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9. 위험한 소꿉장난 (11/17)

09. 위험한 소꿉장난

“더는 못 걷겠어.”

정말이지. 성가신 계집애였다.

“가지가지 해.”

에단은 몇 걸음 걷지도 않고 주저앉아 버린 세라를 한심하다는 듯 흘겨보았다.

“먼저 소풍 가자고 한 게 누구더라?”

“그야‚ 날씨도 좋고.”

“날씨가 좋기는.”

에단이 투덜대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날이 꾸물꾸물했다.

오전부터 해가 쨍하지는 않더니. 어느새 몰려온 구름 떼가 하늘을 무겁게 뒤덮고 있었다.

“올랜도 남작의 역사 수업은 지긋지긋하니까.”

“아까는 분명 수업 없는 날이라며.”

“…….”

깜짝 놀라 입을 꾹 다문 걸 보니 또 시작이다 싶었다.

“설마 또 땡땡이냐?”

에단이 샐쭉한 얼굴로 물었다.

“…들켰네.”

그럼 그렇지. 혀를 빼꼼 내밀며 배시시 웃는 세라를 보고 에단은 한숨을 푹 쉬었다.

“너 때문에 또 나만 혼나지.”

“너만 혼나긴. 나도 혼나는걸.”

“맨날 꼬여 내긴 네가 꼬여 내는데. 욕은 내가 먹잖아.”

에단의 아버지‚ 디아즈 경이 알면 순진한 아가씨를 꼬드겼다며 꾸중할 터였다.

아가씨.

그래. 원래는 그녀에게 아가씨라고 부르며 존칭을 써야 했다. 그러나 세라가 친구라며 제 앞에서는 반말을 쓸 것을 강요했다.

디아즈는 기사 가문으로‚ 에보트 후작가의 가신이었다. 세라는 금지옥엽 외동딸에다 성격이 제멋대로라 친구가 딱히 없었다.

그래서일까. 디아즈 경은 어릴 때부터 검술이 뛰어난 에단을 세라의 놀이 친구 겸 호위로 붙여 주곤 했다.

친구는 무슨. 거의 일방적인 뒤치다꺼리였다.

세라 에보트는 예쁜 만큼 성가시고 손이 많이 가는 편이었으니까.

아버지의 명이긴 했지만‚ 에단은 제게만 매달려 칭얼거리는 세라가 종종 거추장스러웠다.

“아니야. 이번엔 내가 아버지한테 잘 말해서…….”

“됐어. 얼른 일어나. 비 오기 전에 들어가야 해.”

이건 뭐‚ 애도 아니고.

에단이 바닥에 주저앉아 버린 세라의 손을 잡아끌어 일으켰다.

“안 업을 거니까 평생 거기서 살든지 말든지 알아서 해라.”

세라가 몸을 흐물거리자‚ 에단은 못내 짜증스러운 표정을 짓고는 따라오건 말건 앞서 걸었다.

철퍼덕.

“흐응. 바보야.”

세라가 우는소리를 하며 그를 불렀다. 몇 발짝 걷는가 싶더니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모양이다.

“미치겠네‚ 진짜.”

에단은 뒤통수를 벅벅 긁으며 자빠진 그녀의 곁에 달려갔다.

하여튼 잠시도 방심하기 힘들었다. 애초에 소풍 가는데 왜 실내 드레스에 구두 차림으로 와서는.

“어디 봐.”

드레스 자락이 흙투성이였다. 에단은 익숙한 듯 얼른 드레스 자락을 걷어서 그녀의 무릎을 확인해 보았다.

뽀얀 무릎은 하찮고 연약했다. 흙바닥에 직접적으로 쓸린 것도 아닌데 긁혀서 피가 나고 있었다.

에단은 혀를 쯧 차며 가방에서 연고를 꺼냈다. 깨끗한 손수건으로 피를 닦아 내고는 위에다 약을 발라 주었다.

“앗‚ 흐으‚ 따가워.”

“다 큰 게 엄살은.”

어린애처럼 칭얼거리지만‚ 이제 제법 숙녀티가 나는 건 사실이었다. 훈련 때문에 못 본 새 부쩍 더 그랬다.

다음 달이면 데뷔탕트를 치를 텐데. 아직도 툭하면 넘어질 정도로 덤벙거린다.

정략혼이라지만 이 멍청이가 차기 세르반테스 공작부인이라니. 솔직히 기도 안 차긴 했다.

“나 벌받나 봐.”

“왜.”

“엘레나 빼고 둘이 오자고 해서.”

별 쓸데없는 소릴. 에단이 입술 새로 실소를 뱉었다.

“왜 둘이 오자고 한 건데.”

“솔직히 엘레나‚ 귀여운데 좀 성가시잖아. 너 오랜만에 돌아왔는데 둘이 있고 싶어서.”

“사실 나도 그게 편해.”

“응?”

세라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엘레나가 무슨 죄냐. 너 같은 멍청이 뒤치다꺼리는 나 하나로 족하지.”

“너무해.”

실은 전부 다 핑계였다. 그는 세라를 신경 쓰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다.

거기에 엘레나까지 함께 오면‚ 둘 사이에서 묘하게 기가 빨리는 기분이 들곤 했다.

“엘레나 부럽다.”

그걸 알 리가 없는 세라는 실없는 소릴 해 댔다.

“뭐가.”

“나도 너 같은 오라버니 있었으면 좋겠어.”

“날 이렇게 살뜰히 부려 먹으면서 오라버니가 왜 필요해.”

대체 어느 부분에서 부럽다는 건지 이해가 안 갔다.

에단은 엘레나와 다소 서먹한 사이였다. 아버지 디아즈 경이 재혼하면서 함께 살게 된 의붓동생이었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에 생긴 동생도 아니고‚ 다 커서 생긴 동생이었다. 잘해 줄 생각도 괴롭힐 생각도 없었는데‚ 그나마 엘레나가 살가운 편이라서 에단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오고 종종 세라와의 만남에 끼어들기도 했다.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던 그녀는 세라의 화려한 삶을 선망했다. 입고 있는 옷‚ 구두나 꾸밈 같은 것을 부러워했고‚ 세라 같은 귀족 영애가 되고 싶어 했다.

옷도 따라 입고‚ 머리 스타일도 따라 했다. 이렇게 제힘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멍청이가 뭐가 좋다고.

정신이 나간 게 분명했다. 세라가 두 명이 되어 봐야 등골이 휘는 건 에단밖에 없을 것이다.

“고마워.”

그녀가 이쪽을 빤히 올려다본다. 마치 네 수고를 다 안다는 듯이. 시선이 마주치자 눈꼬리를 곱게 접으며 해사하게 웃었다.

어릴 때부터 똑같은 미소를 지었는데. 요즘 부쩍 그 미소가 거북스럽게 느껴져서‚ 에단은 고개를 홱 돌려 버렸다.

그냥 신경질이 났다. 나이가 몇 살인데. 디아즈가 에보트 후작가의 가신이라고 해도‚ 그저 가문의 일이지. 에보트의 고용인도 아닌데 대체 언제까지 이 짓거리를 해야 할까.

이게 이렇게까지 짜증이 날 일인가 생각해 보면‚ 좀 예민하게 군 것 같아서 기분이 묘하기도 했다.

“…앞으로 이런 데는.”

“응?”

“네 약혼자랑 와.”

에단은 흙투성이가 된 그녀의 치맛자락까지 샅샅이 털어 주고는 툭 쏘아붙였다.

“…….”

세라의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아무래도 아픈 곳을 건드린 모양이다.

어릴 때 그렇게 떠들썩하게 혼약을 맺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그 흔한 왕래조차 없었다.

처음에는 아카데미 입학 준비 때문이라고 했고‚ 다음에는 아카데미에 들어갔기 때문이라고 했다.

펠릭스 세르반테스가 아카데미에서 돌아왔다는 소식은 기사단 녀석들까지 다 알고 있는데.

“…소공작님이 많이 바쁘신가 봐.”

정작 그의 약혼녀는 만나지 못한 모양이었다. 세라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우물쭈물 답했다.

방학 때도 바쁘다는 핑계로 만남을 미뤘다고 들었는데. 졸업하고서도 그러는 모양이지.

“곧‚ 작위를 받으실 거래. 그래서 바쁜 걸 거야. 아마도…….”

“나도 바빠. 그러니까 얼른 가자.”

누군 한가해서 상대해 주는 줄 아나. 중급 기사가 된 에단은 훈련을 쉴 때도 승급 심사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너 기사 되고 나니까 심심하단 말이야.”

“네가 하라며.”

“이렇게 못 볼 줄 알았으면 기사단 하라고 하지 말걸.”

세라가 입을 앞으로 쭉 내민 채로 투덜거렸다. 하여튼 이러랬다가 저러랬다가. 변덕이 죽 끓듯 하는 건 여전했다.

가신 가문이니만큼 에보트 후작은 에단을 딸의 호위로 임명하려고 했지만‚ 세라가 말렸다고 했다.

에단의 검술 재능이 비범해서 에보트에 머물기에는 아깝다는 이유에서였다.

기사가 되고서는 예전처럼 그녀와 붙어 있지도 못했다. 훈련도 많았고‚ 장기간 원정을 떠나는 일도 왕왕 있었으니까. 오히려 집에 오는 것이 휴가인 셈이었다.

“넌 나 말고 친구도 없냐?”

“응. 다른 애들은 재수 없어. 앞에선 웃고 뒤에선 수군대고.”

“모르나 본데‚ 걔들만 그런 거 아니야. 나도 뒤에서 네 욕 많이 했어.”

“무슨 욕 했는데?”

“짓궂고‚ 성가시고 재수 없다고.”

“그런가?”

싱겁기는. 제 흉을 보았다는데도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었다.

“욕해도 되니까 계속 내 친구 하는 거다?”

“난 되고 걔들은 왜 안 되는데?”

“넌 앞에서도 내 욕하니까. 어쨌든 네가 가장 편해.”

“당연하지. 누가 그 별난 성격 다 맞춰 주겠냐.”

에단이 어이가 없는지 픽 웃었다.

애초에 그녀는 그를 하대하지 않았으며 단짝처럼 따랐다. 말이 단짝이지‚ 에단은 세라의 놀잇감이었다.

어디 가 보자‚ 이거 해 봐라. 저거 해 봐라. 다리 아프다. 업어 달라. 뭐 솔직히 이 정도는 약과였다.

어릴 때는 혼자 티 파티를 한다며 자신에게 드레스를 입히기도 했다. 자신을 가지고 꼭 인형 놀이를 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별로였다.

기사단이라니. 귀찮게 질척거리는 후작가의 금지옥엽을 벗어나니 속이 다 시원했다.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와서는 에보트에 인사 오는 게 아니었는데. 디아즈 경의 성화에 잠깐 방문했다가 붙잡히고 말았다.

먼저 앞서 걷는데 영 뒤처진다 싶어서 뒤를 돌아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다친 사슴처럼 한쪽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따라오고 있었다.

“느려 터져서는.”

그 꼴이 눈에 거슬려서 그냥 두지 못하는 본인이 제일 문제였다.

“업혀‚ 멍청아.”

업히라니까 또 등에 답삭 달라붙어 매달린다. 에단의 목에 팔을 두르고는 어깨에 얼굴을 파묻었다.

은은한 제비꽃 냄새가 물씬 풍겨 왔다. 보송한 체향을 맡을 때면‚ 에단은 제 몸에서 땀 냄새가 나지는 않는지 괜히 신경이 쓰였다.

“헤헤.”

뭐가 그리 좋은지 멍청하게 웃었다. 어릴 때부터 업히는 걸 좋아해서‚ 일부러 업히려고 넘어지나 의심이 갈 정도였다.

와락 업히는데 등에 말랑한 것이 닿았다. 젠장‚ 뭔지 알 것 같아서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건 그녀를 업을 때 어쩔 수 없이 손끝에 닿는‚ 차진 감촉과 비슷했다.

이래서 업기 싫었는데.

전부 다 모르고 싶었다. 어느새 몸이 자라고‚ 커지고 여무는 것. 그래서 소녀에서 여자가 되어 가는 것.

적어도 세라 에보트에 관해서는 알고 싶지 않은 것들이었다.

“등 엄청 넓어. 언제 이렇게 몸이 커진 거야?”

속도 모르고.

세라 에보트는 이제 제법 수컷 냄새가 나는 에단의 몸에 뺨을 부비며 감탄했다.

“너 업으려고 넓어진 거 아닌데.”

“그래도 좋아. 단단하고 폭신해서 눈이 막 감기네.”

“넌 요즘 살쪘냐? 왜 이렇게 피둥피둥해.”

에단이 괜히 핀잔을 날렸다. 귓바퀴에 뜨끈뜨끈하게 오른 열기를 빼려면 아무 말이나 뱉어야만 할 것 같았다.

“…졸려.”

이젠 핀잔이 먹히지도 않았다. 그녀는 잠이 쏟아지는지 어눌한 발음으로 답했다.

“잠들면 더 무거워지는 건 알지? 숲에 버리고 가 버리기 전에 눈 떠라.”

그때‚ 굵직한 물방울이 뺨 위로 툭 떨어졌다. 한바탕 쏟아붓기 전에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한 방울‚ 두세 방울. 숫자를 셀 수 없이 물방울이 내리꽂혔다.

“젠장.”

에단이 욕지거리를 뱉으며 걸음을 재촉했다. 소나기라고 해도 제법 세찬 빗발이었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쏟아지는 통에 도무지 뚫고 갈 수가 없었다.

저는 상관없지만. 이런 비를 맞으면 에보트의 금지옥엽께서는 열 감기를 앓으실 터였다.

“잠깐 비 좀 피하고 가자.”

“응.”

에단은 근처에 작은 창고 겸 오두막이 있었던 걸 떠올리고는 일단 그리로 향했다.

***

“이게 뭐야.”

가는 내내 제 등에 축 늘어져 오들오들 떨어 대는 게 신경 쓰였는데. 오두막 안에 내려놓고 보니 완전 물에 빠진 생쥐 꼴이었다.

“비 안 온다고 우기더니. 꼴 좋다.”

에단은 한껏 젖어 뺨에 엉겨 붙은 그녀의 머리칼을 뒤로 넘겨 주었다.

“…좀 추운 거 같아.”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창백할 정도로 하얀 얼굴‚ 엉망으로 젖은 뺨. 새파랗게 질려 떠는 입술. 잔뜩 웅크린 어깨는 아까부터 쉴 새 없이 요동치고 있었다.

비에 젖은 얇은 섬유가 살갗에 달라붙어 뽀얀 속살이 보였다. 그런 볼썽사나운 꼴을 하고 있으면서도 말간 눈으로 자신을 쳐다본다.

“…….”

에단은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서 고개를 홱 돌려 버렸다.

숲속에 있는 오두막은 사냥철 사냥꾼들을 위해 마련된 임시 숙소였다. 이 또한 에보트의 소유였다.

사냥철이 지나서 지금은 비어 있었지만‚ 사냥꾼들이 머물다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예 못 쓸 정도는 아니었다.

몸을 덥힐 땔감도 있고 담요도 있었다. 어릴 때 숲속에 놀러 갈 때면 종종 아지트 삼아 들르던 곳이라 익숙하기도 했다.

에단은 능숙한 손길로 벽난로를 피우고‚ 담요를 꺼내 세라의 젖은 몸을 꽁꽁 여며 주었다.

빗발이 거셌다. 그저 지나가는 소나기인 줄로만 알았는데. 시간이 한참 흘렀음에도 잦아들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세라는 아직도 몸의 떨림이 멈추지 않는지 잔뜩 웅크리고 있었다.

사실 여기선 이 이상으로 해 줄 수 있는 게 없었다. 저렇게 떨어 대는데‚ 언제까지고 비가 그치길 기다릴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일단 여기 있어.”

“응?”

“에보트까지 멀지는 않으니까 뛰어가서 마차를 불러올게.”

몸을 돌려 밖으로 나서려는데 세라가 그의 옷소매를 꾹 붙잡았다.

“가‚ 가지 마.”

하찮기는. 손목을 붙잡은 손끝이 바르르 떨고 있었다.

“뭐?”

“호‚ 혼자 있기 무‚ 무섭단 말이야.”

“네가 애냐?”

“…가지 말라면 가지 마.”

간절함이 통하지 않으니 또 묘하게 강압적인 말투가 나왔다.

“안 가면 뭐 어쩌라는 건데.”

“…….”

“너 지금 떨잖아. 내가 지금 나 때문에 그래?”

“…그냥 같이 있고 싶어서.”

옷자락을 붙잡은 그녀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뭐가 그리 서러운 걸까. 파르르 떨군 속눈썹에 이내 물기가 맺혔다. 난처하게 하려고 작정을 한 모양이다.

“집에 가면 너 금방 가 버릴 거잖아.”

그래. 방에 데려다주고 욕먹고‚ 얼굴 볼 틈 없이 집에 가겠지.

“…….”

“그‚ 그리고 다시 안 오고‚ 흑‚ 흐으‚ 기사단 복귀할 거고.”

세라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녀가 앓아눕지 않는다고 해도‚ 에보트 후작의 눈치가 보여서 남은 휴가 동안 만날 수도 없을 것이다.

기껏 저 때문에 이 고생을 했는데. 보람도 없이. 하긴 뭐 언제는 안 그랬나.

에단이 자조적으로 웃었다.

“알았어. 같이 있을 테니까 울지 마.”

“…….”

“근데 이대로 있으면 너 진짜 감기 걸려.”

“…흑‚ 수업 땡땡이치고 좋지 뭐.”

말 같지도 않은 소릴 하고 있어. 그녀는 울먹거리다가도 또 금세 배시시 웃는다.

몸만 컸지‚ 완전 어린애인데. 이 꼴로 결혼은 어떻게 한다는 건지.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났다.

“그럼 잠깐 나가 있을 테니까‚ 그 드레스라도 벗어서 말려 보자.”

“버‚ 벗으라고?”

“응. 젖은 채 있으면 춥잖아.”

“…혼자?”

“그럼 내가 벗기리?”

곤란한 얼굴이었지만 이쪽에서 벗겨 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세라는 한참을 머뭇거리더니 입술을 꾹 깨물었다.

“…도망 안 갈 거지.”

“속고만 살았냐.”

에단이 투덜거리며 밖으로 나와서 문을 닫고‚ 앞에 기대고 섰다.

“자‚ 앞에 있으니까 빨리해.”

빗소리가 거센데도 안쪽에서 서툴게 낑낑대며 바르작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됐어?”

“오‚ 옷 다 벗어야 해?”

어이없는 질문에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돌았냐?”

“아‚ 아니… 에밀리 없이 혼자 이런 거 처음이어서.”

하긴‚ 후작가 외동딸이 하녀 없이 혼자 옷을 입고 벗을 일이 있을 리가 없으니. 익숙하지 않은 것이겠지.

“아니‚ 겉옷만 벗으라고. 너무 푹 젖었으니까 물기 좀 짜고 말릴 거야.”

“옷이 여러 개면 어떡해?”

이렇게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려 줘야 하나. 머리가 지끈거렸다. 여자들의 옷은 사내들 것처럼 그리 간단한 게 아닌 모양이었다.

그래도 리본이 주렁주렁한 파티용 드레스도 아니고‚ 간단하게 생겼으니 혼자 할 수 있을 터였다.

“모르겠고. 일단 그 맨 위에 드레스인지 뭔지만 벗어 봐.”

“응. 그거 벗었어.”

“내가 정리할 테니까 옆에 놔두고 거기 서랍장에 새 담요 하나 더 있지?”

“으응.”

“그걸로 몸 감싸고.”

조금만 복잡해지거나 힘들어지면 못 하겠다고 생떼를 부렸는데‚ 세라는 오늘따라 고분고분했다. 정말 가는 게 싫긴 한가 보지.

왠지 초조한 마음에 손끝만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슬며시 문이 열렸다.

“…다 했어.”

그녀가 담요를 몸에 감싼 채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무릎 위까지 가린 담요 아래로 가늘고 새하얀 맨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춥잖아. 들어와.”

시선을 어디에 둘지 정하지 못한 채로‚ 에단은 엉거주춤 오두막에 끌려 들어갔다.

“넌 안 벗어?”

“뭐‚ 나? 내‚ 내가 미쳤냐?!”

갑작스러운 세라의 질문에 에단이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그렇지만 너도 흠뻑 젖었잖아. 감기 든다며.”

대체 제가 무슨 생각을 한 건지. 에단은 그저 걱정하는 듯한 그녀의 눈빛에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알겠으니까. 일단 저리 가서 앉아 있어.”

“응.”

에단의 지시에 세라는 벽난로 앞에 쪼그려 앉아 불을 쬐었다.

작게 웅크린 등을 확인하고는 에단도 허겁지겁 셔츠를 벗었다. 근육으로 빈틈없이 짜인 탄탄한 상체가 드러났다. 그녀의 말마따나 몸이 제법 커진 것도 같았다.

축축한 셔츠를 비틀어 물기를 꾹 짰다. 제 것을 처리하고‚ 한쪽에 벗어 놓은 세라의 드레스를 주워 들었다.

참 누구처럼 작고 하찮고 연약한 천 쪼가리였다. 제 옷처럼 마구잡이로 쥐어짜면 찢어질 것 같아서‚ 조심히 물기를 제거했다.

여자들은 이런 조그만 걸로 몸이 다 가려지나. 어릴 때는 잘 몰랐는데‚ 새삼 그녀와의 체구 차이가 느껴졌다.

“바보야.”

옷을 타지 않을 정도의 거리에 고정해 널고는 뻘쭘하게 서 있는데‚ 세라가 그를 불렀다.

“응?”

“멀뚱히 서 있지 말고 너도 이쪽으로 와.”

“난 괜찮아.”

“괜찮긴 뭐가 괜찮아. 너도 아프면 안 되잖아. 기사는 몸이 재산인데.”

“…….”

“얼른.”

하도 성화라서 못 이긴 척 곁에 주저앉았다.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그냥 보고 싶지 않아서 딴청만 피웠다.

“나 아직 추우니까 좀 더 붙어.”

“아‚ 왜.”

“한 번만 붙어 줘. 응?”

“하 씨.”

명령과 회유에 못 이겨 마지못해 몸을 붙이자 그녀가 머리를 어깨에 기대 왔다.

“아‚ 편하고 좋다.”

그리고 나른하게 눈을 감았다. 이리저리 난리더니 처음부터 베개로 쓸 속셈이었던 거지. 황당함에 헛웃음이 터졌다.

“하여튼 다 제멋대로지.”

“너도 네 맘대로 하든가.”

“내가 뭘 할 줄 알고 이러실까.”

“뭘 할 건데?”

그녀가 어깨에 기댄 채 새침하게 올려다보았다. 그 눈빛에 당황한 에단은 황급히 시선을 피했다.

“…알려 주고 하겠냐‚ 너 같으면?”

“아니지. 그냥 기습적으로 하지.”

세라가 픽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근데 내가 널 지켜본 결과 넌 못 해.”

“뭐?”

“생각이 너무 많거든.”

세라가 양손으로 에단의 볼을 감싸 쥐고는 방긋 웃었다. 그녀의 같잖은 분석에 에단은 왠지 모를 오기가 끓어올랐다.

그가 연신 히죽거리는 그녀의 손목을 잡아채 바닥으로 밀어 눕히고 잡아먹듯 올라탔다.

그녀의 눈동자가 터질 듯이 커졌다.

“…….”

“…….”

순간 방 안이 고요에 잠겼다.

시선을 내리자 풀어진 담요 사이로 슬립 차림의 흐트러진 몸이 보였다.

마치 제 속을 다 꿰뚫고 있다는 듯이 건방지게 구는 통에 다분히 충동적으로 한 행동이었는데.

눈앞의 아찔한 광경에 아랫도리가 묵직해지는 게 느껴졌다.

쿵쿵‚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들킬 것 같아 무슨 말이라도 해야 했다.

“…그러는 넌 기습을 피하기엔 허점이 너무 많아.”

“…….”

“그러니까 까불지 마라.”

기를 콱 눌러두었으니 이제 더 이상 도발하지 않겠지. 깐족거리는 그녀를 물리적으로 제압하자 알량한 승리감이 느껴졌다.

“…너 되게 멋있다.”

이쯤 해 두고 일어서려는 순간 에단은 제 귀를 의심했다.

“뭐?”

“기사단에서 이런 거 배워? 단숨에 제압하는 거?”

“안 배우겠냐‚ 그러면?”

“반할 뻔했잖아.”

대책도 없이. 그녀는 눈을 곱게 휘며 웃었다.

어떻게 된 애가. 전혀 위험한 상황이라는 자각이 없는 걸까?

그녀의 눈빛에서 정염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왜? 친구라서?

꼭 신기한 장난감을 발견한 것처럼 천진한 시선에 에단은 입 안이 텁텁해졌다.

“됐으니까 일어나.”

먼저 몸을 일으키고는 누워 있는 세라에게 신경질적으로 손을 내밀었다.

“…….”

세라는 그 손을 잡지 않고 혼자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 팔을 펴서 담요 자락 한쪽을 에단에게 내밀었다.

“뭐야?”

“이리 와. 같이 덮자.”

“답답해서 싫은데.”

“거짓말. 방금 보니까 너도 떨던데?”

추워서 떤 게 아니었는데. 참으로 가소로운 걱정이었다.

“까불지 말라고 했지.”

“너 안 덮으면 나도 안 덮을 거야.”

“뭐라는 거야.”

“담요도 하난데 나만 덮기 미안하잖아. 같이 감기 걸리지‚ 뭐.”

저 젖어서 헐벗은 꼴로 옆에 있겠다고? 차마 참고 봐 주기 힘든 몰골이었다.

“…진짜 못 봐 주겠네.”

세라의 협박에 에단은 어쩔 수 없이 차악을 택하기로 했다. 그녀에게서 담요를 빼앗아 들고는 넓게 펼쳐서 감싸 덮었다.

“이러니까 훨씬 따뜻하다.”

뭐가 좋다고. 또 득달같이 달라붙는다.

벨벳같이 부드러운 살갗이 팔에 닿자‚ 그가 움찔 놀라 몸을 틀었다.

“…요즘 왜 나 자꾸 피해?”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당황한 에단이 버벅거리며 답했다.

“따‚ 딱히 그런 적 없는데.”

“혹시 내가 뭐 잘못했어?”

“아니.”

“아니면 됐고.”

세라는 생각 외로 깊게 추궁하지는 않았다. 뭔가 불편한 마음을 들킨 것 같아서 민망했다.

아니라는 확답을 받고서 또 몸을 밀착시켜 오는 모습이 영악한 여우 새끼 같기도 했다.

“…하암.”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는 연신 하품하더니‚ 수마가 밀려오는지 스르륵 눈을 감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새근새근 고른 숨을 쉬었다.

정말 세상모르고 잠이 든 걸까. 어깨에서 고개를 아래로 고꾸라뜨리는 통에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하여튼. 겁도 없이.”

에단은 잠든 그녀를 조심히 러그에 눕혔다. 그녀는 제 팔을 베고 아기처럼 몸을 옴츠린 채 이쪽을 향하고 있었다.

젖은 속눈썹이 아른거리는 불빛에 반짝거렸다. 옅은 숨을 내쉬면서도 아직 추운 건지 가늘게 떨고 있었다. 창백하기만 하던 두 뺨이 묘하게 붉었다.

혹시 열이 있는 건가 싶어‚ 에단은 그녀의 동그란 이마에 커다란 손을 조심스럽게 덮어 보았다.

손바닥이 홧홧했다. 아까부터 영 헛소리나 하며 해롱거리더니. 아무래도 미열이 나는 것 같았다.

“으응.”

세라가 끙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더 웅크렸다. 오한이 드는 모양이었다.

뭔가 더 따뜻하게 해 줘야 할 것 같은데. 담요 두 개 중 하나는 흠뻑 젖어 버렸고‚ 아까 세라가 우긴 것처럼 달라붙는 수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에단은 각오하듯 옅은 숨을 내쉬고는 그녀의 팔을 빼고 팔베개해 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몸을 조금 당겨 안았다.

참 가늘고 자그마한 몸이었다. 제 품에 짜 맞춘 것처럼 꼭 맞았다.

따뜻해서일까. 세라가 잠결에 품을 파고드는 모습에 에단은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

아니나 다를까. 말랑한 가슴이 맞닿아 붙었다. 요망한 게 자면서도 꼭 자신을 시험하는 것 같았다.

다른 생각을 하려고 해도 온몸의 감각이 자꾸 닿는 감촉에 쏠렸다.

아랫도리에 묵직하게 열이 오르는 느낌에‚ 에단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씨발. 발정할 게 따로 있지. 어디 세울 데가 없어서 이런 멍청이한테 좆을 세우는지. 에단은 짙은 자괴감을 느꼈다.

한껏 피가 몰린 페니스가 자꾸만 그녀의 몸을 쿡쿡 찔러서 엉덩이를 뒤로 물렸다. 설마 깬 건 아니겠지. 살펴보는데 세상모르고 자고 있었다.

미열이 나서일까. 그녀의 빨간 입술은 연신 달싹이며 달뜬 숨을 뱉었다. 그 아래로 새하얀 목선과 살짝 드러난 가슴골이 보였다.

사람 새낀지 짐승 새낀지. 아픈 사람을 앞에 두고 그런 것만 눈에 들어오다니.

“제기랄.”

더는 함께 있을 수가 없었다. 창밖을 보니 어느새 비가 잦아들고 있었다.

그래. 마차.

마차를 불러와야지.

뭐가 됐건 당장 이곳을 떠나야 했다. 에단은 잠든 세라를 두고 도망치듯 오두막을 벗어났다.

그날부터 에단 디아즈는 더 이상 세라 에보트의 친구가 아니었다.

***

이렇게 된 이상‚ 더 이상 눈치만 보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묻고 싶은 게 있어.”

“…….”

“왜 절교하자고 한 거야?”

세라는 에단의 까만 눈을 똑바로 주시하며 직설적으로 물었다.

“…눈치가 없는 거야. 아니면 없는 척하는 거야.”

에단이 기운이 빠지는지 자조적으로 웃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제 맘을 순순히 알아주지 않는 세라가 야속하게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둘 다 아니고. 그냥 네 입으로 듣고 싶은 거야.”

세라가 담담한 어조로 답했다.

그녀 또한 그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저 애끓는 눈빛을 보고 어떻게 모를 수가 있을까.

하지만 그냥 눈치채는 것과 그가 제 입으로 직접 이야기하는 것은 달랐다.

속마음 퀘스트를 위해서라도‚ 에단을 통해서 들어야만 했다.

“…….”

에단은 답이 없었다.

낮게 가라앉은 그의 눈이 슬퍼 보여서. 세라는 그를 조금이라도 위로해 주고 싶었다.

촉. 그녀가 천천히 그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그는 거부하지 않고 잠자코 있었다.

혀를 섞거나 짙은 입맞춤을 하지는 않았다.

그저 얼어붙은 입술을 녹이며 달래듯 한 번‚ 두 번‚ 그렇게 여러 번 따뜻하게 포개고 감쌌다.

“…하아.”

떼어 낸 입가로 열기를 머금은 숨이 흩어졌다. 세라는 약간 상기된 얼굴로 에단의 낯빛을 살폈다.

그러고 나서도 에단은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응?”

세라가 반응을 보채듯 묻자‚ 그의 입술 사이로 실소가 새어 나왔다.

“넌 나한테 이러는 거 재밌지.”

“뭐?”

“내가 네 장난감이잖아.”

“자‚ 장난감이라니‚ 그게 무슨…….”

그의 폭탄 발언에 얼떨떨하게 되묻는데 순간‚ 시스템 창이 울렸다.

[시스템: ‘에단 디아즈’의 속마음‚ ‘세라의 장난감’을 획득했습니다.

- ‘에단 디아즈’의 속마음 수집 상황 (1/3)]

첫 번째부터 강렬했다.

“기억 안 나? 네가 소꿉장난하고 싶어 하면 계집애처럼 드레스까지 입었어‚ 나.”

어릴 때부터 붙어 지냈다고는 들었지만‚ 그렇게 일방적인 관계인 줄은 몰랐는데.

에단이 헛웃음을 뱉으며 말을 이었다.

“다리 아프다고 업으라면 업고. 춥다고 안으라면 안고.”

“…….”

“이젠 네가 떡 치고 싶으면 좆까지 세워야 하나 봐.”

그가 바지를 풀며 흉흉하게 기립한 페니스를 꺼냈다. 갑작스러운 그의 기행에 세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난 네 말 존나 잘 듣고. 그렇지?”

“…….”

“분부대로 세웠으니까. 올라와서 박아 보든가.”

그가 손바닥으로 바닥을 짚으며 뒤로 걸터앉았다.

배꼽 위까지 올라붙은 거대한 좆이 군침을 흘리듯 끈적한 선액을 질금질금 뱉고 있었다.

“…….”

세라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래. 그의 말대로 마음 같아선 저 커다란 페니스 위에 올라타서‚ 위에서도 박혀 보고 싶지만.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가는 에단이 자신의 장난감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었다.

‘말은 저렇게 해도 그건 너무 상처겠지.’

세라가 옅은 숨을 내쉬었다. 일단은 거절하고‚ 에단에게서 대답을 더 끌어내는 게 우선일 것 같았다.

“…아니야‚ 그런 거.”

세라는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휘휘 저었다.

“아니면 박히는 게 취향인가?”

에단은 여전히 표정이라고는 없는 얼굴로 건조하게 물었다.

“그‚ 그런 뜻이 아니라. 난 그냥 네 이야기를 듣고 싶…….”

“부끄러우면 뒤로 해 줘?”

에단이 말꼬리를 싹둑 자르고는 그녀의 몸을 휙 돌려‚ 뒤에 있던 나무 상자 위에 엎었다.

눈 깜짝할 사이 몸이 뒤집힌 세라가 밭은 숨을 내쉬는데‚ 치맛자락이 들쳐 올려지고 아래에 한기가 들었다.

“…시‚ 싫어.”

그녀는 엎드린 채 새하얀 엉덩이와 점액으로 축축하게 젖은 음부를 훤히 내보이고 있었다.

“싫다면서 뒤로 해 준다니까 젖었네.”

에단이 손끝으로 그녀의 음부를 확인하더니 낮게 웃었다.

세라가 수치심에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이미 여러 번 보인 곳인데도 기분 탓일까. 대화하자고 우겼으면서 이렇게 젖어 있다니. 꼭 발정 난 짐승이라도 될 것만 같았다.

“아‚ 아니야. 나는…….”

그가 손가락에 애액을 묻힌 후‚ 소음순부터 클리토리스까지 가릴 것 없이 느른하게 문질러 댔다.

찌걱찌걱. 젖은 음부가 난잡하게 비벼지는 소리에 창피하던 것도 잠시‚ 그가 귓가에 나직하게 속삭였다.

“아니면 그 애새끼 장난 같은 뽀뽀하면서 젖었나.”

“흐응‚ 응‚ 으으. 아‚ 아니야.”

세라가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붕붕 휘저었다.

외음부에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자극에 붉게 충혈된 질구가 오물거리며 삽입을 보챘다.

“입술이랑 밑구멍이랑 하는 말이 다른데.”

“읏‚ 흐으‚ 응.”

“그만 벌름거려 좆 줄 테니까.”

에단이 세라의 하얀 둔부를 양옆으로 벌려 쥐더니‚ 몽둥이처럼 발기한 제 좆을 갈급하게 쑤셔 넣었다.

“흐읏!”

둔중한 성기가 질 내벽을 쿵‚ 비집고 들어오자 충격에 온몸이 진동하는 것 같았다.

귀두로 긁어내리며 뒤로 물렸다가 다시 한번 쿵‚ 박아 넣자 코끝이 찡 울리더니 순식간에 시야에 물기가 어렸다.

배려라고는 없는 흉포한 삽입에 숨이 턱 막히고 등뼈가 시큰거렸다. 골반이 순식간에 뜨거운 화염에 휩싸인 것처럼 홧홧하게 달아올랐다.

“아‚ 안 이래도 돼. 으응‚ 응‚ 그‚ 그러니까‚ 흣‚ 박아 달라는 말이‚ 아‚ 아니‚ 흣!”

혼비백산한 세라가 정신없이 변명해 대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가 허리를 쳐올리며 무자비하게 추삽질을 해 댔다.

“왜. 이제 하다 하다 좆까지 갖다 바치는데 고맙다고 하지는 못할망정.”

“읏‚ 흐응‚ 제발‚ 응.”

“멋대로 쑤셔서 화났어?”

그가 한 손으로는 그녀의 엉치뼈를 누르고‚ 다른 손으로는 그녀의 목덜미를 쥔 채 제 좆을 뿌리까지 밀어 넣었다.

“아흐윽!”

배꼽 아래까지 찔린 세라가 허리를 꺾으며 고개를 젖혔다. 허벅지 안쪽까지 발발 떨리는 바람에 몸을 가누기가 힘들었다.

그런 그녀가 재밌는지 에단은 연신 낮은 웃음을 뱉었다.

“후우‚ 너만 보면 이렇게 서는데. 네가 관심 없을 땐 난 어떻게 해야 해?”

“흑‚ 흐으‚ 아아.”

“대답해 봐.”

그가 상체를 낮게 묻으며 그녀의 목덜미에 코를 묻고 숨을 들이켰다.

아‚ 빌어먹게 향기롭네.

늘 그랬듯이 그녀에게서는 은은한 제비꽃 냄새가 났다. 아까 그렇게도 물고 빨고 싸질렀는데도. 어느새 제 냄새는 휘발시켜 버린 듯이.

“이렇게 냄새만 맡아도 질질 싸는 친구도 있냐고.”

그 기분 좋은 향기를 또 한 번 더럽히듯‚ 그의 페니스가 점막 안에서 꿈틀대며 울컥 선액을 뱉었다.

[시스템: ‘에단 디아즈’의 속마음‚ ‘발정기’를 획득했습니다.

- ‘에단 디아즈’의 속마음 수집 상황 (2/3)]

몰아치듯 두 번째 속마음을 획득했다. 골반에 쏟아지는 얼얼한 둔통에 세라는 기뻐할 틈도 없었다.

“내가 미안‚ 흐윽‚ 해‚ 흑‚ 그‚ 그만.”

“울지만 말고 대답하라니까?”

그녀가 답이 없자‚ 에단이 신경질적으로 페니스를 뽑고 그녀의 몸을 돌려 눕혔다.

등을 붙이고 눕자 눈가에 고여 있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고 시야가 맑아졌다.

“너만 보면 꼴려서 박고 싶어 미치겠는데.”

눈앞에 취한 듯이 중얼거리고 있는 에단의 얼굴이 보였다.

자신을 나른한 눈빛으로 내려다보는 그의 모습은 꼭 발정을 겪는 짐승 같았다.

“친구 같은 한가한 소리나 하면서. 나 갖고 노니까 재밌었어?”

“지‚ 진작 마‚ 말하지‚ 흑‚ 그랬어. 아무 말 없이 그러는데 내가 어떻게‚ 흐윽.”

“그럼 내가 무슨 말을 하는데.”

그가 세라의 무릎을 넓게 벌리며 다시금 성기를 박아 넣었다.

“너한테 발정 났으니까. 절교하고 이제부터 보지나 대세요‚ 할까?”

더티 토크 스킬이고 뭐고. 다 소용없었다. 역대급으로 민망한 말이었다.

듣기에도 망측스러운 말 때문인지‚ 습격하듯 아래를 파고든 페니스 때문인지. 온몸이 펄펄 끓는 것 같았다.

귀 끝까지 새빨갛게 달아오른 그녀가 바동거리며 엉망으로 흔들렸다.

“하윽‚ 그‚ 그런 말 좀‚ 제발.”

“넌 되고 난 안 돼? 친구끼리 공평해야지.”

“흑‚ 흐으‚ 으응.”

박아 대는 힘이 보통이 아니었다. 그녀의 몸이 자꾸만 위로 밀려 올라가자‚ 에단이 그녀의 어깨를 팔로 눌러 껴안고 목덜미를 길게 흠빨았다.

“계속 너 원하는 대로 놀아났으니까. 지금부턴 내가 원하는 대로 놀아.”

애액으로 질퍽하게 젖은 음낭이 그녀의 음부를 쩍쩍 후려치며 달라붙었다가 떨어지길 반복했다.

세라는 몸을 비틀 힘조차 없었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에 그저 밑에 깔린 채 버겁게 들어찬 그의 페니스를 꾸역꾸역 받아먹을 뿐이었다.

파르르 떨며 꼼짝없이 늘어진 팔다리와는 달리‚ 내벽은 허덕거리며 그의 성기를 게걸스럽게 빨아 삼켰다.

“나 없어도 연락도 없이 잘만 살더니. 갑자기 내가 필요해졌어?”

에단이 그녀에 귓가에서 숨을 시근덕대며 물었다.

이건 무슨 말이지. 분명 세라가 계속 편지했는데도 답이 없어서 답답해했다고 했었는데.

이런 걸로 따져 묻자 누명을 쓴 것처럼 억울했다.

“하아‚ 펴‚ 편지. 편지했어. 계소옥‚ 윽.”

“무슨 말이야. 그게.”

“근데 네가‚ 흣‚ 답장을 안 했잖아.”

“난 그런 거 받은 적 없어.”

순간 에단의 눈빛이 흔들린 것을 보아하니 거짓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럼 엘레나가 중간에서 편지를 전하지 않았다는 걸까?

왜? 어떤 것 때문에?

갑작스럽게 알게 된 사실에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찬찬히 되짚어 보려고 해도‚ 내벽 안을 문대 오는 위태로운 감각에 이성적인 사고가 어려웠다.

[시스템: ‘에단 디아즈’의 속마음‚ ‘미수신 편지’를 획득했습니다.

- ‘에단 디아즈’의 속마음 수집 상황 (3/3)]

[시스템: 이제 ‘에단 디아즈’를 통해 그의 진실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제 에단이 입을 열 차례였다. 세라는 용쓰지 않고 다가올 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영광이네. 세라 에보트가 친히 친서를 보냈다니.”

“윽‚ 으으‚ 응.”

“넌 내가 바보로 보여? 다 그냥 너 좋을 대로 둘러대는 거짓말이잖아.”

“아니야. 거‚ 거짓말 아니‚ 흐응.”

세라가 아니라고 도리질 치는데도‚ 그는 아직 미심쩍은 구석이 있는 모양이었다.

“못 받았으니까. 그럼 네 입으로 말해 봐.”

“뭐‚ 뭘.”

“편지 내용 말이야.”

그걸 이쪽에서 알고 있을 리가 없었다. 뭐라고 말하지. 세라가 초조함에 입술을 물어뜯었다.

“봐. 또 할 말 없을 때 버릇 나오지.”

에단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이죽거렸다.

세라 에보트도 이런 버릇이 있었나?

어찌 됐든‚ 에단이 자신만의 결론을 내리기 전에 빨리 답변을 해 줘야 했다.

만약 내가 세라 에보트라면.

어느 날 갑자기 가장 친한 친구에게서 한마디 말도 없이 절교당했다면 어떻게 편지를 썼을까.

“…으응‚ 흣‚ 화 많이‚ 윽‚ 난 거야?”

“…….”

배가 눌린 상태로 가까스로 목소리를 쥐어짜 내자‚ 그가 삽입을 멈추고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조금 놀란 건지 동공이 커져 있었다.

“…말도 안 해 주고. 그러기야? 너 때문에 나도 섭섭해. 근데 네가 화난‚ 끅‚ 이유를… 알고 싶어…….”

예상치 못한 반응에 깜짝 놀라서 딸꾹질이 났다.

“눈치가 없어서… 미안‚ 끅.”

끅끅거리며 꾸역꾸역 답하는 모습에 에단이 픽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래도 여전히 들어주고는 있구나. 어떻게 말해야 그에게 위안이 될 수 있을까.

딸꾹질을 해 대면서도 세라는 에단에게 할 말을 계속해서 떠올렸다.

아마 이유를 모르니 더 답답했을 것이다. 대화하기 위해서 자신을 조금 내려놓기도 했을 테고.

“네‚ 네가 알려 주면‚ 흑. 내가‚ 끅‚ 생각해 보고‚ 사과를…….”

자존심 센 세라 에보트가 답도 오지 않는 편지를 여러 통이나 보냈을 때는 그런 사정이 있었겠지.

엘레나가 편지를 일부러 전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흔적 없이 없앴을 것이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세라는 에단이 가장 듣고 싶었을 법한 말을 해 주기로 했다.

세라는 자꾸만 끅끅 막히는 숨을 억지로 고르며 계속 답을 이어 갔다.

“…보고… 싶어…….”

“다시 말해 봐.”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에단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세라는 조금 더 또렷하게 말해 주고 싶었다.

“…보고 싶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입술이 촉‚ 붙었다가 떨어졌다. 숨결을 먼저 탐해 온 건 에단의 입술이었다.

“…다시.”

짧게만 맞물렸다가 떨어져 나간 입술에 세라는 묘한 갈증이 일었다.

“네가 그리워. 많이 보고 싶… 흐읍.”

이번엔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입술을 겹쳐 왔다. 커다란 손으로 두 뺨을 감싸 쥐고 꼼짝 못 하게 고정했다. 점막이 뒤섞이고 뾰족한 혀가 밀고 들어 왔다.

발정하는 뱀처럼 얽히고설키길 반복하다 다소 거칠게 파고들어 입천장을 핥았다.

제 쪽으로 빨아들이는 힘에 혀뿌리가 눌려서 침을 삼킬 수도 없었다. 미처 수습할 새도 없이 입가로 끈적한 액체가 줄줄 흘러내렸다.

마냥 굶주린 짐승같이 갈구하는 키스에 세라는 숨 쉴 틈도 없었다.

호흡이 모자라 현기증이 일었다. 세라가 가까스로 그의 가슴을 밀어내자‚ 그제서야 입술을 뗀 에단이 밭은 숨을 뱉었다.

“그래. 어차피 난 너 못 이겨.”

“하아‚ 하아‚ 끅‚ 하아…….”

“…네가 이러니까 좆 박고 있는 내가 더 쓰레기 같잖아.”

에단이 그녀의 양다리를 어깨에 얹고 다시 천천히 허리를 움직였다. 아직도 죽지 않은 그의 페니스가 꿈틀거리며 내벽을 무두질하듯 두들겼다.

조금이라도 더 많이 박아 대지 않고는 못 견디겠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출납의 속도가 헐떡거릴 정도로 빨라졌다.

음부가 난잡하게 헤집어지다 못해 흐물흐물해지는 느낌이 들 때쯤‚ 그의 선단이 안쪽의 흥분점을 꿰뚫듯 훌쳐 올렸다.

“아흐읏……!”

그녀의 등허리가 허공에 들리며 질 점막이 빠듯하게 조여들었다.

“나로는 안 되는 거야?”

에단이 눈가를 찡그리며 물었다.

“아래는 좋아서 꽉꽉 물어 대면서. 꼭 그 새끼한테 가야겠냐고.”

“에‚ 에단…….”

“저 새끼도 아직 안 갔네.”

정말이지 기이한 상황이었다.

바깥에는 아직도 문 앞을 떠나지 못한 펠릭스가 있었고‚ 그가 발작적으로 문을 두들겨 대는 소리가 아득하게 들렸다.

안쪽에서는 마치 그런 그를 비웃기라도 하듯 위험한 놀이를 벌이고 있었다.

젖은 살이 달라붙어 뒤섞이는 소리. 몸을 꿰뚫린 것 같은 위험한 감각. 목을 물어 눕힌 먹잇감의 눈빛이 꺼져 가는 것을 감상하듯 집요하게 들여다보는 까만 눈.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겁도 없이 저지르고 있는 불장난에 견딜 수 없는 배덕감이 일었다.

“어차피 난 저 새끼 대용품이잖아.”

“흐윽‚ 흐‚ 으‚ 으응. 아니‚ 윽.”

“나도 너처럼 몸만 따먹고 버릴 수 있으면 좋겠는데. 씨발‚ 병신 같아.”

그가 날 선 말을 지껄이며 신경질적으로 마른세수했다.

모순되게도 오히려 그런 모습이 자못 서글퍼 보였다.

세라는 그의 밑에 깔려 만신창이처럼 들쑤셔지면서도‚ 그의 물기 어린 목소리가 더 걱정스러웠다.

바람피우고 싶다니. 생각해 보면 그를 넘어뜨린 핑계가 참 졸렬했다.

퀘스트 때문이라지만 에단이 애초부터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면 오히려 잔인한 일이었다.

“저 새끼가 그렇게 좋으면‚ 지금이라도 놔줄 테니까 가.”

그가 어깨에 걸었던 그녀의 다리를 내려 주며‚ 선심 쓰듯이 도망갈 기회를 주었다.

치대던 페니스를 쑥 뽑아내자 새빨간 속살을 드러낸 질구가 아쉬운 듯 뻐끔거렸다.

세라는 자꾸만 애가 탔다. 몸 안을 가득 메우던 살 기둥이 갑자기 빠져나가자 아래가 텅 빈 것처럼 허전했다.

달아오른 열기를 어쩌지 못하고‚ 배꼽까지 치솟아 있는 그의 페니스에 젖은 음부를 연신 비비적거렸다.

성기끼리 찔꺽대며 비벼지는 난잡한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울렸다.

버거운 교접으로 흘러내린 눈물 때문에 두 뺨은 젖은 자국으로 이미 엉망이었다.

“다시 넣어 줘?”

에단은 끈적한 얼굴을 문질러 닦아 주며‚ 치덕치덕 엉겨 붙은 머리를 쓸어 넘겨 주었다.

“이렇게 질질 짜면서 좆 빼는 건 싫어?”

세라가 훌쩍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와락 그의 목에 매달렸다.

“난 분명 도망갈 기회 줬다.”

“…안 가. 무서워.”

이 꼴을 하고 나가면 펠릭스한테 또 어떤 보복을 당할지 모를 일이었다.

“총은 이쪽에 있는데 난 안 무섭냐?”

“…쏘‚ 쏠 거야?”

“애새끼도 아니고. 또 울지.”

에단이 기가 막힌 듯이 웃으며 그녀의 볼을 꼬집었다.

“따라와.”

그에 의해 몸이 일으켜지자마자 세라는 순식간에 문 앞까지 몰아붙여졌다.

뭐가 그리 무서운지 맹수에게 사로잡힌 초식 동물처럼 바들바들 떨어 댄다.

에단이 눈을 곱게 접더니 문 앞에 쿵 소리를 내며 기대앉았다. 문을 부술 듯이 쾅쾅거리던 소리가 순식간에 뚝 멈췄다.

“올라타.”

배꼽 위까지 올라붙은 좆이 꺼떡거리며 선액을 흘렸다.

“…….”

그녀가 아연한 얼굴로 머뭇거리자 사악하게도 잠금쇠에 손을 가져다 댔다.

“10초 안에 안 타면 열어 버릴 거야.”

“…아‚ 안 돼.”

“10‚ 9‚ 8…….”

숫자를 거꾸로 세자 세라가 화들짝 놀라 그의 위에 올라앉았다.

뭐가 그리 재밌는지. 킥킥거리며 웃는 모습이 꼭 미친놈 같았다.

“약혼자가 무섭긴 무서운가 봐.”

“지금은 네가 더 무서워.”

세라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사실 누구 하나가 무섭다기보다는 에단과 펠릭스 둘이 또 맞닥뜨리게 되는 상황이 무서운 거였지만.

“물고 빨던 장난감이 무서워져서 어떡해요?”

에단은 별일도 아니라는 듯이 그녀의 입술에 쪽 입을 맞추더니‚ 나른하게 올려다보았다.

“무서우면 알아서 박아.”

정말 여기서 이래도 될까?

펠릭스가 소리를 들으면?

아니‚ 이미 그녀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이마에 총이 겨눠진 채 저지른 행동을 생각하면‚ 그도 보통 미친 게 아니었으니까.

“7‚ 6‚ 5…….”

그녀가 잠시 머뭇대자 에단이 다시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복잡한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세라는 난처한 얼굴로 엉거주춤 무릎으로 몸을 지탱하며 여린 살을 서툴게 귀두에 맞추었다.

선단을 끈적한 아래에 문지르다 이내 풀썩 내려앉았다.

“…흐읏.”

입술을 깨무는데도 절로 교성이 샜다.

“후…….”

삽입부터 좆을 쥐어짜는 듯한 압박감에 에단도 탁한 숨을 뱉었다.

그가 입술로 그녀의 목덜미를 지분거리며 올라가서 귓가에 속살거렸다.

“못 가고 저 지랄할 만하네.”

“…응?”

“존나 맛있어‚ 너.”

민망한 말이 고막에 내리꽂혔다. 문 앞에서 성기를 맞물리고 있으면서도 그는 굳이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그저 비밀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소곤거리며 아슬아슬한 말을 쏟아 낼 뿐이었다.

“가슴 꺼내 봐.”

세라가 네글리제를 팔까지 내리고 새하얀 젖가슴을 비집어 꺼냈다.

그의 눈앞에 푸지게 물오른 살덩이가 출렁거리며 튀어나오자‚ 못 참겠는지 바로 담뿍 베어 물었다.

“으응. 응.”

앙증맞은 젖꼭지를 입에 넣자 끙끙거리며 작게 앓는 소리를 냈다.

에단은 한 손으로는 그녀의 가느다란 허리를 받쳐 안고‚ 다른 손으로는 빨지 않는 쪽을 주무르며 말랑한 젖가슴을 맛보았다.

쭙‚ 쭙. 젖꼭지를 물고 빠는 소리가 노골적으로 크게 들렸다. 혹시라도 밖으로 샐까 봐 조마조마해서 발끝만 동동거렸다.

그런들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에게 몸이 위아래로 묶여서 어쩌지도 못하고 어깨만 바르르 떨 뿐이었다.

보란 듯이 젖가슴 위에 순흔을 남기던 에단이 픽 웃더니 자꾸 흔들리는 그녀의 어깨를 빠득 깨물었다.

“흣.”

“뭐 해. 움직여야지.”

“어‚ 어딜?”

“박으라고.”

그는 잠시도 그녀를 가만두지 않았다.

“아니면 저 새끼한테 젖 빨리는 거 보여 줄까?”

그가 또 사악한 말을 하며 그녀를 괴롭혔다.

그녀가 고개를 휘젓더니 엉덩이를 조금씩 움직였다. 젖은 살이 뒤엉키는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려왔다. 위에서 해 본 적이 별로 없는지 어설픈 몸짓이었다.

“넣은 거 보자.”

그가 치맛자락을 걷어 올려 음부를 보이게 했다. 여린 살이 퉁퉁 부어서는 육중한 페니스에 꿰뚫린 채‚ 이리저리 엉덩이를 뒤틀고 있었다.

“왜 이렇게 뒤뚱거려.”

“다리 아파.”

푹신한 침대도 아니고 맨바닥이었다. 무릎으로 짚기도 아프고‚ 쪼그려 앉자니 근육 하나 없는 세라의 다리는 버텨 내질 못했다.

“쓸모없기는.”

어이가 없어서일까. 그가 연신 실소했다. 해 보자고 먼저 꼬실 땐 언제고. 저를 꼴리게 하는 것 빼고는 도통 제대로 하는 게 없었다.

생각해 보면 어릴 때부터 그랬다. 늘 일을 벌이는 건 그녀였지만 뒷수습은 자신의 몫이었다.

한번 각 잡고 반대로 놀아 보려는데‚ 도통 협조가 안 된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직접 나설 수밖에.

“목 안아.”

에단의 명령에 세라가 순순히 그의 목을 껴안았다.

“흣.”

쿵‚ 그가 허리를 쳐올리자마자 그녀의 눈가가 이지러졌다. 체중이 실려 평소보다 더 깊게 찔러 들어오니 당황한 모양인지‚ 살 기둥을 밀어내듯 허벅지를 와락 오그라뜨렸다.

“끊어 먹겠네.”

“흐으‚ 으.”

“힘 빼야지.”

그가 상냥하게 머리칼을 넘겨 주고는 천천히 허리를 들썩거렸다. 척척 성기가 엉켜 뒤척이는 소리가 들렸다.

내려앉을 때마다 뽀얀 둔부가 허벅지 위에 납작하게 뭉개졌다. 정욕이 끓어오르는지 그가 큰 손으로 세라의 엉덩이를 양손으로 마구 주물렀다.

말캉한 가슴이 입만 대면 닿을 거리에서 출렁거렸다. 한때는 닿기만 해도 피가 몰렸던 야속한 살덩이였는데. 이젠 마음만 먹으면 맛볼 수 있었다.

동그란 살덩이가 눈앞에서 숨 가쁘게 오르내리고‚ 분홍색 젖꼭지가 빨아 달라는 듯 자꾸만 얼굴을 스쳤다.

에단은 좆을 박아 넣으면서 그녀의 젖가슴을 정신없이 물고 빨았다. 볼이 홀쭉해질 정도로 쭉쭉 빨아 당길 때마다 질 내벽이 움찔움찔 좆을 물었다.

유륜을 입술로 감아 물고 혀끝으로 유두를 할짝할짝 핥아 올리다 잇새로 잘근거리자 세라가 자지러지는 소리를 냈다.

“흐으응! 흡!”

제가 낸 소리에 스스로 놀랐는지 입을 확 틀어막는다. 에단이 그녀의 손을 떼어 냈다.

“소리 참지 마.”

“좀 부끄러워.”

“밑에 깔려선 잘만 앙앙거리더니. 이제 와 부끄러워?”

시선이 자꾸 문 쪽을 향하는 걸 보니‚ 펠릭스 때문이라는 걸 에단도 눈치챌 수 있었다.

“봐주니까 집중 안 하지.”

“…미안.”

세라는 에단의 텅 빈 눈을 보고는 또 금세 시무룩해져서 사과했다.

아까부터 쾅쾅거리던 소리가 멎었으니 또 그게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었다.

경계하는 초식 동물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귀를 쫑긋거리는 그녀를 보자 에단은 못 견디게 괴롭히고 싶어졌다.

“그 새끼가 갔을 거 같아?”

“모‚ 몰라…….”

“아마 눈이 뒤집혀서 귀 대고 있을걸.”

그가 그녀에게 속삭이듯 귓속말했다.

“응?”

“너 자지러지는 소리 듣고 죽고 싶거나. 아니면.”

그의 입꼬리가 길게 호선을 그렸다.

“수음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에단이 성기를 빼고 그녀를 일으켜 세우더니 문 앞에 쾅 몰아붙였다.

등허리에 느껴지는 얼얼한 둔통에 세라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저 새끼한테 직접 들려줘.”

“흑‚ 흐‚ 뭐‚ 뭘.”

그가 세라의 몸을 홱 돌려 문을 향하게 깔아 누르더니 사악하게 속삭였다.

“소꿉놀이가 얼마나 재밌는지.”

순식간에 엉덩이가 뒤로 들리고 단단한 성기가 밀고 들어왔다.

“흐읍!”

“참지 말라고 했잖아.”

세라가 또 입을 틀어막자 그가 손을 떼어 내며‚ 아예 양팔을 뒤로 붙잡아 버렸다.

그리고 못질하듯 거세게 쿵‚ 쿵 박아 넣었다. 엉치뼈부터 척추를 타고 골까지 뒤흔드는 강한 자극에 무릎이 자꾸만 푹푹 꺾였다.

“흐응! 응! 으응!”

퍽‚ 퍽‚ 퍽 박아 넣을 때마다 양팔을 뒤로 붙들린 세라는 그 우악스러운 몸짓에 고개를 젖힌 채 목놓아 신음했다.

“옳지. 좆 줄게. 울지 마.”

에단은 사냥감의 마지막 발악을 감상하듯 유유히 내려다보며 허리를 움직였다.

그래. 소꿉장난이 끝나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놈 품에 돌아가겠지. 에단은 제 처지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그 빌어먹을 놈은 고귀하신 공작이고‚ 그녀의 혼약자였다.

처음에는 주제도 모르고 그녀에게 발정하는 몸을 혹사라도 해 보면 나아질까 싶어 뛰고 또 뛰고‚ 팔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을 때까지 검을 휘둘렀다.

그 모습이 멋있다며 눈을 빛내는 그녀가 좋았고‚ 한 번이라도 더 그 얄궂은 말을 듣기 위해 미친 듯이 훈련했다.

다 지나가는 열병일 거라고. 그냥 잠깐 회까닥해서 착각에 빠진 거라고 되뇌며.

그녀를 머릿속에서 지워 버리기 위해 본격적으로 시작한 검술인데. 결국 또 세라 에보트로 귀결되었다. 구제 불능이었다.

그러나 소드 마스터가 되든. 기사단장이 되든. 장난감 주제에 주인을 탐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꼴같잖은 혼약이란 걸 하고 나서는 고 작은 입술에서 한숨이 나는 날이 많아졌다.

그녀와 붙어 다니며 아무리 열심히 뒤치다꺼리해도‚ 세라는 얼굴 한 번 보기 힘든 그놈 때문에 또 힘들어하고 속앓이했다.

제 세상엔 세라가 전부인데. 업으라면 업고‚ 안으라면 안고. 그녀가 시키는 건 뭐든지 하는데.

그놈 때문에 우는 건 도무지 어떻게 해 줄 수가 없었다. 마치 딴 세상에 있는 사람처럼 멀게만 느껴질 뿐이었다.

엘레나가 펠릭스 세르반테스와 만난다는 걸 알았을 때‚ 졸렬하게도 세라의 혼약이 엎어지길 바랐다.

바람피우고 싶다는 꼴같잖은 핑계로 입을 맞추고 안겨 올 때도 그랬다.

지쳤다는 말에 실낱같은 희망을 품었고‚ 입 맞춰 달라고. 넣어 달라고 보챌 때는 눈이 돌아 미쳐 버릴 것 같은 걸 꾹 참았다.

“너도 나랑 노는 게 더 재밌잖아.”

“흐응! 으으응!”

“입 맞춰 달라면 키스해 주고. 넣어 달라면 좆물 싸 주고. 얼마나 좋아.”

예쁜 젖가슴이 문에 사정없이 뭉개지고‚ 잔뜩 웅크린 목덜미가 파르르 떨렸다.

쿵‚ 쿵쿵‚ 쿵!

역시나 펠릭스는 아직 문 앞에 있었다. 밖에서 또 문을 미친 듯이 두들겨 대며‚ 목이 쉬도록 고래고래 절규에 가까운 욕설을 내뱉었다.

젖은 살이 뒤섞이는 마찰음과 흥분으로 우는 소리. 문을 덜컹거리며 제 여자에게 다른 좆을 박아 넣는 소리.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모든 게 펠릭스 세르반테스를 미치게 만드는 데 부족함이 없을 터였다.

우스운 일이었다. 그동안 그렇게 내팽개쳐 둘 땐 언제고. 다른 놈 품에 안기니 그제야 목매는 꼴이라니.

이제 와 발악해도 소용없는 짓이었다. 펠릭스가 문을 두들겨 댈 때마다 좆이 더 깊이 박히고‚ 교접은 더 짙어졌으니까.

세라는 기절할 것 같았다. 감당하기 힘든 자극에‚ 문과 품 사이에 갇힌 그녀의 몸이 자꾸만 무너져 내렸다.

“…저 새끼한테 가지 마.”

도망치려는 것처럼 엉덩이를 뒤틀고 빼는데도‚ 에단은 그녀를 품에 잡아당긴 채 뱀처럼 칭칭 옭아맸다.

“아흐으……!”

질 내벽이 한계까지 조여 대며 그의 좆을 터뜨릴 듯 움켜 안았다. 세포가 뒤틀리는 듯한 흥분에 세라의 전신이 벌벌 떨렸다.

“아아앙!”

단말마의 비명처럼 날카로운 비음이 허공에 흩어지자‚ 턱턱 살갗을 부딪치던 교접음이 점점 느려졌다.

이제는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바들바들 떠는 그녀를 움켜 안고 그도 긴 숨을 뱉었다.

안에서 달음박질치던 그의 좆이 진퇴를 멈춘 채 크게 꿀렁거렸다. 허벅지 안쪽이 뻣뻣하게 굳어지더니 선단에서 따뜻한 파정액이 뿜어져 나왔다.

배 속에 씨물을 뿜어댈 때마다 가늘게 움찔거리는 세라를 보자‚ 페니스가 죽기는커녕 다시 단단해지는 걸 느꼈다.

쾅! 쾅쾅!

문은 여전히 곧 허물어질 듯이 덜컹거렸다.

뭐가 그리 겁나고 무서운 건지. 제발 그만 놔 달라는 듯‚ 세라가 지친 눈으로 에단을 돌아보았다.

“…왜. 어떻게 해 줄까.”

빌어먹게도. 아무리 마음을 굳게 먹어도. 저 눈빛은 도무지 당해 낼 재간이 없다.

야속해서 벼랑까지 몰아붙이고 싶어도 저 눈빛 한 번‚ 손길 한 번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다 해 줄게. 안으라면 안고. 업으라면 업고. 옆에 있으면서 너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에단은 벌벌 떠는 그녀의 몸을 돌려 꼭 끌어안았다.

“…가지 마.”

그녀가 그의 목에 매달리며 아이처럼 얼굴을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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