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5. 여덟 살 (45/79)

45. 여덟 살

“아가씨. 엘리 아가씨.”

여덟 살. 새파란 이파리가 바람 따라 너울대던 봄.

눈을 감으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이름 모를 아이들의 목소리. 웃음소리.

겨울이 떠난 흔적처럼 피어나던 들꽃을 닮아 작고 여리던 생명들.

“엘리 아가씨, 같이 놀아요. 머리 예쁘게 땋아 드릴게요.”

“저도요. 저도 이제 땋을 줄 알아요.”

그 시절 로앙가에는 아이들이 참 많았다. 기사의 딸, 보좌관의 아들, 사용인의 손자와 손녀들, 부모 손잡고 저택을 찾아온 상단주의 자식들…….

불안한 정세 탓에 로앙과 주종 관계에 놓인 이들이 수도에 피난 오듯 집결한 탓이었다.

그러나 젖내 나는 아이들 웃음소리에, 같이 놀자며 저를 채근하는 목소리에는 이름이 없었다. 아이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바람 타고 온 꽃씨처럼 내려앉아 놀다가, 이름 하나 남길 새 없이 다시 훌쩍 떠나곤 했으니까.

그 빈자리를 체감하기도 전에 새로운 아이들이 찾아와 자리를 메우던 시절이었으니까.

하여 기억 속 아이들은 죄 이름이 없었다. 얼굴마저 희미했다.

그날, 엘리아의 머리를 양 갈래로 땋아 주었던 아이는 누구였을까.

“아가씨, 오늘 머리가 구불구불해요. 아마 오늘 비 올 건가 봐요.”

“별관 가서 놀아요. 저희가 저번에 청소했어요. 이제 먼지 없어요.”

공사를 앞두고 비워 둔 별관으로 저를 이끈 건 누구였을까.

함께 가구를 옮기다 부서진 바닥 위를 폴짝폴짝 넘어 다니고, 벽지를 새로 바르기 위해 한쪽에 몰아 둔 가구 위로 누가 먼저 올라가나 시합을 했는데.

“아가씨, 저기 정문 밖에 애들 엄청 많아요. 다 거기서 놀고 있어요. 우리도 가요.”

정문 앞에 모여 개미 떼처럼 바글바글하던 아이들 사이로 엘리아를 데려갔던 건 누구였을까.

다들 어디로 가 버린 걸까.

원망하려고, 그래서 궁금해한 건 아니었다.

“뭐 하는 거야?”

“여기 봐요, 아가씨. 바보 같은 개구리가 마차 오는데 개굴개굴만 하다가 죽어 버렸어요!”

“터져 버렸어요!”

실은 조금, 원망하고 싶었을지도.

함께 별관에서 어울려 놀던 아이들을, 옹기종기 모여 마차에 깔려 죽은 개구리를 구경하던 아이들이…….

“개구리 죽었어?”

“죽었어요. 바보같이 짐마차 오는데 안 피하고 울기만 하다가, 배 빵 터져서 소리 났어요.”

“거짓말! 아무 소리도 안 났거든?”

“맞거든?”

이름도 모르던 그들 목소리가, 기억 속에서 도무지 사라지질 않는 걸 보면.

원망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럼 개구리 잡아 와서 시험해 보자. 이따 또 마차 올 거니까.”

“도망가면 어떻게 해?”

“그럼 또 잡으면 되지! 누구 개구리 잡을 사람!”

아이들이 길가의 작은 도랑에 너도나도 뛰어들었다. 죽은 개구리 옆에는 엘리아와 서너 명의 아이들만 남았다.

바닥에 붙은 개구리는 아이들이 한창 나뭇가지로 찌르고 발로 꾹꾹 눌러 댄 탓에 형체가 남아 있질 않았다.

어린 엘리가 보기엔 그냥 초록색 이파리에 흙이 잔뜩 묻은 것 같았다.

그런데도, 도무지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

엘리아가 우두커니 흙더미를 바라보는 사이, 한 아이가 뒤늦게 호기심 동했는지 나뭇가지를 주워 개구리를 꾹꾹 눌러 댔다. 그러다가…….

“개굴.”

“꺄악!”

나뭇가지 끄트머리에 쿡 꿰이고 말았는데, 하필 옆에 웅크리고 있던 아이가 개구리 울음소리를 흉내 냈다.

아이는 개구리가 살아나 움직인 줄 알고는 놀라 엉엉 울기 시작했다.

“바보야. 울지 마. 개구리 죽었어.”

엘리아는 우는 아이를 달래 주겠다고 바닥에 나뒹구는 개구리를 나뭇가지 채로 주워다 길옆으로 집어 던졌다.

“개구리 없어 이제. 그러니까 울지 마.”

“근데요, 아가씨. 애들이 개구리 또 잡아 터뜨린대요.”

“아가씨는 개구리 안 무서우세요? 배가 빵 터져 죽었는데……. 불쌍해요.”

“뭐가 무서워. 하나도 안 무서워.”

여덟 살. 외젠이 그림을 그리면 저도 그림을 그려야 하고, 데이지와 테오가 검 연습을 하면 옆에서 나뭇가지라도 휘적거려야 직성 풀려 하던 고집쟁이 엘리아는 그날도 고집을 부렸다.

“아가씨, 어디 가세요?”

“나도 개구리 잡을 거야.”

하나도 안 무섭다며, 기어코 아이들의 잔혹한 놀이에 끼어들었다.

* * *

해가 질 무렵이 되자 엘리아의 고불고불한 머리칼 위로 빗방울이 점점이 쏟아졌다.

“비 오는데. 이제 그만 가자.”

빗줄기가 점점 굵어질 기세에 도랑에 모여 놀던 아이들이 각자의 장소로 흩어졌다. 엘리아도 손에 숨겨 두고 있던 개구리 한 마리를 놓아주고 저택으로 돌아갔다.

“엘리 아가씨.”

저택 앞에는 유모 대신 데이지가 커다란 수건을 들고 엘리아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는 길에 비를 흠뻑 맞은 아가씨를 수건에 돌돌 감싸 폭 끌어안아 주었다.

“오늘은 뭐 하셨어요?”

“애들이랑 밖에서 놀았어. 저기 도랑에서.”

“정문 근처에 있는 도랑요? 거기까지 가셨어요?”

데이지가 개구리 있던 도랑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척하자, 엘리아는 흠칫 놀라 품에 엉겨 붙었다.

응석 부리는가 싶어 데이지가 엘리아를 훌쩍 들어 안았다.

따듯한 품 속에서, 엘리아는 억지로 기억을 떨쳐 냈다.

<아가씨, 빨리요. 다른 애들은 개구리 다 잡았어요.>

터져 죽은 개구리를 외면한 엘리아가 막 도랑으로 향했을 때, 아이들은 그새 작은 개구리를 한 마리씩 잡아 길 위로 올라오는 중이었다.

<마차 온다!>

마침 멀리서 오는 마차 한 대에 흥분한 아이들이 서둘러 길에 개구리를 흩뿌려 대곤, 숨죽인 채 마차가 지나가길 기다렸다.

엘리아는 아이들이 길 위에 시선을 쏟는 틈에, 몰래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귀를 막았다. 혹시 개구리 우는 소리가 들릴까 봐.

마차가 요란한 진동을 남기고 떠났고, 아이들 떠드는 소리만 시끄럽게 남았다.

<소리 들렸어?>

<아니, 다 도망간 거 아냐?>

<아니야……. 봐 봐, 다 죽었어! 빵 터져서 죽었어!>

<또 잡자. 이번엔 더 큰 거로. 그럼 소리 날지도 몰라.>

아이들이 죽은 개구리 앞에서 깔깔대는 사이, 한쪽에서는 잔뜩 화가 난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 마. 개구리 불쌍하잖아. 그만하라고!>

아까 죽은 개구리에 놀라 울던 아이였다. 그러나 개구리를 연민하는 아이를 향해 아이들은 되레 겁쟁이라며 놀려 댔다.

결국, 그 아이 혼자 울상 짓다가 다른 곳으로 가 버리고 말았다.

엘리아는 축 처진 채 떠나가는 아이를 바라보다가, 개구리 잡는 아이들 틈바구니에 끼었다.

<아가씨, 아직 한 마리도 못 잡으셨죠. 잡는 거 알려 드릴까요?>

<……응. 알려 줘.>

남들 두세 마리 잡는 동안, 엘리아는 고작 작은 개구리 한 마리 잡는 게 전부였다.

봄꽃 피기 전 꽃나무에 움트는 이파리처럼 손가락 위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아마 초록색 물감 위로 새하얀 물감을 잔뜩 섞어야만 같은 색을 만들 수 있으리라.

<개구리가 안 우네.>

책에서처럼 개굴개굴 울 줄 알았는데. 처음 잡아 본 개구리는 제 손가락 위에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엘리아는 도랑 끄트머리에 앉아 내내 그 한 마리에 열중했다.

<저기, 마차 또 온다!>

마차 구르는 소리에 신이 난 아이들이 다시 길 위에 올라갔다. 엘리아는 멀리서 희뿌연 흙먼지를 일으키는 마차를 보고는 개구리를 쥔 손을 등 뒤로 숨겨 버렸다.

<아가씨, 또 한 마리도 못 잡으셨어요?>

<……응. 못 잡았어. 어렵다.>

비가 와 놀이가 끝날 때까지, 엘리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쁜 일인 줄 알았으면서. 그런데도 개구리가 불쌍하다고 말하다 놀림만 받고 돌아가야 했던 아이처럼 되고 싶지 않아서.

겨우 한 마리 제 손 안에 몰래 숨겨 주었을 뿐.

“나 아무것도,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놀았어.”

데이지의 품에 안겨, 아무것도 하지 않은 저를 위한 변명을 해 보았지만…….

쉽게 잠들지 못했다.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엘리아는 자정이 훌쩍 넘어서도 내내 개구리를 떠올려야 했다.

간신히 잠들었을 때, 꿈에 개구리가 나왔다. 손바닥에 몰래 숨겨 주었는데, 속도 모르고 폴짝폴짝 뛰어 마차 앞에 앉았다.

개굴. 개굴.

어린애가 흉내 내는 듯한 이상한 울음 울더니, 마차 바퀴 아래로 쏙 사라져 버렸다.

‘팡’ 하고 터지는 소리가, 들렸던가…….

* * *

“아가씨, 일어나세요. 오늘 일찍 일어나기로 하셨잖아요.”

다음 날, 아침이 되었는데도 비가 그칠 기미가 없었다. 비는 마치 한여름을 앞둔 장마철처럼 기세를 더해 갔다.

“비가 많이 와서 큰일이네. 마차는 결국 수리 못 한 거지?”

“응, 그래서 공작 부부께서 타고 오시는 마차에 합승하시려나 봐.”

“……있잖아. 나는 두 분께서 공작가 사람들이랑 어울리지 않으시면 좋겠어. 그 사람들 너무 음산하지 않아?”

“쉿, 아가씨 계시는데 말 함부로 하는 거 아니야.”

“근데 다들 그렇게 생각하던걸? 나중에 그런 집안에 가서 살아야 할 아가씨가 너무 가여워.”

악몽에서 깬 엘리아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움직이지 않았다. 애꿎게도 이불을 꼭꼭 덮어 봐도 소리는 틈을 비집고 엘리아를 찾아왔다.

빗방울이 창 두드리는 소리, 사용인들이 백작 부부의 일정을 염려하는 소리, 어린 아가씨를 연민하는 소리.

그러나 말소리는 빗소리에 눌려, 그리고 빗소리는 다른 소음에 눌려 어린 엘리아에겐 의미가 전달되지 않았다.

엘리아의 귓가에 오직 한 가지 소리만 요란했다. 귀를 막아도, 사라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아가씨, 주인님이랑 주인마님 외출하시는데 배웅해 드려야지요.”

사용인들에게 억지로 이끌려 옷을 갈아입고 엘리아는 1층으로 향했다. 공작가의 마차를 기다리던 엘리아의 부모님이 아이의 뚱한 표정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왜 그러니 엘리?”

품에 안겨 얼굴을 비비던 엘리아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고백했다.

“……개구리가 시끄러워서 싫어.”

침실을 나온 뒤에도 비 쏟아지는 소리 틈새로 개구리 우는 소리가 요란했다.

워낙 빗소리가 큰 탓에 무척 희미하게 들렸는데, 엘리아는 개구리가 너무 크게 운다며 계속 칭얼거렸다.

“비가 와서 기뻐서 우는 거란다.”

“나는 하나도 안 기뻐. 다들 나한테 뭐라고 하는 것 같아.”

조잘대는 엘리아에게 부모는 쉴 새 없이 입을 맞춰 주었다. 공작가에서 찾아온 커다란 마차가 멈추고 나서야 부부는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고 마차에 올랐다.

“엘리, 금방 올 테니 외젠이랑 데이지 말 잘 듣고.”

오늘따라 유독 애정을 고파 하는 아이가 눈에 밟혀 부부는 몇 번이나 아이를 돌아보았다. 둥근 이마에, 말랑한 양 볼에 연신 입을 맞추어 주며 애정을 표현해 주었다.

“금방 올게. 알았지?”

사랑한다고, 금방 올 테니 하루만 기다리라며 달래는 말도 끊임없이 해 주었다.

안타깝게도, 아이는 전해 받지 못했다. 얼마나 사랑하는지. 꼭 늦지 않게 돌아오겠다는 그들의 약속마저도.

‘비가 너무 많이 와. 그리고 개구리가 너무 많이 울어.’

개구리 우는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부모가 남기고 간 마지막 인사까지 잡아먹고 말았으니까.

“방에 갈래. 옷 젖는 거 싫어.”

이불 속에 숨어 소리를 피하고 싶어서, 엘리아는 부모님이 탄 마차가 다 떠나기도 전에 도망쳐 버렸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 * *

그날 오후. 비를 뚫고 급보 하나가 찾아왔다.

“마차가…… 주인 부부께서 타신 마차가, 추락했다고요?”

백작 부부가 탄 마차가 빗길에 미끄러져 절벽 아래로 추락했다는 비보였다.

모두가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이, 데이지는 다급히 엘리아의 침실로 뛰어갔다.

“왜 울어? 데이지, 왜 계속 울어? 아파서 그래?”

계단에서 두 번이나 넘어져 팔다리에 상처를 매단 채, 데이지는 엘리아를 세게 끌어안았다.

이어 학술원에서 돌아온 외젠이 엘리아와 데이지를 찾아왔다.

“외젠, 데이지 울어. 데이지가 많이 아픈가 봐.”

“엘리, 데이지…….”

데이지 안 아프게 해 달라고 한 말이었는데, 외젠은 두 사람을 끌어안고 서럽게 울었다.

아직 아무것도 모를 어린 동생에게 말을 해 줘야 하는데, 열다섯 외젠이 입을 열라치면 서러운 울음만 더욱 쏟아졌다.

“엘리, 부모님께서…… 그러니까, 하늘에…….”

눈물로 안개 낀 말이 무슨 의미인지 깨닫기란, 어렵지 않았다.

‘마차’, ‘개구리’, ‘하늘’.

‘마차’, ‘부모님’, ‘죽음’…….

기묘하게 겹치는 단어 속에서 엘리아는 죽음이라는 단어를 끄집어냈다.

엘리아는 개구리를 떠올렸다. 연녹색 개구리가 길바닥에 풀썩 떨어지는 소리를. 멀리서 마차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다가오던 소리를…….

<아가씨, 개구리 죽었어요. 배 빵 터져서 소리 났어요.>

개구리 우는 소리를 들었다. 꽉 닫아건 창문 너머로 들릴 리 없는 소리를.

“……엄마랑 아빠가, 죽었어? 돌아가셔서, 이제 다시는 못 보는 거야?”

숨죽여 울던 데이지가 아픔을 토해 내고, 고개를 끄덕여 준 외젠이 두 사람을 세게 끌어안았다.

“엄마랑, 아빠가…….”

그제야 엘리아도 눈물을 흘렸다.

엉엉 우는 소리는, 마차를 기다리던 개구리의 울음처럼 들렸다.

* * *

날이 밝자마자 로앙가에 두 구의 시신이 도착했다.

“시신 확인이 끝나면 라스페가에 안치하여 장례 준비를 하겠습니다. 벨레노아 백작께서 두 가문의 임시 대리인으로서 장례를 주관하실 겁니다.”

“……알겠습니다.”

외젠이 직접 사고로 엉망이 되었을 시신을 확인해야 했다. 데이지가 그의 손을 꼭 잡은 채 함께 관을 향해 걸었다.

“뭐 하는 거야? 누가 온 거야?”

외젠과 데이지가 관 앞에서 무릎 꿇고 오열하였다. 종기사 테오의 품에 안겨 있던 엘리아는 그 모습을 보고 내려 달라며 버둥거렸다.

“나도, 나도 갈래. 외젠이랑 데이지 하는 거 나도 할래.”

“안 돼요, 아가씨……. 보시면 안 돼요.”

“왜. 왜 안 되는데? 나도 다 알아, 엄마 아빠잖아. 엄마 아빠 온 거잖아.”

테오가 울음을 꾹 눌러 참으며 엘리아를 끌어안았다. 그럴수록 엘리아는 더욱 버둥거렸다.

‘개구리처럼, 마차가 엄마 아빠를 펑, 터뜨려 버렸어?’

엘리아는 차마 물어볼 수가 없었다. 말을 꺼낸 순간, 관에 누워 있을 엄마와 아빠가 흙바닥에 나뒹굴던 개구리처럼 될 것만 같았으니까.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다 알게 되지 않겠는가.

“나도 볼 거야. 나도……. 엄마아……. 아빠아…….”

전부 엘리아의 탓이라고. 엘리아 때문에 마차에 깔린 개구리처럼 죽어 버렸다는 걸 알게 될 테니까.

<……개구리가 시끄러워서 싫어.>

<비가 와서 기뻐서 우는 거란다.>

<나는 하나도 안 기뻐. 다들 나한테 뭐라고 하는 것 같아.>

개구리 우는 소리는 이제 아이에게 원망으로 들리게 되었다. 새파란 개구리들이 꽥꽥 대며 엘리아가 제 친구들을 죽였다 비난했다.

겨우 작은 개구리 한 마리 숨겨 준 거로 용서받으려 한다고 화를 냈다.

이내 늘 단짝처럼 함께 쏟아지는 빗소리마저 엘리아를 비난하는 소리가 되었다.

“엘리, 이제 우리 둘이서 살아야 해.”

빗소리를 닮은 외젠의 눈물, 데이지의 울음마저 저를 원망하는 것 같았다.

혹시나 제가 개구리가 죽는 걸 막았다면 달라졌을까.

개구리 소리가 듣기 싫다고 부모에게 일찍 등 돌리는 대신, 평소처럼 저도 데리고 가 달라고 졸랐으면 부모는 죽지 않았을까.

마음속에 품은 죄책감을 털어놓았다면, 부모가 죽은 게 전부 다 제 탓 같다며 엉엉 울었으면. 그럼 말해 주었을 텐데.

네 탓이 아니라고 엘리아를 다독여 주었을 텐데.

‘나 때문이야. 개구리 죽이면 안 된다고, 죽는 거 불쌍하다고 말해야 했는데. 그 애처럼 말해서 못 하게 해야 했는데.’

우연히 벌어진 일에 죄책감 느낄 필요 없다고 스스로를 달래기엔 엘리아는 너무 어렸다.

개구리 탓을 하며, 제 탓을 하는 편이 엘리아에겐 훨씬 받아들이기 쉬웠다.

실로 어린애다운, 그리고 어린애답지 않기도 한 생각들이 쌓이고 쌓여 엘리아를 세게 짓눌러 댔다.

‘다 나 때문이야. 벌 받은 거야.’

그렇게 엘리아가 스스로 만든 죄악감에 서서히 물들어 가는데, 아무도 몰랐다.

“아가씨, 옷 입는 거 도와 드릴게요.”

“어디 가는데?”

“장례식요. 두 분께…… 마지막 인사드리러 가는 거예요.”

“거기 가면 엄마 아빠 볼 수 있어? 나도…… 봐도 돼?”

비밀이었으니까. 누군가에게 말하게 되면 비난받을 게 분명한 죄였으니까.

그리하여 장례식이 끝나고 돌아온 날, 엘리아는 푸른 괴물이 나오는 꿈을 꾸었다.

개구리처럼 커다랗게 벌린 입에 꿀꺽 삼켜지는 바람에, 꿈에서 깨고도 너무 아팠다.

“엘리 아가씨, 괜찮으세요? 아가씨!”

“어쩜 좋아. 열이 너무 심하신데…….”

지독한 통증에 아이는 정신을 잃었고, 의원들이 온갖 처방을 내렸지만 엘리아는 더 아파하기만 했다.

열이 걷잡을 수 없이 치솟아 급기야 초봄에도 얼음이 어는 지하 창고에 아이를 눕혀 열을 식혀 보려고도 했다.

‘추워, 추워…….’

몸이 산산이 조각나는 듯한 통증에 낯선 한기까지 들이닥쳐, 엘리아는 비명을 질러 댔다. 희미한 의식 속에서 제가 푸른 괴물에게 잡아먹힌 거라고 생각했다.

구해 달라고 빌었다. 빌었는데, 누구도 그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비명은 소리가 되지 못한 채 아픈 몸 안에서 메아리쳤다. 그래서 엘리아 역시 바깥의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제발, 엘리. 너까지 가지 마. 나만 남겨 두고 가 버리지 마. 어머니, 엘리아까지 데려가지 마세요. 제발…….”

의원의 비관적인 말에 절망하는 외젠의 목소리도, 제가 대신 죽을 테니 살려 달라 애원하는 데이지의 목소리마저 스스로의 비명에 잡아먹히고 말았으니.

‘소리가…….’

개구리가 엘리아를 원망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아파하는 동안은 아무도 자신을 원망하지 않기에, 참 다행이라 여겼다.

* * *

해가 저문 어둑한 밤. 장례식이 끝나고도 로앙가의 비극은 끝날 줄을 몰랐다.

“고모님께서 소송하겠다 통보하셨어. 아버지가 후계자를 지정하지 않은 채 돌아가셨으니 본인에게도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려나 봐.”

외젠이 몇 해 전 작위에 뜻이 없음을 고한 탓에, 로앙 백작 부부는 후계자를 지정하지 않은 상태였다.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꿈이 작위를 노리는 친척들에게 빌미가 될 줄 알았더라면 이루지도 못할 꿈은 포기했을 텐데.

“라스페 공자에게 도움을 받기로 했어. 그쪽도 상황이 좋지 않아서 염치없지만, 고모님뿐만 아니라 친척들이 전부 크라우제 후작가와 결탁한 상황이니 잘못하면 정말 작위를 빼앗길지도 몰라.”

“……저, 외젠 님.”

“왜 그래, 데이지. 혹시 나 없는 새에 또 무슨 일 있어?”

“실은 로앙가 소유의 상단 지분과 부동산을 동결하겠다는 통보가 왔어요. 무슨 일인지 알아보던 중이었는데, 설마 소송 때문일 줄은…….”

장례식이 끝나기가 무섭게 외젠의 친척들이 작위와 재산을 노리는 수십 개의 소송을 걸어왔다.

3황자 일파가 귀족원 소속 재판관 자리를 독점했으니, 3황자파로 변절한 외젠의 친인척들이 소송을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부모, 재산, 친인척들이 차례로 로앙을 떠난 자리에 남은 건, 사람뿐이었다.

죽은 백작 부부 곁에서 일하던 수많은 가신과 사용인들.

“죄송합니다, 도련님.”

그들마저 어린 남매를 두고 제 살길을 찾아 떠났다.

저택에는 갈 곳 없는 어린 사용인들, 그리고 불쌍한 남매를 차마 외면하지 못한 선량한 이들만 남았다.

외젠은 남은 사람들과 함께 가문을 보호하고자 이를 악물었다.

저보다 한참 어린 에드문트에게 굽신거리며 도움을 청했고, 때론 소송을 건 친인척을 찾아가 무릎 꿇기도 했다. 제발 저와 누이 불쌍히 여겨 숨통만 틔워 달라고.

목이 쉬도록 동정을 구하고 저택에 돌아와서도 외젠은 한숨 돌릴 틈이 없었다.

“데이지, 엘리아는 좀 어때?”

죽어 가는 건, 가문뿐만이 아니었으므로.

장례식 후 엘리아는 보름 동안 죽음의 경계를 오갔다. 의원들은 그토록 열이 높았는데도 몸이 망가진 곳 없이 회복했으니 기적이라 입 모아 말했다.

그러나 엘리아는 겨우 몸만 괜찮아졌을 뿐이었다.

통증이 가시자 아이의 귓가에는 다시 비가 쏟아졌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 하나하나가 비이성적인 죄책감을 강요하며 아이를 갉아먹으려 들었다.

<싫어, 싫어…….>

엘리아는 발버둥 치며 소리가 죽어 버리길 빌었다. 여의치 않자, 제가 죽어 버리려 했다.

병상에서 일어나자마자 엘리아는 침실 문을 걸어 잠그고, 식사를 비롯한 모든 행위를 거부했다. 문을 부수어 아이를 끄집어내고, 입을 강제로 벌려 약을 밀어 넣어야 했다.

외젠과 데이지는, 절반만 살아남고는 그 나머지도 스스로 죽이려는 엘리아와 맞서야 했다.

“오늘은 도저히 안 돼서 억지로 몇 술 드시게 했는데……. 결국 다 토하셨어요.”

“그렇게라도 먹여야지.”

잠금장치를 다 뜯어낸 침실 문을 열었으나 엘리아는 보이지 않았다. 외젠은 침착하게 방 구석구석을 살피기 시작했다.

침대 아래와 욕실을 차례로 확인한 뒤, 일렬로 배치된 옷장을 하나씩 하나씩 열었다.

“엘리.”

엘리아는 그중 샛노란 봄옷을 넣어 둔 옷장에 뒤엉겨 있었다. 작게 웅크린 모습이 꼭 죽어 가는 새끼 고양이 같았다.

“엘리, 나 왔어. 응? 인사 안 해 줄 거야?”

온종일 음식을 토해 댔을 아이가 외젠의 손길에 다시 미약한 저항을 보였다. 외젠은 억지로 아이를 안아 들어 침대에 옮겨 주었다.

“……고 싶어. 죽고 싶어. 엄마랑 아빠 없어서 나는 죽었으면 좋겠어.”

죽고 싶다는 말을 읊조리는 동생을 침대에 눕혀 이불을 덮어 주었다. 머리끝까지 덮어 준 뒤에야 아이의 소리가 멎었다.

‘죽고 싶다니. 너는 그게 무슨 뜻인지는 알고 하는 걸까.’

몇 번을 들어도 아픈 말이었다. 앓다 저까지 죽을 고통이었다.

데이지가 곁에서 그를 지탱해 주지 않았으면 진작, 부모의 무덤 앞에서 해서는 안 될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

“제발, 엘리……. 부탁이니까, 너까지 날 버리지 마. 내가 어떻게든 지켜 줄게. 그러니까…….”

외젠은 이불째 아이를 안고서 울다 잠이 들었다. 그러면 또 아침이 오고, 저 좀 불쌍히 여겨 달라 빌다가 저택에 돌아와 다시 엘리아를 품에 안은 채 울며 하루를 끝맺고.

다시 아침이 찾아오고.

남들한테는 살려 달라고 빌고, 아이한테 살아 달라고 빌었다.

그게 꼭, 개구리가 원망하는 울음소리같이 들리는 줄도 모르고. 두 사람은 서로 아픈 모습에 상처를 입어 가며 꾸역꾸역 살아갔다.

* * *

돌이켜 보면, 내내 꿈을 꾸고 있었다.

봄이 지나 여름이 찾아오고, 녹진한 습기가 가셔 청량한 가을이 올 때까지. 엘리아는 긴 꿈을 꾸었다.

맑게 갠 창문 너머로 해가 들어와도, 쏟아지는 햇빛을 온몸으로 받으면서도 엘리아는 빗소리를 들어 왔다.

누군가가 저를 원망하는 소리를 들었다.

<…….>

낮에는 데이지가 내내 붙어 저를 돌보았다. 무어라고 말을 걸었는데, 빗물에 잠긴 아이에겐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꿈을 꾸는 줄로만 알았다.

<…….>

밤에는 외젠이 저를 억지로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비구름 잔뜩 몰린 하늘에 또 비가 내렸으니, 그마저 꿈인 줄 알아 기대했다.

‘꿈이니까, 기다리면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날도 엘리아는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헤치고 부모님이 돌아오게 해 달라고 소원을 빌었다.

“엘리, 나 왔어.”

저녁이 되자 외젠이 돌아와 엘리아를 옷장 안에서 끄집어냈다. 저항할 힘도 없었으니 가만히 품에 안겨 비가 쏟아지길 기다렸다.

한데 그날은 빗소리 대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오늘 오랜만에 에드문트 공자를 만났어. 못 본 새 키가 더 컸던데, 여전히 말수는 없더라. 잘 지냈냐는 말에 대답도 안 해 줬고.”

“…….”

“나까지 아무 말 안 하기는 뭐해서, 우리 이야기를 했어. 생각해 보니 누군가와 평범한 이야기를 한 지가 오래되었더라. 공자에게도, 데이지에게도. 그리고 엘리 네게도.”

그는 에드문트에게 했던 이야기를 엘리아에게 그대로 옮겨 들려주었다. 마치 전부 괜찮았던 옛날처럼.

공자님. 벌써 가을이군요. 시간이 참 빠르지요.

“엘리, 벌써 가을이 왔어. 네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 말이야.”

곧 제 동생 생일인데, 선물을 무얼로 할지 고민입니다. 작년에는 가을마다 꽃이 필 나무를 한가득 사다 심었는데…….

“다음 주면 네 생일이고, 지난해 정원에 심은 나무엔 꽃이 잔뜩 피었어. 얼마나 예쁜지 몰라.”

에드문트는 듣기 싫다는 기색도, 흥미롭다는 기색도 없이 외젠의 이야기를 들어 주었다.

그러고는 딱 한마디 대꾸했다.

<꽃이 필요한 거라면 정원에서 가져가게. 생일 선물은 집사가 준비해 보낼 테니 그리 알고.>

외젠은 그 대답을 듣고는 그만 웃고 말았다.

제가 하도 에드문트에게 바라기만 했더니, 엘리아 이야기마저 생일을 챙겨 달라 요구하는 거로 오해한 모양이었다.

그걸 또 들어주겠답시고 꽃을 꺾어 가라 허락해 주었으니…….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외젠은 오해를 푸는 변명 대신, 감사 인사를 전했다.

“네 생일이 가까워졌다 하니까 정원에서 꽃을 꺾어 가라 하더라. 그래서 염치 불고하고 한 송이 얻어 왔어. 네게 보여 주고 싶어서.”

그는 잠이 들 때까지 엘리아에게 꽃 이야기를 했다.

공작가에서 꺾어 온 꽃이 얼마나 예뻤는지, 로앙가에 핀 꽃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가을을 가득 담은 꽃 이야기를 속삭여 주다 잠이 들었다.

엘리아도 그의 품에 안겨 잠이 들었고, 꿈을 꾸었다.

그날도 부모님을 만나고 싶다는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신 엘리아는 주홍빛 꽃이 나오는 꿈을 꾸었다. 낯선 얼굴의 아이가 제게 주홍색 꽃을 한 아름 안겨 주고 떠나갔다.

<엘리, 생일 축하해.>

선물만 주고 등 돌려 떠나기에 급히 쫓아갔는데…… 얼굴도 못 보고 깨어나야 했다.

꿈에서, 깨어났다.

“엘리?”

긴 꿈에서 깨어나 처음 만난 건, 화병에 예쁘게 장식된 주홍색 꽃이었다. 늘 죽은 듯 누워 있기만 했던 엘리아가 처음으로 꽃을 향해 손을 뻗었다.

활짝 핀 꽃잎에 채 닿기도 전에 팔이 풀썩 떨어졌다. 외젠이 급히 엘리아에게 다가와 쓰러지지 않게 잡아 주었다.

“엘리, 꽃……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

화병 속 꽃 하나를 꺼내 엘리아의 무릎에 올려 주니 엘리아의 시선이 꽃을 잠시 담았다가, 외젠을 향해 왔다.

처음이었다. 움직이고, 반응을 보이고, 눈을 마주치는 게 전부 몇 달 만에 처음이었다.

“외젠.”

“응, 그래 엘리.”

“나…… 꿈꿨는데. 엄청 오래 잤어.”

“그랬구나. 꿈…… 우리 엘리. 좋은 꿈 꾸었고?”

외젠은 환한 웃음과 함께 눈물을 쏟았다. 품에 꼭 안긴 엘리아가 따듯함을 느끼다 깨달았다.

‘비가 그쳤네.’

빗소리가 들리지 않음을. 더는 춥지 않음을.

“그냥 꿈이었어.”

길었던 꿈이, 잠시나마 끝났음을.

4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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