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8화. (139/161)

138화.

분주히 무언가를 준비하던 알뤼르가 이실리스의 앞에 서서 고개를 숙였다.

“마법진이 준비되었습니다. 폐하.”

그의 말에 이실리스가 마법진으로 향했다. 마법사들은 이실리스가 귀환하기만을 기다리면서 라르헨의 수도로 향할 수 있는 마법진을 미리 만들어 놓았다. 시간이 걸리는 대단위 마법이었지만 알뤼르가 통신석으로 미리 연락한 덕분에 수도로 귀환하는 시간이 더욱 빨라졌다. 마법진에 올라선 이실리스가 페일러스에게 눈짓했다. 그녀의 눈짓을 눈치챈 페일러스도 마법진 위에 올라섰다.

베르타스도 에리카를 안아 들고 마법진에 올라서자 환한 빛이 일면서 마법진의 마력이 그들을 집어삼켰다. 눈을 감았다가 뜨니 라르헨의 황성 안에 자리하고 있는 마탑이었다.

“무사히 오셔서 다행입니다. 폐하.”

베루스 공작이 귀족들을 대표하여 그녀를 반겼다.

“오랜만일세 공작.”

“헌데…… 못 보던 분들이 계십니다. 누구십니까.”

후드를 쓰고 있는 보클로엠과 이베르트에게 이질적인 기운을 느낀 공작이 먼저 입을 열어 물었다.

“그것은 잠시 후에.”

“이실리스!”

그녀의 이름을 부르면서 달려오는 선황을 목격한 이실리스가 당황하여 눈을 크게 떴다. 귀족들이 서둘러 몸을 움직여서 길을 내었다. 바로 그녀에게 달려온 선황이 이실리스의 몸 곳곳을 살폈다. 얼굴부터 꼼꼼하게 살피고 마지막으로 마력까지 확인하는 어머니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감정표현이 별로 없으신 분인데…….’

그녀가 돌아왔다고 해서 이렇게 극적인 반응을 보일 줄은 몰랐다.

“걱정했단다.”

선황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이실리스의 표정이 변했다. 

‘한 번도 겉으로 애정을 드러낸 적이 없는 어머니였는데 이렇게 남들이 다 있는 곳에서…….’

걱정스럽게 저를 바라보는 선황의 시선이 어색했던 이실리스가 눈을 피할 때였다. 타르토스가 뒤에서 다가와 그녀에게 말했다.

“저자는 왜 데리고 온 것이냐?”

마법으로 이베르트의 얼굴을 확인한 타르토스가 그녀에게 물었다. 그의 목소리엔 분노가 가득했다.

“폐하께 예의를 갖추시길 바랍니다.”

알뤼르의 말에 타르토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돌아오자마자 해야 할 일이 넘쳐났다. 그녀를 반기는 귀족들에게 내일 있을 정무 회의를 준비하라는 말을 남기고 이실리스는 알현실로 향했다. 그녀의 뒤를 따라 움직이는 자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베르타스와 타르토스, 페일러스와 알뤼르 그리고 이베르트와 보클로엠. 이렇게 여섯 명이었다. 걸어가는 복도에서 그들은 내내 말이 없었다. 알현실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알뤼르가 마력을 움직였다. 회복된 그의 마력을 이실리스가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제 말해 보아라. 저자가 왜 이곳에 온 것이냐?”

“이베르트를 압니까?”

이실리스의 말에 타르토스가 이를 갈면서 답했다.

“그렇다.”

미묘하게 달라진 타르토스의 어조에 베르타스의 고개가 돌아갔다. 뮤르카 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타르토스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다는 것은 그가 그곳에 간 적이 있다는 소리.

“이실리스. 독대를 원한다.”

타르토스의 말에 그녀의 시선이 돌아갔다. 많은 것을 담고 있는 타르토스의 눈을 보면서 이실리스가 시종장을 불렀다.

“여기 두 사람에게 방을 내어 주게.”

“어디를…….”

“황궁의 별궁을 내어주면 되겠군.”

선황이 머물던 별궁은 특별한 마법진으로 보호되는 곳이었다. 함부로 누군가 들어갈 수도 없고, 나갈 수도 없는 곳. 그녀가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그곳을 내어줬지.’

어머니도 황제인 그녀에겐 경계의 대상이었다. 아직도 어머니를 따르는 신하들이 너무 많았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 덕분에 지금 저 보클로엠과 이베르트를 별채에 가둘 수 있게 되었으니 다행이었다. 시종장의 뒤를 따라서 나가는 그들에게 진득한 시선을 던지는 타르토스의 눈빛이 위험하게 빛났다.

“이제 말을 하게.”

“…….”

이실리스의 말에 타르토스는 쉽게 입을 열 수 없었다. 어찌 말할 수 있단 말인가. 그에겐 치욕스러운 과거였다. 저 이베르트의 농간에 속아 뮤르카 제국의 신전 깊은 곳에 갇혔고, 그 안에서 마력을 더 크게 발현하여 그곳에서 도망칠 수 있었다고.

약한 마력 때문에 이그나르도의 마법진에서 죽을 뻔했다. 그 마법진을 벗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타르토스의 몸 안에 잠재된 더 큰 마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렵게 꺼낸 그 모든 이야기를 들은 이실리스는 아버지가 겪은 힘든 일에 눈을 감았다.

“내가 그런 일을 겪었는데 너도 그런 일을 겪을 줄은 몰랐다.”

“황족이라면 응당 어려움을 겪어야 한다고 말한 것 아니었나?”

“그때는 그랬지.”

“…….”

이실리스는 그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런 일을 겪었다고 해서 그가 그녀에게 저질렀던 모든 일이 용서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를 봐준 것은 그녀의 충성스러운 신하가 요청했기 때문이었다.

‘정당화할 수 없어.’

“그렇다고 해서 폐하께 한 모든 행동을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베르타스의 입이 열렸다. 그녀의 마음을 대신 말하는 듯한 베르타스의 말에 이실리스의 눈가에 살짝 붉은 기가 돌았다.

“그것은 나도 어려웠으니 너도 쉬운 길을 가서는 안 된다는 질투심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제야 알았다.”

쉽게 인정하는 타르토스의 말에 이실리스의 시선이 돌아갔다.

“감히…… 나에게…… 내가 그동안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알면서 이제야 알았다고?”

분노한 이실리스의 몸에서 붉은 마력이 솟구쳤다. 그녀가 마력을 일으키는 것을 목격한 타르토스도 지지 않고 마력을 일으켰다.

“너는 태어날 때부터 잠재된 마력을 끌어내어 쓸 수 있었지만 나는 아니었다. 내가 그 마력을 발현하기 위해서 겪었던 일은 차마 말할 수 없이 힘든 일이었다.”

“나는 쉬웠는지 아나?”

“이실리스.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그것은 그대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어!”

굳이 아버지인 사람이 그녀에게 가르치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세상에 쉬운 일이 없다니. 그것은 그 어린 나이에 알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힘들고도 힘들었다. 말할 수 없을 만큼 외로웠다. 

거대한 마력을 지닌 그녀였지만 어린 나이에 아버지에게 속았고, 그녀를 위한다는 충성스러운 신하들에게 속았다. 어머니에게도 속았다. 아버지의 질투가 두려워 그녀를 보호하지 않은 그녀의 어머니도 공범이었다.

“나를 위한 사람은 베루스 공작이 유일했다. 그마저도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대를 보호하기 위해서였지만!”

이실리스의 외침이 알현실을 갈랐다. 지고한 황제의 외로움에 모두 고개를 숙였다. 유일하게 베르타스만이 이실리스의 모든 감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저 외로운 어깨를 안아주고 싶었다. 너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니 외로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 그대가 이제 와서…… 이제 와서 그 모든 것이 질투였다고? 그러니 이해하라고 하는 것인가? 왜? 왜 이제 와서 말하는 거지? 말하지 않으면 저 이베르트에게 복수할 방법이 없으니까? 그래서 이제야 말하는 건가? 그대의 잘못이었다고?”

“복수라니 무슨 소리냐. 나는 저자에게 복수하고자 너에게 이런 사실을 밝힌 것이 아니다.”

무심한 타르토스의 말에 이실리스는 머리가 차게 식었다. 감정을 쏟아내는 것조차 무의미했다. 저 사람에게.

“그렇다면 대체 왜…….”

“저들이 노리는 것이 눈에 보이는데 왜 저들을 데리고 이곳으로 들어왔느냐.”

“…….”

걱정하고 있는 것을 정확하게 짚어낸 타르토스를 보면서 그녀는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베르타스와 알뤼르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이실리스를 바라보았지만, 그들에게 시선을 줄 틈도 없었다.

“폐하께서는 이미 눈치채고 계십니다.”

“알고 있다. 허나, 저들이 노리는 것은 이 라르헨의 광역 결계. 보클로엠의 마력이 정상적이지 않으니 그 마력을 회복하기 위한 것은 이곳의 결계뿐이겠지. 결계의 마력을 노리는 저들을 왜 이곳으로 데리고 왔느냐. 그냥 그곳에 둘 것이지.”

“폐하의 마력을 저들이 빼앗았습니다.”

알뤼르의 설명이 구구절절이 이어졌다. 마력을 빼앗겼고, 마력을 되찾기 위해 신전으로 들어갔고 신전에서 보클로엠을 가두고 있던 마법진을 파훼했기에 어쩔 수 없이 저들을 데려올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타르토스가 눈을 찌푸렸다.

“이런…….”

고민하는 타르토스를 보는 이실리스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결국 아버지도 라르헨의 황족인 것인가.’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너무 쉽게 양보했기에 눈치채지 못했다. 그가 라르헨을 사랑한다는 것을. 라르헨을 걱정하고 위하는 마음은 그녀와 같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녀에게 한 행동을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그의 모든 행동은 이실리스를 단련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말이다.

‘잠재된 마력을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그 많은 시련을 준비했던 것이었나.’

라르헨을 위험에 빠지지 않게 하려는 그의 노력이었다. 비록 인륜은 포기했지만, 그의 교육으로 인해 라르헨을 보호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이실리스가 강력한 마력을 갖게 되었으니까. 그녀의 마력이 개화한 것은 그녀가 납치당했던 그 순간이었으니. 그래도 용서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좋다. 일단 두고 보겠다. 너도 생각하는 바가 있어 보이니까.”

“폐하께 예의를 갖추라고 했습니다.”

“상대를 봐가면서 짖으라고 했다.”

알뤼르에게 마지막 말을 남긴 타르토스가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이동마법이었다. 타르토스가 사라지자 이실리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앉아 있던 옥좌에 가까이 다가간 베르타스가 이실리스의 어깨를 두들겼다. 위로가 담긴 그의 손위로 이실리스의 부드러운 손이 덮였다.

“그래서 나를 부른 이유는?”

“페일러스. 문제가 생겼다.”

“문제?”

“뮤르카 제국에 대해서 아는 바가 있나?”

“말하지 않았나. 그곳은 마법사들이 들어가면 실종되는 곳이라고. 그래서 정보가 극히 부족한 곳이야.”

페일러스의 말에 이실리스가 입술을 살짝 물었다. 베르타스가 강하게 그녀의 손을 잡았다. 걱정하지 말라는 듯 힘있게 쥐는 그의 강인한 손을 느끼면서 이실리스가 천천히 입술을 열었다.

“뮤르카 제국에 라르헨의 마력석이 있었다.”

“라르헨의 마력석?”

“그래. 그런데 어디서 반출된 것인지 알 수 없어 가져왔다.”

이실리스는 신전에서 발견한 마력석을 페일러스의 앞에 꺼내놓았다. 알뤼르도 그것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라르헨에서 만든 것이 맞습니다.”

“어디서 나온 것인지 알 수 있나?”

“마력석은 일일이 일련번호를 새기니 출처를 알 수 있습니다. 확인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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