해진 집무실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가득 꽂아 둔 장서에 한번 시선을 주었다가, 앉아 본 지 오래된 소파를 살펴보았다.
<에드문트, 나 여기서 책 봐도 될까? 방해 안 할게. 안 할게요.>
새카만 소파 위에 과거의 잔상이 불쑥 튀어나왔다. 죽은 아내, 아마도 스물한 살쯤 되었을 엘리아의 모습이었다.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저를 찾아온 기억을 반갑게 맞이했다.
“그래…… 그렇게 해.”
에드문트는 환영에 불과한 여자에게 대꾸해 주었다. 이윽고 책을 펼쳐 든 여자를 지나쳐 창문 앞으로 향했다.
이별을 고하던 장소에 그가 발을 딛자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떠날 거야.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야.>
마른하늘에 비가 내렸다. 창 근처에서 나풀거리는 나뭇잎 탓에. 마치 빗방울이 스민 듯 반짝이는 꽃망울 탓에.
비가 내리는 것만 같아서 여자를 떠나보내던 날을 떠올렸다. 그리하여 창밖에는 에드문트의 눈에만 보일 마차 한 대가 전시되어 있었다.
“엘리아.”
이름을 부르자, 대답이 돌아왔다.
<에디, 왜 그래?>
소리를 따라 몸을 돌리자 빈 집무실이 눈에 들어왔다. 책상 위에 방치해 둔 편지를 바라보았다.
<나를 내내 그리워할 거라 했으면서. 잊어버렸어?>
들어 본 적 없는 말소리가 봉투 밖으로 새어 나왔다. 그의 상상이 만든, 외면한 연인을 향한 투정이었다.
‘그래. 어린 너는 아마 원망하고 있겠지. 수십 통의 편지를 보내어도 답 한 번 없는 남자를…….’
원망하며, 기다리려나. 아직 사랑해 주려나.
그리하여 남자가 불쑥 다시 찾아간다면 두 팔 벌려 안아 주려나.
에드문트는 봉투 가까이에 다가갔다. 하나뿐이던 봉투는 어느새 세 묶음이 되어 남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나씩 열어 보는 대신, 그는 세 개의 봉투를 한 번에 손에 쥐었다.
장갑 낀 손 아래에서 바스락거리는 촉감이 마른 꽃잎 같았다. 엘리아의 마음이 이미 져 버려 제 손에 들어온 것만 같았다.
봉투 안에, 다시 떠나 버리겠다는 이별의 말이 적혀 있으면 어떻게 하나.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시 버려지는 걸…… 감당할 수 있을까.’
에드문트는 결국 봉투를 열어 보기를 포기했다. 대신 엘리아가 그려 준 그림 앞으로 다가갔다.
“엘리.”
남자가 조심스럽게 이름을 불렀다. 얼마 만에 담아 본 애칭이던가. 자그마치 한 달이 넘도록 제게 떨어뜨려 놓았거늘 여전히 지독할 만큼 달았다.
당장이라도 엘리아를 찾아가 끌어안고 위안 받고 싶었다.
그러나 어찌, 어찌 그런단 말인가.
전부 다 죽어 버렸는데.
“엘리. 집사도, 기사들도. 내가 그들을 모두 죽게 했어. 원래는 죽지 않았어야 하는 사람들이었는데.”
전부 다 죽고 말았다. 죽어야 할 사람은 저였는데. 죽으려 했는데.
“심장에 검을 박아 넣고, 죽음에 기대어 네가 없는 세상에서 도망치려 했어. 이렇게 널 만나게 될 줄은 몰랐고, 사랑할 수 있을 줄은 몰랐는데……. 사랑하고야 말았어. 어린 너마저 내 사랑으로 더럽히고 말았어.”
죄를 하나씩 고백할 때마다 기갈이 일었다. 바짝 마른 입 안이 전부 헐어 버릴 것만 같았지만 에드문트는 인내했다.
“엘리. 이러다 내가 너를…… 다시 죽게 하고야 마는 건 아닐까.”
답이 필요치 않은 물음이었다. 에드문트는 확신하기를, 가을이 되면 아름답게 피어날 엘리아를 결국 죽음으로 몰아갈 건 제 어리석음이었다.
욕망이었다. 더럽고 음습해 차마 밝힐 수 없는 그의 비밀이 여자를 죽이고 말리라.
“……엘리. 네가 갖고 싶었어. 네게 사랑받고 싶었어.”
여자를 소유했노라 자만했고, 잃고 나서야 후회하고는 다시 돌려받았다 착각했다.
이번에는 사랑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영원할 줄 알았다.
한데 영원이 무엇인가. 그는 이제 당장 앞날을 그릴 수도 없는 처지였다. 모두 제가 여자의 사랑 하나 얻어 보겠다고 엉망으로 만든 탓에.
바뀐 세상에서 크라우제 후작을 상대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엘리아를 무사히 보호할 수 있을까.
방화, 독살, 납치…… 무수한 위협 속에서 과연 여자를 지킬 수 있을까.
한때는 자신이 있었다. 저를 전부 불살라서라도 지키겠다 맹세했다.
“미안해 엘리. 나는……. 자신이 없어.”
그러나 이제, 에드문트는 낯선 무력감을 고백했다.
“너를 다시 죽게 하느니, 차라리 내가 죽지 말았어야 했는데. 스물여덟의 너를 추모하며 살아갔어야 했는데. 네게 돌아오지 말았어야 했는데.”
남자는 죄를 지었음을 깨달았다. 이미 죽은 아내도 모자라, 열여덟의 연인마저 죽게 할 처지였다. 돌이키려 해도 돌이킬 수가 없다는 점까지 남자가 무너지는 속도를 부추겨 댔다.
“사랑받지 말았어야…… 네게 사랑해 달라며 다가가지 말았어야 했는데.”
마음이 전부 메말라 바스러진 자리 위에 꽃잎이 떨어졌다.
“돌아갈 수 없는 걸 알면서도 돌아가고 싶어. 엘리아 네가 죽었던 시간으로, 내가 죽지 않았던 시간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게 아닐까. 돌아가야만 하는데.
* * *
그렇게, 남자는 죽음으로 갈구했던 사랑을 놓아 버렸다.
동시에 다시 얻은 삶마저 죽음에게 넘기려 들었다. 차라리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까닭에.
<아이야. 너를 또 만나는구나.>
죽음이 그의 체념을 향해 반갑게 속삭였다. 아무도 품어 주지 않는 남자를 품어 주겠다면서.
<어서 내 품으로 오렴. 다시 새빨갛게 물들인 심장을 들고, 죽음 가득한 세상에 너를 추락시키거든 내가 네 절망마저 모조리 집어삼킬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