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낭만적인 초능력을 위하여 (56)화 (56/75)

#56. 왜 그래야 하죠

모두가 잠든 밤, 하이버 성에 움직이는 자가 있었다.

“드디어….”

남자는 낮게 웃었다. 기다리던 때가 왔다. 지하 감옥에 갇혔다고는 하지만, 하이버 지역 특성상 능력자들의 능력을 봉인할 수 있는 감옥이 제대로 준비되어 있을 리 없었다. 남자의 이름은 뉴트. 그는 태어나자마자 버려졌기 때문에 원래 이름이랄 게 없었다. 말을 할 수 있게 되면서 스스로 지은 이름이었다. 그는 공간 이동 능력을 통해 각종 범죄를 섭렵했다. 자신이 하고 있는 게 범죄라는 사실도 몰랐다. 그가 사는 세상에서는 그게 법도였으니까.

다만, 그의 공간 이동 능력에는 제약이 있었다. 능력이 약한 탓에 계속해서 쓸 수가 없었다. 연속해서 몇 번 쓰고 나면 금세 능력이 고갈되었다. 뿐만 아니라, 몸을 움직이기 어려워졌다. 슈슈라는 고아를 들인 것도 그 때문이었다. 자신이 친아버지라고 하자, 아이는 금세 자신을 따랐다. 몸을 움직일 수 없어 약해졌을 때는 판잣집에 몸을 숨기고 아이의 보살핌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슈슈에게 전혀 고마워하지 않았다. 알코올 중독자인 그는 매일같이 술을 찾아댔다. 심지어 술에 취하면 아이에게 손찌검을 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길바닥에 굴러다니던 고아를 거둬줬으니, 아이가 자신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드디어 완벽하게 회복했군.”

그는 자신의 두 손을 쥐었다 펴며 몸을 움직여 보았다. 벅찬 감정을 숨길 수 없었다. 두 남녀를 한 명씩 옮긴 탓에 거의 일주일 치 능력을 다 쓴 상태였었다. 감옥에 온 이후, 거의 기절하듯 누운 상태로 조금씩 능력이 차오르는 걸 기다려야만 했다. 그사이 고문이라도 받아 신체 능력이 떨어지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다행히 하이버 백작은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다. 그는 알폰스 왕자가 떠나는 날까지 마을 주민과 남자의 처벌을 미루고 있었다. 아마도 지역 주민들에게 동정이라도 베풀려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직접 납치를 한 자신은 완전히 면죄 받을 수는 없었다.

이동하기 전, 남자는 신중하게 장소를 고민했다. 처음에 숨었던 지하실이 들킨 것은 예상치 못한 사고였다. 아주 오랫동안 버려진 곳이었다. 설마 누군가 그곳을 찾아내리라고는 상상치 못했다. 하지만 들킨 데다가 모두 타버렸으니 다른 곳으로 숨어야 했다.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판잣집이었다. 다 쓰러져 간다고는 하나, 자신의 집이었다. 가만히 아픈 척하고 있으면 슈슈가 먹을 것이며 술을 구해왔다. 편한 생활을 놓고 가려니 속이 쓰렸다.

“거기밖에 없나.”

하지만 어디든, 지하 감옥보다는 나을 것이다. 일단 그는 힘을 최대한 짜내, 멀리 떠나기로 했다. 두 다리가 멀쩡할 동안.

“흡!”

하지만 아무리 힘을 써도, 눈을 감았다 뜨면 같은 풍경이 보였다. 녹이 슨 쇠창살에 차디찬 벽돌로 된 지하 감옥. 이게 어찌 된 일이지? 그는 어리둥절해서 주위를 살폈다.

“도망칠 생각입니까?”

입구 쪽에서 걸어오는 발소리와 함께 낯선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목소리였다. 그의 등으로 식은땀이 주룩 흘렀다.

“누구야?”

자세히 보려 눈을 떴지만, 복도 쪽을 비추던 횃불이 꺼진 상태였다. 어둠 때문에 정체를 알 수 없었다. 다만 기척으로 보아 그 혼자인 듯했다. 뉴트는 몸을 긴장시켰다.

“공간 이동 능력을 왜 사용할 수 없는지 궁금하시다고요.”

소리 내 말한 적도 없건만, 어둠 속 인영의 주인은 그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어, 어떻게…?”

달빛에 안경이 비쳤다. 그 순간, 우악스러운 손길이 철창 너머 그의 얼굴을 그러쥐었다. 아, 이 느낌. 불길 속에서 나가던 그 순간의 느낌과 동일했다.

“불편하겠네요. 능력에 제약이 있다니. 게다가 멀리 이동하지도 못하고. 너무 많이 쓰면 쓰러져 버리기까지? 그런데 또 그 능력을 딴 데 쓸 생각은 안 하고 평생을 도둑질이나 사람 납치 같은 거나 하면서 살아왔네요?”

어떻게 안 것일까. 자신의 능력에 대한 비밀은 아무에게도 말해본 적 없었다. 부모고 친척이고 주위에 아무도 없었기에 말할 사람조차 없었다. 뉴트의 몸이 두려움에 떨리기 시작했다.

“괴, 괴물….”

겁도 없이 자신을 괴물이라 칭하는 말에 남자는 피식 웃었다. 아주 어렸을 적엔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은 말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괴물’이라는 단어가 반갑거나 그리운 건 절대 아니었다.

“겁을 상실했군요? 자신의 죄가 뭔지도 모르는 겁니까?”

“사, 살려뒀잖아요! 그 아가씨에게는 손도 대지 않았다고요!”

그는 필사적으로 변명했다. 눈앞의 남자에게는 씨알도 먹힐 것 같지 않은 변명이었다. 하지만 뭐라도 말하지 않고선 견딜 수 없었다.

“하아. 손도 대지 않았다라.”

정체불명의 남자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노골적으로 경멸하는 목소리였다. 잡혀 있던 남자가 혹시나 틈이 생기면 얼굴을 빼려 할 때였다.

“크윽…!”

얼굴을 쥐고 있던 손아귀의 힘이 더 강해졌다. 악력만으로 얼굴을 터트릴 것만 같았다. 고통스러워하는 신음이 골목길을 메웠다.

“남자는, 인질로 잡아두기 위해 목숨만 붙여놓을 생각이었죠. 여자는, 그녀는… 쓸 수 있는 데까지 능력을 짜내고, 능력이 떨어지면… 다른 곳에 쓰려고 하지 않았나요? 팔아넘기는 척만 하고, 공간 이동으로 다시 데려와서 계속… 계속해서 마을 주민 대상으로 장사를 할 생각이었잖아요?”

목소리의 주인은 한마디, 한마디 고통스럽게 내뱉었다. 정작 고통스러운 것은 우악스럽게 얼굴을 잡힌 자신인데. 너무 세게 잡혀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계획을 어떻게 알았냐고 되물을 수조차 없었다.

“저도 별로 알고 싶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알게 된 이상.”

비로소 남자와 눈이 맞았다. 그의 눈엔 어떤 것도 깃들어 있지 않았다. 살의, 증오 등의 모든 감정을 초월한 유리 같은 눈빛이었다.

우당탕탕!

남자는 갑작스레 뉴트를 감옥 안쪽으로 던졌다. 뉴트는 넘어지면서도 계속해서 남자를 살폈다. 호리호리하게 생긴 팔에서 나왔다기엔 엄청난 힘이었다.

“이 감옥에서 나가실 수 없을 겁니다. 제가 특. 별. 히 능력자용으로 개조했으니까.”

창살 사이로 그는 이를 드러내고 씨익 웃어 보였다. 그가 환하게 웃는 만큼, 뉴트는 하얗게 질려갔다.

***

드디어 왕궁에서 온 일행이 떠나는 날이었다. 하이버 백작은 잠을 설쳤다. 간밤의 꿈자리가 좋지 않았다. 최근 일어난 사건 때문에 며칠 골머리가 썩은 탓이었다. 알아서 처분하라고 해서, 처분 수위를 한참 고심했다. 하지만 납치를 한 당사자는 제외하고 다른 자들은 일반 마을 주민이었다. 다른 주민들의 반발을 생각해서라도 훈방 조치를 취하는 게 나을 듯했다. 눈치를 봐서, 일행이 떠나면 바로 풀어줄 생각이었다.

알폰스 왕자에게 받을 건 모두 받았다. 그 또한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한 행보였을 테니, 서로에게 손해될 것은 없었다. 납치를 당한 당사자도 직접 지역민들을 돕고 싶다고 했으니, 문제 될 일은 없을 터였다.

똑똑.

“무슨 일인가?”

“백작님, 알폰스 왕자님의 제1 보좌관님께서 뵙길 청하십니다.”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다행히 왕자의 배웅을 위해 준비는 마쳤다. 막 조찬을 하러 식당으로 내려가려던 참이었다.

“흠…. 서재로 모시게.”

“네, 알겠습니다.”

제1 왕자의 제1 보좌관이라면 왕자의 곁에 내내 서 있던 자였다. 자연히 얼굴 정도야 기억이 났다. 수재라고 하더니, 외모가 빼어나서 수재인가 싶을 정도의 인물이었다. 그런 자가 직접 만나러 오는 거라면 왕자의 말을 대변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함부로 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백작님, 이른 아침부터 실례하겠습니다.”

“아닐세. 무슨 일인가?”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 왔습니다.”

그랬겠지. 어지간히 긴하지 않으면 아침부터 올 리가 없을 테니까. 아침 식사를 방해받아 백작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를 눈치챘는지, 어쨌는지 보좌관은 빙긋이 웃을 뿐이었다.

“혹시 죄인들에 대한 처벌 수위는 결정하셨는지요?”

“…그건 왕자님께서 나에게 일임하신 부분이 아닌가?”

속마음이 들킨 듯 목이 탔다. 백작은 저도 모르게 탁자에 있는 찻잔으로 손을 뻗었다.

“네, 그러셨습니다. 하지만 모자란 마음에 걱정이 되어서 말입니다.”

“무엇이 말인가?”

“혹 백작님께서 죄인들을 모두 무죄 방면하시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그, 그럴 리가 있나.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자네가 참견할 일은 아니지 않나?”

알폰스 왕자가 하이버 성을 떠날 때까지만이었다. 오전 중 떠날 예정이었으니 몇 시간 남지 않은 셈이었다. 그때까지만 거짓말을 하면 하이버 지역에서 일어난 작은 소동으로 끝낼 수 있는 일이었다.

“주제넘는 말씀을 드려 송구합니다. 하지만 이번 하이버 지역 출장은 왕자님께도, 나아가 왕궁에 계신 전하께도 중요한 일입니다. 지역과 관계없이 모두를 공평하게 사이키델리아의 국민으로 대하겠다는 왕궁의 뜻을 전달하는 일이니까요.”

백작은 대답 없이 차만 들이켰다. 이래서 정치하는 자는 싫었다. 검 하나 못 휘두르게 생긴 주제에 세 치 혀로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니까.

“왕궁에서 호의로 보낸 자들이 납치된 데다 상해까지 입었습니다. 아무리 평범한 마을 주민이라고는 하나, 그들을 돈 주고 사려 했던 자들이 있고요. 작게는 하이버 지역에서 일어난 소동으로 끝내버릴 수 있기는 하나….”

그는 일부러 말을 끌었다. 백작의 동공이 흔들렸다. 눈앞에 있는 자는 자신의 속마음에 들어갔다 나온 듯한 말을 했다. 결코 만만히 볼 자가 아니었다.

“그러다 오해라도 사시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왕자님과 전하의 호의를 무시하고, 한낱 죄인들과 하이버 백작님이 뜻을 같이했다는.”

“자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가?”

백작은 결국 참지 못하고 화를 냈다. 보좌관의 목적은 확실했다. 자신이 그 죄인들을 무죄로 풀어주지 못하도록 못을 박는 것.

“백작님 심기를 불편하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이런, 조찬 시간이 다 되었네요. 실례지만 먼저 일어나보겠습니다. 왕자님께서 저를 기다리고 계셔서요.”

그의 모호한 말 때문에, 왕자가 의도한 일인지 아닌지 헷갈렸다. 하지만 적은 확률이라고 할지라도, 혹시나 왕자의 뜻이 담긴 거라면? 그는 차기 국왕이나 마찬가지인 자였다. 변방 영주가 함부로 거스를 수 있을 리 없었다.

“자네, 정말 대단하군.”

백작은 순수한 놀라움을 담아 말했다. 한낱 보좌관 주제에 백작씩이나 되는 자신을 옭아매다니. 장차 알폰스가 왕위에 오른다면 패권은 그의 손아귀에 갈 게 뻔했다.

“과찬이십니다. 그럼 백작님께서 왕궁에 대한 충정을 충분히 보여주시리라 믿습니다.”

마지막까지 그의 미소는 한 점 흐트러짐이 없었다. 백작은 다시금 결심했다. 중앙의 일엔 절대 참견하지 않겠다고. 저런 뱀 같은 자와는 다시 얽히지 않는 게 상책이었다.

***

일행은 빈틈없이 짐을 싸려고 노력했다. 백작은 일행에게 돌아가는 동안 부족하지 않을 만큼의 식량을 제공해 주었다. 돌아가는 길은 다시 추위와 노숙과의 싸움이었다. 하지만 일행의 표정은 비교적 밝았다. 하이버 성의 대접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지만, 낯선 곳에서 정든 곳으로의 귀환은 언제나 마음을 들뜨게 했다. 물론 작은 해프닝도 있었다.

“영애, 이번에야말로 마차에 타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전 정말로 괜찮습니다.”

“이번에 안 좋은 일을 당하기도 했잖습니까. 사양 말고 타시지요.”

“다친 건 제가 아니라 케빈 님이십니다. 괜찮다면 그분을 태워주실 수 있으실까요?”

“…영애의 마음은 잘 알았소. 이만 출발하도록 하지.”

알폰스는 리아의 제안을 깔끔히 무시하고 마차에 올라탔다. 어지간히 사내와 함께 마차에 타는 게 싫은 모양이었다. 여전히 어린아이 같은 왕자의 모습을 두고, 리아는 퍼스와 마주 보며 한 번 웃어 버렸다. 돌아가는 길은 올 때보다 훨씬 짧게 느껴졌다. 이제 한동안 이 많은 눈은 보기 어려울지 몰랐다. 리아는 가는 내내 설경을 눈에 담으려 노력했다. 하이버 지역에서 있었던 일은 최대한 좋은 일만 기억하려 애썼다.

“리아? 뭘 보는 거야?”

시선의 끝에 작은 그림자가 보였다. 산짐승인 것 같기도 하고, 작은… 아이인 듯 보이기도 했다. 잠시 그쪽을 바라보던 리아는 이내 정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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