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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화. (146/161)

145화.

베르타스는 그 자리에서 목걸이를 꺼내 들었다. 목걸이를 검으로 만든 그가 소리가 들린 곳으로 달려갔고 타르토스는 그곳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광역 결계따위, 없애 다오. 보클로엠.”

아스라이 흩어지는 그의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 *

이실리스는 알뤼르와 함께 마법 서고를 뒤지고 있었다. 황족만을 위한 마법서가 가득했기에 알뤼르의 눈이 휙휙 돌아가는 것이 보였다.

“알뤼르.”

“네, 폐하! 저는 못 봤습니다!”

황족을 위한 마법서를 황족이 아닌 자가 읽었을 경우 마력을 뽑아내는 형벌에 처한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알뤼르가 서둘러서 이실리스를 향해 말했다.

“그만 두리번거리고 어서 찾게.”

“알겠습니다.”

다섯 번째 책장을 살피고 있을 때였다.

“찾았습니다!”

알뤼르가 책을 들고 이실리스에게 뛰어왔다. 그에게서 책을 건네받은 그녀가 서둘러 책을 펼쳤다.

“맞군.”

책장을 넘기던 이실리스의 손이 빨라졌다. 마법서의 내용을 읽던 이실리스의 표정이 변했다. 날카로운 눈을 들어 알뤼르를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에 그가 움찔했다.

“읽었나?”

“아니, 그럴 리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다행이군.”

“무슨 내용이길래 그러십니까?”

“알고 싶나?”

“아니, 아닙니다.”

순식간에 변하는 그녀의 얼굴을 확인한 알뤼르가 고개를 저어가며 말했다. 황제의 앞에서 그런 행동을 보이는 것은 실례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만큼 다급했다.

“알려고 하지 말게. 내 손으로 자네를 죽여야 할 수도 있으니.”

“명심, 또 명심하겠습니다.”

이그나르도의 마법서엔 라르헨의 제국민들이 알아서는 안 되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바로 이그나르도가 라르헨의 황족이라는 것이었다.

‘어쩐지 그런 고위 마법이 아무 근거도 없이 나왔다 했지.’

라르헨의 황위를 잇지 못한 이그나르도는 보클로엠을 데리고 바다를 건너갔다. 라르헨의 황족들은 대대로 붉은 마력을 타고 나기에 보클로엠과 유사한 마력 파장을 지니고 있었다. 이그나르도는 자신의 그런 마력을 이용해 보클로엠을 가둘 계략을 짰고, 그가 만든 마법 시약을 마신 보클로엠은 정신을 잃었다. 가까운 이가 놓은 덫에 걸린 보클로엠이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모든 상황이 끝난 상태였다.

‘이래서였군.’

보클로엠이 이그나르도라면 이를 가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라르헨에 호의적이었던 드래곤이 광역 결계를 없애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마음을 바꾼 이유도.

이그나르도는 타고난 천재였다. 그의 마법진은 보클로엠의 마력을 뽑아내는 용도로 사용되었고 보클로엠이 마력을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마법진의 힘이 강력해지는 술식을 사용했다.

“애초에 막을 수 없는 문제였어.”

분노와 복수심으로 가득 차 있는 보클로엠을 풀어준 것은 이실리스. 그녀가 그 마법진을 파훼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시간이었다.

마법진을 만든 지 시간이 오래되었지만, 그 마법진을 보수할 수 있는 마법사는 없었다. 제대로 마법진을 보수하지 않으면 그 힘이 약화 되기 마련. 이실리스는 그 틈을 파고들어 이그나르도의 마법진을 파훼했다.

“알았다면…….”

알았다면 마법진을 파훼하지 않았을 터였다. 아무리 그녀의 마력이 필요하다고 해도.

보클로엠을 뮤르카 제국에 가둔 이그나르도는 다시 라르헨으로 돌아왔고 그는 다시 황궁의 깊은 곳에 갇혔다. 드래곤의 행방을 묻는 황제에게 일언반구도 하지 않은 이그나르도는 마탑에 갇혀 쓸쓸한 생을 마감했고, 그 자리에 남은 것이 바로 이 마법서였다.

‘마법서라기보다는……. 한 황족의 불행한 일생을 기록한 거로군.’

이그나르도가 황위에 앉았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터였다. 자신보다 강력한 마력을 지닌 형제를 이기지 못하고 자괴감에 빠진 그가 할 수 있었던 최고의 복수는 드래곤을 빼돌리는 것.

빼돌려서 드래곤을 가두고 나중에 마법진을 탈출한 드래곤이 라르헨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것을 기대하면서 이그나르도는 눈을 감았다.

「나의 복수는 죽어서도 계속될 것이다.」

휘갈겨 쓴 그의 필체를 확인한 이실리스가 눈을 감았다. 황위를 얻지 못한 황족. 황위를 이어도 될 만큼 천재성을 지녔던 황족, 그러나 마력이 약한 황족.

그 황족이 앙심을 품고 나라에 해가 되는 일을 했다는 것이 알려지게 되면 라르헨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었다.

“…… 없애야겠어.”

“뭐라고 하셨습니까, 폐하?”

“…….”

알뤼르의 말엔 답하지 않은 이실리스가 손에 불꽃을 일으켰다. 손에 쥔 마법서를 그대로 태워버리는 이실리스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던 알뤼르가 이내 입을 다물었다.

서늘한 그녀의 눈빛에 함부로 입을 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알뤼르.”

“네, 폐하.”

“별궁의 동태는 어떠한가.”

“결계의 색이 점점 강해지고 있습니다. 조만간 일이 터질 것…….”

알뤼르의 말이 끝나기 전에 ‘쾅’ 하는 소리가 라르헨의 황궁을 울렸다.

“시작되었나…….”

이미 짐작하고 있던 일이었고 막을 수 있는 방법도 없었다. 이그나르도의 마법서에 보클로엠을 막을만한 방법이 있을까 하여 살폈지만, 그 안에도 이렇다 할 방법은 없었다.

몇 날 며칠을 준비한 마법진만이 보클로엠을 막을 수 있는데 그들에겐 시간이 없었다.

“폐하!”

“마법사들을 불러 모아라.”

“알겠습니다!”

맑은 하늘에 붉은빛이 가득했다. 하늘을 뚫을 듯한 기세로 올라가는 붉은 마력을 목격한 귀족들도 황궁으로 하나둘씩 모이고 있었다.

“내 치세에 광역 결계가 사라지는 것인가.”

이실리스도 마법을 사용해 붉은 마력이 빛나는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 먼저 도착한 마법사들과 귀족들이 그녀의 얼굴을 보고 외쳤다.

“폐하!”

“폐하!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무슨 일입니까!”

이미 알뤼르에게 소식을 들어 알고 있는 마법사들의 표정은 참담했다. 그들을 보호해주는 결계의 힘을 빼앗기고 있음에도 아무런 조치를 할 수 없는 무력감이 그들을 휩쓸고 지나갔다.

강력한 대마법사인 이실리스는 오죽했을까.

알고도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실리스는 입술을 깨물었다.

‘저들을 라르헨에 들이는 것이 아니었어.’

광역 결계의 마법진이 황성에 있는 것을 몰랐다. 알았다면 그냥 라르헨을 돌아다니도록 내버려 뒀을 텐데.

“폐하! 뭐라도 해 보십시오!”

“하긴 뭘 하라는 것인가.”

“저들이 하는 짓이 대체 뭡니까!”

붉은 마력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라르헨의 광역 결계의 힘이 약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렇게 적나라하게 느껴지는데 선황이 느끼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이실리스! 결계에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이냐!”

당혹스러운 표정을 한 선황이 달려왔고 그 뒤에 타르토스의 얼굴도 보였다.

“어머니.”

“결계가, 결계가!”

사색이 된 얼굴로 말을 더듬는 선황을 향해 이실리스가 고개를 내저었다.

“제가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뭐? 이 나라에서 마력이 제일 강한 네가 못 하는 것이 있더냐!”

“상대는 드래곤입니다.”

그녀의 하얀 손이 붉은 마력을 가리켰다. 이실리스와 선황의 대화를 듣고 있던 귀족들이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

“드래곤?”

멸종되었다는 그 존재가 왜 여기서 나오냐고 말하기가 무섭게 결계를 뚫고 그 위용을 드러내는 붉은 형체가 있었다.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새빨간 비늘, 거대한 몸, 긴 꼬리, 그리고 용의 얼굴을 확인한 이들은 위압감에 짓눌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주저앉지 않은 사람은 이실리스와 타르토스 그리고 그가 부축한 아일라뿐이었다.

“정말이었어…….”

한 귀족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 일파만파로 퍼져나갔다.

멀리서 베르타스가 달려왔다. 마법을 사용하는 타르토스보다 늦게 온 그가 헉헉대면서 이실리스를 불렀다.

“이실리스, 이게 대체……”

“베르타스.”

그녀의 바로 옆에 다가와 중얼거리는 베르타스를 보면서 이실리스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베르타스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 안도감이 들었다.

“보클로엠의 짓인가?”

“그런 것 같군.”

그녀의 말에 베르타스가 무표정한 얼굴로 아무렇지도 않게 입을 뗐다.

“네가 원한다면 저 드래곤을 잡아주마.”

“소드마스터가 잡을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아.”

“말을 해.”

드래곤이 없어진 이유 중 하나는 소드마스터들이 그들을 사냥하러 다닌 것이었다. 기사 수행을 떠난 그들이 드래곤의 가장 약한 부분에 오라를 던져 그들을 사냥했다.

마법사들의 마력은 드래곤에게 작용하지 않지만 소드마스터는 달랐다. 드래곤을 사냥하는 자. 소드마스터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이실리스에게 베르타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미 끝났어.”

허탈한 그녀의 말에 베르타스가 위를 올려다보았다. 황궁의 가장 높은 궁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자리한 보클로엠의 머리가 보였다. 그 옆에 떠 있는 이베르트도.

“이실리스! 결계가 옅어지고 있다!”

다급하게 외치는 선황의 목소리가 들려도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마력을 일으켜 보클로엠에게 쏘아 보냈지만, 그 마력은 그대로 흡수되었다.

“아니!”

“이럴 수가!”

그 광경을 목격한 귀족들이 당황하여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제가 사용하는 마법은 저 드래곤을 더 강하게 만들 뿐입니다.”

“대체 어떻게…….”

“저 드래곤은 라르헨의 광역 결계를 만드는 데 도움을 준 드래곤. 이 제국의 건국 황제와 비슷한 마력 파장을 띠고 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이실리스의 마력은 사용할 수 없다. 다른 마법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마법을 쏘아 보내도 그 마력은 보클로엠에게 닿지 않았다. 마력의 창시자라고 불리는 드래곤을 막을 수 있는 마법사는 아무도 없었다.

다들 포효하는 보클로엠을 바라보기만 할 뿐,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일 수 없었다.

“폐하! 뭐든 해 보시라니까요!”

“폐하! 어서!”

여기저기 아우성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이실리스는 움직이지 않았다. 드래곤의 거대한 모습을 바라보기만 할 뿐. 그녀의 시선을 느낀 보클로엠이 눈동자를 아래로 내렸다. 그 커다란 눈이 사람들을 향하자 모두 두려워하면서 뒷걸음질 쳤다.

[이 결계는 나의 마력으로 세운 것이니 내가 가져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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