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4화. (95/161)

94화.

다음 날 아침, 일찍 눈을 뜬 이실리스는 제 옷차림을 보고 놀랐다. 그녀의 로브와 옷이 사라졌었다. 설렁줄을 당겨 사람을 부른 그녀가 그녀의 부름에 달려온 사용인에게 물었다.

“내 옷은 어디 있지?”

“아, 저 옷장 안에 있습니다.”

“가져와라.”

손끝으로 사람을 부리는 그녀를 의미심장한 눈으로 바라본 사용인이 그녀의 로브와 옷을 꺼냈다. 천천히 옷을 훑은 이실리스가 사용인에게 물었다.

“보석이 없어졌군.”

“네?”

“보석이 없어졌다고 했다.”

“그럴 리가…… 대공저의 사람들은 함부로 남의 것에 손대지 않습니다.”

사용인의 항의 어린 말에 이실리스는 답하지 않았다. 로브와 옷에 수많은 보석이 박혀있어 없어졌는지 제대로 구별할 수 없었지만 하나는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붉은 기운이 흐르던 보석 중 하나가 사라졌다. 계속해서 그녀에게 항의하던 사용인은 분노로 얼굴을 붉히며 밖으로 나갔다. 다른 보석이라면 없어졌든 아니든 상관이 없지만 붉은 기운이 흐르는 보석이라면 말이 달랐다. 그것이 그녀에게 중요한 역할을 하리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손을 들었다. 목에 걸려있는 목걸이에 생각이 미쳤기 때문이었다. 손에 만져지는 목걸이의 촉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 이실리스가 벌컥 열린 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당황한 표정의 사용인이 들어왔다.

“이게 무슨 소립니까, 귀하신 분의 옷에 손을 댄 자가 있다니요!”

호들갑을 떨면서 말하는 남자의 모습에 이실리스가 눈을 찌푸렸다. 대체 무슨 의도로 여기 와서 소란을 피우는지. 문제가 생겼다면 사용인들을 관리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랬는데 그녀를 찾아오다니.

“여기 와서 소란을 피우는 이유는 뭐지?”

“귀하신 분의 보석이 없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왔습니다. 혹 없어진 보석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까?”

옷에 달린 모든 보석을 어떻게 기억하냐는 듯한 남자의 말에 이실리스는 분노를 감출 수 없었다. 저를 남에게 누명이나 씌우는 사람으로 본 것인가. 이실리스가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기세등등해진 남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거 보십시오. 모르시지 않습니까.”

“이게 무슨 일이지?”

다른 사용인과 함께 방으로 들어온 마뉘엘이 물었다. 그의 얼굴을 본 사용인이 나서서 그에게 변명하는 소리가 들렸다.

“귀하신 분께서 보석을 잃어버리셨다고 합니다.”

“보석?”

“옷에 달린 보석 말입니다.”

자잘하게 달려있는 보석을 바라본 마뉘엘이 이실리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뭐가 없어졌습니까?”

“옷에 달려있던 붉은 기운이 도는 보석이 두 개 사라졌…… 습니다?”

“왜 말은 갑자기 그렇게, 아니, 이게 아니지. 붉은 기운이 도는 보석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래.”

이실리스의 말에 잠깐 생각하던 마뉘엘이 그녀에게 물었다.

“혹, 어디 어디 있던 건지 아십니까?”

“옷에 붙어있던 거고, 지금은 저자의 주머니에 있군.”

이실리스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은 그녀에게 건방지게 말하던 남자의 상의 주머니였다. 그것을 본 마뉘엘이 밖의 기사들을 불렀다.

“대런 경!”

“부르셨습니까.”

“저자의 옷을 뒤져라.”

차가운 얼굴의 마뉘엘이 명령하자 기사가 사용인의 옷을 뒤졌다. 저항하려고 했지만 다른 기사가 그의 팔을 쥐고 놔 주지 않아 움직일 수 없었다. 상의 주머니에서 나온 붉은 보석들을 본 마뉘엘의 얼굴이 구겨졌다.

“내 집에 쥐새끼가 있었다니.”

“신력을 볼 수 있는 저분은 신의 사자다! 대공인 당신이 함부로 구금할 수 있는 분이 아니란 말이다!”

돌변한 남자가 이실리스를 향해 무언가를 던졌고 그 모습을 지켜본 마뉘엘이 그녀의 몸을 잡고 옆으로 피했다. 붉은 기운이 넘실거리면서 남자를 감쌌고, 남자는 사라졌다. 남자가 던진 것은 그냥 돌멩이에 불과했다. 마뉘엘이 속은 것이었다.

“이런…….”

‘신전에서 눈치챘군.’

마뉘엘의 집에 있는 손님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사람을 들인 것이 뻔했다. 새로운 사람을 잘 받지 않는 마뉘엘의 저택이었지만 이번엔 어쩔 수 없었다. 그의 조카가 대공저로 들어오면서 황성에서 사람을 데리고 왔기 때문이었다. 그 사람들을 거르고 걸렀지만 쉽지 않았다.

아직도 이곳을 노리는 자들이 있다니. 이렇게 되면 조카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다시 확인해야 했다. 여자의 위치가 노출되었으니 조만간 신전에서 그녀를 확인하기 위해 올 것이 뻔했다.

“일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어렵다니. 뭐가.”

“손님께서 이곳에 계신 것을 신전에서 알아차렸습니다.”

“그게 뭐가 문제지?”

“문제 될 것은 없습니다만, 신전에서 손님을 뵙겠다고 할 가능성이 크군요.”

“나를 왜?”

“신전에서는 손님이 신의 사자라고 생각하니까요.”

* * *

베르타스는 준비된 알뤼르와 함께 잠수정을 타기 위해 약속된 장소를 향했다.

“이 차림은 불편합니다.”

“마법사인 것을 들켰다가 죽고 싶나? 페일러스의 말을 잊었어?”

평기사의 옷을 구해 입은 알뤼르가 불평하자 베르타스가 타일렀다. 바다 너머로 간 마법사들이 모두 소식이 없다는 소리에 그가 알뤼르에게 요구한 것이었다. 마법사의 로브는 너무 눈에 띄니 차림새를 바꾸는 것이 좋겠다고.

“아무리 그래도…….”

“보낸 마법사가 수십인데 그들이 모두 소식이 없다는 것은 저 너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지.”

“소식이 끊긴 라르헨의 마법사들도 있습니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하는 알뤼르에게 베르타스가 단언했다.

“행여 이실리스에게 알릴 생각은 하지 마. 그녀를 찾는 즉시 우리는 라르헨으로 돌아간다.”

“…… 알겠습니다.”

내키는 기색은 아니었지만, 고개를 끄덕이는 알뤼르를 보면서 베르타스가 그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었다. 바다가 바로 보이는 곳에서 남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와.”

서두르라는 듯 손짓하는 남자의 모습에서 다급함이 묻어났다.

“무슨 일이지?”

“들켰네.”

“들켰다고?”

“오늘 이 주변에서 잠수정을 띄운다는 소리를 누가 들은 모양이야. 곧 사람들이 몰려올 거야.”

얼른 타라면서 잠수정의 문을 여는 남자를 향해 베르타스가 물었다.

“같이 안 가나?”

“나는 보살펴야 할 사람들이 많아서 같이 갈 수 없어. 도착지는 설정해 놓았으니 마력을 주입하면 갈 수 있을 거야. 다른 것은 건드리면 안 돼. 그럼 나중에 돌아올 수 없어져.”

“고맙군.”

“그 사람을 찾는다면…… 우리 제국을 꼭 구해달라고 해주게.”

“노력해 보지.”

확답을 하지 않는 베르타스의 말에도 남자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믿는다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는 남자의 모습에 베르타스가 입술을 깨물었다.

‘이런식으로 이실리스에게 또 짐을 지우게 되는 것인가.’

라르헨에 이어 해상제국까지 해결 해야 하다니. 어려운 일이었다. 라르헨의 상황도 좋지 않을 것인데 해상제국까지 신경 써야 하다니.

‘대체 이실리스가 책임지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인가.’

이번에 그녀를 만나게 되면 모든 것을 캐묻겠다고 결심하는 그였다. 그러나 그 결심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신기합니다.”

알뤼르의 말 대로였다. 잠수정은 신기했다. 동그랗고 붉은 마력석이 한가운데 있는 것을 본 알뤼르가 그곳에 마력을 불어 넣었다. 순식간에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 잠수정은 바다를 가르고 해상제국에서 멀어졌다.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순조로운 출발이었다. 비좁은 것은 빼고. 사람이 많이 탈 수 없으니 단둘만 오라는 남자의 말이 맞았다. 다른 마법사들도 함께 오고 싶어 했지만, 알뤼르의 강력한 반대로 인해 베르타스와 그만이 출발할 수 있었다. 나머지 마법사들은 그들이 돌아올 때까지 라르헨의 이토르트 항구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이실리스를 찾으면 해상제국을 거치지 않고 이토르트 항구로 바로 가기로 이야기를 마쳤지만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녀를 찾으면 과연 해상제국을 거치지 않고 갈 수 있을까.’

책임감이 강한 그녀라면 어려움에 처한 해상제국의 사람들을 모른 체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뿐이랴. 베르타스 자신 또한 그에게 도움을 준 남자를 외면할 수 없었다.

“도착했습니다!”

알뤼르가 생각에 빠진 그를 불렀고, 출발한 지 세 시간 만에 다른 대륙에 도착했다. 미지의 땅. 뮤르카 제국이었다.

바닷속에 잠수정을 잘 숨기고 보호 마법까지 건 알뤼르의 모습을 베르타스가 지켜보고 있었다. 늦은 밤이었지만 경계를 서는 보초는 없었다.

“이상하게 사람이 없군요.”

바다에 인접하고 있다고 하나 경계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 이상했다. 너무나도 고요한 바다의 모습에 서둘러서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베르타스가 움직이려는 찰나, 알뤼르가 베르타스의 팔을 붙들고 풀숲으로 몸을 숨겼다.

“그 흐름이 있었다고!”

“흐름은 무슨! 또 헛소리겠지!”

하얀 로브를 걸친 두 사람이 베르타스와 알뤼르가 서 있었던 자리로 움직였다. 남자 하나가 당황하면서 상대편 남성에게 말했다.

“아니야 정말이라고! 그 보석에서 정말로 붉은 신력이 흘렀어!”

“붉은 신력은 신만이 가지고 있는 것인데 그걸 가진 사람이 있다고?”

“그래. 대공저에 있는 사람의 옷에 주렁주렁 달려있었다니까?”

“그게 신력이라는 걸 어떻게 믿어?”

“대공도 거기에 깜박 넘어갔다니까? 신력이 틀림없어. 대공도 황실의 핏줄이 아닌가. 그도 신력을 느낄 수 있는 것이 확실해.”

한참 동안 떠들던 두 사람이 멀리 사라질 때까지 베르타스와 알뤼르는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신력이라니. 붉은 기운이라니.

“혹 폐하의 마력이…….”

“저들이 말하는 것은 신력인데?”

이상한 표정으로 마주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선 의아함이 가득했다. 그때였다. 베르타스의 목걸이가 울었다. 그 순간 그의 표정이 변했다.

“이게 무슨 소립니까?”

“찾았다.”

“네? 찾았다니요.”

“이실리스가 이 근처에 있는 것이 확실해. 두 개의 목걸이는 서로 공명한다. 그러니 분명 이곳에 있는 거야. 그의 말이 맞았군.”

“그라면…….”

“선황의 부군인 타르토스.”

“선황의 부군께서 폐하가 이곳에 있는 것을 어찌 알고…….”

“나도 그게 궁금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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