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5. 우아한 개새끼의 사정 (6/17)

05. 우아한 개새끼의 사정

펠릭스 세르반테스는 세르반테스 공작의 사생아였다. 세르반테스의 장남이 병으로 죽었을 때‚ 공작 부인은 이미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었다.

그녀는 공작에게 또 다른 정부를 들이는 대신‚ 하녀 소생인 펠릭스를 후계자로 택할 것을 요구했다. 그녀의 결벽에 가까운 성미에 비추어 볼 때‚ 제 인생의 오점은 펠릭스 하나로 족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모두가 그녀의 자비로운 결정을 칭송했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랬다. 하지만 귀족들은 펠릭스가 사교계에 등장할 때마다 고고한 척하는 공작 부인의 불행을 내심 비웃었다. 뼛속부터 귀족이었던 그녀 또한 그 시선을 모를 리 없었다.

“여전히 덜떨어진 행동을 하는구나. 네 어미를 닮은 게지.”

결국 모든 화살은 늘 펠릭스에게 돌아왔다.

“세르반테스의 이름에 먹칠을 하려거든 한 발자국도 나오지 말거라.”

사교 행사에 다녀오는 날이면 방 안에 며칠이고 갇혀서 예법을 배워야만 했다. 손님이 오거나‚ 세르반테스 공작 부인의 눈에 거슬리는 구석이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세르반테스의 반쪽짜리 공자.

그런 그에게 세라 에보트는 돌이켜 보면 시작부터 마음에 안 드는 여자애였다.

공작저에서 정찬이 있던 날 그녀를 처음 만났다.

곱게 자란 여자아이. 펠릭스보다 두 해 늦게 태어났다고 했으니까‚ 여덟 살 정도일 터였다.

누가 에보트의 금지옥엽 아니랄까 봐. 값비싼 인형을 안고‚ 다 큰 숙녀보다 사치스러운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버릇없게도 후작 품에 매달려 있다가‚ 제 차례가 되자 인형을 맡겼다.

“세르반테스 공작 부인을 뵙습니다. 에보트 후작의 여식‚ 세라 에보트입니다.”

그러나 발이 바닥에 닿는 순간 이렇게 완벽한 귀족식 인사를 구사했다.

펠릭스는 수백 번‚ 수천 번 연습하고도 지적받는 인사인데. 마치 타고난 것처럼 자연스러운 몸짓이었다.

“어머나‚ 귀여워라.”

“앙증맞기도 하지.”

“후작께서는 이런 사랑스러운 따님을 두셔서 행복하시겠습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귀부인들의 칭송이 이어졌다.

본디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소녀는 누구에게나 귀여운 법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귀여운 짓을 할 줄 알았다.

꼭 인형 같은 차림새를 하고‚ 머리에 큰 리본을 맨 채 앙증맞게 인사하는 모습을 싫어할 귀부인은 없었다.

모두가 세라 에보트를 예뻐했다. 자신에게는 싸늘하기 그지없었던 세르반테스 공작 부인 또한 마찬가지였다.

“제 어머니께서도 공작 부인처럼 아름답고 기품 있는 분이셨을까요? 세라는 얼굴도 본 적이 없어요.”

세라 에보트는 큰 눈을 올려 뜨며 가증스럽게 물었다. 그 꼿꼿한 여자가 무리의 우두머리라는 것을 직감한 모양이었다.

“안쓰럽기도 하지. 이리 오세요.”

그게 또 세르반테스 공작 부인의 마음을 동하게 했다. 반죽도 좋지. 세라 에보트는 그녀의 품에 답삭 안겼다.

“나는 늘 적적하니 자주 놀러 오세요‚ 에보트 영애.”

“정말요?”

“그럼요. 같이 차도 마시고 이야기도 나누어요.”

“너무 기뻐요. 그렇게 해 주신다면 엄청난 영광일 거예요.”

정말 설레하는 모습이었다.

“영광은요. 에보트 영애처럼 귀여운 꼬마 손님이 오면 나도 즐거울 거예요.”

“저어‚ 공작 부인께 청을 하나 드려도 될까요?”

“어떤 것을요?”

“세라라고 불러 주세요.”

정확히 말하면 세라 에보트는 영악한 계집이었다.

손님이 올 때마다 살얼음을 걷는 것 같았던 펠릭스는 그 애가 달갑지 않았다.

***

그 후‚ 그 재수 없는 에보트의 여자애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자주 드나들었다. 세르반테스 공작 부인을 어떻게 구워삶았는지.

그 애는 어느새 펠릭스의 혼약자가 되어‚ 방으로 방문하기 시작했다.

“소공작님.”

세라가 자그마한 손을 내밀었다. 진귀한 색색의 사탕이 한가득 들어 있었다.

“뭔데‚ 이게.”

“달콤한 사탕이에요. 자‚ 여기.”

세라가 꼼지락대더니 껍질을 까서 건넸다. 단내가 확 풍겼다. 펠릭스는 자기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어서요. 아버지께서 멀리서 사다 주셨는데 저도 하루에 한 개씩만 먹어요.”

왜 이런 쓸데없는 친절을 베푸는 거지. 뭐 때문에? 내가 저 유복한 여자아이에게 뭘 줄 수 있어서?

저도 아끼던 것을 나눠 주는 모양새였지만 부아가 치밀었다.

“필요 없어.”

“네? 그렇지만 엄청 맛있는데.”

“됐다니까?”

펠릭스가 버럭 신경질을 냈다. 그러자 왕방울만 해진 세라의 눈을 보고 조금 민망해졌다.

“그‚ 그러니까. 세르반테스는 이런 거 안 먹는다고.”

“그렇구나.”

세라는 생각보다 쉽게 수긍했다.

“근데 소공작님‚ 여기 우리밖에 없어요.”

잠깐 시무룩한 표정을 짓더니 다시 눈을 빛냈다. 구제 불능이었다.

“뭐?”

“아무도 안 보니까 딱 한 개만요. 응?”

“…….”

“오늘 일은 비밀로 할게요. 그러니까…….”

“시‚ 싫다니까!”

도르륵. 팔을 뿌리치면서 내팽개친 사탕이 바닥에 굴러떨어졌다.

어쩌지. 울음을 터뜨리려나.

심장이 쿵쾅거렸다.

버럭 화를 내다니. 귀족답지 못한 상스러운 행동이었다. 여자애를 울렸다는 게 알려지면 또 방에 갇히고‚ 매질을 당할 터였다.

난처했다. 펠릭스는 아닌 척하면서도 안절부절못하며 세라의 눈치를 살폈다.

“…….”

세라는 잠시 아연한 얼굴로 쳐다보더니‚ 곧장 몸을 굽혔다. 망설임 없이 쪼그려 앉아서는 떨어진 사탕 알을 주섬주섬 줍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망측한 짓일까. 그녀는 결코 굽히는 법도‚ 굽힐 일도 없던 에보트의 귀한 외동딸이었다.

“…뭐‚ 뭐 하는 거야?”

“치우려고요.”

“그래도 이런 건 하녀들한테…….”

“들키면 혼나시잖아요.”

“감히‚ 날 동정하는 거야?”

“아뇨. 전 동정 같은 거 안 해요.”

세라가 당차게 고개를 저었다.

“저도 공작 부인께서 화내시는 건 무서워서요. 우리 아빠도 못 이기는 분이시니까.”

말하는 동안 세라는 사탕 알을 다 주웠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그럼 오늘은 이만 돌아갈게요. 쉬세요.”

날 때부터 귀족이라면서. 자존심도 없나? 그 모욕을 당하고 아랑곳도 하지 않다니. 어이가 없었다.

“세라 에보트.”

펠릭스는 문 앞에 선 세라를 불러 돌려세웠다.

“네?”

신경질이 날 정도로 아무렇지 않은 얼굴이었다. 울컥 화가 치밀었다.

“난 너 싫어.”

다소 직설적인 표현에 잠시 멈칫한 세라가 옅은 숨을 내쉬었다.

“그랬구나. 전 그저 수줍음이 많으신 줄 알았거든요.”

“…….”

“난감하게 됐네요. 전 소공작님이 좋은데.”

“왜?”

펠릭스가 헛웃음을 뱉었다.

“내 몸에 천한 피가 흐른다는 건 후작도 모르지 않을 텐데.”

“그런 건 관심 없어요. 전 남들과는 기준이 달라서.”

“뭐?”

“소공작님은 예쁘잖아요. 전 예쁜 게 좋은데‚ 다른 애들은 못생겼거든요.”

귀족가 여식의 입에서 나온 말치고는 다소 황당한 이유였다.

“아버지께서 고위 귀족은 어릴 때부터 혼처를 정해 두어야 한대요. 그래서 고민해 봤는데‚ 소공작님은 커서도 잘생겼을 것 같아요.”

“지금 날 놀리는 거야?”

“그럴 리가. 칭찬이에요.”

“어쨌든 난 너 싫어.”

“안됐네요.”

“뭐?”

“소공작님은 제가 싫고. 전 갖고 싶은 걸 못 가져 본 적은 한 번도 없고.”

“…….”

그의 굳은 얼굴을 본 세라가 입술을 비틀며 웃었다

“어떻게 되는지 보자고요.”

재밌겠네. 세라가 중얼거렸다. 자신감 넘치게 이죽대는 모습을 보자 더 약이 올랐다.

“남들이 그러는데‚ 에보트는 이름만 귀족이지 약삭빠른 장사치래요.”

“나한테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거지?”

“전 신경 안 써서요. 자기가 뭘 원하는지도 모르는 멍청이들보단 낫죠.”

“…….”

“좋은 물건은요. 원하면 바로 가져야 한대요. 안 그럼 놓치거든요.”

“감히 건방지게 날 가르치려 들어?”

“그럴 리가요.”

그가 뾰족하게 날을 세우거나 말거나. 세라는 옅게 웃었다.

“그럼 다음에 뵈어요.”

그녀가 짧은 인사 후 방을 나섰다.

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펠릭스는 다리에 힘이 풀려 철퍼덕 주저앉아 버렸다.

천박하게 바닥에 주저앉다니.

펠릭스는 제 행동에 자기가 놀라 움찔 어깨를 떨었다. 아무도 보지 않아 천만다행이었다.

난리 통에 들춰 올라간 소매 아래로 시퍼런 멍 자국이 보였다. 설마 이걸 본 건 아니겠지. 펠릭스의 낯이 확 달아올랐다.

부끄럽다. 수치스럽다. 형편없는 민낯이 드러난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다.

동정하는 게 아니라더니.

그럼 비웃은 건가?

그때 발치에 무언가 닿았다. 멍청하긴. 세라가 미처 줍지 못한 사탕이었다.

펠릭스는 사탕을 먹어 본 적이 없었다. 세르반테스 부인이 단것을 금지했기 때문이었다.

그래. 냄새.

냄새만 맡으면.

홀린 듯이 껍질을 까자 단내가 훅 풍겼다. 꼴깍. 군침이 넘어갔다. 바닥에 떨어졌지만‚ 먹는 데는 지장이 없을 터였다.

두리번거리며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펠릭스가 사탕을 입에 넣었다. 입 안에 달콤함이 가득 퍼졌다.

“세라 에보트.”

사탕을 입 안에 굴리며 그 건방진 계집의 이름을 불러 보았다.

한낱 어린아이 주제에 갖고 싶은 걸 못 가져 본 적이 없다니.

욕심을 거침없이 드러내던 그녀의 모습은 맹랑하기 그지없었다. 어딘지 억눌리고 모든 욕구를 거세당한 채 살아남아야 했던 스스로와는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 같았다.

문득 정체가 불분명한 감정이 치밀었다. 펠릭스는 그게 무엇인지 천천히 곱씹어보았다.

동경일까.

아니 혐오였다.

그따위 걸 동경하는 스스로에 대한 혐오였다.

“악마.”

혀끝에서 느껴지는 감촉이 다디달았다. 펠릭스는 죄책감과 비슷한 희열에 젖었다.

그 애는 악마가 틀림없었다. 남몰래 단걸 물리고‚ 제 안을 자괴감으로 좀먹게 하는 마귀.

누릴 수 없는 쾌락인데. 눈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흔드는 세라 에보트가 끔찍했다.

***

그 후로 저택에서 그녀를 둘이 따로 만난 적은 없었다. 펠릭스가 피했고‚ 그녀도 딱히 귀찮게 하지 않으려는 것 같았다.

오직 혼약자로서 공식적인 자리에서만 만났다. 그마저도 펠릭스가 아카데미로 들어가게 되면서 소원해졌다.

긴 공백의 시간 동안 이름뿐인 약혼 관계가 이어졌다.

결국 선대 공작이 죽고‚ 그가 작위를 받으면서 따로 만날 일조차 사라졌다. 에보트 후작가에서 종종 만남을 청해 왔지만‚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거절했다.

그러던 어느 날‚ 황궁에서 치러진 데뷔탕트에서 그녀를 다시 만났다.

세라 에보트는 여전히 찬란했으며‚ 갓 피어난 꽃봉오리처럼 모두의 눈길을 끌었다.

“끔찍해.”

그리고 펠릭스는 여전히 세라 에보트를 경멸했다.

***

그러니까 처음부터 이러려던 건 아니었다. 분명히 대화만 나누려고 했었는데…….

“하아‚ 페‚ 펠릭‚ 흐읍.”

방에 들어오자마자 입술이 맞물렸다. 이름을 부르려고 해도 그의 사나운 숨결에 잡아먹혀 호흡조차 힘들었다.

아까부터 펠릭스는 다소 성마르게 굴었다. 그 모습이 마치 충분히 달래고 있는데도 보채기만 하는 어린아이 같았다.

애초부터 세라는 왜 그렇게 펠릭스에게 매달리게 된 걸까.

그리고 지금‚ 펠릭스는 왜 이렇게 맹목적으로 매달리고 있는 걸까.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였다.

한참이나 약탈과 같은 입맞춤이 이어졌다. 거칠게 미끄러져 들어온 혀가 입 안을 휘저으며 그녀를 빨고‚ 또 빨아 댔다.

또 달아날까 겁이 나는 걸까. 그는 어쩐지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천하의 세르반테스가 대체 왜?’

물론 남녀 사이에 몸 정이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겨우 하룻밤 사이에 이렇게 된다고? 그동안 싫어한 세월이 있는데. 이럴 수가 있나?

‘숨 막혀.’

허리를 단단히 옥죈 그의 팔이 꼭 족쇄처럼 느껴졌다. 벗어날 생각조차 말라는 듯이 몸을 감아 오는 압박감에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먼저 파혼을 요구한 건 펠릭스였다. 원하는 대로 다 들어주었는데 대체 왜 이러는 거지. 좀처럼 이해가 가질 않았다.

“하아‚ 하아…….”

세라는 가까스로 그의 가슴을 밀어냈다. 아쉬운지 윗입술을 핥는 그의 눈이 풀려 있었다.

아무래도 뭔가 잘못 건드린 것 같았다. 취한 사람처럼 불안한 동공에서 낯선 살기마저 느껴졌다.

“수‚ 숨이 막혀서요.”

그녀가 황급히 변명할 거리를 찾았다.

“아아‚ 미안.”

그는 픽 웃으며 짧게 입을 맞추더니‚ 목으로 내려와 짙은 입맞춤을 뿌렸다. 귓가에 더운 숨이 쏟아지자 아랫배가 간질거렸다.

아까부터 그는 오직 가운만 입은 상태였다. 술이 덜 깨서일까. 아니면 키스 때문일까. 가운 사이로 맞닿은 몸이 뜨거웠다.

가운 아래로 그의 단단한 몸과 거대하게 부푼 성기가 느껴질 때마다‚ 아슬아슬한 감각에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페‚ 펠릭스‚ 자‚ 잠깐…….”

이건 위험하다. 이대로 가다가는 같이 회까닥해서 대화 같은 거 못 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펠릭스와는 이미 파혼한 사이였다. 이미 내려갈 수 있는 조건을 달성했는데 굳이 이럴 필요가 있나?

시스템이 힌트를 더 찾으라고 했고‚ 지금 필요한 건 대화였다. 그런데도 그를 받아 주고 있는 건 그가 불안정해 보여서였다.

“흐으‚ 펠릭스.”

세라가 애원하듯 그의 이름을 불렀다.

“왜.”

그가 몽롱한 목소리로 답했다.

“저‚ 아무래도 우리 이러면 안 될 것 같아요.”

“이유가 뭐지.”

“우린 파혼했잖아요.”

“파혼?”

“네. 다 약속대로 해 드리기로 했고…….”

“동의한 기억 없는데.”

막무가내였다. 갑자기 파혼을 무르겠다니. 파혼하자고 하니 화를 낼 때부터 좀 이상하긴 했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나올 줄은 몰랐다.

세라는 그에게 무슨 심경의 변화가 생긴 건지 궁금했다.

“하지만 먼저 파혼을 원한 건 당신이잖아요?”

“그랬지.”

그는 자신의 변덕을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치 약 올리듯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근데 네가 원하면 해 주기 싫어.”

이건 명백한 심술이다.

세라는 그의 대책 없는 반응에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뱉었다.

다른 여자까지 들먹여 가며 파혼을 재촉하던 사람이 맞는 걸까. 나 갖기는 싫고 다른 사람 주기는 아까운‚ 그런 심보일 수도.

물론 이쪽도 그런 심리를 노려 그를 정복한 건 맞았다. 하지만 결코 이런 결말까지 원했던 건 아니었다.

‘좋아‚ 잘생기고 절륜하고 다 좋은데. 난 탈출해야 한다고!’

세라가 속으로 절규하거나 말거나. 펠릭스는 그녀의 목덜미를 끈질기게 흠빨았다.

“가‚ 간지러워요. 그‚ 그만…….”

설마 상대를 괴롭히면서 만족을 느끼는 그런 부류인 걸까?

세라는 자꾸 아득해지는 정신을 잡기 위해 어깨를 비틀었다.

“자‚ 잠깐만 좀!”

결국 각고의 노력 끝에 겨우 품에서 풀려났다. 그녀가 밭은 숨을 내쉬며 양손으로 그의 뺨을 고정했다.

“우리 대화하기로 했잖아요?”

“코트부터 돌려주면.”

“돌려줄게요. 일단은 얘기부터 하고…….”

“지금 줘.”

품이 넉넉한 코트를 입어서인지 벌어지는 틈새로 보이는 새하얀 살결 때문에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그가 갈급하게 그녀의 코트를 벗겼다. 새하얀 여체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순식간에 발가벗겨진 세라는 화들짝 놀라 손으로 제 가슴을 가렸다.

“왜‚ 왜 벗겨요!”

“이미 다 봤는데 새삼스레.”

펠릭스가 벗긴 코트를 아무렇게나 집어 던지며 히죽거렸다.

“하지 말아요.”

가슴을 가린 손을 떼어 내려 하자 그녀가 눈을 치켜떴다. 그 모습이 귀여운지‚ 그가 입술을 비틀며 웃었다.

“물고 빨고 할 건 다 해 놓고‚ 이제 와 부끄러워?”

“뭐‚ 그땐 술도 먹었고. 지금과 상황이 다르니까요.”

“한잔 더 할까.”

“미쳤어요? 나 머리 아파요. 어제 너무 과음했다고요.”

“그럼 술 대신 입술도 좋고.”

그것도 방금 실컷 먹었잖아!

답하고 싶었으나 또 한 번 입술이 잡아먹혔다.

나른하게 웃으며 다시 입술을 탐하는 모습이 꼭 발정에 취한 짐승 같았다.

밀어내기 위해 손을 쓰려니 가슴이 보일 테고. 그럼 또 저 변태가 눈을 시뻘겋게 뜨고 달려들 테고.

안 쓰려니 속수무책으로 진한 키스를 당해야 하고. 하다 보면 또 흥분에 취해 달려들 테고.

이러나저러나 결론은 같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문제인 건 자꾸만 끈적하게 젖어 드는 다리 사이였다.

‘하아‚ 이 몸은 진짜 눈치도 없이 왜 이러는 거야.’

이럴 때가 아닌데. 습격당하는 것처럼 강압적인 키스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젖은 거 알면 더 난리를 칠 텐데.’

그것도 뭐‚ 나쁘진 않을 것 같고.

‘원래 이런 쪽 취향이던가?’

욕하면서 자꾸만 보게 되는 통속극처럼. 막무가내라는 걸 알면서도 흥분되는 건 뭘까.

세라는 그동안 몰랐던 새로운 취향에 눈을 뜬 것 같았다.

‘어차피 잘생긴 놈이랑 섹스하는 게임인데. 그냥 정신 놓고 즐길까.’

체액으로 젖어 가는 그곳처럼 슬슬 자기 합리화에 젖어 가던 그때였다.

[시스템: 경고! 그가 당신을 감금한 범인일 수도 있습니다.]

[시스템: 미션! ‘펠릭스 세르반테스’의 속마음을 수집하세요.

- 현재 ‘펠릭스 세르반테스’의 속마음 수집 상황 (0/3)

- 실패 시: 사망.]

누가 ‘하드 모드’ 아니랄까 봐. 시스템은 세라를 가만두지 않았다.

‘하 씨‚ 그냥 즐기는 꼴을 못 보지.’

실패 시 사망이라니. 어떻게 눕힌 펠릭스인데. 유독 자신에게만 가혹한 시스템이 원망스러웠다.

“스스로 이야기할 마음은 없는 것 같고.”

“아마도.”

“지금부터 당신에게 질문을 할 건데‚ 답변이나 해 주세요.”

“내가 왜 그래야 하지.”

역시 호락호락할 리가 없지.

이렇게 된 이상‚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

세라는 자꾸만 날아가려는 이성을 가까스로 붙잡고‚ 좀 더 주도적으로 키스했다. 혀를 미끄러뜨리고‚ 점막을 비비며 더 깊은 곳까지 파고들었다.

더듬더듬 걷다가‚ 급기야는 그를 벽으로 쾅! 밀어붙였다.

“제법인데‚ 세라 에보트.”

박력이 마음에 드는지‚ 펠릭스가 그녀의 허리를 더 세게 끌어안았다.

“좋아해요‚ 이런 거?”

“응‚ 그런가 봐. 좆이 터질 것 같아.”

“취향 참 구제 불능이네요.”

“그럼 구제 불능 좀 만족시켜 봐.”

이거지. 이런 반응을 기다렸던 세라가 눈썹을 치켜뜨며 웃었다.

“예쁜 짓 하나당 대답 하나‚ 어때요?”

“괜찮네.”

좋아. 드디어 마음껏 질문할 권한을 얻었다. 펠릭스는 흥분에 취해도 더 큰 흥분을 위해 대답을 해 줄 것이다.

세라는 그의 귓바퀴를 느른하게 핥다가‚ 잘근거리며 깨물었다.

하아‚ 하는 소리와 함께 입가로 터져 나오는 숨이 뜨거웠다. 그녀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내가 원하면 해 주기 싫다고 했고. 파혼을 철회하면 놔줄 거예요?”

“얕은수 쓰지 마.”

펠릭스는 당분간 그녀를 놔줄 맘이 없는 것 같았다.

정리하자면 그는 약혼을 말하자 파혼을 요구했고. 파혼을 요구하자 그걸 거부했다.

결국 그한테 중요한 건 약혼이 아니었다. 그는 약혼 자체보다 세라의 뜻을 무너뜨리는 것에 더 관심이 있는 것 같았다.

“날 갖고 싶어진 건가요?”

“질문 두 개는 반칙이야. 예쁜 짓 하나 더 해.”

역시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세라가 그의 목을 타고 내려가 깊게 키스했다.

“이렇게요?”

“약해.”

아무래도 더 센 게 필요한 모양이었다. 그녀는 펠릭스의 가운을 풀고는 휙 벗겨 버렸다.

“이거는요?”

순식간에 완벽한 나신이 드러났다.

“겁도 없이 막 벗기네.”

“마음에 안 들어요?”

“아니. 예뻐서.”

“그럼 대답해야죠.”

“갖고 싶다기보단 이렇게.”

펠릭스가 몸을 돌려 자세를 반전시켰다. 이번에는 그녀의 등이 벽에 쾅! 부딪쳤다. 척추를 타고 얼얼한 둔통이 느껴졌다.

“깔아뭉개고 싶어.”

상체를 지그시 깔아 누르듯 벽을 뒤에 두고 몸과 몸이 틈 없이 맞물렸다. 그에게 깔린 세라는 밭은 숨을 터뜨렸다.

“물론‚ 여기도.”

아래도 마찬가지였다. 흉흉하게 기립한 그의 좆이 선액을 흘려 대며 그녀의 허벅지 사이를 짓뭉개듯 파고들었다.

[시스템: ‘펠릭스 세르반테스’의 속마음‚ ‘널 깔아뭉개고 싶어.’를 획득하셨습니다.

- ‘펠릭스 세르반테스’의 속마음 수집 상황 (1/3)]

이거지. 드디어 힌트를 하나 획득하는 것에 성공했다.

“흐읏‚ 못된 버릇이네요.”

그녀는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쓰면서 가볍게 받아쳤다.

깔아뭉개고 싶다니. 이건 정복욕일까. 아니면 승부욕?

‘일종의 게임을 하고 싶은 걸 수도 있지.’

이를테면 승자와 패자가 있는 내기 같은 것. 진위야 어찌 됐건 그녀가 펠릭스를 자극하고 있다는 사실은 틀림없었다.

“내 밑에서 울면 더 좋고.”

또한 다분히 가학적이기도 했다. 세라의 어떤 점이 이토록 그를 사납게 만드는 걸까.

‘계속 부추기다 보면 알게 되겠지.’

세라가 팔로 그의 목을 감아 안고는 짧게 입을 맞추었다.

“울려 봐요‚ 그럼.”

“다리 벌려.”

그의 명령에 세라가 다리를 약간 벌렸다. 펠릭스가 그녀의 허벅지 뒤쪽을 잡고 위로 들어 올렸다.

체구 차이 때문에 지금껏 올려다보고 있었는데. 벽에 기댄 채로 순식간에 서로의 눈높이가 맞춰졌다.

발끝이 공중에 들리자마자‚ 거대한 페니스가 푹 찔러 왔다. 절로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울려 보랬더니 진짜 일말의 자비도 없네.’

이제 와 뭐 어쩌겠는가. 스스로가 불러온 재앙이었다.

“흐읏.”

세라는 자기도 모르게 침음을 삼켰다. 엉치뼈부터 정수리까지 쿵 울리면서 코끝이 시큰할 정도로 아팠다.

“이렇게 푹 적시고는. 안 하려고 했어?”

약 올리듯 묻는 모습에 묘한 희열이 묻어났다.

“당신이‚ 흣‚ 얄미워서요.”

“핑계도 좋아.”

펠릭스는 그녀의 반응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일그러지는 눈가를 만족스럽게 보면서 쿵쿵 연신 박아 올렸다.

“흐으응.”

소리는 삼킨다고 삼켜지는 것이 아니었다. 세라는 그로 인해 들썩이면서 앓는 듯한 비음을 터뜨렸다.

불안정한 자세로 아슬아슬한 삽입이 이어졌다. 뒤에 벽이 있다고 해도‚ 발이 바닥에 닿지 않으니 상체가 무너질 것처럼 비척거렸다.

기분이 이상했다. 일부러 이런 사악한 체위만 즐기는 걸까. 저번에도 덜렁 들어서 침대까지 안고 가더니. 처음 해 보는 자세라 낯설기만 했다.

“페‚ 펠릭스‚ 흐으‚ 흣‚ 다른 자세 해요. 떠‚ 떨어질 것 같아.”

“기대면 되잖아. 아니면 매달리든지.”

해결책을 제시하면서도 삽입을 멈추지 않았다. 연이은 추삽질에 아랫도리가 화끈화끈했다.

“아‚ 아니. 그러니까아…….”

무언가 말하면서도 절로 숨이 막혔다. 질구에서부터 자궁구까지 이어지는 마찰열에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 같았다.

세라는 제 의사를 표시하기 위해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시‚ 싫어요.”

“내 약혼자께서 날 못 믿는다는 증거지.”

“어이없어. 바람난 약혼자를 믿는 게 읏‚ 더 이상한 거‚ 흐응‚ 아닌가요?”

“그런가.”

펠릭스는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세라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으니까.

“그래도 세라 에보트.”

“네?”

“최소한 나한테 박힐 때는 믿어야 하지 않을까.”

펠릭스가 그녀를 안은 채 한 걸음 뒷걸음질 쳤다. 벽에서 등이 떨어지자 몸이 떨리고 아득한 한기가 들었다.

“자‚ 이제 어떡할 거야?”

유유히 웃으며 되묻는 모습이 꼭 악마 같았다.

오로지 펠릭스에게 의지해서 몸을 지탱해야 한다니. 왠지 분했지만 무서워서 따질 겨를이 없었다.

“…….”

어쩔 수 없지‚ 뭐. 세라는 그의 목에 매달려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옳지. 예쁘네.”

펠릭스는 어린아이 어르듯 그녀의 귓불에 키스하고는‚ 다시 벽에 붙였다.

“흐응‚ 응‚ 흐으.”

처음에는 거부감이 들었지만‚ 하다 보니 만족도가 높은 체위였다. 허리를 추어올릴 때마다 엉덩이가 짓눌리며 삽입이 깊어졌다. 귀두가 자궁구에 뭉개질 때마다 펠릭스도 탁한 숨을 뱉었다.

그에게 매달리는 건 세라의 팔만이 아니었다. 질 내벽이 욱신거리며 그의 좆을 터뜨릴 듯이 붙들고 매달렸다. 페니스의 핏줄과 힘줄‚ 굴곡 하나하나까지. 마치 형태를 각인하듯 틈 없이 조여 댔다.

“후우.”

펠릭스는 긴 숨을 뱉으며 허릿짓을 멈추었다. 치밀어 오는 사정감을 참으려면 어쩔 수 없었다.

“뭐 이런 게 다 있지.”

그가 아직 실감이 안 난다는 듯 실소를 뱉었다.

“흑‚ 흐으‚ 아‚ 아파.”

아래를 관통하는 좆 때문에 아파하는 그녀를 더 낱낱이 보고 싶었다.

“세라 에보트‚ 얼굴 들어.”

펠릭스가 쿵‚ 찍어 올리자 턱이 높게 들렸다. 순간 등이 활처럼 휘어지고‚ 골반부터 척추까지 전율이 일었다.

달아오른 눈가에 울컥 물기가 맺혔다. 펠릭스는 그녀의 젖은 낯을 흡족하게 바라보았다.

“으‚ 흐윽‚ 응‚ 아아.”

삽입이 이어질수록 아픔은 묘한 쾌감으로 번져 갔다. 음부에 고여만 있던 음액은 이미 펠릭스의 음낭까지 흘러 질척하게 적시고 있었다.

아‚ 좋아. 아픈데 좋아.

이런 게 좋다니. 미쳤나 봐.

펠릭스와의 관계는 꼭 그에 대한 감정과 닮아 있었다.

바람난 약혼자에게 박히면서 한껏 울다니. 희열에 젖으면서도 그 상황에 발정하는 자신이 환멸스러웠다. 쾌락과 죄책감이 혼재했다.

그저 입에 달아서. 해로운 걸 알면서도 자꾸만 손대게 되는 사탕처럼.

또 먹었다고 자책할 게 뻔했지만. 눈앞에 있으면 이렇게 몸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흣‚ 펠릭스.”

“왜.”

“당신은 이래도‚ 읏‚ 되는 거예요?”

“뭐가.”

“디아즈 영애 말이에요.”

“내 밑에서 다른 여자 걱정하는 거야? 가증스럽게?”

“그냥 궁금해서요.”

“내 약혼녀는 궁금증도 많아.”

그는 별다른 답을 하지 않았다. 화를 내거나 예민하게 반응할 줄 알았는데.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펠릭스가 여상한 얼굴로 페니스를 뽑더니‚ 세라를 바닥에 내려 주었다.

발이 땅에 닿자 묘한 안도감이 들면서도 다리가 후들거렸다. 현기증에 고개를 무너뜨리자‚ 펠릭스는 봐줄 수 없다는 듯 턱을 잡아 올렸다.

“뒤돌아.”

“아직 답 안 했어요.”

축 늘어진 줄 알았는데 눈빛은 살아 있었다.

“박으면서 하지.”

네가 아직 덜 혼났지. 펠릭스가 입꼬리를 비틀었다.

“약속 지켜요.”

세라가 눈썹을 치켜올리고는 비척거리며 뒤를 돌았다. 펠릭스가 양손으로 그녀의 골반을 틀어쥐고는 뒤로 쭉 빼게 했다.

덕분에 그녀는 벽에 양손을 짚은 채 엎드려 선 자세가 되었다.

“널 위해 충고하는데‚ 그냥 다른 질문이 좋지 않겠나.”

펠릭스가 자신의 페니스를 젖은 음부에 지그시 비볐다. 점액으로 범벅이 된 살갗이 찌걱거리며 뒤엉켰다.

“왜요?”

“답이 뻔하니까.”

“뻔하다니요?”

“그런 게 신경 쓰이면.”

그는 답하던 도중에 급습하듯 성기를 쑤셔 넣었다. 예상치 못하고 찔린 그녀가 파드득 허리를 떨었다.

“지금 너한테 좆 넣고 흔들겠나?”

역시나. 한결같다. 펠릭스 세르반테스는 누구에게나 공평한 개자식이었다.

세라랑은 정략혼을 할 사이였으니까 그렇다 치고. 엘레나랑은 사랑해서 만난 게 아니었나?

디아즈는 기사 가문이고‚ 펠릭스 입장에서 이득을 보는 혼사가 아니었다.

엘레나가 여주인 노멀 모드에서 펠릭스 공략을 손쉽게 클리어 했었고‚ 파혼까지 요구하기에 당연히 사랑이라 예상했는데.

대체 뭐지?

[시스템: ‘펠릭스 세르반테스’의 속마음‚ ‘누구에게나 공평한 개자식’을 획득하셨습니다.

- ‘펠릭스 세르반테스’의 속마음 수집 상황 (2/3)]

어라‚ 뒷걸음질하다 쥐 잡는다고. 얼떨결에 하나 더 획득했다.

“그러니까 세라 에보트‚ 너도 딴생각 집어치우고 나한테만 집중해.”

아까와는 달리 얕고 느릿한 삽입이 이어졌다. 버겁다고 헐떡거리던 숨이 이내 평정을 되찾았다.

마치 집중해서 음미해 보라는 듯‚ 얌전하면서도 진득한 삽입이었다.

펠릭스는 큰 손으로 그녀의 하얀 엉덩이를 주무르면서 내벽을 누르듯이 성기를 미끄러뜨렸다.

“으으응.”

기분 좋은 비음이 샜다. 강하게 박을 때도 좋았지만‚ 이쪽도 이쪽 나름대로 좋았다.

마치 모닥불을 피운 것처럼 따뜻했다. 찌걱거리는 물소리가 꼭 타닥타닥‚ 장작이 타는 소리 같기도 했다. 은근한 열감이 아랫배를 데우며 전신에 나른한 감각이 퍼졌다.

“깜찍한 리본이네.”

펠릭스가 여상히 물었다. 한 손으로는 여전히 그녀의 둔부를 쥐고 뭉개면서‚ 다른 손으로는 머리에 느슨하게 묶인 리본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탐나요?”

“응‚ 이것도 네가 고른 거야?”

“당신은 질문 못 하게 되어 있는데요.”

“답하면 질문 하나 더 하게 해 줄게.”

관계 중에 일상적인 대화라니. 좀 생소하긴 했지만 나쁘지 않았다. 세라는 그에게서 정보를 최대한 얻어 내야 했으니까.

“내가 고른 거면 뺏을 건가 봐요.”

“들켰네.”

일부러 넘겨짚어 보았는데 제법 순순히 시인했다.

“안됐네요. 내가 산 건 아니라서.”

“그럼?”

“누가 골라 줬어요.”

“그렇구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가 리본을 휙 잡아당겼다. 리본이 풀리자 밤색 머리칼이 하얀 등 위에 와락 쏟아져 내렸다.

“뭐예요. 돌려줘요.”

“다른 걸 새로 사 주지.”

“선물 받은 거니까 돌려달라고요.”

“그 새끼가 사 준 모양이지.”

역시‚ 눈치가 더럽게 빠르네.

따지고 보면 펠릭스의 추측이 딱히 틀린 이야기는 아니었다. 세라의 몸에 순흔을 낸 것도‚ 리본을 골라 준 것도 알베르토였으니까.

“수컷 새끼들은 꼭 이렇게 꼴같잖은 영역 표시를 해.”

질투라도 하는 걸까. 펠릭스가 시기를 하다니 우스운 일이었다. 세라는 펠릭스의 기이한 태도에 헛웃음을 뱉었다.

“네. 그분께서 선물하신 거예요. 그러니까 돌려주세요.”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세라는 그를 조금 더 자극해 보기로 했다.

“하나만 묻지. 그 새끼는 네가 나랑 이러고 있는 거 아나?”

“당신은 질문 못 한다고 했을 텐데요.”

“대답 안 해도 돼. 이 정도 고급 실크면 취급하는 상단이 몇 곳 없으니 말이야.”

“기어코 출처를 찾아내겠다는 거예요?”

“왜‚ 겁나?”

“그냥 기가 막혀서요. 어차피 저랑 결혼할 것도 아니시면서.”

자기는 싫다면서 다른 남자도 못 만나게 하는 건 무슨 심보야? 세라는 평생 경멸만 당하다 말라 죽으라고?

그의 사악한 태도에 세라는 어이가 없어서 실소를 터뜨렸다.

“결혼? 할까.”

“거절할게요. 아무리 정략결혼이어도 지조 없는 약혼자는 싫거든요.”

“네가 할 말은 아니지 않나.”

“저는 맞바람이고요. 흐윽!”

쿵! 그가 보복하듯 강하게 들이박으며 상체를 묻었다. 음부에서 느껴지는 얼얼한 둔통에 뒷무릎이 꺾이는 것 같았다.

“아‚ 실수.”

실수는 무슨. 딱 봐도 다분히 고의적인 행동이었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파르르 떨리는 귓가에 픽‚ 간지러운 숨이 흩어졌다.

“제법 끔찍이 여기는 것 같으니 돌려줄까.”

갑자기 시야가 가려졌다. 펠릭스가 그녀의 리본으로 눈을 가린 모양이었다.

“뭐 하는 거예요?”

“치료.”

“네?”

“날 보면 자꾸 화가 치미시는 것 같은데. 눈 가리고 먹어 보라고.”

그가 그녀의 등에 밀착하며 페니스를 가장 깊은 곳까지 밀어 올렸다.

“감히 내 앞에서 그 새끼 생각. 할 수 있는지.”

낮고 나른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고‚ 목덜미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한계를 가늠하는 듯한 깊은 삽입에 꼭 몸이 쩍‚ 하고 쪼개지는 것 같았다.

“읏‚ 흐으.”

“어때?”

기분 탓일까. 음부를 가득 메운 페니스가 자비 없이 몸집을 키웠다. 납작했던 아랫배가 남근의 압박을 받으며 볼록하게 불러 오는 것 같았다.

“응?”

대답도 하기 전에 그가 손을 움직였다. 그의 손끝이 골반에서부터 허리를 타고 서서히 올라갔다.

시각이 차단되니 촉각이 예민해진 걸까. 일부러 간지럼을 태우는 것도 아닌데 그냥 몸이 움츠러들었다. 세포 하나하나를 두드리듯 감질나는 손길이었다.

그의 손이 갈비뼈쯤 도달했을 때‚ 손바닥이 넓게 닿았다. 그리고 조심스레 유방을 감쌌다. 손가락 사이로 유두가 삐져나오는 게 느껴졌다.

손아귀로 젖가슴을 가득 움켜쥐자‚ 꼿꼿하게 선 젖꼭지가 젖살과 함께 뭉그러졌다.

“으응.”

부끄러웠다. 소리를 참으려 입술을 깨물었는데도 다소 민망한 비음이 새어 나갔다.

간지러운 감각이 유실을 타고 젖가슴 전체로 퍼지자 세라는 발끝을 와락 웅크렸다.

“여기가 유독 예민하네.”

세라는 치부를 들킨 것처럼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그‚ 그냥 갑자기 움켜쥐니까 놀라서.”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손끝을 세워 유두를 긁어내렸다. 제법 강한 자극에 질 내벽이 절로 수축했다.

“읏!”

“쉬이. 힘 빼야지.”

저항하듯 꽉 다물린 질벽을 가르며 유유하게 허릿짓을 했다. 그가 좆을 흔들어 댈 때마다 음부 전체가 엉망으로 헤집어지는 것 같았다.

“후우‚ 씹으니까 바로 쌀 뻔했잖아.”

“흐으‚ 으응‚ 응.”

“하긴 최대한 싸지르는 게 나으려나.”

“무‚ 무슨 소리예요. 흣.”

“배 속에 새끼를 배야 엄한 데서 헛짓거리를 못 하시겠지.”

추삽질에 속도가 붙었다. 퍽퍽 장골이 부딪치는 난잡한 소리가 요란하게 방 안을 울렸다.

사악한 손길이 이번에는 아랫배로 내려왔다. 손가락으로 축축한 살덩이를 벌리더니 통통하게 발기한 음핵을 찾았다.

그가 그걸 가만히 둘 리 없었다. 점액으로 흠뻑 적신 후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우고‚ 핥아 올리듯 표피를 들췄다.

그의 손끝에 음핵이 긁힐 때마다 찌릿찌릿 허리가 튀었다. 음부 전체에 전기가 흐르는 것 같기도 했다. 자극이 이어지자 골반이 뒤틀리고 절로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그의 삽입과 엇박자를 타며 귀두의 각도가 꺾일 때‚ 들끓는 흥분에 무릎이 와락 오그라들었다.

“좋은가 봐. 더 해 줘?”

“으응‚ 더 해.”

“귀엽네. 보챌 줄도 알고.”

그가 바들바들 떨리는 그녀의 목덜미를 길게 흠빨았다.

“알았어. 좆 터질 거 같으니까. 일단 한 발 빼고.”

여전히 클리토리스를 꾹꾹 누르면서 한 손으로는 턱을 움켜쥐었다. 그가 그녀의 잇새에서 꽉 깨문 입술을 빼며 엄지를 물렸다.

“빨아. 아니면 씹든지.”

“흑‚ 흐으.”

“난 미리 경고했다.”

사악한 말을 속삭이고는 성기로 마구 들쑤시기 시작했다. 전에 없는 포악한 몸짓이었다.

온몸이 부서질 것 같아 숨이 턱턱 막혔다. 가는 숨이 입술 끝에서 할딱대고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그의 손가락이 클리토리스와 소음순 할 것 없이 젖은 음부를 마구 비벼 댔다. 음부가 안팎으로 헤집어지니 꼭 불이 난 느낌이었다.

눈물과 타액이 뒤섞여 아래턱에 줄줄 흘렀다. 갈수록 희미해지는 정신을 붙잡으려 그의 손가락을 잘근잘근 씹는데도 그랬다.

내벽을 턱턱 할퀴어 대는 성난 페니스를 받아 내는 것이 기꺼우면서도 버거웠다. 질 내벽이 멋대로 경련했다.

“하아으…….”

벽에 짚고 있던 팔을 발발 떨다가 세라의 상체가 무너졌다.

펠릭스가 아래위로 유린하던 손길을 거두고‚ 여체를 부술 듯이 끌어안았다.

“읏.”

그가 절정을 맞으며 낮게 신음했다. 성기가 크게 꿀렁이더니 배 속에 따뜻한 감각이 퍼졌다.

페니스를 뽑자 애액과 씨물이 섞인 끈적한 액체가 허벅지를 타고 길게 흘러내렸다.

거센 정사의 여운에 세라는 온몸이 바들거려서 서 있을 수가 없었다. 기절할 것 같은데 귓가에 나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눕혀 줄까?”

“으응.”

“이리 와.”

세라가 손을 더듬거리며 몸을 돌렸다. 혼자서는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땀에 젖은 단단한 가슴이 손끝에 닿은 순간‚ 확 끌어당겨져 품에 안겼다.

앞이 안 보여서일까. 그가 어떤 행동을 할지 도무지 예측이 어려웠다. 세라가 그의 가슴에 기대서 밭은 숨을 몰아쉬었다.

펠릭스는 그녀의 머리를 안고 쓰다듬더니 공주님처럼 들어 올렸다. 순식간에 발이 공중으로 들리자 세라가 아기처럼 와락 웅크렸다.

“무서워?”

“아‚ 아뇨. 그냥. 놀라서.”

“침대로 가자.”

착각일까. 말투가 조금은 다정해진 것 같다. 갑자기 왜? 의문이 들었지만‚ 현기증이 일어서 복잡한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그에게 안겨 몇 발짝 움직이니 폭신한 침구가 등에 닿았다. 넋을 놓고 파묻혀 있는데‚ 그가 갑자기 그녀의 상체를 일으켰다.

“마셔.”

“뭐예요?”

“날 믿어야지‚ 세라 에보트.”

입술 끝에 컵이 닿게 내밀었는데도 망설이자‚ 그가 빼앗아 머금고는 입술을 붙였다.

미지근한 액체가 입 안으로 흘러들어 왔다. 입으로 흘려줘서일까. 딱히 거슬리는 맛은 나지 않았다.

그녀는 꼭 아기 새처럼 그가 주는 대로 족족 받아 삼켰다.

“혹시 피임약 같은 거예요?”

“그럴 리가.”

그나마 가능성 있는 것을 던져 보았는데 단숨에 부정했다.

“그럼요?”

“그냥 물. 너 아래위로 우느라 탈진할 것 같아서.”

별것도 아니었는데. 왜 자꾸 마음이 편치 않은 걸까. 무슨 의심병인지. 그가 믿으라고 할수록 한 번쯤 꼬아 생각하게 되었다.

“…고마워요.”

“고맙긴. 기절할까 봐 먹이는 건데.”

그가 픽 웃으며 세라의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물을 마시고 다시 누우니 나른한 탈력감이 들었다.

시야가 어두워서일까. 긴장이 풀림과 함께 잠이 쏟아졌다.

‘지금 잠들면 큰일 나.’

세라는 몽롱하게 흐려지는 정신을 억지로 붙잡았다. 퀘스트를 끝내려면 정신을 차려야 했다.

그녀가 눈을 가린 리본을 풀려고 하자 또다시 그에게 양 손목을 붙잡혔다.

“안 돼.”

“졸려서 그래요.”

“정 그러면 안아 줄 테니 한숨 자든지.”

“안 돼요.”

“그럼 잠 깨는 거 할까?”

세라는 혼란스러웠다. 다정한 듯하면서도 괴롭히고. 미워하는 것 같으면서도 꼭 제 손에 쥐고 있어야 하는. 그의 감정을 대체 뭐라고 정의해야 하는 걸까.

아직 그에게 질문할 것이 남아 있었다.

“…저기‚ 펠릭스.”

“왜.”

“당신은 내가 싫어요?”

그녀가 홀린 듯이 물었다. 다소 두서없는 질문에 펠릭스가 헛웃음을 뱉었다.

“그런 당연한 건 왜 묻지.”

“알아요. 아는데. 지금은 꼭 좋아하는 것처럼 굴어서요.”

“네 착각이야.”

정작 헷갈리게 구는 건 자신이면서. 이렇게 간단히 착각으로 치부해 버린다.

“그렇구나. 그럼 질문을 바꾸죠.”

세라는 아무런 타격도 없는지 건조하게 말을 돌렸다.

“날 왜 그렇게 싫어해요?”

“거슬려서.”

단출한 대답이었다. 그런 밑도 끝도 없는 대답이 어디 있는지. 황당했지만 세라에게는 아직 질문할 권한이 있었다.

“뭐가 그렇게 거슬리는데요?”

“달아서.”

“네?”

달다니? 세라는 무언가 잘못 들은 것 같아서 되물었다. 그는 대답 대신 촉‚ 짧은 입맞춤을 했다.

“단 거 맞네.”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키스가 달아서 거슬린다니. 그와 처음으로 몸을 섞은 건 불과 몇 시간 전의 일이었다.

펠릭스는 꽤 오랫동안 자신을 경멸해 왔으니 말에 앞뒤가 맞지 않았다.

이게 무슨 황당한 핑계일까.

“알려 줘?”

세라가 한 번에 알아채지 못하자‚ 그가 선심을 쓰는 것처럼 되물었다.

“어릴 때 말이야. 네가 준 그 사탕.”

“…사탕이요?”

“응‚ 진저리 나게 단거. 그거.”

사탕이라. 세라는 일기장의 내용을 떠올렸다. 아마 펠릭스도 같은 걸 기억하고 있는 듯했다.

그녀가 내민 사탕을 내팽개쳤다는 구절이 생각났다. 그런 작은 호의조차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로 날 서 있던 모습.

그저 어린아이인데 그렇게 가시 돋친 모습이라니. 어른의 시선으로 봐서 그런지 조금 안쓰러워 보이기도 했다.

[시스템: ‘펠릭스 세르반테스’의 속마음‚ ‘진저리 나게 달콤한’을 획득하셨습니다.

- ‘펠릭스 세르반테스’의 속마음 수집 상황 (3/3)]

[시스템: 이제 ‘펠릭스 세르반테스’를 통해 그의 진실을 들을 수 있습니다.]

세라는 멍하니 시스템 창을 바라보았다.

자신을 깔아뭉개고 싶다고 말하는 남자. 엘레나에게도 사실은 진심이 아니었던 사람. 그리고 그가 꺼낸 어린 시절 이야기까지.

어쩌면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진 해묵은 감정일지도 몰랐다. 한 번에 이해하기 힘든‚ 그 비합리적인 감정이 어떤 것인지.

이제 펠릭스의 입으로 들어 볼 차례였다.

“일부러 하나 두고 갔잖아.”

펠릭스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그게 너무 달아서. 모든 곳을 다 뒤져 봐도 그런 사탕은 없었어. 그래서 생각했지. 혹시나.”

“…….”

“단 건 사탕이 아니라‚ 네가 아니었을까.”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시 한번 입술이 닿아 왔다. 따뜻하고 촉촉한 점막의 감각. 입술이 떨어지자 몽롱한 한숨이 터졌다.

“알아. 미친 생각이지.”

아직 코앞에 있는 걸까. 말할 때마다 콧날이 비벼지고‚ 말캉한 입술이 스치듯 닿았다가 떨어졌다.

“드디어 내가 돌아 버린 건가 했는데. 확인해 보니 맞더라고.”

눈을 가린 상태여서인지. 그 아슬아슬한 감각에 못내 안달이 났다. 세라가 슬쩍 입맛을 다시자‚ 그가 그녀의 아랫입술을 쭙 빨았다.

“난 널 경멸해‚ 세라 에보트.”

그의 입술이 목선을 지분거리며 내려와 가슴께에 닿았다. 그의 손이 누운 모양대로 퍼져 있는 유방을 가볍게 모아 쥐었다. 젖꼭지를 쪽 빨아 당기고는 혀끝으로 지그시 핥아 올렸다.

“입술도 달고. 젖꼭지도 달아‚ 넌.”

그가 달뜬 목소리로 말하면서도 콧날에 젖은 유두를 비볐다.

입 안에 넣고 아프도록 빨아 주었으면 좋겠는데. 꼭 간지러움이 해소되지 못한 사람처럼 다리가 배배 꼬였다.

속내를 어찌 알아차린 건지. 그가 반대쪽 유두를 뻑 소리가 나도록 세게 빨아 당겼다. 유두는 물론 말랑한 젖꽃판까지 쭉 늘어나며 입술에 딸려 올라갔다.

“하으으……!”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새된 교성이 터졌다. 입술에서 떨어지며 유두에 몰린 자잘한 요철들이 앞니에 긁혔다. 아릿한 감각에 눈앞에 불꽃이 튀었다.

“맞잖아.”

그가 빨갛게 부풀어 오른 젖꼭지를 확인했다. 그리고 불그스름한 혀를 꺼내서 달래는 것처럼 굴렸다.

자극이 지속되자 허리가 자꾸만 뒤틀렸다. 그가 잇새로 유두를 질겅거리자 세라는 자지러지듯 몸을 떨었다.

“아읏‚ 아‚ 아파…….”

“귀여워.”

변태일까. 괴롭히면서 예뻐하는 걸 보니 확실히 정상은 아니었다. 펠릭스는 그녀의 솔직한 반응이 재밌는지 연신 낮게 웃었다.

“네 몸 중에 어디가 제일 단 줄 알아?”

딱 붙어 있던 무릎이 그에 의해 벌어졌다. 세라는 순식간에 음부를 활짝 드러낸 자세가 되었다.

눈을 가린 채로 다리를 벌리고 있다니. 왠지 평소보다 더 부끄러웠다. 다시 오므리려고 해도 그가 결박한 채로 놓아주질 않았다.

“읏‚ 흐읏.”

눅진한 살덩이가 음부를 길게 핥아 올리자‚ 울컥 애액이 새어 나왔다.

“하아‚ 보지가 제일 달아. 돌아 버릴 정도로 달콤해.”

펠릭스가 취한 듯이 중얼거리며 점액이 잔뜩 고인 소음순을 쭙쭙 빨아 당겼다.

입구에 고인 물을 핥는 것만으로는 감질이 나는지. 아예 질구에 혀를 처박고 입술을 붙였다. 혓바닥을 감아 죄는 내벽의 느낌이 아찔할 정도로 달고 뜨거웠다.

입을 좀 벌린 채 쭉쭉 빨아 삼키자 혀를 타고 눅진한 애액이 가득 흘러들었다. 해갈하려는 것처럼 꿀꺽꿀꺽 받아 삼키는 소리가 야살스럽게 울렸다.

양껏 마셨는지 펠릭스는 혀를 거두고 음부에 입을 맞췄다. 채 다물리지 못한 질구가 구멍을 벌름거리는 걸 보더니 귀엽다며 쿡쿡 웃었다.

그의 입술이 잔뜩 발기한 음핵에 닿았다. 클리토리스에 윗입술을 반복적으로 비비다‚ 혀끝을 세워 짓쳐 올리자 허벅지 안쪽이 뻣뻣하게 굳어졌다.

“아‚ 으응‚ 응‚ 이‚ 이거‚ 이상‚ 아아!”

입으로 빨아 주는 것만으로도 세라는 가벼운 절정에 달했다. 촉각이 예민해진 탓인지 평소보다 빠르게 몸이 달았다.

“벌써 간 거야?”

흥분을 버티기 위해 발끝을 아프도록 움츠리자‚ 질벽이 욱신욱신 조여들었다.

“흑‚ 흐으‚”

“갔냐고 묻잖아.”

엉덩이가 바들바들 떨렸다. 이미 간 걸 알면서. 여전히 허벅지를 잡아 누른 채 얄밉게도 묻는다.

문제는 절정에 몸을 떠는데도 자극을 멈추지 않는 펠릭스였다. 발갛게 달아오른 음핵이 그의 혀끝에 무자비하게 짓눌렸다.

“가‚ 갔어. 갔으니까.”

왜 이렇게까지 몰아가는 걸까. 그는 마치 갈구하고‚ 확인받으려는 아이처럼 집요하게 애무를 퍼부었다.

“나‚ 흣‚ 놔줘어.”

세라는 주먹으로 허공을 휘휘 젓다가 이번에는 손목을 붙들렸다.

“그만?”

손목이 머리 위로 결박되고‚ 그제야 클리토리스에 집중되던 애무가 뚝 멈추었다.

“대답 안 하면 다시 한다.”

“네‚ 네에. 그‚ 그만.”

세라는 냉큼 대답했다. 더는 괴롭히듯 가해지는 집요한 자극을 견딜 재간이 없었으니까.

이제 살았다. 겨우 정신을 차리려는데 귓가에 나직한 목소리가 속살거렸다.

“음탕한 세라 에보트. 이젠 막 줄줄 흘리면서 혼자 가네.”

수치스러웠다. 일부러 괴롭히려고 그런 말만 골라 하는 건지. 얼굴이 화끈화끈해져서 베개에 파묻고 싶었다.

“같이 가야지.”

그가 그녀의 손에 깍지를 끼고는 육중한 성기를 음부에 퍽 밀어 넣었다. 성기를 뿌리까지 박아 넣자 순간 숨이 턱 멎는 것 같았다.

“가는 얼굴도 보여 주고.”

펠릭스는 그제야 눈을 가리고 있던 리본을 풀어 주었다. 세라는 갑자기 쏟아져 들어오는 빛 때문에 얼굴을 잔뜩 찡그렸다.

이내 시야가 빛에 익숙해지자‚ 자신을 오만한 낯으로 내려다보는 그가 보였다.

세라는 그저 몽롱했다. 눈이 풀리고 눈꺼풀에는 홧홧한 열감이 가득했다. 무언가 말을 해 보려 해도 나오지 않고 아래턱만 달달 떨렸다.

아파서일까? 아니면 막막해서? 압도적인 힘의 차이에 저항할 수 없는 무력감을 느껴서?

몰라. 전혀 모르겠다.

다 때려치우고 집에 가고 싶었다. 막막해서 울 것 같은 기분이었다.

“너‚ 내가 갖고 싶다고 했었지.”

“흐윽. 으으.”

“쑤셔 줄 테니까 먹어 봐.”

좆에 꿰뚫린 엉덩이가 공중에 들리고 허리도 딸려 올라갔다. 이미 귀두가 자궁구에 뭉개졌는데도‚ 그는 마치 낙인을 찍는 것처럼 더 꾹 눌러 박았다.

“하윽‚ 너‚ 너무 깊어.”

내장이 안쪽으로 밀리고 왈칵‚ 생리적인 눈물이 흘렀다. 몸이 반으로 접히는 것처럼 깊은 삽입에 세라는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와‚ 이걸 다 삼켰네. 우리 세라‚ 욕심도 많아.”

펠릭스가 제 좆을 꾸역꾸역 삼킨 음부를 보며 흡족하게 웃었다.

“네 밑구멍이 얼마나 게걸스러운지 두 눈으로 똑똑히 봐.”

“윽‚ 으으‚ 으응.”

“보라고.”

펠릭스가 눈물을 질질 흘리며 정신을 못 차리는 그녀의 눈가를 손으로 비벼 닦았다. 그리고 목덜미를 받쳐 올렸다.

시야가 트이고 고개가 안쪽으로 꺾였다. 음부에 터질 듯이 물려 있는 거대한 남근이 어렴풋이 보였다.

“맛있나 봐. 미치게 오물거린다.”

그의 말대로 세라의 뜨거운 질벽이 좆 기둥을 녹여 먹을 듯 달라붙었다.

“미안한데‚ 애초부터 베세르크 같은 건 관심도 없었어.”

사실 어렴풋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노멀 모드’로 플레이 할 때‚ 펠릭스는 에보트 후작이 주는 베세르크 영지를 끝끝내 거절하고 엘레나를 택했다.

그게 세라의 자존심을 완전히 짓밟았고‚ 그녀가 그들을 감금하는 데 결정적인 도화선이 되었다.

아까도 마찬가지였다. 원하는 대로 파혼과 함께 베세르크를 넘기겠다고 했는데도 그는 안중에도 없는 듯 보였다.

결국 총까지 들이미는 펠릭스를 보면서 뭔가 다른 내막이 있지 않을까.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나한테 왜 그러는‚ 흐윽.”

묵직한 압박감에 세라는 말을 한 번에 잇지도 못했다.

처음부터 묻고 싶었다.

대체 왜 그러는 거냐고.

왜 그렇게까지 멸시하냐고.

그는 대답 대신 허리를 둥글게 움직이며 세라의 안을 샅샅이 짓눌렀다.

“널 괴롭히고 싶어서.”

그가 형형한 눈으로 세라를 주시했다. 살기인지 광기인지 모를 선득한 시선이었다.

“가지고 싶은 걸 못 가진 적 없다고 했나.”

건방지게. 그걸 어떻게 확신하지?

뭐든 한 번도 쉽게 가진 적 없는 사람도 있는데. 그 같잖은 오만이 늘 필사적이어야만 했던 자신을 조롱하는 것 같았다.

태생이 달라서?

손쉽게 정복을 장담할 정도로 열등한 존재여서?

이유가 뭐가 됐건‚ 세라 에보트는 그 존재만으로도 자신을 긁고 또 할퀴었다.

그녀만 보면 심사가 뒤틀리는 자신이 싫었다. 그녀가 내민 값싼 호의를 달게 느낀 것 또한 한심해서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난? 가진 것 같나?”

펠릭스가 재차 확인하듯 물었다.

정신 못 차리고 숨을 헐떡이는 그녀에게 똑똑히 말했다. 넌 분명히 나를 욕망했고‚ 단 한 번도 온전히 가진 적이 없지 않냐고.

그렇게 그녀를 망가뜨리고‚ 좌절시키고 싶었다. 결핍을 무기로 삼아 그녀를 제 뜻대로 조종하기를 원했다.

그 빳빳한 고개를 잡아 꺾으면 어떨까. 자신만의 고고한 긍지를 친히 깔아뭉개 준다면?

과연 세라 에보트는 어떤 낯을 할까. 그게 보고 싶었다.

밟는다고 아파할까.

왜 이러냐고 불같이 화를 낼까.

아니면 수치심에 울어 버리려나.

무엇 하나 결핍이 없는‚ 그 빌어먹게 완벽한 여자를 제 앞에 조아리게 해서. 나 좀 봐 달라고 애걸하고 매달리게 하고 싶었다.

엘레나 디아즈.

예쁘지도 않은 한미한 기사 가문의 딸. 돈이건‚ 아니면 귀족 사회에서의 기반이건. 펠릭스가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지 줄 수 있는 세라 에보트와는 달리 턱없이 부족한 여자.

보란 듯이 그런 여자를 택하면 세라 에보트가 과연 어떤 얼굴을 할지 너무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처음부터 파혼을 요구한 건 아니었다. 다른 여자를 만나며 도발한 게 이번이 처음도 아니었고.

그저 티 나게. 이번에는 뭔가 특별한 게 있는 것처럼 염문을 흘렸다.

세라 에보트가 전전긍긍하는 것.

그게 펠릭스가 바라는 반응이었으니까.

역시나. 예상대로 에보트에서는 거액의 추가 지참금을 제안했다. 모양이 나빠 보일까 염려했는지‚ 후작이 나섰다.

펠릭스는 일부러 보란 듯이 엘레나 디아즈를 택했다. 지참금을 거절하고 파혼을 요구했다. 세라 에보트의 마지막 자존심을 완전히 짓밟아 버렸다.

예상 못 한 변수에 그녀는 이성을 잃었다. 약삭빠른 장사치의 딸은 실리에는 밝았지만‚ 이런 비합리적인 맹목 앞에선 무력해졌다.

남은 건 오직 가질 수 없다는 절망뿐이었을 것이다.

“세라 에보트가 가지지 못한 첫 대상이 되는 것. 그게 내 목적이었다고.”

말하고서도 우스웠다.

원하는 걸 가지는 것.

세라 에보트는 그것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철부지였다. 아마도 처음 겪는 좌절이었을 테지.

뭐든 쉽게 가졌던 여자는‚ 취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이 사라지자 빠르게 무너졌다.

그저 어린아이처럼 떼쓰는 것밖에는 몰랐다. 욕망을 거세당한 채로 살아남아야 했던 제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그조차 꼴사나웠다.

에보트의 금지옥엽이 천한 사생아 따위에 매달리며 발작하는 꼴이라니. 스스로 만든 작품이지만 언제 봐도 걸작이지 않나.

페니스를 휘저으며 음부를 헤집던 펠릭스가 어느 한 지점을 콱 쪼듯이 찔러 올렸다.

“아흣!”

세라의 눈가가 와락 일그러졌다. 지그시 누르고 있자‚ 그녀의 허리가 경련하듯 떨렸다.

“자‚ 봐. 여기네‚ 네 약점.”

흥분점을 확인한 그가 입술을 비틀더니 귀두로 집요하게 뭉개기 시작했다.

“아아‚ 페‚ 펠리‚ 히익!”

“꼴려서 돌겠어. 너 괴롭히는 거.”

그녀의 교음이 점점 높아졌다. 약점을 찔린 채 착실하게 무너지는 모습이 지독히도 야했다.

“근데 오늘따라 왜 이렇게 기분이 더럽지.”

누군가가 끊임없이 밑바닥으로 끌어 내리는 것만 같았다. 아무리 떨어져도 발이 닿지 않았고. 끝도 없이 아래로‚ 아래로 침잠하는 느낌이었다.

펠릭스 세르반테스는 세르반테스의 완벽한 하자품이다. 그런 하자품을 탐낸다면 기꺼이 그녀도 자신에게 날 흠집을 감수해야 했다.

그래야 공정한 거래지. 안 그래?

그저 당연한 이치를 알려 줬을 뿐인데. 먼저 거래를 깬 건 자신이 아닌 세라 에보트였다.

“네가 날 욕망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잖아.”

욕심에 눈이 멀어 너무 기본적인 걸 놓치고 있었던 걸까.

그녀를 극한까지 몰아붙이는 게 재밌었다. 그녀가 고통스러워할 때마다 펠릭스는 알량한 승리감에 젖었다.

그런데 이제 와 약혼 같은 거 원하지 않는다니. 세라 에보트는 다시 아주 간단하게 그를 부정했다.

“그래. 네가 이겼어‚ 세라 에보트.”

펠릭스가 자조적으로 웃었다.

돌이켜 보면 애초에 패를 쥐고 있는 건 그녀였다. 그의 욕망은 전적으로 그녀의 욕망에 기생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녀가 더 이상 자신을 바라지 않는 순간 그런 뒤틀린 욕구 따위‚ 물거품이 돼 버리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진짜로 오만한 게 누구였을까.

숙주 없이는 살 수 없는 기생충처럼 하찮은 존재를 자처한 주제에. 처음부터 이길 수 없는 싸움이나 마찬가지였는데. 왜 그렇게 악을 쓰고 짓누르려 발버둥을 친 거지.

스스로가 혐오스러웠다.

“자기야‚ 이제 나한테 싫증 났어?”

펠릭스가 상체를 깊게 묻으며 그녀에게 밀착시켰다. 정신없이 흔들리던 하얀 젖가슴이 그의 흉근에 터질 듯이 짓눌렸다.

“흐응‚ 아‚ 아‚ 페‚ 펠릭. 제‚ 제발.”

세라가 애걸하듯 울었다. 그런데도 성에 차지 않았다. 송곳니를 박아 넣고 미친 듯이 누르고 싶었다.

“이렇게 질질 흘리면서. 어이도 없지.”

아무리 머리를 뜯고 생각해 봐도 자신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래. 모두 이 여자 탓이다.

제 밑에 깔려 울면서도‚ 또 언제나 제 위에 있는 세라 에보트가 괘씸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예뻐서 좋다며. 박아 주니까 지금도 좋아서 숨넘어갈 것처럼 울고.

“세라 에보트‚ 거짓말하면 못써.”

“아‚ 아냐. 이제 나는… 흐윽!”

건방지게. 아직도 정신 못 차리네.

펠릭스는 도리질 치는 세라의 목덜미를 콱 깨물고 허리를 짓쳐 올렸다.

“알았어. 내가 졌어. 인정할게. 그러니까 너도 인정해.”

질 내벽이 제멋대로 경련하며 좆 기둥을 밀어냈다. 터질 듯이 빡빡하게 조여드는 통에 움직이는 것조차 어려웠다.

“아직 날 원하잖아.”

그가 어금니를 꽉 물고 꾹 다물린 내벽을 밀쳐 올렸다. 세라는 실이 끊어진 꼭두각시처럼 순식간에 몸이 꺾였다.

“아흐으…….”

발버둥이 뚝‚ 멈추고 그녀의 눈동자가 텅 비었다. 맞물린 접합부에서 맑은 음액이 뚝뚝 흐르고‚ 여린 어깨가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아니야?”

펠릭스는 눈물로 범벅이 된 세라의 몰골을 찬찬히 눈에 담았다. 흰 살갗에 어지럽게 피어 있는 순흔이 보였다.

“대답해.”

그녀가 대답할 기운도 없는지 고개를 돌려 버렸다.

“씨발‚ 눈물겹네.”

다른 놈. 다른 놈이라.

어딘가 단단히 홀린 게 틀림없다. 독거미에게 물린 것처럼 그저 독에 취해서 잘못된 환각을 보는 거다.

“그러게 왜 물리고 왔어. 열받아 미치게.”

그가 그녀의 살갗에 난 붉은 자국을 잘근잘근 씹었다. 이 흉측한 걸 얼른 제 것으로 덮고 싶었다.

세라는 반항할 기운도 없는지 눈을 질끈 감은 채 밭은 숨만 몰아쉬었다.

그래. 이건 단지 사고다.

잠시 한눈을 판 사이‚ 겁도 없이 내뺐다가 어디서 물리고 온 것이다. 제 발로 돌아왔으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덮으면 되는 일이었다.

펠릭스는 자신에게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 느꼈다.

이제 먹잇감을 앞발로 이리저리 굴리는 짓 따위 관두기로 했다. 아니‚ 더 이상 그럴 형편이 못 되었다.

“널 물 수 있는 건 나뿐이라고.”

펠릭스는 알베르토가 낸 순흔을 따라 착실하게 입술을 붙였다. 제가 만들어 낸 울혈에 덮여 희미하게 할딱대는 모습을 보니 좆이 터질 것 같았다.

“흣.”

그가 탁한 음성을 뱉으며 정신없이 허리를 흔들었다. 아득하게 흔들리면서도 세라는 울부짖지 않았다. 고장 난 인형처럼 흐드러져 있을 뿐이었다.

“세라 에보트‚ 네가 나한테 이러면 안 되지.”

그는 정신 차리라는 듯 집요한 자극을 가했다. 음낭이 척척 소리를 내며 회음을 반복해서 때렸다.

세라는 반응하고 싶지 않았다. 흥분도 반항도 하고 싶지 않은데. 생리적인 반응은 조절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끓는 점을 향해 몸을 달구다 요란스레 떠는 주전자처럼. 뭉근하게 달아오른 그녀가 결국 참던 숨을 터뜨렸다.

“…하윽‚ 흐으‚ 으!”

펠릭스가 잘게 흐느끼는 세라의 뺨에 촉‚ 촉 입을 맞췄다. 숨이 가빠 오고 현기증이 일었다.

“나 보면서 수음해 봐.”

그가 깍지 낀 손을 그녀의 음핵 위에 올렸다.

“흐응‚ 으으.”

“네 손으로 보지 비비라고.”

그녀도 발정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 대상은 오롯이 자신이어야 했다.

자신이 보란 듯이 방탕을 즐기며‚ 머리로는 제 밑에 깔려서 우는 세라 에보트를 상상한 것처럼.

왜 혐오하는 여자를 욕망하지. 제정신인가? 그때마다 밀려오는 환멸감과 자괴감에 스스로를 부정하고 혐오했던 것처럼.

다른 놈은 그저 못된 심술에서 기인한 것이고. 그녀를 진짜로 젖게 하는 건 자신이어야 했다.

“으으‚ 이거‚ 아‚ 놔아‚ 흐‚ 창피‚ 흐읏.”

결국 붙잡힌 손에 의해 클리토리스가 빠르게 비벼졌다. 닿는 손은 세라의 것이었지만‚ 그걸 움직이는 이는 펠릭스였다.

세라는 수치와 흥분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그의 어깨에 걸쳐진 발끝이 꺾일 듯이 움츠러들었다.

거근을 꼽은 채 음부를 난잡하게 문질러 대는 제 모습이라니. 지나칠 정도로 선정적인 광경에 척추가 오싹하게 저려 왔다. 새하얀 둔부가 연신 철썩이며 장골에 내리꽂혔다.

“결혼이고 뭐고. 다 너 원하는 대로 해. 몸뚱이고 공작 부인 자리고 다 줄 테니까.”

“시‚ 싫어‚ 흐윽‚ 흐.”

“…나 버리지 마. 응?”

손길과 허릿짓이 더 빨라지며‚ 세라는 막다른 길에 내몰렸다. 그녀 앞에 남은 건 절정뿐이었다.

“아흐읏‚ 보‚ 보내 줘. …흐윽!”

“싫어. 내 밑에 깔려서 평생.”

“아‚ 앙‚ 으‚ 아아!”

“싫증 난 새끼가 싸 주는 좆물이나 받아먹고 살아.”

세라는 음부를 관통하는 저릿한 쾌감에 온몸을 쥐어짜듯 비틀었다. 알면서도 들이켜는 독배처럼 지독한 쾌락이 그녀를 잡아 삼켰다.

“으흐으… 아아!”

눈앞이 새하얘졌다. 펠릭스는 자신이 닿을 수 있는 가장 깊은 곳에 좆을 뭉개 박은 채 뜨거운 숨을 쏟아 냈다.

“맛있잖아. 그러니까 버리지 마.”

펠릭스는 거의 애걸하고 있었다.

“예쁘다고 했잖아. 제발 나 좀 예뻐해 줘.”

“페‚ 펠릭‚ 흐윽!”

“날 두고 어딜 간다는 거야.”

평상시의 그 오만한 낯은 어디 가고 비 맞은 강아지처럼 젖은 얼굴로 자비를 구하며 칭얼대고 있었다.

“나 버리지 마. 응?”

맞물린 성기가 끓는 것처럼 뜨거웠다. 발작적인 떨림마저 느껴졌다. 세라는 물론 펠릭스도 허리를 떨고 있었다.

다 토해 내듯 파정하면서도‚ 마지막 숨통을 끊는 맹수처럼 그녀를 짓이긴 채 몸을 무너뜨렸다.

“하으‚ 후‚ 끅‚ 하아…….”

세라가 그의 밑에 깔린 채 숨을 고르지 못하자 그가 등을 대고 누워서 그녀를 제 가슴 위에 올려 눕혔다.

“숨 쉬어. 천천히.”

젖은 가슴에 머리를 뉘자 쿵‚ 쿵‚ 심장 소리가 들렸다. 그의 가슴도 그녀만큼 미친 듯이 박동하고 있었다.

“괜찮아.”

착각일까. 머리칼을 쓰다듬는 그의 손길이 자못 다정하게 느껴졌다.

그의 다정은 거짓이다. 그저 먹잇감을 구슬려 집어삼키기 위한 위선일 뿐. 기대서도‚ 기대해서도 안 되는데.

“끅‚ 나 집에 흑‚ 갈래.”

세라는 놀란 가슴이 진정되지 않아 어린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렸다. 모순되게도 눈물을 훔치며 기만자의 품을 파고들었다.

“그래. 가자.”

펠릭스가 우는 세라의 등을 아기 달래듯 토닥이며 나직하게 속삭였다.

“나랑 같이.”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