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흐으…….”
얕은 숨이 흘러나왔다. 그녀의 숨을 다시금 집어삼키면서 남자가 그녀의 입속을 누볐다. 뜨거운 감각에 이실리스가 눈을 감았다. 남자의 짙어진 시선을 눈치챌 수 없었던 그녀였다. 입술을 떼면서 그녀의 입술을 핥은 남자가 이실리스에게 물었다.
“후회하지 않겠나?”
“그럴 리가.”
그녀를 안아 든 남자가 걸음을 옮기자 흔들리는 몸을 어찌할 수 없어 그의 목에 팔을 감은 그녀였다. 닿아오는 감촉이 부드러워 순간 몸을 흠칫했다. 아버지 이외에 자신을 안아준 사람은 처음이었다. 단단한 상체에 기대니 따뜻한 온기에 마음이 풀어졌다.
* * *
베르타스는 그녀의 분위기에 끌렸다. 술집에서도 그곳에 있지만, 그곳에 있지 않는 듯한, 결코 섞이지 못할 그녀의 묘하고도 아슬아슬한 분위기에 끌려 이 순간까지 오게 되었다. 여자를 유혹하여 이 순간까지 오게 된 것은 처음이었다. 아마 본국의 영애들이 알면 난리가 날 것이었다. 물론 자신의 숙부도. 자신에게 후사가 생기는 것을 가장 경계하는 자였으니.
자신의 목에 팔을 감고 기대어오는 여자의 모습에 베르타스가 속삭였다.
“무슨 생각을 하지?”
“아무 생각도…….”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면서 저렇게 애잔한 표정을 짓다니. 곧 아무 생각도 들지 않게 만들어주겠다고 결심하면서 베르타스가 그녀를 침대 위에 올려놓았다. 자신을 직시하는 여자의 모습에 베르타스가 희미하게 웃었다. 귀여운 여성이었다. 말은 대범하게 했지만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경험이 많지 않으니 천천히 해 주겠다고 생각하며 베르타스는 그녀의 입술을 찾았다.
“흣!”
아랫입술을 살짝 물어주니 얕게 흘리는 신음이 마음에 들었다. 로브를 벗기니 가벼운 옷차림이 드러났다. 평민들이나 입을 법한 옷차림이지만 손에 닿는 부드러움에 여자의 신분을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그냥 귀족이 아니로군.’
멈춰야 하나 생각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이미 그녀가 귀족인 것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도 레이디 운운한 것이 아닌가. 닿아온 몸이 뜨거웠다. 열기에 휩싸이는 자신의 몸을 베르타스는 도무지 주체할 수 없었다.
* * *
소드마스터인 베르타스는 제국에서 벌이는 모든 전쟁에 참여하느라 몸을 혹사했다. 처음엔 그것이 혹사인 줄도 몰랐다. 소드마스터인 자신이라면 당연히 제국을 위해서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러다 지난 전쟁에서 알아차렸다. 우연히 황제와 귀족들의 대화를 듣게 된 그였다.
“베르타스? 황실의 말 잘 듣는 개가 아닌가.”
‘개?’
처음엔 자신이 잘못 들었나 하였다.
“그렇게 말을 잘 듣는 검사가 어디 있나. 다른 제국에 있는 소드 익스퍼트들은 여제의 말이 아니면 듣지도 않는다던데.”
“하긴. 소드마스터도 아닌 것들이 콧대가 높지.”
“그만한 무력이면 그럴 만해. 어릴 적부터 황실에 가깝게 지내게 한 보람이 있어. 그 자식에게 약한 척하느라고 한 짓을 생각하면…….”
황태자의 말이었다.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낸 사람이고 아파서 앓아누운 적이 많아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황실의 사람들은 다들 몸이 약하여 전쟁터에 나가서 싸울 수 없었으니 황족인 자신이라도 대신해서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제국민들을 위한 황족의 도리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니. 처음 든 생각은 배신감이었지만, 나중엔 스스로를 자책한 베르타스였다.
‘속은 내 잘못이지.’
전쟁을 승리로 이끈 베르타스는 황족들에게 그 공을 돌리고 휴가를 떠났다. 그리고 떠나온 이 자유도시. 이웃 나라인 라르헨 제국의 항구도시에서 이 여자를 만났다. 자신의 손에서 흐트러지는 여자를 보는 것도 즐거웠고 여자의 귀여움도 마음에 들어찼다.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여자를 자신이 타락시키는 것 같아 죄책감도 들었지만, 책임지겠다고 생각하는 베르타스였다.
자신의 혀놀림에 눈을 꼭 감고 신음을 내뱉는 여자의 얼굴이 귀여웠다. 조금은 느낀 것인지 눈꼬리에 매달려있는 물방울이 반짝이면서 그를 유혹했다. 어느 정도 욕심을 채웠으니 슬슬 놓아줄까 생각하던 그였다.
“흐윽! 흑……. 흑…….”
허나, 여자는 진짜로 울고 있었고 그 눈물에 베르타스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왜……. 왜 울지?”
“이상하다고 하지 않았나!”
대성통곡을 하는 여자의 모습에 진심으로 당황했다.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는 여자의 앞에서 어쩔 줄 모르는 베르타스였다.
“아니…. 미안……. 내가, 내가 다 잘못했다. 그만 울어라.”
“내가! 이상하다고 했잖아!”
별채가 떠나가라 우는 여자의 울음에 베르타스가 다시금 표정을 바로 하고 물었다.
“이상한 게 맞긴 맞고? 좋은 게 아니고?”
“훌쩍! 뭐?”
“이상한 게 맞냐고. 좋은 거 아니냐고 물었는데.”
자신의 말에 곰곰이 생각하는 여자였다.
“이런 게 좋은 거야? 안쪽에서 간질간질하고 이상한 그 감각이?”
“그게 좋은 거지.”
한숨을 내쉬면서 베르타스가 여자를 향해 말했다. 이걸 언제 가르치나. 잠자리의 기쁨을 가르치려면 자신의 휴가를 다 쏟아부어도 부족하겠다고 생각하는 그였다.
“이리 와.”
아직도 훌쩍거리는 여자를 끌어당기면서 베르타스가 말했다.
“여길 만지면 어떤 기분이 들지?”
“심장이……. 크게 뛰어.”
“좋아서 그런 거야.”
“정말 그런 건가?”
베르타스가 희미하게 웃었다. 저 좋을 때만 차분해지다니.
“그럼. 아까 그것도 좋아서 그런 거야.”
“그래도 그건 좀…….”
“싫었나?”
자신의 말에 얼굴을 붉히면서 고개를 젓는 그녀였다. 당연히 싫지는 않았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베르타스가 그녀를 다시 눕혔다.
“왜 또…….”
싫지는 않았다면서 물어오는 그녀의 목소리에 베르타스가 짓궂은 표정으로 웃었다.
“한 번 더 해야지.”
* * *
안에서 이는 불길에 이실리스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그녀의 목선을 혀로 핥으면서 남자가 짙어진 눈을 하고 이실리스를 올려다보았다.
“예쁘군.”
자신의 목을 깨물면서 말하는 남자의 속삭임에 이실리스의 마음이 울렁였다.
“정말, 그런가?”
“응.”
아래를 내려다보며 묻는 그녀의 말에 남자가 답했다. 별스러운 것을 묻는다는 듯 말하는 남자의 답에 그녀가 픽 하고 싫지 않다는 듯 웃었다. 자신에게 예쁘다는 말을 해 준 것은 남자가 처음이었다. 그것도 진심이라는 듯, 여러 번이나 말이다. 어느 누가 황제의 외모를 품평할 수 있을까. 황제는 그냥 황제일 뿐. 평가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실리스는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었다. 때로는 자신이 마도 제국의 일부인 기계 같았다. 그저 나라를 위해서 존재하는. 집무를 보고 전쟁터에 나가서 자국민을 보호하고. 그러나 그녀에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공허함뿐. 남자를 만나서 온기를 나누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감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실리스였다. 황제인 자신에게 이것은 득인가 실인가. 알 수 없었다. 너무 뜨거웠다. 그 기억을 끝으로 이실리스는 쾌락의 늪에 빠졌다.
* * *
베르타스는 정신없이 자신에게 달라 붙어오는 여자의 몸을 꼭 끌어안았다.
‘남자는 시각적 동물이라더니…….’
어느 고서에서 읽은 문장을 그대로 기억하면서 베르타스는 가쁜 숨을 내쉬는 여자의 옆에 누웠다. 엎드린 채 침대보를 꼭 쥔 손을 마주 잡으면서 베르타스가 여자를 향해 입을 열었다.
“내 곁에 있어 주겠나?”
“…….”
흥분으로 인해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여자에게 속삭이는 그를 흐린 눈으로 바라보는 여자였다. 아직 정신이 없어 보였다.
“그렇게 해 주겠나?”
“응…….”
여러 번 물어 결국 원하는 대답을 받아낸 베르타스였다.
“약속했다.”
“응…….”
그 말을 끝으로 잠이 들어 버리는 여자의 모습에 처음 치곤 너무 심하게 해댔다고 생각하면서 베르타스가 반성했다. 더군다나 마법사였으니 이곳에서는 힘을 쓸 수 없는 것이 당연했다.
‘붉은 머리카락에 물빛 눈동자라…….’
자신이 알고 있는 어느 귀족과도 맞지 않았다.
“그렇다면 소국의 귀족인가.”
이불을 덮어주고 머리카락을 손으로 잡아 올리면서 베르타스가 그 끝에 입을 맞추었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어.”
처음을 제게 줬으니. 베르타스는 잠이 든 여자를 끌어안으면서 잠을 청했다.
* * *
눈을 뜬 베르타스의 눈앞에는 눈을 깜박거리는 여자가 있었다. 잠이 덜 깬 듯 초점을 맞추는 여자의 행동에 베르타스가 가볍게 입 맞추며 말했다.
“왜 그러고 있지?”
“놓아줘야 나갈 수 있지 않나.”
자신이 끌어안고 자는 바람에 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여자였다.
“좋은데 왜.”
닿아오는 살결이 마음에 들었다. 모르는 척 안고 있던 팔로 몸을 문지르자 여자가 몸을 틀었다.
“대낮에 뭐 하는 거지?”
‘또 반말이로군.’
귀엽다고 생각하면서 베르타스가 여자를 향해 입을 열었다.
“원래 이런 건 밤낮을 가리지 않는 거야.”
“그런……가?”
“아하하하하!”
“왜 웃어?”
정말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는 여자의 얼굴 곳곳에 베르타스가 입을 맞추었다. 그가 계속해서 웃으며 입맞춤을 해대자 그녀가 쑥스러운지 그만하라며 그를 통통 때렸다.
‘이건 너무 귀여운데…….’
항상 새침한 귀족 여성들에 곰 같은 사내놈들만 봐서인지 여자의 행동이 너무 귀엽게 느껴지는 그였다. 자신을 향해 쭈뼛쭈뼛 말도 걸지 못하는 여성들부터 대놓고 유혹하려는 여성들까지. 하지만, 그중 저런 여자는 없었다.
“귀엽군.”
다시금 내뱉어진 그의 말에 여자가 얼굴을 붉혔다. 어제 조금 심하게 했던 탓에 그녀의 몸이 울긋불긋해져 있었다. 아직도 자신이 옷을 입지 않은 것을 모르는 것 같았다. 그게 아니라면 고위 귀족일 수도. 그들은 스스로 옷을 걸쳐 입는 사람들이 아니었으니.
여자의 행동으로 봐서는 그녀의 신분을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귀족이라면 누구나 받는 성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녀의 몸짓 하나하나는 귀족이 아닐 수 없었다. 뻗어지는 손가락이 고아하여 기품이 흘렀다. 베르타스는 어제 자신에게 손을 뻗는 여성을 보면서 확신했다. 귀족이 분명하다고. 남자에게 손을 뻗는 방법을, 그것도 귀족 남자에게 손을 뻗는 방법을 정확하게 아는 그녀였다. 귀족의 예법 그대로 뻗어진 손, 그 손으로 보아서 그녀 또한 그 자신을 귀족이라고 확신하는 것 같다고 베르타스는 짐작했다. 그의 신분을 짐작하지 못했다면 그녀는 평민에게 손을 뻗는 방법으로 손을 뻗었을 테니.
저 좋을 대로 생각하면서 베르타스는 판단을 끝냈다. 용병이라고 밝혔지만, 분명 눈동자 색으로 유추했을 때 소국의 여성이고 신분을 제대로 알 수는 없지만, 귀족 여성임이 분명했다. 결혼하라는 가신들의 등쌀에 시달리기를 여러 번 결국, 도망을 택했을 테지. 베르타스는 계산을 마쳤다. 저 정도면 괜찮을 것 같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지?”
어설프게 나온 말에 다시 웃음이 나왔지만, 꾹 내리눌렀다.
“어디서 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