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날개가 꺾인 새는 추락할 수밖에 (10)화 (10/135)

10.

“지젤 님은 저희가 모실 테니, 후작님께서는 이만 들어가셔도 될 것 같습니다.”

집사의 말에 다이한은 여느 때처럼 무심하게 등을 돌렸다. 그러자, 집사가 하녀들을 손짓해 불러 모았다. 지젤은 어이가 없어서, 그 꼴을 조용히 보기만 했다.

“다이한 님께서 정중하게 거절하셨으나 남작님께서 고집을 부리시는 중입니다. 곧 돌아가시겠지요. 나중에 후작님께서 허락하시면 편지라도 쓰심이 좋을 듯합니다.”

“정중한 거절?”

그게 말이나 되나? 저택 안에서도 반듯하게 정복을 입고 있는 다이한의 뒷모습을 보며 지젤은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

“일단, 조용히 침실로 돌아가시죠.”

집사는 참으로 이기적이게도, 그녀가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순종적으로 굴기를 희망했다. 그래야 저택이 조용해질 테니까. 집사가 눈짓하자 하녀들이 우악스럽게 지젤의 양팔을 붙잡아 당겼다.

“지젤 님, 제가 남작님께는 이만 돌아가시라 다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지젤은 당장 후작의 말 한마디에 저택 앞의 아버지를 보러 갈 수도 없는 줄 달린 연극용 인형 같은 이 삶이 비참하게 느껴졌다. 대체 왜 결혼했을까. 그녀가 서재로 들어가 버린 다이한의 뒤를 눈으로 쫓았다. 그냥, 죽여버리지. 이 결혼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었다.

“조용히 침실에 올라가 계시면, 식사 다시 내어드리겠습니다.”

선심 베푸는 듯한 말은 후작 부인을 대하는 태도가 아니었다. 그 말에 전의를 잃은 지젤은 하녀들에 의해 침실로 질질 끌려가며 눈을 감았다. 그녀는 없던 지병이라도 생겨 단시간에 죽어버리길 소망했다.

***

다이한은 왕비가 보낸 초대장을 책상 옆 쓰레기통에 툭 던져버리고는 집사를 향해 고개를 까닥였다. 비싼 종이를 감싸고 있는 금박이 그렇게 천박해 보일 수가 없었다. 집사는 가라앉아 보이는 후작의 기분을 살피며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자, 다이한이 작게 한숨을 쉬며 물었다.

“음식을 먹지 못한다고. 아니면, 먹지 않는다고?”

그의 말에 집사는 대답하려고 입을 벌렸다가 다시 다물었다. 지젤이 음식을 거부한 지 이틀째였다. 다이한이 저택 밖의 일로 바쁜 만큼, 저택 내의 모든 일을 관리하던 그는 겨우 이런 문제로 자신의 후작을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지젤은 옆에서 무슨 말을 해도 물 몇 모금 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어디가 아파서?”

길어지는 침묵이 답답한지, 다이한이 재차 물었다.

“아무래도, 일부러 드시지 않는 것 같습니다.”

“굶어 죽기라도 하려나 본데.”

그건 또 예상 못 했던 일인지라. 다이한이 눈썹을 들어 올리며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굶어 죽는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 생각보다 오래 걸릴 텐데.”

그가 덤덤하게 중얼거리며, 책상 위에 서류로 시선을 내렸다.

“남작을 만나겠다고 하던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누워만 계십니다.”

“그럼, 내버려 둬.”

원하는 것도 없는 모양이니. 먹고 싶어지면, 먹겠지. 그는 생각보다 단순하게 결론 내렸다.

“이러다, 정말 큰 병이라도 얻으실까 걱정입니다.”

결혼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아서, 후작 부인이 병을 얻어 죽으면 후작가의 명예에 금이 갈지도 몰랐다. 다이한은 그런 집사의 말에도 크게 관심 보이지 않고 펜을 움직였다. 그에, 집사도 더는 지젤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

지젤은 묘하게 싸늘하고 날카롭게 구는 하녀들과 하인들의 태도들에 놀라지 않았다. 어떤 하녀는 목욕 후 몸을 닦아주며 부러 손톱을 세워 그녀의 팔에 생채기를 만들기도 했다. 지젤은 그런 일로는 화를 내거나, 언성을 높이지 않았다. 육체가 고통스러우면, 정신의 고통이 좀 덜어지는 것 같았다.

“이게, 편해.”

그들이 그녀를 미워할수록, 그녀는 본인이 이 저택에 있는 게 부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걸 상기시킬 수 있었다. 내가 틀리지 않았다고.

침대에 누운 그녀는 멍하니 눈을 깜박이며 허리가 아프다고 생각했다. 누워만 있었더니, 허리가 뻐근하게 아파져 왔지만 걷고 싶다든가 움직이고 싶지는 않았다. 무기력에 잡아먹힌 것 같네.

와중에 침실 문이 소리 없이 열리는 게 시야에 들어왔지만, 그녀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노크도 없이 들어올 사람은 한 명이었다.

“나흘째, 굶고도 살만한가 보지?”

아직 그것밖에 안 지났나. 어디가 크게 아파지려면 얼마나 굶어야 하는 거지. 지젤이 이쪽을 내려다보는 다이한의 초록 눈을 쳐다봤다. 에메랄드색 눈이 고요하게 빛을 내는 게 이질적이었다. 금발이 쓸데없이 반짝여서, 지젤은 눈을 감았다.

“여동생이라도 보게 해주세요.”

그녀의 난데없는 말에 다이한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는 잠깐 무언가 생각하듯 말없이 지젤을 바라만 봤다. 하얀 침대 시트 위로 펼쳐진 붉은 곱슬머리가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붉은색이 선혈보다 짙어서, 그는 눈을 떼지 못한 채로 입을 열었다.

“무릎 꿇고 애원해 봐.”

뭐? 지젤의 푸른 눈이 다이한을 직시하자, 그가 고개를 기울이며 말을 이었다.

“내 생각이 변하도록, 설득해.”

나는, 아직도 네가 남작가 사람들을 만나겠다는 이유를 모르겠으니까. 지젤의 얼굴이 삽시간에 일그러졌다. 그걸 보면서도 그는 기다렸다. 그 스스로도 뭘 기다리는지 이해가 안 갔지만, 그게 뭐든 지젤이 산송장처럼 있는 것보다는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미친놈.”

애원하라고? 제대로 미친놈 같으니. 지젤이 다이한에게 살벌하게 욕을 내뱉고는 몸을 돌렸다. 다이한은 그런 그녀의 작은 등을 바라보며 단정 지었다.

“자존심을 버릴 만큼 보고 싶지는 않은 것 같네.”

그 말에 울컥한 지젤이 몸을 벌떡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두 번 다시, 당신한테 무릎 꿇지 않아요. 무의미하다는 걸 아니까.”

그 자존심 버리고 애원해봤지만 돌아오는 건 냉소뿐이었다는 걸 기억하니까. 다이한은 그런 지젤의 푸른 눈이 참 깊다고 생각했다. 지젤이 그런 그의 시선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이를 악물었다.

“잠깐, 그 잠깐 얼굴 보는 것도 안 된다는 이유가 뭐죠?”

글쎄, 이유는 단순했다. 남작과 그녀가 무슨 작당을 할지 모르니까. 그리고, 그는 생각보다도 여린 것 같은 그녀가 그들에게서 정을 좀 떼어냈으면 싶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니까. 그는 또 일차원적으로 생각하고 평면적인 결정을 내렸다.

“그 잠깐 얼굴 보려고. 그걸 얻고자 굶는 걸로 시위한다?”

“음식을 먹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항의하는 차원에서 굶는 것도 있었지만, 대놓고 그걸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어찌 되었든, 협박당하고 있으니까. 지젤이 변명하듯 중얼거리며 고개를 숙이자, 다이한이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들어 올렸다. 고개를 숙이면, 얼굴이 긴 머리카락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다. 단기간에 확 빠진 체중 탓인지 그의 손에 닿은 뺨이 푸석거렸다.

“억지로라도 먹어.”

“먹고 싶을 때, 그때 먹을게요.”

그는 그녀가 먹고 싶어지는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기에, 그녀의 얼굴을 이리저리 돌려 살폈다. 말랑했던 볼살은 쑥 들어가고, 광대뼈가 돌출되었으며 안색은 어두워 보였다.

“귀찮은 일 만들지 말라 했는데.”

지젤은 다이한의 그런 행동이 아버지가 가축을 사기 전 살피던 모양새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이대로는 또 말 많은 늙은 의원을 불러야 할 것 같으니, 먹어.”

“그럼, 가족들을 만나게 해주세요.”

다이한은 그대로 지젤의 얼굴을 놓아버렸다. 그녀는 묘하게 그의 신경을 곤두서게 했다. 겨우 며칠 굶은 걸로는 신경을 쓰지 않으려 했지만, 그는 결국 그녀의 침실에 들어서 있었다. 그는 이런 비합리적인 행동의 이름을 정의할 수가 없었다.

“나는 한가한 사람이 아닌데, 넌 내 시간을 낭비해.”

“그거, 참 죄송하네요.”

그는 사과 같지 않은 사과를 하는 지젤에게 대답하지 않고 침대 옆에 달린 줄을 잡아당겨 하녀를 불러냈다. 나이가 가장 많은 하녀가 빠르게 침실 안으로 들어서며 허리를 숙였다.

“예, 후작님.”

“이제부터 후작 부인께서 식사하지 않으시거든, 포박하고 입을 억지로 벌려서라도 떠먹여.”

다이한이 지젤의 눈을 똑바로 내려다보며 말했다. 지젤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어가는 걸 보면서 그는 무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놀란 하녀가 드물게 후작에게 되물었다.

“네?”

“아침, 점심, 저녁. 매 끼니 조금이라도 남기거나 뱉어내는 만큼, 너희에게 벌을 줄 것이니. 세심하게 모셔.”

지젤은 다이한이 모진 것을 넘어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모르던 바는 아니었으나, 새삼 정말 그녀를 가축 다루듯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 후작님.”

하녀가 넙죽 허리를 숙이고 대답하는 걸 들은 지젤은 저도 모르게 탄식했다. 또 울컥해서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기에, 그녀는 아랫입술을 짓씹었다. 다이한은 그런 그녀의 얼굴을 놓아주고는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이제라도 네 손으로 먹을 마음이 생겼나?”

이렇게 대놓고 협박하니, 더 오기가 생겨서 지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여전히, 먹기 싫어요.”

본인이 멍청한 행동을 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녀는 제 손으로 음식을 떠먹고 싶지 않았다. 가족들도 못 만나게 하는 이 상황에서는 더욱더 그의 뜻을 따르고 싶지 않았다.

“그래, 그럼.”

그가 그녀의 뜻을 존중이라도 하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고는 하녀를 향해 눈짓하자, 하녀는 빠르게 주방으로 뛰어갔다. 다이한도 곧 지젤을 두고 침실을 나섰다.

침실 문이 무겁게 닫히기 직전, 지젤의 입에서 낯익은 이름이 흘러나왔다. 그건, 숨소리만큼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정확하게 다이한의 귀에 꽂혀 들어왔다.

“미하엘.”

나, 너무 힘들어. 네가 보고 싶어.

그녀의 흐느낌과 함께 터져 나온 문장들을 가만히 듣던 다이한은 조용히 문을 닫았다. 문손잡이를 쥐고 있는 그의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무표정한 얼굴을 한 채로 힘줄이 돋아날 정도로 문손잡이를 잡고 있는 자기 손을 내려다본 다이한은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그는 그렇게 한동안 말없이 서서 그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래서.”

그것 때문에, 하다못해 밥 먹는 것마저 이렇게 신경 쓰게 만든다. 그가 허공에 대고 숨을 토해내듯 작게 수긍했다. 다이한은 문제점을 완벽하게 파악했다고 생각하며, 그대로 그곳을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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