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거짓말
호수에서 돌아온 지 며칠 뒤. 공작가에서 편지와 함께 샛노란 천으로 포장한 선물이 도착했다.
<엘리아에게. 책 두 권은 부족할까 봐 공작가의 서재에서 골랐어.>
편지는 아주 짧았지만, 서점에서 겨우 두 권만 품에 안고 나온 엘리아를 신경 써 준 마음이 그대로 녹아 있었다.
엘리아는 왠지 좋은 냄새가 나는 것 같은 편지지에 코를 묻고 킁킁거리다가 침대에 드러누워 편지를 올려다보았다.
‘좋다. 진짜 좋다.’
침대에 누워서 겨우 한 줄 되는 글을 읽고 또 읽었다.
‘엘리아에게’라고 적은 글씨가 에드문트의 목소리를 들려주었고, ‘책을 골랐다.’라는 글귀는 직접 서재에 들러 책을 살피고 자신을 위한 책을 고르는 에드문트의 모습을 상상케 했다.
‘좋다. 좋은데, 보고 싶다고도 해 주지. 욕심인 거 알지만, 그 한 마디만 더 써 주면 좋았을 텐데.’
에드문트는 다가올 것처럼 하면서도 엘리아가 기다리고 있으면 멀어지기 일쑤였다. 그 때문에 엘리아는 자꾸 파도를 기다리는 아이가 되어야 했다.
여기까지 와 주려나 싶어서 아끼는 신발을 벗고 옷자락을 양껏 올려 잡고 기다리는데, 정작 새하얀 공기 방울과 함께 다가오던 파도가 지척에서 멈춰 서 달아나 버리는 느낌을 받았다.
‘왜일까. 내가 나이가 어리다고 그러는 건가? 아니면 너무 어릴 때부터 봐서?’
좋다고 하면서, 거리를 좁히다 마는 에드문트의 기색은 자꾸 엘리아를 고민하게 했다.
거울을 보고 ‘내가 이 정도면 괜찮은 거 아닌가?’ 싶다가도, 에드문트의 잘난 얼굴을 떠올리곤 다시 침울해지고. 선물 받은 오르골부터 편지, 책까지 일렬로 죽 늘여 둔 뒤, 속마음이 무얼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두통을 느껴 드러눕고.
한참 비슷한 일을 반복하던 엘리아는, 결국 인내심이 끊어지고 말았다.
‘왜 고민을 하는 거야? 가면 되잖아. 가서 만나 보면 알겠지! 그냥 내 착각인가, 아니면 에디가 나랑 거리를 두고 싶어 하는 건지!’
엘리아는 오후 내내 드러누워 있던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선, 편지지를 찾겠다고 방을 헤집었다.
“어디 있더라? 분명…… 아. 여기다 한 장 끼워 놨었네.”
바로 옆에서 독서 중이던 데이지가 그 광경을 차마 모른 척하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
“바쁘시네요. 좀 도와 드릴까요?”
“어, 응. 아니야. 나 상관 말고 책 읽어. 그거 재밌어?”
“처음엔 그냥 그랬는데, 중반부터 재미있어요. 세 사람 사이에서 주인공이 갈팡질팡하는 중인 부분이요.”
데이지가 읽고 있는 건 지난번 엘리아가 서점에서 사 온 두꺼운 소설책이었다. 읽어 보니 딱 데이지 취향이라서 권했더니, 어제부터 틈틈이 읽어 벌써 중반부를 넘어갔다.
“거기부터 머리 아파 죽겠던데. 그 주인공 너무 부지런해. 한 번에 세 명이라니. 나 같으면 얘가 얘인가? 쟤가 얜가? 하고 헷갈려서 이름도 잘못 불렀을걸?”
“후반부 가면 다 정리되지 않아요? 일단 까만 머리는 벌써 점수 깎였어요. 제가 보기엔 ‘봄 햇살이 촘촘히 박힌 들꽃을 닮은 은빛 머리칼’의 남자가 사랑을 거머쥘 것 같은데, 어때요? 결말까지 다 읽으셨죠?”
“흐음.”
“무슨 뜻이에요?”
“‘미리 알려 주면 재미없잖아.’라는 뜻이야. 내가 어제 쓰던 펜 못 봤어?”
“편지 쓰시려고요?”
“응, 에디한테…… 나 놀러 가고 싶다고 편지하려고.”
“어머나. 잠시만요. 편지지 전에 새로 사 둔 거 있거든요. 그거 쓰세요.”
데이지가 재미있게 읽던 책을 냅다 팽개치고는 편지지와 펜을 찾아왔다.
엘리아는 별로 부끄럽지 않은 척 데이지가 보는 데에서 편지를 쓰려고 했지만, 결국 두 팔로 편지지를 가리며 수줍어하고 말았다.
“그럼 저는 읽던 책이나 마저 볼까 봐요.”
“그래. 제발 그래 줘.”
그렇게 데이지를 도로 재미없는 소설책 속으로 쫓아내고 겨우 펜을 들었지만, 막상 뭐라고 시작해야 할지부터 막막했다.
“아가씨, 제가 도와 드릴까요?”
“도와준다고?”
“제가 예시 읊어 드릴게요. 참고하세요. 으흠. 당신이 보낸 마음에 설레고 말아, 나는 오늘도 57골드를 주고 산 실내복이 구겨지는 줄도 모르고 내내 편지를 살폈답니다.”
“뭐? 이게 57골드나 한다고?”
엘리아가 기겁하며 입고 있는 실내복을 살폈다. 원단이 좋아 보이긴 했는데 50골드가 넘는다니? 사용인들 한 달 월급이 훌쩍 넘는 돈이지 않은가.
“조금, 조오금 허풍을 섞었어요. 5골드에 샀다고 할 순 없잖아요.”
“절대로 네가 불러 준 대로는 안 쓸 건데, 가격을 왜 부풀리는 거야?”
“좋은 인상을 위해서는 술수가 필요하다. 이때, 가장 유용한 건 의복과 장신구이니, 평범한 안경을 쓰고 있는 사람보다 금도금한 안경을 쓰고 있는 사람이 시선을 끌 수 있음은…….”
“편지 쓰는 데 왜 ‘직관론적 인간 고찰’을 인용하는 거야? 그리고 어차피 에디는 내가 500골드짜리 옷을 입는다고 해도 이미 내가 가난뱅이인 걸 알 텐데.”
“아가씨가 왜 가난뱅이예요? 잠시 재산이 동결되어 있을 뿐이잖아요.”
엘리아의 표현에 반박하던 데이지는, 제가 말하고도 찝찝했는지 뒤에 한마디를 덧붙였다.
“좀, 장기적으로…….”
“동결 자산을 즉시 처분 가능한 재산에 포함하는 건 결혼 사기야.”
데이지와 엘리아의 작은 의견 충돌은 합의에 이르지 못했고, 결국 ‘네 말도 맞고, 내 말도 맞지만 아무래도 내 말이 더 맞는 것 같다.’라는 식의 흐리멍덩한 결론을 내곤 다시 각자의 일에 집중했다.
데이지는 자신의 취향이던 은발의 조연이 주인공에게 호되게 내쳐지는 모습을 보며 수차례 한숨을 쉬었고, 그 옆에 앉아 글을 쓰던 엘리아도 제가 쓴 편지를 바라보며 한숨을 쏟아 냈다.
‘에디가 이걸 보고 나를 애 취급해도 할 말이 없어.’
편지지에는 ‘보고 싶은데 혹시 가면 안 될까?’라는 어린애 투정 같은 말이 적혀 있었다.
물론 엘리아는 배운 사람답게 귀족가와 귀족가에서 오갈 만한 예법을 빼놓지 않았고, ‘가고 싶어!’라는 직접적인 표현을 쓰지도 않았지만 엘리아에겐 한참 부족하게만 보였다.
‘편지는 너무 불편해. 보내고 싶어도 막상 보내려고 하면 쓰는 것도 어렵고, 답장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너무 힘들어.’
엘리아의 투정대로, 답장이 돌아오는 데에는 꼬박 이틀이 걸렸다. 이번에는 외젠에게 맡기는 바람에 전달 자체가 늦어진 탓이었다.
“나는, 나는 안 바빠? 호위들은 다 바쁘고 네 오라비는 노는 것 같아?”
“어차피 황궁 가서 얼굴 보는 김에 주라는 건데. 그래서 줬어? 오늘은 전해 줬어?”
“확, 받아 온 거 주지 말까 보다.”
일에 치이는 오라비는 신경도 안 쓰고 약혼자 편지에만 발을 동동 구르는 동생이 얄미웠지만, 진짜 안 전해 주었다가는 아주 대단히 사달이 날 것 같아서 받아 온 답장을 건네주었다.
엘리아의 편지를 받은 공작이 그 자리에서 써 준 답신이었다.
“그 자리에서 바로 썼다고? 그렇게 편지를 빨리 써? 나는 거의 세 시간은 걸린 것 같았는데.”
“너는 머리에 자꾸 쓸데없는 생각을 쌓아 두고 사니까 그렇지.”
외젠이 구박을 하든 말든, 엘리아는 이미 손에 쥔 답장에 정신이 팔려서 그에겐 신경을 뚝 끊어 버렸다.
집무실 소파에 앉아서 떨리는 마음으로 봉투를 열었다. 밋밋한 흰 종이에 담긴 정갈한 필체가 엘리아의 애칭을 불렀다.
“……외젠. 나, 나 다음 주 화요일에 바빠. 바쁘게 되었어.”
“뭐? 그날 상단에서 사람 오기로 했잖아!”
“미안. 다음에. 다음에! 데이지! 이거 봐, 답장 왔어, 나 된대! 가도 된대!”
“엘리!”
웬일로 엘리아가 일을 도와주겠다고 이야기 꺼내길래, 화요일에 상단 관련자들을 모두 소집한 참이었던 외젠이 고함을 질렀다.
“야! 너만 믿고 일 벌여 놨는데 쏙 빠지면 어쩌라는 거야!”
외젠이 기함하며 이미 집무실을 뛰쳐나간 엘리아를 쫓아 나왔다.
벌써 4층 계단을 다 올라간 엘리아를 붙잡아서 불쌍한 척을 실컷 한 뒤에야 월요일에는 꼭 일을 도와주겠다는 확답을 받았다.
“날짜 바꾸기 힘들지 않을까요? 그냥 제가 도와 드릴게요.”
“안 돼. 절대로. 쟤 벌써 저렇게 신나 있는 거 보니 약 올라서라도 월요일에 일 시켜야겠어!”
“질투하시네.”
“그럼 질투 안 하게 생겼어? 무슨 세상에 저 하나만 연애를 하는 줄 아나!”
* * *
외젠은 기어이 일정을 월요일로 바꾼 뒤 엘리아가 상단 일을 살피게 했다.
“어휴. 오늘도 복작복작하네.”
대규모 상단 몇 개를 맡아 큰돈을 관리하는 보통의 고위 귀족 가문과 달리, 로앙가는 없는 자금 조금씩 생길 때마다 소규모 상단에 투자하는 식으로 자금을 운용해야 했다. 그 때문에 규모는 작고 손은 많이 가는 비효율성을 자랑했다.
“역시 아가씨께서 셈에 밝으셔서, 일이 평소보다 금방 끝나네요.”
“종이 쪼가리에 줄 하나 잘못 그어서 돈이 샌다고 생각하면, 눈물이 나서 잠을 못 자거든. 악착같이 찾아서 고쳐야지.”
열 명의 상단 관계자들을 초청해 마련한 자리는 간간이 엘리아가 농담 몇 번 던질 때를 제외하고는 매우 차분했다.
‘전에는 꽤 소란스러운 분위기였는데. 오늘은 왜 이러지?’
엘리아는 전과 뭐가 다른지를 한참 생각하던 중 호위를 늘린 일을 떠올렸다.
“호위 기사들이 많이 신경 쓰여?”
“하하. 저희가 티를 내고 말았나 봅니다. 실은 이 정도로 삼엄한 호위는 처음 봅니다. 귀족가에 자주 드나든 건 아니지만요.”
“보통보다 조금 신경 쓴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과하다는 거지?”
“아닙니다. 방심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고말고요. 얼마 전에 들렀던 피사로 백작가는, 정문에도 겨우 병사 둘만 세워 놓았더군요. 제가 다 마음이 조마조마하지 뭡니까.”
상단 관계자가 언급한 피사로 백작가라면 엘리아도 잘 아는 가문이었다. 대대로 중립을 유지해 온 데다가 독자적인 세력도 확고해서 귀족들 간 계파 싸움이 벌어져도, 황위 다툼이 벌어져도 안전한 축에 속했다.
마치 진흙탕에 피어난 한 송이 꽃처럼.
‘질투해 본 적 없는데. 질투하게 되네. 남의 가문 사정. 입지. 그런 것들이 샘나서.’
곧 황제가 아우인 3황자에게 황위를 양위하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할 테고, 그렇게 되면 전쟁이다.
라스페 공작가에서 그동안 3황자의 입지를 흔들어 놓은 덕분에 아직 구체적인 일정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어떤 식으로든 전쟁은 벌어질 예정이었다.
‘나는 피사로가 아니라 로앙이니까, 익숙해져야지.’
어딜 가도 따라오는 호위에도, 엘리아를 위해 독이 들었을지도 모르는 음식을 먼저 삼키는 사용인들의 모습에도.
희생, 피해. 슬픔. 그런 것으로 딛고 있는 바닥을 단단히 굳혀 일어나야만 했다.
‘에드문트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내내 이렇게 살아왔다잖아.’
그러니 너무 속상해하지는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더 고단한 삶을 살아온 이를 오래도록 방치해 왔으니까.
‘끝낼 방법은 없는 걸까. 이제 막 본격화될 전쟁을 두고 내가 과욕을 부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에디는 벨레노아 백작을 황제로 만들기 위해 어떤 수를 쓰려는 걸까. 외젠은, 에디의 뜻을 알고 있는 걸까. 그럼 나는…….’
엘리아는, 이대로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기다려야만 하는 걸까.
커다란 기사들에게 둘러싸여서. 위험을 느끼지 않는 삶을 망각해 가면서.
언젠가 죽어 버릴 수 있다는 생각을 늘 간직한 채, 기다릴 수밖에 없는 걸까.
* * *
화요일 아침. 엘리아는 아침 일찍 일어나 가볍게 단장을 한 뒤 집 안 구석구석을 살폈다.
평소에는 찾지 않는 마구간이라든가, 기사들의 훈련장과 사용인들이 옹기종기 모여 휴식을 취하는 공간까지.
“아가씨, 어제부터 굉장히 바쁘시네요.”
“혹시 뭐 잃어버리셨어요? 찾아볼까요?”
“아니야. 그냥, 너희 잘 있나 보러 오는 거야.”
10년 전에는 다들 제 살길을 찾아 떠나는 바람에 황량하기 이를 데 없었는데. 이제 저택 어딜 가나 사람들로 복작복작했다.
‘숫자로만 볼 때는 와닿지 않았는데 이렇게 보니까 사람이 많이 늘었네.’
작은 보수에도 만족하고 버텨 준 사용인들이 있어서 로앙가도 지금까지 그럭저럭 버틸 수 있었다.
“오늘 좋은 데 가시지요?”
“좋은 데 놀러 가지. 다들 아침에 나온 과자 먹었어? 내가 같이 구운 거야.”
“아침에 나온 과자를요? 새벽부터 일어나셨나 보네요.”
“저녁에 피곤하실라. 어제도 손님들 한참이나 머물다 가지 않았던가요?”
“괜찮아. 내일 또 뒹굴뒹굴 놀면 되니까.”
딱히 일 없으면 얼굴 마주칠 일 없었던 사용인들이 워낙 많아서, 하나하나 얼굴 보는 데 시간이 꽤 많이 걸렸다.
‘힘들다. 사람들 일일이 얼굴 보고 인사하는 것도, 꽤 고역이네.’
매일 사람들을 살피려던 생각을 접고, 이틀에 한 번 정도로 줄여야 하지 싶었다.
저택을 한 바퀴 돌고 왔더니 금세 시간이 지나 있었다. 데이지가 살짝 흐트러진 옷을 잡아 주고, 머리를 새로 빗질해 주었다.
“아가씨, 혹시 공작가 서재에 ‘이롬 시대의 철학 집단의 실증론과 허상론에 대한 고찰’이나 해설서 있으면 빌려와 주세요.”
“이번에는 이롬 시대야? 그 배부르고 태평한 시대에도 철학 집단이 있었어?”
“원래 등 따듯하고 배부를 때 잡생각을 하기 마련이잖아요?”
“으음…… 찾아볼게. 아니면 같이 갈까?”
엘리아가 별생각 없이 동행을 제안하자, 데이지는 머리를 빗겨 주던 손을 뚝 멈추고는 엘리아를 바라보았다.
“아가씨, 저는요. 단언컨대 이 로앙 저택에서 두 번째로 눈치가 좋은 사람이에요.”
“첫 번째는 누군데? 나?”
“정원사요. 아가씨는 음…… 중요한 건, 제가 무척 눈치가 좋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다정한 연애에 끼어드는 동행 제의는 거절할게요.”
“그런 거 아닌데. 그냥 가서 책 읽고 빌려 오기만 할 거란 말이야.”
“네에, 네.”
데이지는 생글거리며 볼을 붉힌 엘리아의 머리를 마무리해 주었다.
단장이 모두 끝나고, 데이지가 마차에 실을 책 두 권을 챙겨서 엘리아와 함께 침실을 나서려던 때였다.
“아가씨, 이거 가져가셔야지요.”
연갈색 곱슬머리를 가진 사용인이 부르는 소리에 돌아보니, 손에 봉투 하나가 들려 있었다.
“아 맞다, 과자 구워 둔 거…… 근데 이건 뭐야?”
“색지 남은 게 있어서 포장해 봤는데, 이상한가요?”
사용인 루아가 내민 봉투는 빳빳한 색지가 한 바퀴 더 둘려 있었다. 잠깐 협탁에 올려 두었더니 솜씨를 자랑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이렇게, 아래로 잡으세요. 부서질 것 같더라고요.”
“알았어. 이렇게 말이지?”
엘리아는 사용인이 건네준 반질반질한 종이봉투를 마치 유리그릇 옮기듯 아래를 조심스럽게 받쳐 들었다.
“다녀올게. 마차 곧 오겠다.”
“다녀오세요, 아가씨.”
4층 사용인들이 잠시 일을 멈추고는 모두 나와 엘리아를 배웅했다.
“다녀오세요.”
아마도, 아픈 기억 없이 무사히 돌아오시기를 바라는 인사였으리라.
* * *
로앙가 저택에 도착한 라스페 공작가의 마차에는 어김없이 에드문트가 있었다.
“에디! 데리러 와 줘서 고마워.”
바깥 일정 없이 공작가에서 바로 왔는지, 그는 평소 갖춰 입던 예복에 비해 편한 차림이었다.
“조끼까지 안 입은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아. 실은 나도, 책 보러 간다고 조금 편하게 입었어.”
“잘 어울려.”
“고마워. 아, 외젠은 오늘 일이 바빠서.”
“들었어. 음…….”
“아, 나 마차 타는 거 도와줄래?”
기껏 마차에서 내려 엘리를 맞이한 에드문트가 망설이는 기색에, 엘리아가 먼저 손을 뻗어 도움을 청했다.
에드문트가 살짝 웃더니 새하얀 장갑을 낀 손으로 엘리아를 받쳐 주었다. 커다란 손이 신기해서 엘리아는 마차에 올라오고도 악수하듯 에드문트의 손을 슬며시 잡아 본 뒤에야 자리에 돌아갔다.
뒤이어 에드문트가 자리에 앉고, 엘리아가 챙겨 온 짐을 사용인들이 실어 준 뒤에야 마차가 출발했다.
“에디, 어떻게 지냈어? 일이 많이 바쁘지?”
“평소랑 비슷해.”
“더 바쁘진 않다는 거야? 다행이다. 아, 나 있잖아. 저번에…… 아니. 아니다.”
“왜?”
“아니야. 그…… 에디 뭐 말하려고 하던 거 아니었어?”
마차에 앉자마자 미리 생각해 둔 이야기를 꺼내려고 했는데, 하필 엘리아가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에드문트의 입이 달싹이다가 닫히고 말았다.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나 싶어서 엘리아는 꺼내려던 이야기를 집어넣고 에드문트의 말을 기다렸다.
“전에 호수에 갔을 때 얘기했던 거. 2번가 의상실. 기억나?”
“응, 기억나. 아, 설마! 범인 잡혔대?”
“오늘. 아마 내일쯤 알려질 거야.”
“어떻게 된 일이래? 의상실 직원이 정말 다 들고 튀…… 도망간 거였대?”
에드문트는 간단하게 공작가의 수하들에게 보고받은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마치 보고서를 그대로 읽는 딱딱한 목소리였지만 엘리아에게는 그 어떤 이야기보다 흥미진진했다.
다섯 귀족가 내부자들의 공모, 계기는 역시나 도박 자금 확보. 가공의 의상실 직원. 틈 없이 준비한 가짜 서류들. 하나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드러난 범죄의 전말. 고작 2할만 회수된 범죄 자금…….
두 손을 꼭 쥔 채 에드문트의 이야기를 경청하던 엘리아는 전말을 알고 난 뒤에야 손깍지를 풀어 긴장을 해소했다.
“어휴. 그러니까 공모자 중 한 명이 집 창고에 자기 몫을 숨겨 놨는데, 그 사람 배우자가 출처 불명의 돈이라고 신고를 했다고? 그래서 치안대에서 금화 출처를 확인하다가 의상실 사건 피해 자금인 걸 알아낸 거고?”
“마침 근방에서 발생한 범죄에 연루된 돈을 누군가 자신의 창고에 숨겨 둔 거로 착각해서 신고했다고 증언했어.”
“그래서 꼬리가 잡힌 거야? 미쳤다. 그 범죄자의 배우자가 착각하지 않았으면 영영 못 붙잡았을지도 모르잖아. 부부가 사이가 안 좋았나? 왜 서로 숨겼다, 이상한 걸 찾았다는 말을 안 했지?”
“범행한 사람은 자작가의 집사였는데, 가족 몰래 도박 빚을 갚으려고 범죄에 가담했다니까 비밀로 했겠지. 배우자도 빚이 있는 걸 몰랐으니 의심 안 했을 테고.”
엘리아는 다소 황당한 계기로 덜미를 잡힌 범죄자를 향해 혀를 차다가, 씁쓸한 기분을 느꼈다.
‘아니 물론 범죄를 들킨 건 다행이지만. 그 집사란 사람도 정말 많이 후회했겠네. 후회할 게 한두 개가 아니잖아.’
숨기지 말걸. 배우자 몰래 도박을 하지 말걸. 적어도 말이라도 할걸, 거짓말로 하고 있지는 말걸, 하고. 때늦은 후회를 하며 자책했으리라.
‘말을 했으면 가족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걸 말려 줬을 텐데.’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고, 결국 가족 전체에게 비극을 주고 말았으니. 아주 많이 후회하리라. 뒤늦게라도 말할 걸 그랬노라고.
‘후회하고 있겠지. 거짓을 거짓으로 메우다가, 이미 너무 늦어 버렸음을.’
사랑하기에, 사랑받고 싶어서 스스로를 조금 치장하는 거짓말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완벽할 수 없으니까. 외로워서, 애타게 서로의 사랑을 바랄 테니까. 작은 거짓말은 서로 용서하고 용서받을 수 있지 않을까 여겼다.
‘내가 시작한 작은 거짓말이, 내가 용서하고 만 네 작은 비밀이 세를 불려 우리를 집어삼키려 든다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늦은 뒤에야 후회하게 된다면.’
죽은 부모의 살아생전을 무의미하게 그리워하듯, 내내 과거에 묶여 살지도.
엘리아가, 혹은 에드문트가.
어쩌면 두 사람 모두 서로의 거짓말에 상처 입어, 행복을 모두 잃어버린 채 과거만 자꾸 곱씹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디, 2번가 의상실 이야기 말이야. 혹시 나한테 알려 주려고, 그래서 따로 알아본 거야?”
에드문트는 살짝 주저하는가 싶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수하에게 혹시 범인이 잡히면 보고하라고 했어. 오늘 보고가 올라왔고.”
“정말로? 나 알려 주려고 그렇게까지 한 거야? 고마워. 그…… 근데. 나 궁금한 게 생겼어.”
“뭔데?”
“의상실 사건 말이야, 내가 추측한 거 거의 다 맞았잖아! 그래서 나한테 알려 준 거지? 근데 만약에, 내가 추측한 거랑 달랐으면 어땠을 것 같아? 그래도, 나한테 알려 줬을 거지?”
“……네가, 궁금해하는 것 같았으니까 말했을 거야.”
에드문트의 답에는 살짝 망설이는 기색이 있긴 했지만, 기대한 대로라 엘리아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음. 혹시, 혹시 말이야 내가 추측한 게 틀렸다고 부끄러워할까 봐…… 혹은 에디 네 앞에서 속상해할까 봐 나한테 안 알려 주고 비밀로 해 버리진 않을 거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도 에디한테 똑같이 할 수 있도록 노력할 테니까.”
엘리아는 어느새 허리를 곧게 펴고는 살짝 구겨진 옷을 정리했다. 에드문트에게 연신 붙어 있던 시선을 떼려는 핑계를 만들어 내는 것처럼.
살짝 비켜 나간 시선은 그저 부끄러움을 표현하는 건 줄 알았으나 오늘은 조금 달랐다.
“이야기해 줘, 에디. 조금 서운한 일이 있어도, 내가 속상할 일이 있어도 네가 말하지 않으면 나는 아무것도 모르잖아. 그러면 나 더 속상하게 될 거야.”
망설임이, 그리고 약간의 죄책감이 스민 엘리아의 얼굴에 에드문트는 혼란을 느꼈다.
<말하지 않으면 나는 아무것도 몰라.>
<모르는 채로, 영영 아는 티를 낼 수가 없어.>
소리 없이 울리는 엘리아의 말. 기억 속 여자의 음성이 읊는 소리. 누구일까. 스물여덟의 엘리아? 혹은 열여덟의 엘리아?
어쩌면 전부 고백하고 싶다는 에드문트, 그의 숨겨진 속마음일지도.
‘엘리, 너는 내가 숨기고 있는 사실이 있음을 알아챈 거겠지. 하지만 나는, 모르겠어. 대체 어디까지 말하면 좋을지…….’
에드문트는 엘리아가 살짝씩 드러내는 의뭉스러운 말에 어떻게 반응하면 좋을지 몰라 망설였다.
‘그저 이대로, 너를 사랑하기만 하면 안 되는 걸까.’
마치, 오르골 위에 올라간 기분이 들었다. 그가 향하려는 자리에 엘리아가 이미 올라가 자신을 기다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정작 그는, 여태껏 자신이 오르골 위에 있다는 자각조차 하지 못했는데.
* * *
“에디, 근데 있잖아.”
소리를 살짝 낮춰 속삭이는 듯 말하던 엘리아가 다시 원래의 목소리로 돌아와 에드문트를 불렀다. 그건 마치, ‘지금 당장 말해 달라는 건 아니야.’라고 달래 주는 말 같았다.
“의상실 이야기 말이야. 생각해 보니까 내가 추리한 거 한두 개도 아니고 다 맞은 거잖아. 그치? 의상실 직원 말고 따로 공모자가 있을 것 같다고 했고.”
“네 추측대로 집사가 가담한 경우도 세 건이었고.”
“그러니까! 진짜 뿌듯하다. 돌아가면 데이지에게 말해 줘야지. 내가, 조금만 더 부지런했으면 아마 작가를 해도 될 것 같아. 추리 소설 작가 말이야. 아, 혹시 공작가에 추리 소설도 좀 있어? 나 원래 추리 소설도 읽다가 뒤로 넘어가서 범인 다 확인해 버리거든. 이번에는 앞에서부터 읽으면서 범인 추측해 봐야겠다.”
“고전도 있고, 아마 꽤 많을 거야.”
“그럼 첫 권은 추리 소설로 할래.”
“로앙가에도 가져가서 읽어. 전에 보내 준 책도 다 읽은 거지?”
“응, 재미있더라. 세 권 다 좋았는데, 그중에 제일 재미있던 게…….”
엘리아의 책 이야기는 한참 이어져서, 두 사람이 탄 마차가 저택에 들어설 때까지 계속되었다.
두 사람을 맞이하기 위해 나온 보좌관 한스가 표정이 좋아 보이는 엘리아를 두고 농담부터 건넸다.
“제가 좋아하는 오페라의 구절이 떠오르는군요.”
“무슨 구절인데요?”
“‘사랑이 다른 모든 것을 이겨 낸다.’라는 말이었습니다.”
“……좋은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는 말이죠?”
“그럼요. 점점 더 아름다워지시고, 아픈 곳 없이 건강을 회복하시는 것 같아서 기쁘다는 말씀을 돌리고 돌려 드린 거랍니다.”
낯간지러운 말을 뻔뻔하게 한 한스가 두 사람을 직접 서고로 안내했다.
“서고를 별관 건물에 따로 둔 거야?”
“별관은 아니지만, 중앙 건물과 연결해 두었어.”
“어? 나 잘 이해가 안 돼.”
“서고 건물이 따로 있어.”
기껏 응접실보다 조금 더 큰 방을 기대했던 엘리아는, 책을 두는 건물 한 채가 따로 있다는 말에 기함했다.
“아, 그러고 보니 밖에서 볼 때 2층짜리 건물이 있었지. 그게 서고였다고?”
그리고 드디어 엘리아의 앞에 나타난 공작가의 서고는, 도저히 엘리아의 상상력으로는 떠올릴 수 없는 규모였다.
“나, 여기서 살고 싶어. 그냥 하는 말이긴 한데, 아니. 절반은 진심이야. 한 달은 그냥 여기서 살 수 있을 것 같아.”
“언제든 오고 싶으면 이야기해.”
“으응……. 후와. 진짜, 진짜 어마어마하다.”
엘리아는 에디의 대답을 제대로 듣지도 못하고 사방에 꽉꽉 들어찬 책을 살폈다. 중앙 공간을 모두 비운 대신, 사방의 벽과 2층까지 책이 가득 메운 모습이 가히 장관이었다.
고풍스러운 장식과 화려한 융단이 곁들어진 전체적인 광경을 넋을 잃고 바라보느라 중앙에 매달린 커다란 샹들리에, 그리고 그 아래에 놓인 커다란 쿠션을 발견한 건 한참 뒤의 일이었다.
“어? 소파는 없고 왜 쿠션만 있어?”
“네가 편한 자세로 책을 읽는 걸 좋아한다고 들어서.”
엘리아가 바닥에 누워서 책 읽는 걸 좋아한다는 게, 언제 에드문트에게까지 알려지고 만 걸까.
외젠이 똑바로 좀 앉으라고 구박할 때마다 부끄러워한 적 한 번 없었으면서, 엘리아는 자신이 바닥에 어린애처럼 누워 지낸다는 걸 들켰다는 생각에 얼굴을 붉히고야 말았다.
‘외젠 말, 들을걸……. 아니지, 분명 외젠이 입 싸게 군 거일 거 아냐!’
품위의 문제보다는, 어린애같이 굴었다는 게 무척 창피했다. 안 그래도 자신이 성년이 지나지 않아 에드문트가 거리를 두는 게 아닐까 싶어 한창 걱정해 왔으니까.
“미안해, 엘리.”
“어, 어? 미안하다고? 갑자기 왜.”
“로앙 백작이 지나가는 말로 언급하기에 좋아할 거라고만 생각했어. 뭘 좋아할지 더 고민해 봤어야 했는데. 내가, 서툴러서.”
부끄러워하는 반응을 어떻게 받아들인 건지, 에드문트가 땅을 파고 들어갈까 걱정될 정도로 저자세로 나왔다.
웃으면 안 되는데. 그런 에드문트의 모습이 너무…….
‘너무 사랑스럽잖아. 전부 다 잘하면서. 본인 입으로 서투르다고 말하면서 속상해하는 게.’
엘리아는 헛기침을 몇 번 하며 준비를 마친 뒤 에드문트를 달래 주었다.
“에디, 그게 아니고. 좀 부끄러워서. 사실 나 누워서 책 보는 거 엄청나게 좋아하거든? 근데 외젠이 나 볼 때마다 자꾸 구박해. 어린애 같다고…… 나중에 공작 부인 되어서도 누워서 책 보다가 망신당할 거냐고. 그 말이 갑자기 생각이 나서.”
“부끄러워할 거 없어.”
“고마워. 나 너무 어린애 같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실은 너무 기뻐. 말한 적도 없는데 내가 좋아하는 거 준비해 줘서, 고마워. 진짜 고마워.”
엘리아가 발간 얼굴을 손으로 폭 가린 채 연신 고맙다는 마음을 전했다.
자꾸 손 뒤에 숨어 버리려는 모습이 애틋하다가도 아쉬웠다. 에드문트는 천천히 말을 골랐다.
“엘리, 나중에 네가 라스페가에 오면. 네가 원하는 대로 해도 돼. 얼마든지.”
“음. 막 누워서 책 봐도 뭐라 안 한다는 거지?”
“뭐든지. 너를 기쁘게 할 일이라면 무엇이든.”
값진 보석, 화려한 예복…… 누구나 줄 수 있는 선물이 아닌, 시간을 들여 한참 살피고 나서야 선물할 수 있는 행복을 주고 싶었다.
아직은, 아무것도 모르지만.
“제일 좋아하는 방을 침실로 꾸며 줄게. 주홍색, 푸른색…… 색색의 물감으로 그려 내고 싶을 아름다운 풍경이 있는 곳에 데려가 줄게. 그리고 네가 함께 보았던 풍경을 그려 복도에 장식해 주면, 나는 저택의 모든 그림을 하나씩 외워 낼 거야.”
그는 스스로를 낮춰 엘리아를 높였고, 우러러보았다.
무릎 꿇은 채 단 한 명만을 위해 핀 꽃이 되어 태양을 갈구했다.
“매일 새로운 책으로 서고를 가득 채워 줄게. 지루할 틈 없도록, 아름다운 것만 볼 수 있도록. 정원에는 너를 닮은 꽃을 심고…… 원할 때마다 볼 수 있도록 사시사철 꽃을 피우게 해 줄게.”
갈망을 숨긴 담담한 목소리가, 엘리아의 심장이 뛰는 소리가, 햇빛이 들지 않게 만든 커다란 서재에 따스함이 스미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엘리. 엘리아, 약속할게.”
엘리아를 향해 푸른색 괴물이 웃음을 지었다. 커다란 송곳니가 드러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부디 저를 무서워하지 않기를 바라며.
“네가 다치지 않게, 위험하지 않게 내내 너를 지켜 줄게.”
먹먹한 고백에 엘리아가 떠올린 건, 꽃잎을 넣어 구운 작은 과자였다.
어여쁘고, 달콤하면서도 조금만 신경 쓰지 않으면 곧장 바스러질. 작은 과자 하나를 떠올리게 했다.
에드문트의 고백 속 엘리아는 작은 과자였다. 그의 입 안 가득, 마음까지 단내로 채워 주어 아껴 주고 싶게 하는.
그리고, 금방이라도 깨질 것같이 위태한. 연약한 존재.
‘네가 좋아. 나를 아껴 주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볍게 표현하지 않는 에디 네가. 너는 늘 마치 꾹꾹 눌러 둔 걸 토해 내는 것처럼 힘겨워하며 내게 고백하곤 하잖아. 그 모습이, 너무도 애틋하면서도 애처로워. 사랑스러워.’
그에게 아무것도 아니던 시절에 비해, 지금은 마치 내내 봄이 이어질 것처럼 따스했다. 그래서 엘리아는 그저 행복할 수 있었다.
“……고마워 에디. 나도 좋아해. 많이 좋아해.”
그렇지만 에디, 에드문트. 그래도 되는 걸까.
당신의 소중한 여자가, 그저 당신이 세상에서 잘라 와 다듬어 만든 아름다움만 바라보며, 네 품에서 안전하기만 하면 되는 걸까. 충분할까.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채 당신을 사랑해도, 에드문트.
당신은 괜찮을까.
‘네가 주는 아름다운 것들만 끌어안고, 나는 그저 안전해지기만 하면 되는 거야? 사랑이라는 게 그런 관계 속에서도 무사히 꽃을 피울 수가 있는 거라고…… 마냥 믿어도 될지 모르겠어.’
엘리아는 슬픔을 느꼈다.
조금이라도 더 알고 있으면 좋을 텐데. 사랑을 알고 있으면 좋았을 텐데.
‘에디, 미안해. 처음 해 보는 사랑이 나는 너무도 어려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