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황궁 연회 당일. 아침부터 이실리스는 여러 사용인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녀의 머리를 매만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녀의 얼굴에 분을 바르는 사람도 있었다. 그뿐이랴. 그녀의 옷을 준비한 디자이너는 아침 해가 뜨자마자 찾아와서 모든 사람을 기함하게 만들었다.
“자! 어서 하세요! 어서!”
시간이 별로 없다면서 왜 이제야 자기를 부른 거냐며 툴툴대는 디자이너의 목소리에 정신이 없었다. 차라리 밖에 나가서 호위를 서는 것이 더 낫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힘들었다. 디자이너의 마음에 들 때까지 화장이 계속 바뀌었다.
“조금 더 우아하고 고귀한 느낌으로 눈꼬리를 만들어 주세요!”
대체 저 사람이 말하는 그 느낌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이실리스는 조용히 있는 쪽을 택했다. 눈을 감은 채로 전에 읽었던 책 내용을 한 세 번 상기하니 모든 것이 끝나있었다.
“아름다우십니다! 완벽해요! 신녀님!”
이실리스는 신녀님은 역시 대단하다느니를 외치는 디자이너가 더 대단해 보였다. 화려한 옷차림이 낯설었다. 자신의 목에 걸린 화려한 목걸이와 빛나는 보석들. 모든 것이 낯설었다.
다 되었다는 사용인들의 말에 베르타스와 알뤼르가 안으로 들어왔다. 성장한 그녀의 모습을 보더니 눈이 크게 떠진 둘이었다.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베르타스를 보면서 이실리스의 입술이 열렸다.
“이런 모습은…… 어색하지 않나?”
“아니, 잘 어울려. 이렇게 화려한 모습도 본 지 오래라 당황했을 뿐.”
이실리스님은 뭘 해도 잘 어울린다는 알뤼르의 말을 흘려들으면서 베르타스의 눈을 마주했다. 천천히 그녀를 훑어보던 베르타스가 그녀에게 물었다.
“목걸이는 어디 있지?”
“아, 이거 말인가?”
서랍 안에 보관해둔 그녀의 목걸이를 꺼내 들자 베르타스가 다가왔다. 그녀의 손에 들린 목걸이를 건네받은 그가 화려한 목걸이가 걸린 그녀의 목에 목걸이를 걸었다. 레이어드 된 목걸이가 빛을 받아 반짝 빛났다.
“빼지 마. 너를 지켜주는 물건이니.”
“지켜주는 물건?”
“이것과 한 쌍이지. 상대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그 상대를 다른 상대가 있는 곳으로 인도하는 귀한 물건이야.”
이실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 개나 목걸이를 한 것은 이상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거울을 보며 내키지 않는 표정을 짓는 그녀에게 베르타스가 말했다.
“착용자가 원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게 만들 수 있어.”
“뭐?”
그녀가 알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그냥 마력을 불어 넣으시면 됩니다.”
알뤼르의 말에 이실리스가 그녀의 마력을 약간 불어 넣었다.
“그겁니다!”
알뤼르의 감탄 어린 말이 들렸지만, 그녀의 눈에는 계속 보이는 목걸이였다. 의아한 듯 눈을 돌리니 그녀의 궁금증을 눈치챈 베르타스가 입을 열었다.
“우리에겐 안 보여.”
“그렇다고?”
“그래.”
웃으면서 말하는 베르타스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흠, 저도 있습니다.”
헛기침하는 알뤼르에게 베르타스가 날카로운 눈빛을 보냈다. 그의 말에 얼굴을 붉히는 이실리스의 표정은 나쁘지 않았다. 다정한 그들의 틈을 비집고 마뉘엘이 들어왔다. 순식간에 차게 식는 방 안의 분위기를 인지하지 못한 채, 그가 이실리스에게 손을 내밀었다.
“가실까요?”
답 없이 내민 손 위에 그녀의 손을 올렸다. 황궁으로 가야 할 시간이었다.
* * *
황궁으로 가는 마차 안에서 마뉘엘이 그녀에게 신신당부했다.
“폐하는 좋은 분이십니다.”
“좋은 분?”
“선을 넘지 않으면요.”
“선?”
“그분은 권력을 탐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 말은 신녀의 자리에 앉게 되는 이실리스에 대한 경고나 마찬가지였다.
“권력을 탐할 일은 없어요.”
“그것은 누구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권력이 눈앞에 보이는 순간, 사람들은 변하니까요.”
그의 말에 무표정으로 일관했다. 권력이라니. 돌아갈 곳이 분명한 그녀에게 하등 소용없는 것이었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뉘엘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고 그 말을 귓등으로 흘리면서 생각에 잠겼다.
‘황제보다…….’
교황이 궁금했다. 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이 나라를 쥐락펴락하는 것인지. 황제도 대공도 그에게 양보하는 태도. 신분으로 보자면 신을 모시는 사람에 불과했는데 대체 그가 가진 것이 무엇이기에 다들 설설 기는 것일까. 신력이라는 것이 이 나라를 유지하고 있는 대단한 것이라 들었지만 와닿지 않았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기운은 신력이 아닌, 마력. 그렇다면 신력은 이 마력과 어떻게 다른 것인가.
‘겉으로 보기엔 똑같은 붉은 기운인 것 같았는데…….’
신전에서 가장 강한 신력을 가지고 있는 교황의 기운이 가장 궁금했다. 그가 가진 것은 무엇일까.
마뉘엘은 그의 말에 아무 대답 없이 생각에 빠져있는 이실리스를 빤히 바라보았다. 보아하니 제가 보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생각에 빠진 듯 보였다. 그 모습을 본 마뉘엘은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형은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물론 권력을 쥐려고 수작을 부릴 리 없겠지만.’
그의 감을 믿었다. 그가 본 여자는 그런 것에 초연한 사람이었다. 대공저에 굴러다니는 보석에도 탐욕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녀가 무언가를 요구한 것은 단 한 번. 그녀의 것이 없어졌을 때였다.
‘하긴, 신력이 담긴 보석이 없어졌다면 나라도 찾았겠지만.’
그것을 노린 이가 신관이라는 것이 더 놀라웠다. 그의 저택에서 몸을 숙이고 기회를 엿보는 기사 단장이 있었고, 또 다른 첩자도 있었다. 그러나 마뉘엘은 그 모두를 내버려 두었다. 아직은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아직은 아니야. 아직은.’
저런 잔챙이들을 쳐내기 위해서 지금까지 기다린 것이 아니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신전의 변화였다. 신은 그들을 버렸다. 그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의 신이 아직도 존재한다면 지금 신전에서 행하는 일부 신관들의 악행을 저지해야 맞았다. 그러나…… 신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신전 때문에 죽어간 제국민이 몇인지 셀 수조차 없었다. 그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이 제국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신전은 바뀌어야 했다. 그리고 제국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탐욕스러운 지금의 신전이 아니라 이런 사람이 신전을 상징해야 해.’
그래서 신전으로 들어가려는 여자를 막았다. 그가 가진 면죄부를 내어놓고. 마뉘엘은 이미 먼 미래를 바라보고 있었다. 신전을 바로 세웠을 때, 신을 대신할 자. 그게 바로 이 여자였다. 생각에 빠진 여자는 그의 시선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때였다. 마차가 멈추었고 문이 열렸다. 마뉘엘이 먼저 내려 여자에게 손을 뻗었다.
귀족에게 손을 뻗는 예법 그대로 손을 뻗은 여자의 흰 손이 마차 밖으로 드러나자 그의 마차를 맞이하려 기다리고 있던 귀족들이 탄성을 내질렀다. 대공인 그가 여성 파트너를 데리고 등장한 것은 처음이었는데 그 여성이 신녀라는 사실은 귀족들에게 두고두고 회자 될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마뉘엘은 그것을 노렸다.
신전에서 함부로 여자에게 손을 뻗치지 못하도록, 사교계에서 여자가 돋보이길 원했다.
“가실까요.”
“기꺼이.”
마뉘엘의 손 위에 가볍게 손을 얹은 여자의 발걸음은 나비가 날 듯 가벼웠다. 그 모습을 보면서 귀족들이 감탄했다. 나비의 날갯짓과 같은 걸음걸이는 뮤르카 제국의 모든 여성이 원하는 걸음걸이였으나 실제로 이와 같이 걸을 수 있는 여성은 드물었기에.
여자에게 시선이 집중되는 것이 느껴졌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과한 관심이었다. 모습을 드러낸 신녀에게 얼마나 많은 호기심을 가졌는지 알만했다. 그녀가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티파티는 여성 귀족들만 들어올 수 있는 곳이었으니.
“긴장되십니까?”
“그럴 리가.”
그의 물음에 가볍게 답하는 여자의 담대한 모습에 마뉘엘이 입꼬리를 올렸다. 그의 뒤에서 걷는 베르타스의 기운이 한순간에 차가워졌다. 신관들이 그와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기 때문이었다.
“신녀님께 인사 올립니다.”
“저는 아직 신녀가 아닙니다.”
그녀에게 인사하려는 신관들을 만류하면서 이실리스가 말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베르타스는 언제든 검을 뽑을 수 있도록 검을 움켜쥐었다. 인사했던 신관 중, 여신관 하나가 자리에서 나와 그녀에게 말했다.
“성하께서 인정하셨습니다.”
“날…… 보지도 못하셨는데요?”
“보지 못했다고 알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묘한 의미를 담은 그녀의 말에 이실리스가 입매를 굳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대공저에 있던 첩자가 또 소식을 전한 모양이군.’
이실리스가 마력을 운용했다는 것을 전해 들은 모양이었다. 마력 운용법을 배운 이실리스의 마력은 하루가 지날수록 점점 커지고 있었다. 아직 라르헨의 결계를 지키던 그녀의 옛 마력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지만, 이곳 사람들에겐 대단해 보일 것이 분명했다.
“성하께서 오늘 이 연회에 참여하신다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성하를 만날 기회를 가지실 겁니다.”
“그렇다면 연회장에서 오랜만에 교황님을 뵙겠군요.”
여신관과 이실리스의 사이에 마뉘엘이 끼어들었다. 황궁의 밀실을 절대 내어주지 않겠다는 그의 말에 여신관이 모호하게 웃었다.
“연회장일지 아닐지 모르겠네요.”
의미심장한 웃음을 남기고 신관들과 함께 뒤돌아 사라지는 그녀를 보면서 베르타스가 얼굴을 굳혔다. 이실리스를 노리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황궁이든 어디든 아랑곳하지 않고 덤비겠다는 소리에 베르타스는 생각을 달리했다.
뮤르카 제국의 황제가 머무는 곳이었다. 라르헨에 비하면 약소국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제국이었다. 제국의 황제가 머무는 황궁에서 일을 벌이겠다고 선언할 패기 있는 세력이라니. 신전의 위세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대체 이곳의 황제는 뭘 하는 자이기에.’
저런 안하무인인 자들을 내버려 두는 것인지 그게 궁금했다.
“여기서 뭐 하는 거지?”
이실리스와 마뉘엘이 신관들이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움직이지 않자 귀족 무리도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황궁 복도에 가득 차 있는 사람들 사이로 한 남성이 걸어왔다. 귀족들이 그를 향해 허리를 숙이는 모습을 보고 느꼈다. 황제였다.
“폐하.”
마뉘엘이 그를 부르자 일어서라며 직접 그를 잡아 일으킨 황제였다. 형제라더니 우애가 남달라 보였다. 잠시 그를 바라본 황제가 이실리스를 향해 입을 열었다.
“여기 계신 분이 신녀‘님’이라는 분이로군. 황제인 나보다 교황의 인정을 받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