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 전하지 못한 말 (18/79)

18. 전하지 못한 말

한스 마이어를 태운 공작가의 마차는 늦은 오후, 길게 뻗은 그림자와 함께 로앙가에 도착했다.

저녁 준비가 한창인 백작가 저택은 구석구석 사용인들의 부드러운 대화 소리와 따듯하게 데운 온기가 가득했다.

‘여기는 아주 딴 세상 같다니까. 착해 빠진 사람들만 따로 떼어다가 모아 놓은 것 같기도 하고. 예전에 그런 소설이 있지 않았나? 화내지 못하는 인간들만 살던 곳에 평범한 주인공이 찾아가서…….’

한스에게는 다른 의미로 적응하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저택에 무슨 사용인들이 이렇게나 많이 돌아다니는지, 심지어 하나같이 생글생글 웃는 상이었다.

“안녕하세요. 날이 참 좋지요?”

나긋한 인사말이 제게 하는 인사인 줄 모르고 몇 번 지나치기도 했고, 가끔은 다른 사람에게 하는 인사인가 싶어 뒤를 돌아보기까지 했다.

‘오는 손님들 전부 친절하게 대하라고 일부러 교육해 둔 건가?’

그러지 않고서야, 일하는 데 무슨 재미가 있다고 저렇게 웃어 대겠는가.

비교하자면 라스페가의 사용인들은 대체 누가 누구인지 구별하기도 어려울 무표정을 하고는 소리 하나 없이 돌아다니곤 했다.

그 얄팍한 사람 인기척마저 느끼지 못할 때가 대부분이고 말이다.

“한스 님, 잠시 여기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바로 차를 내오도록 하겠습니다.”

“아가씨께서는 조금 걸리시겠는가?”

“예, 그게…… 금방 모셔 오는 중입니다.”

“흠. 혹시 내가 바쁘신 시간에 왔는가? 공작님께서 한시바삐 전해 드리고 싶어 하셔서 곧장 달려오느라, 아가씨가 따로 일정이 있으신지도 확인하지 못하였네.”

“아닙니다. 오늘 따로 일정은 없었습니다만, 그……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됩니다.”

한스는 오늘 4층 응접실이 아닌, 로앙 백작이 사용한다는 3층의 응접실로 안내를 받아 엘리아를 기다렸다.

아기자기하게 꾸민 4층 응접실과 달리, 3층은 세련된 감각으로 고가구를 배치해 놓은 게, 나름 가주의 응접실다웠다.

아마 그림 솜씨로 꽤 정평이 나 있는 로앙 백작 본인이 솜씨를 부렸으리라.

그를 뒷받침하듯 벽에는 훌륭한 솜씨의 유화 몇 점이 가지런히 걸려 있었다. 물론 그림 아래엔 외젠의 서명이 적혀 있었고.

‘선대 백작 부부가 일찍 사망하지 않았더라면 로앙 백의 인생도 달랐겠지. 요즘은 출신 좋은 예술가이면 웬만한 상단보다 훨씬 돈을 벌어들인다잖아?’

돈이 문제겠는가. 한스는 귀족원 회의에 참석할 때마다 한숨을 푹푹 내쉬는 로앙 백작의 모습을 떠올렸다.

다들 일하기 싫어하는 건 마찬가지지만, 한스가 보기엔 백작만큼 가주 노릇이 적성에 안 맞아 힘들어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래도 제 식구 건사한다고 버티는 걸 보면 대단하지. 참, 이럴 때면 귀족으로 태어나서 뭐하나 싶다니까? 구질구질해도 하고 싶은 일 하며 사는 내 인생이 더 나아 보이는데.’

어차피 누구 앞에서 떠드는 말도 아니었으니, 한스는 제 인생을 로앙 백작과 비교해 보며 아낌없이 스스로의 살아온 행적에 찬사를 보내었다.

‘아무렴. 이 정도면 아주 훌륭하게 잘살고 있지. 그렇고말고.’

응접실 구경을 끝내고, 몹쓸 생각까지 마친 한스가 차를 따라 주던 집사에게 말을 걸었다.

“흠흠. 로앙 백작께서는 요즘 바쁘시다지?”

“예, 사흘 연속으로 외부 일정이 있어 오늘도 저택을 비우셨습니다. 저녁때에는 돌아오실 텐데…….”

“아니, 아닐세. 뵙겠다는 게 아니고.”

봄을 맞아 작은 상단 여럿을 소유한 로앙가는 무척 번다했다.

‘공작님도 원래 이맘때에는 외부 일정으로 바빠야 했는데 다 미뤄졌으니, 나중에 젠장 맞게 바빠지겠구먼.’

그놈의 상사병 탓에 외부 일정을 최소화하고 저택에서 칩거 중이니, 나중에라도 꼭 방문해야 할 곳이 무려 일곱 군데가 넘었다.

‘그러고 보면 우리 공작님이나, 공작님 약혼자분이나. 홀로 저택을 지키는 신세네. 가족도 없이.’

하면 두 사람 다, 외롭지는 않을까.

사용인들이 암만 살가워 봤자, 각자 가족이 있고 생활이 있지 않은가. 그들이 건네는 애정이 엘리아에게 완전한 대체재가 되어 줄 순 없으리라.

당장 한스만 하더라도 공작을 향한 충성심은 있으나, 그 이상 공작을 위해 시간과 정성을 쏟을 생각은 없었다.

오지랖 부리는 것도, 결국 미래에 저 편해지자고 하는 일의 연장선일 뿐이고.

“한스 경, 어쩐 일인가요?”

엘리아는 다소 시간을 지체하고 나서야 3층 응접실로 내려왔다. 침대에서 내내 뒹굴었더니 겨우 거지꼴을 면하는 데 다소 시간이 걸리고 말았다.

하나 안타깝게도 노력이 그다지 빛을 보지 못하여, 한스에게는 ‘갓 자다 일어난 듯한’ 모습으로 보였다.

남에게 흐트러진 차림을 보이면 자존심이 박살 나 죽는 것처럼 구는 귀족들이 세상천지인데. 보면 볼수록 참 이상한 아가씨였다.

‘하긴. 평범한 귀족 같았으면 공작님이 관심도 없었겠지. 이렇게 보면 참, 운명이 있다는 게 허튼 말은 아니다 싶다니까. 독특한 사람들 외롭지 않게 다른 독특한 사람이 존재하잖아.’

한스는 공작에게도 운명이 찾아왔는데, 제게는 언제쯤 비슷한 게 오시려나 궁금해졌다. 언제까지 남의 연애에 껴 시간을 보내야 할는지.

“한스 경?”

“아, 이런. 죄송합니다. 잠시 급한 일이 떠올라서……. 그간 무탈하셨는지요?”

헛생각을 실컷 하느라 엘리아의 인사를 무시했으면서 한스는 뻔뻔한 거짓말로 상황을 모면했다.

“저는 잘 지냈어요. 덕분에 보고서 재미있게 읽었고요. 제가 전해 받았던 극단 인수 보고서, 한스 경이 쓰신 거 맞지요?”

“예, 맞습니다. 하하. 보고서를 수백 번 써서 올렸는데 재미있었다고 해 주시는 분을 만난 건 처음입니다.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재미있던걸요? 수도에서 공연을 본 적이 없는데, 기회가 되면 한번 보러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이름도 적어 두지 않은 보고서를 알아봐 준 데다가 이렇게나 넉넉한 감상평이라니.

한스는 점잖은 보좌관 흉내를 내던 걸 잊고 헤벌쭉 웃고 말았다.

‘어휴. 오늘 무슨 날인가? 분명 생일은 아닌데!’

지난 4년간 뼈 빠지게 일하는 동안 칭찬 한 번, 고생했다는 살가운 말 한 번 못 듣고 살았는데……. 하루 만에 무려 두 번이나 인정받다니.

‘크, 심지어 준비한 선물이 공연 초대권인 건 또 어찌 아시고 공연을 보고 싶으시다니! 어휴. 나는 운도, 아니 실력이! 하, 참! 이걸 어디 자랑할 수도 없고!’

한스는 흥분을 잠시 미뤄 둔 뒤 용건을 말하고자 했다. 겉옷 안주머니를 뒤지는 손이 벌써 달아올라 어쩔 줄 모르겠더라.

“그것참, 정말 다행입니다. 실은 제가 이렇게 찾아뵙게 된 이유가…….”

한껏 뜸을 들인 한스가 품에서 새파란 봉투를 꺼내 들자, 곧장 엘리아의 눈이 커다랗게 떠져선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건, 이번엔 또 뭐예요?”

“공작님께서 아가씨께 꼭 전해 드리라 하셨습니다. 의견서를 주신 답례로 말입니다. 물론, 아가씨께서 곱게 꾸며 돌려주신 봉투에 대한 답례이기도 하지요.”

“그, 그 봉투 에디도 봤나요? 혹시 뭐라고, 무슨 이야기 안 했고요?”

수줍어서 어쩔 줄을 모르는 목소리가, 창가에서 들어온 붉은 노을로 색칠한 두 뺨이, 애타 하는 눈동자가. 아쉬웠다.

너무나도 아쉬웠다.

보통의 남자들이었으면 금방 마음을 내주고 말았으리라.

모시는 주인님의 약혼자라는 장벽이 없었더라면, 어쩌면 한스조차도 밤새 여자의 얼굴을 곱씹으며 잠 못 들었을지도.

다행히 한스는 엘리아를 바라보며 자신의 상관을 떠올렸을 뿐이었다. 그러니 아름답다는 감상보다는 아쉬움뿐이었다.

‘무슨, 아무것도 안 했는데 괜히 죄지은 기분마저 드네. 공작님이 보셨어야 하는 걸 내가 훔쳐보는 기분이 들어서. 어휴, 저걸 어쩌냐고. 아무리 나라도 저 모습은 가져다 보여 드릴 수가 없는데.’

한스는 그 어느 때보다도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엘리아로 하여금 ‘봉투를 받았을 때 약혼자의 모습’을 상상케 할, 주문 같은 답을 내놓기 위해서.

“한참을 두고 보셨습니다. 한참을, 말입니다.”

고심 끝에, 한스는 형태도 채 잡지 않은 인물화 같은 묘사를 내어놓았다.

상상할 수 있도록, 그러나 결국 머릿속에서 끌어내 만든 남자의 모습으로는 만족할 수 없도록.

“그리고 저는, 감히 말씀드리자면 공작님께서 그런 표정을 하신 건 처음 봤습니다. 아마 저택의 누구도 주인님의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을 겁니다.”

“……그게 어떤 표정이었는데요?”

“죄송합니다. 말주변이 부족하여 설명해 드리기가 어렵군요. 무엇보다 그분의 감상을 제가, 곡해하여 전달할 위험성이 있으니까요.”

“그래도, 혹시 조금만이라도 알려 줄 수 없을까요? 에디가 불쾌해하거나 그런 느낌은 아니었지요? 공작가의 상징물에 무례를 범하여서, 아 물론! 그런 의도는 전혀 없었고요. 정말로요. 그러니까 그림을 그린 건…….”

“엘리아 님, 걱정하실 필요는 전혀 없으니 염려 놓으셔도 됩니다.”

엘리아는 그제야 울상이던 얼굴을 고쳐 잡고는 푸른색 봉투를 받아 들었다.

도톰한 첫 번째 봉투에는 공연 초대권 세 장이 들어 있었다. 겨우 잠잠해진 엘리아의 표정이 이번에는 놀란 토끼처럼 변하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보며 한스는 점잖은 보좌관 행세를 완벽히 포기했다. 다채로운 표정 앞에서 무게를 잡고 대화를 나누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이건, 공연 표 같은데…….”

“예, 올해 수도에서 가장 화두에 오를 기대작이지요. 공작님께서 고심 끝에 아가씨를 위해 준비하신 답례입니다. 마침 공연 관람에 흥미를 느끼셨다니, 공작님께서 들으시면 무척 기뻐하실 겁니다.”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선물이 된 공연 초대권에, 한스는 엘리아의 반응을 무척 고대하였다.

잘 보아 두었다가, 공작에게 의미심장한 미사여구와 비유법을 뒤섞어 설명해서는, 직접 찾아오지 않은 걸 후회하게 해 줄 생각이었다.

“고맙다고, 전해 주세요. 한 일에 비해 너무 과한 선물인 것 같은데. 그래도 공연 보는 거, 처음인데 기쁘다고…… 그리고 또, 기다리겠다고…….”

엘리아는 더듬거리면서도, 제가 느낀 감정을 최대한 말로 풀어 설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한스가 자신의 마음을 에드문트에게 전달해 주길 바라서.

‘아깝네. 아가씨 진짜 공작님에게 아까운 사람이네.’

한스가 보기엔 엘리아는 에드문트보다 훨씬, 몇 배는 훌륭한 연인이었다. 아니, 예비 연인이라고 해야 할까?

약혼한 사이에서 ‘예비’라는 기괴한 단어로 ‘연인’이라는 단어를 수식하는 건 참으로 애석한 일이지만, 어쨌거나 사실은 사실이니까.

“공작님께 꼭 전해 드리겠습니다. 비록 안타깝게도 일정 탓에 함께하시진 못하시지만, 공연 즐겁게 보고 오셔서 감상을 전해 주시면 아마 더없이 기뻐하실 겁니다.”

“뭐라고요?”

엘리아가 저도 모르게 크게 높인 목소리가 천장을 찍고 다시 바닥으로 떨어졌다.

“잠깐만요. 에디, 에드문…… 라스페 공은 같이 안 보시는 건가요? 이거, 표 세 장이나 되는데. 하나는 외젠 몫이 아니고? 그럼 왜 세 장을 준 거래요?”

“아, 먼저 설명해 드리지 못하여 죄송합니다. 공작께서 하필 그날 바쁜 일정이 있으셔서, 로앙 백작님과 유모와 함께 가실 거로 예상하고 제게 석 장을 구하라 지시하셨습니다.”

“정말, 정말로요? 에디가 바빠서 못 오는 거예요? 일정 때문에?”

“그렇습니다. 공작께서도 퍽 안타까워하셨습니다.”

“……정말로요?”

“제가 어찌 귀한 분께 거짓말을 고하겠습니까?”

한스는 낯짝 두껍게도 거짓말로 거짓이 아님을 강조했으나 쉽게 넘어가 줄 엘리아가 아니었다.

“정말, 정말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 일정 때문이라고요?”

그러나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물러서지 않는 한스 탓에, 결국 엘리아는 더 이상의 추궁을 포기해야 했다.

“알겠어요. 에디한테, 고맙다고 전해 주고…… 그냥. 고맙다고 전해 줘요.”

“예, 아가씨께서 동행하지 못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으시고는 퍽 아쉬워하셨다는 이야기까지, 제가 꼭 전하겠습니다.”

“그, 그건…… 그래요. 제가 아쉬워했다고, 전해 주세요. 당연히 에디가 선물한 거니까…… 게다가 세 장이었으니까…….”

“제가 먼저 알려 드리지 못한 탓이었습니다. 아가씨께서 충분히 오해할 만한 상황이었지요.”

“그렇게 말해 주어서 고마워요.”

서운한 기색을 전부 감추지 못한 엘리아의 모습을 보며, 한스는 기시감을 느꼈다.

‘이상하지. 여태 본 로앙가 아가씨는 대체로 당황해하거나, 의심하거나 뭐 그런 얼굴이 대부분이었는데. 기시감이라니?’

실망의 빛이 반짝거리는 엘리아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면서, 한스는 ‘대체 저런 얼굴을 어디서 봤더라.’ 하고 내내 고민했다.

* * *

“아! 맞네!”

돌아가는 마차에 올라탄 뒤에야, 한스는 저택에서 엘리아의 얼굴을 보며 느꼈던 기시감의 정체를 밝혀냈다.

너무 기쁜 나머지 조용한 마차 안에서 소리를 질러, 밖에 있는 마부를 깜짝 놀라게 하고 말았다.

“한스 님, 무슨 일 있으십니까?”

“아니, 아닐세. 걱정할 것 없네.”

한스는 담담한 척 대답하면서도 입꼬리가 자꾸 올라가 어쩔 줄을 몰랐다.

‘그거네, 그거. 그! 돼지 닮은 토끼! 오른쪽에 서 있던, 눈치 설설 보던 거! 좋아, 가서 그대로 설명해 드리면 되겠네. ‘아가씨 표정이 말입니다, 봉투에 직접 그리셨다던 새하얗고 귀여…… 아니, 외로워 보이던 토끼랑 꼭 닮았더랍니다.’라고 말이지.’

이 사이에 쿡 박혀 있던 풀떼기를 단번에 쑥 뽑아낸 것만큼, 후련한 기분이었다.

* * *

“아! 어떻게 해!”

한스가 마차 안에서 깨달음을 얻었던 그 시각, 로앙가 4층에서도 외마디 비명이 울려 데이지를 깜짝 놀라게 하고 말았다.

“놀라라. 아가씨 무슨 일이세요?”

“아니! 아니야, 아무것도…….”

엘리아는 놀라서 쫓아온 데이지에게 아무것도 아니라며 복도로 돌려보냈다. 그러곤 푹신한 베개 위에 얼굴을 처박고 끙끙거리며 자책했다.

‘아, 어떻게 해. 어쩜 좋아. 전해 줘야 했는데!’

급기야 엘리아는 침실을 박차고 나가 4층 계단을 순식간에 뛰어 내려왔다. 그러나 한스를 태운 공작가의 마차는 엘리아의 손톱만 하게 보일 정도로 멀어진 뒤였다.

‘망했어.’

생전 뛸 일이 없었던 엘리아는 다리가 풀려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고 말았다.

“아가씨, 왜 그러세요. 혹시 한스 님이 뭐 놓고 가셨어요?”

“아냐, 됐어. 이미 늦었고…… 아무 일도 아니야.”

이미 늦었다면서, 또 아무 일도 아니라는 어설픈 거짓말로 대충 얼버무린 엘리아는 그저 망연히 멀어지는 마차를 바라보았다.

길 끝에 다다른 마차가 사라지고 나서야 몸을 일으킨 엘리아가 옷에 잔뜩 묻은 흙먼지를 털어 냈다.

애꿎은 옷을 팡팡 두들겨 가며 실컷 화풀이를 해 보았지만…….

‘멍청이, 바보 멍청이야.’

전하지 못한 말이 남긴 아쉬움은 고운 흙처럼 떨어지지를 않더라.

눈치도 없이, 반짝거리면서 ‘나 아직 여기 있는데.’라며 엘리아를 약 올리기만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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