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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7화. 이실리스의 일탈(7) (158/161)

외전 7화. 이실리스의 일탈(7)

그녀가 미처 인지하지 못한 부분을 꼬집자 두목은 입을 다물었다. 입술을 질끈 깨무는 그 얼굴을 바라보던 이실리스가 그들을 향해 입을 열려 할 때였다.

“폐하, 밖에 칼리파 제국에서……!”

“비켜.”

기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를 밀치면서 누군가 등장했다.

“우스만 칼리파.”

여기서 그가 등장하면 안 될 일인 것을. 배후가 칼리파 제국의 사람인 것이 확실했다. 어떻게 소식을 듣고 이곳에 온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이렇게 그가 여기 왔다는 것은 이실리스나 라르헨 제국에 정보가 흘러 들어가기 전에 그들을 데려가겠다는 뜻이었다.

“뭐야, 베르타스가 심문할 줄 알았더니 웬 이상한 여자가 앉아 있어? 너 바람 낫냐?”

이실리스를 눈치채지 못하고 함부로 말하는 우스만의 태도에 베르타스는 헛웃음을 보였다. 그의 웃음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우스만이 묘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잘됐네. 이실리스는 내게 맡기고 넌 그 여자랑 잘해봐.”

“결혼까지 한 놈이 미친 소리를 하는군.”

“그야 네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 않나?”

둘의 대화를 더는 듣고 있을 수 없었던 이실리스가 입을 열었다.

“우스만 칼리파.”

“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리……. 설마 너?”

“내 제국에 소식도 없이 들어온 이유를 설명해라.”

이실리스의 말에 우스만이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뭐야,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내 말이 들리지 않나?”

라르헨 제국의 국경이 언제부터 이렇게 오만가지 사람들이 드나들기 시작한 것인지. 문제가 심각했다. 비단 여기뿐만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광역 결계가 없어지고 나서 호기심이든 뭐든 라르헨에 몰래 들어서는 자들이 늘고 있다는 소리였다.

돌아가자마자 알뤼르와 대책을 세워야겠다고 결심한 이실리스가 우스만을 향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녀를 빤히 바라보던 우스만이 성큼 다가섰다.

“이렇게 보니 조금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우스만 칼리파. 난 두 번 말하는 것을 싫어해.”

“아, 좋아. 네가 이 라르헨의 황제라는 것을 어떻게 믿지?”

이렇게 나올 줄 알고 있었던 이실리스였다. 우스만의 성격이라면 확인을 하지 않고 순순히 넘어가진 않을 테니까. 기실, 베르타스의 기사들이 이상한 것이었다. 베르타스가 이실리스라고 말하자 순순히 믿는 그 모습에서 그를 향한 충성심을 알 수 있었다.

라르헨의 황족을 상징하는 패를 꺼내든 이실리스를 향해 우스만이 빙글거리면서 입을 열었다.

“우리 황제 폐하께서 여기까지 나오신 이유가 저자 때문이겠지?”

베르타스를 턱짓으로 가리키는 건방진 태도에 이실리스가 입매를 굳혔다. 시간이 흘러도 우스만은 여전했다.

“우스만 칼리파.”

경고하듯 다시 그의 이름을 부르자 우스만이 손을 내저었다. 항복하겠다는 듯 손을 살짝 드는 그를 보면서 이실리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복잡하게 되었다. 우스만 칼리파가 나타난 이상 조용히 덮을 문제는 아니었다.

“저들을 잡으러 왔지. 보아하니 이미 라르헨에서 해결한 것 같지만.”

“저들이 대체 누구기에…….”

갑자기 튀어나온 우스만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두목이 그를 향해 뛰어들었다.

“우스만 칼리파!”

언제 밧줄을 풀었는지, 그녀는 그의 이름을 부르며 검을 날렸다.

“창의성이 없어.”

베르타스가 이실리스의 앞을 막아선 그 순간 우스만은 제게 달려든 여자의 목을 틀어쥐었다.

“기습은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하는 거야. 일레나.”

두목의 이름을 부른 그가 바닥에 여자를 내팽개쳤다. 사정없는 그 움직임에 이실리스의 눈썹이 조용히 올라갔다. 칼리파 제국에서 어떤 행동을 하든 상관없었지만 지금 이곳은 라르헨이었다. 라르헨 제국 내에서, 아니 그녀의 앞에서 저런 행동은 보고 싶지 않았다.

“아는 사이인가?”

그녀가 입을 열자 베르타스가 비켜섰다.

“물론. 숙부의 딸이지.”

“사촌?”

“정확히는 내 황태자 자리를 노리는 여자의 심복.”

칼리파 제국의 복잡한 사정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었다. 라르헨 제국과는 다르게 사막제국인 칼리파는 여러 명의 부인을 두어 황위 계승자가 넘쳐난다고.

“원, 원래 그 자리는 네 것이 아니었다!”

바닥에 쓰러진 채로 외치는 여자의 말을 들은 우스만이 발로 여자를 밟았다.

“그렇지만 내가 차지했지.”

“우스만 칼리파.”

“아, 미안. 우리 황제 폐하께선 이런 것보다 깔끔하게 죽이는 것을 선호했지.”

이실리스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우스만이 입을 열자 이번엔 베르타스의 눈꼬리가 올라갔다. 그를 향해 빙긋 웃어 보인 우스만이 이실리스를 향해 입을 열었다.

“라르헨의 황제께서 칼리파의 속사정을 아셨으니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내가 무슨 도움을 주면 되겠나.”

“이 사람들을 넘겨주십시오.”

“대가는?”

“칼리파 제국은 황제께서 살아계시는 동안 라르헨의 국경을 넘지 않겠습니다.”

생각보다 구미가 당기는 조건이었다. 다만 그녀가 살아있는 동안이라는 것이 걸렸지만.

“에리카가 황위에 오르면 라르헨을 어찌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하나?”

“그야 모를 일이죠.”

포기할 수 없다는 그의 말에 베르타스의 눈이 점점 하늘로 향했다. 화가 난 그에게서 소드마스터의 오라가 넘실거렸으나 우스만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이실리스를 향해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어떻습니까, 폐하?”

“좋네.”

이실리스의 결정에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다. 어차피 제국 최고의 결정권자는 황제였고 그녀가 그렇게 하겠다고 마음먹은 이상 원하는 대로 이뤄질 것이 분명했으니까. 우스만이 손짓하자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칼리파 제국의 전사들이 우르르 들어와 도적들을 끌고 나갔다.

“친서를 기다리겠네.”

“곧 다시 뵙겠습니다. 폐하.”

이실리스의 손등에 입술을 댄 우스만이 몸을 돌려 사라졌다. 라르헨의 국경에 일어났던 소란은 그렇게 마무리되는 듯했다. 

“이실리스.”

베르타스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고 잠시 생각하던 이실리스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저들이 누군가의 아들을 찾아왔다고 했는데.”

“아들?”

“그래. 그분의 아들을 찾겠다고 했었지.”

신경 쓸 일이 아니라는 듯 이실리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라르헨의 일만으로도 상당히 피곤했는데 다른 나라의 일까지 신경 쓸 필요가 있을까. 그러나 우스만의 말을 듣고 이실리스의 말까지 들어버린 베르타스의 생각은 달랐다.

‘그 아이로군.’

단 몇 마디로 상황을 유추한 그였다. 그의 기사단이 데리고 있는 아이는 칼리파 제국의 황족이 틀림없었다. 그것도 저 우스만 칼리파가 직접 나서서 제거해야 할 정도로 황위 계승권에 가까운 아이.

‘감히 내 딸을 거론해?’

우스만이 이실리스에게 국혼을 제안한 것을 아직도 잊지 않았다. 언젠가 갚아주겠다고 했지만, 생각보다 그 기회가 빨리 올 것 같았다. 이실리스는 피곤하다며 방으로 들어가 버렸고 혼자서 쉬겠다는 그 말에 베르타스는 다한을 불러들였다.

“부르셨습니까, 각하.”

“어제 보호한 그 아이.”

“네.”

“어디 있지?”

“기사단에서 잘 보호하고 있습니다. 헌데 그 아이는 왜…….”

“데리고 황궁으로 돌아가야겠다.”

“황궁에요?”

“그래.”

“갑자기 그 아이는 왜…….”

다한이 묻자 베르타스가 그를 향해 눈을 빛냈다.

“아무래도 칼리파의 황위 계승자를 손에 쥔 것 같거든.”

베르타스의 그 말에 다한이 놀란 숨을 들이켰다. 우스만 칼리파보다 더 빨리 그 아이를 찾아서 다행이었다. 데리고 오겠다며 밖으로 나간 다한을 기다리는 동안 베르타스는 의자의 팔걸이를 톡톡 두들겼다.

아이를 데리고 무언가 할 생각은 없었다. 다만 황위 계승자는 데리고 있는 것만으로 힘이 될 수 있었다. 특히나 국가 간의 분쟁이 있을 때는 더욱더.

‘당장은 아니지만 제법 쓸만한 패가 될 거야.’

다한과 함께 들어온 아이는 제법 똘똘해 보였고 에리카보다 서너 살 많아 보였다. 

“이름이 뭐지?”

“헤난타요. 아니, 헤난타라고 합니다.”

“어머니는?”

아이의 어머니를 데려왔느냐는 물음에 다한이 고개를 저었다. 보호를 위해 갔더니 이미 죽어있었다는 표현이었다.

‘안 봐도 환하군.’

이곳에 오기 전 우스만 칼리파가 손을 쓴 것이 틀림없었다. 이쯤 되면 아이의 행방을 찾으려 할 텐데 이실리스가 이곳에 있는 이상 불가능하니 다음 기회를 노릴 터.

“나와 함께 가겠느냐?”

“네?”

“어머니가 죽었다고 들었다. 돌아갈 곳도 없을 텐데 나와 함께 가겠느냐?”

베르타스의 말에 무언가 느낀 아이가 눈을 빛냈다.

“가면 제가 뭘 할 수 있을까요.”

“그건 너 하기에 달렸지.”

하는 짓을 봐서 결정하겠다는 그의 말에 아이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다 결심했다는 듯 고개를 번쩍 들었다. 베르타스를 바라보는 푸른 눈동자에 확고한 신념이 서려 있었다.

“가겠습니다.”

이실리스와 베르타스의 외유는 그렇게 끝이 났다. 한 아이를 황궁에 들이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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