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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찔한 룸메이트 외전-외전 기승전결 (20/24)

외전 기승전결

카메라 플래시가 정신없이 터져서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앤드류를 향해 성난 소 떼처럼 달려드는 이들은 이해할 수 없는 질문들을 쏟아 냈다.

“이러고도 왕자비라 할 수 있나요?”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날 생각도 없으십니까?”

“조지 왕자는 뭐라고 하던가요?”

녹음기를 켠 휴대폰이 앤드류의 앞에 몰려들었다. 더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모여든 기자들은 이상하게도 얼굴이 없었다. 호러 영화에 나오는 좀비처럼 입을 벌린 채 삐걱거리며 앤드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몸싸움을 하는 이들을 하얗게 질린 얼굴로 바라보던 앤드류는 팡, 하고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에 눈을 꾹 감았다.

“지금 눈을 흘기시는 겁니까?”

“기자들에게 불만을 표현하시는 겁니까?”

“비호감이라는 여론을 비난하시는 겁니까?”

한층 더 사나워진 목소리들에 앤드류는 뭐라고 답을 하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가슴이 답답했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십니까?”

앞으로?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까? 

“오늘 있던 일이 보도되면 이건 개망신 아닙니까?”

오늘?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데? 멍한 머리로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거봐. 너도 견디지 못할 거라고 말했잖아.”

익숙한 목소리에 눈을 동그랗게 뜬 앤드류가 옆을 돌아봤다. 그곳에 그가 있었다. 조지의 정보를 팔아넘기라고 말했던 그 기자. 분명히 조지가 조치를 취했다고 들었는데 그는 다시 기자가 되어 앤드류의 앞에서 녹음기를 내밀고 있었다.

“그 누구도 견디지 못할 거라고 내가 말했잖아.”

“…….”

“이걸 봐.”

그는 앤드류를 향해 커다란 화면을 내밀었다. 분명 작은 휴대폰임에도 지나치게 크게 느껴지는 화면을 가득 채운 건 사진이었다. 그러나 무슨 사진인지 알 수가 없었는데 그 밑에 달린 댓글들이 보였다.

- 오늘 왕자비가 사고친거 봤냐? 개웃김

- 쪽팔려 진짜. 무슨 왕자비가 이 따위야?

- 조지가 사람 보는 눈은 좀 없는 듯

- 부모 없이 커서 그래. 애정이 고픈 애들 중에 잘 자라는 애들이 드물다.

- 쫓아내야 하지 않냐?

비난을 쏟아 내는 댓글들을 가만히 바라보는데 그 기자가 말했다.

“봐, 이건 시작이야. 너는 더 난도질당할 거야.”

“…….”

“무슨 말이라도 해 보지 그래?”

반짝이는 화면을 바라보던 앤드류가 기자를 바라보았다. 그의 히죽이는 얼굴을 향해 외치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를 향해서 묻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데?’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데?

“헉!”

앤드류가 식은땀을 흘리며 잠에서 깼다. 카메라 플래시가 눈앞에서 터지는 것 같아서 무거운 눈꺼풀을 끔뻑거리던 앤드류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읏.”

꿈속을 헤매던 앤드류를 현실로 끌어 올린 건 통증이었다. 몸을 비틀자 근육통이 몰려왔다. 긴장으로 굳은 몸을 천천히 이완시킨 앤드류가 작게 숨을 내쉬었다.

공식 석상에 나가는 일정이 있는 전날에 꾸는 악몽은 새롭지도 않았다. 근거 있는 자신감으로 가득 찼던 인생이라서 악몽이 끼어들 틈이 없던 것도 다 과거였으나 오늘따라 유독 꿈이 사나웠다. 반갑지 않은 사람의 얼굴까지 본 앤드류는 꿈이 어떤 불행한 사건을 미리 암시하는 건 아닌지 짧게 고민을 하다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

그곳엔 조지가 있었다. 곤히 잠들어 고요한 조지의 얼굴을 조용히 바라보던 앤드류가 손을 뻗어 협탁 위 휴대폰을 집었다. 시간은 오전 6시였다. 꿈 때문에 평소보다 일찍 일어난 앤드류는 오늘의 일정표를 확인했다.

오전에는 대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점심을 먹은 다음 오후 2시쯤에 왕세자비와 함께 자선 행사에 참가해야 한다. 그곳에서 언론사 미팅을 짧게 진행한 뒤 봉사 활동을 1시간 한다. 저녁에는 왕궁 저녁 만찬에 참가해야 한다.

평소보다 조금 뻑뻑한 하루가 될 것 같아서 일정표를 본 앤드류는 메시지를 확인했다. 어제 제인이 보낸 메시지였다. 얼마 전 공식 석상에서 찍은 사진이었는데 곧 쓰러질 것처럼 하얗게 질린 앤드류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어 있었다.

오빠, 사진 개웃김ㅋㅋㅋㅋㅋ
이러다 연설하다 졸도하실 듯ㅋㅋㅋㅋㅋ
이 정도면 카메라 공포증 아님?
카메라 공포증은 아니야..
ㅋㅋㅋㅋ왜 이렇게 쫄았음? 오빠답지 않게.
나도 몰라 ㅠㅠㅠㅠㅠ

그러자 제인이 기사에 달린 댓글을 캡처해 보내 줬다. 내용은 이랬다.

- 왕자비 귀엽 ㅋㅋ겁먹은 쿼카같음ㅋㅋㅋㅋ

- 긴장해서 굳은 왕자비 바라보는 조지 사진 봄? 겁나 달달해ㅋㅋ왕자비 귀여워 죽으려고함ㅋㅋ

- 이거 영상은 더 웃김. 팔다리 삐그덕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음. 완전 옴닉ㅋㅋㅋ

- 출구 잘못 찾아가지고 민망해 하는 앤디 보고 조지 좋아 죽으려고 함ㅋㅋㅋㅋ

캡처본을 보낸 다음 제인이 메시지를 보냈다.

사람들이 다 속고 있다ㅋㅋ 오빠보고 쿼카래ㅋㅋㅋ성질 드러운 왕자비의 실체를 아무도 모르다니.
근데 쿼카가 뭐야?
검색해보셈ㅋㅋ 아무튼 좀 쪽팔리겠지만 너무 상심하진 마삼.
사진 거대하게 뽑아서 우울할 때 보겠음. ㄱㅅ

메시지를 보던 앤드류가 한숨을 푹 쉬었다. 주목받는 삶이 나쁘지는 않았는데 그건 아주 소규모일 때 해당되는 이야기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국가적인, 아니, 전 세계적인 유명 인사가 받는 관심은 좀 무서웠다. 차라리 타고난 관심 구걸자면 나을 뻔했는데.

앤드류는 자신이 이럴 줄 몰랐다. 카메라 플래시 앞에서 작아지는 이 새가슴을 어떡할까? 카메라 공포증이 아니라고 말했지만 그게 맞을지도 몰랐다. 다행히 이런 자신을 귀엽게 봐 주는 시선들이 있어 고마웠지만 언제까지 지속될지 몰랐다. 치료를 받아야 하나? 고민하는 때였다. 조지가 앤드류의 휴대폰을 뺏더니 협탁 위에 올려두었다.

“더 자.”

“일어났어?”

“아니, 그러니까 앤디 더 자.”

“…….”

“자자.”

조지는 눈도 못 뜨고 있었다. 등을 돌리고 있는 앤드류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잡아당긴 그는 앤드류를 꽉 끌어안았다. 어서 자라며 토닥여 주는 조지의 손길이 점점 느려지더니 이내 곧 멈췄다. 조지의 맨가슴에 고개를 파묻고 조용히 숨죽이고 있던 앤드류는 그의 숨소리가 일정해지자 고개를 빠끔히 들었다.

‘내 알파 자는 모습은 왜 이렇게 섹시할까? 섹시하면서도 순수해 보이고 게다가 처연해 보이기까지 하니 이건 완전체가 아니던가. 사람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신이 조지를 만드실 때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한 게 분명해. 그럼. 누구 알파인데! 여기저기 자랑하고 싶은데 자랑 안 해도 내 알파 잘난 줄 세상이 다 아니 너무 싫다…….’

볼 때마다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신혼 생활을 시작한 지 고작 3개월이 지났는데 조지는 전보다 더 어른스러워졌고 더 멋있어졌다. 얼굴선은 조금 더 날카로워졌는데 골격은 더 단단해졌다. 안 그래도 사람을 매료시키던 눈초리는 더욱 깊어졌고 원래도 길었던 속눈썹은 촘촘함을 넘어 촉촉해 보였다. 예전에는 그냥 잘생긴 왕자였다면 요즘에는 묘한 매력까지 더해져서 조지의 인기는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었다.

‘이걸 나만 볼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

욕심 가득한 생각을 하며 잠든 조지의 얼굴을 황홀하게 바라보던 앤드류가 불현듯 뭔가를 깨달았다. 그는 조지가 깰까 봐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여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액정 화면에 가득한 정장 입은 조지를 보고 히죽 웃음을 흘린 앤드류가 카메라를 켰다. 그러고는 조지의 잠든 모습을 찍었다. 그런 다음 조지의 눈, 코, 입술을 찍었다.

원래 계획은 딱 여기까지였는데 뭔가 좀 아쉬운 마음에 입맛을 다신 앤드류가 조지의 품에서 조용히 벗어났다. 그런 다음 선이 예쁜 조지의 목을 찍었다. 알파면서도 곧게 뻗은 쇄골을 찍었다. 그 밑에 있는 의외로 볼륨감 있는 가슴을 찍은 다음 잠시 고민을 한 뒤 이불 안으로 기어들어 갔다.

수영 선수처럼 촘촘한 복근을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사진을 찍었다. 잘 나왔나 확인을 한 앤드류의 시선이 그 밑으로 향했다. 배꼽 밑으로 보이는 금발의 털과 그 밑에 있는 탐스러운 성기! 몇 시간 전에 앤드류의 몸에 파묻혀 있었던 조지의 성기!

이리 봐도 저리 봐도 잘생겼다. 분홍빛에 길게 쭉 뻗은 성기는 귀두 끝이 두툼했다. 색깔도 예쁘고 길이도 예쁘고 두께도 예쁘다. 누가 봐도 잘생겼다고 한마디 할 법한 걸 보고 있자니 코에서 뜨거운 김이 뿜어졌다. 생긴 것만 잘생기면 좀 아쉬웠겠지만 잘생긴 게 제 역할도 훌륭히 잘했다. 가끔 지나칠 정도로.

“결혼 참 잘했지…….”

앤드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얼마나 잘생겼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 자신뿐인 게 이렇게 기특할 수가 없다. 눈물 흘릴 뻔. 잠든 남편의 알몸을 보고 이러는 게 팔불출 같긴 했지만 뭐 어떤가! 미소를 지으며 이불 밖으로 나오려던 앤드류가 순간 멈칫했다.

“흐음…….”

짧게 고민을 했다. 오늘 하루는 무척 고될 것이다. 언론사 인터뷰 때 아무 일 없으면 좋겠지만 그러기 힘들 것이다. 또 잔뜩 긴장해서 하얗게 질리겠지. 그런 자신의 모습을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볼 것이고 저마다 평가를 내릴 것이다. 그러니… 뭔가 위로할 게 있으면 좋지 않을까?

마음 한편을 따뜻하게 만들어 줄 무언가가 있으면 참 좋을 것이다. 누구나 가슴속에 사랑하는 사람의 예쁜 사진은 품고 있는 것 아니던가. 앤드류는 결론을 내렸다. 어차피 이 핸드폰은 자신의 폰이니까. 남편이 남편 알몸 사진 좀 찍는다고 뭐가 문제랴?

“그럼, 그럼.”

이불 속에서 고개를 끄덕인 앤드류가 마른침을 꼴깍 삼키고는 카메라를 들었다. 단단한 허벅지 사이에 자리 잡은 걸 몇 장을 찍은 다음 문득 장난기가 돌았다. 조지가 깊은 잠에 빠진 걸 확인한 앤드류는 조지의 성기를 손으로 잡았다.

“흐흐흐.”

웃음을 흘릴 뻔한 걸 겨우 참은 앤드류가 손바닥 위에 조지의 성기를 올린 채 사진을 찍었다. 손바닥을 가든 채운 성기에 뿌듯함이 몰려왔다. 그렇게 몇 장을 찍은 다음 앤드류는 멈춘 여정을 계속해 나갔다. 단단히 근육이 잘 잡힌 매끈한 허벅지를 찍은 다음 무릎을 찍으려던 앤드류가 멈칫했다.

“상처가 있네?”

조지의 오른쪽 무릎에 아주 오래된 흉터가 있었다. 이걸 왜 지금까지 몰랐지? 고개를 갸우뚱거린 앤드류가 조심스럽게 무릎을 어루만졌다. 조지에 대해 아직 모르는 점이 있다는 게 꽤 이상한 감정을 불러일으켜서 새끼손톱만 한 상처를 만지작거렸다. 이 정도 흉터면 다쳤을 당시 꽤 아팠을 텐데. 아주 먼 과거에 조지가 다쳤을 걸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안 좋아서 한참을 어루만지는데 그때였다.

“흐아아!”

갑자기 엉덩이를 꽉 쥐는 손에 깜짝 놀란 앤드류가 벌떡 일어나 뒤를 돌아봤다. 조지가 짓궂은 미소를 흘리며 앤드류의 엉덩이를 만지고 있었다.

“아침부터 하자는 거야?”

개구리처럼 납작 엎드린 채로 엉덩이를 쭉 빼고 있던 앤드류가 기겁을 했다.

“무, 무슨 소리야!”

엉덩이가 터질 듯이 쥐던 손이 슬금슬금 밑으로 들어오려 하자 앤드류가 조지의 손을 저리 밀어 버렸다. 이불 밖으로 나온 앤드류는 자신을 끌어안으려는 조지의 품에 베개를 던져 주었다.

“언제 일어났어?”

“네가 내 거 만지며 유혹할 때.”

앤드류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조지는 나른하게 웃으며 앤드류가 던져 준 베개를 옆으로 밀었다.

“그런 거 아니라고 했지?”

“그게 아닌 거 같던데.”

“아니라니까?”

앤드류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자신을 꽉 끌어안는 조지는 거부하지 않았다. 앤드류는 얼굴을 비비는 조지 때문에 간지럽다며 웃음을 터트렸다. 조지가 이마에 입을 맞추려는 듯 다가오자 앤드류가 고개를 뒤로 뺐다. 안아 주는 건 좋은데 키스는 싫다는 거부에 조지가 앤드류를 바라봤다.

“안 돼.”

“나도 안 돼.”

그 말에 더 오기가 붙는지 조지가 이번에는 입을 맞추려 했다. 웃음을 터트리며 앤드류가 이리저리 피했다. 그렇게 한참을 침대 위에서 부둥켜안고 난리를 쳤는데 승리자는 조지였다. 도망가는 앤드류를 꽉 끌어안은 조지가 그의 볼에 입을 맞췄다.

“그 이상은 안 돼. 나 오늘 오전 수업 있어.”

조지도 더는 욕심 낼 생각이 없는지 안심하라는 듯 앤드류의 이마에 몇 번 더 입을 맞췄다. 그러고는 앤드류를 더 꽈악 끌어안고 볼을 비볐다. 맨살이 스치는 느낌에 작게 웃음을 흘리던 앤드류가 조지의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어루만졌다.

“아침부터 뭐 하고 있었어?”

궁금한지 조지가 앤드류가 쥐고 있던 휴대폰을 뺏으려 했다. 화들짝 놀란 앤드류가 조지를 올려다봤다.

“벼, 별거 아니야.”

아직 찍은 사진을 보안 파일함으로 옮기지 못했다! 게다가 조지와 자신은 비밀번호와 패턴도 공유하고 있는 사이였다. 사진 찍은 게 무슨 큰일이냐 할 수 있지만 예전에 조지가 사진 찍으려 한 걸 막은 적이 있었다. 그때는 그렇게 질색을 해 놓고! 조지가 없을 때 사진을 삭제해야겠다 생각한 앤드류가 서둘러 휴대폰을 치운 뒤 눈알을 데구루루 굴렸다.

“일정 확인하고 있었어.”

“일정을 굳이 거기서?”

“…….”

그런 태도에 뭔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조용해진 조지가 앤드류와 눈을 맞췄다. 그냥 넘어갈 생각이 없는 것 같아서 바라보던 앤드류가 웃었다.

“조지.”

조지의 품에 덥석 안겨들었다.

“말 안 하고 넘어가려고?”

“일정 확인했다니까.”

“기사 찾아본 건 아니고?”

조지의 목소리엔 걱정이 가득했다. 그도 그럴 게 얼마 전에 왕세자비와 왕자비의 불화설이 기사로 떴었다. 평민 출신인 왕세자비와 귀족 가문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재력가 출신인 앤드류의 사이가 꽤 나쁘다는 얘기였다. 현 왕세자보다 조지가 인기가 많기 때문에 둘 다 차기 왕좌를 노리고 있다는 말이었다. 말도 안 되는 기사였고 앤드류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조지는 걱정하고 있었다.

결혼 후 두 사람의 생활은 많이 변했다. 스윈턴, 하트라는 성은 해밀턴이란 성으로 합쳐졌고 두 사람은 바뀐 현실에 적응할 필요가 있었다.

하나는 부부 생활이었고,

다른 하나는 대학 생활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왕족의 삶이었다.

어느 것 하나도 쉬운 것이 없었는데 한꺼번에 닥친 탓에 조지는 늘 앤드류를 걱정하고 있었다. 조지가 생각하기론 자신은 왕실 문화와 미디어를 잘 알았지만 앤드류는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왕실로 돌아간 조지를 따라서 앤드류도 왕실의 일원이 되었기에 조지보다는 앤드류의 생활이 훨씬 많이 변했다.

조지의 연인이었던 앤드류에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다. 국민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왕자비가 되었는데 늘 그렇듯이 호의적인 반응만 있지 않았다. 결혼 후 앤드류는 왕실청에서 왕자비로서의 교육도 받아야 했다. 행동거지를 교육받고 만찬 자리에 함께 다니면서 유력 귀족들과 인사를 했다. 원치 않은 불편한 자리에 끌려다니다가 피곤한 얼굴로 귀가하는 앤드류. 조지는 그게 늘 걱정이었다. 그래서 물어 오는 것에 앤드류는 웃었다.

“내가 기사를 왜 봐. 나 그런 거 안 봐.”

그 심드렁한 반응에 조지는 침묵하며 입을 맞춰 올 뿐이었다. 그런 조지의 걱정과는 상관없이 앤드류는 다른 생각에 빠져 있었다.

‘어서 빨리 사진 지워 버려야지.’

방금 전의 자신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사진을 찍었던 것일까. 잠결이라 사고 체계가 교란된 것이 분명했다. 조지의 성기 사진을 찍다니. 이게 무슨 짓인가. 물론 그럴 만했다. 따지고 보면 자신의 사고 체계 문제이기도 했지만 너무 심하게 아름다운 조지의 성기도 큰 문제였다.

그렇게 예쁘고 잘생긴 걸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 하는 건 당연한 욕망 아니던가? 한 장은 남겨 둘 법도 하지 않은가? 예술이 별거인가? 그게 예술이지. 그게 또 흥분으로 서면 얼마나 예쁘게요. 핑크빛의 예쁘던 성기가 잔뜩 붉어져서는 핏줄이 솟아오르고 귀두 끝이 반질거리면. 그게 자신의 안으로 들어오고 싶어서 꺼떡거리면 얼마나…….

“앤디.”

얼마나 군침이 돌게요.

앤드류가 침을 꼴깍 삼키면서 조지를 올려다봤다. 흥분으로 붉어진 앤드류의 눈가에 조지가 웃음을 흘렸다.

“정말로 그런 거 아니야?”

이번엔 절대 아니라고 답하지 않은 앤드류의 위로 조지가 올라탔다. 앤드류는 더운 숨을 내쉬며 조지의 목에 팔을 감고는 말했다.

“나 오늘 오전 수업 있어.”

“그럼 하지 마?”

“그러니까 너무 거칠게 하면 안 돼.”

속삭이는 앤드류의 입술에 입을 맞춘 조지가 앤드류의 다리 사이를 더듬었다. 아까부터 젖어 있는 아래는 간밤의 길었던 섹스로 인해서 풀어 주지 않아도 될 듯했다.

“아직 풀려 있네.”

“어제, 네가 너무 오래 해서 그렇잖아.”

“네, 네. 내가 잘했네.”

웃으며 말한 조지가 살짝 부어 있는 아래를 부드럽게 쓸었다. 침대 위에 사과 향이 가득 펼쳐졌다. 앤드류의 목덜미에 입을 맞추던 조지는 어서 들어오라는 듯 허리를 잡아끄는 앤드류의 손길에 천천히 자신의 성기를 밀어 넣었다. 녹진하게 풀린 안은 별 무리 없이 조지의 성기를 받아들였다.

“흐으…….”

느리게 밀고 들어오는 조지의 성기를 무리 없이 받아들이던 앤드류가 어느 순간에 무릎을 모았다. 조지는 거기서 멈췄다. 몸을 둥글게 말고 잘게 떨고 있는 앤드류를 안심시키며 입을 맞췄다.

참고 있던 숨을 뱉은 앤드류가 젖은 눈동자로 조지를 올려다보더니 배시시 웃었다. 그냥 그것만으로도 너무 좋아서 조지는 더 깊이 들어가지 않게 주의하며 앤드류를 끌어안았다. 그런 조지에게 매달린 앤드류는 잔잔한 파도 같은 쾌감을 느꼈다. 조지는 지난밤처럼 강하게 몰아넣지 않았다.

“근데 조지, 너 무릎의 상처는 언제 생긴 거야?”

조지의 등 근육을 더듬던 앤드류가 가쁜 숨을 쉬며 물었다. 허리를 둥글게 돌리던 조지가 답했다.

“어릴 때. 아홉 살.”

“어쩌다, 흐으… 어쩌다가?”

“그냥 넘어져서 다쳤지.”

아랫배를 타고 올라오는 묵직한 쾌감에 잘게 몸을 떨던 앤드류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왜 넘어졌는데?”

“로즈마리 산책시키다가. 읏, 하아. 원래는 안 그런 애였는데 그날따라 흥분했는지 뛰어가더라고.”

앤드류는 조지의 체중을 느끼며 그를 올려다봤다. 무릎을 그래서 다친 거구나. 깨달은 앤드류의 귓가에 조지의 더운 숨이 쏟아졌다.

신혼이 되고 난 뒤 몇 가지 알게 된 게 있다. 서로에 대해 몰랐던 부분도 알게 됐고 함께 생활하면서 지켜야 하는 규칙들도 생겼는데 이른 아침의 섹스는 이랬다. 느리고 잔잔했다.

예전에 아침에 평소처럼 섹스를 했다가 오후 일정을 모두 취소한 적이 있었다. 그 뒤로 아침에는 되도록 패팅 정도로 끝냈는데 가끔 이렇게 삽입을 하더라도 끝까지는 넣지 않았다. 서로 그러자고 약속한 것은 아니지만 어느새 약속처럼 그러고 있었다.

“지금 몇 시지?”

앤드류의 질문에 조지가 손을 뻗어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몇 시야?”

“아직 좀 남아 있어.”

그렇게 답한 조지가 앤드류의 어깨를 단단히 끌어안았다. 긴장한 앤드류가 조지를 올려다보았다.

“괜찮아. 힘들게 안 할게.”

겁먹은 앤드류를 달래 주는 조지의 푸른 눈동자를 바라본 앤드류는 곧 쾌감에 신음을 흘렸다.

신혼 생활의 좋은 점은 수없이 많다. 사랑하는 사람과 한 공간에서 생활한다는 것 자체가 좋았으니까. 그러나 깁스를 풀고 난 뒤 만끽하고 있는 생활이 너무 야한 건 아닌가? 그런 생각이 가끔 들었다.

삽입한 채로 아무렇지 않게 오늘 하루를 말하고 있다는 게 몇 개월 전과 너무 달라져서. 조지와 그러고 있는 게 이제는 지극히 자연스럽고 익숙하다 못해 일상적인 일이 되어 버렸다. 그런 자신의 변화가 조금 민망했지만 행복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건 좀 아니다. 부부 사이에도 지켜야 할 선이 있지 않은가.

“나가라.”

욕실 문 앞에서 앤드류가 살벌한 표정으로 조지를 노려봤다.

“왜?”

천진한 질문에 앤드류는 기가 막혔다.

“귀여운 표정 지어도 안 되니까 나가라고.”

“그냥 내가 씻겨 준다니까.”

“지금 네가 나 씻겨 준다고 버티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겸사겸사.”

조지는 너무 지나치게 모든 걸 다 공유하고 싶어 했다. 물론 그런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이건 절대 공개 불가 영역이었다.

“저리 안 가! 도대체 너는 왜 나 오줌 싸는 걸 그렇게 궁금해하는 건데, 이 미친놈아!”

“그건 아니야. 궁금한 건 아니야. 도와주고 싶은 거지.”

“됐고, 나가! 나가!”

“그럼 날 설득해 봐.”

“뭐?”

지금 누가 누구를 설득하란 말인가. 황당해서 바라보는데 조지는 무슨 토론회에 참석한 패널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왜 도와주면 안 되는 건지 말해 봐.”

“…….”

“못 하지?”

“너무 어이가 없어서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앤디, 우린 부부고 한참 신혼이잖아. 남들이 하는 건 다 하고 싶어. 너도 그렇지 않아?”

“네 그 말에 넘어가서 별짓을 다 한 것으로 안다.”

“결국 너도 좋았잖아.”

“그거랑 이거는 좀 달라. 이건 내 자존심 문제야.”

“아니, 왜? 내가 뭐 엄청 특별한 거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이게 왜 안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너 어디서 이상한 로맨스 소설책, 아니, 어디서 야한 소설 읽고 왔냐?”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다 해 주고 싶어서 그런 건데. 너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내가 다 알아서.”

“그 알아서 해 주는 게 오줌도 못 싸서 네가 고추 잡아 주는, 그런 건 아닌 것 같아.”

“생각해 봐. 네가 너 싸는 거 한두 번 본 것도 아니고. 어젯밤만 해도…….”

“이 미친놈아!”

앤드류가 기겁하며 조지의 팔뚝을 때렸다. 별로 아프지도 않은지 꿈쩍도 안 하는 조지의 태도에 환장할 것 같았다.

“너 너무 밝히는 거 아니야? 아무리 신혼이라 해도 적당히 해야지!”

“더 밝힐 수도 있는데.”

조지의 농담 같은 말에 앤드류는 기가 막힌 얼굴을 했다.

“이게 필요할 때만 능글맞게 굴지! 이러다가 진짜 변태란 단어가 아깝지가 않겠다. 어?”

“앤디, 잘 생각해 봐. 우린 부부고 그런 사정을 공유할 필요성이 있어. 부부가 뭐야?”

조지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자니 맞는 말인 것 같았다. 사랑하는 연인이자 부부인 사이에 감출 게 도대체 무엇이냐는 조지의 말에 반쯤 넘어갈 뻔한 앤드류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는 조지의 정강이를 발로 찼다. 불시 공격에 놀란 조지가 휘청거리는 틈을 타 그를 밀어내며 앤드류가 말했다.

“너 안 나가면 일주일 동안 관계 없음.”

“…….”

세상에 어떻게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냐는 듯 경악한 조지를 바라본 앤드류는 단호하게 말했다.

“어쩔래?”

단호한 거절에 조지는 더 이상 설득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주인 잃은 강아지 같은 표정을 했다. 귀가 축 늘어지는 게 눈앞에 아른거릴 정도로 크게 실망하는 걸 보고 앤드류는 입 안 여린 살을 꽉 깨물었다. 저 잘생긴 얼굴에 체념이 어린 걸 보니 자신의 자존심이고 뭐고 다 버리고 ‘에라, 모르겠다! 그래! 네 맘대로 해라!’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적어도 최소한 지켜야 할 선이라는 게 있었으니까.

“얼른 나가.”

“앤디, 잘 생각해 봐. 부모가 아이를 케어하는 거 생각해 봐.”

“네가 내 부모도 아니고, 나는 아직 지키고 싶은 나만의 어? 그런 게 있거든?”

결국 조지는 미련이 뚝뚝 넘치는 눈길로 앤드류를 바라보며 물러났다. 혹시 몰라 문을 단단히 걸어 잠근 앤드류는 탈력감에 한숨을 푹 쉬었다.

“저, 저 밝히는 자식 저거…….”

깁스를 풀기 전까지 삽입은 절대 안 된다고 외쳤던 조지는 어디로 갔는지 도통 모를 일이다. 신혼을 의미 없이 보낼 수는 없다는 말에 넘어갔다가 다음 날 몸이 비명을 지른 걸 몇 번 경험한 뒤 알았다.

‘저 자식은 고삐를 잡아당겨 줘야 한다!’

라고. 아무튼 그런 이유로 뭐에 꽂혔는지 저러고 버티고 있는 걸 겨우 밀어낸 앤디는 변기 뚜껑을 열고 빤히 바라보다가 인상을 썼다.

‘내가 너 싸는 거 한두 번 본 것도 아니고.’

방금 전에 조지가 한 말이 귀에 맴돌았다.

“그건 그렇지.”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조지의 말처럼 장소가 다를 뿐이라 생각해 보니 아주 이상한 얘기는 또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마음이 아주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하다못해 강아지나 고양이 키우는 것도 그래. 하나부터 열까지 다 케어해 주지 않던… 잠깐.

“미친 앤드류. 왜 또 납득을 하려고 하냐! 정신 차려!”

고개를 저은 앤드류가 이를 악물었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이러다 결국 언제나 그랬듯이 또 받아 주는 건 아니겠지? 허허. 아닐 거야.

왠지 자신의 미래가 눈앞에 훤히 보여서 무거운 마음으로 샤워를 끝내고 나왔다. 조지가 틀었는지 음악 소리가 들렸다. 젖은 머리를 털면서 앤드류는 거실로 향했다. 가벼운 옷을 입은 조지는 LP판 앞에 서 있었다.

이곳에서 같이 살기 시작한 뒤로 조지는 아침저녁으로 LP판을 틀었다. 가끔 새로운 판도 구입했다. 조지에게 취미가 생겼다는 건 참 좋은 일이었다. 좋아하는 것들이 생기고 애착을 만든다. 삶의 의지가 없었던 조지는 정말로 과거가 되어 버렸다. 감상에 빠진 앤드류를 돌아본 조지는 웃으며 다가왔다.

“머리 말려야지.”

조지는 앤드류를 소파에 앉히고는 머리를 말려 줬다. 그가 항상 해 주는 일이었다. 가끔 아주 신기할 만큼 조지는 앤드류의 모든 것이 자신의 손을 거쳐 가길 원했다. 이건 조금 도가 심한 집착이 아닐까? 고민을 했다가도 자신에게 무관심한 조지를 떠올리면 기분이 나빠졌다.

결론을 말하자면 자신도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지의 손길을 얌전히 받아 주고 있었다. 이제는 익숙한 손길로 앤드류의 머리를 말려 준 조지는 미리 준비해 놨는지 손톱깎이를 가져왔다.

“응? 나 손톱은 괜찮은데?”

“발톱. 어젯밤에 보니까 조금 길더라. 깨지면 아프잖아.”

그 말에 자신의 발톱을 보니 약간 길어져 있었다. 바닥에 주저앉은 조지는 앤드류의 발아래에 티슈를 깔더니 또각또각 발톱을 깎기 시작했다. 쿠션을 끌어안고 집중한 조지를 보던 앤드류가 문득 물었다.

“너 나 없으면 뭐 해?”

그 말에 조지가 앤드류를 올려다봤다.

“너 기다리지.”

그 답에 앤드류가 조지를 보았다. 자신을 기다리는 동안 조지는 어떤 마음일까. 외롭지는 않을까? 우울할까? 어느새 발톱을 다 깎아 준 조지가 쓰레기를 치우고 나타났다. 앤드류는 조지의 손을 잡아 옆에 앉히고는 조지의 폰을 달라고 손을 흔들었다. 군말 없이 넘겨준 조지의 휴대폰을 뒤적인 앤드류가 게임을 하나 깔아 줬다.

“나 기다리는 동안 멍 때리지 말고 게임이라도 하면서 놀아.”

“……이거 하라고?”

“응, 이거 도시 만드는 게임인데 제임스가 재미있게 하더라고.”

조지는 앤드류가 깔아 준 도트 게임을 뚱한 얼굴로 바라봤다.

“만들어 봐. 건물 예쁘게 만들고 야경도 예쁘게 만들면 내가 칭찬해 줄게. 아! 시간 됐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서 조지에게 휴대폰을 넘긴 앤드류가 방으로 향했다. 옷을 갈아입고 가방을 챙긴 앤드류가 밖으로 나왔을 때 조지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적어도 자신이 없는 오전 동안엔 저걸 가지고 놀겠구나 싶었다.

“그럼 갔다 올게.”

앤드류는 배웅하기 위해 따라 나온 조지를 안아 주고는 말했다.

“갔다 올게. 이따 궁에서 보자.”

조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

고작 몇 시간 떨어져 있는 게 왜 이렇게 허전할까?

“그거 과보호야.”

“과보호라는 단어는 좀 아니지 않아?”

제임스의 말에 전공 책을 뒤적이던 앤드류가 답했다. 둘은 수업을 듣던 중 잠시 휴식 시간이 생기자 잡담을 하고 있었다.

“이게 과보호지 뭐야. 조지가 똥도 못 닦는 세 살짜리도 아니고.”

제임스의 말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감정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었다.

“걔가 너보다 키가 작냐 덩치가 작냐? 성질도 너 못지않게 더럽지.”

“조지가 무슨 성질이 더… 럽냐?”

“너한테나 충견이지 다른 새끼한테도 그럴라고. 지가 고독한 늑대인 줄 안다니까.”

툴툴거리는 제임스를 보던 앤드류가 턱을 괴고는 노트 한구석에 낙서를 시작했다.

앤드류와 제임스가 진학한 학교는 미식축구팀이 있는 곳이었다. 대학에 진학하면 쿼터백을 그만둔다고 했던 제임스는 입학 후 졸업까지 선수 생활을 더 하겠다고 했다. 대학교 미식축구팀 감독으로 온 사람이 제임스의 은사였기 때문이다.

마음에 둔 사람은 외면하지 못하는 성격이라 선수 생활을 연장하고 있는 제임스는 훈련을 핑계로 수업을 종종 빼먹었지만 앤드류와 수업이 겹치는 날에는 꼭 함께였다. 오늘처럼. 그리고 꼭 잔소리를 했다.

“그리고 조지 그자식도 그래. 걔도 너 과보호해. 그때도 봐라. 그게 뭐 그렇게 큰일이라고 호들갑을 떠냐? 그 뒤로 과 애들이 무서워서 네 눈치 보고 있잖아.”

제임스가 말하는 얼마 전 일이라 하면 학생 모임을 말했다. 신입생인 앤드류는 과 모임에 빠질까 고민을 했지만 참석하기로 결론을 냈다. 사실 그 시간에 조지랑 집에 있는 게 훨씬 좋았지만 제임스 때문에 반강제로 끌려간 것이나 다름없었다.

장소는 학교 근처에 있는 작은 바였는데 장소가 장소인 만큼 술을 안 마실 수가 없었다. 예전의 경험으로 인해 자신이 술이 약하다는 걸 알게 된 앤드류는 조금만 마시려 했는데 자리가 자리다 보니 주량을 넘어서 먹게 됐고 그걸 조지가 알았다. 조지는 앤드류가 있는 곳까지 무서운 얼굴로 찾아왔다.

‘조지~’

반가워 부르는 앤드류의 상태를 확인한 조지는 같은 테이블에 있는 학생들을 향해 물었다.

‘누가 마시라 했어?’

그 말에 분위기에 취해 마시라고 권했던 학생들은 답을 못 하고 어물거렸다.

‘그게, 그냥 술만 좀 마셨어. 너한테 전화한다고 화장실 가서 한참을 안 와서 우리가 데려왔어.’

‘그거 말고는 뭐 없어?’

‘어, 없었어. 다른 일 없었어.’

그 답을 듣고도 조지의 표정은 풀어지지 않았다.

‘무슨 말을 들었어도 어디 가서 다른 말 하지 말길 바란다.’

그 말을 남긴 채 엉겨 붙는 앤드류를 챙겨서 나간 조지 때문에 분위기는 순식간에 살벌해졌다. 잠깐 자리를 비웠던 제임스는 그 말을 듣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뒤로 앤드류는 학과 모임에 참석하더라도 이른 귀가를 하고 있었다.

“걔는 앤디 네 인생에 자기만 남아야 속이 후련할 놈이라니까. 사회성이 탑재가 안 된 놈이라고 그게.”

“…….”

“너는 걔가 어디가 좋냐?”

“너 이제는 조지 욕 되게 편하게 한다.”

“그래서 걱정이야. 내가 걔 앞에서 욕해도 그 자식이 꿈쩍도 안 해. 뻔뻔해, 아주.”

뻔뻔해서는 자기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고 구시렁거린 제임스는 실제로 조지에게 몇 번 말했다. 애가 학교생활도 제대로 못 하게 만든다고. 그런 제임스의 걱정이 무엇인지 잘 알지만 앤드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자신의 주사가 어떤지……. 누가 알면 큰일이다.

“하여튼 문제 있는 새끼. 왕자는 다 그런가.”

말은 저렇게 하면서도 조지랑 죽이 잘 맞는지 이제는 둘이서도 꽤 자주 대화를 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네가 다 애정이 있어서 이런 말도 하는 거지.”

“뭐?”

제임스가 기겁하며 되물었다.

“애정?”

“그래 애정. 조지와 너의 우정.”

“와, 있긴 있는데 이렇게 대놓고 말하는 걸 들으니까 막 부정하고 싶어진다. 소름.”

“…….”

조지와 제임스 사이는 도대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헷갈린다. 판단을 보류한 앤드류는 휴대폰을 들었다. 혹시 조지에게서 온 연락이 있나 확인하는데 제임스가 물었다.

“너희 데이트도 안 하지?”

“데이트?”

“그래. 우리 또래 애들이 연애하는 것처럼 데이트는 하냐고. 내가 연락해도 만날 집이라고 하고.”

“아니, 뭐…….”

생각해 보니 그러네. 집에 가면 조지가 있고 자신이 있으니까 딱히 밖에 나간 적이 없었다.

“밖에 나가면 귀찮아서.”

“그게 문제라는 거야, 그게! 둘이서 노는 것보다 셋이 노는 게 더 재미있다니까?”

“…….”

“둘이서 밖에 안 나가고 집에서 뭐 하냔 말이야. 저번 주말에도 내가 놀자고 하니까 안 나온다고 하고! 그러면 안 된다니까? 밖에 나와서 사람도 좀 만나야지!”

“으흠.”

“집에 뭐가 있다고.”

제임스가 투덜거리자 앤드류가 한심하다는 듯 바라봤다.

“……집에 뭐가 있겠냐.”

“뭐가 있어?”

“조지랑 내가 있지.”

황당해하는 제임스를 보며 앤드류가 거만한 표정을 지었다.

“둘보다 셋이 더 재미있다는 말을 하는 네가 뭘 알겠냐. 유부남의 하루가 어떤지 알 리가 없지.”

“…….”

“쯧쯧쯧. 고작 짧은 연애 몇 번 해 본 놈이 어른의 놀이를 논하지 말라.”

“…….”

“신혼의 기승전결이 뭔 줄 네가 알 수가 있겠니. 둘이 노는 게 얼마나 재미있는데. 조지 있지 나 있지. 그거면 충분하지.”

“이런 미친.”

제임스가 인상을 쓰더니 휴대폰을 잡았다. 급하게 문자를 치는 걸 슬쩍 봤다.

[조지 너 이 새끼 우리 앤디를 시커멓게 물들]

앤드류가 기겁을 하면서 제임스를 말리자 결국 문자를 발송하지 못한 제임스가 휴대폰을 꽉 쥐고는 이를 벅벅 갈며 말했다.

“조지 그 새끼 죽여 버릴 거야. 우리 앤디가 나한테 19금 농담을 하게 만들다니!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내 앤디는 어디 갔어? 쩨임스, 쩩쯔가 모얌? 이라고 물어오던 내 순수한 앤디를!”

“내가 언제 그랬어?”

“그랬잖아!”

“그, 그래! 그러긴 그랬는데 그때 너도 답 못 했잖아!”

“답을 못 하기는! 내가 알려 줬잖아!”

“네가 알려 주기는? 앤디이, 기다료오, 누나한테 물어보고 올게! 했다가 너 그날 누나한테 얻어터졌잖아 등신아. 울면서 나온 너, 내가 우리 집에 데리고 가서 사탕 줬는데! 그때 네가 뭐라고 했어? 앤디, 아직 우리가 알면 안 되는 건가 봐. 엄청 멍청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으면서!”

“말은 바로 해라! 누나가 아니라 누나들이었다!”

유치하게 으르렁거리며 말싸움을 하던 앤드류가 제임스를 바라보다 훗, 하며 팔짱을 끼었다.

“내가 너랑 말싸움해서 뭐 하냐. 너보다 어른인 내가 다 참아야지.”

“……너, 그런 표정 짓지 마. 진짜 하지 말라고. 내 앤디는 어디 가고 무슨 변태가 여기 앉아 있는 것 같잖아!”

그 말에 앤드류가 제임스를 험악하게 노려봤다.

“누구보고 변태야? 위엄 넘치고 믿음직한 왕자비한테.”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하는 말에 제임스는 헛웃음을 흘렸다.

“어디? 어디에 계시는데? 그런 왕자비가 어디에?”

“짐, 네가 내 손에 죽을 듯.”

약이 오른 앤드류가 제임스에게 달려들었다.

“사랑하는 국민에게 이래도 돼? 근엄한 왕자비라며!”

“닥쳐! 너는 그저 나의 오랜 친구일 뿐이다!”

옥신각신하느라 정신없는 와중에 제임스가 별안간 앤드류의 목덜미를 덥석 잡았다. 거친 손길에 깜짝 놀란 앤드류가 제임스를 올려다봤다.

“아무리 그래도 좀 가리고 다녀라, 왕자비.”

“뭐?”

당황한 앤드류의 목덜미를 주물러 준 제임스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가리고 있어.”

속삭임에 앤드류가 얼른 자신의 목덜미를 손으로 가렸다. 제임스는 같은 수업을 듣는 학생이 목에 두른 얇은 스카프를 빌려왔다.

“비전하아아, 감기 걸리시옵니다.”

그러고는 스카프를 목에 감겨 준 제임스를 빤히 바라보던 앤드류가 민망함에 얼굴을 숨겼다. 다행히 수업이 시작되었다.

***

소파에 앉은 조지는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다. 폐허였던 도시가 이제 제법 아름답게 꾸며지고 있었다. 배를 깔고 한참 게임을 하는 순간이었다. 메시지가 도착해서 확인을 했다. 제임스의 문자였다.

너 이새끼, 일부러 그랬지?
무슨 소리야?
앤드류 뒷목에 그거!
적당히 해라, 좀!
너 이거 진짜 비뚤어진 마음이다, 너어?

성질부리는 제임스의 표정이 떠올랐지만 무시했다.

생긴 건 그렇게 안 생겼으면서도 지극히 도덕적인 제임스의 말에 조지는 턱을 괴었다. 자신도 모르지는 않는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자신의 삶 전부를 앤드류에게 준 지 오래인데. 앤드류가 멀리 떨어져 있는 시간에 남몰래 생각하며 뿌듯해할 뭔가가 있으면 좋지 않은가? 물론 이런 자신의 마음을 앤드류가 알아선 안 되겠지만.

제임스의 비난을 무시하며 조지가 시간을 확인했다. 수업 하나가 끝날 시간이었다. 한번 가 볼까? 고민이 된 조지는 휴대폰에 가득한 야경을 바라보았다.

그때 제임스의 전화가 왔다. 받을까 잠시 고민을 했다. 요즘 들어 잔소리가 심해진 제임스는 여왕도 하지 않을 말들을 쏟아 내고 있었다. 가만히 듣고 있으면 틀린 말은 아닌데 그걸 그대로 따르자니 저 멍청한 놈이 말하는 거 따라 하는 나는 더 멍청한 건가 싶어서 적당히 무시하고 있었다. 조지가 전화를 받았다.

─ 너 왜 확인했으면서 씹냐?

“할 말 없어서.”

─ 이게 찐 왕자 됐다고 아주 거만하기가 이를 데가 없어지네.

“시끄러워.”

─ 됐고, 우리 앤디 좋은 데도 좀 데리고 가고 그러라고 이 새끼야.

“…….”

─ 내가 잔소리를 안 할 수가 없어, 안 할 수가. 형의 마음으로 너희들은 불온하고 불건전한 하루를 건전하고 윤택하게 만들,

더 듣고 있기가 괴로워 전화를 끊었다. 아니나 다를까 제임스한테 문자가 왔다.

너의 최종 목표가 감금이냐?

항상 붙어 다니던 앤드류를 뺏겨서 심심해 죽는구나. 중얼거린 조지가 폰을 저리 밀고는 정원이 보이는 거대한 창을 바라보았다.

***

수업을 모두 끝낸 앤드류가 향한 곳은 왕실 병원이었다. 오늘 왕세자비와 함께 하는 자원봉사는 희귀 병에 걸린 아이들과 시간을 함께 보내는 일이었다. 얼떨떨하게 왕자비가 됐지만 왕가의 일원으로서 할 일은 해야 했다. 묘하게 통제된 하루를 살아야 한다는 게 처음에는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익숙해졌는지 그러려니 했다. 자신은 아무래도 적응력 하나는 정말 좋았다.

“카메라만 적응이 되면…….”

그거만 되면 딱인데. 미리 준비된 방에서 옷을 갈아입으며 앤드류는 한숨을 푹 쉬었다. 학교에서 바로 온 앤드류를 위해 병원의 사무실 한편이 대기실이 되었다. 그곳에서 왕실청에서 골라 준 옷으로 갈아입었다. 자원봉사를 하러 왔지만 옷은 아무거나 입을 수가 없었다.

“이걸 가슴에 착용하시면 됩니다.”

“아, 네.”

수행 인원이 내민 것은 이파리 모양의 브로치였다. 다이아몬드로 만들어진 이파리 브로치는 원래는 왕관의 일부였다. 조지의 어머니인 에밀리 공주가 자주 착용했던 왕관이었는데 여왕이 에밀리 공주에게 선물을 했다가 공주 지위가 박탈당하면서 다시 반납됐던 왕관이었다.

조지의 어머니가 공식 석상에서 가장 많이 착용했기 때문에 통칭 에밀리 왕관이라고도 불리는 것이었다. 17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설계 의뢰는 스펜서 공작가였는데 소유자는 당시의 왕비였다. 공작이 왕비에게 선물을 해 준 왕관이라 들었다.

처음에는 앤드류에게 이 왕관을 쓰라고 말했던 여왕은 왕관을 쓰는 걸 어색해하는 앤드류를 위해 팔찌와 브로치로 변형해 착용하게 해 줬다. 더불어서 이 왕관은 혼례 선물로 여왕이 앤드류에게 하사해서 현재는 왕실 소유가 아니라 앤드류의 것이 됐다. 반짝이는 브로치를 가슴에 착용한 앤드류가 거울을 바라보았다.

“어디 마음에 안 드는 곳이 있으신가요?”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잘 넘긴 머리와 옷은 늘 어색했지만 고개를 저었다. 아주 신기하게도, 조지가 머리를 포마드로 넘기고 정장을 입으면 어른스러웠는데 자신이 입으면 그 느낌이 잘 안 났다. 약간 어수룩해 보인다고 할까? 부모님 옷을 입은 아들같이 어색하지는 않았는데. 키가 문제인가 생긴 게 문제인가. 골똘히 거울을 보던 앤드류가 어깨를 으쓱했다.

“뭐, 어쩌겠어.”

안 되는 일에 마음 쓰면 기운만 빠진다.

“그럼 저희는 밖에 있겠습니다. 왕세자비께서 오시면 바로 알려 드리겠습니다.”

“네.”

수행 인원들이 밖으로 나가려 하는데 앤드류가 물었다.

“근데요.”

“네?”

“오늘 기자들 많이 오나요?”

“아, 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 앤드류는 곧 혼자 남자 의자에 앉았다. 어두운 액정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니, 나는 이게 뭐라고 그렇게 굳냐.”

기자가 무서운 게 아니다. 그렇다고 카메라가 무서운 것도 아니다. 남들이 쳐다본다고 얼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뭐가 문제일까? 오늘은 제발 하얗게 질리지 말고 의젓하고 의연하게 행동할 수 있으면 좋겠다.

“겁먹은 쿼카라니…….”

한숨을 푹 흘린 앤드류가 휴대폰 갤러리를 확인했다. 역시 심신의 안정을 찾는 것에는 잘생긴 내 알파만 한 것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에 찍은 사진을 아직 삭제를 못 했다. 생각난 김에 사진을 삭제하려던 앤드류는 잠시 망설인 끝에 음흉하게 미소를 지었다.

“몇 초만 더 보자. 부적으로 삼자면 이만한 게 없지. 그럼 그럼.”

“그게 뭔데.”

“으어어어!”

화들짝 놀란 앤드류가 의자 뒤로 넘어갈 뻔한 걸 얼른 붙잡은 조지가 당황으로 앤드류를 보았다.

“뭘 그렇게 놀라?”

“왜, 왜 여기 있어?”

당황해서 묻는 앤드류를 보던 조지가 다시 무슨 내용인지 보려 하자 앤드류가 고개를 저었다.

“뭔데 그래?”

“어, 아니, 그게, 어, 제임스가 놀자고 그래서!”

조금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은 조지가 앤드류의 옆에 앉았다.

“근데 너 어떻게 왔어?”

“어떻게 오기는. 궁금해서 왔지.”

그렇게 말하는 조지는 앤드류에게 휴대폰을 내밀었다.

“어? 예뻐졌네?”

“응.”

폐허였던 도시가 지금은 알록달록 아름다워졌다. 예쁘게 꾸민 걸 바라보고 있던 앤드류가 웃음을 흘렸다. 조지는 제법 편안한 옷으로 비스듬히 앉아 앤드류를 보고 있었다.

“하루 종일 이것만 했어?”

“아니. 정원도 산책하고, 제임스랑 문자도 하고.”

“으흠.”

“스케줄 정리도 하고. 밥도 먹고.”

앤드류가 바라봤다.

“그리고 너 기다렸지.”

웃음을 지은 앤드류가 조지의 손을 잡았다.

“그래도 안 되겠어서 나 보러 왔어?”

조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순해 보이는 표정에 방긋 웃음을 지으며 앤드류가 조지의 볼을 쓸어 줬다.

“잘했어.”

칭찬을 받은 조지가 앤드류의 어깨에 고개를 기댔다.

“근데 좀 걱정이야.”

“응?”

“나 또 하얗게 질리면 어떻게 해? 제인이 웃겨 죽으려고 해. 나 이상하게 나온 사진 다 캡처해서 보내 준다니까.”

조지가 웃었다.

“그래?”

“그렇다고. 겁먹은 쿼카라니 멍청한 고슴도치라느니. 위엄 넘치는 왕자비는 글렀… 왜 웃어.”

위엄 넘치는 왕자비란 소리에 작게 웃음을 흘리던 조지를 흘겨본 앤드류가 조지의 볼을 잡아당겼다.

“왜 웃어? 어? 뭐가 웃긴데.”

“아니야, 그런 게.”

답한 조지가 앤드류를 끌어안았다. 품에 쏘옥 안긴 앤드류는 조지를 흘겨봤지만 품을 벗어나지는 않았다. 조지가 만든 도시를 여러 번 확인한 다음 카메라를 작동시켰다.

“됐고, 사진이나 한 장 찍자.”

앤드류가 카메라를 들이대자 조지가 앤드류의 볼에 입을 맞췄다. 킥킥 웃음을 흘린 앤드류가 그동안 조지와 함께 찍은 사진을 확인했다.

“너 이건 언제 찍었냐?”

바닥에 주저앉아 햇빛을 받고 있는 앤드류의 사진이었다.

“며칠 전에.”

사진에는 찍은 사람의 애정이 보인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았다. 편안해 보이는 자신의 모습이 생소했다. 조지가 자신을 볼 때는 이렇게 보는 걸까?

“……미안해.”

“응?”

갑자기 이른 아침에 조지의 성기를 찍고 군침을 흘리던 자신이 쓰레기 같아졌다. 이렇게 애정 가득한 사진을 찍는 남편을 두고 그런, 그런 음란한 사진을 찍고 좋아하다니!

“뭐가 미안해?”

“아니야.”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 다짐을 하는 사이에 시간이 됐다고 수행 인원이 알려 왔다. 이제 그만 나와야 한다는 말에 밖으로 향하던 앤드류가 조지를 향해 물었다.

“나 한 시간 뒤에 끝나.”

“알아.”

“그동안 뭐 하고 있을 거야?”

“여기서 너 기다려야지.”

앤드류가 웃었다.

“그래, 알았어. 갔다 올게. 이따 봐.”

대기실을 나온 앤드류는 먼저 준비하고 있는 왕세자비인 안나와 인사를 했다. 안나는 앤드류를 웃으며 반겨 줬다. 가족 식사를 몇 번 했고 이런 자리에서 자주 마주쳤기 때문에 이제 제법 안나가 익숙한 앤드류도 웃으며 인사를 했다.

“오늘 옷 괜찮네. 지난번에는 너무 고리타분한 거 입히더니.”

“아, 네.”

“나이에 맞춰서 입어야지. 내가 시집을 왔을 때 찍힌 사진 보면 스타일링을 40대처럼 해 놨어.”

그렇게 말한 안나는 수행 인원에게서 이동 동선을 확인받았다.

“오늘도 긴장돼?”

“네에.”

앤드류가 울상을 짓자 안나가 웃었다. 앤드류가 카메라는 무서워하는 걸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웃어. 그냥 웃기만 해도 절반은 하니까.”

그 말에 앤드류가 안나를 봤다가 어색하게 웃었다.

“얼마 전에 난 기사 혹시 읽어 봤어? 내가 무슨 엄청 악독한 왕세자비인 것처럼 써 놨더라니까. 앤디가 마음에 안 들어서 조지랑 말다툼했다니, 세상에.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지.”

불화설은 항상 있었기 때문에 앤드류가 멋쩍은 얼굴을 했다.

“멀쩡한 부부 별거 중이라는 소리를 하지를 않나.”

“…….”

“그게 다 그런 소문 내서 기를 잡으려는 귀족들이 흘리는 거야.”

앤드류가 눈을 끔뻑였다.

“그러니까 그런 기사 떠도 너무 마음 쓰지 마. 사람들도 대부분은 진짜가 아니란 걸 아니까.”

앤드류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오늘 할 일을 해 볼까?”

“네!”

앤드류와 왕세자비는 미리 짜인 동선대로 일정을 소화하며 아이들과 함께했다. 병실에 있는 아이들을 돌아본 뒤 병원장에게서 설명을 들었다. 그러는 동안 카메라는 계속 터졌다. 그건 버틸 만했다.

앤드류는 되도록 아이들에게 집중을 하면서 왕세자비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그녀는 호탕한 성격답게 거리낌 없이 아이들과 얘기를 나눴고 앤드류를 살폈다. 다행히 별문제 없이 일정의 대부분을 소화한 앤드류는 마지막 일정을 앞두고 바짝 긴장해 있었다.

“가장 좋아하는 걸로 생각해 봐.”

앤드류가 그녀를 돌아봤다. 왕세자비가 말했다.

“나는 처음에는 못생긴 호박이라고 생각했는데 별로 도움이 안 되더라고. 그래서 그다음에는 다른 걸 생각했지.”

“다른 거요?”

“내 앞에 있는 존재들은 예언자 일보 기자들이라고…….”

“……예언자 일보요?”

“나는 천재 마법사로 마법 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최연소 오러 국장 후보고, 저기 기자들은 예언자 일보의 기자라고.”

“…….”

“그편이 재미있잖아. 마법의 신비로운 세계라니. 나 어릴 때에는 왜 나한테 부엉이가 안 올까 심각하게 고민했다니까. 내가 머글이라니 참을 수가 없었지.”

“…….”

“혹시 인터넷에서 해 봤어? 나는 래번클로 출신인데.”

“네, 저도 해 봤어요! 저는 그리핀도르예요.”

“그럴 줄 알았어. 비밀인데 왕세자는 슬리데린이야. 세상에, 이런 못된.”

안나는 웃고 있는 앤드류에게 말했다.

“조지는 뭔지 궁금하네.”

그 말에 앤드류가 곰곰이 생각했다. 조지는 기숙사가 별로 상관이 없을 것 같았다. 앤드류가 먼저 기숙사를 배정받으면 조지는 모자에게 앤드류와 같은 기숙사를 가겠다고 말할 테니까. 아마 제임스도 같은 기숙사겠지만 그 녀석은 퀴디치 선수를 할 것이다. 어느새 즐거운 상상에 빠진 앤드류를 바라보며 왕세자비가 말했다.

“그러니까 가장 흥미롭거나 좋아하는 것들이라 상상을 해 봐.”

그러고는 기자 회견장으로 걸어가는 왕세자비의 뒤를 따라 들어간 앤드류가 그들을 바라봤다. 한 사람 한 사람 바라보았다.

예언자 일보라……. 고개를 갸우뚱했던 앤드류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이들이 고스족이면 어떨지 생각을 했다. 점잖은 양복을 입고 있는 이들을 그렇게 바꿔 보자 순간 재미있었다. 그러나 팡, 하고 플래시가 터지자 다시 그들은 본모습으로 돌아왔다. 이건 좀 약한가 싶어서 잠시 생각한 앤드류는 그들을 여러 모습으로 바꿨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거… 좋아하는…….’

생각한 앤드류가 순간 그들을 보았다가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성기로 상상하는 건 크나큰 실례인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그럼 앤드류 왕자비.”

그 부름에 앤드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질문에 답하기 위해 입술을 떼던 앤드류가 눈을 부릅떴다.

‘저 사람은… 도비다. 그래 도비야. 도비.’

“이런 자리에 나오신 소감이 궁금합니다.”

그 말에 앤드류가 홀리듯 말했다.

“도비. 도비.”

ㅋㅋ오빠, 이게 뭐야? 오늘 뭐 잘못 먹음?
최면 걸린 줄. 왜 눈을 부릅떠 ㅋㅋㅋㅋ

메시지를 보낸 제인이 캡처를 보냈다. 잔뜩 긴장해서 눈을 동그랗게 뜬 앤드류의 사진 밑에 댓글들이 달렸다.

- 왕자비 오늘도 한건 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왕자비가 기자회견 중 ‘도비’라 말한 이유가 뭐냐. 아는 사람?

- 어제 해리포터 보다 잠들었나?ㅋㅋㅋ

- 그 말하고 놀란 거 봐 ㅋㅋ눈알 튀어 나올 듯 ㅋㅋ

- 옆에 왕세자비 표정ㅋㅋㅋ저건 필사적으로 웃음 참고 있는 거다ㅋㅋㅋㅋㅋㅋㅋ

- 공주들이 왕자비 좋아한다는데 그 이유 알겠다ㅋㅋㅋ

- 왕자비 앞에서 카메라로 사진 찍으면서 ‘도비는 이제 자유예요!’ 열 번 외치면 울릴 수 있냐? ㅋㅋㅋ

- 잘 보니 왕자비 헤그위드 닮지 않음?

“헤그위드…….”

앤드류가 결국 폰을 내려 두었다. 오늘 또 한 건 거하게 했다. 어제는 쿼카 오늘은 헤그위드다. 대중들의 반응은 좋았지만 ‘왕자비의 가벼운 언사, 이래도 되나?’라는 기사도 뜨는 걸 봐서는 다들 좋게 보는 것만은 아니었다. 당황한 앤드류를 다독여 준 왕세자비가 마이크를 넘겨받아 상황을 무마시키지 않았다면 아마 더 엉망이 됐을 것이다.

‘우리 왕자비가 아직 여러분 앞에 서는 게 쑥스러운 모양이에요.’

그렇게 넘어가서 참 다행이었지만 그건 그거고 다른 건 다른 거였다. 앤드류는 차라리 울고 싶었다. 상처받은 내 자존심! 어느 자리에 가도 잘 살 자신이 있었는데 그놈의 카메라가 자신의 삶을 방해하고 있었다.

“이 소심한 놈아.”

머리를 쓸어내리는데 메시지가 도착했다. 역시나 제인이었다.

오빠. 그냥 벨라트릭스에 빙의라도 해봐.
뭐 그렇게 쪼냐 쫄기는. 언제부터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말 신경 썼다고.

그 말에 앤드류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래도 동생이라고 앤드류가 걱정이 됐는지 위로해 주고 있었다. 벨라트릭스라. 그래도 그건 좀 너무하지 않나 생각하는데 잠시 밖에 나가 있던 조지가 왕세자비와 함께 대기실로 들어왔다.

“앤디.”

왕세자비는 다정하게 웃으며 앤디의 등을 토닥였다.

“괜찮아. 나도 처음에는 실수 많이 했어.”

그 위로에 앤드류는 그냥 울고 싶었다.

“사람이 모든 걸 다 한 번에 적응하고 실수 없이 경험을 쌓을 수는 없어. 언젠가 편안해지는 날이 올 거야.”

“아무래도 안 되나 봐요, 위엄 넘치는 왕자비는.”

그 말에 왕세자비는 웃었다.

“나이가 몇 살인데 위엄이야. 그런 건 나중에 찾아도 돼.”

“…….”

“이제 고작 스무 살이야. 나이에 맞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그 나이에 할 수 있는 것들을 알맞게 경험하는 건 꽤 중요한 일이야. 왕실의 일원이라고 세월을 뛰어넘어 어른스러워질 필요는 없단 얘기야. 스무 살이 마흔 살 같은 표정을 하고 있으면 그건 호러야 호러. 그리고 앤디는 그동안은 왕실의 일원이 될 거라 생각도 안 했을 텐데.”

“…….”

“그러니 걱정하지 마. 나쁘지 않아. 오히려 너무 딱딱했던 왕실 분위기가 조금 풀리고 있잖아. 통통 튀는 발랄한 왕자비 덕분에 나도 즐거운걸.”

“정말요?”

“그럼.”

감동에 젖은 앤드류를 보며 다정하게 웃은 왕세자비가 말했다.

“이렇게 사이가 좋은 우리보고 극심한 불화를 겪는 중이라 하는 이상한 사람들이 가득한 곳에 그렇게 빨리 적응할 수 있을 리가 없지.”

“…….”

“우리가 이렇게 사이가 좋은데 왜 난리들일까.”

“뭔가 문제가 있길 바라서인가 봐요.”

“왕실 가족사만큼 재미있는 드라마가 없어서 그런가.”

왕세자비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앤드류를 위로하고는 시간을 확인했다. 그녀는 다음 일정을 위해 떠나야 한다고 말하며 조지를 보고 말했다.

“조지, 그럼 좋은 시간 보내고.”

“네, 숙모님.”

왕세자비가 작별 인사를 하고 떠나자 문을 걸어 잠근 조지가 앤드류를 향해 다가왔다.

“조지, 나는 아무래도 위엄 넘치는 왕자비는 안 되려나 봐…….”

‘국민 여러분 사랑합니다!’를 외치며 손을 흔드는 왕자비는 이제 포기하는 게 좋겠다. 근엄 넘치는 왕자비는…….

“내가 원한 건 이런 게 아니었는데.”

앤드류가 울상을 지었다. 내심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왕자비가 되어도 누구보다 잘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누구나 우러러볼 수 있는 왕자비. 존경받는 왕자비. 근엄 넘치는 왕자비. 신뢰가 가고 믿음직한 왕자비. 자랑스러운 왕자비! 그런 왕자비가 될 거라고 믿었는데 이건 너무 친숙하다 못해 바보처럼 보이는 왕자비가 되고 있었다. 자신이 바라던 모습과 너무 다른 현실에 별일 아니라며 위로하는 조지의 말에도 가라앉은 기분은 좀처럼 회복할 수 없었다.

그의 어깨에 고개를 기댄 앤드류는 생각했다. 사실 ‘도비’를 꺼낸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 상황에서 조지의 성기를 떠올리는 중이었다면 공식 석상에서 왕자비가 ‘조지의 자지다.’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럼 바보를 넘어서 사상 최초의 변태 왕자비가 되는 것이다. 그걸 생각하면 심장이 목구멍을 타고 뱉어질 것 같았다. 세상에.

“안 되겠어.”

“응?”

위엄 넘치는 왕자비가 되고 싶었지만 자신은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조지 중심으로 맞춰진 사고방식이 어울리지 않는 장소에서 사고 치기 전에 정신을 차릴 필요성이 있었다.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지.”

오늘 ‘도비’는 좀 더 자중하라는 계시인지 모른다. 어디 설립자 동상 없나? 그곳에서 5분만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지만 시간을 확인해 보니 이제 슬슬 출발할 시간이었다. 앤드류가 울상을 지었다.

“오늘 사람 많이 오지?”

“만찬에?”

“그러겠지.”

그 목덜미 뻣뻣한 귀족들도 기사를 다 봤을 텐데. 앤드류가 만찬장에 참가해 쏟아질 질문들을 상상하고 있을 때 조지는 시간을 확인하더니 말했다.

“가기 싫어?”

가기 싫다고 안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는데 조지가 말했다.

“나는 가기 싫은데.”

“……가기 싫어도 가야지.”

“안 가도 돼.”

“……뭐?”

조지가 당황한 앤드류를 보고 웃었다.

“오늘 나랑만 놀자.”

“…….”

그 말에 왕세자비가 떠나면서 한 말의 의미를 알았다. 좋은 시간을 보내라는 게 이런 의미였나?

“너 지난번에 보고 싶다던 영화 재개봉했던데. 그거 보러 가자.”

“정말 안 가도 돼?”

“그렇다니까.”

“그럼 우리 데이트해?”

“응.”

앤드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래도 돼? 너 안 혼나?”

“안 될 게 뭐야. 혼날 게 뭐고. 내가 왕세자도 아니고, 삼촌도 때때로 땡땡이치거든.”

“…….”

그 말에 앤드류의 눈이 초롱초롱 빛이 났다. 예정에 없었던 데이트였다.

앤드류는 조지가 챙겨온 평상복으로 갈아입었다. 얼마 전에 산 커플 티를 입고 모자도 썼다. 결혼을 한 뒤로 보통 수행 인원이 늘 함께였는데 오늘은 달랐다. 몰려든 인파를 피해서 뒷문으로 나온 조지가 운전석에 올라탔다. 앤드류는 그런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걱정하면서도 앤드류는 설렘을 감추지를 못했다.

그러고 보니 둘이 데이트다운 데이트를 한 적이 별로 없었다. 결혼하고 한동안은 깁스 때문에 움직이질 못했다. 신혼여행을 못 간 건 그 뒤로 계속 이어진 행사 때문이었다.

졸업식, 에밀리 공주의 복귀식이 계속 이어졌고 두 사람은 하루가 멀다 하고 왕실 기념행사에 참가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바쁘게 살아 본 적이 있나 싶을 정도였다. 정신 못 차리게 휘몰아치는 환경의 변화를 버틸 수 있는 건 조지와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둘이 따로 다녀야 했다면 아마 몇 번은 탈이 나도 났을 것이다.

“너 운전하는 거 처음 본다.”

“좀 떨려.”

핸들을 잡은 조지의 손에 약간 힘이 들어가 있는 것 같았다. 그게 퍽 귀여워서 웃음을 흘린 앤드류는 조지가 운전이 능숙해질 미래를 그려 봤다. 스물셋의 조지는 아마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다른 손으론 앤드류의 손을 잡지 않을까? 외형은 어떻게 변할까? 지금과 별로 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 스물다섯이면 조금 달라질까? 그렇게 시간이 더 흘러서 서른이 되면…….

“좀 기대된다.”

“응?”

“아니.”

서른 살이 된 조지는 더 어른스러워질 것이고 그만큼 더 섹시해지겠구나.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이 꼴깍 넘어갔다.

“왜 그렇게 봐?”

미래의 조지를 상상하던 앤드류가 정신을 번쩍 차렸다.

“아니야.”

“뭐가 아닌데?”

“그냥 네가 운전이 능숙해질 때가 언제일까 상상했어.”

조지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앤드류는 그의 옆자리에서 그런 조지를 가만히 바라봤다. 운전하는 사람이 멋있어 보인다는 말을 이제 좀 이해할 것도 같고……. 옆에 조지를 두고는 자기 혼자 상상하고 즐기는 사이에 두 사람은 영화관에 도착했다.

“주차 봐 줄까?”

앤드류의 호의를 거절한 조지는 생각보다 능숙하게 주차를 했다. 그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충동을 느낀 앤드류는 차에서 내리기 전에 운전석에 앉은 조지의 사진을 찍었다.

“사진은 갑자기 왜.”

“너 운전하는 거 기념하면서.”

그러고는 영화관으로 올라온 두 사람은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있었다. 혹시 알아보는 사람이 있어 소란이 일어날까 걱정이 돼서 일부러 입장 시간이 가까울 때 위로 올라온 참이었다. 두 사람은 팝콘도 사고 나초도 샀다. 음료까지 손에 들었다. 중간에 알아본 사람들이 있었지만 조지가 쉿, 하자 고개를 끄덕이더니 모르는 척을 해 줬다.

“우리가 평범한 캠퍼스 커플이었으면 달랐을 텐데.”

조지가 미안한 듯 말하자 앤드류가 푹 눌러쓴 모자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

“나는 이것도 나쁘지 않은데.”

“…….”

“재미있잖아.”

진심이었다. 조금 번거롭긴 했지만 그건 조지와 함께 있는 하루가 주는 즐거움에 비하면 사소했다. 이목이 집중되고 행동이 제약되는 건 걱정이었지만 굳이 말하자면 왕자비가 아니었을 때에도 그런 말들은 많이 들었다. 특히 부모님한테 하루가 멀다 하고 잔소리를 들었고 지금은 조금 스케일이 커진 것뿐이다. 독립 영화와 블록버스터의 차이점이랄까?

“별거 아니야. 나한텐 사소해. 그런 것보다 다른 거에 집중할래.”

“응?”

“첫 영화관 나들이.”

앤드류는 다시 카메라를 꺼냈다.

“고개 숙여, 나도 숙일 테니까.”

커플 모자를 푹 눌러쓰고 사진을 찍은 두 사람은 상영관으로 들어갔다. 앤드류는 설렘을 감추지를 못했다.

“심야 영화도 보러 오자. 나중에.”

“그러자.”

그래도 하루의 끝이 조지와 데이트라니 참 만족스러웠다.

그래야 했을 텐데. 하루의 끝이 조지와의 데이트로 끝나야 했을 텐데. 영화를 보고 조지가 예약한 레스토랑에 가서 식사를 해야 했는데……. 인생은 단 한 번도 예측대로 흘러가 주지를 않았다. 영화를 보고 나온 것까지 좋았다. 자신들을 알아보는 이들에게 눈인사를 해 주고 주차장으로 나온 것까지 좋았다. 문제는 지금이었다.

“앤디?”

“으아악!”

차에 오른 앤드류는 안전벨트를 매기 전, 그러니까 방금 주머니를 뒤지다 깨달았다.

“조지…….”

“응? 왜 그래?”

“나 휴대폰이 없어.”

“뭐?”

“나 폰, 폰이 없어!”

영화관에 들어가기 전까지 사진을 찍은 기억이 났다. 그때 조지와 사진을 찍고 주머니에 폰을 넣었는데 지금 와 보니 없었다.

“두고 왔어?”

“그런가 봐. 어떡하지?”

하얗게 질린 앤드류가 얼른 차 문을 열고 나왔다. 조지는 허둥거리는 앤드류를 따라 건물 안으로 따라 들어왔다. 발을 동동 굴리며 위로 올라간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앤드류는 아무래도 안 되겠는지 비상구를 찾았다. 다급하게 뛰어 올라가는 앤드류의 뒤를 따르며 조지가 물었다.

“앤디!”

“바로 상영하면 들어가서 못 찾잖아!”

상영관이 있는 층에 도착한 앤드류는 이미 다음 회차를 상영 중이라 닫힌 문을 보고는 하얗게 질렸다.

“새로, 새로 예매하자. 예매.”

필요 이상으로 겁에 질린 앤드류를 조지가 잡아 세웠다.

“내 휴대폰에!”

“폰에?”

“네 사진이 있어!”

“나도 있어.”

“아니,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앤드류는 미치고 팔짝 뛸 예정이었다.

“네 사진! 내 폰에!”

조지는 팔짱을 끼고는 앤드류를 빤히 바라봤다. 앤드류는 답지 않게 고개를 푹 숙이고는 붉어진 얼굴로 말했다.

“네 사진 찍었다고! 네 사진! 내 폰에 네 사진!”

미칠 것 같았다. 차마 아침에 너 자는 동안 찍은 사진이 심히 외설적이라는 말은 할 수가 없었다!

“비밀번호 걸려 있기는 한데 영상 재생 중이란 말이야. 보안 파일로 옮긴 것 같은데 잘 기억이 안 나! 까먹은 거 같기도 하고!”

“잠깐, 잠깐만 앤디.”

“내 포온!”

네 성기 사진이 저장되어 있는 내 폰! 이라고 차마 외치지 못하는 앤드류를 바라보던 조지가 다독이며 말했다.

“알았어. 폰 찾아올게. 잠깐만 기다려. 응?”

앤드류의 흥분을 가라앉힌 조지는 의자에 그를 앉혔다. 그러고는 안내 데스크로 향했다. 누가 보안 패턴을 풀어 버렸으면 큰일이었다. 조지의 왕자비가 변태라고 온 세상 사람들이 알게 되면 자신은 어찌해야 하는 것인가!

굴이라도 파고 기어들어 가고 싶었다. 방금 전까지는 천국에 있는 기분이었는데 순식간에 지옥으로 떨어졌다. 자신은 왜! 아침에 곤히 잠자는 조지를 두고 그런 짓을 했을까! 이 욕망의 노예 같으니라고, 나는 맞아야 돼! 한참 자학을 하는데 조지가 다가왔다.

“여기.”

조지의 손에 들려 있는 건 자신의 휴대폰이었다. 앤드류의 귓가에 「상투스」가 울려 퍼졌다.

“청소하시는 분이 찾아서 데스크에 맡겨 뒀대.”

울컥 눈물이 차올랐다. 꾹 참은 앤드류는 조지의 손에 든 휴대폰을 소중히 받아 들고는 얼른 몸을 돌렸다.

“앤디?”

조지가 보지 못하게 가드를 치면서 빠르게 휴대폰에 저장된 19금 사진을 지웠다. 한 장만 찍어 둘 것이지 각도별, 위치별로 찍어서 열 장이나 됐다. 아침의 자신을 욕하며 빠르게 삭제한 앤드류는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다시는, 다시는 그런 사진 찍나 봐라! 다짐에 또 다짐을 하는데  조지가 어깨를 조심히 감싸 안아 왔다.

“괜찮아?”

걱정이 묻어나는 목소리에 뒤돌아 조지를 보았다. 앤드류의 반응에 조지도 놀란 기색이었다. 방금 전에 자신이 얼마나 사색이 되어 ‘내 폰!’을 외쳤는지 떠올린 앤드류가 멋쩍게 웃었다.

“괜찮아.”

그래, 괜찮다! 나의 추태는 지켰으며 너의 성기의 초상권도 지켰다. 앤드류는 크게 숨을 쉬고는 그에게 몸을 기댔다. 얼마나 놀랐는지 다리에 힘이 빠졌다.

“힘들다.”

지쳤다. 오늘 하루는 왜 이렇게 이상하게 흘러가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꿈 때문인가…….”

아무래도 빌어먹을 꿈 때문이 아닐까? 그 재수 없는 요도대마왕이 나와서 그래.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뭐에 홀린 하루 같았다. 진심으로.

“조지.”

“응?”

“……집에 가자.”

앤드류는 조지를 꽉 끌어안고 말했다.

“나 집에 가고 싶어.”

너와 나만 있는, 위험한 건 하나도 없는 안전한 공간에 가고 싶었다.

“그래, 가자. 집으로.”

결국 데이트를 포기한 두 사람은 집으로 돌아왔다. 앤드류는 지친 기색으로 소파에 누웠고 조지는 그런 앤드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저녁은?”

“배불러.”

“…….”

“미안해. 나 때문에.”

“네가 뭘?”

“아니, 기껏 데이트하자고 했는데 돌아오자고 그래서. 우리 밥 먹고 뭐 하려고 했어?”

자신의 무릎을 베고 누운 앤드류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 주며 조지가 말했다.

“호텔 예약해 뒀지.”

“……그럴 줄 알았는데.”

신혼의 기승전결이야 그렇지 않은가. 그래서 자신도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걸 이렇게 망쳐먹었다. 자괴감에 한숨을 푹 내쉬던 앤드류가 물었다.

“지금이라도 갈까?”

미안해서 하는 말이었다. 조지는 그런 앤드류를 보더니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덩달아 일어난 앤드류는 조지가 준비하는 것들을 지켜보다가 그가 냉장고에서 술을 꺼내자 물었다.

“우리 술 마셔?”

“응, 특별히.”

“나 금주령은? 오늘은 풀어 주는 거야?”

“오늘은 풀어 줄게.”

그 말에 앤드류가 웃었다. 간단하게 안주를 챙겨서 거실로 나온 두 사람은 소파에 앉았다. 앤드류는 한동안 마시지 못한 술을 마실 수 있다는 기쁨에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술이 이렇게 맛있는 줄 몰랐어.”

그 말만 벌써 몇 번째였다.

“근데 내가 술이 그렇게 약한 줄도 몰랐어.”

안타까운 일이었다. 조지와 처음 술을 마셨던 날, 너무 맛있어서 놀랐던 앤드류는 고작 몇 잔 만에 완전히 취해 버렸었다. 술을 마셨다고 기억이 날아가지는 않아서 그날 밤 자신이 보인 추태를 모두 기억했던 앤드류는 조지의 금주령을 받아들였다. 지난번 학교 모임 때를 제외하곤.

쪼르르륵. 조지가 잔을 채워 주자 앤드류가 홀짝홀짝 받아 마셨다.

“나는 언젠가 너 취한 것도 보고 말 거야.”

몇 모금 마셨다고 얼굴이 달아오른 앤드류가 호기롭게 말했다.

“그래.”

“항상 내가 먼저 취하니까 볼 수가 있어야지. 나도 너 주사 부리는 거 구경하고 싶단 말이야.”

“흐음.”

“우리 아빠 주사가 딱 이렇거든? 근데 내가 그걸 쏙 빼닮았단 말이야. 우리 엄마 주사는 뭔 줄 알아? 갑자기 공을 찾아. 근데 공이 없잖아? 그럼 근처에 있는 걸 들어서 던져. 그냥 아무 데나 던져. 그럼 진짜 큰일 나는 거야. 알겠어? 우리 엄마 주사가 공을 찾아서 던지는 거거든. 엄마가 옛날에 선수 생활을 했어. 고스족이었는데 엄마 주사가 공을 던지는 거라서 내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몰라.”

“…….”

“근데 나는 주사가 아빠를 닮았어. 아빠 주사가 이랬거든. 엄마 끌어안고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울고. 그 옆에서 엄마는 공 찾고 있고. 우리 엄마 주사가 공을 던지는 거거든. 공. 작은 공 말고 큰 공. 큰 공이 뭔 줄 알아? 배구공이거든. 야구공은 안 돼. 엄마가 배구공을 던지는 게 주사거든.”

“앤디.”

“으응? 너 왜 웃어?”

조지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배까지 붙잡고 끅끅거리며 웃으며 조지가 말했다.

“오늘은 더 빨리 취하네.”

소리 내 웃으며 하는 말에 앤드류가 멍한 눈동자로 조지를 바라봤다.

“나 취했어? 나 벌써 취했어? 그래, 나 취했나 보다.”

앤드류는 순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술기운 때문인지 넓어진 동공으로 앤드류는 다시 술을 홀짝였다. 평소라면 말리겠지만 조지는 가만히 지켜봤다. 한 모금 마신 앤드류는 안주를 한입에 넣고 오물오물거리더니 다시 한 모금 마셨다. 그러면서도 눈동자는 집 안을 둘러보고 있었다. 꼭 뭔가를 찾는 것처럼.

“앤디.”

“으응?”

“너 지금 공 찾지.”

“어! 어떻게 알았어? 나 지금 공 찾았는데!”

조지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공을, 공을 왜 찾아?”

“엄마 줘야 하는데. 우리 엄마 주사가…….”

“공 던지는 거지.”

“어? 너 그거 어떻게 알아? 우리 조지, 조지 엄청 똑똑하구나!”

감탄한 앤드류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배를 부여잡고 웃던 조지를 바라보며 앤드류가 말했다.

“잘 봐, 이걸 이렇게 던진다니까!”

그 말과 동시에 뽀각, 소리가 났다. 웃느라 정신 팔려 있던 조지가 소리에 놀라 정신을 차렸다.

“봐!”

앤드류가 자랑스럽게 가리킨 곳에는 휴대폰이 있었다. 아까는 그렇게 소중하게 찾았던 자신의 폰을 배구 선수가 스파이크를 날리듯 던져 버린 앤드류는 아이처럼 까르르 웃음을 흘리더니 조지의 앞에 앉았다.

“우리 엄마가 던지면 저거 반 토막 나.”

저걸 메모리는 살릴 수 있을까? 의문이 들어서 바라보는데 앤드류가 조지의 품에 안겨들었다.

“푸하, 푸하.”

숨을 크게 내쉬는 앤드류의 머리를 쓸어 준 조지가 물었다.

“근데 앤디, 저 폰 망가져도 돼?”

“폰? 저거? 그래도 돼. 나쁜 폰. 나를 시험에 들게 한 폰.”

“그래? 저 폰이 왜 그랬는데?”

“저 폰을 없애 버려야 해. 내 변태 게이지를 넘치게 만든 사과 같으니라고.”

“폰으로 뭘 했는데 그래?”

“사과가 나를 유혹해서 내가 막 너 잘 때, 너를 찍어써.”

“나를 찍었어? 어딜?”

“안 돼, 말 안 해 줄 거야. 절대 안 해.”

술에 취했어도 절대 말해 주지 않겠다고 입술을 앙다문 앤드류가 고개를 저었다. 조지는 그저 웃은 뒤 앤드류의 볼을 만지작거렸다.

“사진 찍은 게 마음에 들었어?”

“으응. 너무 마음에 들었어. 너무 예뻤어. 그래. 이게 다 네 잘못이야. 너 때문에 요즘 뭘 해도 다 끝이 그러차나.”

“끝이 어떤데?”

“뭘 해도 끝이 다 야해. 네가 내 하루를 너무 기승전섹스로 만들어 버리니까 그런 거 아니야. 이게 다 너 때문이야아.”

투정에 조지가 웃었다.

“그래서 싫어?”

“응? 싫으냐고? 싫어? 당연히… 너무 좋지잉. 웅. 우리 조지는 어쩜 이렇게 보드럽고 예쁘나.”

고개를 끄덕인 앤드류는 조지의 손가락을 잡더니 이를 세워 물었다. 그러고는 사탕을 빨아 물듯이 엄지손가락을 촙촙 빨았다.

“앤디.”

“게다가 맛도 좋아여, 우리 쪼지는. 움냠냠냠냠.”

아이처럼 소리 내서 조지를 먹는 시늉을 한 앤드류가 천진하게 웃어 보이더니 곧 울먹거렸다. 조지는 당황하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는 주사였다.

“왜 나만 취해? 응? 너는 내 앞에서 술도 안 취해 주고오오. 나는 궁금한데에.”

투덜거리는 앤드류를 조지는 웃으며 바라보았다.

“조지, 나 한 잔만 더 마시면 안 돼? 딱 한 잔만.”

“응.”

조지가 잔에 술을 따라 주자 기쁜 표정으로 집어 들던 앤드류가 순간 매섭게 조지를 쏘아봤다.

“왜 그냥 줘. 지난번에는 이렇게 안 줬는데.”

“네가 다음 날에 술 줬다고 나 혼내서.”

“아니야, 나는 안 그랬어. 나 술 줘어.”

칭얼거림에 조지가 앤드류가 들고 있던 잔을 받았다. 술을 한 모금 입에 머금은 조지가 앤드류의 턱을 잡은 뒤 입을 맞췄다. 꿀꺽 넘어가는 술을 받아 마신 앤드류가 쪽쪽 소리가 나게 입을 맞춘 뒤 만족스럽게 웃었다.

“나 또 줘.”

“네, 네.”

다시 조지가 술을 머금고 앤드류에게 넘겨 줬다. 조지의 어깨를 붙잡고 있던 앤드류의 손이 목을 휘감았다.

“한 번 더?”

“웅.”

술과 함께 넘어오는 조지의 혀에 앤드류가 그를 더욱 꽉 끌어안았다. 앤드류의 허리를 감싸 안은 조지는 앤드류의 축축한 입 속을 부드럽게 매만졌다. 거친 숨이 나오고 턱을 타고 미처 넘기지 못한 술이 뚝뚝 떨어졌다.

“우리 앤디는 술 마시면 이렇게 착해지더라.”

키스 때문인지 취기 때문인지 앤드류는 방금 전보다 더 몽롱한 눈동자를 하고 있었다.

“으응, 나 착해지지.”

“빨아 달라고 조르고 안아 달라고 조르고.”

“으응, 그렇지이. 조지가 빨아 주는 거 좋아. 안아 주는 거 좋아. 조지가 제일 좋아.”

조지는 앤디의 이런 술주정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술에 취하면 앤드류는 투정이 많아진다. 평소에는 위엄 넘치는 왕자비,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며 어른스럽게 굴려고 자기 딴에는 노력을 했음에도 알코올이 들어가면 어딘가 풀린 얼굴로 계속 조지만 찾고 조지에게 매달렸다.

투정도 부리고 좋다고 웃기도 하고. 그런 앤드류의 주사가 조지는 너무너무 좋았지만 밖에서 술 마시는 걸 말리는 이유가 있었다. 애정 표현 선에서 끝나면 좋겠지만 앤드류의 주사는 한 단계 더 위가 있었다.

“조지 자지가 제일 좋아염.”

“…….”

“이게 얼마나 예쁜지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염.”

아, 왔구나. 조지는 생각했다.

“이 아름다움을 온 세상에 널리 알려야 하는데……. 앞으로 예쁜 페니스의 표본은 이것으로 삼아야 하는데…….”

부끄러운 얘기를 하는 듯 굴다가도 학자 같은 얼굴로 돌변하는 앤드류를 조지는 소파에 기댄 채로 구경하고 있었다. 앤드류는 늘 말한다. 자신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술을 마시게 하지는 말라고. 그러나 앤드류가 조르면 조지가 이길 수가 없는 게 사실이었다. 그래서 오늘도 고삐를 놓아 버린 앤드류는 손을 허우적거렸다.

“폰, 내 폰, 폰.”

그는 기어서 방금 전에 자신이 박살 낸 휴대폰을 집어 왔다. 잘 떠지지도 않는 눈으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려고 해서 조지는 한숨을 쉬었다. 지난번에 둘이 함께 술을 마셨을 때 앤드류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전화는 제인이 대신 받았지만.

‘제인, 사랑하는 동생아, 오빠가 얼마나 결혼을 잘했는지 너는 잘 알아야 해. 조지는 정말 구석구석, 안 예쁜 곳이 하나도 없거든. 그 구석구석이 어딘 줄 아니? 말 그대로 구~석구석이다. 오빠는 조지가 너어어어무 뿌듯해.’

앤드류의 주사가 19금 수위로 넘어가기 직전에 조지가 전화를 끊어서 다행이었지만 그 뒤로 제인이 열이 받았는지 앤드류를 놀려 먹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주사를 기억하는 앤드류는 동생의 태도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아무튼, 그때와 같이 누군가에게 전화해서 흑역사 만들려고 했지만 다행히 저 폰은 방금 박살이 났다.

“여보세요…….”

이렇게 된 거 누구한테 걸었나 들어 볼까 싶어서 가만히 있었다.

“여보세요, 폐하.”

“…….”

“폐하? 주무시나요?”

세상에, 할머니한테 전화를…….

“폐하, 저는 알고 있습니다.”

조지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았다.

“저만 알고 있습니다.”

“…….”

“조지는 라스푸틴보다 훌륭해요. 라스푸틴 아세요? 라라라스푸틴! 그거 있잖아요, 그거 박제되어 있는데.”

결국 못 참은 조지가 끅끅거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고개를 푹 숙이고 온몸을 떨면서 웃는 조지는 이젠 눈물도 흘리고 있었다.

“아무튼 조지는 그렇게 훌륭합니다. 그런데 보여 드릴 수가 없네요. 저만 볼게요, 평생. 그럼 안녕히 주무세요.”

전화를 끊은 앤드류는 만족스러운 얼굴을 했다. 마치, 너의 자랑스러움을 널리 설파하였으니 안심하거라. 라는 표정이었다. 앞으로도 절대 혼자 술 마시게 하면 안 되겠다고 다짐에 다짐을 하는 조지를 강아지 같은 눈동자로 바라보며 앤디가 말했다.

“조지, 나 또 술.”

그러나 여기서 더 줄 수는 없었다.

“안 돼.”

“……안, 돼?”

“안 돼. 너 취했어.”

“누가? 내가? 나 안 취했어어.”

“취했어.”

“얘가 모르네. 안 취했어. 너 취한 사람이 목적과 목표를 가지고 행동할 수 있다고 생각해?”

오, 이건 좀 새로운 패턴이었다. 조지는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거봐, 난 지금 목적과 목표가 있어. 해야 할 일이 있다고! 그런데 내가 취해? 안 취해또오.”

앤디의 목적과 목표는 과연 무엇인가. 궁금한데 앤드류가 조지의 다리 사이를 보고는 음흉하게 웃었다.

“으흐흐흐. 흐흐흐흐.”

그쯤 되니까 조지는 앤드류가 뭘 할지 너무 잘 알 것 같았다.

“나의 목표는 여기고!”

말하며 앤드류는 조지의 성기를 가리켰다. 그러고는 말했다.

“이것의 목적지는 바로 여기다.”

“…….”

“나!”

“…….”

“이게 너무 마음에 들어서 오늘 내가 사고 칠 뻔했단 말이야. 너, 반성해라.”

“…….”

“반성하란 말이야. 누가 이렇게 예쁘게 생기래.”

오늘은 지난번보다 더 취했나 보다. 조지는 무슨 보물인 듯 바지춤에서 자신의 성기를 주섬주섬 꺼내고는 붙잡은 앤드류를 말려야 할지 그냥 둬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내가 이걸 기록으로 남기려다가 오늘 심장이 몇 번을 떨어졌는지. 이게 다 너 때문이야. 왜 너는 이렇게 잘나서 네 사진을 안 찍을 수 없게 만들어?”

“그러게. 내가 왜 그랬을까?”

“그래, 네 잘못이야.”

조지의 품에 안겨 고개를 마구 비벼 대던 앤드류가 고개를 휙 올렸다. 눈이 마주쳤다.

“……조지.”

앤드류가 또렷한 눈동자로 일어나 조지의 배에 올라탔다. 혹시 뒤로 넘어갈까 봐 허리를 잡아 준 조지는 앤드류를 바라봤다.

“너 오늘 내가 제대로 착즙한다.”

“……착, 뭐?”

“오늘 제대로 불태워 보겠어.”

“…….”

“늘 내가 먼저 뻗었는데 오늘은 네 차례다.”

그러고는 조지의 티셔츠를 올린 앤드류가 머리를 들이밀었다. 품이 넉넉한 옷이라 앤드류의 머리가 들어올 공간이 있었다. 그곳에서 앤드류는 조지의 가슴을 만지작거렸다. 서투른 손길로 어루만지던 손길이 천천히 느려졌다.

“너, 착즙… 착…….”

손길도 멈추고 민망한 소리도 멈췄다. 푸흐흐. 푸하하하. 작게 코를 골며 잠에 든 앤드류를 끌어안은 조지의 어깨가 떨렸다. 크게 웃었다가는 겨우 잠에 든 앤드류가 깰까 봐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은 조지가 두 발을 앤드류의 허리에 감고는 그를 꽉 끌어안았다.

“앤디.”

어쩜 이렇게 사랑스러운지 모르겠다. 앤드류와 함께 보내는 하루에 지루할 틈이 없는 이유였다. 단색이던 자신과는 다르게 앤드류는 가지고 있는 색이 너무 많았다. 어떤 때에는 다정한 연인이 되어 주고, 어느 날에는 용감한 연인이 되어 주고, 가끔 투정 부리는 아이가 되었다가 필요할 때는 요염하기도 했다. 이런 사람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불가능이었다.

조지가 삐죽 튀어나온 앤드류의 머리를 쓸어 주자 앤드류가 고개를 파묻어 왔다. 이곳에서 자게 할 수는 없어서 일어나려다가 앤드류가 벗긴 바지가 허전해서 먼저 끌어 올렸다. 조지는 작게 잠꼬대하는 앤드류를 단단히 끌어안고는 침실로 향했다.

방의 조명을 낮게 맞춘 뒤 침대에 앤드류와 함께 누웠다. 깨지 말고 푹 자라며 앤드류를 토닥이던 조지가 문득 손을 뻗었다.

“…….”

전원 버튼을 눌렀다. 안타깝게도 휴대폰은 운명하셨다. 내일 아침에 일어난 앤드류가 자신을 어떻게 볼까? 상상하던 조지가 작게 웃었다. 즐거웠다.

***

카메라 플래시가 정신없이 터졌다. 앤드류를 향해 성난 소 떼처럼 달려드는 이들은 이해할 수 없는 질문들을 쏟아 냈다. 멍한 머리로 바라보던 앤드류가 그들을 바라보았다.

“진짜… 도비네.”

정말로 그들은 도비였다. 그러자 측은지심이 마구마구 생겼다. 자유를 되찾지 못하는 집 요정 도비! 그렇게 생각하자 자신이 그리핀도르 교복을 입고 있었다. 갑자기 자라난 머리에 손에 들고 있는 지팡이!

“아, 나는 헤르미온느구나.”

헤르미온느가 된 앤드류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도비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 뭐라도 하나 줘야 하는데. 그들의 자유를 위해 자신은 할 일이 많았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어 주머니를 더듬는데 순간 사과가 쏟아졌다. 바닥에 데구루루 굴러떨어지는 사과를 줍기 위해 쭈그려 앉는데 그때였다.

“이걸 누구 준다고?”

익숙한 목소리에 앤드류가 고개를 들었다. 조지였다. 디즈니 영화에 나올 법한 왕자 옷을 입은 조지의 머리 위에는 왕관이 있었다. 그 뒤에는 잘생긴 백마도 있었다.

“이걸 누구 준다고?”

물음에 앤드류가 말했다.

“도비를 줘야 해요.”

“도비를 왜 줘?”

“근데 왕자님, 왜 머리 위에 귀가 있어요?”

정말로 조지의 머리엔 동그란 귀가 있었다. 조지가 귀를 움직이며 말했다.

“나는 쿼카니까.”

아, 조지가 쿼카였구나. 그럼 나는 뭐지? 이상해서 보니 자신의 손은 날개가 되어 있었다.

“나는 부엉이구나. 헤그위드구나.”

근데 그럼 해리는 어디 갔지? 해리를 찾아가야 하는데 조지가 앤드류의 손을 붙잡았다.

“해리는 갔어.”

“어디 갔어?”

“내기니랑 데이트하러 갔어.”

볼드모트의 옆을 지키던 뱀이랑 해리가?

“해리가 내기니랑 데이트하러 갔구나. 그래, 해리가 뱀 언어를 좀 하지. 그래도 괜찮나?”

“뭐 어때. 해리가 스네이프도 아닌데.”

납득한 앤드류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지가 주머니를 뒤졌다. 더러워진 양말을 꺼내려는데 그 순간이었다.

“그런 것은 필요 없어!”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더니 제인이었다.

“벨라트릭스!”

그러나 조지는 제인을 벨라트릭스라 불렀다.

“부족하고 멍청한 헤그위드를 위해 내가 왔다!”

“벨라트릭스, 내가 오빠야.”

“오빠, 이건 꿈이잖아. 꿈이라고 거짓말을 할 수는 없어.”

“아, 그런가.”

“아무튼! 잘 봐! 저것들은 도비가 아니야! 도비인 척하는 예언자 일보 기자라고!”

앤드류가 기겁을 했다.

“허억! 저게 기자였어? 세상에! 도비인 줄!”

벨라트릭스는 절대 참을 수 없다는 듯 지팡이를 휘둘렀다. 그러자 도비들이 딱정벌레가 되어 펑펑 터졌다.

“이제 됐어. 오빠는 이제 쫄지 않을 것이다. 아참, 이제 오빠 인간 될 수 있음. 그럼 수고.”

그 말을 남긴 벨라트릭스는 어디서 구해 온 용을 탔다.

“가자! 스마우그!”

호빗에 나오는 용인 스마우그를 타고 멀리 사라지는 제인을 홀린 듯 가만히 바라보는데 앤드류는 자신의 몸의 변화를 느꼈다.

“어어? 앤드류는 이제 인간이에요! 자유예요!”

사람이 된 앤드류는 마찬가지로 사람이 된 조지의 손을 잡았다.

“그럼 이제 우리 하러 갈래요?”

그 말과 동시에 앤드류의 몸이 조지의 위로 올라탔다. 어느새 침대 위였다.

“헉!”

앤드류가 식은땀을 흘리며 잠에서 깼다.

“……허…….”

이건 대체 무슨 꿈이래? 최근에 꾼 꿈 중 가장 황당한 꿈이었다. 그러니까 앤드류는 헤르미온느였다가 부엉이가 됐다가 앤드류로 돌아왔고, 조지는 왕자였다가 쿼카였다가 조지가 되는 그런 이상한 꿈. 결말은 침대로 직행하는 현란한 내용이 너무 꿈이라 어이없어서 웃음을 흘리는데 그때였다.

“깼어?”

질문에 앤드류는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고는 조지의 티셔츠를 빠져나왔다. 부스스한 머리가 흘러내리자 앤드류가 민망한 얼굴을 했다. 주사로 기억 상실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간밤에 보인 추태가 하나둘 떠올라서 멍하니 눈을 끔뻑이던 앤드류가 말했다.

“어제 도가 좀… 심했는데…….”

“…….”

“……스트레스 때문인가 봐.”

“귀여웠어.”

그렇게 말할 줄 알고 있었다. 앤드류는 한숨을 푹 쉬더니 이불 위로 손을 툭툭 내려 두었다.

“속은?”

“괜찮아. 안 무거웠어? 내려 두고 자지.”

“안 무거웠어.”

조지는 앤드류에게 팔베개를 해 주었다. 처음에 주사를 부렸을 때에는 정말 땅을 파고 들어가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럭저럭 버틸 만했다. 자신이 무슨 짓을 해도 조지는 기껍게 받아 줄 것이란 믿음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건 그거고 창피한 건 창피한 거였지만.

“언젠가 네 주사를 보고 말리라.”

다짐할 뿐이었다. 혼자만 흑역사를 만들 수 없다고 의지를 불태우던 앤드류가 습관적으로 협탁 위를 더듬었다. 늘 아침에 일어나면 일정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는데 생각해 보니 간밤에 자신이 휴대폰을 박살 냈었다.

“아! 내 폰!”

놀란 앤드류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다렸다는 듯 조지도 함께 일어났다.

“폰 전원 안 들어오더라.”

“어, 어떡하지?”

“새로 사야지, 뭐.”

앤드류는 한숨을 푹 쉬었다. 하다 하다 이제 제 손으로 폰을 부쉈다. 그때의 자신은 악의 무리를 처단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휴대폰을 내던졌다. 어제 휴대폰을 잃어버린 줄 알았을 땐 정말로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으니까. 다시는 그런 짓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 앤드류는 자신의 어깨에 고개를 기대는 조지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우리 오늘은 일정 아무것도 없지?”

“없어. 내일도 없어.”

그 말에 앤드류가 웃었다. 주말에는 조지랑 단둘이 계속 붙어 있을 수 있겠구나.

함께한다는 건 아주 즐거운 일이다. 오후의 따스한 햇살을 함께 받고 있노라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게 자신들이라는 거드름도 피워 보고 싶었다. 정원 한편에 마련된 해먹에서 낮잠도 자고.

“조지, 우리 늦게 아침 먹고 산책 나가자.”

조지는 모로 누운 앤드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집 밖으로 나가지 말자.”

“앤디, 나 제임스한테 혼났어.”

“혼났어? 왜?”

“널 너무 가둔다고.”

“나한테도 서로 너무 과보호한다고 뭐라 하더라.”

“…….”

조지는 그 말을 허투루 들을 수가 없었다. 결말이 감금 엔딩이냐는 그 말이 단순히 장난스러운 농담만은 아니었다. 그걸 잘 알았다. 그래서 하는 말에 앤드류는 답했다.

“걔가 신혼을 몰라서 그래.”

“…….”

“밖에서 데이트하다가도 눈 맞으면 밀폐된 공간을 찾으러 가는 게 그게 신혼인데. 과보호는 무슨. 제대로 연애도 못 해 봤으면서 참 잔소리가 많아.”

조지가 푸스스 웃음을 흘렸다.

“그래도 그런 친구 있어서 다행이잖아.”

“세상에! 조지 너한테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이야! 어구 우리 조지 다 컸네.”

조지는 어깨를 으쓱했다. 앤드류가 손을 뻗어 조지의 얼굴을 쓸며 말했다.

“나는 그냥 너랑 이러고 있는 게 좋아.”

“…….”

“신혼인데 제대로 누려야지.”

그렇게 말한 앤드류는 생각했다. 하고 싶은 일 목록을 짜 볼까? 연애할 때도 하고 싶은 거 서로 적어 보자고 말을 했었는데 말로 끝났다. 이번엔 정말로… 조지랑 하고 싶은 일을 정리해 볼까? 해 뜨는 거 보러 가고, 시간이 되면 오로라도 보러 가자고 할 것이다. 노을이 예쁜 날에 호숫가를 거닐어 보고, 비가 오는 날에 비 맞으면서 놀고.

삶의 가치를 지탱해 주는 그 수많은 것들 중에서도 없어선 안 되는 존재는 분명히 있다. 앤드류에겐 조지가 그랬다. 조지가 없으면 하고 싶은 일이 이렇게 많을 수 있을까? 그 많은 일들이 이렇게 즐겁고 재미있을 수 있을까?

“앤디.”

“응?”

앤드류를 생각에서 끄집어낸 조지는 그의 눈동자가 자신을 향하자 부드럽게 입술을 겹쳤다.

“으으응?”

뭔가 할 말이 있는지 목구멍으로 소리를 내는 앤드류는 입술을 번갈아 빨더니 혀를 내어 핥는 조지를 빤히 바라보았다. 침대 위로 퍼지는 조지의 싱그러운 바다 향기에 앤드류의 몸속이 울렁거렸다. 페로몬은 의도를 감추고 있지 않았다. 흥분을 유도하는 페로몬에 앤드류의 몸은 충실히 따르고 있었다.

앤드류가 떨리는 숨을 내쉬자 조지는 미소를 지으며 애교를 부리듯 앤드류의 입꼬리에 입을 맞췄다. 오늘은 휴일이었다. 둘 다 집에 있을 예정이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아침이었다.

신혼이 아닐 때도 알았고 신혼일 때에도 알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상황이 변했어도 변하지 않는 것이었다. 자신을 만지는 행위에 조지는 정성을 다한다. 조지가 앤드류를 만지는 손길은 늘 다정하고 부드러웠다. 감정을 가득 담은 손길은 앤드류를 마음껏 만질 수 있는 현실에 감격했음을 감추지 않았다. 느린 섹스 중에서도, 때때로 하는 거친 섹스 중에서도 앤드류는 항상 그것을 느꼈다. 조지가 자신을 만지는 손길에는 충분한 애정이 넘쳐흘렀으니까.

조지는 특히 알몸으로 끌어안고 있는 순간을 즐겼다. 앤드류도 다를 게 없어서 껍데기를 모두 벗어 던진 다음 두 사람은 잠시 서로를 꽉 끌어안고 있었다. 고작 맨살을 맞대는 것인데 사람은 왜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될까?

심장 소리가 유독 크게 느껴졌고 고요했던 온몸의 세포가 깨어나 살아 있음을 실감하게 했다. 맞닿은 사람의 체온에 긴장이 풀리고 그의 숨소리에 집중하게 됐다. 지금 이 순간이 지극히 사적인 순간이었다. 두 사람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아주 사적인 순간. 자신을 모두 보여 주며 애정을 말할 수 있는 기적 같은 순간. 그 순간에 앤드류는 자신을 끌어안고 숨을 고르는 조지의 숨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앤드류를 끌어안고 있던 조지가 천천히 몸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그는 큰 심장으로 가슴을 만져 심장 박동을 느꼈다. 애무라기보다는 그저 확인에 가까웠다. 그러나 결코 가벼운 손길은 아니었다. 앤드류는 쿵쿵 울리는 제 심장 소리를 느꼈다.

떨리는 숨을 몰아쉬는 아랫배를 조지가 다독이듯 쓸어 주더니 키스를 해 왔다. 깊게 들어오는 혀를 저항 없이 받아 준 앤드류가 방금 전보다 달뜬 얼굴로 조지를 올려다봤다. 예감이 들었다. 평소와 다르게 조금 이르게 시작된 섹스가 좀처럼 짧게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었다.

“앤디, 어제 한 말 기억해?”

한참 그의 손길을 즐기고 있을 때 조지가 물어 왔다.

“어제 한 말?”

조지의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해 봤지만 어제 한 말이 너무 많아서 쉽게 유추할 수가 없었다.

“무슨 말?”

앤드류를 조심스럽게 만지던 조지가 앤드류의 발목을 잡고는 들어 올렸다. 그는 앤드류의 톡 튀어나온 복사뼈에 입을 맞췄다.

“흐으으.”

앤드류의 성감 중 하나였다. 복사뼈를 물고 빨던 조지가 시트를 꽉 부여잡는 앤드류를 보며 허벅지를 꽉 쥐었다.

“어제 네가 나한테 한 말.”

“하으, 그러니까 무슨 말?”

거친 숨을 몰아쉬느라 앤드류의 가슴이 들썩였다. 앤드류는 조지가 자신의 아래를 간질이듯 만지자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조지가 손목을 잡아 꽉 고정시키자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려 시도하던 앤드류는 그냥 시트를 꽉 붙잡았다. 촉촉이 젖은 아래를 놀리듯 만지며 조지가 말했다.

“나 착즙한다며.”

“…….”

분위기에 취해 있던 앤드류의 눈이 번쩍 떠졌다. 그는 허리를 세워 자신의 다리 하나를 들고 다른 다리를 벌리며 자리를 잡는 조지를 바라봤다.

“어제 안 해 줘서 서운했어. 오늘 해 줄 거야?”

앤드류가 기겁을 했다.

“내,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어?”

“기억하잖아.”

물론 기억은 하지만! 조지는 당황한 앤드류를 보고 웃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그렇게 무드 없는 말을 해야겠어?”

완전 깼다는 표정을 짓는 앤드류를 보고 웃음을 터트린 조지가 말했다.

“그게 왜 무드가 없는 말이야?”

“앗! 잠깐, 아, 조지!”

“나는 그 말 듣고 꼴려서 밤새 잠도 제대로 못 잤는데.”

조지가 큰 손으로 앤드류의 성기를 잡아 쓸었다. 그는 이미 조금 젖어 든 성기 끝을 엄지로 누르며 자극해 왔다. 움찔하며 튀어 오르는 앤드류의 반응을 지켜보던 조지가 귀두 끝을 머금고는 힘 있게 빨기 시작했다. 적나라한 자극에 이를 악문 앤드류의 아랫배가 들썩거렸다.

순식간에 온몸이 땀으로 젖은 앤드류가 잔신음을 흘리며 몸부림을 쳤다. 성기를 더 깊게 삼키자 앤드류의 허벅지 근육이 뻣뻣하게 일어났다. 조지는 몸을 비트는 앤드류의 다리를 꽉 끌어안고는 물었다.

“안 해 줄 거야?”

“하읏, 아,”

질문을 할 거면 대답을 하게 만들어 주든가! 앤드류는 어느새 자신의 안을 비집고 들어오는 조지의 손가락 때문에 몸을 비틀었다.

“그럼 어쩔 수 없지. 내가 해 줘야지.”

네가 그 말을 하려고 그랬구나! 앤드류가 쾌감 때문에 흐려진 눈동자로 조지를 바라보다가 뭉툭한 게 구멍에 닿자 놀라 바라보았다. 이미 잔뜩 젖은 아래였지만 첫 삽입은 늘 버거웠다. 자신의 안을 벌리고 긁으며 들어오는 감각은 좀처럼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조지의 성기 때문에 아랫배가 가득 찬 기분이었다.

“응, 후으.”

삽입만으로 쾌감이 몰려왔다. 앤드류의 몸은 점점 조지의 손길에 쉽게 열리고 있었다. 신혼이 정말 너무너무 좋았지만 자꾸만 생각이 19금으로 가서 문제였는데 몸도 다를 바가 없었다. 이러다가 아주 사소한 행동에도 흥분하면 어쩌나? 고민이 될 지경이었다.

앤드류는 흐리멍덩한 눈동자로 조지를 가득 담았다. 삽입한 게 조지에게도 쾌감이었는지 이마에 핏대를 세운 조지는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그는 앤드류의 시선을 느꼈는지 꾹 감고 있던 눈꺼풀을 느리게 들어 올리더니 앤드류의 고개 옆에 팔을 두었다. 그늘을 만든 그를 올려다보는 앤드류는 갑자기 강하게 안을 찍어 올리는 조지 때문에 신음을 토했다.

“앗! 하, 잠깐, 처음부터 너무 빠르, 앗!”

원래 아침에 하는 섹스는 느렸다. 몸에 최대한 부담을 주지 않으며 최소한의 쾌감만을 찾았는데 지금은 달랐다. 처음부터 강하게 안을 찍어 올리는 조지 때문에 몸이 순식간에 예민해졌다.

온 방 안에 두 사람의 페로몬이 가득 퍼졌다. 숨을 쉴 때면 체액 냄새와 더불어 더욱 진해진 체 향까지 맡아졌다. 그게 더욱더 흥분을 유발했다. 약이 필요 없었다. 성감이 올라간 상태에서의 페로몬은 본딩된 상대에게는 최고의 최음제였으니까.

피가 몰려 눈을 뜨고 있기가 힘들었다. 아래에서는 폭력적이라 부를 만큼의 소리가 계속 번졌다. 거친 몸짓을 버티려고 시트를 꽉 끌어안고 다리로 시트를 마구 밀어내던 앤드류가 순간 온몸을 긴장시켰다. 절정이 다가오는 몸은 저절로 허리를 흔들게 만들었다.

“더, 조금만 더…….”

자신이 무슨 말을 내뱉고 있는 줄도 몰랐다. 조지가 안을 조금 더 엉망으로 만들어 주길 바라면서도 두려웠다. 그 큰 성기가 안을 내려찍을 때 손끝까지 떨릴 만큼 쾌감이 몰려왔으나 정말로 몸이 어떻게 될 것 같은 위기감도 들었다.

“안 돼, 너무 깊어, 조지이.”

허리를 돌리는 몸과는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거친 숨을 헐떡이는 앤드류의 눈꼬리를 타고 눈물이 후두두 떨어졌다. 가슴까지 잔뜩 붉어진 앤드류는 아이처럼 울먹이기 시작했다. 흥분에 젖은 눈동자로 앤드류의 표정을 집요하게 지켜보던 조지가 촉촉하게 젖은 그의 몸을 안아 올렸다.

“앗! 아으으, 아파아, 조지이.”

더 깊게 삽입되자 앤드류가 본능적으로 등을 긴장시켰다. 

“거긴 너무 깊어, 아파.”

“괜찮아, 자주 하잖아, 응?”

“흐으…….”

조지의 위에 앉지 않으려고 허벅지에 힘을 주었지만 그가 살살 달래며 앉히자 거부할 수가 없었다. 결국 조지의 허벅지 위에 앉은 앤드류가 그의 어깨를 끌어안고는 땀에 젖은 이마를 문질렀다.

“힘들어, 쓰려. 배에 네가 가득 찼어.”

앤드류가 자신의 아랫배를 더듬었다. 자신은 아프다고 칭얼거리는 것이지만 조지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흥분하게 만드는 일이 없었다.

“여기가, 하으, 여기 벌어지면 속이 아퍼.”

평소에는 벌어지지 않는 깊은 안까지 벌어졌다며 앤드류가 울먹였다. 조지는 그런 앤드류의 얼굴에 입맞춤을 쏟아 냈다. 잔뜩 긴장한 그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 주며 눈을 맞췄다. 말은 아프다고 하면서도 앤드류의 페로몬은 전보다 더 농밀해져 있었고 몸 안도 마찬가지였다. 

“괜찮아. 기분 좋게 해 줄게.”

앤드류가 잔뜩 젖은 눈동자로 조지를 올려다봤다. 페로몬과 행위에 취해 초점 없는 눈동자로 조지를 바라보던 앤드류는 입술을 꾹 다물어 턱 보조개를 만들더니 이내 곧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깊은 삽입은 몸에 조금 무리는 줬지만 그만큼 쾌감을 주기도 했다. 몸으로 배운 쾌락이 너무 커서 거부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앗, 아, 아으!”

그러나 조지가 아래에서 위로 박아 올리기 시작하자 눈을 뜨고 있을 수가 없었다. 시야가 자꾸 하얗게 점멸되어서 눈을 꾹 감은 앤드류는 필사적으로 조지에게 매달렸다. 한 손으로는 앤드류의 성기를 쓸어 주는 조지는 앤드류의 턱과 목덜미에 입을 맞추며 그의 허리를 붙잡고 거칠게 움직였다. 자꾸 위로 튀어 오르는 몸을 아래로 잡아당긴 조지가 성기를 쥐어짜는 앤드류의 몸에 이를 악물었다.

어떻게 더 원하고 더 갈증이 날 수 있나. 정말로 앤드류의 모든 것을 다 헤집어 두고 싶을 만큼 원했다. 앤드류의 하나하나까지, 여린 안 모든 부위에 자신이 닿기를 바라고 있었다. 조지가 쏟아 내는 짐승 같은 소리에 겁먹은 듯 파르르 떠는 앤드류의 허리를 꽉 끌어안은 조지가 아래에서 위로 쳐올렸다.

앤드류는 소리를 참지도 못하고 쏟아 내다 온몸을 수축시키면서 벌벌 떨었다. 목에 핏대를 올리며 눈을 질끈 감는 앤드류를 안아 든 조지가 뒤로 넘어가는 앤드류의 등을 받쳐 주었다.

“나 지금 가잖아, 움직이지 마, 앗!”

사정으로 긴장한 몸을 꽉 끌어안은 조지는 더 거칠게 박아 올렸다. 한계치를 넘어선 쾌감에 앤드류는 진저리를 쳤지만 조지에게 구속당해 움직일 수가 없었다. 도망갈 수가 없어 폭력적인 쾌감을 버티던 끝에 앤드류의 성기에서 액이 튀어 올랐다. 바들바들 떨면서 이내 앞에서 말간 액을 토하는 조지가 쿵쿵 뛰는 앤드류의 혈관을 붉은 혀로 핥으며 빨았다.

맞닿은 배와 가슴이 앤드류가 토한 액으로 젖어 들어갔다. 사정으로 수축된 몸이 조지의 성기를 있는 힘껏 쥐어짜자 조지가 앤드류의 목덜미에 고개를 파묻었다. 이제는 조지 차례였다. 아직 숨도 제대로 고르지 못한 앤드류는 다시 흔들리는 몸에 기겁하며 조지의 어깨를 긁었다.

“조지, 아, 조지…….”

사정이 가까워졌는지 움직임이 너무 거칠었다. 다시 몰려오는 쾌감에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앤드류는 조지의 움직임에 맞춰 볼록 올라오는 자신의 아랫배를 더듬으며 이를 악물었다. 앤드류의 귓가에 거친 숨소리를 쏟아 내던 조지가 어느 순간이 다가오자 그의 목덜미에 고개를 파묻었다. 그러자 앤드류가 조지의 머리카락을 붙잡아 당겨 시선을 맞췄다.

“나 보고 가, 하읏, 내 얼굴 보고 가.”

“읏.”

“얼굴, 보고.”

말하며 앤드류는 허리를 동그랗게 돌리기 시작했다. 자신을 응시하며 사정하라는 앤드류의 말에 허리부터 시작된 열기가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나 보고 가.”

그 말과 동시에 짐승이 그르렁거리는 것과 같은 소리를 내며 사정하는 조지를 앤드류는 황홀하다는 듯 지켜봤다.

잠시 뒤 앤드류는 참았던 숨을 몰아쉬며 기대 오는 조지를 끌어안은 채 침대에 털썩 누웠다. 깊은 한숨을 몰아쉰 앤드류와 조지는 한동안 서로를 가만히 바라봤다. 조지가 움직이려 하자 앤드류가 그에게 더 몸을 붙이며 말했다.

“아직 빼지 마, 나가지 마.”

그 말에 조지는 빼내려던 성기를 다시 앤드류의 몸으로 밀어 넣었다. 둘은 다시 느리게 호흡을 고르며 서로를 바라봤다. 앤드류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가 없었다. 자신을 바라보며 사정하는 조지. 완전히 날 것이자 자신만이 독점할 수 있는 순간을 곱씹으며 배시시 웃음을 흘렸다. 그렇게 만족스럽게 잠에 빠져들려 할 때였다. 구멍을 더듬는 조지의 손가락에 앤드류가 눈을 떴다. 눈이 마주치자 조지가 웃으며 말했다.

“오늘 휴일이잖아.”

“어제 나는 왜 괜한 소리를 해서!”

착즙이라니 무슨 그런 단어를 뱉었을까! 투덜거리면서도 앤드류는 자신을 돌아눕게 만드는 조지의 손길에 따랐다. 조지는 앤드류를 엎드려 눕게 만들더니 목덜미부터 날개 뼈까지 입을 맞췄다. 척추를 타고 따라 내려간 조지가 동그란 엉덩이에 입을 맞춘 다음 엉덩이를 잡아 벌렸다.

방금 전까지 섹스를 했기 때문에 아래는 부드럽게 풀려서 빠끔거리고 있었다. 액으로 젖은 곳에는 사과 향이 가득 풍기고 있었다. 그곳을 앤드류가 예뻐해 주는 손가락으로 더듬은 뒤 앤드류가 더 예뻐해 주는 혓바닥으로 핥아 올렸다. 기겁하는 앤드류가 밀어내려 했지만 무시한 조지는 제 편할 만큼 아래를 빨아 준 뒤에 앤드류가 더더욱 예뻐해 주는 자신의 성기를 강하게 밀어 넣었다. 동그란 엉덩이와 조지의 허벅지가 내는 마찰음이 느리게 침실을 채웠다.

앤드류와 조지 모두 신혼 생활을 하면서 알게 된 게 있다. 이른 아침에 하는 섹스라고 늘 느리고 정적이지는 않다는 사실이었다. 뭐, 괜찮았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을 리가 없었다.

***

다음 날.

두 사람은 정원에 있는 해먹에 누워 가을바람을 즐기고 있었다. 조지의 배 위에 고개를 기대고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던 앤드류는 별안간 말했다.

“위엄은 아무래도 힘들겠지?”

“아직도 그 생각해?”

앤드류는 폰을 내려 두고는 말했다.

“그래, 내가 좀 집착했지.”

“…….”

“너무 집착했어. 이제 현실을 받아들였어. 그건 내 옷이 아닌 것 같아. 이렇게 될 바엔 친근한 왕자비로 간다.”

그게 훨씬 성사 가능한 일인 것 같았다. 조지는 읽던 책을 내려 두곤 앤드류의 머리를 쓸어 줬다.

“그래, 너는 그런 게 잘 어울려.”

“그렇지? 내가 무슨 무게를 잡겠어.”

“근데, 앤디. 휴대폰 새로 사 놨어.”

앤드류가 눈을 반짝이며 조지를 돌아봤다.

“정말?”

“응, 모델은 네가 말해 준 걸로. 아마 지금 서재에 있을걸.”

“좋아. 어서 가져와서 세팅해야지.”

앤드류가 벌떡 일어나 조지를 남겨 두고는 곧장 서재로 향했다. 2층에 있는 서재까지 빠르게 뛰어왔더니 조지가 말한 대로 서재 테이블 위에 작은 박스가 있었다. 새로운 휴대폰이라니! 설렘을 안고 다가온 앤드류가 휴대폰 모델을 확인하고 박스를 집어 들다 멈칫했다.

“이건 뭐야?”

휴대폰 박스 옆에 작은 사진첩이 있었다.

[소유자: 앤드류]

라고 적혀 있었지만 앤드류는 처음 보는 사진첩이었다.

“내 건가?”

이런 거 가진 기억이 없었는데? 당황한 앤드류는 일단 박스를 내려 두고는 사진첩을 들었다. 자신의 것이라고 하니 사진첩의 정체는 확인해야 할 것 같았다. 궁금함으로 표지를 열어 본 앤드류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뭐야, 귀엽게.”

사진첩의 첫 장을 장식하고 있는 건 조지였다. 조지가 햇살을 받으며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조지가 준비한 건가?”

중얼거리며 앤드류가 한 장을 넘겼다. 사진첩에 가득한 사진은 오로지 조지였다. 웃고 있는 조지의 얼굴,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는 조지. 그리고 그다음에는 조지의 손이었다. 조지의 긴 손가락, 조지의 입술, 조지의 눈동자. 이쯤 되니 좀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조지가 찍은 사진인 게 틀림없는 것 같은 앵글이었는데 신체를 클로즈업해서 찍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에는 상체를 탈의한 사진이 나왔다.

“……헉!”

눈알이 튀어나올 뻔했다. 젖은 머리를 한 조지의 상의 탈의 사진은 어찌 보면 별것 아닌데도 엄청 야하게 느껴졌다. 마른침을 꼴깍 삼킨 앤드류는 혹시 몰라 뒤를 돌아보았다. 이 공간에 자신만 있다는 걸 확인한 앤드류가 사진첩을 한 장 넘기기 전에 심호흡을 했다.

‘설마, 설마, 에이 설마?’

설마 조지가 거기까지 해 줄까? 그런 의문은 한 장을 넘긴 뒤엔 눈 녹듯이 다 씻겨 내려갔다. 비명을 겨우 삼킨 앤드류가 음흉한 표정을 지었다. 제임스가 보았다면 영락없이 변태 아저씨라고 잔소리할 것이 분명했다.

체온이 올라 볼이 붉어진 앤드류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조지가 직접 찍은 나체 사진이라니! 하는 짓이 어쩜 이렇게 깜찍하고 외설적일 수가 있을까! 감동과 감탄을 쏟아 내는 앤드류가 한 장을 더 넘겼다.

인정해야 한다. 나는 변태다. 잘생긴 남편에게 눈이 멀어 그가 직접 찍은 젖꼭지 클로즈업 사진을 보고 군침 흘리는 나는 변태가 맞다!

앤드류는 한 장 한 장 사진을 넘겼다. 그리고 사진 몇 장이 지난날 자신이 삭제해야 했던 사진과 비슷한 것임을 확인하고는 눈을 느리게 감았다. 조지가 직접 찍은 그의 성기 사진이 눈앞에 아른 거렸다. 도대체 어떤 정신으로 이걸 찍었을까? 숨을 훅 들이쉰 앤드류는 그 밑에 붙어 있는 포스트잇을 떼어 냈다. 조지의 메모였다.

실물을 구석구석 봐주면 참 좋겠지만, 마음에 들기를. :)
-예쁜 조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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