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유예
부모님이 죽었다.
마차 사고로. 하필 엘리아가 작은 개구리 죽는 모습을 보고 충격에 빠진 다음 날. 하필 앞이 안 보일 만큼 세찬 비가 내리던 날.
엘리아는 여덟 살이었다. 새파랗게 어린 나이는 언제나처럼 엘리아에게 변명거리가 되어 주었다.
나는 고작 여덟 살에 부모를 잃었고, 이유를 알고 싶은데 사람이 죽는 데에 무슨 이유가 있어야 하는 줄은 잘 몰라서 내 탓을 했노라고.
‘전부 나 때문인 줄, 알았는데. 그냥 빗길에 난 사고라길래, 원망할 대상이 없길래 전부 내 탓이라 생각했어.’
그러나 열셋. 엘리아는 부모가 남겨 준 흔적을 통해 깨달았다. 원망해야 할 사람은 자신이 아니었음을.
황제로 옹립하려던 1황자가 사망하며, 로앙가와 라스페가는 순식간에 사지에 내몰리게 되었다. 굶주린 짐승 떼 앞, 다리가 부러진 사슴으로 전락할 운명이었다.
남은 희망은 1황자의 딸, 벨레노아 백작을 황제로 옹립하는 것. 그러기 위해선 2황자에게 반격할 수단이 필요했다.
급사한 1황자가 사실 살해당했다는, 심지어 그를 살해한 게 친형제인 2황자였다는 것을.
3황자조차 차기 권력을 약속받아 살해에 가담했음을 증명할 수만 있다면, 상황은 역전될 수 있었으리라.
권력을 위해 친족을 살해한 2황자를 누가 황제로 떠받들고 싶어 하겠는가.
‘1황자가 살해당했다는 걸 밝히는 게 로앙과 라스페에게 마지막 희망이었을 테고, 2황자에게는…… 최후의 결전이었겠지.’
그러니 엘리아의 부모와 라스페 공작 부부는 비가 와도, 누군가 마차를 망가뜨린 흔적을 발견했어도 백작가에 내려가 살인의 증거를 손에 넣어야만 했다.
하나 결국 2황자가 3황자 일파의 도움을 받아 로앙과 라스페를 살해했으니, 마차 사고라는 거짓 아래로 1황자 시해 사건의 진실마저 파묻히고 말았다.
‘누구였을까. 누가 부모님이 탄 마차에 손을 쓴 거였을까.’
배신자는 공작가의 사람이었을까? 혹은 백작 부부가 죽고 난 뒤 로앙을 떠난 가신 중 하나였을지도.
아무도 몰래 마차를 망가뜨리고, 이어 그들의 삶마저 망가뜨렸을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들은 전부 알고 있었겠지. 외젠이랑 에드문트도.’
열댓 살 먹은 학생들 틈바구니에 끼어 몇 년 더 이른 수업을 듣는다고 제가 대단한 사람이 된 줄 착각했다.
단 한 번도 사람들이 자신에게 거짓말을 했을 거라고 의심한 적 없었다. 하여 상상해 본 적도 없었다. 부모의 죽음에 관한 진실과 마주하리라고는…….
‘단순한 마차 사고가 아니었어.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니었고.’
혼란스러웠다. 대체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하는 걸까.
침묵한 외젠과 에드문트에게 배신감을 느껴야겠지. 스스로의 아둔함을 비난하며 후회의 눈물을 흘려야 하리라.
뒤늦게 부모의 원수를 찾았으니, 복수심에 불타야 마땅할 텐데.
엘리아가 가장 처음 느낀 건…….
‘나 때문이 아니었어. 애초에 나를 원망하고, 죄책감 느낄 필요가 없었던 거야.’
안도감이었다.
부모가 너무 그리워 앓던 아이는 비로소 죄책감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엘리아는 책상 위에 흩트려 놓은 종이를 전부 치워 버렸다. 그러고는 어쩐지 무겁게 느껴지는 몸을 이끌고 침대로 향했다.
까슬까슬한 침구 위에 몸을 던지자, 살갗에 닿아 오는 감촉은 가을바람처럼 서늘했다. 얼굴에 닿은 침구를 부모의 가슴팍 삼아 한껏 비볐다.
그날, 엘리아는 꿈을 꾸었다.
<아가. 보고 싶었어.>
보고 싶어 늘 소원을 빌었던, 간절히 그리워하던 부모를 만나는 꿈을 꾸었다.
* * *
학술원의 기숙사에서 쓰러져 잠든 뒤 일어나니 한밤중이었다. 눈을 뜨기가 무섭게 익숙한 통증이 밀려왔다. 열병이 휘몰아치고 간 흔적들이었다.
“아가씨, 좀 괜찮으세요?”
“……루아. 나 분명 학술원에 있었는데…….”
“기억 안 나세요? 학술원에서 쓰러지셨잖아요. 하마터면 큰일 날 뻔하셨어요.”
어쩐지 몸이 무겁게 느껴진다 했더니. 침대에 누우려 했을 때 이미 열이 있던 모양이었다.
4층 사용인은 학술원에서 로앙가에 엘리아가 아프다고 연락을 넣었고, 외젠이 급히 찾아가 저택으로 데려왔다고 설명해 주었다.
쓰러진 지 벌써 사흘이나 지났다는 것도.
“외젠이랑 데이지는?”
“주인님께서는 급한 일 때문에 외출하셨다가 조금 전에 오셨고, 데이지도 여태 아가씨 간호해 드리다가 주인님 마중 때문에 방금 자리 비웠어요. 불러 드릴까요?”
“아니, 괜찮아.”
아가씨의 병치레에 익숙한 사용인이 몸을 닦아 준 뒤 방을 나섰다. 혼자 남은 엘리아는 쓰러지기 전 기억을 곱씹었다.
‘외젠이랑 이야기해야겠어.’
물어볼 게 너무나도 많았다. 저도 이제 다 안다고, 알고 있으니까 이제 마차 사고라고 거짓말해도 소용없다고 말하고자 했다.
외젠에게 따져 물을 생각을 하자, 텅 비어 있던 머리에 화가 스멀스멀 차올랐다.
‘언제쯤 나한테 진실을 알려 줄 생각이었을까. 설마, 평생 마차 사고라고 믿게 하려던 건 아니었겠지? 그럼 정말 화낼 거야.’
근처에 놓여 있던 숄을 덮어쓰고 3층으로 내려가니 문틈으로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마 방을 드나들던 누군가가 깜빡하고 열어 둔 모양이었다.
복도 바닥에는 문이 열린 모양을 잡아다가 바닥에 죽 끌어 내린 것처럼, 빛으로 만든 그림자가 새겨져 있었다.
까만 캔버스 위에 샛노란 물감을 죽 그어 낸 자국 같았다.
어둠 속에 있던 엘리아가 샛노란 빛 속에 발을 담그려 할 때였다.
“부모님의 죽음이 단순한 사고는 아니었을 거라고 짐작은 하고 있었으니,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어.”
하필 방 안에 있던 외젠과 데이지는 부모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놀란 엘리아는 불빛에 닿기 직전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런데 막상 크라우제 후작에게 살해당했다는 말을 들으니……. 그 인간이, 태연자약하게 부모님 장례식에 조의를 표한다며 찾아왔던, 그때 본 얼굴이 생각나서…….”
외젠의 목소리는 눈보라가 되다 만 겨울 폭풍우에 젖어 있었다. 추위에 앓느라 무참히 떨면서 절박하게 살려 달라고 외치는 소리 같았다.
“외젠 님…….”
턱턱 끊어지는, 울음소리가 이어졌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마지막이었는데……. 나는, 그게 너무 화가 나서…….”
데이지가 함께 눈물 흘리며 그를 다독였다.
문 뒤에서 숨죽여 울고 있던 엘리아는 타인을 위로하는 소리를 훔쳐 들으며 눈물을 삭였다.
“……엘리한테는, 이야기하지 말아 달라고 했어.”
눈물을 삼킨 외젠이 말을 이었다. 밖에서 엿듣고 있는 줄도 모르고, 그는 엘리아에게 부모의 죽음을 비밀로 하겠다고 이야기했다.
“적어도 엘리아만큼은 부모님이 그저 큰 고통 없이, 원망할 대상은 운명 하나뿐인 죽음을 맞이했다고 여기며 살게 하고 싶어.”
“외젠 님, 그래도 아가씨도 아셔야…….”
“데이지, 나도 옳지 않다는 거 알아. 그렇지만 엘리아까지 같은 처지로 만들고 싶지 않아.”
“…….”
“이야기를 듣고 다시 황궁으로 돌아오니 모든 게 달라져 있었어. 이미 짐작하고 있던 비극을 에드문트가 말로 확인시켜 준 것뿐이었는데.”
나무를 두드리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외젠이 생전 마셔 본 적도 없는 독주를 꺼내 연신 제 입에 부어 대는 소리였다.
엘리아는 제 오라비의 목소리가 참 쓰게 들린다고 생각했다.
그게 목소리를 타고 복도까지 달아난 술 냄새 때문인지, 아니면 말소리에 그의 아픈 속내가 절절히 묻어난 탓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어느 쪽인들 제 하나뿐인 가족이 슬퍼함은 변치 않았기에 같이 아파했다.
“황궁에 있는 크라우제 후작의 일파들, 황제파들……. 그들이 뻔뻔하게 내 앞에서 웃어 대는 꼴을 보니 미칠 것 같았어. 우리 삶을 전부 망가뜨렸으면서……. 그냥, 전부 죽여 버리고 끝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우습지. 여태 잘만 외면하고 살아왔으면서, 이제 와서.”
에드문트와 대화를 마치고 돌아간 황궁은 어제와 오늘이 다르지 않았다.
부모가 살해당했다는 사실 역시 어제가 오늘이 되었다고 달라진 건 아니었다.
한데 전부 달라졌다.
그를 지나가는 사람들, 스치는 시선에 외젠은 일일이 분노했다. 아무 죄악감 느끼지 못하는 그들을 향해 닥치는 대로 검을 휘두르고 싶었다.
<이미 알고 있겠지만 확실히 언급해 두겠네, 로앙 백작.>
무너지려는 감정을 버티게 한 건 라스페 공자의 말 한마디뿐이었다.
<자네 복수심은 내 일에 하등 도움 되지 않아. 그러니 침묵하게. 복수는 완벽해야 할 테니까.>
그는 자각한 분노와 복수심을 에드문트가 말한 ‘완벽함’이라는 말에 의지해 버틸 수밖에 없다.
완벽한 복수를 위하여.
“엘리 그 애까지 이런 지독한 복수심과 무력감에 갇혀 살게 할 수는 없어. 학술원에서 매일같이 크라우제가의 핏줄들과 황제파의 자식들을 마주쳐야 할 텐데, 그 심정이 어떨지 알면서 엘리에게 이야기할 수가 없다고.”
“라스페 공자께선 그럼…… 동의하신 건가요?”
“동의했어. 애초에 사건을 공론화할 생각도 없다고 하더라. 그날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증거는 다 소실되었고, 마차에 손댄 크라우제 후작 측 하수인도 잡히기 전에 죽었으니까.”
에드문트는 진실을 밝히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리하여 외젠도 포기해야 했다.
“차라리 다행이야. 엘리아에게 부모님이 살해당했다는 걸 밝히지 않아도 되니까.”
“그럼 아가씨는……. 외젠 님, 정말 엘리 아가씨가 모르는 채로 살길 바라세요? 두 분이 남매인데 혼자만 짊어지시려고요?”
“상관없어, 데이지. 나는, 나는 그 애가 아플 때마다 속이 죽어 가는 것 같아. 그 애가 다시 죽어 가던 때로 돌아갈 것만 같아서……. 그게 너무 무서워. 그러니 차라리 내가 전부 짊어진 채 살겠어.”
당장이라도 방에 뛰어 들어가 말하고 싶었다. 제게 비밀을 만들려는 외젠을 향해 전부 말해 주고 싶었다.
그러나 엘리아는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방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했다.
‘가서 무슨 말을 하려고. 전부 알고 있으니 괜찮을 거라고? 아무도 안 믿어 줄 텐데. 오늘만 해도 사흘 동안 기절해 있었잖아. 게다가 내가 아는 체하는 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거지?’
엘리아는 복도에 쭈그리고 있던 몸을 일으켰다. 두 사람이 있는 방에서 새어 나온 빛줄기가 만든 곧은 선을 따라 걸었다.
4층으로 돌아가는 내내 그 선을 한 번도 넘지 않았다.
‘말하지 않으면. 아는 척하지 않으면. 그럼 나는 적어도 외젠에게는 부모가 살해당한 가엾은 애가 아니게 돼. 그게 외젠이 원하는 거잖아.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사는 거. 때때로 부모의 복수를 하지 못했다고 슬퍼할 리 없는 삶을 누리기를 바라는 거잖아.’
외젠이 가지지 못한 삶을, 돌려받을 수 없는 삶을 엘리아는 살아갈 수 있었다.
그건, 사실 전부 알고 있는 엘리아에게는 거짓말이 될 테지만…….
‘영원히 내게 숨기는 건 아닐 거야. 지금은 다들 너무 힘드니까. 내가 너무 어리고…… 아파하니까. 나를 위해서 비밀로 하는 거잖아.’
그들의 삶 역시 거짓이 되리라. 엘리아는 아무것도 모를 거라는 착각 속에서 안도하겠지.
그렇게 살면 안 되는 걸까.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원망하고, 미워하기도 하는데.
침묵하는 것뿐인데.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지 않길 바라며 그저 웃어 주기만 하려는 건데.
이불을 뒤집어쓰고, 눈을 감았다. 빗소리인지 울음소리인지……. 그냥, 바람 부는 소리인지.
방 안에 낮게 깔린 소음에 파묻혀 잠을 재촉했다.
“엘리, 몸은 좀 어때. 괜찮아?”
다음 날, 외젠은 피곤한 얼굴이었고 마음이…… 많이 아파 보였다.
“응, 나 열 많이 내렸어. 놀라게 해서 미안해.”
엘리아는 모르는 척을 했다. 어설픈 거짓말이 들킬까 봐 숨을 곳을 찾아 헤맸다.
“……외젠. 있잖아. 내가 안아 줄까? 안아 주고 싶어.”
저를 다정하게 감싸 주는 외젠의 품에, 엘리아가 불안함을 꼭꼭 감추었다.
외젠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무것도 모를 제 동생의 시선을 피한 채 낮은 한숨을 흘렸다. 날숨과 함께 흩어진 죄책감이 엘리아의 시야 뒤편에 일렁이다 사라졌다.
“있잖아. 나 다음에는 좀 덜 아플게. 그 다음번은 더 적게 아플게. 그럼 언젠가 하나도 안 아프게 될 거야.”
엘리아는 안 아프겠다는 말 대신, 덜 아프겠다고 약속해 주었다. 조금씩 시간이 지나다 보면 아프지 않을 날도 올 거라 속삭여 주었다.
술 냄새가 가시지 않은 몸이 그의 웃음소리를 따라 흔들렸다.
따듯한 안도감에 파묻혀 서로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것도, 그저 전부 미루었을 뿐이라는 것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