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화 (4/24)

04

‘시원해. 개운해.’

며칠 동안 아침에 일어나면 몸이 무거웠는데 오늘은 상태가 좋았다. 잠에서 깨는 것이 가벼워서 기분 좋은 아침을 맞이한 앤드류가 부드러운 시트에 얼굴을 파묻고는 볼을 비볐다. 크게 기지개를 켜고는 가물거리는 눈을 겨우겨우 뜨는데 향기가 났다. 

‘바다 향이다.’

바다 향이 왜? 하면서 멍하니 눈앞의 벽을 보다가 슬슬 정신을 차렸다. 

‘내 침대가 벽에 붙어 있던가? 아닌데?’

의아함을 느끼면서 고개를 돌린 앤드류는 자신이 푸른 시트를 덮고 있어 조금 당황했다. 자신의 시트는 연두색이었다. 

‘조지의 이불이 푸른색…….’

앤드류가 고개를 뒤로 돌렸다. 창으로 빛이 환하게 들어 있었고 자신의 침대는 주인 없이 텅 비어 있었다. 이상하다. 생각을 하면서 일어나려고 하는데 손을 짚었다가 아찔하게 올라오는 통증에 인상을 썼다. 손바닥에 붕대가 감겨 있었다. 치료받은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앤드류의 귓가에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욕실에서 나는 소리였다. 앤드류가 혼이 나간 얼굴로 고개를 들어 멍하니 허공을 바라봤다. 

“허어억!”

순간 비명을 지를 뻔한 것을 손으로 급하게 막은 앤드류가 침대에서 일어나려다가 알몸인 자신의 몸에 다시 한번 기겁을 해서 침대로 기어들어 갔다. 몸을 최대한 웅크리고 이불을 끌어모았다. 고치를 만들고 안에 들어간 앤드류는 아픈 손바닥을 부여잡고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앤드류. 앤디. 침착해. 침착할 수 있어. 넌 생각할 수 있어. 당황하지 마. 일단 심호흡부터 하고. 후. 휘. 그래. 잘 생각하자. 내가 왜 여기에 있는가? 조지의 침대에 있는가. 생각해야 한다. 이성적으로. 패닉에 빠져선 안 돼. 그래. 어제 조지가 아침에 나한테 그랬지. 학교를 쉬라고. 개소리라고 치부하고 학교에 갔어. 그래. 학교에 갔지. 갔다가 히트 사이클 증상이 터졌고 인생 종 쳤다고 생각할 때에 바다 향이 났어. 그래 바다…….’

“조지!”

그래 조지. 조지가 왔어. 생각한 앤드류가 제 얼굴을 쓸었다.

‘그다음엔 어떻게 됐더라? 됐지?’ 

생각하려 애를 쓰니 조지의 품으로 쓰러졌고 그 녀석이 자신을 부축한 것까지는 기억이 났다. 교실에 나타난 조지를 보고 반가워하던 자신이 떠오르자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는데 불안한 것은 그다음에 기억이 없다는 것이다. 이성이 날아가 버렸다. 히트 사이클이 너무 강하게 와서 기억까지 날려 먹은 상황인 것 같은데 지금 자신은 조지의 침대 위에 알몸으로 누워 있었다. 아무리 바보라도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하나였다. 

‘이건 누가 봐도 빼지도 박지도 못하게. 아니. 빼지도 박지도 못한다는 말부터가 외설적인 말인데. 하여튼 이건!’

“했… 나? ……설마…….”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앤드류가 발버둥을 쳤다. 아무리 생각해도 벌어진 일이 뻔했다. 보여 주는 상황이 너무 노골적이라 아니라고 오기를 부리기도 민망한 수준이었다. 그래, 저지른 것이다! 페로몬의 노예가 되어서 결국 일을 친 것이야!

‘흔적. 흔적이 있나? 내 몸에 무슨 이상이 있나? 없나? 무슨 차이가 있어야 하나? 아닌가? 나는 어떻게 된 거지?’

미칠 것 같아서 시트를 더듬거렸는데 흔적이 없었다. 코를 파묻고 냄새를 맡았지만 어떤 향기도 없었다. 은은하게 조지의 페로몬만 날 뿐이지 외설적 행위가 펼쳐졌을 곳에서 응당 풍겨야 하는 냄새가 없었다. 예를 들어 정액 냄새라든가, 정액 냄새라든가. 그러자 감당할 수 없는 패닉에 뇌는 대책 없는 긍정 회로를 마구마구 돌리기 시작했다.

‘아무 일 없을 수도 있잖아. 안 그래? 힛싸가 터진 나를 조지가 발견해서 방에 집어넣었어! 나는 방에서 혼자 난리를 쳤겠지만 아무 일도 없었던 거고. 그래. 그랬을지 모르잖아? 사람이. 최악을 생각해선 안 돼. 늘 최선을 생각해야지. 그래. 그럴 수 있지.’

행복 회로를 돌리는데 딸깍 소리가 났고 젖은 머리를 털면서 조지가 욕실에서 나왔다. 흠칫. 놀라서는 시트를 단단히 여미고는 조지를 무슨 저승사자처럼 보던 앤드류가 마른침을 삼키고는 물었다. 

“설마… 아, 아니지? 응? 아니지?”

“…….”

“저번처럼 나를 그냥 둔 거지? 그렇지? 아무 일도 없었잖아. 맞지? 네가 누군데. 에이. 설마… 네가 누군데. 허허.”

애써 말하는데 조지는 침묵했다. 그 침묵이 미치도록 불편한 앤드류가 입술을 깨물었다. 태연한 척했지만 몸이 떨리고 있었다.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까지 감추지는 못하고는 안절부절못하는데 조지가 느리게 말했다. 

“기억할 거라더니. 거봐.”

“뭐?”

조지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는 어깨를 주무르다가 시트를 꽉 붙잡고 있는 앤드류의 손을 보고 다가왔다.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려는 앤드류보다 조지가 빨랐다. 앤드류의 손을 잡아 손을 펴게 만들고는 난리를 치느라 흐트러진 붕대를 다시 잘 고쳐 주면서 조지가 물었다. 

“어땠을 거 같아?”

“…….”

“…….”

“아, 아니지?”

“글쎄…….”

붕대를 제대로 감아 준 조지가 앤드류와 눈을 맞추며 말했다.

“앤드류. 네가 알아봐. 했을지. 아닌지.”

“…….”

“…….”

“이게, 이게 그런 식으로 말할 일이야?”

아무 일도 없었어. 설마. 내가 너를? 이런 비슷한 말을 할 줄 알았다. 자신이 알고 있는 조지는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말할 사람이었다.

‘무슨 일 있기를 바랐어? 미쳤어? 내가, 너를? 너 같은걸?’

세상천지에 자기만 있는 줄 아는 녀석이니 그런 대사를 뱉지 않을까 싶었다. 발현을 한 자신을 앞에 두고 손가락 하나 건들지 않는 것도 모자라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던 녀석이었다. 의자에 앉아서 열기에 앓는 소리를 삼키며 부스럭거리는 자신을 쳐다보는 표정이 얼마나 싸늘했던가.

앤드류는 그날 조지의 심정을 알 길이 없었고 그래서 조지에게 자신은 그런 의미라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별반 다르지 않을 줄 알았다. 히트 사이클이 터졌다 한들 별로 다를 게 없었다고 말할 줄 알았는데 기대와 다르게 조지는 알아보라고 했다. 스스로 알아보라고. 그리고 그 말은 꼭,

“꼭. 꼭 무슨 일이 있었다는 소리 같잖아. 야, 왜 그래.”

“…….”

“네가 설마 나를, 어? 그러니까 나를, 막, 어?”

차마 입으로 뱉지도 못하는 앤드류는 횡설수설했다. 

“너 나를 그렇게 벌레 보듯 했으면서. 내가 발현이 터졌을 때도 너 거기 앉아서 남 일처럼 구경하더니.”

“누가?”

“그야 네가.”

“내가 그날 밤에 아무렇지 않았다고?”

“그래 보이던데?”

“…….”

“그랬잖아, 너.”

“…….”

여기서 침묵하면 내가 뭐가 돼?

앤드류가 조지를 보다가 웃었다.

“야. 너 웃기다. 재밌다 야. 이런 식으로. 와. 내가 기억을 못 한다고 이런 식으로?”

“…….”

“충분히 어이없어. 어이없으니까 이제 그만해. 아무 일도 없었잖아.”

앤드류의 애처로운 발악을 지켜보던 조지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앤드류.”

“왜, 왜 갑자기 이름으로 부르고 난리야? 소름 돋게.”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어깨를 쓸었지만 두려움이 서린 눈동자는 감춰지지 않았다.

이성을 되찾았지만 판단력이 돌아온 것은 아니다. 감정을 감추고 정리할 시간적 여유도 없어서 날것 그대로 보여 주고 있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이 주는 패닉에서 벗어나지 못한 앤드류는 전에 없이 혼란스러웠고 조지가 저런 말까지 하자 많이 당황하고 있었다. 그래서 자기 보호를 하고 있었다.

아무 일도 없는 게 진실이라고. 

그리고 이쯤 되니 조지도 알았다. 예상을 못 한 것도 아니다. 열기에 들떠서 뱉은 말이나 행동을 기억 못 할 것이 뻔했고 설사 기억한다 하더라도 모두 후회로 남을 것이다.

첫 히트 사이클이니 독하게 왔을 것이란 짐작은 어제 했었고, 기억을 못 하는 것도 당연한 수순 같았다. 열기에 들떠 기억하겠단 말을 했지만 그럴 가능성이 낮은 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래서 이런 상황이 올 것이라 짐작했다. 짐작했으며 그럼에도 휩쓸렸고 각오도 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기분이 나빴다.

아무것도 기억 못 하면서 아무 일도 없었다고 확정 짓는 앤드류를 보고 있자니 속이 뒤틀렸다. 저 철없는 오메가에게 휘둘린 뒤에 덩그러니 홀로 남은 것은 자신뿐인 것 같았다. 

“먼저 나한테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거 아니야?”

페로몬이 진해지는 것 같아 학교를 쉬라고 조언을 해 줘도 꾸역꾸역 등교를 하더니 수업 중에 히트 사이클이 터진 대책 없는 녀석. 조심성과 경계심이 이렇게 없을 수 있나. 사과 향이 갑자기 진동해서 급하게 왔더니 칼날을 손에 쥐고 자해를 하고 있고. 

자신과 다툴 때에는 할 말 다 하면서 스스로의 몸 상태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낙관하며 관심을 두지 않는 이상한 녀석이었다. 이럴 거면 기억하겠단 말을 하지나 말지. 

이런 조지의 속을 알 길이 없는 앤드류가 말했다. 

“지금 이 판국에 내가 너한테 고마워할 게, 있어?”

“나 아니면 너 어쩔 뻔했는데.”

“너 아니면 뭐! 뭐 내가… 되게…….”

“수업 도중에 히트 사이클 터진 오메가 씨. 나 아니면 너 어쩌려고 했는데? 어쩔 작정이었는데? 생각은 있고 계획은 있었어?”

너한테 고마운 일은 하나도 없다는 눈빛으로 쏘아보던 앤드류가 마른침을 삼켰다. 잘못을 추궁하는 눈빛에 적당한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누가 봐도 위험했으나 생각도 못 했고 계획도 없던 게 사실이다.

대책이 없었다. 어제 그 순간은.

당황했고 두려웠고 무서웠다. 공포가 밀려왔으나 몸에 열이 올라오는 것을 막을 것이 없었다. 처음으로 주기를 맞은 몸은 낯설었다. 자신의 몸이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는 것은 두려움을 유발했고 그때 들었던 생각은 하나였다. 

19년을 알파로 살아 늘 알파 사회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단 한 번도 알파라는 형질이 두려움이 되거나 적이 될 수 있다는 가정 자체를 안 했다. 어떤 알파를 그리며 찾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할 일도 없었다. 

안일하게 생각한 것은 스스로 인정했다. 본가에 있을 때 교사에게 배운 알파와 오메가의 다름에서 오는 차이, 힘의 차이, 페로몬의 차이에 따른 공포는 그저 주입식일 뿐이지 경험은 아니었다. 오메가로 살게 된 것이 고작 몇 주라 오메가인 자신의 몸이 낯설고 싫어서 몸 상태에 무관심하기도 했던 앤드류는 최근에야 자신이 어떤 생각을 한 것인지 깨닫고 있었다. 

자신의 룸메이트 조지 하트 때문이었다. 

“그럼 네가 날 도와줄 생각으로 왔다는 거야?”

“내가 거기 왜 갔을 것 같은데. 수업 시간에 갑자기 네 교실 찾아갈 이유가 뭐가 있는데?”

그건 그렇지. 그건 그렇지만. 그것도 좀 이상했다. 

“아무 생각 없이. 위험 의식 없이 그저 긍정적인 생각만 하면서 태평하게 굴면 너 스스로가 편할 거라는 건 알지만. 제발 상황에 대한 자각을 좀 해. 이 학교를 졸업할 생각이라면 최소한의 위험 의식이라도 좀 가지고 있어.”

“…….”

“얼마나 대단한 각오로 이 학교에 들어왔는지 보여 줄 것처럼 말했잖아, 너. 그러니까 자각을 좀 해.”

“너 지금 하는 말 되게 이상하다.”

“네가 오메가라는 걸 자꾸 까먹는.”

“아니. 그게 아니라…… 꼭 우리 엄마가 나한테 하는 소리 같아.”

“뭐?”

“꼭 날 걱정해서 하는 말 같잖아. 그래. 네가 내 교실까지 찾아온 거… 날 걱정했단 소리야?”

“…….”

“내가 생각하는 너는. 그런 상황이면 얼씨구나 나를 던져 버리고 외면하고.”

“그렇게까지 쓰레기는 아니야.”

“그 비슷한 짓은… 이미 했는데?”

조지가 말을 잃었고 앤드류는 생각했다. 

조지답지 않은 행동이었지만 거짓말을 할 녀석이 아니라는 것은 안다. 답지 않게 자신을 도와주기 위해 교실로 찾아온 것이 분명해 보였고 그게 맞는다면. 발현을 하는 자신을 옆에 두고 움직이지 않은 조지라면. 그렇다면.

“그럼, 어제 아무 일도 없는 게 맞네. 맞구나.”

“…….”

“후. 진짜 깜짝 놀랐다.”

가장 합당한 결론 같았다. 순간 긴장이 풀렸다.

“그럼 그렇다고 그냥 말을 하지 넌 또 심각한 얼굴로 말해. 이런 순간까지 괴롭히고 싶냐? 옷이 벗겨 있어서 놀랐는데. 땀이 많이 나서 네가 벗겨 준 거야? 아님 내가 벗은 건가. 상황 설명을 해 주면 될 것이지 뭐 그렇게 말해…….”

“…….”

“날 도와주려고 왔다면 뭐, 힘들었겠다. 설마 여기 계속 있었던 건 아니지? 밖에 나가서 잤기를 바란다. 내가 좀 미안해서.”

와 심장 떨어지는 줄. 진짜 깜짝 놀랐네.

그러면서 제 가슴을 쓸어내렸다. 조지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숨도 쉬지 않는 것 같았다. 눈을 감지도 않고 앤드류만 빤히 바라보았다. 조지의 눈빛은 많은 것을 말하고 있었다. 앤드류의 눈동자가 어지러웠다. 적절한 호응은 기대하지 않았지만 너무 반응이 없어서 앤드류가 물었다.

“왜 아무 말 안 해. 또”

“…….”

“내가 이런 말까지 하기 싫은데, 차라리 네가 지금 되게 싸가지 없는 말이라도 해 줬으면 싶거든?”

“할 말이 없네.”

“…….”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

조지가 의자에서 일어나 앤드류에게 다가왔다. 이불로 몸을 사수한 앤드류를 가만히 보면서 조지가 손을 뻗었다. 앤드류가 마른침을 꼴깍 삼키는데 옆으로 손을 뻗어서 물건을 챙긴 조지가 앤드류를 코앞에서 보며 말했다. 

“난 아까 말했어. 네가 알아보라고.”

“…….”

“네가 알아봐.”

숨도 못 쉬는 앤드류를 보며 미소 지은 조지가 허리를 폈다. 그러고는 가방을 들며 말했다.

“그리고 말하는데. 어제 있던 일의 잘못은 나뿐만이 아니야.”

“뭐, 뭐?”

“내 잘못만은 아니라는 얘기야.”

‘아 정말. 자꾸 그러면 진짜 막 의심이 되거든? 어?’

앤드류가 뭔가 말을 하려는 듯이 일어나려다가 조지가 가방을 챙기며 문으로 향하자 말을 삼켰다. 조지가 방에서 사라지는 것을 굳이 잡을 이유가 없었다. 제발 가라. 가라. 바라고 있었다.

“하루 더 쉬어. 아직 열 있어.”

“…….”

“그리고 이름. 네가 어제 앤드류라 부르라고 했어.”

조지가 나가자 홀로 남은 앤드류가 돌처럼 굳어 있다가 침대에 누웠다. 

“아 진짜… 진짜아아아아아.”

조지의 앞이라 침착한 척했지만 사실 몇 번이나 무너질 뻔했다. 뻔뻔함으로 무장을 했지만 지금 벌어진 상황이 상황인지라 무작정 긍정 사고를 돌릴 수 없다는 것도 안다. 확실히 말 안 하는 조지 때문에 풀어야 하는 숙제를 받은 것 같은 앤드류는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속 시원히 말해 주면 좋겠는데 그러지 않는 조지가 미웠다. 원래 미운 녀석이었지만 오늘 특히 더 그랬다. 

과연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사실 알고 싶은데 알고 싶지 않기도 했다. 걱정할 일이 있었다면 모르고 있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도 했다. 무지는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던가! 그러나 다시 생각하면 모르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자신의 몸에 관련된 일이니까. 

왜 내 인생이 이렇게 흘러가게 된 거지? 며칠이나 됐다고 오메가인 거 들켜 버려 발현도 하고 본딩 의심에 연달아 히트 사이클까지.

이건 그냥 죽으라는 소리 같았다. 했든 아니든. 인생 종 친 건 확실해 보였다.

***

조지는 문에 잠깐 기대 서 있었다. 

방 안에서 별다른 소리가 나지 않았다. 잠시 자리를 지킨 조지가 눈을 꾹 누르다 자신의 손바닥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새벽까지만 해도 앤드류는 조지의 품에 있었다. 까마득하게 정신을 놓쳤던 앤드류의 몸에서 잠깐 잠이 들었던 조지가 눈을 떴을 때는 새벽이었다. 방 안엔 사과 향과 바다 향이 한데 뒤엉켜 있었다. 앤드류의 상태를 살피니 열이 내려갔다. 페로몬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입을 벌리고는 숨을 쌕쌕 쉬는 앤드류는 긴장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얼굴로 편안하게 단잠을 자고 있었다.

조지는 앤드류의 손을 치료했다. 손수건을 풀고 소독약을 바르는 동안에도 앤드류는 깨어나지를 않았다. 영 엉성해서 폰을 찾아 붕대 감는 법을 검색했다가 다시 제대로 감아 주었다. 끝난 다음에 앤드류의 손을 가만히 보던 조지는 자신이 지금까지 다른 누구의 상처를 걱정한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걱정할 사람이 없었다. 자신에게 남아 있는 혈육이란 관계성을 제외하고. 아니. 그 혈육마저도 몇 안 되었고 완전한 타인을 걱정한 적이 없었다. 누군가의 상처를 자신이 직접 소독하고 치료해 줄 일도 없었고 자신에게 이렇게 무방비하게 상처를 보여 줄 사람도 없었다. 

‘정말 기억할까. 야, 너. 기억할 거야?’

잠든 앤드류의 귓가에 속삭였지만 기억할 확률이 지극히 낮다는 것도 알았다. 알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자신을 보던 앤드류가 무슨 일 있었냐고 물으며 경악하던 것이 머리에 박혀 떠나지를 않았다. 

기억 못 할 거면 그렇게 굴지나 말 것이지. 

간밤에 있었던 일이 모두 거짓말 같았다. 기대한 것이 없었는데 도대체 무엇에 실망하고 있는 것인지. 왜 이런 기분이 드는지. 자문을 해 봐도 적당한 답은 없었다. 감정은 낯설었다. 

***

알아보라고? 그래! 알아보겠다 이거야. 너와 나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편해지겠어!

구석에 몰린 사고는 늘 최선만을 생각했고 앤드류는 조지의 말을 질 나쁜 장난으로 치부하기로 이미 마음을 먹은 뒤였다. 정말 조지가 조지답게 자신을 몰아낼 생각으로 없던 일을, 마치, 있는 것처럼 꾸미고 있는 것에 불과해야 했다. 그래서 먼저 폰을 잡았다.

[섹… 섹ㅅ……]

섹스 후 몸에 보이는 증상, 이라고 검색을 하려 했는데 차마 칠 수가 없었다. 후.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은 앤드류는 다른 단어를 생각했다.

[과… 관… 과……]

이번엔 관계 후 몸에 보이는 증상, 이라고 검색을 하려 했는데 관계도 칠 수가 없었다. 눈에 핏발을 세우고는 폰을 노려보다가 머리를 쥐어 잡고 몸부림을 두어 번 친 뒤에야 검색을 했는데 노력이 무색하게 별다른 글이 없었다. 쓸데없는 결과물만 몇 개 읽은 앤드류에게 필요한 것은 같은 처지인 오메가들의 조언이었다. 백과사전에 있을 법한, 교육적 목적이 가득한 글들이 아니었다. 그래서 다시 익명 사이트에 접속했다. 잠깐 고민을 한 다음에 물었다.

[혹시… 관… 관계 후……]

두 눈을 꼭 감고 쓰면 되는데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정신은 아직 알파에 가까웠는데 몸만 완전한 오메가가 됐다. 낯설고 어색해서 알파와 히트 사이클을 보냈다는 것은 좀처럼 밖으로 보일 수가 없는 일이었다. 얼굴을 드러내는 곳도 아닌데 검색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결국 자신이 게시 글을 쓰는 것을 포기하고 다른 사람들이 쓴 글을 찾아 읽기로 타협했다.

다행히 몇 개가 도움이 됐는데 앤드류는 몇 가지 공통점을 찾았다. 체위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통 허리가 많이 아프다는 말에 앤드류가 더듬더듬 자신의 허리를 손으로 만지며 눌렀다. 아프지 않았다. 일어나 허리를 이리저리 움직였는데 평소와 똑같았다. 허벅지랑 종아리가 살짝 당기는 느낌이 있었지만 근육통이라 할 만큼 아픈 곳이 없었다. 일을 쳤다고 하기엔 몸 상태가 너무 멀쩡했다. 다행이었다. 그리고 다음이었다.

“후.”

앤드류가 숨을 내쉬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확인을 해야 했다. 부러 자신의 몸을 외면하고 있던 앤드류가 욕실에서 수도승처럼 앉아 있었다. 이제 뒤에 남긴 흔적을 찾아야 했다. 일단 손가락으로 만져서 평소와 다르게 부어 있나 확인을 할 생각이었는데 좀처럼 손을 가져다 댈 수가 없었다. 손은 엉덩이 근처에도 머물러 있지 못했고 앤드류는 비참했다. 

“내가 왜 이 짓을 하고 있어야 하는 건데? 왜? 어? 사이클은 왜 터져서! 내가 왜 오메가가 돼서! 내가 지금 거울로 뭘 확인해야 하는 거냐고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발을 구르면서 차가운 욕실 바닥에 드러누워 난리를 치던 앤드류가 허공을 향해 발차기를 했다. 떼를 쓰듯이 징징거리면서 바닥을 구르고 욕실 바닥도 때리며 상황에 대한 분노를 표하던 앤드류가 벌떡 일어나 앉았다. 

히트 사이클이 왜 갑자기 터졌을까. 전조가 없었다. 발현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히트 사이클이 온 것은 우성이란 이유로 설명하기 어려웠다. 보통 발현을 하고 난 후 히트 사이클은 몇 개월 뒤에 찾아오는 것이 일반적이라 했다. 그런데 왜 자신은 며칠 사이로 둘 다 갑자기 온 것인가? 알파와 같은 방에서 생활하기 때문인가?

생각해 보면 301호에서 살면서 앤드류는 지속적으로 우성 알파의 페로몬에 노출되어 있었다. 그것이 자극이 되었을지 몰랐다. 타당한 이야기 같았다.

“이게 다 조지 때문이야!”

그리고 하나 더 걸리는 것이 있었다. 발현을 하고 난 뒤에 형질을 누르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밤에는 달랐다. 기숙 학교에 들어온 뒤로 약도 꼬박꼬박 칼같이 챙겨 먹었지만 조지의 악몽이 앤드류를 뒤흔들었다. 쓸데없는 양심이 열일을 하신 탓에, 조지의 심신 안정을 유도하기 위해 밤새 페로몬을 풀고 있었다. 억제제를 누르는 힘보다 본딩했을지 모르는 알파를 위해 페로몬을 연 것이 영향력이 클지 몰랐다. 

“미친! 나 왜 그랬어. 미쳤다 진짜아. 미쳤어!”

과거의 나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죽이지? 과거의 나 때문의 오늘의 나는 이토록 수치를 당하고 있는데! 앤드류는 이를 벅벅 갈았다. 다시는! 다시는 그런 짓 안 하리라! 자책을 하던 앤드류가 한참을 더 발을 차다가 진이 빠질 때 즈음에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큰 맘을 먹고 손을 더듬었다. 

“후, 후…… 별거 아니야. 내 엉덩이야. 누구나 있는 엉덩이고 구멍이잖아. 내가 좀 만져 보겠다는데 뭐. 내가, 내 몸인데. 별일 아니야.”

자신을 다독이면서 거칠어지는 숨을 정리했다. 괜찮다. 괜찮다. 웅얼거리는 소리로 자신을 다독이며 몸을 체크하던 때였다.

쾅! 쾅!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놀란 앤드류가 끄아악! 비명을 내지르며 넘어졌다. 제대로 넘어졌는지 꼬리뼈가 있는 쪽이 아팠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운이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가 있나? 통증에 앤드류는 조금 늦게 일어났다. 그러는 동안 멈추지 않고 문을 두드리고 있는 인간이 누구인지 빤히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문을 여니 앞에 서 있는 것은 제임스였다. 점심 식사도 거른 앤드류가 걱정이 됐는지 먹을 것을 사 왔다며 문을 두드린 녀석은 웃고 있었다.

방에 들이는 것은 부담스러워서 제임스와 함께 휴게실로 향했다. 제임스가 챙겨온 우유, 요거트, 샌드위치, 같은 것을 함께 먹었지만 입맛은 없었다. 몸은 어떠냐는 질문에 대충 대답을 하고는 고무를 씹듯이 샌드위치를 씹어 삼키던 앤드류가 제임스를 빤히 바라봤다. 오늘 하루에 대해서 시답지 않은 소리를 하고 있는 얼굴을 빤히 보던 앤드류가 물었다.

“야. 너 누구 만나 봤지.”

“뭐? 뭘 만나?”

“오메가. 몇 명 만났잖아.”

한참 전의 이야기였다. 제임스는 오메가와 연애를 해 봤다. 몇 명이랑 데이트도 했고 앤드류를 몇 번 데려가기도 했다. 발현하기 전 알파라 인기가 없었던 앤드류의 연애가 성사된 적은 없었지만. 

“그랬지. 왜?”

‘물어볼까? 근데 뭐라고 물어보지. 했냐고? 하긴 했을 텐데. 이 자식이 나름 편력이 있는데. 할 때 어때, 라는 질문은 좀 그렇지 않나?’

커뮤니티에서 검색을 했지만 앤드류는 좀 더 생생한 후기가 필요했다. 오메가의 신체에 나타나는 것이 있는지 궁금했는데 아는 오메가 친구가 없었다. 친구라고는 죄다 알파들이 전부라 어디서 마땅히 조언을 구할 데가 없었다. 그래서 자신의 친구들 중에 오메가를 가장 잘 알 것 같은 제임스에게 물어볼까 했지만 고개를 저었다. 

“왜? 오메가 소개시켜 줘? 아는 애들 몇 있는데. 근처에 있는 오메가 학교 학생들.”

“됐어. 그런 거 아니야.”

“발현도 했겠다. 이제 우리 어엿한 성인이겠다. 졸업할 때도 됐지?”

“뭔 졸업?”

물어본 앤드류는 제임스의 말뜻을 이해하고는 한심한 표정을 했다. 

“왜? 너 설마 그걸 더럽다고 생각해? 너 그런 수준은 아니지? 사랑하는 사이에선 자연스러운 행위로…….”

“이게 미쳤나. 닥치시고요.”

“헐. 앤디. 설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뗐냐? 딱지? 누구랑? 와! 와 나 이 배신감. 앤디! 너 나 모르게 누구 만나? 진짜?”

“……죽고 싶지 아주.”

살벌하게 바라보는 것을 무시하며 제임스가 폰을 들었다.

“뭐 됐고. 내가 자리 한번 잡아 볼게…….”

정말로 오메가를 만나게 해 줄 작정인지 눈을 반짝이며 달려드는 제임스를 저리 가라며 구박한 앤드류가 말했다.

“짐. 만약에 네 눈앞에 힛싸가 터진 오메가가 있다 쳐.”

“누구 있네! 얼마나 됐어? 예쁘냐?”

제발 그 입 좀 다물라고 정강이를 차면서 어깨를 때렸더니 배신감에 젖은 얼굴을 하곤 아픈 척 연기하던 제임스가 웃었다.

“알았어. 알았어. 말해.”

“그 오메가랑 한방에 있어. 알파랑 오메가가. 그… 그렇다고 막 다 일이 벌어지는 건 아니지?”

“뭔 소리야. 알아듣게 말해.”

“그… 안 할 수 있지 않냐 이거지 내 말은. 그러니까… 같은 방에 있어도. 음…….”

질문의 요지를 모르겠다고 바라보는 제임스에 괜히 말했다 싶었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진 뒤였다. 앤드류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더니 한숨을 푹 쉬며 요거트를 집었다. 목이라도 축일 생각으로 뚜껑을 따는데 제임스가 말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 알파와 오메가가 다르고. 근데 어지간해서는 힘들걸. 정말 눈 돌아가거든 그때.”

“그래?”

“그래. 같은 방에 있는데 아무 일 없었다면 둘 중 하나지.”

“뭔데?”

“그건! 서로가 너무너무너무 자기 스타일이 아닌 거지. 아니, 스타일이 아닌 정도가 아니라 페로몬을 맡으면 헛구역질이 나올 만큼. 알겠어? 막 알레르기 일어날 것 같고 속이 메슥거리고…… 이해했어?”

“그래. 이해했어.”

이해는 했지만 어쩐지 조금 떨떠름했다. 

‘헛구역질? 역겨워?’ 

화가 날 이유가 없는데 조금 빈정이 상했다. 게다가 조지는 사과 알레르기까지 있으니 제임스가 한 말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았다. 발현을 했을 때에도 저를 건드리지 않았던 조지의 태도에 딱 맞는 설명인 것 같았다. 음식 알레르기가 페로몬까지 이어질 수 있나?

“그만큼 서로가 별로라든가.”

별로라 이거지. 나도 조지 엄청 별로인데. 조지가 페로몬을 잔뜩 풀어 봐라. 내가 눈 하나 깜짝. 거기까지 생각하던 앤드류는 마운팅을 떠올렸다. 자신의 몸을 타고 올랐던 조지. 생각해 보면 조지의 페로몬에 자신이 보인 반응은 절대 역겨움이 아니었다. 그게 떠오르자 앤드류의 볼에 열이 올랐다. 속에서 불이 올라와 요거트를 붙잡고 있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형질을 떠나서 자존심이 상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솔직히 나는 너한테 조금, 아주 조금 꼴렸는데, 너는 아니라 이거지?

“아니면, 억지로 참아야 할 만큼 절박한 사정이 있든가.”

“사정?”

사정이란 말에 앤드류의 귀가 섰다.

“응. 그럴 수 있지. 몸의 사정이 아니라 마음의 사정이 있을 수 있잖아. 다른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서 순애보를 지키기 위해 참을 수도 있지.”

‘다른 사랑? 그 녀석이 사랑을? 순애보? 지나가던 개가 짖는 게 들을 만하겠네.’

“아니면 뭐 다른 사정. 근데 내가 보기엔.”

제임스가 앤드류가 들고 있는 요거트를 뺏어 뚜껑을 따며 말했다.

“그런 미친놈은 상종하지 말아야 된다.”

“…….”

“그런 놈은 진성 변태일 가능성이 커. 생각해 봐. 어지간히 독한 새끼 아니면 그게 불가능하거든 그게. 그런 걸 즐기는 놈이면 가능하지.”

“즈… 즐겨?”

“자기 학대를 즐기는 사람이면 뭐 그럴 수가 있지. 상상 초월한 변태 새끼일 게 분명해. S거나 M이거나. 맞고 때리고 지배하고 종속당하고, 여튼… 그런 놈 중 하나인 거지.”

앤드류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지가 사악한 놈이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제임스에게 이런 말을 들으니 생각이 이상한 쪽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조지가 변태… 까지는 모르겠지만. 아니야. 변태가 분명해. 몰라. 그냥 변태야.

S는… 별명이 왕자니까 그럴듯하지? 응. 분명히 S야. 확실해. 누가 봐도 S지. 때리는 거 좋아하게 생겼잖아.

M은… 수면 패턴을 보면 자학을 즐기는 게 분명해. 가학당하는 걸 즐기는 거지. 맞는 거 좋아하게 생겼잖아.

저 중 뭐 하나는 얻어걸리는 게 분명히 있어. 있을 거야! 그러니까 제임스의 말을 듣는다면!

“그래! 나 알았어! 알아냈다고! 그 자식이 날 가지고 노는 건 줄 알았다니까! 내가 첫눈에 사악한 놈인 걸 알아봤단 말이지!”

우성 오메가의 주기를 보고 넘길 수 있는 알파가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

‘네가 알아봐. 했을지, 아닌지.’

에 대한 답은 이랬다. 질 나쁜 농담으로 확정했다. 여러 가지 상황만 봐도 아무 일도 없는 것이 사실인 것 같았다. 몸도 아프지 않았고, 발현했던 자신을 그냥 두고 보기만 한 녀석이니까 가장 합당한 답인 것 같았다. 조지 자식한테 그딴 소리 하면서 날 가지고 노는 게 재미있었냐? 라면서 몇 번 욕해 주고 끝내면 될 것 같았다. 머리가 개운해져 활짝 웃는데 제임스가 요거트를 내밀었다.

“뭔 소리야 갑자기.”

“아니 그런 게 있, 억!”

제임스가 내민 것을 미처 보지 못했던 앤드류가 요거트를 쏟았다. 급하게 티슈를 찾는 제임스의 옆에 있는 앤드류는 움직이지 않고 바닥에 퍼지는 요거트를 홀리듯 바라봤다. 하얗고 묽은 것이 바닥과 제 발아래를 흥건히 적시고 있었다. 

빤히 바라보던 앤드류가 인상을 썼다. 기분 나쁜 예감이 들었는데 티슈로 바닥을 대충 닦던 제임스가 앤드류의 손을 잡았다.

“야. 너 손 닦아.”

그 말에 앤드류가 자신의 손을 봤다. 양손에 찐득한 요거트가 묻어 있었다. 사과 향이 후각을 자극했다. 멍하니 보던 앤드류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붕대 감고 있는 손. 그 손바닥을 빤히 바라봤다. 이 손. 그래 이 손. 밤새 누군가 잡아 올리고, 잡아 올리고…….

‘그 손으로… 그 손으로 자꾸 잡지 마……. 너 아파.’

소름이 오싹 돋았다. 귓가에서 속삭이듯 말하는 목소리는 숨이 차서 헐떡이고 있었다. 뚝뚝. 손바닥을 타고 떨어지는 액이 허벅지를 잔뜩 적시는 것을 빤히 보던 앤드류의 눈이 커졌고 그때였다. 

“야, 조지.”

제임스가 조지를 부르는 소리에 앤드류가 자신도 모르게 조지를 돌아봤다. 그리고 그때였다.

‘앤드류라고. 하으으… 앤디라고 해…….’

“으어어억!”

이건 누구 목소리세요? 설마 내 목소리야?

‘왜 안 해? 해 줘…….’

앤드류의 동공이 더 커질 수 없을 만큼 커졌다. 조르는 이 목소리는 자신의 것이 분명했다. 

“악! 아악! 아아악!”

터질 듯 붉은 얼굴이 된 앤드류가 괴성을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못 볼 것을 본 얼굴처럼 손등으로 입을 가리고 있는 앤드류의 엉망인 얼굴을 보던 조지가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말했다. 

“기억했네.”

그래. 기억났다. 조지는 지금처럼 웃었다. 금빛으로 빛나는 머리카락이 짙은 석양에 의해 붉게 보였던 순간에, 허벅지에 입을 맞추더니 단단한 허벅지에 볼을 비빈 조지는 푸른 눈동자를 반짝이면서 저렇게 웃었다. 지금처럼 사악하게.

그냥 기억하지 말았어야 했다. 영원히 기억하지 말아야 했다. 늙어 관짝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어제 일어난 일을 몰라야 했다!

‘이 눈치 없는 나의 뇌야! 왜 하필 지금 기억을 하고 난리야? 어? 아니 그리고 그런 상황이었으면 영원히 떠올리지 말았어야지! 네 주인이 누구야? 너는 왜 쓸데없이 지금 성실하고 난리야?’

갑자기 터진 간밤의 기억 덕분에 앤드류의 얼굴은 이미 터질 것 같았다. 얼굴뿐만이 아니라 온몸에 열이 후끈후끈 올라왔다. 눈앞에 어제 있었던 일들이 아른거렸고 귓가에 어제 들었던 숨소리와 말소리가 울렸다. 어제 있었던 일이 지금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인 듯 앤드류의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게다가 하필이면 조지가 바로 앞에 있을 때에 기억이 돌아왔다. 저 눈동자가 자신을 바라보자 심장이 쿵쿵거렸고 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우성 알파의 페로몬에 취해서 열기와 안정을 찾던 몸이 생생했다. 피부가 페로몬을 찾아 예민하게 반응하던 순간이 다시 돌아왔다. 지금도 조지를 안고 있는 것 같았다. 감각이 그토록 생생하게 돌아왔다. 앤드류가 이를 악물었다. 

“야 앤드류. 너 왜 그래? 배 아퍼?”

아랫배를 감싸 쥐었다. 울리는 느낌이 들었다. 허벅지에 힘이 바싹 들어갔다. 

‘그래. 허벅지. 내 허벅지. 어제 있었던 수많은 일들을 알고 있는 허벅지!’

어제 앤드류의 허벅지 사이에 들어와선 안 되는 것이 들어왔었다. 그걸 생각하니까 다시 물기가 흐르는 것 같았다. 분명 어제 끝난 일인데 기억을 되돌림과 동시에 몸도 그렇게 되는 것 같았다. 방금 전에 몸을 맞댄 것처럼 아래가 화끈했다. 앤드류가 질색을 했다. 다행히 페로몬이 퍼지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감각이 그렇다는 얘기였다. 조지가 너무 생생하게 느껴졌으니까.

“앤드류.”

부르며 다가오는 목소리에 진저리를 친 앤드류가 뒤로 물러났다. 지금 머릿속이 엉망이었고 엉망으로 만든 인간이 바로 조지였다. 쏟아지는 기억. 반응하는 몸. 자신의 몸이 자신의 몸이 아니었던 감각. 겨우 이성을 붙잡은 앤드류가 결론을 내렸다.

‘튀자. 조지고 뭐고 대화고 뭐고 일단 튄다! 도망가!’

결심보다 두 다리가 빨랐다. 앤드류는 뒤도 안 보고 조지가 없는 곳으로 가기 위해서 비틀거리는 다리를 바삐 움직였다. 엉망인 자신을 볼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이 필요했다. 계단을 올라와 301호에 들어가 문을 잠근 앤드류가 기대어 쓰러졌다.

“헉. 헉. 헉.”

거친 숨을 쉬던 앤드류가 주먹을 물었다. 

‘헉… 헉.’

‘하아… 하아…….’

지금 귓가에 울리는 신음 소리는 누구의 것인가? 

분간이 안 됐다. 자신의 목소리와 조지의 목소리가 한데 엉겨 있었는데 조지의 나른한 숨소리가 좀 더 치명적이었다. 앤드류는 비명을 지르지 않게 최선을 다해야 했다. 미칠 것 같았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앤드류가 바닥에서 발버둥을 쳤다. 

“미쳤어, 미쳤어! 돌았어! 돌았지 앤드류? 이 미친놈아! 미쳤어! 조지랑 그게 무슨 짓이야! 제정신이야? 어떻게, 무슨 생각으로! 악!”

히트 사이클의 열기에 미쳐 조지에게 매달린 자신을 처형할 수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 팔다리를 흔들며 난리를 치던 앤드류가 바닥에서 데굴데굴 굴렀다. 지금 당장 지옥 밑으로 꺼지든가 하늘 위로 승천하고 싶었다. 

사람이 오로지 수치로 죽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온몸으로 몸부림을 치던 중에 모서리에 머리를 찧었다. 아! 짧은 비명을 지르며 앤드류가 머리를 문질렀다. 눈물이 핑 돌 만큼 아팠다. 통증에 흥분이 가라앉았다. 조금 차분해진 앤드류가 아픈 머리통을 만지며 일어나다가 문득 자신이 부딪힌 가구가 무엇인지 인지했다. 침대였다.

침대. 어제 많은 일이 있던 침대였다. 그 침대를 보자 어제 느꼈던 흥분이 살아났다. 엉덩이 사이에 고개를 파묻은 조지의 뜨거운 혓바닥을 느끼느라 정신이 없었던 자신이 느꼈던 흥분이!

조지의 혓바닥은 뜨거웠다. 잔뜩 젖은 구멍을 핥아 줄 때마다 본능적으로 허리를 더 뒤로 밀었다. 거칠어진 숨을 앤드류의 엉덩이골 사이에 퍼부으면서 조지는 무슨 음식이라도 먹어 치우는 듯이 게걸스럽게 혀를 놀려 댔다. 하체에 바싹 힘이 들어갔고 아랫배의 근육은 도드라졌다. 자극에 구멍은 움찔거렸고 안달이 나서 엉덩이를 흔들던 앤드류는 시트에 얼굴을 비비며 앓는 소리를 계속 쏟아 냈다. 부끄러움은 없었고 원초적인 흥분만 가득한 침대엔 덥고 젖은 숨소리만 가득했다.

아래가 조지의 침과 애액이 뒤섞여 난잡해졌을 때 조지가 파묻었던 고개를 들었다. 거친 숨을 뱉으면서 손등으로 대충 입술을 닦은 조지는 다른 걸 기대하는 앤드류를 봤다. 간질거리는 속을 채워 주면 좋겠다는 생각에 엉덩이를 잡아 벌린 앤드류는 붉은 속살을 내보이며 조지를 졸랐다. 

‘조지, 조지.’

이끌린 조지는 앤드류의 허리를 잡았다. 손자국이 벌겋게 난 엉덩이를 본 조지는 기대감에 가득 찬 앤드류의 몸을 잡아 돌렸다. 앤드류는 알파가 원하는 대로 안을 채워 주지 않는다는 사실에 실망을 했지만 그 실망은 아주 짧았다. 뒤를 애무받는 사이에 꼿꼿하게 일어선 성기를 조지가 쥐었다. 땀에 젖어 끈적이는 손바닥은 유난히 성기에 달라붙었다. 

무릎을 벌리고 조지를 내려다보는 앤드류의 눈은 이미 잔뜩 젖어 있었다. 방금 전에 몸이 터질 듯이 쏟아지던 쾌감이 그리웠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엉망인 숨을 내뱉은 앤드류와 시선을 마주치던 조지는 붉은 혀를 내더니 귀두 끝을 쓸어 왔다. 

‘흐으…….’

성기가 꺼떡이는 게 스스로 느껴졌다. 조지는 큰 손으로 앤드류의 음낭을 주물럭거리면서 혀로 기둥을 핥았다. 그 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조지의 혓바닥은 지난날에 자신이 쏟은 피보다 더 붉어 보였으며 자신의 성기는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부풀어 올라 꺼떡거리고 있었다. 거기에 시린 눈동자까지. 

뭐 하나 현실성이 없어 보였는데 몸은 제멋대로 튀어 올랐다. 귀두를 입에 머금고 쪽쪽 빨아 주는 통에 허벅지 근육들이 들썩였다. 본능적으로 허리가 들썩였는데 조지가 단단하게 골반을 붙잡아 눌렀다. 그는 아까의 망설임이 거짓말인 것처럼 행위에 열중하고 있었고 그건 앤드류에게 다른 쾌감을 선사하고 있었다. 

온통 조지뿐이었다. 요도구를 혀로 누르고 어루만지면서 강하게 흡입하는 통에 시야가 번쩍거렸지만 조지의 모습만은 또렷하게 보였다. 보란 듯이 성기를 먹어 치우는 통에 시선을 잠깐 돌렸다. 아랫배에 숨결이 느껴지자 꾹 감았던 눈꺼풀을 힘들게 들어 올린 앤드류가 본 것은 여전히 자신을 보고 있는 조지였다. 

조지가 고개를 느리게 움직였고 난생처음 느끼는 감각에 앤드류는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세웠다. 조지의 입 안은 생각보다 지저분했다. 성기를 먹어 치우는 태도에 평소의 고상함은 없었다. 침을 뚝뚝 흘리면서도 거친 숨을 뱉으며 한참을 앤드류의 성기를 제 좋을 대로 입에 넣고 굴리는 조지는 꽤 즐거워 보였다.

‘조지… 하으으, 조지.’

뜨거운 감각이 넘실거렸다. 데워질 만큼 데워진 몸은 뇌까지 순식간에 올라왔다. 소리를 내어 의사 표현을 하고, 죽지 않기 위해 음식을 삼키는 곳이 주는 쾌감이 너무 뜨거워서 눈꺼풀을 파르르 떨던 앤드류는 이제 한계였다. 그는 조지의 머리통을 붙잡아 자신에게 당겼다. 그는 거부 없이 더욱 깊게 성기를 먹었다. 음낭까지 먹어 치울 기세였고 앤드류는 본능으로 허리를 두어 번 털었다. 

자신의 아랫배에서 쏟아지는 조지의 숨결을 느끼며 본능처럼 허리를 움직이던 앤드류가 별안간 전기를 맞은 것처럼 굳었다.

‘하읏!’

먹히는 신음을 토하며 조지의 머리를 꽉 붙잡은 앤드류는 온몸을 들썩이면서 사정을 했다. 타인의 입에 사정을 하는 건 처음이라 자극이 강했다. 머리를 때리는 쾌감에 온몸을 수축시키며 덜덜 떨고 난 뒤에 해방감이 몰려왔다. 잔뜩 긴장했던 몸이 일순간에 풀려 널브러져 있는데 삐거덕 소리와 함께 조지가 위로 올라왔다. 

붉게 충혈된 눈을 한 조지는 힘 빠진 앤드류의 손을 끌어가 목젖을 만지게 했다. 눈을 똑바로 마주치며 조지가 꿀꺽, 하고 앤드류의 것을 삼켰다. 삼킨 뒤에 붉은 혀를 내서는 입술에 살짝 묻어 있는 정액을 마저 핥아 먹은 조지가 웃으며 속삭였다. 

‘사과 맛은 아니네.’

‘…….’

‘앞도 뒤도.’

“미쳤어 진짜! 와 이 새끼 미쳤나 봐! 그걸, 그걸 왜 먹어?”

앤드류의 머리에 빨간불이 켜졌다. 변태. 변태가 분명했다. 보란 듯이 앤드류의 사정액을 먹어 치우는 것을 보면 제정신이 아닌 게 분명했다. 근데 더 큰 문제는 앤드류도 어젯밤 미쳤다는 것이다. 사과 맛은 아니라는 말에 머리끝까지 흥분한 자신은 못 참고 조지를 끌어안고는 미친 듯이 입을 맞추었다. 조지의 입에선 자신의 풋내가 가득했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래. 제정신이면 그럴 리가 없었다. 둘 다 사이좋게 정신이 나갔다. 그러니 달려들어 입을 맞추는 자신을 거부하지 않고 웃기까지 했지! 자신은 주기가 찾아와 정신을 놓았다 쳐도, 제정신이던 조지는 왜 정신을 놓아!

역겹다는 단어에 빈정이 상했던 앤드류는 방금 전 감정은 다 잊어버리고 지난번처럼 참지 못한 조지를 원망했다. 열에 달뜬 앤드류의 몸을 단단히 끌어안던 조지와 그리고 그런 조지를 더욱 깊이 안으려고 안달을 부리던 자신을!

“그래서! 그래서 그런 말을 했구나!”

앤드류는 그제야 조지가 왜 자신의 잘못만은 아니라고 말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말과 비슷한 대사가 떠올라 덩그러니 놓은 침대를 넋 놓고 바라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네 잘못이야……. 내 잘못이기도 하고.’

조지의 목소리와 쏟아지는 기억들.

“죽을까?” 

앤드류는 심각하게 고민했다.

어제, 달려든 앤드류를 품에 안아 준 조지는 입을 맞추며 밑으로 내려가는 앤드류를 말렸다. 그게 불만스러워서 침대를 손으로 퉁퉁 쳤더니 조지는 진정하라는 듯 웃으며 다시 입을 맞춰 줬다. 그 뒤로, 조지는 다시 펠라를 했고 사정할 때마다 앤드류의 것을 계속 먹었다. 먹을 때마다 보란 듯이 삼키는 것을 느끼게 해 줬다. 그럴 때마다 머리가 돌아 버릴 것 같았다. 

몸을 만지고 성기를 무는 행위는 거침없었는데 딱 거기까지였다. 자기만 물고 빨고 먹을 뿐이었다. 지금의 앤드류에겐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어젯밤의 앤드류는 불만스러웠고 맘대로 못 하게 하는 조지 때문에 더 애가 타올랐다. 젖다 못해서 액이 뚝뚝 흐르는 아래는 알파를 간절하게 원하며 민망한 줄도 모르고 움찔거려 댔다. 간지러워 죽을 것 같았다. 꽉 다물린 구멍이 텅 빈 것 같아서 야속했다. 모여든 열기가 해소되기는커녕 더욱더 갈증을 유도하고 있었다. 안을 가득 채워 줄 뭔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허벅지 안쪽에 입을 맞추고 귀엽다는 듯이 아랫배에 이마를 기대어 코로 성기 위쪽을 문지르며 저 혼자 취해 있는 조지가 얄미워 손을 뻗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조지의 몸을 더듬다 턱을 손으로 쓸었다. 

손길에 따라 순순히 앤드류의 위로 올라온 조지는 입을 맞추자 기꺼이 응했다. 입 안을 혀로 더듬으면서 조지의 등 뒤로 한 손을 두른 앤드류가 다리를 활짝 벌린 다음에 밑으로 손을 내렸다. 발기한 성기를 손에 쥐었다. 앤드류는 조지가 거부하기 직전에 그 밑으로 잽싸게 내려갔다. 두 손으로 핏줄이 붉게 올라온 것을 만지다가 끝을 살짝 머금었다. 자신을 말리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상관없었다.

열기가 가득한 곳은 비린 냄새와 함께 페로몬 향이 진하게 올라왔다. 기분 나쁘다는 생각이 하나도 들지 않았고 귀여웠다. 그래서 배운 대로 했다. 훌륭한 선생님을 통해 방금 전에 몸으로 배운 대로 혀로 성기를 쓸어 올렸더니 조지가 낮게 신음을 토했다. 입으로 열기가 퍼져 숨도 못 쉬어 가면서 그렇게 빨았다. 숨도 제대로 못 쉬면서 서툴렀지만 한참을 빨고 핥는데 조지가 갑자기 허리를 밀었다. 조지의 몸 아래에 있던 앤드류가 침대에 박혔지만 공포는 없었다.

손으로 조지의 허벅지를 쓸고 허리를 단단히 감아쥐었는데 그 순간에 페로몬이 입 안으로 쏟아졌다. 정신이 다 아찔했다. 멍했다. 더운 숨을 내쉬던 조지가 앤드류를 끌어 올렸다. 손을 내밀고는 뱉으라고 하는 조지를 멍한 얼굴로 바라보던 앤드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조지 보란 듯이 삼킨 앤드류는 곧 떨리는 숨을 내쉬면서 몸을 웅크렸었다. 하으으. 신음을 토하며 시트를 부여잡았다.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페로몬에 온몸이 다 들떴다. 페로몬에 취해 정신이 없었다. 왈칵왈칵 쏟아지는 제 몸에 떨리는 손을 뻗어 조지를 부둥켜안았다. 

‘조지. 조지.’

정신없이 불러 대니 조지가 앤드류의 아랫배에 자신의 아랫배를 맞췄다. 그러나 삽입은 없었다. 알파를 받아들이고 싶어 움찔거리는 아래를 느끼며 울먹인 앤드류가 조지의 것을 잡아 자신의 아래에 맞추려 시도를 했지만 조지는 넘어가지 않았다.

서로의 성기를 붙이고는 아랫배를 바싹 붙일 뿐이었다. 앤드류는 몸을 눌러 오는 조지의 체중을 고스란히 느끼며 그의 허리에 다리를 감았다. 조지도 앤드류를 꽉 끌어안았고 앤드류의 성기는 고작 눌렸을 뿐인에도 왈칵 말간 액을 토했다. 젖어 들어 가는 아랫배를 무시하며 조지는 천천히 허리를 밀어 올렸다.

삐그덕. 스프링 소리가 귓가를 때렸지만 앤드류는 부족했다. 한차례 사정을 더 했지만 갈증이 더 깊어져 돌아 버릴 것 같았다. 이걸로 만족할 수 없다는 것을 조지도 잘 아는지 곧 손을 뻗더니 앤드류의 아래를 만졌다. 알파를 받기 위해 잔뜩 젖은 아래는 흥분으로 움찔거리고 있었다. 조지가 손끝으로 그곳을 더듬었다. 앤드류는 기대감에 파르르 떨며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면서 조지에게 있는 힘껏 매달렸다. 

‘조지, 조지.’

이름을 부르며 간지러운 자극에 몸부림치며 매달렸고 조지는 그럴 때마다 앤드류의 몸을 만져 주었다.

바로 저 침대 위에서!

밤새. 밤새 그랬다. 저 위에서! 지치지도 않고. 

중간부터 혀가 풀려서 말도 못 했지만 대화도 없었다. 서로 어디 있는지 보고 확인하고 그게 전부였다. 앤드류가 칭얼거리며 달려들고, 조지가 다독이고, 받아 주고, 안아 주고. 살결을 스치는 손길에 몸서리를 치면서 더 닿고 싶었다. 정말로 온몸을 활짝 열어 반겼었다. 네가 내게 어서 와 주길.

“죽자. 그래. 오늘 내가 죽을 날이었네. 이럴 거면 그냥 어제 콱 죽었어야 했는데. 멍청한 앤드류!”

떠오르는 장면을 손으로 휘휘 지워 버린 앤드류가 벌떡 일어났다. 그 녀석이 온몸으로 자신을 누르고 비비던 것을 이제 그만 생각하고 싶었다. 

‘네. 그만 좀 떠오릅시다! 네에에? 이미 죽기 충분하거든요? 그 녀석 위에 올라타서 나 혼자 아래를 비비던 것도 잊고 싶거든요?’

이를 벅벅 갈면서 창문을 열어 아래를 보던 앤드류는 절망했다. 여기는 3층이었다. 떨어져도 다리 부러지는 것이 고작이다. 그리고 죽을 용기도 없었다. 삶을 너무 사랑하는 자신이라 그럴 수도 없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앤드류는 과거의 저를 끄집어내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어서 안절부절못했다.

똑똑. 문소리가 났다. 

‘놈이다! 놈이 왔어! 틀림없이 놈이야!’

온몸이 뻣뻣하게 굳은 앤드류가 문을 노려봤다. 사자의 부름과 다를 바가 없었다. 아주 정중하게도 자신이 왔음을 알리며 노크를 하는 이가 바로 죽음의 사자였다. 죽고자 하면 문을 열어 그를 맞이해야 할 것이지만 차마 지금 마주할 수는 없는 인물이었다. 죽더라도 저 인간 앞에서는 아니었다.

앤드류는 이 방에서 탈출할 필요를 느꼈다. 지체했다가는 최악의 타이밍에 얼굴을 마주칠 게 뻔했다. 앤드류가 급하게 창문턱을 짚었다. 

나, 오늘 이렇게 탈출을, 

“뭐 해?”

해야 하는데? 분명 문을 잠갔는데 조지가 눈앞에 있었다. 상체를 반쯤 내놓고 다리 한쪽은 창틀에 걸친 앤드류를 한심하다는 듯 보며 말하는 것은 분명 조지였다. 

“어, 어떻게 들어왔어?”

질문에 조지는 들고 있던 열쇠를 흔들었다. 앤드류는 마른침을 삼켰다. 룸메이트이기 때문에 조지도 키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미처 못 했다. 흔들리는 열쇠를 가만히 보던 앤드류의 눈에 유난히 긴 손가락이 잡혔다. 앤드류는 자신도 모르게 손끝에 시선을 집중했다. 저 손끝에 닿은 자신의 몸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저 손가락이 내 입에도 들어왔다가 내 몸을 더듬었고 그러다가 내 아래도, 아씨! 아씨! 또! 또! 

자연스럽게 생각이 어젯밤으로 이어지자 앤드류가 질색을 했다. 주체 없는 제 기억력을 욕하는데 조지가 물었다. 

“뛰어내리게?”

마음 같아선 그러고 싶었다. 엉거주춤 창문에 한쪽 다리를 올리고 있던 앤드류에게 조지의 시선이 쏟아졌다. 무슨 짓을 하는지 구경이나 해 보자는 듯이 팔짱을 끼고 구경을 하고 있는 조지는 막을 생각도 부추길 생각도 없어 보였다. 달라붙는 조지의 시선에 창틀을 붙잡은 앤드류의 손에는 식은땀이 흥건했다. 

“결정해. 뭐 할 생각이야?”

조지의 목소리가 즐거워 보이는 것은 착각일까? 

짧게 생각을 하던 앤드류는 일단 창틀에 걸친 발을 내렸다.

“아니. 뛰어내리긴 내가 왜. 그냥 더워서 바람을 좀 쐬려고 했지.”

“더워서?”

“더워서.”

덥다고 말하기엔 이른 날씨임에도 핑계를 댔다. 괜히 팔운동을 휘휘 하는 앤드류를 보며 조지가 말했다.

“난 또. 어제 일이 모두 기억나서 도망치는 건가 했어.”

“무슨. 내가 도망갈 일이 뭐가 있다고.”

“정말 없어?”

이 자식은 왜 이렇게 뻔뻔해? 아니, 자기도 그냥 덮고 가는 게 좋은 거 아니야? 자꾸 기억을 해 보라느니, 정말 없냐느니. 기억하냐느니. 그게 왜 그렇게 중요해? 

속으로 생각은 했지만 앤드류는 티 낼 수가 없었다. 지금 여기서 자신이 기억한다는 말을 하면 앞으로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가 없었다. 약점 제대로 잡힌 것이다. 앤드류는 최대한 뻔뻔하기로 작정을 했다. 

“미안해.”

대뜸 이어지는 사과에 조지는 조금 놀란 표정을 했다. 이 대목에서 사과가 나올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한 듯싶었다. 조지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뭐가?”

“내가 사실. 사실… 기억이 안 난다.”

앤드류의 답이 기대했던 종류는 아닌지 조지는 잠시 바라보다 말했다.

“결정한 게, 그거야? 모르는 척하는 게?”

그래. 이 상황에선 모르는 척하는 게 최고다!

그런 생각으로 앤드류는 도저히 생각이 안 나는 척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를 했다. 

“척이라니. 내가 연기를 얼마나 못하는데. 이건 진심으로, 순수하게 기억이 안 나는 표정이야.”

“…….”

“아무리 생각하려 해도, 해도, 기억이 안 나. 하하하. 내가 좀 머리가 나쁜가 봐.”

“…….”

“그리고… 뭐 별일 아니니까 기억도 안 나겠지. 별일 있었겠어? 없었지. 기억이 안 나는 건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 안 나는 거 아니겠어? 긁어 부스럼 만들 이유가 뭐야. 나는 널 믿어.”

“…….”

“사과 싫어하는 널, 날 업신여기는 널 믿어.”

“…….”

“발현 날에 날 복도에 던진 널 믿어. 그날에도 넌 아무렇지 않았잖아.”

“자꾸 그때 얘기하는데, 내가 아무렇지 않았다고 생각해?”

갑자기 나온 질문에 앤드류가 마른침을 삼켰다.

“어… 지금 이 상황에서 그렇게 말하면, 그리고 너 진짜 되게 아무렇지 않았잖아.”

“페로몬이 가득한 방 안에 있는데?”

“그거야… 넌 날 너무너무 싫어해서, 괜찮은… 너 지금 그 말 이상하다?”

“이상해?”

“그래! 되게 이상해! 이상하게 말하지 마, 진짜. 무서워지니까.”

이건 진심이었다. 앤드류는 애써 침착성을 유지하며 말했다.

“나는 나도 믿고. 너도 믿어. 우리를 믿어. 내가 너를 믿는다니까?”

“…….”

“그러니까 내 믿음을 깨트리지 말아 줄래?”

“…….”

“그리고 어제는, 진짜 기억이 안 나. 내가 막 페로몬에 취해서 맘도 없는 알파한테 그럴 애는 아니고. 너도 아닐 거 아니야? 그렇지? 그러니까 별일 없었을 거야. 그렇지?”

말을 할수록 수렁에 빠지는 것 같았으나 이미 시작한 거짓말이니 중도 포기는 없단 심정으로 입을 쉬지 않았다. 정말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고. 노력은 했으나 수확은 없었다는 거짓을 진실로 위장하고는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지가 속아 넘어가 주면 철면피는 계속 깔아도 됐다. 그러니 대충 넘어가 주길 간절히 바랐는데 조지가 피식 웃었다. 거기서 앤드류는 알았다. 

이 자식. 절대 모르는 척 넘어가 줄 생각이 없구나.

하긴. 어떻게 잡은 약점인가. 같은 방에 살고 있는 룸메이트를 쫓기 위해 이보다 더 좋은 상황이 없었다. 간밤에 이성을 던져 버리고는 조지의 몸에 제 몸을 비벼 댄 것이 다름 아닌 앤드류 자신이었기 때문에 책임을 따지자면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오히려 최악의 상황까지는 가지 않게 조절한 것이 조지였다. 그래서 더 미칠 것 같았다. 저 몸을 더 느끼고 싶어서 안달 부리던 자신은 어떻게 변명해도 변명이 될 수가 없었다.

“그래. 진짜 기억이 안 난다?”

“기억 안 난다니까. 내가 머리가 좀 안 좋아. 네가 무슨 짓을 해도 난 기억 못 할걸.”

“…….”

“그리고 굳이 기억할 필요도 없어.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니까 기억을 못 하는 거겠지.”

넘어가지 않을 작정으로 시침을 뚝 뗐다. 

네가 무슨 소리를 해도 나는 절대로 넘어가지 않으리라! 

“그래?”

“그래.”

“그럼 노팅도 기억 안 나겠네.”

“그럼 그럼. 당연히 기억 안… 뭐 뭐?”

“두 번. 네가 해 달라고 졸라서 내가 어쩔 수 노팅했잖아. 좋다고 매달리던,”

“이게 왜 거짓말을 하고 난리야? 어? 노팅은 무슨 노팅? 네가 언제 노팅을 했어? 내가 언제 노팅을 해 달라고 졸랐어 이 변태 자식아!”

“…….”

노팅이 일어날 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난데없이 노팅을 들먹임에 순간 열이 나서 달려들었던 앤드류가 자신을 빤히 보는 조지의 푸른 눈동자를 마주하고는 아차 싶었다. 당황한 앤드류가 조지의 멱살을 놓쳤다. 제임스가 늘 너는 그 성질머리 때문에 문제라고 하던 말을 좀 귀담아 들었어야 했다. 뒤늦게 후회하면서 앤드류는 침묵했다.

“기억하네.”

“……아… 아니야.”

“하네.”

이 정도로 필사적으로 기억 못 한다고 하면 대충 알아듣고 넘어가 줄 것이지 조지는 그럴 마음이 전혀 없어 보였다. 환장하겠는 앤드류는 관짝에 들어가는 심정을 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그래! 기억했다! 했는데 뭐? 뭐 어쩌자고! 뭐 아무 일도 아니었구만! 별일도 아니었는데 그게 왜!”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물고. 궁지에 몰린 앤드류는 자폭을 한다.

“그게 무슨 별일이야? 그래, 다 기억나는데 뭐 어쩌라고! 기억나서 기겁한 내가 스스로 이 방을 떠나 주길 바랐어? 요즘 같은 시대에 그게 무슨 엄청난 별, 별일이라고 내가 겁을 먹고 도망을 치겠냐? 어? 뭐 엄청 대애단한 것도 없었고만!”

사실은 줄이 없는 번지 점프대에서 수백 번은 떨어질 만한 일이지만 억지를 부렸다. 스스로 미쳤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번 터진 입은 좀처럼 다물어질 줄을 몰랐다. 시뻘게진 얼굴로 부리는 억지는 필사적이었다.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는 표정의 조지는 응수 없이 조용히 앤드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 헛소리를 하다가 혀를 꽉 깨물고 싶은 충동을 느끼며 앤드류는 뒤늦게 입을 다물었다. 어색한 침묵이 맴돌았다. 

“별일 아니라고?”

“너는 그게 별일이야? 왜 이렇게 집착해? 모르는 척 넘어가자는데 왜 이렇게 집착하는데, 어?”

“…….”

당연히 아니라는 대답이 나올 줄 알았건만 조지는 조용했고 덕분에 어색한 침묵이 301호를 휘감았다.

‘뭐야? 반응이 왜 저래?’

차라리 조지랑 말다툼이라도 하면 속이 편할 것 같은데 애매한 타이밍에 조지는 침묵을 고수하고 있었다. 앤드류는 차마 조지를 볼 수가 없었다. 마른침을 꿀꺽 삼킨 앤드류는 손바닥에 흥건한 식은땀을 느꼈다. 뭐라도 한마디 해 주면 좋겠는데 조지는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앤드류는 잔뜩 젖은 제 손을 어쩔 줄 몰라 하며 결국 물었다.

“너도 별일 아니라고 말해야지.”

“…….”

“왜… 아무 말도 안 해?”

“…….”

“너 왜 자꾸 너처럼 안 굴어? 왜 이래?”

조지는 작게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내가 한 짓이 있어서, 나처럼 굴라는 말에 그게 뭐냐고 되물을 수가 없다.”

“……그래. 네가 한 짓.”

“그래. 내가 벌인 짓이지.”

“…….”

“일단. 네 페로몬은 나만 맡는 게 확실한 거 같다.”

“뭐?”

“다른 애들은 반응이 없었어. 없더라. 그 교실 안에 있던 어떤 알파도 자신의 바로 옆에 힛싸가 시작된 오메가가 있는 줄 몰랐어. 나만 알았어.”

“아, 아!”

이제야 교실 상황이 떠오른 앤드류가 뒤늦게 알아챘다. 

“만약 네 페로몬을 느낄 수 있는 알파가 있었다면 거기서 너 빼내 오는 게 쉽지는 않았을 거야. 그리고 넌 아주 당연한 순서로 지금 여기 이 방에 있을 수도 없었어.”

“…….”

“일단, 나만 네 페로몬에 반응하는 게 맞아. 본딩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너, 우성이지?”

“…….”

“여기서도 아니라고 우길래?”

“맞아. 우성.”

이 상황에서 거짓을 말한다 해도 소용이 없을 것이 분명했기에 망설임 끝에 답했다. 페로몬의 농도부터 차이가 날 거고 다 들킨 마당이었다. 앤드류의 수긍에 그럴 줄 알았다고 혀를 찬 조지는 앤드류를 빤히 바라봤다. 

“마지막으로 물을게. 너. 우성 오메가면서도 여기에 꼭 남아야겠어? 어제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조지의 태도가 조금 달랐다. 마냥 내쫓으려고 묻는 목소리는 아니었다. 차분하게 묻는 것은 사실 여부를 가리는 수준에 가까워서 덩달아 차분해진 앤드류는 조지가 묻는 이유를 알았다. 

우성 알파와 우성 오메가니까. 서로 사실을 몰랐으면 조금 달랐겠지만 이제는 안다. 그런데 조지는 왜 이걸 묻고 있는 걸까? 머뭇거리던 앤드류가 물었다.

“남고 싶어.”

말하면서도 자신이 옳은 선택을 했는지 확신은 없었다. 상황이 이 지경까지 흘러왔으니 이쯤 하면 됐다고 항복을 선언하는 것이 더 현명한 것 같긴 했다. 그리고 이제 이 학교에 머물고 떠나는 것은 자신의 고집만으로 결정된 문제는 아닌 것 같았다. 

발현에 히트 사이클까지 모두 지켜본 눈앞의 알파가 칼자루를 쥐고 있었다. 어쩌면 그편이 나은 것 같았다. 스스로 물러날 자신은 없으니 조지가 자신을 밀어내는 것이 나을지 몰랐다. 

앤드류는 마음을 다잡았다. 이 길로 조지가 관리실로 가겠다고 말을 해도 잡지 않을 생각으로 조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럴 줄 알았다. 알았어. 그래 그럼.”

추방 선고를 기다렸으나 조지가 뱉은 말은 예상외였다. 

“뭐? 그렇게 하라고? 그게 무슨 뜻이야? 너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조지. 갑자기 왜 이래?”

“내가 한 말 뭐로 들었어.”

“네가 뭐라고 했는데?”

“걱정돼서 찾아갔다고 했잖아.”

“걱… 정?”

“…….”

“그럼… 나 여기 있어? 정말 여기 그냥 있어? 쫓아낼 일 없다고? 내가 오메가란 것도 아무한테도 말 안 할 거고?”

“응.”

“진짜로?”

“그래.”

“왜? 왜 갑자기 마음이 바뀌었어? 아니, 넌 괜찮아? 아니, 나는 괜찮지만. 아니, 괜찮아도 문제이긴 하지. 아… 아 진짜!”

어제 그런 일이 있었는데 괜찮으냐고 묻자 조지가 말했다.

“쫓아낼 생각이었다면 기억해 내라는 말 하지도 않았어. 그럴 작정이었으면 지금 이 시간에 네가 이 방에 있지도 못했을 거야.”

“그럼. 어제 일은 없, 없던 일로 하는 거지?”

“…….”

“그거로 막 이상하게 날 협박한다거나 그런 건 없는 거지?”

“협박할 거리가 돼? 별일 아니라며. 그러니까 별일 아닌 거로 해.”

“없던 일로 한다고?”

“특별한 일이 아닌 걸로 하자고.”

앤드류의 턱이 밑으로 떨어졌다. 분명 같은 나라의 언어로 하는 말인데도 무슨 외계어로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일단은. 그렇게 해.”

“일단?”

무슨 말이 그래? 아니 도대체 상황이 어떻게 되어 가는 거야?

혼란을 담아서 바라보는데 조지가 한 걸음 다가왔다. 숨소리가 느껴질 만큼 다가와 앤드류를 내려다보는 눈이 어쩐지 평소보다 더 또렷해 보였다. 

“나도 그렇게 하기로 했어. 그편이 재미있을 것 같아서.”

“재, 재미?” 

“나한텐 아닌데, 너한텐 별일이 아니라며.”

“무, 무슨 소리야. 대체. 알아먹게 말해.”

“어제 네가 나한테 그랬잖아. 별일 아닌 이유.”

자신이 했던 말이 떠올라서 기겁을 하는데 조지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넣지는 않았잖아. 일단은.”

문제가 하나 더 있었다. 

기억이 앤드류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조지가 기억하고 있다. 어제 앤드류가 무슨 말을 하고 무슨 짓을 했는지!

‘왜 안 해?’

‘하고 있잖아.’

‘아니 아니야. 아니잖아. 안 넣었잖아. 왜 안 넣어 줘? 응? 넣어 줘. 왜 안 해 줘?’

과거로 돌아가 그런 말을 지껄이는 나를 기절시키려면 회귀가 필요했다. 그래. 회귀. 돌아가자. 그 어느 때보다 간절했다. 그런 말을 하기 전에… 아니. 히트 사이클이 터지기 전에. 아니! 마운팅을 당하기 전… 이 아니라 오메가인 것을 걸리기 전? 기숙사에 들어오기 전?

고상한 얼굴을 하고는 저런 말을 뱉는 조지에게 단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돌아온 기억으로 알게 된 것은 변태에 가까운 것은 조지가 아니라 자신이라는 것이다. 최대한 자제를 하려 노력하는 조지를 두고 불만족스러워 별짓을 다 한 게 자신이었다. 그래. 말 그대로 저거 빼고 다 했다. 다. 하나 빼고 다.

알파를 유혹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어제의 나를 찾아가 단죄할 수도 없고. 어제의 자신은 알파인 조지가 마음처럼 자신을 만져 주지 않는 것이 서럽고 서러웠다. 발현을 했을 때에 봐 주지 않은 녀석이 미워 죽겠으면서도 이번에는 나를 만져 주는 것이 그렇게 기쁘면서도 서러웠다. 

지구 망한 줄 알았다. 조지의 이름을 다정하고 애타게 부르던 어제의 자신은 제 피부를 더듬는 그 녀석의 손바닥에 전율을 느꼈었다. 

‘나 왜 그랬을까.’

제 발등 자신이 찍었다. 그것도 가차 없이 찍었다. 침묵하던 앤드류가 약간 차분해진 얼굴로 조지를 올려다봤다. 

“왜 그렇게 봐?”

일어난 일은 돌릴 수 없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망각은? 

앤드류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조지는 조금 당황했다. 조지는 나름대로 기억을 찾은 앤드류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지 몇 가지 생각을 했다. 방금 전까지는 자신이 생각했던 대로 당황하고 엉망인 얼굴로 어쩔 줄 몰라 했다. 

붉어진 얼굴로 시선을 피했다. 신경이 곤두서서는 조지가 조금만 손을 뻗어도 놀라서 솜털을 삐죽하게 세우고는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우왕좌왕하는 것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었는데 지금은 달랐다.

앤드류답게 극적인 반응이 나올 줄 알았는데 애가 반대로 차분해지더니 조금 살벌한 눈빛으로 조지를 보고 있었다.

“앤드류. 너 무슨 생각해?”

“너와 나. 우리 둘 모두에게 이롭고도 이로운 생각.”

뭔가 기분이 좋지 않은 조지가 한 걸음 물러났다.

“왜 갑자기 이런 반응이야?”

“내가 뭐?”

“너 지금 되게 이상한 눈빛이잖아.”

“뭐가 이상한 눈빛이야?”

“어제보다 훨씬 이상해.”

그 말에 앤드류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

“그래. 그러니까 문제야. 그러니까 조지. 이리 와.”

“…….”

“괜찮아. 살인은 안 해.”

“뭐?”

“살려는 드릴게.”

조지가 황당한 얼굴을 했다.

“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제정신이야?”

“너 되게 웃긴 소리를 한다. 너 같으면 지금 이 상황에서 제정신이겠어? 사람이 허용 범위 이상의 흑역사를 적립하면 눈에 뵈는 게 없어져. 그러니까 그런 의미에서 조지. 너와 나를 이로움을 위해, 좋게 말할 때 머리 몇 대만 맞아 보자.”

“…….”

“내 기억은 내가 알아서 소거할 테니까. 너, 너부터 처리하자고.”

다가오는 앤드류의 눈빛을 보건대 하는 말이 거짓은 아닌 게 분명했다. 조지는 뒷걸음질 쳤다. 정말로 그럴 작정인지 손을 풀면서 다가오는 앤드류의 눈은 진심이었다. 피하는 조지에게 앤드류는 살벌한 얼굴로 달려들었다.

“너 미쳤어?” 

“그러게 누가 기억하게 만들래? 어? 이리 안 와? 내가 기억 못 해도 네가 기억하고 있으면 안 된다고! 이리 안 와?”

저 자식이. 손을 걷어붙이고는 이를 갈면서 앤드류는 조지를 잡으려고 난리였다. 작은 방에서 이리저리 몸을 피하던 조지가 앤드류의 두 손목을 잡았다.

“놔. 안 놔?”

빠져나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앤드류를 꽉 붙잡은 조지는 실랑이를 벌였다. 주춤주춤 뒤로 밀리던 앤드류가 침대 위로 넘어졌고 조지가 재빠르게 그 위로 올라탔다. 아등바등하는 앤드류의 고개 옆에 두 손을 고정시킨 앤드류가 허리를 숙였다. 

바로 코앞에 조지의 얼굴이 다가왔다. 당황한 앤드류가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침대라 그럴 수가 없었다. 숨소리가 마주칠 만큼 가까이 다가온 조지가 더는 다가오지 않았다. 앤드류가 입술을 깨물었다. 쌕쌕 거친 숨소리가 났다. 숨을 쉬는 것이 의식됐다. 아랫배가 긴장으로 들썩였다. 자신을 빤히 보는 조지의 눈을 결국 피하는 앤드류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또 왜… 뭐……? 또 무슨 짓 하게?”

“무슨 짓은 어제 네가 더 많이 했거든?”

“그러니까 몇 대만 맞아 보면.”

“너 진짜 특이해. 하여튼.”

“뭐?”

조지가 허리를 세웠다. 

“살면서 만난 사람들 중에 네가 제일 이상해.”

“너도 만만치 않거든? 놔. 나 일어날 거야.”

“어제 네가 나한테 했던 말들 네 귓가에 말해 버리기 전에 얌전히 굴지?”

그 말에 앤드류는 거짓말처럼 얌전해졌다. 열이 오른 얼굴로 죽을 표정을 짓는 앤드류의 손목을 놓은 조지가 몸을 비켰다. 어느새 침대 헤드까지 올라간 앤드류가 벽에 붙어서 조지를 바라봤다. 혹시 몰라서 무기로 쓸 무드 등을 든 손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파르르 떨면서 바라보는 눈에 가득한 것이 경계심이었다. 

“그만 날뛰어. 괜찮으니까.”

조지의 말에 앤드류가 이를 악물었다. 

괜찮다? 그 말은 자신에게 하던 말이었다. 오메가가 되었을 때에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학교를 포기할 수가 없어서 전학을 거부했을 때에도. 학교에 돌아왔을 때에도. 모든 상황에서 늘 자신에게 나는 괜찮다고 해 왔지만 조지가 그런 말을 하니까 마음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이상하게도. 

모든 것이 다 괜찮을 것이라고. 그러니까 나는 너무 겁먹지 않아도 된다고. 세상으로 나가는 것을 주저할 이유가 없다고. 내가 살아왔던 삶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그런 마음으로 버텼는데. 학교에 돌아오자마자 벌어진 일들이 너무 많았다. 그것도 짧은 기간 안에 견디기 버거울 정도로 너무 많은 것이 변해 버렸다. 1년은 걸릴 줄 알았던 발현이 온 것도 그랬고 히트 사이클도 그랬다. 바뀐 몸도 낯설고 적응이 안 됐음에도 억지로 괜찮다고 자신을 다독이던 앤드류는 이제 한계였다.

“괜찮… 괜찮은 게 뭐가 있어?”

떨리는 목소리에 물기가 서려 있었다. 무드 등을 꽉 끌어안고 있는 앤드류의 눈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내가, 내가 어떤 심정인지 네가 알아? 알기는 알아? 괜찮아? 네가 괜찮아? 네가 나한테 한 짓이 있는데 괜찮아?”

“…….”

“하나도, 하나도 안 괜찮아 나. 난 하나도 괜찮지 않단 말이야.”

터진 서러움은 막을 수가 없었다. 코가 시큰거리는 것을 넘어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목울대가 아팠으나 멈출 수가 없었다. 조지가 당황해서 손을 내밀었다. 치우라고 신경질을 부린 앤드류는 이제는 목 놓아 울었다.

“내가 어쩌다가… 흐어엉엉. 왜 이렇게 바뀌어선. 흐어엉… 힛싸를… 내가? 나는 내가 사랑할 오메가 힛싸를 기다렸는데에에에. 내가 힛싸가 터지고오오오.”

“…….”

“너… 너 진짜 그러면 안 됐어. 안 됐다고. 알겠냐? 인생 종 쳤다고! 본딩? 뭐 본디잉? 너 이 자식아! 내가 얼마나 무서운 걸 버티고 여기에 있었던 줄 네가 알아? 아냐고. 나쁜 자식아! 사악한 자식아!”

“…….”

“너 아니면 발현 안 했을 수도 있어! 네가 무식하게 마운팅만 안 했더라도 내가 빌어먹을 힛싸를 터트릴 이유도 없었다고! 그냥 얌전히 나랑 같은 방 썼으면 되는 거였잖아! 내가 물어봤더니 다들 너 같은 알파는 개싸가지에 개새끼라고 했어! 알아? 그렇게 날 던져 버리고! 내가 얼마나 무서웠는데! 사실은 내가 얼마나 무서웠는데!”

애써 묻어 두고 외면했던 감정들이 쏟아졌다.

울고 싶지 않았다. 오메가가 됐다는 이유로 우는 건 싫었다. 그건 좀 창피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것도 조지의 앞에서 그러고 싶지는 않았으나 이미 터진 것은 다 털어내야 끝이 날 것처럼 끝이 없었다. 

자신의 몸을 저주하고. 형질을 욕하고. 조지를 탓하고. 

알파의 성질을 원망하면서 한동안 그렇게 서러움을 쏟아 내던 앤드류가 이제는 통증이 몰려온 눈을 손으로 쓸었다. 숨을 헐떡였다. 딸꾹질이 올라와 몇 번 들썩인 앤드류가 몰려오는 피로를 느끼면서 자신의 앞에 가만히 앉아 있는 조지를 봤다. 뒤늦게 정신이 들어서 지금 자신이 엄청 창피한 상황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이제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도 있었다. 

그래. 어차피 저 녀석이랑 볼 거 안 본 거 다 보지 않았던가. 

“너 진짜 나한테 개자식이야. 알아?”

다시 한번 말하면서 티슈를 찾아 얼굴을 닦았다. 코까지 킁 풀고는 어쩐지 속이 후련한 느낌도 들었다. 

“미안했다.”

그 말에 앤드류가 코를 풀다 조지를 봤다. 

“너한테 그런 짓 하고 복도로 던져 버린 거.”

“…….”

“내 잘못이야. 변명의 여지 없는. 내가 많이 잘못했어.”

차분한 목소리로 말하는 조지였으나 앤드류는 자신이 맞게 들은 것인지 분간이 안 됐다. 그 고상하고 오만한 왕자가 자신에게 미안하다고 하고 있다.

“진짜야. 미안해. 계속 마음에 걸렸어.”

앤드류의 얼굴에 달라붙은 티슈 조각을 떼어 버린 조지는 앤드류가 구명줄처럼 손에 쥐고 있는 무드 등도 빼내 협탁 위에 올렸다. 저항 없이 조지를 따르는 앤드류는 어리둥절해 보였다. 조지가 아무 말 없이 밖으로 나갈 때까지 정신을 못 차리던 앤드류는 301호에 혼자 남게 돼서야 작게 중얼거렸다. 

“지금… 저 자식, 뭐라 한 거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려는데 조지가 곧장 들어왔다. 그는 어디서 작은 아이스 팩과 얼음물을 가져와 내밀었다. 받아 든 앤드류가 안 그래도 마른 목을 축였다. 

“너. 내가 울었다고 나 만만히 보는…….”

“그럴 리가 있겠냐. 국왕의 사랑을 받는 나한테 살려는 드린다고 말한 너를? 그런 말 처음 들어 본다 진짜.”

앤드류가 코를 풀었다. 이제는 해가 저물고 있었다. 어둑해지는 창밖을 바라본 조지를 보던 앤드류가 가만히 바라봤다. 

“그럼 나 안 쫓아낸다고?”

“그래. 그렇다니까. 몇 번 더 말해 주면 믿을래?”

“나한테 그런 짓 안 하고?”

“……마운팅 같은 건 이제 다시 안 해.”

“나 복도에 막. 그냥 막 버리는 짓도 안 하고?”

“안 해. 다시는.”

단호하게 말하는 조지를 보며 잠시 생각하던 앤드류가 일어나 종이를 꺼냈다. 그러고는 뭔가를 쓰더니 조지의 눈앞에 종이를 내밀었다. 조지가 읽었다. 

「앤드류와 조지의 룸메이트 수칙

하나. 301호에 형질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무형질이다!

둘. 그런고로. 지난밤에 일어난 불미스러운 일은 깨끗하게 잊는다.

셋. 독방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같은 방을 쓴다.

넷. 기간 동안 조지와 앤드류는 서로의 신체 안정을 보장한다.

다섯. 알게 된 서로의 비밀은 평생 함구한다.」

“내가 생각하던 것과 정반대로 일이 돌아가고 있지만. 어쨌든 내 페로몬은 너에게만 유효해. 그건 다른 알파들한테선 안전하다는 의미잖아. 그 점을 생각하면 굳이 내가 학교를 떠날 이유는 없지만…… 그래도 아무런 보호 장치 없이 우성 알파가 있는 이 방에 있기도 좀 그렇고. 그러니까… 사인 좀.”

다 읽은 조지가 물었다.

“그러니까 이게…….”

“너와 나의 원만한 룸메이트 생활을 위한 최소한의 규칙. 추가하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 들어 보고 결정할게.”

“여기에 하라고? 서명을?”

“응. 현대 사회에서는 계약만큼 실효성이 있는 것이 없다지?”

앤드류는 서명하라고 펜을 넘겨주었다. 조지가 약간 마음에 안 드는 얼굴을 했지만 다시 읽어 보더니 느리게 서명을 했다. 어쨌든 앤드류가 하자고 하니까 따르고 있었다. 조지가 물었다.

“넌 이게 효용 가치가 얼마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효용 가치가 있어야 할걸. 너와 나의 안전을 위해?”

“안전이라….”

“그래. 안전.”

조지는 서명한 것을 넘겨줬다. 유난히 반질반질해 보이는 조지의 얼굴에,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조지는 어서 서명하라는 듯 턱을 까딱거렸고 괜히 목을 가다듬은 앤드류는 조지의 서명을 확인했다.

‘이 자식. 달필이네.’

글씨체만 본다면 조지는 고상과 우아함 그 자체였다. 악필에 가까운 자신과는 다르게 조지는 사인 하나에도 품위가 묻어 있었다. 왕족이라 이런가? 이렇게 고상한 척하는 놈이 어제는 그런 짓을 했단 말이지. 안전… 하겠지?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사인하길 기다리는 조지를 힐끔 본 앤드류는 생각했다. 어쩐지 자신이 너무 터무니없는 사람을 믿으려 하는 걸지 모른다고. 

“안 해?”

“해.”

효용 가치가 있길 바라며 앤드류는 최대한 정성을 들여 자신의 이름을 적기 시작했다. 

“조지.”

“왜.”

“고마워.”

“…….”

“내가 오메가란 거, 누구한테도 말 안 한 거.”

“…….”

“날 걱정해서 내 교실로 찾아와 준 것도.”

반듯한 조지의 서명 옆에 이름을 모두 새겨 넣은 앤드류가 고개를 들었다. 

“고마워.”

“…….”

둘의 시선이 오롯이 마주쳤다.

***

지난날에 벌어진 일들에 정신이 하나도 없지만 결말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적어도 앤드류는 그렇게 생각했다. 조지라는 불안 요소가 사라진 것은 큰 수확이었다. 이제 301호를 쟁취하기 위해 벌어지던 치사하고 치졸한 쟁탈전은 끝이 난 셈이었다.

“뭐 해?”

이제는 저렇게 불러도 가슴이 놀라지 않았다. 

“점검.”

“점검?”

등교 준비를 하더니 거울 앞에 서서 이리저리 자신의 모습을 살피는 앤드류의 옆에서 조지가 물었다.

“어디 이상한 곳 없나. 이질감이 있나 없나.”

발현을 하고 첫 등교가 며칠 전이었는데 이제는 히트 사이클이 터진 뒤 첫 등교였다. 301호 숙박권을 사수한 앤드류라도 걱정이 조금 됐다. 그래서 거울 앞에서 자신을 둘러보고 있었다. 

오늘도 정신 바짝 차리자.

다짐을 하지만 사실 정신을 바짝 차려도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슬슬 깨달아 가고 있던 차라서 이제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에 가까웠다. 뒤를 돌았더니 자신의 룸메이트인 조지가 있었다.

“매일 아침에 이랬어? 빙글빙글. 거울 앞에서.”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거든?”

“내가 무슨 생각 하는데?”

“나 왕자병 그런 거 아니야.”

“그런 생각 안 했어.”

“…….”

“이렇게 아침마다 자신의 모습을 살피며 혹시 들킬까, 걱정하는데 행동은 왜 이럴까. 그 생각했어.”

“은근히 비꼰다?”

“네 태도에 대한 적절한 지적이라 생각하는데?”

딱히 반박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뭐. 나 오메가 같아 보이냐?”

아침마다 혹시 내가 바뀐 것은 없나 확인했던 기분이 썩 유쾌하진 않았다. 자신은 모르는. 알파에게만 보이는 오메가의 특징이라는 것이 있지는 않을까? 그런 것이 있다면 찾아내서 없애 버려야 하는데. 초조하고 비참한 마음으로 거울에 담긴 자신의 몸을 바라보곤 했었으나 지금은 아니었다. 

앤드류의 물음에 조지는 큰 손을 뻗어 구겨진 소매 끝자락을 조심스럽게 펴 주며 말했다.

“안 이상해. 그냥 너 같아. 성질 이상한 너. 가자.”

늘 따로 갔지만 오늘은 같이 학교로 향할 생각인지 조지가 문을 열었다. 앤드류가 문 앞에 섰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알아보는 친구들의 인사를 받았다. 

‘그들은 알파일까 친구일까?’ 

생각을 하던 앤드류가 조지를 돌아봤다. 조지의 앞에서 한바탕 울어서 그런 건지, 불안에 떨고 있었다는 것을 인정해서 그런지. 이젠 조지가 조금 편했다. 어제는 적이었지만 지금은 적이 아니었다. 이상하게 조지에게 신뢰가 생겼다. 오메가인 것을 알고 그가 한 짓은 있지만 진실한 사과도 받았고 도움받은 것도 사실이었… 근데 그게 도움인가? 조금 헷갈리긴 했다. 지금은 자신의 옆에 서 있는 조지. 난폭한가 싶다가도 섬세한 것 같은 이상한 녀석. 

굳이 같이 등교할 필요가 없음에도 기다리는 조지를 가만히 바라보던 앤드류가 고개를 저었다. 

“그래. 가자.”

딸깍, 소리와 함께 301호 방문이 닫혔다. 방문에 걸려 있는 301호 룸메이트 수칙이 펄럭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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