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별로 친하지도 않은데 자신을 붙잡고 이런 말을 하는 조나단이 어이가 없었다.
“그런 말을 왜 해?”
“충고하는 거지.”
“네가 뭐라고 나한테 충고를 왜 해?”
“뭐?”
“너랑 나랑 뭐라고? 너랑 나랑 서로 충고를 해 줄 만큼 친해? 서로 걱정할 만큼 신경 쓰냐?”
조나단이 인상을 구겼다.
“말 해 줘도 문제야?”
“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닌데 오지랖을 부리니까 하는 말이잖아. 내가 누구랑 친하게 놀든 말든, 네가 왜 그런 말을 하는데? 네가 뭐라고.”
“…….”
“조지 옆에 사람이 있을 수 없어? 나 참. 어이가 없네. 네가 뭔데 그런 말을 해?”
“그럼 너는 뭘 알아?”
조나단이 구겨지는 인상을 감추지 못하고 말했다. 얼마 전부터 꺼림칙한 녀석인 줄 알았지만 조지에 대해서 이런 말을 하는 건 참을 수가 없었다.
“쓸데없는 걱정 말고 너 할 일이나 해.”
“…….”
“나는 보란 듯이 조지 옆에 백 년 만 년 달라붙어 있을 테니까.”
자기가 뭐라고 조지에 대해서 왈가왈부야. 중얼거리며 앤드류가 몸을 돌려 걸었다. 조나단이 떠나지 않고 노려보고 있는지 뒤통수가 따가웠지만 무시한 앤드류는 301호로 돌아왔다. 화를 참으며 가방을 내려놓는 앤드류의 표정은 잔뜩 굳어 있었다.
어쩐지 조나단의 태도가 잊히지 않았다. 뭔가 찜찜했다. 꼭 뭔가 있는 것처럼. 그건 단순히 충고라고 볼 수 없는 태도였다. 따지고 보면.
“악의?”
악의가 엿보였다. 조지에 대해 말하던 눈동자에 서린 것은 걱정이 아니라 분노에 가까웠다. 조나단이 그럴 이유가 있나? 곰곰이 생각을 하는데 그때였다. 방문이 열리고 조지가 들어왔다.
“조지!”
앤드류가 방에 들어온 조지를 끌어안았다. 조지의 가슴팍에 얼굴을 팍팍 비볐다. 가슴을 파고들었다.
“무슨 일이야?”
당황한 조지가 앤드류를 끌어안았다가 멈칫했다. 조지가 앤드류를 내려다보다가 어깨를 잡아떼어 냈다.
“나 힐링 타임이 필요한데 협조 좀 해 주지?”
찡얼거리는 앤드류과 얼굴을 마주한 조지가 물었다.
“이거 누구야?”
“응? 뭐가?”
“이거 누구야. 누구야 대체.”
심각해 보이는 조지의 표정에 앤드류가 당황해서 눈을 끔뻑였다.
“뭐, 뭐가?”
“이거 무슨 페로몬이야.”
“응? 페로몬? 무슨 페로몬?”
앤드류는 알 수가 없었다. 앤드류의 맹한 얼굴을 가만히 바라본 조지는 앤드류의 몸에서 풍기는 페로몬에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이건 분명히 페로몬이었다.
알파 기숙 학교에 있다 보니 앤드류는 종종 다른 알파의 페로몬을 묻혀 왔지만 이건 느낌이 달랐다. 이건 대놓고 페로몬을 노출한 것이었다. 농도가 약했지만 굳이 따지자면 생각 없이 풀린 페로몬이 아니었다. 정확한 목적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조지는 전과 다르게 불쾌를 느끼고 있었다. 오메가에게 자극을 주기 위해 페로몬을 흘린 게 분명했다. 앤드류가 묻혀 온 페로몬은 그랬다.
“너 방금 누구 만났어.”
“무슨 말이야? 킁킁. 나 무슨 향기 나? 이상하네.”
“누구 만났어?”
의아했던 앤드류는 조지의 심각한 표정에 말했다.
“크리스랑 조나단.”
조지는 크리스는 알았지만 조나단이 누군지는 몰랐다.
“조나단 그 새끼가 성질을 부리더라고. 말다툼 좀 했어. 그래서 그런가. 페로몬 묻었어?”
별일 아니라는 듯이 말하는 앤드류였지만 조지는 조금 이상했다. 페로몬이 쉽게 넘길 만한 것은 아닌 것 같아서.
“조지?”
천진하게 묻는 앤드류를 가만히 바라봤다. 이걸 앤드류에게 말을 해 줘야 하나. 방금 전에 제임스와 나눈 대화 때문에 조지는 걱정이 됐다.
‘애들이 요즘 진짜 미친 게 분명하지. 좀비 떼가 따로 없더라니 생각이 이상하게 튀나? 이상한 소문이 돌아.’
‘무슨 이상한 소문?’
앤드류가 없는 곳에서 할 말이라 하면 그다지 좋은 내용은 아닌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제임스의 입에서 소문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익숙해서 소름 끼치는 단어였다.
‘얼마 전에 풋볼 팀끼리 저녁 식사를 하러 갔어. 나 은퇴식도 얼마 남지 않았잖아. 그래서 오랜만에 모인 건데, 애들이 좀 이상하게 대하더라. 몸으로 치대던 놈들이 이상하게 거리를 둬. 내가 꼭 저들 잡아먹을 것처럼.’
‘…….’
‘그래서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같은 팀 크리스가 나한테 무슨 일 있냐고 묻더라고. 아무 일 없으니까 없다고 말했는데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다고 말하데? 알고 있냐면서.’
‘그러니까 뭔데. 뭐야.’
조지는 혹시 앤드류의 형질에 관한 문제일까 싶어서 신경이 예민했다.
‘우리가 삼각관계래.’
‘…….’
‘말도 안 되는 얘기인데 심각하게 믿는 애들이 있어. 애들 사이에선 거의 기정사실인가 봐.’
‘누가 그런 얘기를 했는지 알아?’
‘크리스한테 물었더니 자기도 누구한테 들었대. 누가 먼저 퍼트렸는지 찾기는 힘들 거야. 소문은 늘 조용히 퍼지고… 지금 그걸 들은 애들이 저들끼리 수군거리고 있을 뿐이라서.’
‘…….’
‘알파들만 모인 곳이라 다른 곳보다 더 또라이가 많은 곳이잖아, 여기가. 학교에 모인 애들이 다들 한가락 하는 분들 자식이 대부분이라 자기 잘난 줄만 알고. 문제 될 일도 없는데 서로 한번 좆 돼 보라고 이상한 짓도 많이 하고. 뒤에서 음습하게. 패거리도 존나 많아.’
‘…….’
‘너는 늘 피해 갔어. 우리 학교에 어떤 인물도 너만 한 애가 없으니까. 나랑 앤드류는, 내가 쿼터백이니까 사실상 건들지 못한 것도 있어. 우리 학교 평균 신장에 겨우 미치는 앤드류가 불링 대상에서 제외된 건, 이렇게 말하면 재수 없지만 내가 쿼터백이라 가능했어. 너 제외하곤 내가 나름 얼굴이잖아. 이 학교.’
‘…….’
‘그래서 이상해. 이번엔 너도 걸렸고, 나도 걸렸고. 그리고 앤드류가 걸렸고. 무엇보다 악의가 느껴져. 우리에 대한 악의.’
제임스는 그렇게 말했지만 조지는 다르게 생각했다. 악의.
‘아니. 아니야. 나에 대한 악의야.’
그건 분명 조지를 향한 악의다. 조지는 생각보다 많은 인간 군상을 만났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 이상으로 이상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더러 있다는 것도 깨달은 지 오래였다. 아주 이상한 피해 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 그들은 정말 까다로운 존재들이었다.
조지의 그 말에 제임스는 반박이 없었다. 다만 앤드류의 반응을 염려했다.
‘앤디한텐 나중에 말하는 게 좋겠어. 모르고 넘어가는 게 더 좋고. 지금 말해 봤자 그 녀석 열 받아서 학교 쑤시고 다닐 게 뻔해.’
제임스는 소문의 근원지를 잡은 다음에 앤드류에게 말하자고 했지만 조지는 혼란스러웠다. 앤드류는 다른 학생들보다 약점이 하나 더 있었다. 이제 막 자신의 사람을 손에 넣었다. 그 행복이 깨지질 않기를 간절히 바랐는데.
“왜, 왜 조지? 뭐야, 뭔데?”
조지의 표정이 굳은 걸 살피며 걱정으로 물어 오는 앤드류를 상처 입히게 될까 두려웠다. 자신이 손댈 수도 없는 일이 생길까 두려웠다. 자신의 옆에 있음으로 인해서 헐벗어지고 조롱의 대상이 될지 모른다. 아버지가 그렇게 됐던 것처럼. 그 두려움에 앤드류를 끌어안았다.
“앤디. 당분간 나랑 붙어 있어.”
“조지. 무슨 일 있어?”
“아니, 없어.”
아직 없었다. 아직 없었지만 조지는 자꾸 불투명한 미래에 불안을 느꼈다.
“근데 왜 이렇게 불안해? 심장 소리도 불안하고. 얼굴도 구겨졌잖아. 뭐야, 너 식은땀도 흘려?”
앤드류가 조지의 이마를 손으로 쓸었다. 조지가 얼마나 날카로워졌는지 페로몬으로 느껴졌다.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서린 애정은 변함이 없었지만 조지는 불안해하고 있었다.
공격하는 느낌은 아니었지만 뭐랄까, 달콤한 먹이를 뒤로 감추고 으르렁거리는 비쩍 마른 강아지의 비쭉 솟은 털 같은 느낌이었다.
나한테 묻은 페로몬이 그렇게 싫은가?
우성은 다른 형질보다 소유욕이 강하다. 그래서 조지가 예민해졌나 고민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구석이 있었다. 흔들리는 동공은 감추지 못하는 두려움을 비춰 주고 있었다. 갑자기 왜 이러는지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곰곰이 생각한 앤드류가 조지의 손을 잡았다.
“조지. 이리 와. 여기 누워.”
“뭐?”
“누우라고. 얌전히.”
“누우라고?”
“자꾸 두 번씩 물을래? 누워. 누우라면.”
단호한 말에 조지가 엉거주춤 침대 위로 올라갔다. 누우라고? 갑자기 왜? 하면서도 침대에 얌전히 누운 조지는 앤드류의 눈치를 살폈다. 침대에 걸터앉은 앤드류는 잡고 있던 조지의 손을 주물렀다.
“우리 조지는 손도 참 예쁘다. 손가락도 길고 손바닥도 넓어요. 봐. 내 손이랑 비교하면 진짜 더 거대해 보이지?”
“…….”
“손톱도 예쁘고 단정하네. 다음엔 내가 한번 깎아 줄게. 발톱도 내가 깎아 줄게. 나한테 맡겨 주면 내가 더 예쁘게 잘 깎아 줄게.”
“앤디. 지금 뭐 하는 거야?”
“뭐 하긴. 네 기분 풀어 주려고 예쁨 시간을 갖는 거잖아.”
“예쁨, 뭐?”
“5분 동안 너만 예뻐해 줄 거야. 그러니까 가만히 있어 봐.”
조지는 당황한 얼굴로 앤드류를 올려다봤다.
“우리 조지는 손목도 참 잘생겼어요. 손이 커서 손목도 두꺼운가? 내가 보니까 너는 뼈대가 참 단단한 것 같아. 너 가끔 이 팔뚝에 핏줄이 오소소 돋으면 내가 얼마나 민망한지 모르지?”
조지는 갑자기 눕혀 놓고는 예쁘다, 예쁘다 해 주는 앤드류가 민망했다. 마음이 간질거렸다. 얌전히 누워 예쁘고 좋다는 소리만 듣자니 얼굴이 점점 달아올랐다. 앤드류는 그러거나 말거나 자신의 할 일에만 충실했다.
“우리 조지. 팔뚝도 실해요. 운동 별로 안 한 것 같은데 은근 근육질이야. 타고난 건가? 단단해서 만질수록 좋다니까. 우리 조지는 턱도 이렇게 예뻐.”
“…….”
“자고로 진짜 미남은 턱이 예뻐야 한다고 했어. 턱이 어쩜 이렇게 완벽해? 너 가끔 이 악물잖아. 여기 뼈가 톡 튀어나오면 나 완전 돌아 버릴 거 같아. 알아?”
끝도 없는 앤드류가 조지의 입술과 코와 얼굴까지 찬양을 하다가 조지의 배를 주물렀다.
“앤디, 간지러워. 야!”
“복근도 실해. 이거 봐. 이거. 푸흐흐.”
간지러움에 조지가 뒤척였지만 앤드류는 손으로 갈고리를 만들어 간질이듯 만졌다. 조지의 몸이 발작하듯 튀어 올랐다. 그 꼴이 웃겨서 웃음을 터트린 앤드류가 몸을 피하려는 조지의 배 위로 잽싸게 올라왔다. 이제는 조지의 등에 올라탄 앤드류가 등허리를 주물렀다.
“허리도 튼튼해요. 으으. 옆 통 두툼한 거 봐? 그거 알아? 원래 알파의 허리는 자고로 옆 통이 넓어야 해. 그래야 진짜 힘을 쓴댔어.”
“뭐? 그건 또 어디서 들었어?”
“우리 아빠. 아빠 자랑거리였거든.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그런 걸 자랑했다니까.”
조지는 앤드류를 통해 스윈턴 부부에 대해 들을 때마다 의문이 들었다. 이 앤드류의 부모님은 도대체 어떤 분들이신지. 어쩌다가 아들을 이렇게 키우신 것인지. 이 대책 없는 무모함과 더불어 다정함은 어디서 나온 건지. 궁금하다고 생각하는데 앤드류의 손길이 척추를 하나하나 타고 올라와 날개 뼈를 만져 댔다.
“세상에! 날개 뼈도 예쁘네. 쪽쪽. 어쩜 이렇게 튀어나와 있어? 뜯어 먹어 볼까?”
얼굴이 터질 듯이 붉어진 조지는 안 되겠다 싶어 몸을 굴리더니 떨어지는 앤드류를 끌어안았다. 꽥! 이상한 신음을 토한 앤드류의 못된 손이 덕분에 얌전해졌다. 그게 싫은지 꿈틀거린 앤드류가 힘에서 이기지 못하니까 성질을 부리며 고개를 쭉 뺐다. 조지를 예뻐하는 걸 포기할 수 없다는 집념으로 입술이 닿는 곳에 마구 입을 맞추며 앤드류는 말했다.
“세상에, 쪽, 우리 조지, 쪽 귀 가까이서 보니까 진짜 더럽게 잘생겼네.”
“앤디이.”
“숨소리도 예쁜 거 봐.”
앤드류를 끌어안고 있던 조지의 손에서 힘이 스르륵 빠졌다. 앤드류가 조지의 가슴에 손을 올리며 일어나 조지의 눈과 얼굴에 마구 입을 맞췄다.
“웁화. 웁화. 쪽쪽. 웁”
달콤함이라곤 없었다. 우악스럽게 입을 맞추는 앤드류가 웃긴 조지는 그냥 그대로 있었다. 원하는 만큼 조지의 얼굴에 침을 잔뜩 묻힌 뒤에야 앤드류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나도 큰일이다. 네 전부가 다 이렇게 귀엽기만 해서 어째? 하긴. 근데 뭐가 문제야. 네가 잘나서 예쁘다는데. 그치? 따지고 보면 네 잘못이지. 누가 이렇게 내 취향으로 빼다 박아 놓으래? 안 그래? 그렇지? 말해 봐.”
“그래. 그래.”
“내 거.”
“…….”
“왜 답이 없어? 아니야?”
“맞아.”
앤드류가 조지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우악스러운 입맞춤과 달랐다. 서로의 입술은 따뜻했고 숨소리도 달게 느껴졌다. 조심스럽게 조지의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번갈아 머금은 앤드류의 숨이 조금 거칠어졌다. 맥박이 평소보다 높이 뛰고 숨이 더워졌다. 맞닿은 체온에 몸이 따스해질 때에 앤드류와 조지의 시선이 맞닿았다.
조지가 조르듯이 콧방울을 비벼 왔다. 다독이듯 얼굴을 쓸어 주며 이마와 눈꺼풀에 차례대로 입을 맞춘 조지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어느새 조지의 몸 아래에 있는 앤드류는 자신을 누르는 조지의 체중에 안정을 느꼈다. 앤드류가 조지의 어깨에 손을 올리자 조지가 웃으며 키스를 했다.
조지와의 키스는 다정했다. 자신이 사이클에 정신이 없었을 때에도 조지는 달려드는 앤드류의 키스에 응해 줄 뿐 거칠게 탐한 적은 없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도톰한 혀로 입술을 핥은 다음 윗입술 아랫입술을 가볍게 문 다음에 안으로 들어왔다. 들어와서도 서두름이 없다.
천천히 입 천장을 간질이고 어쩔 줄 모르는 앤드류의 혀를 부드럽게 휘감을 뿐이다. 혹시 앤드류가 놀라지는 않을까 늘 다정했다. 눈을 꾹 감고 입맞춤에 응하다 보면 숨이 부족해서인지 흥분해서인지 모르겠지만 열이 올랐다.
볼이 따뜻해진다는 느낌이 들 즈음에 조지는 가볍게 입을 맞추고는 천천히 물러났다. 침으로 젖은 조지의 입술이 유난히 붉게 느껴져 멍하니 보고 있다 보면 턱에 입을 맞춰 온다. 얼굴선을 타고 내려가 목덜미를 파고드는 조지는 한동안 코를 파묻고는 깊게 숨을 내쉰다.
“하아…….”
그 숨소리가 퍼지면 본능적으로 아랫배가 조였고 그럴 때는 앤드류도 본능적으로 조지의 살결에 코를 파묻었다. 그러면 바다 향이 쏟아졌다. 페로몬은 아주 이상하다. 상대 형질을 유혹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페로몬은 실체가 없으면서도 파괴력은 엄청났다.
이 페로몬이 얼마나 강하고 유혹적인가에 따라서 우성과 열성으로 나뉘는 걸 보면 형질을 가진 자들에게선 절대 무시할 수가 없는 종류였다. 도대체 왜 페로몬이라는 단어에 다들 유난을 떠나, 발현을 하기 전까지는 몰랐는데 앤드류는 조지를 만나고 나서야 알았다.
감춰질 수 없는 감정이 이곳에 있었다.
상대를 향한 애정을 표현할 수 있는 수많은 것들이 있음에도 표현은 종종 부족한 법이다.
단어. 눈빛. 손길. 노래.
그런 것들로 사랑의 벅참을 표현해도 채워질 수 없는 것이 이곳에 있었다. 앤드류는 자신을 향해 해일처럼 쏟아지는 바다 향에 쓸릴 때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조지는 끝도 없이 깊었다. 너무 깊어 끝을 가늠할 수가 없었다. 그 깊은 곳에 가득한 것이 오직 자신을 위한 갈망이라는 건 두려운 일이다. 두려울 만큼 환희에 젖게 하는 일이다.
자신에게 상처 줄까 봐 행동은 이토록 조심하는 사람이. 섬세하게 자신을 어루만지는 사람이. 나약함을 자청하는 사람이. 연약함을 자청한 사람이. 사실은 감춰질 수 없는 갈망을 가지고 있었다.
사랑해 죽겠으면서도. 원하는 만큼 날 얻어 가고 싶으면서도. 만족할 만큼 내 사랑을 원하면서도. 내 모든 것을 갈취하고 싶을 만큼이면서도. 내 속을 다 헐고 오직 너로 가득 채워 그 위에 둥지를 틀고 싶으면서도 너는, 너를 참는다. 날 위해 족쇄를 채운 너를 더 가엽게 여겨달라면서. 그러니 더 예쁘게 봐 달라면서.
조지가 얼굴을 더듬는 앤드류의 손바닥을 붙잡고는 제 볼을 비비다가 입술을 맞췄다. 거친 숨이 손바닥에 퍼졌다. 혀를 내어 손을 핥는 조지는 움찔한 앤드류의 손목을 꽉 잡았다. 도망치지 못하게 잡고는 앤드류를 빤히 바라봤다. 앤드류는 마른침을 삼켰다.
“앤디.”
그 목소리에 바다 향이 다시 퍼졌다. 몸 안으로 밀고 들어오는 그 향기에 정신이 다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아랫배에 경련을 느끼며 앤드류는 붉은 입술을 들썩이다 문득 조지를 올려다봤다.
“조지…….”
조지가 앤드류를 올려다봤다. 앤드류는 생각했다.
‘난 어디까지 가 보고 싶은 걸까. 내가 원한다면 다 해 주겠다는 너를, 나는 어디까지?’
아주 고약한 마음인 것을 알지만. 이 마음을 알아도 조지는 상관없어 할 것을 알았다. 이걸 어떻게 이용해서 앤드류의 마음을 자신이 가져갈까 궁리하겠지.
“왜?”
불러 놓고는 말을 하지 않는 앤드류를 빤히 보던 앤드류가 조지의 멱살을 잡아끌어 당겼다. 앤드류가 말했다.
“오늘은 네가 깔려.”
그 말에 조지는 앤드류를 보다 몸을 일으켰다. 틈이 생긴 앤드류가 얼른 조지의 몸 위로 올라갔다. 앤드류의 허리를 받쳐 준 조지는 곧 몸에서 힘을 풀었다.
“아까 제임스가 한 말이 걸렸어?”
“어! 걸렸어!”
단번에 답한 앤드류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자신의 밑에 있는 조지는 보기가 좋다. 위에 있는 조지도 보기 좋았지만 굳이 따지자면, 손길을 갈망하며 올려다보는 표정은 다른 희열을 느끼게 해 줬다. 조지가 조금 억울해도 어쩔 수가 없다.
‘그러게. 나쁜 버릇 들이게 하래?’
탓하며 앤드류가 느리게 손을 움직여 조지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앤드류가 편하도록 조지는 몸을 이리저리 들어 주었다. 곧 반듯한 상체가 드러났다. 앤드류가 손을 펴서 조지의 몸을 더듬었다. 손바닥 가득히 조지의 몸이 느껴졌다. 촉감을 되짚으며 손으로 그릴 듯이 조지의 몸을 따라 움직였다.
조지의 피부는 생각보다 부드러웠다. 길고 긴 손가락은 수줍게 생긴 것치고는 무자비했다. 양극을 달린다는 건 사람을 참 흥분되게 했다. 조지는 생각했던 것보다 가슴이 넓었다. 제법 큰 키를 가졌지만 이미지는 조금 얇아 보였다. 벗겨 보고 난 뒤에야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지만. 게다가 운동도 꽤 했는지 잔 근육이 몸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 학교의 누구도 조지의 몸이 이렇게 생겼다는 걸 모를 것이다. 어쩌면 이 세상에서 오직 자신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앤드류가 움찔거리는 조지의 가슴을 만지다가 손끝으로 쇄골과 목젖을 더듬었다. 자신을 안을 때에 유난히 힘줄이 도드라지는 곳을.
선이 예쁘면서도 단단한 몸을 더듬던 앤드류가 허리를 숙였다. 조지의 숨이 아까보다 거칠었다. 가슴이 들썩였고 열로 조금 붉어져 있었다. 달뜬 숨을 내쉬는 걸 귀를 대고 가만히 듣고 있었다.
터질 듯이 요란하게 뛰는 걸 듣고 있자니 자신이 꼭 그 심장을 손바닥에 가득히 쥐고 있는 착각이 들었다. 힘을 주면 터질 게 분명하다는 생각에 작게 웃음을 흘린 앤드류가 조지의 가슴에 입을 맞췄다. 색이 조금 옅은 유륜을 입에 넣고 굴렸다. 조지의 숨이 더 거칠어졌다. 어깨를 붙잡는 악력에 아픈 티를 냈더니 금세 힘이 빠진다.
한쪽 가슴을 침 범벅으로 만든 뒤에야 앤드류는 조지의 배를 따라 내려갔다. 온몸으로 조지를 만지는 기분이었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 조지를 그리고 있는데 왜 아쉬운 느낌이 드는지 알 수가 없었다. 조지를 만지면 만질수록 갈증이 타오르고 있었다.
“예쁘다.”
중얼거린 앤드류가 조지의 갈비뼈 부근을 쓸었다. 어제 조지가 혀로 자신의 몸을 핥아 주었던 게 생각이 나서 앤드류가 비슷한 부근에 입을 맞췄다. 긴장을 했는지 아랫배에 근육이 도드라지는 걸 보고 웃음을 흘리다가 앤드류가 조지의 배에 바람을 불어 넣었다.
“부우우우-”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간지러운지 괴상한 소리를 내며 조지가 일어났다.
“야, 앤디.”
“킥킥킥. 왜. 너 어릴 때 이런 거 안 당해 봤어?”
기가 막힌 얼굴을 하는 조지의 입에 장난스럽게 입을 맞춘 앤드류가 조지를 다시 눕혔다.
“왜, 움직여. 가만히 있어. 내 맘대로 할 거야.”
단호한 말에 조지가 다시 몸에서 힘을 풀었다.
“그래그래. 맘대로 해. 그래도 그건 하지 마. 이상해.”
앤드류가 바지 버클을 잡았다. 이미 약간 볼록해진 곳을 골똘히 바라봤다. 그 침묵을 망설임으로 생각했는지 조지가 앤드류의 볼을 쓸어 주며 말했다.
“자세히 봐.”
“…….”
“만져 봐.”
“…….”
“내 몸이잖아.”
‘딱히 그래서 망설인 건 아닌데.’
생각했지만 굳이 조지에게 말하지 않기로 했다.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사실 조지의 성기는 풋잡을 했을 때 말고는 자세히 본 적이 없었다. 관계 중엔 흥분으로 눈이 돌아가서 성기를 봤다 하더라도 잔상이 흐렸다. 그래서 생생하다기보다는 흐린 이미지였다.
“여긴 안 예뻐해 줄 거야?”
“아니… 뭐… 그건 아닌데.”
속삭인 앤드류가 늘 자신의 다리 사이에 고개를 파묻었던 조지를 생각하면서 느리게 바지 버클을 풀었다. 조지의 고간 사이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브리프를 입고 있었지만 열기가 느껴졌고 조지의 허벅지 근육이 움찔거리는 게 눈으로 보였다.
앤드류가 바지를 벗겨 주면서 조지의 허벅지와 무릎까지 입을 맞췄다. 키스는 습했다. 앤드류는 손으로 허벅지를 어루만지며 안쪽으로 입을 맞췄다.
조지는 자신을 단속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시트를 꽉 잡고 있는 손에 힘줄이 올라왔다. 발목에 걸린 바지를 툭, 하고 벗겨 낸 앤드류가 두 손으로 조지의 다리를 쓸면서 위로 올라왔다.
앤드류가 조지의 브리프를 살짝 위로 잡아당겼다. 더듬어서 손을 밀어 넣었다. 말랑거리는 성기를 조심스럽게 속옷 밖으로 꺼낸 앤드류가 골똘히 조지의 성기를 조심스럽게 더듬었다. 약간 액을 비치는 성기 끝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윽, 하아…….”
만족스러운 신음이 위에서 터졌다. 고개를 들어 보니 조지가 상체를 들어 앤드류가 하는 걸 구경하고 있었다. 자세가 아주 편해 보였다. 그제야 앤드류는 이거 지금 봉사해 주는 거 아닌가? 의문이 들었지만 상관없었다. 자신도 즐거웠으니까. 아까보다 단단해진 조지의 성기를 주물렀다. 힘줄이 올라온 것을 손바닥으로 더듬으며 앤드류는 말했다.
“참 신기하다.”
“뭐가?”
“이것도 잘생겨 보이면 나 진짜 머리가 돌아 버린 게 분명하지?”
“…….”
“어떻게 이것도 잘생겼지. 하나도 안 징그럽게. 색도 예쁘고 생긴 것도 예쁘네.”
흥분해서 달아오른 성기를 조심스럽게 만지다가 살짝 머금었다. 입술 도장을 찍듯이 귀두 끝에 입을 맞춘 앤드류가 이제는 꽤 단단해진 조지의 성기를 어루만졌다. 음낭이 움찔거리는 게 보였다. 한 손으로 그걸 잡고 주물렀다.
“이 학교에서 수많은 알파들을 봤지만 네 거가 제일 잘생겼어.”
“수많은 알파?”
갑자기 분위기 깨는 소리에 조지가 벌떡 일어났다. 불쾌한 표정인 조지의 페로몬은 방금 전과는 전혀 다르게 날카로웠다.
“그건 어쩔 수 없는 거야.”
“알아. 아는데 들을 때마다 기분 나쁜 걸 어쩌라고. 그럼 넌 내가 그런 말을 듣고도 질투 안 하는 게 좋겠어?”
“…….”
앤드류가 고개를 저었다. 질투해 주는 게 좋지 사실. 생각하면서 앤드류가 이젠 완전히 크기를 키운 조지의 성기를 주물렀다. 핏줄이 불끈 올라온 성기는 사이즈로 보건대 자신의 안에 다 들어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걱정 마. 내가 이걸 보고 맛있다고 생각하는 건 네가 처음이자 마지막일 테니까. 조지. 움직이지 마.”
말하며 앤드류가 조지의 성기에 코를 비볐다. 조지의 페로몬 냄새와 비린 냄새가 섞여 있었다. 페로몬이 가장 진하게 나는 곳이 이곳이다. 아니나 다를까 조금 버겁게 느껴지는 페로몬이 훅 하고 퍼졌다. 숨이 막혀 왔지만 앤드류는 꺼떡거리는 성기를 주무르다 최대한 입 안으로 삼켰다.
동시에 풋내가 올라왔지만 하나도 역겹지 않았다. 다만 숨을 잘 쉴 수가 없어서 생리적으로 눈물이 고여 왔다. 조지의 허벅지를 단단히 붙잡고는 혀로 기둥을 핥고 힘을 주어 빨았다.
“윽, 하아, 앤디.”
만족스러운 신음이 귀를 파고들었다. 이제는 말간 액을 더욱 진하게 내뿜고 있었다. 입에 넣고 굴리기를 몇 번 하다가 조지의 표정이 궁금해 시선을 올렸다. 그때였다. 시뻘게진 얼굴을 한 조지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조지의 눈빛이 반짝였다. 조지는 급하게 일어나더니 앤드류의 턱을 들어 올렸다. 그 바람에 입 안에 넣고 굴리던 게 툭, 하고 빠졌다.
‘왜. 나 지금 엄청 재미있는데?’
불만스럽게 바라보는 앤드류의 허리를 잡은 조지는 급하게 앤드류의 바지를 벗겼다. 종아리까지 내린 조지는 거친 숨을 내쉬며 앤드류의 엉덩이를 자신의 쪽으로 돌렸다.
당황한 앤드류가 어물거리는 사이에 조지가 살짝 물기가 비치는 곳을 혀끝으로 더듬었다. 자극에 움찔한 앤드류가 눈을 질끈 감았다. 자신의 엉덩이를 단단히 잡고는 게걸스럽게 핥는 조지에 다리가 떨렸다. 뒤에서 차마 듣기 민망한 소리가 울렸다.
“조, 하으…….”
“앤디- 놀고 있지 마. 제대로 해.”
떨리는 신음을 토하던 앤드류가 그 말에 더듬거리며 조지의 성기를 다시 잡았다. 바다 향기가 짙게 올라왔다. 그게 이렇게 원초적인 욕구를 자극하는 줄 몰랐다. 그래서 부끄러움도 잊어 가며 앤드류는 열심히 조지를 애무했다. 침대 위와 아래에서 젖은 소리가 울렸다. 간혹 더운 숨소리와 앓는 신음 소리가 번졌다. 공기는 후끈했고 그만큼 눅눅했다.
“앗!”
순간 앤드류가 허리를 세웠다. 조지가 엉덩이를 있는 힘껏 벌리더니 애액과 침으로 범벅이 된 구멍 안으로 혓바닥을 밀어 넣었다. 날카로운 콧대가 엉덩이골 사이에 파묻어졌다. 듣기만 해도 질척이는 숨소리가 자신의 아래에서 퍼졌다. 견딜 수가 없어서 허리를 세운 앤드류가 허리를 비틀었다. 으으. 하는 앓는 소리를 내다가 조지의 허벅지에 손을 올리고 버텼다.
“조지… 조지 하읏. 읏. 하지. 으아.”
눈앞에 보이는 천장이 빙글빙글 돌았다. 끊어지는 신음을 뱉는 앤드류는 몸을 떨었다. 조지가 허리를 단단히 붙잡고 있는 탓에 움직일 수도, 넘어갈 수도 없어서 몸이 답답했다. 다리에 경련이 일어났다.
여린 안을 빨고 입구를 간질이는 조지 때문에 쾌감이 끝도 없이 몰려왔다. 조지의 얼굴 위에 앉지 않기 위해 무릎에 힘을 주고 있느라 더 정신이 없는 앤드류는 점점 고개를 뒤로 젖혔다.
힘이 뻣뻣하게 들어갔다. 아랫배가 떨려서 손으로 감쌌다. 이제는 이 감각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았다. 올 듯 말 듯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뜨거운 감각에 발끝까지 힘을 준 앤드류가 고개를 저었다. 무작정 조지의 손을 붙잡았다.
“조지. 이제 진짜 그만,”
이대로는 못 가. 이대로는. 이대로.
생각하던 앤드류가 이를 악물었다. 숨을 멈추고 온몸을 조였다. 꽉 문 잇몸 사이로 신음이 튀어나왔다.
“이거 싫어. 이렇게, 하읏, 가기 싫, 으읏!”
한참을 끙끙거리며 쾌감을 버티던 앤드류의 몸이 들썩였다. 긴장으로 몸이 뻣뻣하게 굳었고 숨도 쉴 수가 없었다. 입술만 빠끔거리며 조지의 허벅지에 손톱자국을 깊게 남기던 앤드류가 잠시 뒤 큰 숨을 내쉬면서 뒤로 넘어갔다. 앤드류가 더운 숨을 쌕쌕거렸다.
눈물에 젖은 눈썹을 파르르 떨면서 가슴을 헐떡이며 거친 숨을 몰아쉬는 앤드류를 조지가 뒤에서 끌어안았다. 턱을 잡아 돌려 입을 맞춰 숨을 넘겨 주는 걸 받아 마신 앤드류가 붉은 가슴을 헐떡이며 말했다.
“뭐야. 결국 네 맘대로 했잖아.”
땀에 젖은 관자놀이에 쪽쪽 입을 맞춘 조지의 숨결을 느낀 앤드류는 이게 끝이 아니란 걸 잘 알았다. 눈물 때문에 시야가 번졌지만 조지의 눈동자가 얼마나 푸르게 빛나는지 너무 잘 알았으니까.
조지는 앤드류를 옆으로 눕혔다. 다리 하나를 손에 건 조지는 곧바로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속이 한계까지 벌어지는 감각에 앤드류가 다시 한번 막힌 숨을 내쉬었다. 하체에 힘이 저절로 들어갔다.
밀어내려는 내벽을 이기며 들어오는 페니스가 주는 마찰에 속에서부터 열이 올라왔다. 소리도 뱉지 못하는 앤드류가 허우적거리자 조지가 단단히 몸을 끌어안았다. 옴짝달싹할 수 없는 앤드류는 아랫배 위까지 들어온 성기에 앓는 소리를 냈다.
“앤디. 앤디.”
확인하듯 부르는 목소리를 따라 조지가 몸을 천천히 움직였다. 엉덩이에 허벅지가 닿을 때마다 손이 다 하얗게 저려 왔다.
늘 이렇다. 고작 몇 번 몸을 섞었지만 늘 이랬다. 조지와 잠자리를 가지면 앤드류는 정말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이끄는 대로 따라가는 것도 벅찼다. 앓고 버티는 게 할 일의 전부였다. 땀에 젖어 촉촉해진 몸의 열기는 불덩이 같았고, 끈적한 뭔가가 잔뜩 묻어 있었다.
“조지, 조. 읍!”
달뜬 소리로 이름을 부르던 것은 곧, 조지의 목구멍을 타고 삼켜졌다. 열이 올라 온통 붉어진 얼굴을 한 앤드류가 조지의 어깨를 부둥켜안고 있던 손에 힘을 더 꽉 쥐었다. 어깨에 손톱자국이 남을 만큼 힘을 주었거늘 조지는 아랑곳이 없었다. 절정에 어쩔 줄 모르는 앤드류의 입에 입을 맞춰 신음을 삼키면서 조지는 허리를 털었다. 철벅이는 소리가 점점 더 빠르게 들렸다.
끝이 다가오는 순간에 조지는 앤드류의 몸에 무작정 매달렸다. 안 그래도 체중으로 눌러 오는 몸을 버티던 앤드류는 자신에게 매달리는 조지를 붙잡으며 버텼다. 짐승 같은 숨소리가 번갈아 터지고, 거친 호흡을 정신없이 나눌 때에 둘은 일순간에 비명과 같은 신음을 토했다.
“하으으. 으으.”
“하… 앤디…….”
삽입으로 인한 쾌감은 꽤 오래 지속되는 편이라서 앤드류는 질끈 감은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속이 경련을 일으킨 느낌에 몸을 파르르 떨고 있다 보면 조지가 진정하라는 듯이 큰 손으로 아랫배를 쓸어 준다. 이번에도 그렇게 다독이는 조지의 손에 의지해 떨리는 숨을 내쉬다가 조지의 손을 꽉 잡았다.
“하아…….”
많이 진정된 호흡을 내뱉은 앤드류가 조지를 돌아봤다. 조지가 눈꼬리를 타고 흘러내린 눈물을 조심스럽게 닦아 줬다.
“으아. 힘들다.”
힘이 축 빠진 목소리였다. 페로몬에 해롱거렸던 이성이 이제 슬슬 돌아오고 있었다.
“괜찮아?”
물음에 앤드류가 고개를 끄덕였다. 관계가 끝나기가 무섭게 졸음이 몰려왔다. 후희를 즐길 생각인지 조지는 아직 빠져나가지 않은 상태였음에도. 예쁘다면서 여기저기 입 맞추는 걸 얌전히 받아 준 앤드류는 너무 졸렸다. 좋았지만 힘든 건 또 사실이라서. 잔뜩 긴장했던 몸이 내일은 어떻게 비명을 지를까 생각하던 앤드류가 자신을 조심스럽게 눕혀 주는 조지를 올려다봤다.
앤드류만큼 땀에 젖은 조지의 볼이 붉었다. 어깨까지 붉게 물들어서는 누가 봐도 섹스했다는 티를 내고 있었다. 앤드류가 푸스스 웃으며 땀에 젖어 더욱 곱슬거리는 조지의 머리카락을 쓸었다.
네가 사랑스럽다. 무척. 무척이나.
“조지이.”
“응.”
“조지…….”
‘뭔가 할 말이 있는데 너무 졸리다. 네가 좀 적당히 했으면 말하고 잘 수 있는데. 뭐. 상관없나.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말해 줘야지. 특별할 거 없는 말이니까 내일 해 주면 돼. 생각해 보니 그거 참 좋다. 널 예뻐하는 말들이 특별할 거 없는 말이라니. 그러니까 조지. 지금 내 옆에 누워서 날 예쁘게 보는 조지야. 내일 아침에 또 말해 줄게. 네가 너무 예쁘다고. 지금은 너무 졸려. 조지 잘자…….’
앤드류는 잠에 빠져들었다. 방 안엔 앤드류의 숨소리가 퍼졌다.
“잘 자, 앤디.”
편안한 얼굴로 잠이 든 앤드류를 보며 조지가 속삭였다. 조지는 뒤늦게 몸을 빼냈다. 콘돔을 벗긴 다음 휴지로 숨겨 버렸다. 뒤처리를 해 줘야 하는데 오늘은 좀 느긋하게 하고 싶었다.
조지는 앤드류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앤드류의 얼굴선을 따라 손을 움직였다. 작은 얼굴을 더듬는 건 금방이었다. 하루 종일 그리라면 그릴 수도 있겠는데. 왜 이렇게 금방 끝나는지 아쉬워서 몇 번이나 앤드류의 몸을 더듬던 조지가 앤드류의 목덜미에 고개를 파묻고는 몸을 웅크렸다.
“나도 무서워 앤디.”
조지가 속삭였다.
“밖이 두려워.”
널 상처 입힐 모든 것들이 두려워. 그것들로 인해 네가 결국 나를 폐기 처분할까 봐 두려워. 생각하며 가지런히 놓인 앤드류의 손을 더듬는데 그때였다.
“조지이.”
옹알이를 하듯 부르며 앤드류가 조지의 손을 맞잡았다. 단단히 움켜잡고는 다시 쌕쌕거리며 잠에 빠져든 앤드류를 빤히 보다가 조지가 다시 고개를 파묻었다. 눈을 감았다. 조지는 이대로 아무것도 변하지 않기를 바랐다.
***
이른 새벽이라 기숙사가 조용했다.
운동부 출신들만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곧 은퇴할 예정이고 시험을 앞두고 있어서 훈련은 빠지고 있지만 습관이라 제임스는 늘 아침에 일찍 일어났다.
제임스가 기숙사를 빠져나왔다. 상쾌한 공기라도 마시고 싶어서 밖으로 나갈 생각이었는데 위에서 발소리가 울렸다. 계단을 타고 내려가려던 제임스가 고개를 위로 올렸다. 툭툭툭. 걸어가던 발소리가 잠시 멈췄다.
‘저기 301호 앞인데?’
이상한 느낌에 제임스가 위를 보다가 걸었다. 타닥타닥. 발걸음 소리가 몇 번 더 나는 것을 이상하게 여겨서 위로 올라가니 301호 앞에 한 학생이 이상하다는 얼굴로 서 있었다. 문 앞에서.
“야. 너 뭐 하냐?”
“제임스?”
“뭐 하냐고.”
“아 그게. 잠깐. 좀.”
“잠깐 뭐?”
“아니 그냥…….”
“애들 아직 다 잘 텐데?”
“어. 그러겠지?”
제임스는 그 학생을 빤히 바라봤다. 이른 새벽에 이게 무슨? 하며 바라보는데 학생은 멋쩍은 얼굴을 하고는 통통 뛰어 내려갔다. 제임스가 팔짱을 꼈다. 뭔가 이상했다. 301호 앞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네가 왜? 크리스?
이해할 수가 없었다. 크리스가 왜 여기 서 있는 걸까? 그래서 크리스가 사라진 곳을 보다가 제임스가 잠시 멈칫했다. 위로 올라가는 계단에 수첩이 떨어져 있었는데 시선이 갔다. 구겨진 종이가 살짝 밖으로 나와 있었다. 제임스가 허리를 숙여 집었다.
“이게 뭐야?”
낡은 수첩을 쓱 둘러본 제임스가 사진을 찾았다. 한 장은 꽤 낡았다. 가족사진 같아 보였는데 부모와 함께 형제 두 명이 있었다. 그걸 보다가 뒤로 넘겼다.
“뭐야 이게?”
당황한 제임스가 사진을 봤다. 조지의 사진이 난도질 되어 있었는데 앤드류의 사진도 함께 있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는데 작은 지퍼 백에 알약 몇 개가 담겨 있었다. 제임스가 손으로 알약을 굴렸다.
“이거…….”
학교에서 배웠다. 알파든 오메가든 억제제와 유도제에 관해서는 다들 철저하게 교육을 받았다. 혹시나 일어날지 모르는 범죄 때문이었다. 그래서 제임스는 단번에 자신이 찾은 게 유도제라는 것을 알았다. 이런 걸 왜? 하는 순간이었다.
퍽!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
“뭐? 제임스가 쓰러졌다고?”
등굣길에서 만난 톰이 해 준 말에 앤드류는 당황을 했다. 안 그래도 아침에 제임스가 보이지 않아 의아했는데 톰이 전해 온 소식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응. 크리스가 발견했대. 너희 방 앞에 계단 있지, 거기서 쓰러져 있었다는데.”
“괜찮은 거야?”
“의식이 없어서 병원으로 이송됐어. 어디 다친 곳은 없어 보였는데 넘어지면서 머리를 다쳤을 수 있잖아.”
“언제 발견한 거야?”
“새벽 6시 40분 즈음이라던데.”
앤드류의 표정은 단번에 심각해졌다.
“어느 병원인지 알아?”
“근처 종합 병원. 검사 중일걸. 나도 애들 통해서 들었어.”
그렇게 말을 한 톰은 서둘러 학교로 향했다. 이미 조금 시간이 늦은 앤드류는 좀처럼 발길을 옮기지 못했다. 조지의 이끎에 학교로 향하면서 앤드류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넘어졌기에 그래?”
투덜거리는 말투였지만 얼굴엔 걱정이 가득했다. 쓰러졌고 의식이 없다면 머리를 다쳤을 수도 있다. 뇌출혈은 아니길. 앤드류는 걱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몸은 더럽게 튼튼해서 같이 넘어져도 저만 멀쩡했던 주제에. 내가 그게 얼마나 억울했는데.”
“괜찮을 거야.”
앤드류가 조지를 올려다봤다. 조지도 퍽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앤드류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알아. 그 멍청한 녀석은 뇌도 근육으로 되어 있을 거야, 비글처럼. 조지. 혹시 수업 끝나고 제임스가 안 오면.”
“같이 가자. 보러 가.”
“응. 그래. 그러자. 그 전에 돌아오면 좋겠지만…….”
“그럴 거야.”
조지의 말에 앤드류는 살짝 안심이 됐다. 애써 걱정을 하는 것보다 제임스의 타고난 튼튼함을 믿자고 마음을 먹었다. 불행한 생각은 불행을 더욱 부르기도 하지 않던가. 제임스는 무사히 학교로 돌아올 것이다. 돌아와선 아픈 자기랑 놀아 달라고 보채겠지. 그럼 오늘은 다 받아 줘야지. 게임 같이 해 주고. 신세 한탄도 같이 하고. 밥도 오늘은 내가 사 줘야지. 다짐을 하는 앤드류에게 조지가 물었다.
“저기 앤디. 너 어제 누구 누구 만났다고 했지?”
“나? 크리스랑 조나단.”
“…….”
“왜. 무슨 문제 있어?”
“아니. 아니야.”
조지가 앤드류의 어깨를 괜히 툭툭 털더니 한 손으로 머리를 감싸 끌어안았다. 친구끼리 하는 가벼운 포옹이었다.
“수업 열심히 들어. 짐 괜찮을 거야.”
“그래. 너도.”
앤드류를 위로한 조지가 교실로 향하는 앤드류를 바라보다가 몸을 돌렸다.
제임스는 왜 하필 301호 앞에서 쓰러졌을까?
다른 사람들은 우연히 그랬다거나, 혹은 방 주인들에게 할 말이 있어서 그랬나 보다라고 생각했지만 조지는 그게 걸렸다. 정말 넘어진 게 맞을까? 이른 새벽에 넘어졌다면 소리가 나지는 않았을까? 우리가 자느라 못 들은 건가. 아니면… 소리를 지르기도 직전에 정신을 잃은 걸까? 하필 우리가 학교 내에서 도는 소문에 대해 대화를 나눈 다음 날에? 왠지 이상한 느낌이 든 조지의 미간이 더욱 굳어졌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일단 조지는 자신이 타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일상의 틈에서 갑자기 쏟아지는 불행은 의외로 사람을 통해서 벌어지는 경우가 허다했다.
자신에 대한 악의.
불특정 다수의 위협보다 악의를 가진 한 사람이 더욱 두려운 탓에 조지는 신중했다. 이런 일들이 종종 있었다. 너무 자아가 투철해서 사회성을 잃어버린 사람, 지나친 자기애로 심성이 비틀어졌거나 자학이 너무 심해서 타자에 대한 공격성을 보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그냥 유명해지고 싶어서 유명한 사람을 무작정 공격한다. 유명인과 평범한 자신의 일상을 비교하면서 자신을 덧씌우다가 그 괴리감을 견디지 못하고 폭력적인 방법을 택하는 사람도 있었다.
보통의 사람들, 건강한 사고를 가진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사고 체계를 가진 사람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것도 아주 많이. 기본적으로 선량한 사람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치졸한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앤드류는 모르는 것 같았다. 부러질지언정 굽히지는 않을 앤드류의 성격이 굉장히 매력적이었지만 객관적으로 볼 때 위험하기도 했다. 위험을 피하지 않는 사람이니까.
조지는 방금 전에 앤드류에게서 들은 이름을 되뇌었다.크리스와 조나단. 조나단은 잘 모르지만 크리스는 잘 안다. 어제 앤드류의 몸에 묻어 있었던 기분 나쁜 페로몬이 거슬렸다. 그건 분명히 오메가를 자극하려 흘린 페로몬이었다. 게다가 크리스는 제임스를 먼저 발견한 녀석이라고 했다.
‘일단 그 녀석한테 가 볼까?’
조지가 발을 옮겼다. 풋볼부 부실로 향했지만 그곳엔 크리스가 없었다.
“크리스? 그 녀석 지금 여기 없어, 왜?”
부실을 지키던 학생이 주위를 둘러보다가 뭐 더 물어볼 거 있냐고 묻자 조지가 물었다.
“혹시 크리스 페로몬이 뭔지 알아?”
“페로몬? 그건 왜?”
“알아? 몰라?”
마음이 급해서 말투가 까칠하게 나갔지만 상관없었다. 학생은 조금 불쾌한 표정을 하더니 말했다.
“알아. 같이 목욕을 몇 번이나 했는데. 머스크야. 그건 왜?”
조지가 인상을 구겼다.
“머스크? 확실해?”
“그럼 확실해. 머스크야.”
머스크라. 조지가 되뇌었다.
***
조지가 크리스를 찾아다닐 때 앤드류는 교실로 들어왔다. 의자에 털썩 앉았다가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통증에 인상을 쓴 앤드류가 툭툭, 허리를 두드렸다. 허리는 뻐근하고 제임스는 걱정됐다. 튼튼한 게 유일한 장점인데 아무것도 없는 복도에서 뒤로 나자빠질 게 뭐람. 툴툴거리는데 같은 수업을 듣는 학생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제임스 다쳤다며.”
“응? 응…….”
“걱정돼?”
“무슨 질문이 그래? 당연히 걱정되지.”
“근데 왜 301호 앞에서 넘어졌대?”
“뭐?”
앤드류가 눈을 끔뻑였다.
“글쎄. 그러고 보니 이상하네. 제임스 방은 2층인데? 나한테 할 말이 있었나?”
왜 거기서 쓰러진 걸까?
고민하는데 바라보는 학생의 표정이 걸렸다. 뭔가 이상했다. 자신과 제임스가 친하다는 것을 알 텐데도 불구하고 묘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혹시. 이건 진짜 혹시…….”
“뭔데.”
“네가 밀었다거나…….”
“뭐? 그게 무슨 헛소리야?”
“아니. 너네 방 앞이라서.”
“…….”
“그냥 한 말이야.”
앤드류가 황당한 얼굴을 했다가 문득 주변을 둘러봤다. 다들 자신이 돌아보자 시선을 돌리면서 저희들끼리 수군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는 아침 내내 지속됐다. 수업을 받는 동안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어야 했던 앤드류는 뭔가 꺼림칙했다. 제임스가 쓰러지는 일과 더불어서 뭔가 일이 더 있는 것 같았다.
이건 감이었다. 복도를 걷다 보면 이상한 시선이 느껴지는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뒤를 돌아보면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은 없었지만 수군거리는 게 느껴졌다. 이상하다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결국 앤드류는 같이 수업을 듣던 학생에게 대놓고 물었다.
“아까 그거 무슨 말이야?”
“뭐?”
“나보고 제임스 밀었냐고 물었잖아. 뜬금없이 그런 질문이 왜 나온 건지 궁금해서. 뭔데?”
“아니. 그게… 우린 나쁜 뜻은 아니고.”
“지금 되게 나쁜 뜻으로 수군거리는 거 같으니까 그냥 대놓고 말하자니까. 봐. 너네 지금 다 나 보잖아.”
앤드류의 말에 교실에 정적이 흘렀다. 제임스가 쓰러진 뒤로 다들 앤드류를 이상하게 보고 있었다. 꼭 뭔가를 알고 있다는 듯 앤드류를 봤다. 네 비밀을 나는 알고 있다는 기분 나쁜 시선이었다. 왜 그렇게 자신을 보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지만 이건 알았다. 좋은 일로 이러는 것은 아니라는 걸. 그래서 대놓고 물었다.
“그러니까 자꾸 그렇게 힐끔거리지 말고 말을 해 보라고. 뭔데. 무슨 일인데?”
학생들은 서로 눈치만 슬슬 봤다. 자신을 꼭 동물원의 원숭이처럼 바라보는 학생들의 시선에 앤드류가 드물게 굳었다. 뭔가 이상했다.
“너네 지금 무슨 생각들 하는 건데? 좋게 말할 때 말하자. 어?”
이를 벅벅 갈자 머뭇거리던 학생들 중 한 명이 총대를 멨다.
“나는 당연히 앤드류 너는 안 그럴 거라고 생각해. 물론 조지도 아니고. 네가 그렇게 이상한 애일 리도 없고. 그랬으면 진작 알았을 거고.”
옆에 앉아 있던 학생들이 그 말에 맞장구를 쳤다.
“맞아. 네가 문제 일으킨 적 단 한 번도 없었잖아. 문제는 다른 새끼들이 일으키고 다녔지.”
“사실 앤디는 좀 소란스러워도 사고는 안 쳤지?”
“성실하고.”
“맞아. 성실하고. 네가 성질은 조금 괴팍하고 더럽지만.”
“괴팍, 더러워?”
“응. 너 괴팍하잖아.”
“그래도 네가 이상한 애가 아니라는 건 우리들도 알아.”
앤드류가 눈을 끔뻑였다.
“어… 그래…… 고… 고맙다. 고마운데… 갑자기 왜 그런 말을?”
“그런데 이상한 소문이 돌아.”
학생의 말에 앤드류가 시선을 돌렸다. 학생들은 저희들끼리 시선을 맞추더니 말했다.
“소문을 들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어. 일주일 정도?”
“맞아. 근데 며칠 사이로 소문이 너무 말도 안 되게 퍼졌어.”
“그게 뭔데.”
앤드류가 굳은 얼굴로 물었다. 학생이 말했다.
“혹시… 조지가 알파를 좋아해?”
“뭐?”
그 말이 너무 어이가 없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앤드류가 헛웃음을 흘렸다. 얼굴에 황당함이 가득했다.
“조지가 무슨 알파를 좋아해?”
그 말에 학생들끼리 시선을 넘겼다.
“우리끼린 그런 거 아니냐는 말이 나왔거든.”
“뭐?”
“아니… 제임스랑 얽히는 것도 그렇고… 우리 학교 익명 게시판에도 그 비슷한 글이 올라왔고.”
그 말에 앤드류의 인상이 단번에 험악해졌다. 학교별로 커뮤니티가 있었는데 앤드류는 자주 접속을 안 한 곳이었다. 원래 SNS에 그다지 흥미가 없는 탓이었는데 그곳에선 이미 암암리에 얘기가 돌고 있다고 친구들은 설명했다.
“갑자기 조지가 이상해졌잖아. 원래는 늘 혼자 다녔는데.”
“그래서 애들끼리 혹시 조지가 알파를 좋아하는 거 아니냐고 말이 나왔는데 우리 모두 쉬쉬했어. 국왕까지 오신 마당에 그런 말이 나와서 좋을 게 뭐야.”
“그래서?”
“그래서 다들 그냥 넘기려고 했는데 요즘 소문이 도니까 다들 사실인가 싶었던 거지.”
“그게 왜 내가 제임스를 밀었다로 연결이 돼?”
앤드류는 물었고 학생들은 말했다.
“원래는 조지가 너랑 이상한 사이라는 얘기가 돌았어.”
“너 감기 걸렸을 때 도와주러 온 것도 조지였잖아.”
“둘이 룸메이트 되고 나서 좀 이상한 말들이 있기는 했어. 조지가 너 되게 신경 쓰는 것 같다고…….”
앤드류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둘이 룸메이트 되고 나서 대부분 조지가 널 쫓아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친하게 잘 지내는 것 같았거든. 그때는 별생각이 없었는데…… 좀… 조지한테서는 안 나는데.”
“…….”
“앤디. 너한테선 가끔 조지 냄새가 심하게 나.”
“우리도 룸메이트 페로몬이 조금씩 나기는 하는데, 너는 좀…….”
“독해.”
“마킹처럼.”
그러면서 학생 한 명이 앤드류에게 살짝 얼굴을 내밀었다.
“오늘은 특히 더.”
페로몬을 제어한다고 하기는 했지만 우성인 형질이 문제인지 조금만 풀어도 농도가 진했다. 게다가 관계를 가질 때마다 흥분에 눈이 뒤집어져서 나중에는 아무런 생각도 못 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서로의 페로몬으로 범벅된 몸을 부둥켜안고 있는 걸 즐기느라 그런 것까지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앤드류는 쏟아지는 조지의 페로몬을 즐겼다. 다정하게 만지면서도 그 손길에 숨겨져 있는 갈증이 좋았다. 섬세한 손길로 자신을 만지면서도, 거친 목마름을 적당히 숨기고 보여 주는 조지에 취해 그걸 즐기느라 몸에 남은 흔적이 남들 눈에 어떻게 보일지 생각을 못 했다. 조지와의 연애에 빠져서 경계심이 너무 흐려진 탓이었다.
“그거야.”
“그거야?”
학생들이 의문으로 앤드류를 바라봤다.
“걔는 우성이니까.”
“…….”
“우성 중에서도 완전 우성이던데. 초초우성인가? 내가 알파인 것도 거슬린지 막 초장부터 누르더라고.”
앤드류는 일단 그렇게 핑계를 댔다. 먹히길 바라면서.
“얼마나 재수가 없는데. 나는 그냥 찍소리도 못 하고 찍어 눌러지는 거야. 너네도 그런 우성이랑 룸메 해 봐.”
곤욕스럽다는 듯이 앤드류는 말했다.
“얼마나!”
자존심 상하고 불쾌한데! 그 말을 하려던 앤드류가 말을 삼켰다. 차마 그 말을 뱉을 수가 없어서 어물거린 앤드류가 학생들을 돌아봤다.
“하긴. 앤드류는 열성이니까.”
“그건 조지가 조금 너무하네.”
친분이 있는 학생들은 앤드류의 말을 믿어 주는 것 같았다. 안도의 숨을 내쉰 앤드류가 물었다.
“그래서. 그게 끝이야?”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며 물으니 학생들이 말했다.
“요즘은 제임스까지 껴서 삼각관계라고들 해.”
“셋이 자는 거 봤다는 애들도 있고.”
“뭐어어?”
가만히 듣고 있던 앤드류가 질색을 했다. 셋이 뭘 해?
“기차 탔다고.”
“기, 기차? 니들 미쳤냐? 공부하다가 머리가 돌아 버렸어? 세상에. 애들도 안 믿을 소문들을?”
아주 틀린 얘기는 아니었지만 앤드류는 최대한 정색을 하며 말했고 학생들은 처음부터 그다지 믿지 않았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아니. 하도 그럴듯하게 얘기들을 지어내서.”
“와 진짜 어이없다!”
앤드류가 성질을 부렸다. 뒤에서 어떤 말들이 오고 갔을지 뻔했다. 자신들끼리 진실을 맞추고 했을 거다. 앤드류의 몸에 조지의 페로몬이 가득하면 할수록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갔을 게 뻔했다.
“그게, 알잖아. 알파와 알파 관계를 애들이 얼마나 혐오하는지.”
“맞아. 그거 때문에 얘기가 더 퍼졌어.”
“우리끼리는 조지가 그런 쪽이냐고… 좀 놀랍다는 반응이 있었거든.”
“깬다는 반응도 있었고.”
“난 그 얘기 듣고 조지가 좀 우습게 보이기도 하더라.”
“우성이면 뭐 해.”
학생들은 말하며 히죽였다. 앤드류가 인상을 구겼다.
알파와 알파의 관계는 아직 혼인이 승낙되지 않는 관계였다. 옛날에는 부러 알파의 우월성을 입증하기 위해 알파끼리도 만났다고 하지만 그건 박물관에 전시된 옛날 말이었다. 베타의 형질을 가진 존재 간의 혼인은 인정해도 유독 알파끼리의 관계는 사람들이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어쨌든 또 다른 차별의 문제였는데 이런 소문 저런 소문 다 들어도 결론은 하나였다.
조지는 삼각관계에 낀 형질 이상자가 됐다. 제임스, 앤드류와 함께. 그리고 이런 질 낮은 소문을 빌미로 학생들은 조지를 깎아내리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즐겁게.
대부분의 알파 학생들에게 조지가 호감은 아니었다. 잘 알고 있지만 불쾌했다. 자신의 조지를 비웃는 걸 보고 있자니 속이 뒤틀렸다. 조지를 깔볼 수 있는 건 오직 앤드류 하나뿐이어야 하는데.
“근데 사실 나 최근에 이상한 소리 하나 더 들었어.”
조심스러운 목소리에 앤드류가 고개를 돌렸다.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얌전히 대화를 듣고 있던 학생이었다.
“뭔데?”
앤드류의 물음에 그 학생은 말했다.
“우리 학교에 오메가가 숨어 있다고.”
그렇게 말하며 학생들이 모두 앤드류를 돌아봤다.
“맞아. 나도 그거 어제 들었어.”
모여드는 시선에 앤드류가 숨을 삼켰다.
“저기 앤디. 헛소문인 건 아는데…… 너… 아니지?”
“근데 아무리 조지가 우성이라도 이렇게…….”
“그래도 좀 이상해. 앤드류는 지금까지 잘 지내 왔잖아. 오메가라 쳐도 어떻게 안 들켜?”
“오메가들은 알파 페로몬에 반응하지 않아?”
“반응하지.”
그 말과 동시에 시선이 몰렸다. 앤드류는 마른침을 삼켰다.
“에이. 앤드류가 설마.”
“몇 년을 봤는데. 헛소문이지.”
학생들은 그렇게 반응했지만 모여든 시선은 좀처럼 앤드류의 뒤통수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그때 덜컹 소리가 났다. 교실 문이 열리고 들어온 건 평소에 오메가에 대해서 불량한 말을 하던 학생들이었다. 수업 몇 개를 같이 들었는데 그들 중 한 명이 흥미롭다는 듯 앤드류를 훑어보며 말했다.
“그럼 누가 좀 풀어 보면 되겠네.”
낄낄거리며 웃는 걸 가만히 듣고 있는 앤드류는 조금도 미동이 없었다.
“그럴까? 아니면 상관없는 거고.”
갑자기 왜 이야기가 이렇게 흘러가는지 알 수 없었지만 어느새 학생들은 동조하고 있었다.
“근데 진짜 오메가면 어떻게 해?”
“그럼 뭐…….”
“글쎄.”
“넌 그러고 싶냐? 앤드류인데?”
“누가 뭐래? 아무 말도 안 했는데?”
그런 말들을 가만히 듣고 있던 앤드류가 인상을 구겼다. 도대체 일이 왜 이렇게 흘러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친구는 아니라 하더라도 같이 수업을 듣던 처지에 있던 학생들 몇이 자신을 이렇게 대하고 있었다.
“야 그러지 마. 장난이 지나치잖아. 앤드류 진짜 화나게.”
“얘도 소문은 털고 가는 게 좋은 거 아니야?”
“그냥 헛소문이 날 일도 없고.”
그 대화를 가만히 들으며 앤드류가 주먹을 쥐었다. 자신을 두고 저희들끼리 하자, 하지 말자 의견을 나누는 걸 가만히 듣는데 불량한 알파 패거리들이 말했다.
“그래. 풀어 봐. 오메가면 젖을 거 아니야. 여기 있는 알파들 다 페로몬 풀면 질질 젖겠지. 볼 만할 듯?”
“제발 박아 달라고 조르는 거 아니야?”
그 말에 앤드류가 몸을 돌렸다. 자리를 잡고 앉아서 저희들끼리 건들거리는 알파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사람이 너무 열이 받으면 오히려 마음이 차가워진다. 앤드류는 얼음같이 차가운 제 체온을 느끼며 그 학생들을 향해 걸어갔다가 발로 책상을 밀었다. 끼익. 소리가 요란하게 귀를 긁었다.
“야.”
당황했는지 묻는 소리를 무시하고 앤드류가 힘을 줘 책상을 넘어트렸다. 우당탕. 소리와 함께 책상이 뒤로 넘어가고 알파 학생들이 당황으로 앤드류를 올려다봤다.
“해 봐.”
“뭐?”
“해 보라고, 이 개새끼야.”
앤드류가 히죽였다.
“풀어 보라고. 네 페로몬 얼마나 대단한지 한번 구경해 보게. 양아치 새끼들이 하는 짓이 그거뿐이지 병신들아.”
“뭐? 이게 말이면 다 되는 줄 아나?”
“누가 말이면 다 된대. 말로 하지 말고 까 보라니까?”
“씨발. 야. 못 할 것 같아?”
“해. 하라고. 몇 번을 말해? 더 말해 줘? 멍청해서 까 보라는 말이 이해가 안 돼? 별것 없는 그 덜떨어진 페로몬 다 풀어 보라고. 너네 근데 이거 알아 둬라. 내가 오메가가 아니면 젖을 일도 없거니와, 니들이 그렇게 쏟아 놓은 페로몬에 눈 하나 깜짝 안 하면 내가 형질 우위에 있다는 거.”
“뭐?”
“너흰 그냥 찌질이란 소리라고. 가진 게 형질밖에 없는데 그것도 하품이라고. 하급이라고. 못 알아먹어?”
학생들이 앤드류를 때릴 듯이 다가왔다. 앤드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까라면 못 깔 줄 아나.”
그 말을 한 불량 학생들이 저희들끼리 시선을 나눴다. 앤드류는 팔짱을 꼈다. 그리고 한참 학생들을 돌아봤다. 방 안에 페로몬이 가득한지 앤드류를 말리러 다가온 학생들 몇이 뒷걸음질 쳤다. 알파의 페로몬은 상대 알파 페로몬을 견제하는 역할도 한다.
그래서 공격적으로 풀어 내는 페로몬에 거부감을 느끼며 뒷걸음질 치는 학생들 틈에서 앤드류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한참을 저희들끼리 낑낑거리더니 이게 아닌데? 싶었는지 시선을 나눈 학생들이 인상을 구겼다.
“야. 아무 반응 없잖아.”
“아니잖아.”
“진짜 아닌가 봐.”
교실에서 그런 대화가 터졌다. 마음 같아선 한 대 치고 싶었지만 꾹 참은 앤드류가 당황한 불량 학생들에게 걸어갔다.
“진짜. 이것도 페로몬이라고.”
비웃는데 그때였다.
“이게 진짜!”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학생 한 명이 앤드류를 향해 달려들었다. 운동 신경은 없어도 사건 사고는 많았던 탓에 앤드류가 날렵하게 피했다.
“진짜 유치해서 못 봐 주겠다. 안 되니까 폭력이냐?”
비아냥거림에 학생들이 다가왔다. 가만 안 두겠다며 달려드는 학생을 이리저리 피하며 앤드류는 약을 올렸다. 그렇게 몇 번을 피하던 앤드류가 우뚝 섰다.
“해 봐. 너 바로 징계 먹여 줄 테니까.”
“이게 진짜!”
주먹을 높이 든 학생을 앤드류가 노려봤다.
“왜 멈춰. 해.”
앤드류는 이런 폭력이 두렵지 않았다. 폭력을 방패 삼는 인간들은 나약할 뿐이다. 그것 말고는 과시할 것이 없는 자들은 우스웠다. 그래서 이런 녀석들이 우스웠다. 하찮았다. 누구나 이런 사람들을 우습게 여긴다. 그걸 이런 녀석들만 몰랐다. 폭력 앞에 굴하지 않은 사람을 보면 이들은 자신의 힘을 잃는다. 자신이 무슨 짓을 해도 망가질 수 없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면 무력함을 느낀다. 그래서 그들은 이런 경우에 물러남을 택한다. 지금처럼.
“너 진짜. 봐준 줄 알아라.”
한 대 제대로 칠 용기도 없는 주제에 입만 털면서 끝까지 자존심을 세우는 게 유치했다.
“내가 너 같은 애 한둘 경험하는 줄 아냐?”
앤드류가 중얼거렸다. 들었을 게 뻔한데 못 들은 척 알파는 제 갈 길을 갔다. 앤드류가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알파들 틈바구니에서 미발현 알파로 사느라 고생을 많이 해서 저런 녀석들에 대한 면역이 있었다. 저런 녀석들은 약해 보이면 곧장 밟으려고 들어서 더 드세게 굴어야 했었다. 알파들 습성은 도대체 왜 이러는지 몰라. 한탄하던 앤드류가 미안한 얼굴로 자신을 보고 있는 학생들을 돌아봤다.
“누구야? 누구한테 들었어. 너희가 한 얘기. 다 어디서 들었어.”
앤드류의 질문에 눈치를 보던 학생들이 이름을 말했다.
“조나단.”
“크리스.”
“크리스?”
생각지도 못한 이름에 앤드류가 황당한 얼굴을 했다. 조나단이 이 대목에서 튀어나온 건 조금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이해는 갔다. 그러나 크리스는 예외였다. 크리스가? 그 순한 크리스가? 생각하는데 어제 크리스가 한 말이 떠올랐다.
‘문 잘 잠그고 다니는 거지?’
그 말과 동시에 자신의 방문 앞에 쓰러져 있던 제임스가 떠올랐다. 생각해 보니 제임스를 발견한 것도 크리스라고 했다. 당장 크리스를 찾아야 했다. 앤드류는 급하게 교실을 빠져나왔다.
크리스는 뭘 알고 있나? 설마 크리스가 그랬을 것 같지는 않는데.
생각하며 복도를 뛰어가는데 때마침 크리스를 마주쳤다.
“야, 크리스!”
복도가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에 크리스가 흠칫 놀라 앤드류를 돌아봤다. 앤드류가 쿵쿵 소리를 내며 크리스에게 다가갔다.
“어디 갔다 와?”
“어, 애… 앤디. 나 잠깐 기숙사에…….”
“기숙사. 거긴 왜?”
“잠깐 확인할 게 있어서 갔는데.”
“확인? 뭘?”
앤드류의 삐딱한 태도에 크리스가 잠시 멈칫하더니 주변을 둘러보다가 말했다.
“앤디. 사실은 내가…….”
크리스가 뭔가 말하려 할 때 복도 끝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앤디!”
앤드류의 눈이 다시 없이 커졌다. 제임스였다.
“앤디! 너 괜찮아? 괜찮은 거야?”
급하게 달려온 제임스는 앤드류의 몸을 이리저리 확인하더니 인상을 구겼다.
“이건 뭔 개 같은 페로몬이야? 싸웠냐?”
설명을 하기 전에 일단 질문이 먼저라서 앤드류가 물었다.
“짐, 여기 왜 있어.”
“왜 있긴. 정신 차려서 왔지.”
“검사는 다 했어?”
“완전 멀쩡하대. 내 머리통이 엄청 단단하다더라. 목각으로 맞았는데도 괜찮다며 의사가 놀랬어.”
“목각?”
“그래 목각. 개새끼. 진짜 아팠어. 죽는 줄 알았다니까. 병원에선 괜찮다고 하는데. 그래도 혹시 걱정되면 며칠 입원해 보라는데 그럴 수가 있냐?”
제임스는 앤드류 옆에 있는 크리스를 봤다. 크리스가 마른침을 삼켰다.
“너 이 새끼. 너 나랑 할 말 있지?”
“뭐야? 크리스가 그런 거야?”
앤드류가 기겁을 했다.
“아니. 크리스는 아니지.”
제임스의 대답에 앤드류가 크리스를 바라봤다.
“말해라. 제대로. 어? 나는 그 대목에서 네 룸메이트 조나단이 튀어나온 이유를 하나도 모르겠으니까.”
“조나단?”
“그래 조나단! 날 때린 그 새끼!”
앤드류는 이해가 안 됐다. 제임스를 향해 물었다.
“조나단이 널 때렸다고? 진짜? 왜? 근데 크리스랑 조나단이랑 룸메이트였어? 아닌데? 크리스 룸메이트 댄이었잖아.”
“조나단 룸메가 바꿔 달라고 해서 바꿔 줬대.”
“뭐? 왜?”
“조나단 전 룸메는 뭔가 알았던 거지. 얘만 제발 바꿔 달라는 말에 홀라당 넘어간 거지.”
크리스는 한숨을 푹 쉬었고 앤드류는 어제 자판기 앞에서 마주쳤던 조나단을 떠올렸다. 자신을 이상하게 바라보던 조나단을.
제임스가 크리스에게 물었다.
“너 왜 아침에 301호 앞에 있었어? 빨리 설명해라. 갑자기 소문 얘기할 때부터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아니 그 전에! 아침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한테 설명을 좀 해!”
앤드류의 말에 제임스가 화를 삭이며 말했다.
“오전 운동하러 나갔다가 들어오는 길에, 3층으로 올라가는 발걸음 소리를 들었어. 별생각 없었는데 소리가 끊기는 거야. 느낌에 301호 앞에 멈추는 것 같더라고. 뭔가 싶어 계단을 올라가 봤더니 크리스가 너네 방문 앞을 골똘히 보고 있잖아.”
“뭐?”
앤드류가 크리스를 돌아보자 크리스가 난감한 얼굴을 했다.
“인사하니까 도망치듯 4층으로 올라가더라고. 조금 찜찜했지만 뭔 일 있을까 싶어 돌아가려는데 발밑에서 수첩을 발견했어.”
“수첩?”
“응. 낡은 수첩이었는데 ‘쿠퍼’라고 각인이 되어 있더라고. 누가 흘렸나 싶어서 집었는데, 안에 낡은 사진이 있더라고. 그게 바닥으로 떨어져서 집으려다가 약을 하나 발견했어. 유도제.”
“유도제?”
“러트 유도제.”
***
조나단의 바지 주머니엔 알약이 있었다.
얼마 전 만난 기자는 앤드류가 오메가라고 확신했다. 더는 위험한 일에 빠지기 싫다는 학생을 향해 이미 너무 많은 협조를 하지 않았느냐며 협박까지 한 기자는 비릿하게 웃었다. 결국 조나단은 유도제를 받아 왔다.
조나단은 억울했다. 늘 억울했지만 요즘만큼 억울했던 적이 없었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분노를 알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게 이렇게 분할 수가 없었다.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자신의 상태를 알았지만, 사실은 겁쟁이라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더 돌아 버릴 것 같았다.
누가 자신을 이렇게 만들어 버린 것인가?
억울했다. 억울해서 조나단은 이건 어쩌면 기회 같기도 했다.
나만 억울할 수는 없지. 너도 억울해야지 하는 비뚤어진 마음은 어느새 조나단의 마음속에서 더 커지고 있었다. 그러나 기자의 말대로 하고 싶진 않았다. 301호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하는 것은 이미 글렀다. 그리고 그러고 싶지 않았다. 조나단은 조지가 외톨이로 돌아가면 충분했다. 그 녀석이 자신의 분수를 깨닫고 혼자 남는 것. 그러자면 뭘 어떻게 해야 할까. 시간이 없었다. 제임스가 깨어나면 아마도 자신은 징계를 받게 될 것이다.
찐따같이 내가 했다고 주절주절 말할 테니까. 나쁜 새끼. 내 편은 아무도 없지. 그럼 어떡하지, 나는? 뭐라고 변명을 하지? 놀라서 그랬다고 울면 될까? 선처를 바란다고? 설마 오늘 깨어나지는 않겠지? 몇 대 더 쳐 버렸어야 하는데.
CCTV 다 찍혔겠지. 그걸 확인하면 난 돌이킬 수 없게 되겠지? 가서 없애 버릴까? 하하. 오늘 하루에 세 명한테 걸렸네. 그동안 잘 숨겼는데. 이건 그 기자 놈 때문이야. 그냥 사진 보내 줄 때 기사나 낼 것이지. 열성이라고 무시하고. 개새끼. 더러운 기자 주제에.
왜 내 인생만 이렇게 불공평하지. 왜 내 인생만? 내가 뭘 얼마나 잘못했다고? 왜 내 하루만 이렇게 엉망이지. 이건 다 그 녀석 때문인데. 그 녀석이 없었으면 이렇게 망가질 일이 없었는데. 나만 엿 먹을 수는 없는데. 그냥 불이라도 질러 버릴까? 총이라도 구해서…….
생각은 점점 무서워져 갔다. 그럴듯한 해결책 같았다.이미 옳고 그름의 경계가 흐렸고 원망은 커졌다. 이대로 혼자만 독박 쓰는 건 억울할 것 같았다. 다 같이. 다 같이 망가져 버리면 조금 후련하겠다 싶어서 무서운 생각을 점점 키워 가는데 똑똑, 하고 조나단의 책상을 누군가가 두드렸다. 조나단이 고개를 들었다.
“네가 조나단이야?”
조지였다. 조나단이 씨익 웃었다.
4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