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굴레
공작저에 돌아온 한스는 제집이나 다름없는 저택을 죽 둘러보았다.
분명 어디든 시간은 평등해야 하건만, 봄이 푸르르던 로앙 백작가와 달리 라스페가는 마치 가을 같았다.
낙엽이 색색이 물들어 곡식이 익어 가는 풍요로운 금빛으로 가득 찬 가을이 아닌, 잎이 떨어지고 추수가 끝나 황량한 들판이 죽음을 앞둔 듯 보이는.
공작가의 저택은 새카만 가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진짜, 아무도 없는 것처럼 보이네. 평소에도 별반 다르지 않았던가 싶기도 하고.’
라스페 공작이 영지에 내려갔다는 말은 비단 엘리아만을 위한 거짓이 아니었다. 벨젠 경과 한스, 그리고 집사가 상의 끝에 공작가를 보호하기 위해 에드문트가 저택에 없는 것처럼 위장하기로 했다.
미끼가 될 수하 하나가 공작 행세를 하며 영지로 내려갔으니, 수도의 공작가는 정말로 주인이 자리를 비운 듯 을씨년스러웠다.
때 이른 가을이 찾아와 생명을 다 거두어 간 듯, 지독하게 적막하였다.
“오늘은 집무실에 계십니다.”
파리한 얼굴의 집사가 한스를 맞아 주었다.
“참 다행이군요. 어제는 내내 지하 감옥에 처박혀 계시더니만. 오늘은 그나마 사람 사는 방에 처박혀 계신다니.”
분명 다행일 일인데, 집사의 표정은 라스페 공작이 마치 직접 무덤을 파고 땅에 들어앉은 것처럼 참담해 보였다.
“무슨 다른 문제라도 생긴 겁니까?”
집사를 추궁하려던 한스의 눈에 노쇠한 집사의 한쪽 팔이 들어왔다. 시선을 알아챈 집사가 황급히 팔을 뒤로 숨겼지만, 젊은 보좌관이 그의 팔을 잡아채는 게 먼저였다.
손등을 덮을 정도로 긴 옷자락을 들추자, 그 아래에는 피가 묻어 나온 붕대가 둘려져 있었다.
누구 소행인지는 묻지 않아도 뻔했다.
“아 제기랄. 이건 또 어떻게 된 겁니까. 설마……!”
“아닙니다, 그런 게 아닙니다.”
이제는 애먼 사람에게 칼부림까지 했느냐고 화를 내려는데, 집사가 황급히 한스의 말을 막았다.
마음 한번 내준 적 없는 도련님이 대체 무어라고 감싸려 한단 말인가. 팔을 이 꼴을 해 대고. 자칫 잘못했으면 검에 완전히 꿰뚫렸을 텐데.
“약을 드시고 겨우 잠이 드셨는데, 일어나셔서는 또…… 금방 돌아오시질 못하셨습니다. 전부 다 치운 줄 알았는데 어디서 하나 꺼내 오셔서, 그래서 제가…….”
“칼부림이 아니라, 자진하셨다 이겁니까? 그걸, 대체 왜 집사님이 맨손으로 막을 생각을 한 겁니까! 기사들은 대체 무얼 하고……!”
집사는 차마 구체적인 단어를 써서 이야기를 전하지도 못하다가, 한스의 되물음에 어렵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무턱대고 움직인 바람에, 다행히 기사님들이 곧장 검을 수거해 더 큰일은 없었습니다. 나서지 말아야 했는데, 어리석게 구는 바람에…….”
죽어도 공작의 탓은 아니라고 우기는 모습이, 딱 제 망나니 자식들 감싸는 부모 꼴이었다.
‘그래. 집사로서는 그렇게 느껴지기야 하겠지. 친부모에게 방치된 도련님을 본인이 직접 키웠다니까.’
공작 부부는 하루하루 사는 게 버겁다는 이유로 사랑 한 톨 주지 않았고, 심지어 그 무심하던 부모마저 잃고 너무나 어린 나이에 가문을 이끌어야 했으니…….
집사에게 에드문트는 아픈 자식이었다. 어떻게든 더 좋은 것, 더 나은 것 안겨 주고 싶은 애틋한 자식이었다.
한데 잘 버텨 오신 분께서 갑자기 무너지고 말았으니. 그 광경을 곁에서 지켜보는 집사의 속이야 오죽 참담할까.
한스도 집사의 그런 마음은 이해했다. 이해는 했지만…….
“그것뿐입니까? 그러다 바로 정신 차리셨습니까?”
“…….”
“집사님, 저한테는 말을 해 주셔야지요.”
한스는 그렇게 살 수는 없었다. 충성심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자진하는 꼴을 막아 대다가 애꿎은 제 생명 날리는 일은 절대 만들 생각이 없었다.
“후우…….”
공작을 구하려다가 다친 노인네 두고 뭐라 할 수는 없어서 속으로 화를 삭이자, 집사가 괜한 눈치를 보았다.
착해 빠져서는. 아마 저 성격 탓에 공작가에서 여태 버텨 왔겠지.
“지금은, 지금은 나아지셨습니다만 아까는 꿈을 꾸셨는지…….”
“이번엔 또 뭐라 하셨습니까. 또 마차가 어쩌고, 엘리아 아가씨가 어쩌고 하는 소리였습니까?”
도끼에 패여 삭아 가는 고목처럼, 집사는 한스가 최대한 감정을 누그러뜨리고 던진 물음에도 쓰러질 것처럼 굴었다.
<……집사. 내가…… 지금, 내가 지금.>
겨우 버틴 집사가, 입을 열었다.
“……본인이 지금 몇 살이냐 물어보시더군요.”
한스는 참았던 욕설을 터뜨려야 했다.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 * *
집무실에 올라가니 문 앞에는 공작가에 남은 기사들이 죄다 몰려 있었다.
‘아주 라스페 공작이 저택 집무실에 있다고 다들 동네방네 소리 지르고 다니는 꼴이군.’
이래서야, 미끼를 던져 영지로 눈을 돌리는 수작질은 대차게 망했다고 봐야 했다.
공작님께서는 안에서 또 무슨 꼴을 하고 있을지, 생각만 해도 짜증이 난 한스가 들어간다는 말도 없이 다짜고짜 문을 열어젖혔다.
“…….”
집사가 말한 대로, 공작은 서재 창가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다행히 정신머리는 대강 돌아왔나 보네.’
에드문트는 죽여 달라고 크라우제 후작에게 시위하듯 몸을 내놓고 있는 대신 커튼 뒤로 몸을 숨기고 있었다.
“한스, 로앙에 다녀왔나.”
창가에 내리쬐는 가을, 아니 봄 햇살을 배경으로 에드문트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는, 삭은 나무껍질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연상케 했다. 한스는 제 비싼 동정심을 그에게 베풀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예, 당장 오늘부터 호위에 신경 쓰도록 조치했습니다.”
“그래. 수고했다.”
두 번째 들려온 목소리는 제법 멀쩡해졌다. 답지 않게 수고했다는 말까지 했고.
‘그래 봐야, 겨우 조금 나아졌을 뿐이지. 저 인간이 제대로 잠을 못 잔 게 벌써 며칠째더라?’
에드문트는 잠들려 하질 않았다. 제 살을 찍어서라도 억지로 깨어 있으려 들었는데, 그게 가능할 리가 없었다. 그런데도 지친 몸이 그를 꿈속으로 끌어당기면, 그는 대관절 어떻게 하는 건지 채 몇 분 되지도 않아 깨어났다.
<여기가…… 지금, 거울이.>
깨어나면, 그는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날이 갈수록 심해질 뿐, 나아질 낌새가 보이질 않았다. 그러니 오늘도…….
한스는 충동에 미끄러져 나온 물음을 뱉었다.
“공작님, 대체 어떤 악몽입니까.”
툭 뱉어 낸 질문에 남자가 천천히 그를 향해 몸을 돌렸다. 깊게 음영 진 얼굴이, 결코 아름다워 보이질 않았다.
무너진 정신이 얼굴에까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한스가 얕은 거짓말을 해 대며 공작이 수도에 없다고 지껄인 이유가 바로 저, 얼굴 때문이었다.
늘 단정하면서도 소름 끼칠 정도로 무심하던 얼굴이었거늘. 지금은 누구든 그를 보면 눈치챌 수 있을 정도로 선명한 감정이 드러나 있었다.
죽음을 닮은 공포가, 죄악감이, 그리고 고통이.
“어디에든 털어놓으시면 나아질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혼자 앓지만 마시고 제발 말 좀 해 주십시오. 제기랄, 정말 못 봐 주겠단 말입니다. 집사 꼴 보셨습니까?”
“…….”
몇 번 더 캐물었지만, 공작은 대꾸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는 을씨년스러운 정원만 바라볼 뿐.
살살 달래 보려던 한스는 기어코 폭발하고 말았다. 정말이지 지긋지긋했다.
“제길, 죽으려 하십니까? 정말로? 당신 부모처럼 인생 포기하고 그냥 죽어 버릴 생각입니까? 왜요. 죽여 가며 살아남고, 그딴 거 이제 지긋지긋해서, 포기하고 싶으십니까? 자살이라니! 크라우제 후작이 당신 죽으라고 보내는 독이며, 암살자며 전부 아득바득 피해서 여태 살아남았으면서!”
변화한 그가 기꺼웠던 때가 있었다. 사람 같지도 않던 인간이 웃을 줄도 알고, 제 어린 약혼자의 환심을 사 보려고 노력하는 꼴이.
수고했다느니, 도움이 되었다느니 인사까지 건네니 그가 정말 사람이 되는가 싶어 기뻐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알았다.
공작은 평범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었다.
그가 두려움을 느끼고, 투쟁하는 삶을 포기하고 인간다움을 획득하게 되면 살아남을 수가 없음을. 라스페 공작도, 로앙 백작가도, 한스 마이어도.
그러니 대관절 무슨 악몽을 꾸어 두려워하는 건 줄은 모르겠지만, 털고 일어나야 했다. 괴물이 되라고 그를 몰아붙여야만 했다.
한스는 그게, 모두를 위한 최선이라고 여겼다.
“공작님께서 전부 포기하면 엘리아 아가씨도 죽게 될 건데, 정말로 그걸 바라십니까?”
한스는 품에 챙겨 왔던 엘리아의 머리끈을 꺼내 책상 위에 올려 주었다. 솔직히, 선물이라 이름 붙이기엔 민망한 물품이었다. 그래도 한스는 아득바득 받아 왔다.
엘리아 로앙이 지녔던 거라면 종잇조각 하나도 에드문트를 뒤흔들 수 있음을 알았으므로.
역시나 여자의 이름 하나에 남자의 눈빛이 변했다. 저 망가진 꼴로 그나마 여태 살아 있는 건, 분명 사랑 때문이리라.
하나 에드문트에게는 사랑으로 고통을 버틴다는 아름다운 말보다, 사랑이 그의 지독한 고통을 억지로 연장시킨다는 쪽이 더 어울렸다.
‘그래도. 그렇게라도 살아야지.’
한스는 남자가 죽는 꼴도, 하여 여자가 고통받는 꼴도 보고 싶지 않았다.
“아가씨께서 지니고 있던 물건을 주셨습니다. 아픈 티가 온 얼굴에 남아 있는데, 부득불 괜찮다고 전해 달라면서 와중에 당신 걱정을 하더군요. 예, 괜찮다고 했습니다. 공작님께서 아주 평소처럼 잘 지내신다고요! 그리고 또 무슨 거짓말을 한 줄 아십니까?”
차라리 공작이 고통을 견디고, 여자라도 행복해지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한스는 속마음을 체에 걸러 공작에게 상처가 될 날 선 말만 고르고, 또 골라 그에게 퍼부었다.
“황권 다툼이 본격화되리라는 말에 똑똑한 아가씨께서 ‘혹시 공작가에 피해는 없었냐.’라고 물어보시길래, 아무 일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로앙 백작가에도 아무 일이 없을 거라고요! 참나. 아주 뻔뻔하지 않습니까? 저 말입니다!”
책상으로 다가온 공작이 머리끈에 채 손도 대지 못하고 바라만 보았다.
무슨 심경인지, 모를 리 없다.
그는 엘리아 로앙의 앞에서만 끼던 장갑을, 이제는 한시도 손에서 떼지 않는다.
“그깟 머리끈 하나 받고는, 황송하여 손도 못 대십니까? 더 귀한 걸 받으시고도 내팽개칠 생각이시면서요! 공작님께서는 이 머리끈 하나도 받을 자격도 없습니다! 당신 여자는 닐스 튀링겐 새끼가 채 가고, 당신은 진작 당신 손에 죽어 버릴 테니까!”
* * *
작정하고 지껄인 말을 공작이 귀에 처넣은 것 같지는 않았다. 지금 그에게는 오로지 엘리아가 제게 주었다는 초라한 머리끈 하나만이 전부였을 테니까.
눈으로는 책상 위에 내려앉은 엘리아의 흔적을 바라보았고, 머리로는 백금을 입힌 듯 아름다운 머리칼을 떠올렸다.
“어떻게 지내던가.”
남자의 목소리가 또다시 한스를 울컥하게 만들고 말았다.
다 죽어 가는 꼴에 사랑은 차마 버리지를 못해서는, 제 꼴은 생각도 안 하고 겨우 며칠 앓은 여자가 걱정되는 모양이다.
“몸살기가 여전히 남아 있지만, 약을 계속 쓸 것까진 아니고 며칠 저택에서 더 쉬시면 나을 거라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제 앞에서는 속상해하셨습니다. 엘리아 아가씨 말입니다.”
누그러진 한스의 목소리가, 몇 시간 전 만난 엘리아가 어땠는지 알려 주었다.
“공작님께 무엇이든 전해 주고 싶은데 당장 줄 수 있는 게 겨우 머리끈 하나뿐이라고 마음 아파하시더군요.”
가냘프던 여자의 마음을 말로나마 전해 주니 꺼멓게 죽은 눈이 한스를 향해 왔다. 전처럼 눈을 마주쳐도 공포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저 지극한 공포를, 뜻 모를 감정을 홀로 이겨 내 보려는 처절함만이 녹아 있었다. 한스는 다시 연민했다. 같은 남자를 두고, 욕을 퍼붓다가 또 연민하려니 저도 미칠 지경이었다.
“공작님, 악몽을 홀로 버티기가 버거우시면 어디에라도 제발 털어놓으십시오. 꿈과 현실을 구분 못 하시질 않습니까. 지금 당신이 스물두 살이고, 약혼자께서 성년을 앞둔 엘리아 로앙이라는 것도, 서로 마음을 나누었다는 것마저 잊은 듯 구시질 않습니까.”
에드문트는 보좌관의 말을 드문드문 곱씹었다. 눈물. 악몽. 스물둘. 엘리아 로앙. 엘리아 로앙. 엘리아 로앙.
창문 밖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보면, 과거의 기억이 겹쳐 보였다. 비가 세차게 내리는 까만 하늘 아래로 떠나던 모습이.
그는 아직 스물여덟의 아내를 놓아 주질 못하고 있었다. 스스로가 망가질 대로 망가지고 말았음을 알았고, 이대로 손을 놓고 있다간 크라우제 후작에게 기회를 주는 꼴이 되리라는 것도 알았다.
그러나 대체 무얼 해야 하는지를 모르겠다. 아득바득 살아남고, 어린 엘리아를 보호하고. 거짓된 사랑을 하고. 스스로 눈을 가린 채 여자가 주는 달콤함이 제 것인 양 받아먹고…….
그렇게 살고 싶었다. 지극히 원하고, 또 원했다. 선물로 줄 만한 게 없다며 속상해했을 여자를 찾아가 마주 보고 웃어 주고, 이름을 부르고 싶었다.
여자가 사랑을 다시 거둬 갈 때까지.
하나 여태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는 감정들이 그의 발목을 찍어 눌렀다. 발등에 못질해 대며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했다.
죄악감, 그리움, 후회. 그런 것들. 사람을 약하게 하고 앞으로 나가는 걸 주저하게 하는 모든 감정이 여태껏 숨어 있다가 한꺼번에 쏟아져 그를 붙잡았다.
아팠다. 너무 아파서 주저앉아 쉬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 그래야지.”
하나 영영 붙들려 있을 수는 없었다. 그는 괴물이었고, 보좌관의 말대로 살아남아야 했으니까.
권력 투쟁으로부터. 지독한 죄악감으로부터.
“살아야겠지. 그래. 살아서…….”
더는 죽음으로 도망칠 수도 없는 남자가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입으로 뱉었다.
실은 죽음이란 안식마저 잃어버려, 이제 그에게는 견뎌 내는 삶만이 남아 살아갈 수밖에 없었지만.
전부 그가 홀로 버틸 수밖에.
눈을 감으면 죽은 여자를 만나 이별하고, 잃어버리고.
눈을 뜨면 죽은 여자와 맞바꾼 사랑을 탐하고. 갈망하고.
평생을 그렇게…… 끊어 낼 수 없는 굴레에 갇힌 채 살아야 하리라.
* * *
약속한 화요일.
남자는 전해 받은 마음을, 지독했던 간밤의 꿈을 끌어안고서.
여자는 곧게 키운 마음을, 슬픔에 휘청이지 않도록 끌어안고서.
서로를 기다렸다.
마냥 행복할 수도, 설렐 수만은 없었으나 그래도, 두 사람 만나러 가는 길에는 샛노란 봄이 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