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8. 서점 (28/79)

28. 서점

몇 해 전, 싸락눈이 시린 바람을 따라 흩날리던 겨울.

닐스 튀링겐은 갑갑한 촌구석에서 호위를 따돌리고 수도에 도착했다. 화려한 건물들, 귀족가의 마차, 시선을 끄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나쳐 그가 향한 곳은 상점가에 있는 작은 서점이었다.

내내 잠겨 있던 문을 억지로 당기니 삐걱거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그는 쿰쿰한 책 냄새가 쏟아질 걸 대비해 미리 코와 입을 막았다.

‘그래도 이번에는 오래 비운 것치고 상태가 나쁘지 않네.’

한 달 남짓 방치했더니 군데군데 먼지가 서려 있긴 했지만, 서점 상태는 그가 처음 찾아왔을 때만큼 끔찍한 수준은 아니었다.

문을 밀어 닫아 싸늘한 바람을 막아 낸 닐스가 등불부터 켰다.

‘어디부터 치워야 하나.’

우선 낡아서 해진 천을 들고 책등에 앉은 먼지부터 털었다. 작은 소파와 바닥에 쌓인 먼지까지 꼼꼼히 닦으니 겨우 멀끔한 모양새가 되었다.

수도 12번가, 닐스의 손에 다시 제 모습을 되찾은 작은 서점은 그의 아버지가 남긴 유일한 재산이었다.

넉넉지 못한 살림에 한때 귀족 작위까지 내다 팔아야 했던 닐스의 아버지는, 악착같이 모은 재산으로 이 작은 서점을 사들였다.

<몇 번 가 보지도 못할 서점을 사들였다고, 네 할아버지가 얼마나 잔소리를 하셨는지.>

어른들의 우려대로, 남자가 실제로 서점을 찾아간 건 7년 중 겨우 다섯 번뿐이었다.

그러나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는 어린 닐스를 무릎에 앉혀 두고 종종 서점 이야기를 꺼냈다.

친척을 만나러 수도에 올라간 그가, 우연히 들른 서점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을 때의 이야기. 서로 한눈에 운명임을 알아보았다는 고백을.

<우리 세 식구가 언젠가 함께 그곳에 가서 책을 읽을 수 있으면 좋겠구나.>

운명처럼 만난 두 사람은 병약한 것도, 섬세한 면도 꼭 쌍둥이처럼 닮았던 탓에 금방 사랑에 빠져 결혼하였다. 안타깝게도.

기적처럼 찾아온 사랑은, 이미 안타까운 운명을 예고한 거나 다름이 없었다.

<닐스, 미안하구나. 줄리아를…… 네 어머니를 부탁한다.>

사랑 앞에 영원을 맹세했음에도 닐스의 아버지는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그의 죽음과 함께 어머니의 병도 악화 일로를 걸었다.

하여 닐스의 어머니이자 튀링겐가의 막내딸은, 침대에서 일어나는 게 고작인 실정.

튀링겐가의 장녀가 황후의 자리에 오른 뒤 온갖 귀한 약을 써 보았으나, 그저 더욱 악화하지 않는 게 다행인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닐스, 줄리아를. 네 어머니를 부탁한다.>

죽은 아버지도, 하늘처럼 높은 곳에 오른 이모님도. 모두 닐스에게 병약한 어머니를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곤 떠나 버렸다.

하나 닐스는 어머니와 함께 머무는 별장이 갑갑하여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사방에 새카만 그림자가 있었고, 그 틈바구니에 죽음이 자리하고 있었다. 언제든 기어 나와서 어머니를 채 가려고 들었으니까.

‘차라리, 내가 저택에 없는 사이에…… 편해지시면 좋을 텐데.’

못난 어린 시절에는, 그런 생각도 했다. 매일 버거운 약을 겨우 삼키며 고통을 겪느니 차라리 편해지시는 게 행복하지 않을까.

하나 당연히도, 어머니의 곁에서 멀어질라치면 안도감은커녕 불안감이 닐스를 괴롭혔다.

살가운 말 한 번 건네지 못하고 나왔는데. 고통 없는 곳으로 훌쩍 가 버리시면 어쩌나.

아프더라도, 아파서 너무 힘들더라도 조금만 더 어린 제 곁에 머물러 주시면 안 되는가.

아이는 건강했지만, 속으로는 매일 어머니처럼 앓게 되었다.

<닐스, 수도에 잠시 다녀오련?>

답답한 닐스의 심경을 가장 먼저 알아준 건, 모순적이게도 매일 침실 천장만 바라보고 살아온 어머니였다.

<이게 뭔데요?>

어느 날 그를 불러 화장대에서 작은 열쇠 하나가 든 봉투를 꺼내 보여 주었다. 움직이기 좋아하고, 툴툴대지만 속은 여린 아이가 늘 병중의 자신에게 묶여 있는 모습이 안타까워서. 자유롭게 해 주고 싶어 고민하다가 만든 핑계를 아이에게 들려주었다.

<수도에 네 아버지가, 사들였던 서점이야. 여태 잊고 있었는데…… 어제 꿈에 나왔지 무어니? 책은 오래 두면 삭고 엉망이 되는데 괜찮을지 걱정되는구나. 네가 한번 가서 살펴 주지 않으련?>

위험한 일은 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하고, 이모님이 호위차 붙여 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닐스는 수도로 향했다.

들킬 리는 없었다. 이미 어릴 때부터 근방의 도시를 구경하러 가겠답시고 사람들의 눈을 피해 다니는 데엔 이골이 나 있었으니까.

‘어차피 다들 내가 빠져나가는 걸 봐도 눈감아 줄 텐데 뭐.’

열댓 살이면 대충 제 몫은 할 정도로 큰 데다가, 황후의 조카를 감히 누가 해치려 들겠는가 하는 안일함이 있었기에 닐스는 어렵지 않게 수도에 갈 수 있었다.

그 후 한 달에 한 번. 혹은 몇 달 건너뛰다가 한 번씩 닐스는 서점을 찾아왔다.

인적 드문 곳에 자리한 덕에, 닐스는 홀로 마음껏 책을 읽고 고요한 시간을 보내다 저택으로 돌아가곤 했다.

‘지난번에 읽다 말았던 게 뭐더라?’

벽난로에 불을 집어넣은 닐스가 책장을 찬찬히 살폈다. 오랜만에 왔더니 마지막으로 읽다 꽂아 두고 간 책이 기억나지 않았다.

소설책이 가득 꽂힌 책장을 열심히 살피다가, 하는 수 없이 아무거나 손에 잡히는 대로 꺼내 들었다.

‘뭐지?’

구석에 있는 책 한 권을 꺼내 들자 툭, 하고 뭔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색 바랜 낡은 봉투였다.

봉투 안 종이를 꺼내 보니, 구불구불한 필체로 쓴 편지 한 통이 나왔다.

<줄리아에게.>

이제는 얼굴도 희미한, 아버지가 쓴 편지였다.

‘어머니에게 쓴 편지구나. 읽으면 안 되려나? 에이. 이상한 내용이면 읽다 말지 뭐.’

닐스는 찬찬히 아버지의 흔적이 남은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사랑하는’, ‘보고 싶은’…… 그런 뻔하디뻔한 단어의 쉴 새 없는 나열 속에서, 편지는 과거의 사람들이 간직하고 있었을 감정을 닐스에게 전했다.

사랑하여, 애타게 보고 싶다는 뻔한 마음들을.

* * *

겨우 한 장 남짓의 편지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던 닐스를 깨운 건 문을 세게 두드리는 소음이었다. 놀란 닐스가 편지를 책 사이에 끼우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찰나 쿵, 하는 큰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바람 따라 춤을 추는 진눈깨비와 함께 들어선 건, 여자아이였다. 얼굴을 꽁꽁 감추고 있었지만, 체격이나 두꺼운 옷 너머로 살짝 드러난 선이 명백히 여자의 것이었다.

“후우.”

여자는 닐스가 당황해 굳어 있는 모습을 흘끗거리더니, 끙끙대며 열었던 문을 다시 밀어 닫았다.

바깥에서 들려오던 바람 소리가 멎고, 장작 타들어 가는 소리. 그리고 닐스의 심장이 뛰는 소리만 요란하게 울렸다.

‘대체 누구지?’

닐스는 놀란 나머지 누구냐 묻지도 못한 채 침입자를 바라보았다. 하여 먼저 입을 연 쪽은, 맞은편에 서서 그와 눈을 마주친 여자였다.

“……왜 울고 있어?”

“뭐?”

“당신. 울고 있잖아.”

닐스는 뒤늦게 자신의 얼굴이 눈물범벅임을 깨달았다. 편지를 읽느라 제가 무슨 꼴인지도 여태 몰랐다니.

그가 급히 눈가를 훔쳐 흔적을 지우는 사이, 태연하게 말을 걸어온 여자가 칭칭 감아 매고 있던 천을 한 꺼풀 끌러 내었다.

눈처럼 새하얀 머리칼이 흩날리는 광경에, 바람이 완전히 멈추어 드러난, 또래 여자아이의 얼굴에.

닐스는 시선을 빼앗기고 말았다.

오밀조밀한 이목구비. 연갈색의 커다란 눈동자. 추위가 살짝 맺힌 듯한 입술까지. 전부 그림에서 튀어나온 듯했다.

“무슨 책인데. 그렇게 슬퍼?”

“……책이, 아니라.”

“그러면?”

이상했다. 처음 본 사이였는데도 닐스는 여자와 아무렇지도 않게 대화를 나누었다.

마치 어제도 만났던 사이처럼, 오가는 말들은 그저 심상하고 권태로웠다. 하여 할 말, 못할 말 가리지도 못한 채 닐스는 소녀에게 순순히 대꾸해 주었다.

“아버지 편지였어. 돌아가신…….”

“그랬구나.”

돌아가셨다는 닐스의 말에도 동정은커녕 서툰 위로도 꺼내지 않았다. 울었느냐며 놀리는 투도 없었다.

그저 덤덤한 시선 하나뿐. 안락한 공간을 침범당했으면서도 닐스가 불쾌하지 않은 건, 아마 저 무심한 모습 때문이리라.

“나도. 나도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없어.”

“어쩌다가?”

“글쎄. 잘 모르겠어. 아무도 가르쳐 주질 않아서.”

“답답하겠네.”

“응, 답답해서 나까지 죽어 버릴 것 같아.”

부모가 모두 죽었다는 말. 또래 아이들이 갑갑하다고, 아니면 괜히 습관적으로 내뱉는 죽을 것 같다는 말.

그게 아직 이름도 모르는 여자애의 입에서 나오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설명할 수 없었지만, 대단히 무겁고…… 지독하고.

‘마치 죽고 싶다는 말을 들은 것 같은 기분이 들잖아.’

닐스는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데 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는 늘 아픈 어머니와 죽은 아버지를 가진 불쌍한 아이였다. 그러니 닐스 튀링겐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아이 취급을 받아, 누구에게도 위로의 말을 건넬 일이 없었다.

불쌍한 아이에게 동정심마저 빼앗으려 하는 이는 없었으니까.

결국 닐스는 엉터리 같은 말이나 뱉을 수밖에 없었다. 엉터리 같은 말로 죽음 가까이에 다가간 소녀를 제게로 끌어당겼다.

“죽으면 억울하잖아.”

“뭐가 억울해?”

“당신이 죽어도 이미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을 테니까. 당신이 죽은 탓에 슬퍼할 사람들만 많아지겠지.”

“그런가? 하긴…….”

닐스의 뜻 모를 간절함을 알아준 건지, 소녀는 싱겁게 닐스의 곁으로 다가왔다. 마치 죽음이 별것 아니라고 호기를 부리는 아이처럼.

“없어지는 건 나 하나인데 슬퍼할 사람들은 둘이나 되네. 그러니 손해만 보게 되겠구나.”

“겨우 둘이야? 친구나 뭐, 그런 거도 없어?”

“약혼자가 있는데, 딱히 나 죽는다고 슬퍼할 것 같진 않고.”

“흐음. 약혼자는 무심하고, 친구는 없고?”

닐스는 자신이 대체 왜 슬퍼 보이는 소녀에게 순간 퉁명스럽게 굴고 말았는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약혼자라는 말에, 덜컥거리는 마음이 낸 소리였음을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뭐야. 당신도 말본새를 보니 딱히 친구 없을 것 같은데.”

덩달아 소녀도 퉁명스럽게 대꾸하나 싶더니 별로 상관없다는 양 시선을 돌려 닐스의 뒤에 죽 늘어진 책장을 바라보았다.

“책, 파는 거지? 봐도 돼?”

닐스는 무심결에 그러라고 답했고, 소녀는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종종걸음을 걸으며 책장을 한참 살폈다.

‘뭐야. 마음대로 와서는…… 사람 무시하고.’

그제야 닐스가 소녀를 불청객으로 인식했다. 대체 누구이길래 저렇게 당당하게 찾아와서는, 또 여기가 서점이고 사람이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아서는.

‘차려입은 모습이나, 당당하게 구는 게 귀족가 자제인 것 같은데. 나이도 나랑 비슷해 보이고.’

딱히 닐스에게 위해를 끼칠 사람 같지는 않았으니 경계심이 들 리는 없었다. 그보다는, 무시당한다는 느낌에 기분이 나빠지고 말았다.

그럼 쫓아내야 할 건데, 또 쫓아내기는 싫었다. 여태껏 누가 실수로라도 찾아오면 짜증을 내며 쫓아내 버리기 일쑤였는데. 그게 당연한 일이었는데.

“도와줘?”

어느 순간부터 닐스는 마치 소녀에게 책을 팔기라도 할 것처럼 주인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는 주인이 맞았지만, 그건 소유자의 개념이었지 운영의 주체를 뜻하는 건 아니었다. 하나 닐스는 멀뚱히 책장 높은 곳을 바라보는 소녀를 손님 대접까지 해 주었다.

“당신은 저기까지 손 닿아?”

“말이나 해, 무슨 책 꺼낼지.”

소녀가 읊은 제목이 새겨진 책을 꺼내 준 뒤, 아버지의 낡은 장부를 뒤져 대충 정한 책값을 받기까지 했다.

“43펜이야.”

1골드도 안 되는 가격을 말한 뒤에야 거스름돈 내줄 푼돈이 없음을 깨닫고 당황했는데, 다행히 소녀가 야무지게 1펜 동전을 긁어모아 값을 치렀다.

닐스의 손 안에서 동전들끼리 부딪혀 내는 잘그락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소녀의 체온이 묻어 따듯했다.

“여기, 책 되사 주기도 해?”

“뭐?”

“여기서 사 간 책, 도로 가져오면 중고값 쳐서 사 줄 거냐고. 그러면 다시 오려고.”

“……가져오는 책 상태 봐서.”

닐스는 읽은 책을 되판다는 걸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여자애가 ‘책 사 주면 다시 오겠다.’라고 단서를 다는 말에 홀려서는 그러겠다고 답하고 말았다.

소녀는 다시 커다란 천으로 얼굴을 꽁꽁 둘러매 들어왔을 때와 같은 모습이 되었다. 그러곤 43펜이라는 헐값에 사들인 책을 꼭 쥐고는 문을 향해 걸어갔다.

미련 한 톨 없이 떠나 버리려는 소녀를 닐스가 급히 붙잡았다.

“다음에, 언제 올 건데.”

“그걸 벌써 알려 줘야 해?”

“쉬는 날, 쉬는 날 있어서. 뭐, 닫혀 있는 서점 찾아와서 헛걸음하고 싶으면 말해 주지 말든가.”

“그럼 다음 달 이맘때, 같은 시간에 올게.”

“두 번째 화요일?”

“그래. 두 번째 화요일.”

그때부터, 닐스의 두 번째 화요일은 소녀의 것이었다.

아니, 그의 시간 전부가 소녀도 모르게 헐값에 넘어가고 말았다.

* * *

열여덟의 닐스는 책장 구석에 숨겨 둔 한 권의 책을 꺼냈다. 엘리아가 처음 왔던 날 가져가고선, 다음 달 두 번째 화요일에 찾아와서 제게 되판 것이었다.

<뭐? 43펜에 사간 책을 40펜에 도로 사 달라고?>

<더럽게 재미없었어. 그리고 여기 내가 사 갔을 때 이미 흠집까지 있었다고. 그러니까 40펜에 사 줘.>

닐스는 오기가 생겨서 한 달 내내 서점 영업에 관한 공부를 하고 다음 달 화요일이 되어 엘리아를 다시 만났다.

그리고 다음 달, 또 한 달이 지난 뒤의 두 번째 화요일…….

처음에는 엘리아가 오는 한 달의 하루만 반짝 열려 있던 서점은 점점 불이 켜져 있는 시간을 늘리고, 또 늘려 갔다.

여자애의 이름. 취미. 좋아하는 작가. 찌푸릴 때의 얼굴. 맑은 웃음소리.

그렇게 하나하나 여자에 대해 아는 게 늘어갈 때마다 머무는 날이 늘어나더니 어느 날부턴가 닐스는 매일 여자를 기다리게 되었다.

사랑임을 깨닫고는 기다리지 않은 날이 없었다. 그는 늘 서점에서 여자를 기다렸다.

사랑했으니까.

‘분명 내게는 예고도 없이 갑자기 찾아온 사랑이었으니까.’

작고 낡은 서점. 로앙가의 여자가 찾아오는 한 달의 하루만 반짝이던 안식처에서, 닐스는 단 한 권의 책만 챙겨서 서점의 문을 잠가 걸었다.

과거형이 되고 만 사랑 고백만 남겨 둔 채.

이후 두 번 다시 12번가의 작은 서점은 열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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