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엄격한 성직자와 갇혀 버렸다
[시스템: ‘3층’에서의 플레이 시간이 끝났습니다.
- ‘에단 디아즈’가 이제 당신에 대한 마음을 인정합니다.
- 상태: 당신만의 장난감]
또 하나 끝났고‚ 이제 마지막 관문만 남았다.
3층에서의 플레이 시간이 끝나자 2층으로 자동 워프했다.
두 남자의 눈치를 보며 빠져나갈 일이 큰 걱정이었는데.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건 그렇고. 내 몰골이 아주…….’
가관이었다. 섹스한 게 아니라 산짐승한테 습격당한 사람처럼 말이다.
알베르토가 곱게 땋아 주었던 머리는 이미 산발이 된 지 오래였다. 네글리제는 뭐. 옷이 아니라 걸레짝처럼 너덜너덜한 상태였다.
‘그래도 내려왔으니까 다행이지.’
어쨌든 그 막장 치정극이 펼쳐지는 가운데‚ 살아서 내려왔다는 것이 감개무량했다.
세라는 기다란 복도를 걸으며 다시 한번 3층에서의 수확을 확인했다.
[시스템: 해당 캐릭터가 당신에게 ‘충성의 맹약’을 했습니다.
- 해당 캐릭터가 당신의 말을 무조건 신뢰하고 따릅니다.
- 다소 맹목적인 애정을 보일 수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기사라서 그런가. ‘충성의 맹약’이라니. 역시 우직하고 믿음직스러웠다.
에단은 아무래도 조금 마음이 더 쓰였다. 세라 에보트 옆에서 오랫동안 속앓이해 온 캐릭터다 보니 당연한 일이었다.
[시스템: 최종 선택에서 ‘에단 디아즈’ 선택 시‚ ‘둘만의 소꿉놀이’ 엔딩이 가능해집니다.]
세라가 흐뭇하게 웃었다. 그의 순애 가득한 집착은 일단 서사부터 취향 저격이었으니까.
[시스템: 에단 디아즈의 영향으로 ‘체력’이 상승합니다.]
뭐‚ 이건 셀 수 없이 했으니까 그렇다 치고.
[시스템: 3층 클리어 보상으로 아이템 ‘연기의 여왕’ 획득.
- 사용 시‚ 눈물 연기부터 귀신 들린 연기까지 여우 주연상급으로 해낼 수 있습니다.]
임기응변으로 대처해도 몰입이 부족할 때가 있었는데. 이건 아주 유용할 것 같았다.
‘아이고. 다리야.’
세라 에보트의 나약해 빠진 다리는 얼마 걷지 않았는데도 자꾸 후들거렸다.
하염없이 걸으면서도 자꾸만 등골이 오싹해져서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혼자 돌아다니는 게 좀 불안하긴 했다. 펠릭스에게 붙잡히면 무슨 꼴을 당할지 안 봐도 눈에 선했으니까.
‘생각할수록 개막장 게임이란 밀이야.’
약혼자를 문 앞에 세워 두고 다른 남자와 섹스하다니. 전개가 아침 드라마 뺨치는 수준이었다.
펠릭스에게 미안하냐고?
전혀. 오히려 속이 시원했다.
세라가 빙의자라 상대적으로 감정적 몰입을 덜 하기도 했지만‚ 사실상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데에는 펠릭스 탓이 컸다.
‘너는 좀 더 굴러야 해.’
그 건방지고 성격 나쁜 놈이 문을 부서지게 치며 바싹바싹 말라 갔을 걸 생각하니. 묘한 카타르시스에 몸이 떨릴 지경이었다.
‘울면서 빌기까지 하면 완벽할 텐데.’
사실 그런 모험까지 감수하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 그녀는 연이은 성교로 펠릭스의 패악을 감당할 기운이 없었으니까.
‘그건 그렇고. 이번엔 알베르토한테 못 가나?’
알베르토가 보고 싶었다.
목욕도 하고‚ 잠도 푹 자고. 그가 차려 주는 식사를 한 그릇 뚝딱하고 전신 마사지까지 받으면 극락이 따로 없을 것 같은데.
3층을 내려올 때와 달리 시스템은 그에게 들를 틈을 주지 않았다.
“친밀도. 알베르토.”
세라는 그와의 친밀도를 확인해 보기로 했다.
[시스템: 당신은 집사(알베르토‚ NPC)와의 친밀도가 매우 높습니다.
- 칭호 ‘충실한 나의 종’(S class) 보유 중]
친밀도는 오히려 더 높아졌는데. 뭐가 문제지?
[시스템: PLAY TIP! NPC는 플레이어의 편리한 플레이를 돕습니다.]
[시스템: 집사(알베르토‚ NPC)의 도움을 받으시겠습니까?
>예/아니오]
당연히 ‘예’를 선택했지만 갈 수 없었다.
[시스템: ^%$^$^$&^*&]
뭐야‚ 버그인가. 한 번도 저런 건 본 적 없는데 이상했다.
긴 복도를 따라 걸은 끝에 세바스찬이 있는 ‘예배당’에 다다랐다.
[시스템: 현 위치는 ‘예배당’ 앞(2층)입니다.]
그건 그렇고. 별장에 예배당은 왜 마련해 놓은 거야? 구조 자체가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납득이 힘들었다.
하긴 그녀가 빙의한 이는 일반인이 아니라 ‘세라 에보트’였다. 한마디로 보통 또라이가 아니라는 뜻이다.
게다가 에보트 후작 또한 신앙심이 독실한 편이었다. 그래서 그녀의 이런 결정에 크게 반대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시스템: 2층‚ ‘세바스찬 클라인’(직업: 대신관)이 이곳에 있습니다.]
물론 정상이 아닌 건 이 게임도 마찬가지였다.
‘…사제니까 고결한 컨셉에 맞게 예배당에 가두시는 건가요.’
예배당에 사제라니. 그야말로 지독하게 컨셉에 충실한‚ ‘컨셉충 게임’이었다.
떡 치기에는 지나치게 경건한 장소가 아닌가? 박으면서 성직자를 따먹어서 미안하다고 고해 성사라도 해야 할 것 같다.
에단과 펠릭스가 마주칠 때부터 이 게임이 구제 못 할 막장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개연성을 날려 먹어도 적당히 날려 먹어야지.
뭐‚ 누굴 탓하겠는가. 이런 게임을 즐긴 자신을 탓하는 수밖에 없었다.
‘배덕한 맛은 있겠네. 그것도 자빠뜨릴 수 있을 때의 이야기지만.’
이 문만 열면 마지막 남주인 세바스찬을 만나는데. 왠지 자신이 없었다.
‘아마 무너뜨리기 가장 어려운 상대가 될 텐데.’
개 막장 19금 게임이라지만 성직자는 성직자였다. 금욕과 정결을 중시하는 사제를 어떻게 자빠뜨릴 수 있을까?
‘게다가 알베르토까지 없으니까 준비가 덜 된 느낌이란 말이지.’
그냥 들어가기는 너무 불안해서 손끝만 물어뜯고 있는데‚ 시스템 창이 울렸다.
[시스템: ‘정화의 방’에서 몸과 마음의 준비를 하시겠습니까?
>예/아니오]
뭔지는 모르겠지만 준비가 필요한 건 맞았다. 세라는 조심스럽게 ‘예’를 택했다.
***
여긴 뭐 하는 곳이지?
[시스템: ‘정화의 방’은 예배를 드리기 전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하는 곳입니다.
- 이곳의 아이템들을 이용해 ‘예배당’에 출입할 준비를 마치세요.]
세라의 속마음을 듣기라도 한 듯‚ 시스템이 이곳의 용도를 설명해 주었다.
‘그냥 내 방이랑 비슷해 보이는데.’
5층에서 지내던 방보다는 더 커다란 방이었다. 침대도 있고 소파도 있고‚ 큰 옷장도 있었다.
안쪽에는 몸을 씻을 수 있는 욕실까지 딸려 있었다.
‘그래. 일단 씻자.’
세라는 가장 먼저 욕실에 들어갔다. 물이 가득 차 있는 큰 욕조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
물 위에는 보드랍고 향기로운 하얀 색 꽃잎이 둥둥 떠 있었다. 세라는 홀린 듯이 다가가 손을 담가 보았다.
‘딱 좋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온도였다. 그녀는 옷을 벗고 몸을 담그고 싶은 욕구를 느꼈다.
[시스템: 아이템 ‘신성한 욕조’
- 효과: * 더러운 것을 씻어 내고 육체에 신성한 기운이 감돌게 한다.
‘신성한 욕조’를 사용하시겠습니까? >예/아니오]
신성한 기운은 잘 모르겠고 일단은 씻고 싶은 것은 맞았다. 세라는 ‘예’ 버튼을 누르고 탈의 후 욕조에 들어갔다.
“흐으으‚ 좋다.”
절로 몽롱한 숨이 새어 나왔다. 진짜 신성한 기운이 있기는 한 건지 알베르토의 안마 없이도 온통 결리던 몸이 빠르게 회복되는 느낌이었다.
목욕을 마치고 나온 세라는 알베르토가 그녀를 내보낼 때마다 늘 ‘드레스 코드’를 맞춰 주었던 것이 생각났다.
“그럼 옷장부터 살펴볼까?”
옷장의 문을 열자 각가지 의상과 소품이 가득 걸려 있었다.
세라는 마지막 공략 캐릭터인 ‘세바스찬 클라인’에 대해 떠올려 보았다.
그는 탁월한 성력으로 대신관의 자리에 오른 캐릭터였다.
어린 나이에 고위 사제가 된 만큼 강박적으로 자기 관리가 철저하고‚ 신실한 타입이었다.
그에 비해 세라 에보트의 행실은 개망나니나 마찬가지였다. 특히 엘레나를 심하게 괴롭히다가 신전에서 자숙하라는 조치를 받았을 때가 부정한 행태의 정점이었다.
그녀는 반성문 대신 야한 노래 가사를 써서 냈으며‚ 식사를 거부하며 침을 뱉기도 했다. 마음대로 신전의 담을 넘었고‚ 잠이 안 온다며 몰래 술을 반입하기도 했다.
오죽하면 신관들이 손가락질하며 ‘악마의 딸’이라고 부를 정도였으니까.
“하아. 돌겠네‚ 진짜.”
자신이 한 짓도 아닌데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녀는 왠지 두통이 밀려오는 것 같아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엘레나로 공략할 때는 ‘신전 봉사 활동을 하는 따스한 영애’ 컨셉이라 어렵지 않았는데.
역시 ‘하드 모드’답게 시작부터 비호감의 정점을 찍고 시작한다.
펠릭스는 세라에 대한 비틀어진 욕망을 가지고 있었고‚ 에단은 거센 입덕 부정기를 겪고 있었는데.
세바스찬은 뭐‚ 빠져나갈 구멍조차 없었다.
“어쩔 수 없지. 개과천선 컨셉으로 가는 수밖에.”
세라는 옷장을 뒤져서 보석이나 장식이 없는 드레스를 한 벌 추렸다.
[시스템: 아이템 ‘가련한 성도의 드레스’
- 효과: * 신실한 느낌을 주어 고해 성사 성공 확률을 높인다.]
‘가련한 성도의 드레스’는 최대한 노출 없이 레이스로 목과 팔을 가리는 디자인이었다.
고해 성사라. 다른 일이라면 상대도 안 해 줄 테지만‚ 그걸 핑계로 내세운다면 말을 좀 붙여 볼 수 있겠지.
“옳지. 이거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옷을 갈아입었다. 팔이 닿지 않아서 뒤에 달린 수많은 단추를 다 잠그지 못했지만. 효과가 사기니까 무조건 입어야만 했다.
머리도 자연스럽게 늘어뜨리고 일부러 화장도 하지 않았다. 추레할 법도 한데 거울 속의 세라는 지나칠 정도로 깨끗하고 청초해 보였다.
“아무리 그래도 머리가 좀 허전한데.”
헤어 액세서리를 하나 하고 싶었다. 알베르토도 항상 의상에 맞는 리본을 매어 주곤 했었으니까.
옷장을 뒤적거리던 세라가 적당한 걸 하나 발견했다.
[시스템: 아이템 ‘레이스 면사포’
- 효과: * 기도의 집중력을 높인다. 얼굴을 가려 성직자의 경계심을 하락시킨다.]
역시 예배당에선 면사포가 제격이었다. 머리에 뒤집어쓰자 가련한 어린양 룩이 완성되었다.
“자‚ 이제 준비도 끝났으니 가 볼까.”
세라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방을 나섰다.
***
세라는 예배당의 문을 열고 살금살금 들어가 적당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기도 중인 세바스찬을 몰래 훔쳐보았다.
어른거리는 촛불들 속‚ 단상 위에서 세바스찬은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인 채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아직 어리네.’
이제 갓 성년이 지났다고 했었나. 우유처럼 뽀얀 얼굴에는 아직 애티가 가득했다.
까만 사제복은 깨끗한 은발과 대비를 이루며 성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오 신이시여. 저 아름다운 피사체에 사제복이라니요.’
세라는 자기도 모르게 경배하듯 두 손을 모아 쥐었다.
얼굴은 귀여운데 몸은 어른이라 그녀의 제복 판타지를 충족시키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서늘한 목소리였다. 기도에 집중하는 줄 알았는데‚ 인기척을 느낀 걸까.
“…….”
세라는 깜짝 놀라 눈을 질끈 내리감고 기도하는 척을 했다.
“에보트 영애. 기도하는 척하셔도 소용없습니다.”
제기랄. 이건 뭐‚ 대신관이 아니고 무당인가? 정곡을 찔린 세라가 어깨를 움찔 떨었다.
‘겁먹지 마. 기세에 눌리면 지는 거야.’
마음속으로 되뇌고 또 되뇌는데. 터벅터벅.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서서히 실눈을 뜨자 어느새 그녀 앞에 다다른 세바스찬이 싸늘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녁 예배를 드리는 중이니 나가 주십시오.”
단호한 축객령이었다.
‘들어오자마자 나가라니? 그리고 여기 에보트의 별장인데?’
대체 이건 무슨 경우일까. 세라는 어안이 벙벙해서 그를 쳐다보았다.
“…….”
너무 당황해서일까. 머릿속이 하얘져서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제 말 못 들으셨습니까?”
서릿발 같은 말투에 입술이 파르르 떨렸지만‚ 연신 몰아붙이니 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 저도 기도하러 왔는데요.”
세바스찬이 가당치도 않은 소리를 한다는 듯이 실소했다.
“에보트 영애가 기도를 올리신다니. 지나가던 개가 웃겠습니다.”
“…네?”
“또 저를 괴롭히러 오신 거겠지요.”
어이가 없었다. 성직자가 저런 말을 함부로 해도 되는 건가?
[시스템: 경고! 캐릭터 붕괴 위험 발생!
- ‘세바스찬 클라인’이 평소와는 너무 다른 당신을 의심합니다.]
또 이럴 줄 알았지.
애초에 예배실에 들어오는 것부터 세라 에보트가 하지 않을 행동이었다.
이거라면 적당한 핑계를 생각해 둔 것이 있었다. 세라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신성한 기도 시간에 패악을 부리시려는 것이라면‚ 상대할 시간이 없으니 나가 주십시오.”
“대신관님.”
세바스찬이 피로한 눈으로 돌아서려던 찰나‚ 세라가 그를 불러 세웠다.
“또 뭡니까?”
“여긴 에보트예요.”
“알고 있습니다.”
“이 예배실도 아버지께서 신앙심으로 만드신 곳이고요.”
세라 에보트가 또라이라서 만든 방이라고는 할 수 없으니. 세라는 적당히 그럴듯한 핑계를 둘러댔다.
“그래서요? 이곳도 영애의 것이니 저더러 나가라는 겁니까?”
세바스찬의 얼굴이 짜증스럽게 일그러졌다.
“저야말로 나갈 수 있으면 나가고 싶습니다. 근데 이 망측한 저택에 꼼짝없이 발이 묶여 버린 걸 어떡합니까?”
“갇힌 건 저도 마찬가지예요‚ 대신관님.”
“…….”
격앙된 어조로 답하던 세바스찬이 갑자기 뚝 멈췄다.
“비록 신을 섬기는 것에 대해 무지하긴 하지만 저도…….”
세라가 일부러 살포시 눈을 올려 뜨며 한숨을 푹 쉬었다.
“…이런 상황은 좀 무섭고 막막해서 기댈 곳이 필요했다고요.”
면사포 사이로 시선이 마주치자 그의 자안이 설핏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대신관님께서 절 이리 미워하셔도‚ 아는 사람을 만난 것 자체가 제겐 위안이네요. 긴 복도를 걷는 동안 저 너무 무서웠거든요.”
“…….”
“그러니 제발 나가지 말아 주세요. 얌전히 떨어져 있을게요.”
정체를 모르는 자에게 감금당한 상황이라면‚ 누구라도 평정을 유지하기 힘들 것이다.
인간이 몰릴 대로 몰려서 신에게 의탁하는 건 결코 부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그게 아무리 에보트가의 망나니 외동딸이라고 할지라도.
“알겠습니다. 제가 좀 오해를 했던 모양이군요.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세바스찬이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시스템: 합당한 사유로 인해‚ 캐릭터 붕괴 지수가 대폭 하락합니다.]
세라는 이 틈에 아예 쐐기를 박기로 했다.
“저어… 대신관님.”
“말씀하십시오.”
“아무래도 제가 너무 엉망으로 살아서 천벌을 받는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이라도 신께 용서를 구하고 싶어요.”
“천벌이요?”
“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면 기도라는 걸 하고 싶은데. 여기서 대신관님을 만나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무슨 뜻입니까?”
“…그‚ 그게. 어릴 때는 기도를 했던 것 같은데‚ 하도 오래 안 하다 보니 하는 방법을 잊어서요. 괜찮다면 좀 알려 주실 수 있을까요?”
세라가 조심스럽게 묻자 세바스찬이 얼떨떨한 얼굴로 답했다.
“기도에 형식이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간절한 마음으로 신께 의탁하면 되는 것이지요.”
“신께서 저처럼 죄가 많은 사람도 받아 주실까요?”
“그럼요. 그분의 은혜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세바스찬이 누그러진 얼굴로 답하자‚ 세라는 조금 자신이 붙었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그녀가 속눈썹을 파르르 떨며 내리깔았다.
“저는 방금까지도 큰 죄를 저질렀는걸요.”
너무 혼신을 다해 가련한 척을 해서일까. 기분 탓인지 가슴이 저릿하게 아픈 느낌이었다.
“…….”
세바스찬은 아직도 믿기지 않는지 그녀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대신관님.”
“네. 말씀하십시오‚ 에보트 영애.”
“대신관님께 고해하면 조금이라도 제 죄를 씻을 수 있을까요?”
“고해 말입니까?”
“…제발 저 좀 도와주세요. 여기 너무 무섭고. 누가 저를 어떻게 하려는 건지도 모르겠고.”
세라가 와락 웅크리며 눈물 연기를 시전했다.
“제가 마치 무언가에 씐 것도 같아요. 흑‚ 흐으. 흑.”
마침 면사포도 있겠다. 어깨를 바들바들 떨며 흐느껴 보았다. 코끝에 힘을 빡 주는데도 눈물은 나오지 않고 눈알만 빠질 것 같았다.
‘감정이 메말라서 안 되겠다. 아까 그 아이템을 써 보자.’
세라는 망설임 없이 아이템 ‘연기의 여왕’을 사용했다.
효과는 굉장했다! 아무리 짜내도 나오지 않던 눈물이 퐁퐁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녀가 자신감 있게 엉망으로 젖은 얼굴을 들어 올렸다.
“…….”
세바스찬은 제 앞에서 바들대고 있는 그녀를 찬찬히 살폈다.
분명 그녀는 작고 하찮은 소동물처럼 연약해 보였다. 물론 그건 신전에서 자숙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까 이 겉모습에 속아서는 안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저 순진한 얼굴로 천방지축 패악질을 부리고 다니는 통에‚ 늘 골머리를 앓았던 것이 떠올랐다.
“물론 신전에서의 제 행실 때문에 고생이 많으셨다는 걸 알아요.”
세라는 그의 심정을 알아주기라도 하듯‚ 자신의 과거를 인정했다.
“영애.”
“…하지만 저 많이 후회하고 있어요.”
근데 오늘은 뭐랄까. 분위기가 좀 묘하게 달랐다. 차림새가 훨씬 얌전해졌고 늘 들끓던 눈빛도 잔뜩 풀이 죽어 있었다.
무서운 게 없는 여자인 줄 알았는데 정말 겁이라도 먹은 모양이지.
그가 옅은 한숨을 쉬더니 그녀의 옆자리에 앉았다.
“미안합니다. 사실 영애가 절 이곳에 가둔 건가 의심했습니다.”
“제‚ 제가요?”
“네. 아무래도 신전에서 엄하게 책망한 일로 앙심을 품으신 건가 싶어서요.”
“아뇨. 그때 일은 제가 철이 없었어요. 꾸짖어 주셔서 뒤늦게라도 반성할 수 있었답니다.”
그녀가 최선을 다해 변명하는 모습을 보고는‚ 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제가 살펴보니 위아래층 모두 결계로 막혀 있었습니다만. 영애는 어디 계셨습니까?”
뭐‚ 세바스찬의 입장에서는 궁금할 만도 했다. 그냥 흐지부지하게 넘어가지는 않을 모양이었다.
눈빛을 보니 거의 다 넘어왔는데 뭐라고 말해야 확실히 속일 수 있을지 생각하느라 머리가 지끈거렸다.
아‚ 어떻게 둘러대지. 사실대로 이야기할까?
그래. 결계니 뭐니 그런 타령 했으니까. 그런 초현실적인 힘에 당한 척을 해 보자.
실제로도 시스템의 횡포에 이리저리 끌려다닌 건 맞으니까.
세라가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믿지 않으실지도 모르겠지만. 제가 기절했다가 눈을 뜨니 연속으로 다른 곳에 있었어요.”
“여러 번 기절했단 말입니까?”
“네. 5층에도 있었고‚ 4층과 3층에도 있었어요. 이번에는 눈을 떠 보니 어두 컴컴한 복도였어요. 빛이 새어 나와서 보니 이곳이었고요.”
“…그랬군요.”
세바스찬이 골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강한 결계가 저택 전체를 휘감고 있는 것 같습니다.”
“대신관님은 그걸 성력으로 느낄 수 있으신 건가요?”
“네. 그렇다고 볼 수 있지요.”
“정말 대단하세요.”
그녀가 솔직하게 감탄하자‚ 세바스찬의 얼굴이 조금 상기되었다.
“혹시 영애와 저 말고 갇힌 사람이 더 있습니까?”
“그‚ 그게‚ 세르반테스 공작님과 에단‚ 그‚ 그러니까 디아즈 경이요.”
“저‚ 영애‚ 그리고 그 두 분. 총 네 명이 이곳에 갇힌 거군요.”
그가 한참을 생각에 골몰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푹 숙인 세라를 보고 큼큼 목청을 가다듬었다.
“아까 말씀하신 거 말입니다.”
“네?”
“고해하십시오.”
세라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자신의 죄를 고백했다.
“저 잤어요.”
“…네?”
“그 두 남자랑요.”
“…….”
그녀의 폭탄선언에 세바스찬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아무리 그래도 그런 류의 이야기를 고해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겠지.
“대신관님?”
그런 꼴사나운 소리를 하고서도 아무렇지 않게‚ 말간 얼굴로 대답을 보챘다.
“혹시 못 들으셨으면 다시 말씀드릴까요?”
그녀가 난처해하며 눈을 처연하게 치켜떴다.
“안 들어도 될 것 같습니다.”
“…왜요. 제가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큰 죄를 저질러서요?”
“아‚ 아니 그게 아니라…….”
“흑‚ 흐으.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그만…….”
세라가 얼굴을 감싸 쥐고 흐느꼈다.
두 남자랑 잤다니. 이게 무슨 상황이지. 그는 아직 상황 파악이 덜 되어서 혼란스러웠다.
신전에서 자숙할 때‚ 반성문으로 외설스러운 노래 가사를 써서 냈던 것과 같은 장난인가?
아니‚ 그때와는 눈빛이 다르다.
그땐 뭔가 해냈다는 눈빛이었는데 지금은 덜덜 떨며 울고 있지 않나.
단순한 치정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개수작이라고 여기는 것은 편견일 수도 있었다.
“미안합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듣는 게 처음이라 좀 당황한 모양입니다.”
“…흐윽‚ 대신관님께서 이렇게 당황하시는 걸 보니 흑‚ 흐으‚ 신께서도 절 용서하지 않으실 거 같아요.”
“아닙니다. 저‚ 저는 그저…….”
“저 지옥 불에 떨어지는 걸까요……?”
그녀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지. 아주 극단적인 이야기까지 하고 있었다.
‘많이 놀란 건가.’
세바스찬은 끅끅거리는 그녀를 난처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간음하고 아무런 가책도 없이 자기 위로 차원에서 고해하는 귀부인들도 많은데.
저렇게 벌벌 떠는 것을 보니 정말 겁을 먹은 것 같았다.
“아‚ 아니. 들을게요. 그러니까 좀 진정하시고. 알아듣게 설명해 주십시오.”
“정말로 들어 주시는 건가요?”
세라가 그렁그렁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물론이지요. 그게 저의 일인 것을요.”
“휴‚ 다행이다. 감사합니다‚ 대신관님.”
그녀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듣기엔 거북한 말이었지만 그렇게까지 심각한 문제라니 들어야 했다.
“일단 영애가 자‚ 잤다는 건 서‚ 성교를 말하는 겁니까?”
“네. 한 번에 둘은 아니고 각각 따로따로요.”
그녀가 묻지도 않은 걸 자세히도 말하는 바람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두 남자는 정확히 세르반테스 공작과 디아즈 경을 말하는 것이고요?”
“네에…….”
망측한 짓을 저지르고도 세라는 뭐가 그리 부끄러운지 안절부절못하며 눈을 내리깔았다.
세바스찬이 두 남자의 정체를 다시 확인한 이유는 믿기지 않아서였다.
세르반테스 공작은 그녀에게 늘 파혼을 요구할 정도로 치를 떨었고‚ 기사단장은 그녀가 그렇게 미워하는 디아즈 영애의 오빠인데.
뜬금없이 그 두 사람과 잤다고? 남녀 사이란 알 수 없다지만. 그렇게 원수 같던 사이가 급반전될 수도 있는 걸까?
뜻밖의 전개에 세바스찬은 뭐가 뭔지 몰라 혼란스러웠다.
“에보트 영애.”
“네. 대신관님.”
“이런 말 외람되지만‚ 그분들과 사이가 별로 안 좋지 않으셨습니까?”
“뭐‚ 그랬었죠.”
“그런데 어떻게 그런…….”
“저도 잘 모르겠어요. 다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녀가 밤색 머리칼을 배배 꼬며 우물쭈물 말을 흐렸다. 세바스찬은 그녀를 말없이 응시했다.
발그레하게 상기된 뺨과 달싹거리는 입술. 투명할 정도로 하얀 목덜미와 가늘게 떨고 있는 손끝.
몸을 다 감싸는 얌전한 옷을 입었지만‚ 풍만한 가슴과 골반에서 나오는 여체의 굴곡은 숨길 수가 없었다.
확실히 세라 에보트는 눈부신 미인이었고‚ 가만히 있어도 남자의 눈길을 끄는 구석이 있었다.
패악질을 부리지 않았다면‚ 사이가 안 좋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정작 이 고해 성사를 듣고 있는 자신도 얌전해진 그녀를 보며 조금 누그러지지 않았나.
세바스찬은 어쩌다 보니 망측한 생각을 한 것 같아 목덜미를 박박 긁었다.
“일단 어쩌다 그런 겁니까?”
“그게‚ 저도 좀 이상한데요. 기절했다가 정신을 차려 보면 남자 한 명과 같은 방에 갇혀 있었어요.”
“단둘이 말입니까?”
“네. 몇 마디 나누다 보니 어느 순간 몸이 달아올라서…….”
세라는 이야기를 이어 가다 힐끔 그의 낯빛을 살폈다. 그는 여전히 미심쩍은 얼굴이었다.
너무 개연성이 부족했나. 그렇다고 남자를 정복해야 다음 층으로 내려갈 수 있다고 말할 수도 없고.
이럴 때는 이성적인 판단이 힘들도록 당황하게 만들고‚ 몰아붙여야 했다.
‘그래. 일단 그냥 또 울자.’
연기의 여왕을 쓴 덕분일까. 그렇게 마음먹은 순간 수도꼭지를 튼 것처럼 눈물이 퐁퐁 났다.
“흑‚ 흐응‚ 단둘이 갇혔다고 성교해 버리다니. 이런 제가 너무 쓰레기 같아요. 대신관님 눈에도 그렇게 보이시죠?”
“네? 아‚ 아니 저는 아무것도…….”
세라가 일부러 끅끅거리며 요란스럽게 흐느껴 댔다.
그는 눈앞이 핑핑 도는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연신 세라의 안색을 살폈다.
“아무래도 제 안에 끅‚ 음욕에 미친 악령이 있는 것 같아요. 흐윽.”
‘악령’이라는 단어에 세바스찬의 동공이 커졌다. 세라는 그의 눈빛에 생긴 미세한 균열을 포착했다.
‘둘러대려고 아무 말이나 뱉었는데. 이거 생각보다 괜찮은 핑계잖아?’
대신관은 악령이 들린 사람을 치유하고 구제하는 일도 한다고 들었다.
악령 핑계를 대면 머리 터지게 개연성을 설명할 필요가 사라지고‚ 치유를 부탁하는 김에 스킨십도 할 수 있고. 여러모로 유용할 것 같았다.
“정말로 제 안에 악령이 있는 걸까요‚ 대신관님?”
세라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심증만으로는 판단이 어렵습니다. 그냥 그런 걸 좋아하는 것과 구분이 힘들 수도…….”
“제가 성교에 미쳤다는 말씀이세요?”
“아‚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악령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는데요?”
세바스찬은 묘하게 ‘악령’에 집착하는 그녀가 당황스럽기만 했다.
악령이라니 뜬금없이 무슨. 참 엉뚱한 구석이 있구나 싶다가도 생각할수록 기묘하게 납득 가는 구석이 있었다.
그녀의 혀를 내두를 만한 패악질과 급속도로 난잡해진 사생활.
그리고 그런 걸 견딜 수 없다는 듯 가련한 얼굴로 도움을 구하는 것까지.
악령에 들린 것이라고 가정하면‚ 모든 게 설명이 가능하기도 했다.
“일단‚ 그때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좀 알려 주십시오. 어떻게 하다가 성교에 이르게 되었는지.”
“구체적으로요?”
“네. 악령에 들린 자들에게는 일정한 특징이 있습니다. 최대한 상기해서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얘기만 들어도 아실 수 있나요?”
“최종적인 확인이 필요하겠지만 그에 앞서‚ 우선 영애의 몸에 들어 있는 것이 ‘악령’인지‚ 아니면 그저 욕정인지 판단하기 위함입니다.”
세바스찬의 눈빛이 제법 진지했다.
악령에 들린 자들의 특징 같은 건 전혀 모르지만.
그를 꼴리게 할 작정이었기 때문에‚ 자신이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자세히 설명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세르반테스 공작님과는 이제 정말 파혼하려고 했거든요. 근데 막상 이별을 통보하고 나니까‚ 갑자기 저도 모르게 다리 사이가 뜨거워져서…….”
“…….”
“그냥 파혼하는 기념으로 딱 한 번만 자자고 말씀드렸어요. 그랬더니 의외로 순순히 수긍하시고는‚ 그걸 일단 세워 보라고 하셔서…….”
세라는 일부러 난처한 듯 횡설수설하며 말끝을 흐렸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절대로 무고하며 악령에 잡아먹혔을 뿐인 가련한 여인’ 컨셉에 충실하게 임하기로 했다.
세바스찬이 마른침을 꼴깍 삼키며 물었다.
“뭘 말입니까?”
“그분의…….”
“네?”
“좆이요.”
“…….”
세바스찬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마치 혼이 나간 사람처럼 얼어붙어 있었다.
“대신관님‚ 듣고 계신 거 맞으시죠?”
“네‚ 넵.”
“당황스러우시겠지만 저도 어렵사리 꺼내는 이야기이니 집중 부탁드릴게요.”
“죄송합니다.”
근엄한 척하더니. ‘좆’이라는 단어 하나에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을 보니 천상 ‘동정 연하남’이었다.
“일단 입을 맞출까 여쭤보았는데 싫다고 하셔서요.”
“아‚ 네.”
“그래서 이렇게.”
세라가 그의 앞에 가지런히 무릎을 모으고 앉았다. 바지춤에 손을 대려고 하자‚ 그가 화들짝 놀라 손을 떼어 냈다.
“뭐‚ 뭐 하시는 겁니까?”
“가능한 한 구체적으로 설명하라고 하셔서요. 말로 설명하자니 좀 어려워서.”
“…….”
세바스찬의 목울대가 길게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실례를 끼쳤다면 죄송해요.”
그녀가 속눈썹을 내리깔고 어깨를 움츠렸다. 서러운 척해 볼까 생각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눈물이 차올랐다.
“제가 미안합니다. 다짜고짜 바지에 손을 대시니 당황스러워서.”
“흑‚ 흐윽‚ 흐으‚ 제가 나빴어요.”
“일단 최대한 말씀으로 해 보시면 안 되겠습니까? 울지 마시고요.”
“히끅. 네에.”
철벽은. 말로 해도 바들바들 떨어 대긴 마찬가지면서. 대체 뭐가 다르다는 건지.
세라는 속에서 천불이 나는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그래도 순결한 사제를 따먹기 위해‚ 이 정도 달래고 어르는 것은 감수할 수 있었다.
“제가 바지를 벗기려고 하니까 잘 안 풀려서‚ 공작님께서 친히 꺼내 주셨어요.”
“그‚ 그랬군요.”
“네. 너무 예쁘게 생겼더라고요. 그래서 일단 거기 위에 입을 맞추는데…….”
세라가 설명을 하려다가 말이 잘 안 나오는지 한숨을 푹 쉬었다.
“대신관님.”
“네‚ 영애.”
“아무래도 대신관님의 바지를 벗기는 건 좀 실례인 것 같고. 손이라도 잠깐 빌려주시는 건 어려우실까요?”
“소‚ 손 말입니까?”
“네. 중요한 대목인데. 어떻게 입을 맞췄는지 말로 설명이 안 되어서요.”
그녀는 정말 난처해 보였다. 확실히 바지를 벗는 것은 절대 안 될 일이었지만‚ 손은 음란한 부위가 아니니까 괜찮을 것도 같았다.
“잠깐이면 됩니까?”
“네. 어차피 어떻게 하다가 성교에 이르렀는지까지만 보여 드리면 되니까요.”
“…알겠습니다.”
세바스찬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세라는 그의 손을 끌어 제 앞에 가져왔다. 손끝에 미세한 떨림이 느껴졌다.
참으로 길고 하얀 손이었다. 왠지 수음도 한 번 안 해 봤을 것처럼. 그녀가 난잡한 행동을 보여 주기 미안할 정도로 고결해 보였다.
“그러니까 이 손가락이 좆이라고 치면요.”
“…….”
“이렇게.”
세라가 그의 손끝에 촉‚ 입을 맞추며 눈을 올려 떴다. 그리고 그의 보라색 눈동자를 꿰뚫듯이 주시했다.
그가 입이 마르는지 입술을 축이고‚ 연신 마른침을 삼키는 것이 보였다.
그녀가 옅게 웃으며 불그스름한 혀를 꺼내 그의 검지를 날름 핥았다.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그의 동공이 커지는 걸 보고는 입술에 물고 쭙‚ 소리를 내며 빨기 시작했다.
“그‚ 그랬군요. 잘 알았습니다.”
소리에 놀란 세바스찬이 급히 손을 거두었다.
“이 정도로 괜찮으실까요?”
“네. 영애가 세르반테스 공작의 성기를… 입으로 애무하셨다는 건 알겠습니다. 그다음에 바로 그렇게 된 겁니까?”
“아니요. 턱짓하면서 올라가라고 하셨어요.”
“침대에 말입니까?”
“테이블 위로요.”
“테이블이요?”
“네. 배꼽 밑까지 빳빳하게 서서는 좀 급하셨거든요.”
망측한 이야기였다. 침대까지 갈 여유가 없을 정도로 흥분했던 걸까. 세바스찬은 정신이 혼미해짐을 느꼈다.
“그러니까 이걸 테이블이라고 치면‚ 제가 이렇게 누워서.”
그가 멍하게 있는 사이‚ 세라가 다시 예배실의 긴 의자 위에 올라가 누웠다. 세바스찬은 그녀의 기행에 뻣뻣하게 얼어붙어 버렸다.
“…다리를 벌렸어요.”
설마. 속옷을 안 입은 건가?
언뜻 충격적인 걸 본 것 같았는데.
그는 얼굴이 확 달아올라 그가 제대로 본 건지 확인할 수가 없었다.
“그‚ 그래서 하게 된 겁니까?”
“아뇨. 이렇게 치맛자락 들추고‚ 다리를 더 넓게 벌리고.”
그녀가 자신이 말한 대로 가랑이를 활짝 벌리며 치맛자락을 걷어 올렸다.
“이곳을 정성스럽게 핥아 주셨어요.”
세라가 제 손가락으로 살덩이를 벌리며 붉게 충혈된 음부를 드러나게 했다.
석류알처럼 부푼 클리토리스와 새빨간 속살을 보이는 질구가 보였다. 말하면서 젖은 건지‚ 이미 흘린 애액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대신관님‚ 꼼꼼히 봐 주셔요.”
자기도 모르게 음부에 시선을 고정해 버린 세바스찬이 그녀의 재촉에 참던 숨을 터뜨렸다.
“소‚ 속옷은 왜 안 입으신 겁니까?”
“어쩔 수 없었어요. 디아즈 경이 수음할 때 쓰겠다고 가져가 버렸거든요. 그 이야기도 해 드릴까요?”
“괘‚ 괜찮습니다. 이만하면 충분히 들은 것 같습니다.”
“제 아랫도리에 악령이 든 것이 맞지요?”
세라가 말간 얼굴로 추궁하듯 물어 왔다.
음부를 활짝 벌린 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음욕에 가득 찬 악령이 들렸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행동이었다.
“강력한 의심이 가기는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잘 모르겠습니다.”
“악령이 아니라면 왜 저는 대신관님의 고결한 얼굴을 보고도 이렇게…….”
그녀가 손끝으로 축축하게 젖은 음부를 훑었다. 손가락에 끈적한 액이 묻어 길게 늘어졌다.
“…아래가 젖는 걸까요?”
집요하게 응시해 오는 눈빛에 세바스찬은 아랫도리에 뻣뻣하게 피가 몰리는 것을 느꼈다.
“에보트 영애‚ 좀 흥분하신 것 같으니 일단 진정을…….”
“저 흐윽‚ 여기가 너무 뜨거워요. 어떻게 좀‚ 흑‚ 흐으‚ 해 주세요.”
세라가 일부러 흐느끼며 손으로 음부를 문질렀다. 양껏 젖은 밀부에서 찔꺽찔꺽 묵직한 물소리가 났다.
“대신관님 앞에서 못 견디고 가랑이를 비비고 있다니. 흐응‚ 너무 수치스러워요.”
수치스럽다면서 손가락으로 음핵을 꼬집고‚ 끙끙거리며 엉덩이를 비틀어 댔다.
한 손으로는 자꾸만 터져 나오려고 하는 신음을 막으며 눈물을 줄줄 흘렸다.
“제발 악령을 쫓아 주세요. 계속 이렇게 부끄럽고 치욕스럽게 사느니. 차라리 혀를 깨물겠어요. 흐읍!”
“…아‚ 알겠습니다.”
급기야 혀를 깨무는 시늉을 하자‚ 그가 혼비백산하며 세라를 추슬러 일으켰다.
“영애에게 구마 의식을 진행할 테니 조금만 참아 주십시오.”
구마 의식은 무슨.
다리 사이에 들린 음욕의 악령을 쫓으려다 보면‚ 그도 자연스럽게 제 것을 쑤셔 박고 싶어질 것이다.
이로써 대신관의 철벽이 한 겹 무너져 내렸다는 소리였다.
힐끔‚ 터질 듯이 부푼 그의 앞섶을 훔쳐보곤 안심하며 그의 얼굴을 보는데.
기분 탓일까? 세바스찬의 입술이 미세하게 뒤틀리는 것 같았다.
***
그들은 아까 세라가 들렀던 ‘정화의 방’으로 돌아왔다. 아무래도 익숙해 보이는 걸 보니 세바스찬이 머무는 방 같았다.
“탈의하십시오.”
부끄러워 눈도 못 마주치던 아까와는 달리‚ 그는 제법 사무적인 어조로 명령했다.
생각보다 훅 들어오네? 예상하지 못한 급 전개에 세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성력을 효과적으로 흘리기 위함이니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십시오.”
그가 사전에 이유를 설명하며 세라 안의 음심을 원천 차단했다.
“탈의요? 다요?”
철벽을 쳐도 굴할 리 없었다. 옷만 벗어도 기함을 할 줄 알았는데. 아예 벗으라니 이게 웬 떡이냐. 그녀가 자꾸만 들썩대는 입꼬리를 억지로 붙잡고 눈을 빛내며 물었다.
“네글리제는 입으셔도 됩니다.”
“벗어도 되나요?”
“안 됩니다. 입으세요.”
“…네에.”
바늘구멍 하나 안 들어가는 단호한 태도에 그녀가 시무룩하게 답했다.
“저기‚ 대신관님.”
“네.”
“뒤에 단추 좀 풀어 주실래요?”
“…….”
“무서운 눈으로 보지 마세요. 혼자 못 해서 그런 거라고요.”
물론 거짓말이었다. 입을 때도 어찌 혼자 입었으니 낑낑대면 벗을 수 있을 테지만. 매사 경건하기 짝이 없는 그를 자극하기 위해 부탁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알았습니다.”
그가 등 뒤에 다가오자‚ 그녀는 베일을 벗고 늘어뜨렸던 머리카락을 손으로 틀어 올렸다.
목까지 올라오는 드레스인 줄 알았는데. 단추가 덜 잠긴 뽀얀 목덜미가 드러났다.
예상치 못한 모습에 그가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위쪽은 왜 안 잠겨 있는 겁니까?”
“목이 졸리는 것 같아서 안 잠갔어요. 원래 이렇게 요조숙녀 같은 드레스는 잘 안 입거든요. 오늘은 속죄해 보려고 입은 거고요.”
대충 그럴듯하게 둘러대자‚ 목덜미 위로 픽‚ 헛웃음이 흩어졌다.
“왜요?”
“죄송합니다. 참 에보트 영애답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착하게 살겠다는데 놀리시는 거예요? 좀 의욕이 꺾이네요.”
“아닙니다. 단추가 이렇게 많으니 목이 졸릴 만도 하네요.”
그가 기다란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단추를 풀었다. 상체를 옥죄고 있던 단추를 다 풀어 내리자 그녀가 후‚ 긴 숨을 내쉬었다.
“감사해요.”
드레스를 벗어 내고는 싱긋 웃으며 가볍게 목례를 했다.
“아닙니다. 우선 침대에 누우시겠습니까?”
“네.”
세라가 고분고분하게 침대 위로 올라가 누웠다.
이제 하는 건가?
그가 손목을 위로 결박하며 잡아먹듯 올라타자‚ 세라는 기대에 부푼 얼굴을 들키지 않기 위해 눈을 질끈 감았다.
그때‚ 손목에 느껴지는 욱신거리는 감각에 설마설마하며 위를 쳐다봤는데‚ 역시나 묶여 있었다.
“왜 묶으시는 거예요?”
“악령에 잡아먹혀 제게 달려드실까 봐서요.”
“…아‚ 네.”
물론 그럴 건 맞았지만 더럽고 치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전벨트야‚ 뭐야.’
하긴‚ 겁먹을 만하네. 세라는 이미 단단히 기립한 그의 다리 사이를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저놈의 좆이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열쇠만 아니면 안 박을 텐데. 자존심 상했지만 어쩌겠나.
어차피 지금 아쉬운 사람은 다름 아닌 세라였다. 그녀는 억울함을 꾹 참고 순순히 손목을 묶였다.
침대 헤드에 긴 천을 연결해서 따로따로 묶이고 나니‚ 악령을 퇴치하는 장면이 나왔던 공포 영화가 떠올랐다. 악령 들린 소녀가 계단을 거꾸로 내려오는 장면으로 유명한 그 영화.
얼마나 단단히 묶었는지 벌써부터 손목이 욱신거리고 쥐가 나는 것 같았다.
“저‚ 조금만 살살 묶어 주실 순 없으실까요. 약간은 움직일 수 있게요.”
“안 됩니다.”
“피가 안 통하는 것 같아서요.”
“안 됩니다.”
“네.”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처럼 단호했다.
그가 세라의 등허리를 들어 올리고‚ 뒤에 쿠션을 받쳐 주었다. 덕분에 세라는 양 손목을 묶인 채 헤드에 기대 누운 모양이 되었다.
“의식이 조금 아프거나 힘들 수 있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뭐‚ 이 게임에서 섹스가 힘든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세라는 별걱정을 다 한다 싶어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상관없어요. 치유만 제대로 된다면요.”
“너무 아프면 말씀하십시오.”
“네.”
그래. 성직자를 정복하기 위해서는 이 정도 고난의 행군은 감당해야 하는 거겠지.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어쩔 도리도 없었다. 이제 와 구마 의식을 거절하는 것도 우스울 테니까.
그때 얼굴에 물벼락이 쏟아져서 시야가 새카매졌다.
“악!”
세라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버둥거렸다.
“쉬이. 괜찮습니다. 성수입니다.”
어푸어푸하며 고개를 휘젓자 그가 상냥하게 달래며 머리를 쓸어 넘겨 주었다.
‘괜찮긴‚ 뿌리는 너나 괜찮겠지!’
따져 대고 싶은 걸 꾹 참는데 또 한 번 성수 세례가 쏟아졌다.
얼굴에‚ 가슴에 아니 온몸을 푹 적실 정도로. 급기야는 대야째 성수를 들이부었다.
침대 위에 꼼짝없이 묶인 세라는 성수를 흠뻑 뒤집어쓰고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었다.
“아흐으…….”
“미안합니다. 다 됐습니다.”
그녀가 함빡 젖은 채 바르르 떨어 댔다. 그는 뭐가 그리 흡족한지 옅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남은 추워 죽겠는데 좋냐!’
그녀는 절로 달달 떨리는 아래턱을 억지로 붙잡으며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아‚ 괜히 악령 컨셉을 잡았나. 쉽게 납득시킨 것까진 좋았는데. 구마를 핑계로 진하게 구를 것을 생각하니 막막하기 그지없었다.
물방울이 흘러내려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보다 못하겠는지 그가 그녀의 얼굴을 감싸고 엄지로 눈가를 닦아 주었다.
시야가 다시 맑아지자 몸 위에서 자신을 오만하게 내려다보는 세바스찬이 보였다.
이런 자극적인 행동마저 그저 업무의 일환이라 여기는 걸까. 흠뻑 젖어 윤곽이 그대로 드러난 그녀의 몸을 찬찬히 응시하면서도 정욕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단정한 눈빛이었다.
“그럼 몸이 놀랄 수 있으니‚ 심장에서 먼 곳부터 성력을 흘려드리겠습니다.”
“네?”
“입 벌려요.”
뭐라 답하기도 전에 그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 위에 말캉하게 포개어졌다.
그의 명령에 그녀가 홀린 듯이 입술을 벌리자 눅진한 혀가 기다렸다는 듯이 잇새를 밀고 들어왔다.
기묘한 감각이었다. 성력이라는 게 이런 느낌일까? 입 안에 상쾌한 감각이 스미고 해갈되는 느낌이었다.
파고들 때만 조금 거칠었지‚ 잇새를 열고 나서는 제법 부드럽고 상냥한 키스였다. 말캉한 혀가 입 안에 닿지 않은 곳이 없도록 샅샅이 훑으며 달래듯 보듬었다.
더운 숨이 퍼지자‚ 놀라서 덜덜 떨던 그녀의 입술이 서서히 진동을 멈추었다. 호흡이 안정된 것을 느낀 세바스찬이 천천히 입술을 떼어 냈다.
그녀의 입가에서 몽롱한 한숨이 흩어졌다. 우유처럼 뽀얀 두 뺨 또한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세라는 아까부터 제 다리 사이를 툭툭 찔러 대던 묵직한 것의 정체를 발견했다.
아무리 고매한 성직자라 한들. 신체적 반응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세라가 슬며시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섰어요‚ 대신관님.”
“그런 것만 보시는 걸 보니 악령이 확실하군요.”
“아니. 그걸로 절 자꾸 찌르셨으니까요.”
“인간의 나약한 육신이기에 생리적으로 반응할 뿐‚ 아무런 감응도 없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 네. 감응 없이도 참 터질 것 같네요.”
“못된 말을 입에 담으시는 걸 보니 한 번 더 흘려야겠습니다.”
그가 다시 한번 숨결을 겹쳐 왔다. 축축하게 젖은 음부 위로 터질 듯한 그의 앞섶이 아슬아슬하게 문질러졌다. 그럴수록 세라는 애가 타서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위쪽도 사정이 곤란하긴 마찬가지였다. 젖은 섬유가 달라붙어 뽀얀 속살이 드러나는 가운데‚ 단단한 상체에 눌리고 뭉개졌다.
그냥 바지를 내리고 바로 박아 줘도 좋을 것 같은데. 정결한 사제복 차림으로 저를 깔아뭉개며 키스하는 상황이라니. 그것도 앞섶을 터질 듯이 세운 채로.
별다른 애무를 하지 않고 입만 맞출 뿐인데도 배덕감에 다리 사이가 엉망으로 젖어 들었다.
세라도 입술 점막을 문대며 적극적으로 혀를 얽었다. 어차피 손도 묶였겠다‚ 움직일 수 있는 건 자꾸만 오므라드는 발끝과 그의 입에 물린 혓바닥뿐이었으니까.
그녀가 무릎으로 그의 골반을 조이며 엉덩이를 들어 음부를 문질러 댔다.
“대신관님‚ 이렇게 피가 몰렸는데 안 아프세요?”
키스를 멈추자‚ 그녀가 기다렸다는 듯이 못된 말을 내뱉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제 안에 넣고 흔들면 괜찮아져요.”
“다른 데에 신경 쓰지 마시고 영애의 문제에 집중하십시오.”
“왜 성력을 흘려주셨는데도 저는 이렇게 저급한 생각만 들까요. 구제 불능인가 봐요.”
“아마도 몸이 성력에 적응하기 전에 나타나는 명현 현상인 것 같습니다. 곧 괜찮아질 테니 조금만 참으십시오.”
그가 흘려주는 성력은 시원하고 나른해서 성욕을 돋울 뿐‚ 진정하는 것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았다.
“가슴이 답답해요‚ 대신관님.”
“가슴이 말입니까?”
아직 아래는 부담스럽다면 다른 곳으로 시선을 끄는 수밖에는 없었다.
‘이 방법으로 에단도 낚았지.’
세라는 일부러 그의 시선을 가슴으로 집중시켰다. 스스로 봐도 예쁘고 야한 가슴이었으니까.
술수가 통했는지. 세바스찬이 그녀의 젖가슴을 뚫어지게 내려다보았다.
흠뻑 젖어서일까. 아까부터 물기 가득한 푸딩처럼 달라붙어 오던 살덩이의 모양이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누워서 모양이 한껏 흐트러진 젖가슴에 발갛게 부푼 유두가 꼿꼿하게 심지를 세우고 있는 모습은 지독히도 색정적이었다.
“뭘 그렇게 빤히 보세요?”
세라는 시선이 어디에 닿는지 잘 알고 있었지만‚ 일부러 모른 척 말갛게 물었다.
“신이 어찌 이런 걸 빚으셨나 싶어서요.”
그가 그녀의 네글리제 자락을 끌어 올렸다. 젖은 섬유가 살갗에 달라붙는 감각에 그녀는 눈을 질끈 내리감았다. 이내 옷자락을 쇄골까지 끌어 올린 그가 축축하게 젖은 나신을 천천히 감상했다.
눈부실 정도로 하얀 몸이었다. 뻔뻔한 말투와 달리 잔잔한 물기를 머금은 살갗이 조금 추운 건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가 홀린 듯이 손을 뻗어 그녀의 젖가슴을 숭배하듯 어루만졌다.
세라는 가슴을 빠듯하게 감싸 오는 그의 손길을 느끼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너무 아름다운 피조물이라 악령이 질투했나 봅니다.”
“흐응.”
“겨우 손만 닿았을 뿐인데 이렇게 음탕한 소리를 내다니. 삿된 것에 단단히 현혹되신 것이 분명합니다.”
“흣‚ 하‚ 하지만 제 젖가슴에 대신관님의 고결한 손길이 닿으니까‚ 아랫배가 간지럽고 기분이 이상한걸요.”
그녀가 속눈썹을 파르르 떨며 발간 얼굴로 올려다보았다.
“안 되겠습니다.”
“네?”
“이리도 음란한 몸을 지니셨으니. 혼나셔야겠습니다.”
“으읏‚ 흐으…….”
세라는 일부러 들으라는 듯이 흐느끼며 신음했다.
몸이 묶이고 물벼락‚ 아니 성수 세례까지 맞았는데. 더 혼날 게 남았다면‚ 단연코 저 몽둥이 같은 좆으로…….
박히는 상상을 하고 있는데‚ 짝! 그의 커다란 손바닥이 그녀의 하얀 둔부를 철썩 내리쳤다.
“흣!”
아릿한 느낌에 세라는 자기도 모르게 고통스러운 신음을 냈다.
“이래도 야한 소리를 내시는군요.”
“아‚ 아니. 야한 소리가 아니고…….”
찰싹! 또 한 번 엉덩이에 불이 나는 것 같았다.
“아아!”
“신음을 내면 바로 이렇게 응징하도록 하겠습니다.”
찰싹!
“으흡! 흐!”
아파‚ 아프다고!
세라가 터져 나오는 신음을 참으며 입을 앙다물었다.
“안 되겠습니다. 숫자를 세십시오.”
“네?”
“‘네’가 아니라 하나입니다.”
짝! 그가 사정없이 그녀의 둔부를 후려쳤다.
“하으‚ 느…….”
아릿한 통증에 그녀는 숫자를 세다 말고 숨을 몰아쉬며 몸을 옹송그렸다.
“틀리면 처음부터 다시 세야 합니다. 지금부터 정확히 열 대 때리겠습니다.”
아파 죽겠는데 숫자까지 세라니. 아무래도 괴롭히려고 작정을 한 것 같다.
찰싹! 뭔가 잘못되어 가는 것 같다고 생각할 틈도 없이‚ 또 한 번 엉덩이에 얼얼한 통증이 쏟아졌다.
“하‚ 하나!”
세라는 한 대라도 덜 맞는 게 이득이라는 계산에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짝!
“두‚ 둘!”
앞에 맞은 게 몇 대인데. 이제 와 포기하자니 뭔가 오기가 생기기도 해서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열!”
세라는 온 정신력을 동원해서 숫자를 틀리지 않고 맞았다. 엉덩이보다 수치심에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이 더 화끈거렸다.
“착하게 잘 참았습니다.”
그가 동그란 이마에 입을 맞추며 상냥하게 칭찬했다. 실컷 이지러졌던 눈가에서 눈물이 줄줄 흘렀다.
“이런‚ 아팠군요.”
“흑‚ 흐으‚ 아파요. 자‚ 잘못했어요.”
섬세한 손끝이 그녀의 눈물을 훔치자‚ 세라는 한층 더 흐느끼며 용서를 구하기 시작했다.
“발정 난 어린 양은 원래 엄하게 꾸짖는 겁니다.”
“네?”
이게 무슨 궤변인가 싶다가도‚ 젖은 얼굴을 샅샅이 보듬는 손길에 마음이 조금 누그러들었다.
아니‚ 이게 무슨 상황이지.
성수를 맞을 때만 해도 그러려니 했는데. 신음도 못 내고. 엉덩이도 맞아야 하고.
구마 의식이라는 게 이런 걸까. 스스로 불러들인 것 같은 재앙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래. 어차피 해야 하는 거. 체벌 플레이라고 생각하자.
가끔은 함부로 다뤄지고 싶다는 생각은 했었지만‚ 좀처럼 용기를 내기가 힘들었는데.
고아한 대신관님의 체벌이라니. 그냥 역할극도 아니고 실제 상황이라니.
아프긴 하지만 이곳이 아니라면 어디서 경험해 보겠나 생각하니 또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가 그녀의 다리 사이를 길게 훑어 올리고는‚ 손가락 사이에 끈적하게 늘어지는 애액을 보여 주었다.
“엉덩이를 열 대나 맞고도 이렇게 물을 줄줄 흘리다니. 발정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발정 맞는 것 같아요‚ 대신관님.”
세라는 일부러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가련하게 눈을 치켜떴다.
“따라 하십시오. 저는 발정 난 어린 양입니다.”
“저는 발정 난 어린 양입니다.”
그녀가 고분고분하게 답하자‚ 그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걸렸다.
“부디 은총을 내려 이 음탕한 보지를 잠재워 주세요.”
“…….”
갑자기 발언의 수위가 너무 올라간 것 아닌가? 세바스찬‚ 너 이런 캐릭터였어? 세라는 당혹감에 말문이 턱 막혔다.
“다시 숫자 셀까요?”
“부‚ 부디 은총을 내려 이 음탕한 보지를 잠재워 주세요.”
“옳지.”
저 엄숙한 입술에서 저런 말이 나올 줄이야. 이런 건 상상조차 못 했다. 세라는 수치심에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예쁘니까 상을 드리죠.”
그가 상냥한 손길로 세라의 양 젖가슴을 모아 쥐더니 엄지로 유두를 빙글빙글 굴렸다.
“…으응.”
성감인지 성력인지 모를 야릇한 감각이 젖가슴 전체에 퍼졌다.
살살 굴리다가 위로 튕기기도 하고‚ 젖살 안으로 꾸욱 누를 때는 좋아서 발끝이 오그라들었다.
양쪽 유두가 동시에 자극되자 절로 달뜬 숨이 터졌지만‚ 소리를 내면 엉덩이를 맞을 터였다.
애먼 입술만 물어뜯으며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그가 꿰뚫듯이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후우‚ 신음을 참기가 힘드십니까?”
“네. 너무너무 어려워요‚ 대신관님.”
“그럼 이걸 입에 물고 계십시오.”
그가 자꾸만 내려오는 네글리제 자락을 돌돌 말아서 그녀의 입에 물렸다.
덕분에 그녀는 옷자락을 입에 물고 그의 앞에 새하얀 나신을 훤히 내보이게 되었다.
그는 뭐가 그리 좋은지. 앙가슴에 얼굴을 비비적대며 연신 입술로 여린 살결을 흠빨고 잘근잘근 씹어 댔다.
앳된 얼굴로 젖가슴을 탐하는 모습을 보니‚ 전에 없던 모성애가 끓어올랐다. 머리를 끌어안고 젖꼭지를 물리고 싶었다. 허리가 움찔 들리고‚ 동그란 가슴이 절로 들썩거렸다.
생각을 읽은 걸까. 세바스찬은 자신을 내려다보는 젖은 눈을 보고 장난스럽게 웃더니. 춥‚ 입술로 그녀의 유두를 쪽 빨아 당겼다.
“히끅‚ 끅.”
신음을 억지로 참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딸꾹질이 나왔다.
사악하게도 그는 그럴수록 애무에 박차를 가했다. 젖꼭지는 물론 유륜까지 입에 물고 쭙쭙‚ 노골적으로 빠는 소리를 냈다.
양쪽 젖꼭지를 번갈아 가며 맛을 보고는 혀끝에 힘을 주어 핥아 올렸다.
끓어오르는 흥분에 허벅지가 오그라들고 질구가 오물거리며 더운 공기를 삼켰다.
“흐응……!”
그가 다른 쪽 가슴을 세게 움켜쥐며 입술로 유두를 뭉개자‚ 높게 자지러지는 소리가 잇새로 새고 말았다.
그가 그녀의 젖살에 더운 뺨을 댄 채 나른하게 올려다보았다.
그 눈빛에 조금 안심하던 찰나‚ 짝! 허벅다리를 급습하듯 내려치는 바람에 목뒤에 오싹하게 털이 곤두섰다.
“읏!”
세라는 깜짝 놀라 물고 있던 옷자락도 놓치고 말았다.
“…발정 난 어린 양이 잘못했어요.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그가 나무라기 전에 먼저 납작 엎드렸다. 저 느슨하게 풀린 눈이 다시 엄하게 번뜩이기 전에 일단은 비위를 맞추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최대한 반성하는 표정으로 어깨를 웅크렸다.
“잘못했으면 응당 그에 걸맞은 벌을 받아야지요.”
“맞아요. 아무래도 손바닥으로 맞는 걸로는 제가 정신을 못 차리나 봐요.”
적당한 처분을 기다렸다는 듯‚ 세라가 슬그머니 무릎을 끌어 올려 그의 중심을 문질렀다.
“이 험상궂은 몽둥이로 때려 주실 거죠?”
“잘도 천박한 짓을 하는군요.”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닌데. 다 사특한 악령 탓이라고요.”
그가 세라의 무릎을 잡아 눌러서 바깥으로 무너뜨렸다. 연이어 반대쪽 무릎도 잡아 벌리자 발그스름한 음부가 활짝 벌어졌다. 넘치도록 고여 있던 애액이 회음을 타고 느릿하게 흘러내렸다.
“아주 홍수가 났습니다. 가슴 빨아 주니까 좋아서 정신 못 차리겠습니까?”
양 젖꼭지를 꼬집듯이 비틀자 세라가 허리를 바르르 떨었다.
“…아읏!”
“신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음탕한 신음이 아니라 아파서 소리 지른 거라고 항변하고 싶었지만‚ 그는 그럴 틈을 주지 않았다.
“도대체 어디서 이런 난잡한 물이 나오는 겁니까?”
“모르겠어요. 대신관님이 찾아 주세요.”
“여기?”
그가 손끝으로 클리토리스를 비비듯 문질렀다. 지그시 누르고 아래위로 찌걱거리는 통에 아랫배가 저릿하고 자꾸만 허리가 들썩거렸다.
“아뇨. 흣‚ 더 아래요.”
“여기?”
이번에는 손바닥 전체로 겹겹이 주름진 음순을 느른하게 훑어 올렸다. 마찰을 거듭할수록 음부 전체가 불에 덴 것처럼 화끈거렸다. 질구는 자꾸만 뻐끔거리며 걸쭉한 애액을 게워 냈다.
“아니이‚ 더‚ 더 아래라고요.”
“그럼.”
그의 검지가 타고 내려오더니 회음을 꾸욱 누르다 순식간에 질구로 쪽 빨려 들어갔다.
“여깁니까?”
“으응‚ 흐‚ 거기 안쪽이요.”
“고쳐 줄까요?”
“응‚ 흣‚ 고쳐 주세요. 너무 괴로워요.”
“물은 더 깊은 곳에서부터 흐르는 것 같은데.”
그가 더 힘주어 손가락을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녀의 질벽이 삽입을 반기듯 달라붙어 빠듯하게 빨아 삼켰다.
“너무 씹어서 잘리겠습니다. 들어가게 힘 빼십시오.”
귓가에 사악하게 속삭이더니 꽉 다물린 질벽을 벌리고 손가락을 짓쳐 올렸다.
“하앙!”
급습하듯 쑤셔 올린 손가락 때문에 절로 새된 교성이 새어 나왔다.
짝!
그와 동시에 세바스찬이 한 번 더 그녀의 엉덩이를 후려쳤다. 내벽과 외부로 동시에 전해지는 강한 자극으로 눈가에 눈물이 핑 돌았다.
“음탕하게 울지 말라고 여러 번 꾸짖었을 텐데요.”
음탕하게 울지 말라면서. 그는 찰박찰박 질벽 안을 휘저으며 음란한 물소리를 냈다.
“아무래도 더 깊은 곳인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중지까지 합세해서 그녀의 내벽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아으‚ 흐.”
버거운 흥분에 그녀가 허리를 뒤틀거나 말거나‚ 세바스찬은 손끝을 구부리고 빠르게 털듯이 안쪽을 긁어내렸다.
여린 점막이 헤집어지는 느낌에 세라는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연신 파들거렸다. 성력이 흘러들어서일까. 평소보다 빠르게 감각이 곤두서는 것 같았다.
“왜 이렇게 떨어요. 무섭습니까?”
“읏‚ 흐으‚ 대신관님께서 소‚ 손가락으로‚ 흐응.”
“성력이 좋은 겁니까‚ 아니면 내 손가락이 좋은 겁니까.”
그가 귓가에 대고 사악하게 웃었다.
“대답해야죠‚ 세라 에보트.”
“손가락이 흣‚ 더‚ 읏.”
“이렇게 찔러도요?”
그가 점막 깊숙이 들어와 예민한 부분을 뭉개듯 누르고 있자 질 내벽이 욱신거리며 미친 듯이 조여 왔다.
“흐읏!”
“밑구멍으로 탐욕을 부리는 걸 보니 아직 멀었군요. 성물을 사용해야겠습니다.”
성물이라니. 드디어 바지를 풀고 흉흉한 페니스를 꺼내는 건가.
잔뜩 기대감에 부풀어 쳐다보는데‚ 그가 협탁 서랍을 드르륵 열었다. 거기서 꺼낸 것은 굵다란 유리 막대였다.
“…그게 성물인가요.”
아니 성물이라기엔 조금 흉한 모양이었다. 거대한 버섯 같은 게 꼭 모형 성기 같아 보였으니까.
“네. 성력을 잘 전도하는 재질로 되어 있습니다.”
세라가 미심쩍은 눈으로 보거나 말거나. 그는 유리 막대를 조심스럽게 그녀의 음부에 가져다 댔다.
“조금만 참으십시오.”
유리의 표면이 닿으며 느껴지는 차가운 감각에 그녀가 눈가를 와락 찌푸리자 그가 길게 눕혀 온통 애액을 묻혔다.
그녀의 체액으로 흥건해진 성물은 금세 미지근하게 달아올랐다. 모형 성기의 귀두 부분이 음부의 갈라진 부분을 비집고 파고들자‚ 세라는 숨을 흡‚ 멈추었다.
그녀의 통로가 좁고 빠듯한 탓에 귀두 부위만 겨우 쑤셔 넣은 채 틈을 넓히려 이리저리 움직였다.
각고의 노력 끝에 음부가 모형 성기를 반쯤 삼켜 물었다. 세바스찬은 그걸 탐구하듯 학구적인 눈으로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성물마저 한 번에 머금지 못하는 순결한 몸으로 어쩜 그렇게 난잡한 행동을 하는지. 천사의 몸에 악령이 들린 것이 틀림없었다.
가녀린 손으로 바지를 풀어 성기를 꺼내려 했을 때도. 뽀얀 무릎을 지그시 비비며 페니스를 희롱했을 때도.
아찔할 정도의 괴리감에 까딱하면 홀릴 것 같아서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으니까.
본디 악령이란 태생적으로 약한 구석을 파고드는 법이었다. 타고나길 이리도 음란한 몸으로 타고났으니. 천사처럼 깨끗한 얼굴을 하고도 음욕에 몸을 비트는 것이겠지.
얼른 성력으로 그녀 안의 삿된 것들을 모두 긁어내 편안하게 해 주고 싶었다.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배꼽 아래 정염이 고이겠지만‚ 그때 또 빼내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굳게 다물린 내벽이 행위를 쉽게 허락해 주지 않았다.
“더 넣으면 다칠 것 같군요. 기다려 보십시오.”
그가 삽입을 멈춘 채‚ 발기한 음핵을 입술로 머금고 부드럽게 혀를 굴렸다.
참 반응이 착실한 몸이었다. 포도알을 빨아 먹듯 쭙 빨아 보기도 하고‚ 앙다문 입술 새에 끼우고 뭉개자 자지러지게 몸을 떨어 댔다.
손잡이를 잡고 부드럽게 원을 그리듯 구멍을 넓히자 내벽이 움찔거리며 맞물린 모형 성기 사이로 끈적한 애액이 뚝뚝 떨어졌다.
한참을 치대다가 안이 조금 느슨하게 풀어졌다 느낄 때쯤‚ 각도를 조금 세워서 밀어 올리듯 박아 넣었다.
“흐윽!”
순간 창에 꿰인 것처럼 엉덩이가 허공에 들리고 눈가에 뜨끈한 열기가 피어올랐다. 아래턱을 바르르 떨며 눈물을 그렁그렁 매단 채로 쳐다보는데도 그는 그녀를 붙든 채 서서히 추삽질을 하기 시작했다.
버거운 자극에 못 견디겠는지 발끝을 바동거리자 다리를 들어 팔에 걸고 고정했다. 그녀의 엉덩이와 골반이 완전히 쳐들렸다.
“흣‚ 흐으.”
배가 눌려 호흡이 쉽지 않은지‚ 세라는 끙끙거리며 안쪽을 파고드는 성물의 감촉에 집중했다.
정말 성력이 흐르긴 하는 건지‚ 촘촘한 주름을 펼치며 긁어 올릴 때마다 가려움이 해소된 것처럼 시원한 감각이 들었다.
“보지 안쪽까지 깊숙이 긁어 주니 좋습니까?”
“흐윽… 네에.”
그녀가 몽롱하게 답하자‚ 세바스찬도 옅은 미소로 화답했다. 몇 번 신음이 샜는데도 그는 나무라지 않았다.
상냥한 손길에 조금 안심할 때쯤‚ 그가 삽입의 속도를 높이며 왼손으로 그녀의 가슴을 움켜쥐듯 짓눌렀다.
“아흑!”
그녀가 그 무게감이 버거운지 가쁜 숨을 쉬었다. 사나운 손아귀에서 말캉한 젖살이 뭉개지고‚ 살갗 아래로 쿵쿵‚ 심장이 미친 듯이 박동했다.
“밑구멍이 난잡하게도 오물대는군요.”
그가 유리 성기에 딸려 나오는 새빨간 속살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애액으로 범벅이 되어 들쑤실 때마다 끈적하게 유리 기둥에 달라붙는 소음순과 주름이 활짝 펴진 진분홍색 항문까지.
출납에 따라 음문이 다물렸다가 벌어지는 모양새가 지독히도 야했다.
“으읏‚ 흐응.”
“정신 차리세요. 좆이 아니라 성물입니다.”
그의 엄명에도 세라는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다. 아까 손가락을 넣어 확인한 흥분점을 정확히 조준해서 찧어 대고 있었기 때문에.
분명히 치유를 한다고 했는데 왜 이렇게 견딜 수 없을 만큼 헤집어 대는 거지. 생각할 틈도 없이 달아오른 온몸이 애무를 갈구하듯 안타깝게 들썩거렸다.
“성물에도 이렇게 환장하는데 진짜 좆을 물리면 아주 볼만하겠습니다.”
“하응‚ 응‚ 대신관님 좆‚ 흣.”
“후우‚ 뭐라고요?”
“음탕한 보지에‚ 흐으‚ 물려 주세… 아아!”
세라가 엉덩이를 들썩이며 애원하자‚ 그가 성물에 힘을 주어 강하게 쑤셔 올렸다.
“잘도 추잡한 말을 지껄이는군요.”
“하으응‚ 그‚ 그만…….”
“이 사특한 것을 다 쏟아 내기 전엔 안 됩니다.”
꾸짖는 것 같은 애무가 지속되었다. 젖가슴을 난폭하게 주무르면서 손끝으로 유두를 야단치듯 긁어내렸다.
엄지로 클리토리스를 지그시 누른 채로 성물을 빠르게 들쑤시자‚ 골반이 뒤틀리는 듯한 흥분이 몰려왔다.
성물의 선단이 안쪽 흥분점을 후비고 자궁구까지 찍어 눌렀을 때‚ 벼락처럼 내리꽂히는 쾌감에 감전된 것처럼 내벽이 제멋대로 경련했다.
“아흐으……!”
온몸이 절정의 해일에 쓸려 나간 것처럼 눈앞이 아득했다. 고개가 젖혀지고 허리가 활처럼 휘며‚ 왈칵 쏟아져 나온 맑은 음액이 성물을 타고 그의 팔뚝까지 줄줄 흘렀다.
그는 끓는 듯한 절정을 맞은 후 흐물흐물해진 음부에 몇 번 더 천천히 성물을 물린 후‚ 느른하게 뽑아냈다.
침대 시트는 그녀가 흘린 음란한 흔적들로 축축하게 젖어 엉망이었다.
“잘 참았습니다.”
세바스찬은 성력을 받아들이며 텅 빈 눈으로 파르르 떠는 그녀의 웅크린 목덜미에‚ 젖은 눈가에‚ 동그란 이마에 차례로 입을 맞췄다.
그리고 입술에까지 짧게 키스하더니 누구보다 고결한 얼굴로 그녀의 젖은 머리칼을 쓸어 넘겨 주었다.
“히끅‚ 끅.”
그녀는 아직도 잘게 흐느끼며 딸꾹질했다.
“무리하셨으니 조금 쉬십시오.”
그가 그런 그녀의 뺨을 상냥하게 쓸어 주며 묶인 팔목을 풀어 주었다.
나른하게 풀렸던 그의 눈빛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정갈하게 돌아왔다.
손만 풀리면 달려들겠다고 생각했는데. 마법에라도 걸린 것처럼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가 흘려준 성력 때문일까. 온몸을 지배하는 나른한 탈력감에 세라는 자기도 모르게 긴 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