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0. 사랑 (30/79)

30. 사랑

“필요한 게 있으면 밖에 집사가 대기하고 있을 테니 이야기해.”

“어? 에디 가야 해?”

어쩐지, 대체 왜 이 넓은 공간에 라스페 공작이 앉을 만한 소파 하나 남기지 않았나 싶더니만!

기껏 보고 싶어서 먼저 편지까지 써서 찾아왔는데, 에드문트는 진작 엘리아만 덩그러니 두고 나갈 예정이었던 모양이다.

‘왜 자꾸 도망가는 것처럼 보이지? 내가 무섭나? 그럴 리가. 게다가 나는 너 무서워했을 때도 도망 안 갔다고!’

엘리아는 하마터면 로앙가 저택에서 외젠에게 하듯 ‘가지 마!’라고 목소리를 높일 뻔했으나 무사히 참아 내었다.

‘너무 어린애 투정처럼 들리지 않으면서, 붙잡아 둘 방법 없으려나?’

엘리아는 혼자 자기 싫다고 징징거리는 아이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정말 최선을 다했다.

“에디, 너무 쉬지도 않고 일만 하는 거 아니야? 조금만 앉아 있다 가. 마차 타고 왔다 갔다 해서 힘들 텐데. 그러니까, 바쁘지 않다면…….”

편지 한 통에 로앙가까지 찾아와 주었으면서, 겨우 얼굴 잠깐 보고는 집무실에 간다는 게 말이 되는가?

더듬더듬 에드문트를 설득하던 엘리아가 살짝 눈을 돌렸더니, 저 뒤에서 한스가 엘리아에게 ‘조금만 더 힘내세요! 제발요!’라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지금 저택에서 가장 절박하게 에드문트가 쉬기를 바라는 사람을 꼽자면, 엘리아는 한 세 번째쯤 되겠고 당연히 공작이 지긋지긋한 한스가 독보적인 1등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 흐르던 긴장은 허무하게 끝이 났다. 당연히 엘리아의 승리였다.

“……한스.”

“옙, 읽으실 서류 바로 챙겨 오겠습니다!”

이름만 불렀는데 얼마나 잽싸게 대답하고 튀어 나가는지. 엘리아가 그 모습을 보고 채 다 숨기지 못한 웃음소리를 흘렸다.

이제 휴식과 수다에 목마른 한스가 사라진 서고에는 엘리아와 에드문트, 그리고 문 앞에서 호위를 서는 기사 네 명만이 남았다.

“고마워. 그…… 에디는 한스 씨가 가져다주는 서류 읽을 거지? 나는 뭘 읽을까. 여기 책 너무 많아서 고르는 데만 해도 한참 걸리겠어.”

“장서 목록 준비해 두었으니까 먼저 살펴봐.”

“장서 목록? 이게 장서 목록이야? 그냥 책 한 권이라고 해야 할 것 같은데?”

“추리 소설은 여기에 적혀 있을 거야.”

엘리아는 서고에 있는 책 정보와 구매 이력 따위를 기록해 놓은 장서 목록을 받아 들었다.

맨 첫 줄에는 40여 년 전 구매한 역사서 해석본에 대한 정보가 쓰여 있었다.

“목록 1번은 이롬 시대 역사서 해석본이네. 40년 전이면…… 아마 에디의 조부모님이 구매하신 거겠다. 좋아. 나는 추리 소설 말고 이 목록부터 읽어 볼래. 에디도 같이 볼래? 한스 경 오기 전까지 심심하잖아.”

엘리아는 수천 권의 책을 두고 장서 목록을 소설책 삼아 읽겠다면서 커다란 쿠션으로 향했다.

‘데이지가 만들어 준 거에 한 다섯 배는 더 큰데. 내 침대보다도 더 큰 것 같아.’

서고에 잘 어우러지는 진갈색 천을 쓴 쿠션은 엘리아가 몸을 전부 뉘었는데도 두 명은 더 누울 수 있을 만큼 공간이 남았다.

“에디, 안 오고 뭐 해? 다른 책 골라 오려고?”

에드문트는 쿠션 위에 풀썩 엎드린 엘리아를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러다가 엘리아의 질문을 듣고서야 고개를 살짝 저었다.

평소보다 반응이 한참 느린 모습에 엘리아는 의아함을 느꼈다.

‘기껏 누워서 보라고 쿠션까지 준비해 줬으면서, 어색해서 그런가? 하긴. 외젠도 내가 한번 누워 보라고 할 때마다 바닥에 왜 눕냐고 질색하긴 했지.’

거부감을 느끼는 걸 이해할 수는 있었지만 그래도 엘리아는 한 번은 눕게 하고 싶었다.

“어색해서 그러지? 속는 셈 치고 한 번만 누워 봐. 엎드리는 게 불편할 것 같으면 그냥 침대에 눕듯이 천장 보고 누워도 되고.”

엘리아의 재촉에도 에드문트는 도통 앉을 줄을 몰랐다. 어색함이니 부끄러움이니 하는 건 상관이 없었다.

다만 에드문트는, 엘리아가 아무런 경계심 없이 편히 누운 모습을 바라보느라 움직이지 못할 뿐이었다.

긴 옷자락이 말려 올라가 살짝 드러난 종아리, 낙낙하게 재단한 옷감이 축 내려앉으며 그려 낸 곡선, 엎드린 채 두 팔로 상체를 들어 그를 향해 온 얼굴.

“에디.”

잠시 그의 이름을 담느라 벌어진, 입술. 호기심이 어려 있는 눈동자. 어깨선을 따라 흘러내려선 날개 뼈 언저리에 맺힌 백금색의 머리칼…….

에드문트는 눈앞에 펼쳐진 엘리아의 모습을 저항할 줄 모르고 받아들였다.

그렇게 바라보려니 문득 궁금해졌다. 여자의 눈에 비친 남자는 어떤 모습일지.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모습이 어떻게 보일지.

‘다른 화가의 그림을 억지로 맞붙여 놓은 듯, 이질적일 텐데.’

에드문트는 어렵지 않게 캔버스 안에 담길 엘리아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다. 아주 세밀하게 밑그림을 그린 뒤, 밝은 물감을 사용해 채색해 완성한 엘리아의 모습은 그저 아름다우리라.

하나 자신은, 밑그림은커녕 그저 물감을 덜어 내는 도구로 거칠게 윤곽만 나타내도 충분하리라.

“에디, 왜 그래?”

에드문트는 의심했다. 엘리아를 향한 자신의 사랑이 아닌, 그에게 되돌아오는 애정을.

이렇듯 다르기만 한데 어떻게 서로를 마음에 품을 수 있는 걸까.

실로 두렵기까지 했다. 어쩌면 엘리아는 그저 착각한 게 아닐까. 약혼자라는 미명하에 사랑을 요구하는 남자를, 그저 연민해 받아 준 건 아닐까.

‘뒤늦게 깨닫고, 마음을 주었음을 후회하여 떠나 버린다면.’

아직 오지 않은 미래가 미칠 만큼 두려웠다. 두려웠는데, 네가 사랑스러워서 자꾸만 욕심이 나 어떻게든 붙잡고 싶어 발버둥 치고 만다.

적어도, 이질감에 눈살 찌푸리며 찢어 버리고 싶은 존재가 되고 싶지는 않아서. 조금이라도 어우러지는 그림이 되어 곁을 지키고 싶어서.

‘차라리, 네 예쁘장한 눈가를 짓씹고 싶다는 멍청한 충동이나 느끼던 때가 나았던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에드문트는 시간을 들여서라도 천천히 다가가는 법에 익숙해져야만 했다.

에드문트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조급해 보이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엘리아를 향해 다가갔다.

그러곤 천천히 엘리아가 몸을 뉜 쿠션에 걸터앉았다. 최대한 신경을 썼음에도 에드문트의 몸이 내려앉자 엘리아를 지탱하던 솜뭉치가 들썩였다.

‘와…… 아까는 외젠이랑 데이지까지 누울 수 있을 만큼 많이 남아 보였는데.’

겨우 살짝 몸을 걸친 거로도 두셋은 거뜬히 누울 것 같던 공간이 꽉 찼다. 엘리아는 에드문트와 자신과의 체격 차이에 감탄하느라 눈을 반짝거렸다.

살짝 고개를 돌려 엘리아를 바라보던 에드문트가 그 초롱초롱한 눈빛에 살짝 압박감을 느꼈다.

“내가 누우면 네가 불편할 것 같아서.”

“그럼 내가 이렇게 옆으로 가면? 아니면 내가 일단 일어나 볼까?”

에드문트는 이번에는 정말로 곤란함을 느꼈으며, 엘리아도 슬슬 에드문트가 쿠션에 누우라는 부탁을 곤란해한다는 걸 눈치챘다.

그러나 엘리아의 입에서는 ‘에디, 불편하면 그냥 일어나도 돼.’라는 상냥한 말이 나올 줄을 몰랐다.

‘나 진짜 못됐다. 근데 조금만, 조금만 더 나 때문에 곤란해했으면 좋겠어.’

에드문트는 마치 커다란 매 한 마리 같았다. 주인의 부름에 근처 횃대에 앉으려 하는데, 횃대가 무너질까 봐 날개를 접지 못하고 어쩔 줄 몰라 하는 듯 보였다.

커다란 짐승이 어쩔 줄 모르는 채 서성거리는 모습을, 엘리아는 새로 앉을 곳을 챙겨 주는 친절한 주인이 되는 대신 지켜보기만 했다. 너무 귀여워서.

그리고 조금은, 복수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기에.

‘내가 그동안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는데! 잠시 잊었을 뿐이지 아예 없었던 일처럼 지워 버리고 넘어가기엔 억울하단 말이야.’

자꾸 새어 나오려는 웃음을 꾹 참고 한 번 더 그를 채근했다.

“얼른 누워 봐. 응? 딱 한 번만 누워 보고 편하게 있어.”

마지못한 에드문트가 천천히 뒤로 몸을 기울였다. 조심스러운 움직임에 자신 때문에 혹시나 엘리아가 굴러떨어질까 봐 걱정하는 에드문트의 마음이 너무 잘 드러나서, 마음이 너무 간질거렸다.

심장을 간질이는 듯한 감각을 견디지 못한 엘리아가 몸을 살짝 떨었다. 엘리아를 살피던 에드문트가 곧장 반응을 보였다.

“괜찮아. 나 괜찮으니까, 확 누워 버리라니까?”

에드문트가 완전히 천장을 바라보며 눕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엘리아는 그 긴 시간이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

사각거리는 소리가 날 것 같은 짙은 색 머리칼이 천천히 내려오는 모습, 등허리에 전달되는 낯선 감각에 눈을 살짝 찌푸리는 모습까지 마음껏 눈에 담았다.

드디어, 매 한 마리가 작은 나뭇가지 위에서 날개를 접었다.

엘리아는 그의 옆에서 엎드린 채로 턱을 괴어 보았다. 늘 올려다봐야만 했던 에드문트의 얼굴이 바로 지척에, 아래에 내려와 있었다.

“다 왔다. 어때?”

“……조금, 어색한데.”

“긴장하지 말고. 에디, 나 따라서 숨 쉬어 봐. 후우…….”

여전히 긴장을 풀지 못하는 에드문트가 퍽 안쓰러워서, 옆에서 자신을 따라 숨을 크게 들이쉬다가 다시 내쉬게 했다. 다행히 몇 번 반복하니 목덜미를 바짝 굳히던 긴장이 흩어지는 게 눈에 보였다.

‘등 몇 번 도닥여 주면 금방 긴장 풀릴 텐데. 안 되겠지?’

에드문트 대신, 그의 장갑이 ‘안 돼.’라고 대답하는 듯해서 엘리아는 욕심을 접었다.

“에디, 편하게 있어도 돼. 나 안 떨어져. 옆에 자리 많아.”

“음. 나도 괜찮아.”

“원래 그렇게 천장 보고 반듯하게 자? 나는 절대로 똑바로 누워서 못 자. 잠들기 전에 똑바로 누웠어도 일어나 보면 침대 끝에 팔이든 다리든 하나씩 내놓고 뒤집혀 있지 뭐야.”

엘리아는 다리로 쿠션을 통통 튀겨 대며 제 잠버릇을 자랑했다. 한 번 놀려 먹었으니, 제 바보 같은 이야기로 웃게 해 줘야겠다는 책임감이 들었다.

“어릴 때는 아무리 커다란 침대 한가운데 눕혀도 자다가 떨어졌다지 뭐야? 그래서 생각한 게, 바닥에다가 커다란 쿠션 놓고 거기서 재우는 거였대. 아마 그때 기억이 남아서 내가 자꾸 바닥에 눕고 싶어 하나 봐.”

엘리아의 조곤조곤한 이야기에 에드문트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어린 엘리아가 커다란 침대에서 데굴거리다 떨어져 엉엉 우는 모습을 상상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아침이면 침대에 자꾸 위태하게 누워 있었지.’

잠자리를 공유하던 시절, 엘리아는 아침에 일어나 보면 항상 침대 끄트머리에 웅크리고 잠들어 있었다.

‘네가, 자는 때조차 나를 피하고 싶어서 멀찍이 떨어져 있으려 하는 줄 알았는데.’

그냥 잠버릇인 줄 알았으면 떨어질까 위태로운 몸을 그대로 두지 않았을 텐데.

한 번이라도 품에 끌어당겨 안아 봤을 텐데.

에드문트는 자꾸만 떠오르는 씁쓸함을 삼키었다. 나중에, 나중에 다시 꺼내 보고 아파하더라도 지금은 눈앞의 엘리아만을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아주 커다란 침대를 주문해 둬야겠네. 떨어지면 안 되니까.”

“응? 으응.”

약혼자가 침대 운운하는 걸 듣고 당황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엘리아는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이상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그러나 겨우 부끄러워하기만 할 엘리아가 아니었다.

“어릴 때 그랬다니까. 이제는 안 떨어져. 나 어린애 아니야.”

어린애 아니란 말이야. 엘리아가 성에 안 찼는지 마지막 말을 한 번 더 반복했다. 그래 봐야 에드문트에게는 세 살짜리 아이가 ‘저 다 컸어요!’라고 우기는 거나 다를 바 없겠지만.

엘리아는 말해 주고 싶었다. 비록 사랑이 어렵고, 아무것도 모르지만 시간이 자신만 두고 지나가 버리진 않을 테니까.

제게도 가을이 올 테니까.

“봄이 벌써 한창이고, 곧 여름이니까. 여름만 지나면 나 성년이란 말이야.”

“응, 곧 가을이니까.”

“맞아. 가을에…… 어?”

에드문트의 말을 따라 읊던 엘리아가 갑자기 든 생각에 입을 살짝 벌린 채로 멈추었다. 기억을 되새기느라 살짝 찌푸려진 눈 위로 긴 속눈썹이 나풀거렸다.

‘그러고 보니까, 주홍 꽃은 얼마든지 많을 텐데 하필 가을에 피는 꽃뿐이었잖아?’

에드문트가 보낸 선물이 무슨 의미인지 찾아보겠다고 책을 뒤졌을 때, 엘리아의 손이 짚은 곳은 분명 전부 가을꽃 설명이 들어간 장이었다.

“에디, 그래서 가을꽃이었어?”

“응?”

“전에 꽃, 꽃 준 거! 엄청 많이 보냈던 거! 달리아, 메리골드…… 그 꽃들 말이야. 설마 내 생일이 가을이라서였어?”

“맞아. 네 생일이 가을이니까, 가을꽃으로 골랐어.”

에드문트의 잔잔한 목소리가 답을 돌려주자, 엘리아는 줄곧 내려다보던 에드문트와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는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말았다.

에드문트가 장갑 낀 손으로 매만지면, 그대로 얼굴에 핀 다홍빛 꽃물이 묻어 나오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짙은 감정이 드러났다.

‘아, 어쩜 좋아.’

기쁨, 부끄러움, 황홀함……. 색으로 표현하면 모두 심장을 닮은 붉은색에서 퍼져 나왔을 감정들을 눈으로 담게 하는 것도 모자라, 엘리아는 말해 주고 싶었다.

그에게 미래를 약속해 주고 싶었다.

“에디, 나 있잖아. 성년…… 생일 되면. 그때도, 선물로 가을꽃을 주면 안 될까? 그때처럼 많이는 필요 없고. 딱 한 다발만. 내가 품에 안을 수 있을 만큼만.”

“생일 선물로?”

“응, 그리고 가능하면, 아니 꼭. 꼭 에디가 나한테 직접 주면 좋겠어. 아무리 바빠도 직접 줘야 해. 알았지?”

“약속할게. 제일 아름다운 꽃으로 골라서, 선물해 줄게.”

약속을 담은 말에 엘리아가 환하게 웃었다. 사방에 기쁨을 피워 낼 것처럼, 아름답게.

에드문트 역시 엘리아의 미소를 따라 눈을 살짝 접었다. 주홍색 꽃술을 품은 푸른 꽃이 그의 눈에서 피어났다.

두 사람은 같은 모습을, 각자의 시선에서 상상했다.

엘리아, 가을이 되어 너를 닮은 주홍빛 꽃을 한 아름 안은 너는 또 얼마나 아름다울까.

지금처럼 웃으며 나를 바라봐 주는 에드문트 네 모습은 얼마나 황홀할까.

가을 하늘 아래에서, 우리는 아마도 서로를 바라보며 더없이 행복하리라.

그리고 상상만으로도 숨이 막힐 것 같은 이 감정은, 분명 사랑이겠지.

엘리아는 새삼스레 자각했다. 내가 이 사람을 좋아하는구나. 이게 사랑이라는 거구나.

에드문트 또한 이미 사랑하는 소녀를 바라보다 다시, 사랑에 빠지고야 말았다.

“엘리.”

“응, 에디.”

“……도 될까?”

수줍어서 양손으로 볼을 폭 감싸고 있던 엘리아가 눈을 깜박였다. 분명 에드문트의 말을 들었는데, 곧장 이해하지를 못했다. 그를 향해 살짝 고개를 숙여 다시 한 번 말해 달라고 청했다.

남자의 간절함을 실은 탓에 조금 더 무거워진 목소리가 여자를 위해 울렸다.

“한 번만, 내가 닿아 봐도 될까?”

다른 이유는 없고, 그냥. 네가 얼마나 따듯할지가 궁금해서.

내가 그동안 얼마나, 추운 곳에서 외로운 줄 모르고 살았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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