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3. 다가오다 (33/79)

33. 다가오다

대화가 평범한 주제로 돌아오자, 한스는 다시 거들먹거리며 ‘동시대를 사는 사람으로서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될 명작’이라는 미사여구와 함께 소설책 한 권을 추천했다.

표지부터가 ‘한스의 추천작답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화려하기 짝이 없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도입부에는 그렇게 시선을 끄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습니다. 전개가 답답한 부분도 있고요.”

“흐음.”

“아, 잠시만요. 실망하시기엔 이릅니다. 앞부분에 지루한 것만 좀 참으면 뒤에 재미와 감동을 모두 잡은 구간이 기다리고 있거든요. 지루함을 버틸 가치가 충분합니다.”

“정확히 어디서부터 재밌어진다는 거죠?”

“설마, 서얼마 알려 드리면 거기서부터 보시려고요?”

엘리아는 아주 당연한 걸 묻는다는 투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천연덕스러운 모습에 한스가 고개를 과장되게 흔들었다.

“알고 보니 성격 급하신 분이셨군요. 그래서 학술원도 남들보다 일찍 졸업하셨습니까?”

“너무 확대 해석인 것 같은데. 어딘지 진짜 말 안 해 줄 거예요?”

“아가씨의 즐거운 취미 생활을 지켜 드리려면 어쩔 수 없지요. 미리 알고 보면 재미가 아주 후드득 깎여 내려갑니다.”

“알았어요. 정 그렇다면야 참고 읽어 볼게요.”

“아마 저한테 아주 고마워하시게 될 겁니다.”

한스는 아까 나누던 대화를 지워 버리려는 듯 연신 과장되게 거들먹거렸다. 왠지 얄미워서 한마디 안 할 수가 없었다.

“음. 아까 내 편 들어 준다고 확실히 말해 주었으면 더 고마워했을 테지만. 어쨌든 재밌다는 말 믿어 볼게요.”

다시 돌아온 주제에 움찔거리는 한스를 보고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어 준 엘리아는, 먼저 찾아 둔 철학서 위에 한스의 추천작을 겹쳐 올렸다.

에드문트가 직접 찾아 준 고루한 철학집 해설서가 화려한 소설책 뒤로 쑥 숨어 버렸다.

“…….”

엘리아는 그걸 빤히 바라보다가, 괜히 불편한 마음이 들어서는 두 책의 위치를 바꿔 버렸다.

어떤 의도가 담긴 행동인지 한스가 알 리 없다고 여기면서도, 내심 눈치가 보여서는 괜히 이롬 시대의 철학서에 다시 관심이 생긴 척 꺼내 훑어보았다.

대강 몇 장 뒤적거리다 놓고 옆을 보니, 한스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지레 찔린 엘리아가 눈부터 흘겼다.

“왜요, 왜 쳐다봐요?”

“취향이 대단히 폭넓으시다 싶어서요. 그거 정말 이롬 시대의 철학서입니까?”

“내 취향이 아니고, 누구 빌려줄 책이에요.”

“아, 아가씨의 젊은 유모 말이지요? 이름이…… 데이지라고 했던가요?”

유모라는 단어에 엘리아는 고민하다가 고개를 살랑였다.

“진짜 유모는 아녜요. 그냥 남들에게 설명하기 애매하니까 둘러댔더니, 언제부턴가 다들 데이지더러 내 유모라고 하더라고요. 나중에는 데이지 본인도 ‘제가 그 유모입니다.’라고 말하고 다니고.”

“본래 유모 없이 자라셨습니까? 간혹 귀족가에서도 그런 곳이 있던데.”

“글쎄요. 사실 아주 어릴 때는 어떻게 자랐는지 몰라요. 물어볼 만한 사람이 없었으니까.”

엘리아의 대답에 아차 싶었던 한스가 서둘러 사과하려고 했다. 그러나 엘리아는 독특한 취향이라고 평가받는 낡은 책 표지로 시선을 돌린 채 그를 제지했다.

“한스, 사과할 필요 없어요.”

이미 두 글자를 뱉었던 한스가 입을 딱 다물어 남은 사과를 삼켰다.

사과를 거부하는 엘리아의 목소리는 담담해 보였다. 아마 남들에게 괜찮다고 말하는 데에 익숙해진 탓이리라.

“내가 어린 시절에 관해 물어볼 곳이 없는 게 한스 탓은 아니잖아요? 물론 내 탓도 아니고요.”

“아니지요. 누구의 탓도…… 아니겠지요.”

한스는 엘리아의 마지막 말을 따라 읊으면서, 죄책감을 느끼고 말았다.

로앙 백작 부부의 죽음이, 어린아이 둘을 두고 눈을 감아야 했던 두 사람의 삶에 정녕 책임질 사람이 아무도 없던가.

‘후우. 다들 너무한 거 아닌가? 아가씨가 부모의 죽음을 두고 누군가를 원망하지도 못하게 만든 거잖아.’

만약 한스의 목숨이 한 대여섯 개쯤이었다면, 그는 넘치는 오지랖과 에드문트 라스페를 향한 약간의 반항심을 원동력 삼아 엘리아에게 떠들어 댔을지도 모르겠다.

정말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생각하냐고. 단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느냐고.

그렇게 떠들어 대면, 아가씨는 뭐라 반응하실까.

함부로 입 열고 만 한스가 죽음으로 갚아야 할 정도로 크게 앓으시려나.

‘만약이란 것, 슬픔을 감당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그 젠장맞을 ‘만약’이 없었으면 여기까지 오진 않았을 텐데. 성년을 앞둔 여자를 혼자 모르게 두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

아마 모두 그 작은 가능성이 몰고 올 결과가 두려워서, 입에 올리지 않았으리라.

한스는 답답했지만, 어찌 이해해 볼 수도 있었다. 두려워서, 그리고 원망 받고 싶지 않아서 침묵하는 마음은 그 역시 다르지 않았으므로.

‘당신 부모가 얼토당토않은 개죽음을 당했다고, 그러니 황제와 황후를 마음껏 원망하시라고. 뻔뻔하게 장례식까지 찾아왔다는 크라우제 후작과 3황자를 원망하시면 된다고. 말을 했어야지.’

그리고 당신의 앞에서 침묵한 사람들을 원망하시라, 당신을 제외한 모두가 죄인이니 마음껏 붙잡고 원망하시라고 고백해야 하리라.

‘처음에. 차라리 처음에 말했어야지. 제 부모 따라 죽을까 봐 겁나서 아무 말도 못 했다니. 때를 놓쳐 버리고 나니까 다들 말할 수가 없잖아.’

이미 때는 늦고 말았고, 영원한 비밀은 없을 테니 언젠가 누군가는 원망 받아야 한다.

엘리아 로앙의 눈물을 받아 내야 하고, 대가를 치러야 한다.

‘아마도, 로앙가의 사람들이. 그리고 이제는 에드문트 라스페 공작까지. 젠장. 공작님이 아가씨에게 관심을 두기 전에, 그 전에 로앙가에서 먼저 대가를 치렀다면 좋았을 텐데.’

한스는 진심으로 그 점이 유감스러웠다. 엘리아가 진실을 알기 전에 약혼자에게 다가가는 바람에 에드문트 라스페마저 로앙가의 사람들과 공범이 되고 말았다.

‘나야 뭐, 명령이라 어쩔 수 없었다고 핑계 대면 그만이니 상관없다고. 한데 공작께선 그렇게 넘어갈 수가 없는 처지잖아?’

차라리 공작이 로앙가보다 먼저 선수 쳐서 알리는 게 낫지 않을까?

‘그래. 지난번 보고서. 그게 자백을 준비하는 거였을지도.’

하지만 황후를 흠모하던 올리브인지 뭔지 하는 황후의 사람을 마주하고 난 뒤로 공작은 모든 일을 멈추고 말았다.

‘아직도 이해가 안 되는 게, 올리버 그 새낀 대체 뭐였냐고. 뭔데 공작이 갑자기 당장 죽여 버리겠다고 난리를 쳤던 거지? 게다가 전에는 경력 많은 도살자처럼 깔끔하게 손보시더니. 그놈은 뒤처리하는 사람들이 끔찍하다고 할 정도로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건 또 뭐 때문이었느냐고.’

올리버의 시체를 떠올린 한스는 눈앞에 엘리아가 있다는 것도 잊은 채 혼자 진저리를 치고 말았다.

누구처럼 표정 숨기는 데 일가견 있는 건 아니었으니, 마주 보고 있던 한스의 이상 행동에 엘리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새 옷을 입어서 그런가, 목이 좀 까끌까끌해서…… 참나. 10골드나 주고 산 건데. 몇 번 입다 보면 나아지겠지요.”

한스는 급한 대로 엘리아가 알고 싶어 하지도 않을 자신의 새 옷 이야기를 꺼내 변명했다.

“뭐라고요? 10골드라고요?”

엘리아는 1골드면 충분히 살 수 있겠다 싶은 셔츠 가격을 듣고는 기함해서, 수상쩍던 한스의 표정 생각은 새까맣게 잊고 말았다.

“말도 안 돼. 상식 밖의 폭리를 취하는 건 사기라고요.”

엘리아는 이내 한스를 앞에 세워 놓고는 열변을 토했다.

“아가씨 말씀 듣다 보니 제 조부님이 떠오르는군요.”

“참으로 명민하시고, 또 핵심을 잘 파헤치는 사람인가 보네요.”

“시장에만 가면 꼭 ‘이걸 76펜이나 받아먹겠다고? 재룟값으로 7펜도 안 들였을 거면서!’라고 말씀하시거든요.”

“……내가 평소에 그런 말 하는 거 어떻게 알았어요?”

애초에 이기고 지는 게 존재하지도 않는 토론이었지만 아무튼 엘리아는 한스에게 진 기분이었다.

“한스, 다음에 데이지랑 그냥 아무 주제로 이야기해 봐요. 누가 이기나 궁금해 죽겠으니까.”

“그 사용인이 아가씨보다 한 수 위라면, 저는 자신 없는데요.”

“그래서 하라는 거예요. 말로 데이지를 이기는 사람 못 봤거든요. 가끔 외젠이 불쌍하다고 일부러 져 줄 때 빼고는.”

“저도 불쌍한 척을 하면 먹히려나요? 혹시 그렇게라도 해서 이기면 보상 있습니까?”

“1골드짜리 셔츠 사 줄게요. 안 깔끄러운 거로.”

농담인지 진담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엘리아의 태연한 대꾸에, 한스는 책장에 기대어 끅끅거리며 웃고 말았다.

‘아, 웃으면 안 되는데. 호위 놈들이 내가 아가씨랑 시시덕거렸다고 공작께 다 일러바칠 텐데.’

한스는 눈치를 보느라 우는 것처럼 웃어 대는 바보 같은 모습이 되었으나, 엘리아는 그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소리 높여 웃었다.

‘에라 모르겠다. 설마 뭐, 나더러 왜 같이 웃었느냐고 물어보겠어?’

괜히 머리 굴려 대던 한스는 그냥 엘리아를 따라 해맑게 웃어 버렸다.

자신의 바보 같은 꼴을 보고, 웃음소리를 듣고 상심한 듯 보였던 아가씨가 조금이라도 더 많이 웃기를 바라며.

* * *

“에디가 좀 시간이 걸리나 보네요. 무슨 일 때문에 벨젠 경과 이야기 중인 거죠?”

한참 신나게 웃고 난 엘리아가 벽에 걸린 시계를 흘끗 보고는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던져 왔다.

“으음…….”

엘리아와 묘한 동지 의식이 생긴 한스가 살짝 흔들렸지만, 보좌관 자리를 오랫동안 지켜 10골드짜리 셔츠를 마음껏 살 수 있는 봉급을 받고 싶었기에 입을 다무는 쪽을 택했다.

“죄송합니다. 혹시 다른 이야기로 만회하는 걸 허락해 주신다면…….”

“됐어요. 내가 다른 생각 못 하게 하려고 꺼내는 이야기 다 재미있긴 한데, 오늘은 한참 이야기했으니 다음 기회로 미룰게요.”

엘리아는 새침하게 대꾸하더니 탁자에 올려 둔 책을 들고 서고 중앙으로 걸어가 버렸다.

책을 대신 들어 줄 기회, 그리고 아가씨를 핑계로 실컷 수다 떨 기회를 빼앗긴 한스는 호위들 옆으로 돌아가 입을 다물고 있어야 했다.

이제 막 입이 풀린 차였던 그에겐 사실상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내가 같이 실컷 웃어 놓곤 도로 입 다물어서 화가 나셨나?’

한스의 다분히 자기중심적인 추측과 달리, 엘리아는 딱히 화가 난 게 아니었다. 그저 에드문트에 이어 한스와 신경전을 연속으로 해 댄 바람에 피곤했을 뿐이었다.

‘지친다. 겨우 반나절 만에…… 에디를 보러 오는 일이 이렇게 힘들 줄은 꿈에도 몰랐어.’

엘리아는 잠시 머리를 비우고 싶어서 푹신한 쿠션에 몸을 맡긴 뒤 책을 뒤적거렸다. 화려한 겉면과 달리 책 본문은 정갈한 글씨가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한스의 추천작은 확실히 엘리아가 서점에서 골라 온 두꺼운 소설책보다는 재미있었다. 역시나 사랑 이야기가 섞여 있긴 했지만.

‘그래도 이제는 좀 알 것 같긴 해. 왜 다들 사랑 이야기를 쓰는 걸 좋아하는지, 다른 사람 사랑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지.’

겪어 보지 않으면 모른다더니. 엘리아는 이제야 사람들이 왜 사랑을 탐독하고, 듣고 싶어 안달인지 깨달았다.

마음 한편이 간질간질하여, 옆에 아무렇게나 던져 둔 담요라도 끌어안고 싶을 정도로 아득한 고양감을 가져오는 게 사랑이었다.

하나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닥쳐오는 고난, 의심……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버거운 짐 또한, 사랑이었다.

‘진짜 사랑은 삼키기 힘들 정도로 시큼한데, 그럼에도 단맛이 기다릴지는 확신할 수 없으니까. 책으로만, 향으로만 잠깐 음미하는 편이 훨씬 더 나을지도.’

엘리아는 한스가 추천해 준 두꺼운 소설책을 넘기며 머릿속으로는 제 사랑에 대해 생각했다.

닿아 오는 감정이 버거워지면 그냥 덮어 버리면 그만일 책 속 사랑과 달리, 엘리아의 사랑은 현실이었다. 피하고 싶어 눈을 감으면 귀로, 귀를 막으면 향취로 존재를 자각해야 했다.

에드문트에게도 마찬가지이리라.

‘우리의 이야기가 만약, 한 권의 책이라면.’

오르골 위의 소년이 등 뒤에 숨기고 있던 푸른색 책. 혹은 서로의 마음이 엇갈리는 탓에 안타까움만 주는, 소설책이라면.

에드문트와 엘리아는 어디쯤일까? ‘두 사람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맺음말이 적힌 마지막 장까지는 얼마나 남았으려나.

행복하게 끝날까? 아니면 함께 본 연극처럼…… 눈물짓게 하고도 ‘그래도 행복하다.’라고 위안하게 될까.

두꺼운 책 한 권은 벌써 절반에 다다랐다. 어느덧 한스가 ‘꼭 여기까지 버텨야 한다.’라고 말했던 절정이 곧 머지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행복해지려나?’

서로를 바라보며 원망하고, 의심하고, 후회하던 일들이 모두 끝나고 행복해질까. 혹은, 남의 불행과 견주어 위안 받고 싶다는 속 좁은 마음에 응답하듯 슬픈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까.

“아가씨, 공작님께서 들어오십니다.”

마지막 한 장을 남겨 두고 고민하던 엘리아는 책을 닫아 버렸다. 행복하든, 행복하지 않든 아무래도 좋을 한 권의 책 대신, 서고의 나무 문이 열렸다.

진갈색 쿠션에 앉은 채, 활짝 열린 문을 바라보니 그가 있더라.

속을 알 수 없다 싶다가도, 결국 그도 나와 별다를 게 없는 사람이구나 싶은 약혼자.

엘리아의 사랑.

“에디, 어서 와. 기다렸어.”

얼굴을 찌푸리게 할 만큼 까끌까끌하고, 화를 내고야 말 정도로 두렵고, 밉고…… 그렇게 시큼한 맛이 나는 걸 뻔히 알면서도 사랑을 한 입 베어 물고야 마는 건. 단순한 이유 때문이리라.

속이 너무 달아서. 포기할 수가 없을 정도로 달콤한 걸 이미 알고 만 탓에.

‘나는 너로 인해 상처 입고도 포기할 수 없으리라는 예감이 들어. 에디 너도 나와 같겠지. 장갑에 손을 꼭꼭 숨겨 내야 나에게 닿을 수 있을 정도로 아파하면서, 포기하지 못하는 거겠지.’

에드문트는 아주 천천히 거리를 좁혀 다가왔다.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는 소리는 두껍게 깔아 둔 융단에 잡아먹혀 들리지 않았지만, 대신 에드문트의 마음이 들렸다.

조금 더, 다가가도 되는 걸까 궁금해하는 그의 망설임에…….

“보고 싶었어.”

엘리아는 허락의 의미를 담아 대답했다. 보고 싶었다고.

“겨우 두 시간 채 되지 않았는데 보고 싶었다고 말하면, 어린애 같은가? 그래도 보고 싶었는데.”

여자가 너무 솔직하게 군 탓에, 성급하게 그를 재촉한 탓에. 남자는 다시 멈추어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여자는 후회하지 않았다. 불쌍한 남자는, 여자에게서 등 돌릴 수 없을 테니까.

잠시 멈추었던 걸음이 전보다 조금 빨라졌다. 금세 엘리아가 고개를 바짝 들어야 볼 수 있을 만큼 가까워졌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괜찮다는 거짓말, 도망치듯 네가 나가 버려서 속상했다는 대답 대신 엘리아는 자신을 주었다.

손을 내밀자 에드문트가 엘리아의 작은 손을 받쳐 잡아 주었다. 그를 괴롭혔던 손. 그러나 결코 놓지 못해 아파하고야 만 체온을.

“차향이 정말 좋다. 서재랑 잘 어울려.”

따듯한 차가 기다리는 탁자까지 겨우 서른 걸음. 그곳에 닿을 때까지 떨어질 줄 모르던 두 사람의 손도.

잘 어울렸다.

탁자에 다다른 두 사람이 각자의 자리에 앉아야 하는 까닭에, 헤어지고야 말았지만.

맞붙었던 서른 걸음의 순간을 기억할 테니 결국, 다시 또 서로를 붙잡고야 말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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