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밖에 안 했습니다.” 내뱉는 목소리는 덤덤했다. “정말입니다.” 당당하다고 해도 좋을 만큼. 째깍째깍. 괘종시계의 초침 소리가 심장 소리처럼 크게 들려 머리가 울렸다. “데미안. 우린 아직 키스도 안 했어요. 그런데 그 여자와….” “브리!” “읏….” 순간적으로 시야가 아찔해 넘어질 뻔한 몸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지 않은 건, 그의 손이 날 잡아줬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몰랐을 때라면 그걸 고맙게 생각했겠지. 다른 여자와 입을 맞췄다는 걸 몰랐다면. 지금은 벌레가 기어가는 듯 느껴질 뿐. “정부를 들이는 일은 흔합니다. 그러니까….” “데미안 당신이 저와 결혼하는 조건에는 정부를 두지 않겠다는 조항이 있었어요. 그래서 승낙한 거였고….” “브리. 아이처럼 굴지 말아요. 결혼 전이랑 지금은 다르지 않습니까.” “데미안.” “키스가 문제라면 지금 하죠. 우리는 후사도 봐야 하지 않습니까.” 황금처럼 보였던 그의 금안도 지옥처럼 끔찍하게 느껴질 뿐이다. “그 여자가 그렇게 말하라 시키던가요?” “브리!” 남편과 입을 맞춘 그 여자. 그녀는 이 소설의 진짜 여주인공으로 진작 내 남편과 맺어져야 할 사람이었다. “이혼해요, 우리.” 더는 참을 수가 없어서 그렇게 그를 버렸다. *** “내가 말했지, 너랑 난 가족이 될 거라고.” 그가 갑자기 다가오는 모습에 놀라 한발 물러났다. 그러자 더는 달아날 수 없다는 경고를 하듯 뻗어진 팔이 나를 창살처럼 가두고 있었다. “난 네 남편이 되고 싶어, 브리.” 광기 어린 눈을 숨기지도 않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