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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화. (131/161)

130화.

반드시 돌아가야만 했다. 그녀의 모든 것인 마력을 되찾고서 반드시 돌아가리라고 결심했다. 그녀의 눈앞에 계속해서 이어지는 초목을 바라보던 이실리스는 의아한 기분에 베르타스에게 물었다.

“이 길이 아닌 거 같은데?”

“아니, 맞아.”

베르타스가 말을 몰아 달려가는 곳은 계속해서 산 위로 올라가는 길이었다. 그녀가 기억하고 있는 신전의 위치는 평지였는데 아무렇지 않게 이 길이 맞다고 말하는 베르타스에게 의구심이 들었다.

“이쪽에 비밀 통로가 있다.”

궁금해하는 그녀에게 간단하게 답한 베르타스는 계속해서 말을 몰았다. 말이 닿지 못하는 곳 바로 근처까지 말을 타고 올라간 그가 계곡 부근에서 멈추었다. 말에서 내린 베르타스가 그녀에게 말했다.

“이 뒤로 가야 해.”

“이 뒤?”

쏟아지는 폭포를 바라보면서 질린 표정을 짓는 이실리스를 향해 베르타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폭포의 뒤편으로 길이 있다고 확신하는 그를 따라갔다. 이대로 폭포 뒤로 갔다가는 다 젖을 것 같은 느낌에 이실리스가 서둘러서 마력을 일으켰다.

“이실리스. 마력을 아껴야 해.”

“나도 알지만 이건 싫어.”

그녀의 로브는 방수 마법이 걸려 있어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베르타스가 문제였다. 가만히 두면 그가 홀딱 젖을 터였다. 그의 몸에 결계를 둘러준 그녀가 천천히 폭포를 향해 걸었다. 그녀의 위로 쏟아지는 수압을 버티기가 힘들어 결국 마력을 일으켰다.

“이실리스!”

“그만.”

항의하듯 외치는 목소리에도 어쩔 수 없었다. 별것도 아닌 일에 마력을 사용하는 것이 탐탁지 않아 보이는 베르타스였지만 마력을 항상 사용해 오던 그녀는 습관처럼 마력을 움직였다.

‘계속해서 마력을 움직이는 것도 도움이 되고 있어.’

그랬다. 마력을 움직이면 아주 천천히 마력이 쌓이고 있었다. 누군가 그랬던 것처럼 그녀의 그릇은 아주 큰데 그 그릇이 모두 채워지지 않은 지금, 허전함을 느끼고 있는 이실리스였다. 앞서나가는 베르타스를 따라서 이실리스는 걸었다. 

불퉁한 표정으로 걷는 그의 얼굴을 볼 수 없는 것이 다행이었다. 그의 얼굴을 보았다면 그녀의 마음이 불편해졌을 테니까.

“어디로 통하는 거지?”

“신전의 가장 깊은 곳으로 통하는 길이라고 들었다.”

“들었다고?”

“마뉘엘에게.”

“마뉘엘에게?”

“신전으로 통하는 비밀 통로라고 보여주더군.”

“믿을 만한 것인가?”

“실제로 그 지도에 나온 다른 길을 사용해서 신전으로 가다가 신관들과 마주했으니 아마 지도 자체는 믿을 수 있을 거야.”

거침없이 앞으로 걸어 나가는 그의 뒤를 따르면서 이실리스는 계속해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신전과 가까워질수록 보클로엠의 목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나를 구해다오.]

‘뻔뻔하게.’ 

그녀의 그 강대한 마력을 가져가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여 구해달라는 소리를 하다니.

‘이베르트가 한 짓이 헛짓이었단 말인가.’

그럴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그녀의 마력을 가지고 갔어도 저 이그나르도의 마법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는 소리인데 그의 마법진이 얼마나 대단하기에.

기실, 이실리스는 이그나르도의 제대로 된 마법진을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라르헨에 등장했던 흑마법사들은 이그나르도의 후예라고 부르기엔 그의 마법을 겉핥기식으로 배운 자들에 불과했다. 이그나르도는 제자를 받아들인 적이 없었다. 뮤르카 제국에 있는 마법진이 이그나르도의 진정한 힘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마법진이었다. 

“여기.”

베르타스가 한 곳에 멈추어 섰다. 아무것도 없던 길에 갑자기 불꽃이 나타났다. 마력석이었다.

“이게 여기 왜…….”

라르헨의 것이었다. 뮤르카 제국에 마력석을 판매한 적이 없는데 라르헨의 마력석이 있는 것을 본 이실리스의 눈이 커졌다. 그것은 베르타스도 마찬가지였다.

“들은 적이 있나?”

“아니, 없군.”

이실리스의 표정이 굳었다. 마력석을 관리하는 데 문제가 생겼다는 소리였다.

“최대한 빨리.”

“그래, 최대한 빨리 돌아가야겠다.”

일의 심각성을 눈치챈 베르타스도 그녀를 향해 말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쉿!”

천천히 걸어가던 베르타스가 자리에서 멈추어 섰다. 커다란 방 앞을 지키는 기사들이 눈에 보였다. 이렇게 좁고 작아 보이는 공간에 저렇게 높은 문이 존재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마치 거대한 토굴처럼 숨겨진 공간이 있었다니.

‘믿을 수가 없군.’

대체 뮤르카 제국의 기술력은 어느 정도란 말인가. 믿어지지 않았다. 방앞을 지키고 있는 기사는 둘. 이실리스와 베르타스는 서로에게 눈짓했다. 이실리스의 손에서 붉은 마력이 휘몰아치자 그와 동시에 베르타스가 기사를 향해 뛰었다.

“웬 놈이냐!”

방앞을 지키는 기사의 외침이 떨어지자마자 거대한 문에서 검은 마력이 흘러나왔다. 그 마력 위로 마법진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본 이실리스가 베르타스에게 외쳤다.

“베르타스, 오라를!”

마법진의 마력이 완성되기 전에 오라로 저 마법진을 파괴해야 했다. 마법진의 어두운 기운이 점점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정면으로 목격한 베르타스가 칼에 오라를 둘렀다. 강력한 그 오라를 휘두르는 그에게 문 앞을 지키고 있던 기사가 검을 휘둘렀다.

“죽어라!”

그 말을 외친 기사의 팔이 이실리스의 마력에 의해 날아갔다. 또 다른 기사가 경악한 표정으로 베르타스에게 칼을 휘둘렀으나, 그것을 본 이실리스가 다시 마력을 날렸다. 마력을 정면으로 맞은 그 기사 역시 그 자리에 쓰러졌다.

“어서!”

오라를 사용하여 문을 가르자마자 서서히 그 문이 열리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베르타스의 오라가 옅어지고 있었다. 이실리스는 재빨리 마법진의 틈에 마력을 밀어 넣으면서 그녀를 부르는 베르타스에게 달렸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바로 눈에 들어오는 광경에 이실리스는 눈을 커다랗게 떴다. 그 거대함, 그 위용. 그러나 어딘지 모를 아릿함.

[왔구나.]

드래곤이었다.

“당신이 절 부른 겁니까?”

높이는 말이 절로 나왔다. 이베르트를 대할 때와는 달랐다. 모든 마력의 근원이자 마력의 창시자로 불리는 존재 앞에서 어떻게 감히 말을 놓을 수 있을까. 이실리스는 저절로 공손해지는 스스로를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널 불렀단다.]

다정하게 들리는 그 울림에 그녀가 천천히 드래곤을 바라보았다. 보석과 같이 빛나는 붉은 비늘에 군청색 눈. 이실리스와 꼭 닮은 색깔이었다. 자신을 향한 눈동자를 마주한 이실리스가 한 발짝 앞으로 걸어가려고 할 때였다. 베르타스가 그녀의 팔을 잡았다.

“왜…….”

“안 돼.”

그의 눈짓에 발아래를 바라보니 검은 기운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이것은 대체…….”

이그나르도의 마법진이었다. 지금까지 봤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강력한 그 검은 기운에 이실리스도 흠칫하여 몸을 뒤로 뺐다.

[이것은 나의 원죄.]

“원죄?”

[반려의 말도 듣지 않고 가엽게 여긴 나의 죄.]

“죄라니…….”

기운 없는 그 모습에 이실리스는 마음 깊은 곳에서 느껴지는 아릿함을 숨길 수 없었다. 위대한 존재의 약한 모습을 본 그녀는 조금 전까지 들었던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저만한 존재가 이런 상황에 놓였다는 것은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닐 테니까.

[나를 도와다오.]

“대체 어떻게…….”

마력의 근원이라고 불리는 드래곤이었다. 그 존재조차도 빠져나올 수 없는 이 마법진은 얼마나 강력한 것인가. 이렇게 강한 마법진을 파훼해 달라고 그녀를 부르다니. 마법진을 파훼하고 싶어도 마력을 빼앗긴 상태였다. 과연 가능한 일일까. 둘의 대화를 옆에서 듣고 있던 베르타스가 보클로엠에게 물었다.

“당신은 왜 이런 상황이 된 겁니까?”

[너에게 알려줄 수 없다. 너는 나의 길을 걷는 자가 아니니.]

베르타스가 소드마스터라는 것을 알아보기라도 한 듯 보클로엠이 잘라 말했다. 본디 마법사와 기사는 물과 기름 같은 존재였다. 섞이려고 해도 섞일 수 없는 사이. 이실리스와 베르타스의 사이가 이상한 것이었다. 소드마스터와 마법사임에도 불구하고 맺어진.

“제가 어떻게 하면 됩니까?”

이실리스의 물음에 눈동자를 돌린 드래곤은 깊은숨을 쉬면서 눈을 깜박였다.

[너는 이미 그 방법을 알고 있다.]

‘알고 있다라…….’

이그나르도의 마법진을 파훼하는 방법은 그 마법진에 상처를 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녀의 눈앞에 있는 마법진은 지금까지 그녀가 봤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검은 기운이 넘실거리는 그 마법진을 보면서 이실리스는 생각에 빠졌다.

‘마법진에 상처를 내야 해.’

마력이 없는 자가 하는 것이 제일 좋았다. 이실리스는 마력을 지니고 있었기에 저 마법진에 상처를 낼 수 없었다. 베르타스가 움직이는 것도 방법이었지만 제라드의 오라도 흡수했다는 소리에 망설여졌다. 강력한 마력으로 보호되고 있는 마법진에 상처를 내려면 같은 마력으로…….

‘아, 그렇군.’

같은 마력으로 움직이면 되었다. 이그나르도의 마력이 보클로엠의 마력을 흡수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그들의 마력이 비슷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이실리스가 이토르트 항구에서 마력을 움직일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마력의 파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는 임시방편으로 마력을 넘겨주기도 할 수 있고, 마력을 빼앗는 것도 가능했다. 다만 이그나르도의 마법진은 마력을 영구적으로 빼앗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었다.

보클로엠은 라르헨의 선조와 반려가 된 드래곤. 그렇다는 것은 둘의 마력이 서로 동조하고 있다는 것. 마력 동조율이 높을수록 드래곤과 맹약을 맺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후손이 바로 이실리스 라르헨. 라르헨 제국을 만들었다는 초대 황제와 가장 마력의 크기와 동조율이 비슷하다는 그녀.

결심한 이실리스가 주먹을 꽉 쥐었다가 폈다. 그 모습을 본 베르타스가 그녀의 어깨를 잡았지만 결연한 눈동자에 말릴 수 없었다. 이실리스는 그대로 마력을 일으켰다. 붉은 마력이 넘실거리면서 그녀의 몸을 감쌌다.

“이실리스!”

“정신 사납다.”

그녀의 이름을 외치는 베르타스에게 단 한마디를 던지고는 마력을 일으킨 그녀가 걸음을 옮겼다. 천천히 마법진을 향해 걸어가던 그녀가 마법진 바로 앞에서 멈추었다. 마법진의 제일 바깥쪽에 그려진 선에 손가락 끝을 대자마자 그녀의 마력이 마법진 안으로 흡수되었다. 계속해서 마력을 빨아당기는 마법진에 저항하면서 집중했다.

그녀의 마력을 끌어당기는 마법진에서 느껴지는 마력의 흐름. 그 흐름에서 중심이 되는 부분을 찾으려고 애썼다.

‘마력이 바닥나기 전에 해야 해.’

그녀의 모습을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던 베르타스는 결국 몸을 돌렸다. 이실리스를 바라보면서 걱정하는 것보다 그녀를 위해 경계를 서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단단한 그의 등이 그녀를 지키고 섰지만 이실리스는 그 모습을 볼 수 없었다. 휘청하고 무릎이 꺾였다.

‘안 돼.’

아직은 안 된다. 아직 이 마법진의 핵심을 찾아내지 못했다. 이대로 그녀의 마력만을 빼앗긴 채 끝낼 수는 없었다. 거대한 마법진 사이로 마력은 계속해서 흘러 들어갔고 그녀의 마력이 마법진의 절반가량을 훑었을 때였다. 밖에서 ‘우당탕’하는 소리가 들리고 거칠게 문이 열렸다. 세드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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